고선지(高仙之)

고선지는 고구려의 유장 고사계(高舍鷄)의 아들이다. 그는 당나라 때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가 되어 당나라의 서북변경을 점령하여 서양으로 가는 무역로와 교통로를 확보하여 세계역사상 불후의 위업을 달성한 당나라의 장군이다. 고선지는 어려서 아버지 고사계를 따라 당나라의 서북 변방으로 이주하였다. 고사계 부자가 서북 변경으로 이주하게 된 동기에 대해 구체적인 기사가 없기 때문에 상세한 것을 알 수 없고 단지 여러 가지 정황을 참작하여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당나라는 668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구토를 그 강역에 포함시켰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고 2만의 군사들을 주둔시켰고 지방에는 도독(都督), 자사(刺史) 등을 두어 고구려의 옛 영토를 통치하려고 했다. 또한 고구려의 유민을 계속해서 그 땅에 계속 살게 해 줄 경우 언젠가는 고구려가 다시 일어나 당나라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유민들을 중국의 여러 지방으로 강제적으로 소개시켰다.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669년 5월 고구려 유민 3만 8천 호를 강회(江淮) 지역 즉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사이의 땅과 산남(山南 : 태항산 남쪽 산록으로 선서성의 남부지방과 하남성의 황하 이북 지방을 말한다), 병주(幷州 : 지금의 산서성 성도인 태원(太原)), 량주(凉州 : 지금의 감숙성) 등의 황무지로 이주시켰다.

당나라 조정은 고구려 땅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을 막기 위해 677년 장안으로 끌고 갔던 보장왕(寶藏王)을 다시 요동(遼東) 지역으로 보내 요동주(遼東州) 도독(都督)과 조선왕(朝鮮王)을 겸직시켰다. 이어서 앞서 여러 곳으로 이주시켰던 고구려유민들을 다시 요동으로 보내어 조선왕 밑에 복속시켰다. 그러나 보장왕이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하고 말갈족과 연합하여 당나라에 반기를 들려고 하였기 때문에 당나라 조정은 보장왕을 다시 장안으로 소환하고 그 유민들은 하남(河南)과 지금의 감숙성과 신강성 일대인 농우(隴右)로 옮겨가 살게 했다. 그때 고사계 일가도 함께 끌려가 안서에 살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사계는 량주(凉州) 산하의 하서군(河西郡)에서 종군하여 공을 세워 군관이 되었다. 하서군은 지금의 감숙성 일대인 농우(隴右) 일대를 통치하기 위해 새로 세워진 군현이다. 그 치소는 지금의 감숙성 무위시(武威市)에 있었고 하서군은 그 관하에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 등의 하서(河西) 4군이 있었다. 이 지역은 당나라가 서쪽으로 인도 혹은 중앙아시아와 통하는 무역로인 <비단길>이 지나는 길목이었으며 서방의 여러 나라들의 사신이나 상인들이 당나라를 드나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곳은 또한 흉노족과 서역 여러 민족들의 침략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고선지의 부친 고사계는 이와 같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중급군관으로 종군한 것이다. 그 후에 고사계는 이민족과 벌어진 여러 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그의 직급이 안서사진교장(安西四鎭校將)까지 올라가 임지인 안서(安西)로 옮겨가 살게 되었다.

고사계의 새로운 근무지인 안서사진(安西四鎭) 즉 언기(焉耆), 구자(龜玆), 소륵(疎勒), 우전(于闐) 등은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으로 둘러싸인 타림분지의 남쪽 외곽지역에 설치된 당시의 당나라의 주요한 변경도시였다. 이 사진(四鎭)의 지휘부인 안서도호부(安石護府)는 구자에 있었다. 고사계가 고구려 유민으로서 하서 일대에서 <비단길>의 안전을 확보하여 당나라와 서방의 여러 나라사이의 교역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당나라의 서북 변경의 방어에 여러 번의 공을 세워 안서군(安西郡) 사진(四鎭)의 교장(校將)으로 승진함으로서 그 이름이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중급 군관의 신분으로 역사서에 기록된 것은 그가 세운 공훈도 있었지만 그의 아들 고선지가 세운 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고사계가가 하서(河西)에서 안서(安西)로 옮겨 갈 때 어린 나이의 고선지도 그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갔다. 고선지는 어렸을 때는 성격이 유약하고 게을렀다. 그래서 고사계도 그의 아들이 무인으로 자라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선지가 성장함에 따라 풍채가 늠름해 지고 활을 잘 쏘았으며 용기와 관단성을 지닌 뛰어난 무인의 소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가 그 부친을 따라 안서지방으로 간 시기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라는 설과 20여 세가 지난 후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의 나이 20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종군을 시작한 고선지는 얼마 되지 않아 유격장군(游擊將軍)으로 올랐고, 유격장군이 됨으로 전투가 벌어지기만 하면 매번 용감한 행동으로 공을 세워 당나라 개원(開元) 말년 즉 기원 741년에는 안서도호부(安石護府) 부도호(副都護) 겸 사진도지병마사(四鎭都知兵馬使)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현종(玄宗)의 당나라 조정은 안서도호부(安石護府) 절도사(節度使) 부몽영찰(夫蒙靈察)에게 천산산맥 너머의 달해부(達亥部)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몽영찰은 다시 그 임무를 고선지에게 맡겼다. 고선지는 2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파미르고원의 북쪽에 있던 능령(綾嶺)을 넘어 달해부를 정복하여 당나라에 복속시켰다. 이 것이 고선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한 서역원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당나라의 서쪽에는 티베트족이 세운 토번(吐藩)이라는 나라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토번과 당나라 사이에 있던 소발율국(小勃律國)을 두고 두 나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소발율국은 비록 조그만 국가이기는 했지만 그 위치가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발률국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에서 서쪽으로 4500키로, 인도와의 분쟁지역인 캐쉬미르 북쪽 250키로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고선지가 이 곳을 원정하기 30년 전에 신라의 고승(高僧) 혜초(惠超)가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그곳의 모습을 ‘빈민이 많고 부자가 적으며 산천은 협소하며 농사 지을 땅도 많지 않다. 그 곳의 산은 원래 나무와 풀도 자라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이 나라는 원래 당나라가 지배했던 곳이다. 그러나 토번이라는 나라가 그 세력을 확장하여 강대해지면서 그 주변의 달해부(達亥部), 소발율국(小勃律國), 호밀국(護密國), 대발율국(大勃律國) 등 20여 개의 소국을 그 지배하에 넣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나라의 서북 변경의 안정을 해쳐 그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장안에서 출발하여 페르샤를 거쳐 유럽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라는 교역로가 끊어지고, 또한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로 가는 불교 승려들의 통행로가 막히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당나라 조정은 절도사 전인완(田仁宛), 개가운(蓋嘉運), 부몽영찰(夫蒙靈察) 등을 차례로 서북 변경지방으로 파견하여 토번을 공격하도록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만 거듭했을 뿐이었다.

한편 소발율국 왕 소실리(蘇失里)는 당나라와의 조약을 어기고 토번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 토번의 세력은 이미 소발율국에 깊이 뿌리를 박게 된 것이다. 이에 당나라 조정은 천보 6년, 기원 747년 3월에 고선지를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로 임명하고 그에게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된 1만여 명의 병력을 주어 소발율국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당나라 조정의 명을 받은 고선지는 소발율국을 향해 원정 길을 떠났다. 고선지와 그의 부대는 안서도호부가 있었던 구자(龜玆)를 떠나 95일 동안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행군 끝에 오식닉국(五識匿國)에 당도했다. 그는 그곳에서 부대를 다시 정비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부대를 동, 중, 서 세 갈래로 나누어 행군하여 연운보(連雲堡)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고선지 부대는 사막지대와 고산지대를 행군하면서 마초와 식량의 조달로 극심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더욱이 파미르고원은 이미 토번의 세력권 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항상 적군으로부터 요격을 받을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연운보에는 적군 수비대가 약 천여 명 주둔하고 있었고 그 남쪽 7키로 되는 산중에는 목책을 강고하게 세운 요새에 8-9천의 토번군이 있었다. 연운보의 적군 수비대는 고선지 부대가 온 다는 첩보를 받고 사륵천(沙勒川)의 급류를 방어선으로 삼아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는 또한 우기(雨期)라 사륵천에 홍수가 나 도강하기가 매우 어려웠었다. 그러나 고선지 부대는 사륵천의 격류에 불구하고 과감하게 도강을 하여 토번의 수비대를 공격하여 토번군 5천여 명을 죽이고 1천여 명을 포로로 잡는 대 전과를 올렸다. 고선지는 부상병과 3천 명의 군사를 연운보(連雲堡)에 남겨 그 곳을 지키게 하고 남쪽으로 계속 진격하여 3일 후에는 탄구령(坦驅嶺)에 이르렀다. 힌두쿠시산맥의 주봉인 탄구령은 백설과 빙하로 덮인 생물이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흡이 곤란하고 두통이 심한 고산병이 있는 지대였다. 고선지는 이 탄구령을 넘어 갈 것을 결정했다. 그 결정은 현지 사정에 밝고 여러 가지 유리한 조건을 갖춘 토번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통로인 탄구령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선지가 거느린 부대는 천신만고 끝에 해발 6000미터가 넘는 탄구령을 넘었다. 그러나 고선지와 그의 부대 앞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아래 흐르는 인더스강의 지류인 사이수(娑夷水)의 격류가 가로막고 있었다. 고선지는 그 부하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그 절벽 길을 3일 간의 사투 끝에 내려 왔다. 이튿날 마지막 목표인 소발율국에 이르러 그들의 서울인 아노월성(阿弩越城)을 점령하고 소발율국왕과 공주를 포로로 잡았으며 토번에 협조했던 족장들을 찾아내 죽였다. 그는 소발율국의 아노월성을 점령하자 즉시 그 남쪽 30키로미터 지점의 계곡과 절벽에 걸려 있던 구름다리를 끊도록 지시했다. 그 다리는 소발율국이 1년이란 시간을 토번과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가설한 것이었다. 토번군의 지원군이 소발률국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 왔지만 그 때는 이미 구름다리가 끊어진 뒤였다. 고선지는 소발률국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 국왕과 공주들을 포로로 앞세우고 그 해 8월에 개선의 길에 올랐다.

소발률국에 대한 고선지의 원정은 세계사에 있어서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다. 후에 고선지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 업적을 발굴한 헝가리 출신이며 후에 영국에 귀화한 고고학자이며 탐험가인 마크 오랠 스타인( Mark Aurel Stein)은 “ 현대의 어떠한 군대도 따를 수 없는 위업이었으며 나폴레옹의 알프스 돌파보다도 도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고선지 장군이야말로 일찍이 유럽이 낳은 어느 유능한 사령관보다도 더 탁월한 전략과 통솔력의 소유자였다”고 극찬했다. 그리고 신당서(新唐書)에는 ‘ 이 후로 동로마, 아라비아(大食國), 기타 서쪽의 이족(異族) 국가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어 조공을 바치며 복종을 맹세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고선지의 일차원정으로 파미르고원 서북에 대한 토번의 세력확장을 제지시키고 그 지대의 여러 세력을 당조그림7. 고선지가 넘었던 힌두쿠시산맥의 세력권 내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이에 당나라는 서방과의 서역교역로를 장악하고 동서양 간의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고 직접적으로는 당나라의 서북 변경을 안정시켰다. 고선지의 승전보가 당나라 조정에 전해지자 현종은 고선지를 <홍려경어사중승(鴻臚卿御史中丞)>이라는 벼슬을 내렸다가 그 해 12월에는 정식으로 안서사진절도사(安西四鎭節度使)에 임명되었다. 고선지는 이로써 서역지방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계속 토번의 당나라에 대한 도전은 그치지 않았다. 고선지의 전격작전으로 소발율국을 잃은 토번은 다른 통로를 이용하여 힌두쿠시 산록에 있었던 갈사국(羯師國)을 세력권 내에 넣고 그 땅을 교두보로 삼아 앞으로 진격하여 토화라(吐火羅)에 압력을 가했다. 토화라의 국왕 실리망가라(失里忙伽羅)는 토번의 세력권 내에 들어간 갈사국의 방해로 캐쉬미르를 통하여 인도로 가는 통로가 차단되었다고 고선지에게에 보고하고 그에 대한 구원병을 청했다. 이에 고선지는 당나라 조정의 허락을 받고 기원 750년 초에 2차 원정을 감행하여 파미르를 넘어 진격하여 갈사국을 멸망시키고 토번의 서역에 대한 진출을 저지했다.

기원 751년 당나라는 번국(藩國)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조공을 바치지 않은 석국(石國)을 정벌하라는 조칙을 고선지에게 내렸다. 석국은 지금의 타지크스탄의 서울인 타쉬겐트에 있었던 소왕국이다. 칙명을 받은 고선지는 3번째로 파미르를 넘어 진격하여 석국을 멸망시키고 그 나라의 국왕을 포로로 잡아 장안으로 호송하여 큰공을 세웠다. 당나라 조정은 고선지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라는 작위를 내려 그 공로를 포상하였다. 그러나 본국에 남아있던 석국의 잔존세력들인 왕자와 관료들은 다시 당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나라와 멀리 있는 아라비아까지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기원 751년 7월에 당나라의 고선지 휘하의 군대와 아라비아와 서역 여러 소국들의 연합군 사이에 <탈라스>라는 곳에서 동서양 사이에 최초로 일어난 대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탈라스란 곳은 석국의 동쪽에 있는 대평원지대로써 군사상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고선지가 거느린 당나라 군사들의 수는 3만이라는 설과 7만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탈라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고선지 부대는 무인지대의 사막을 장시간 행군한 결과 매우 지쳐 있는 상태로 적진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결과가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회교도군과 서역 소국들의 연합군들은 군량도 풍족하고 사기가 드높았으며 병력면에서도 훨씬 우세했었고, 또한 지리적으로도 홈그라운드에 해당하여 그들은 벌어질 전투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어서 당나라 군대와 회교도 군대가 교전에 들어가 5일 간의 전투에서 고선지가 이끌던 당나라 군대는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탈라스(Talas)전투/ 기원 751년 고선지 장군이 이끌던 당나라 군대와 압바스왕조의 회교도 군대 사이에 벌어진 싸움. 탈라스는 중국어로 <달라사(怛羅斯)>, 아라비아어 발음으로는 Taraz라고 표기되는 강 이름이며 또한 그 강안에 위치해 있던 도시이름이기도 하다. 탈라스 강은 천산산맥(天山山脈) 북서부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구부러지는 지점에서 탈라스의 도시를 지나 사막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이 싸움은 고선지가 회교권 왕국이었던 석국(석국(石國 : 샤슈)을 정벌하면서 일어났다. 석국의 왕자와 그 주위의 여러 소국들이 연명하여 압바스왕조에 구원군을 요청하자 압바스의 호라산 총독이었던 아부 무스림(Abu Muslim)은 지야드 빈 샬리프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를 주어 석국을 구원하게 했다. 양 측의 군사들은 수 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5일 간에 걸쳐 혈전을 벌렸으나 투르크 계의 한 부족인 카르르크 족이 당나라에 등을 돌려 당나라 군대를 공격하자 고선지의 당나라 군은 괴멸당했다. 수 만의 군사들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수 천 명에 불과했다. 이 탈라스전투가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이 전투의 결과 당나라 포로가 아라비아로 끌려가 화약제조법, 나침반의 제조와 사용 법, 제지술을 서양에 전파한 것이다. 화약의 등장으로 유럽의 전쟁 양상이 변해 서양의 지배계층이었던 중세기사와 영주들이 몰락하여 서양의 봉건제가 붕궤하고 절대왕조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침반이 전래됨으로 해서 대양을 가로지르는 대항해의 시대가 열었고, 다시 종이가 전파되어 종교혁명과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회교도 군대들과 싸움에서 참패를 당한 고선지는 안서절도사의 직에서 해임되고 장안으로 소환되었다. 장안으로 소환되어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고선지를 보고 당대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가 그의 타고 다니던 호총마(胡驄馬)를 빗대어 지은 시가 있다.

高都護驄馬行(고도행총마행)

安石護胡靑驄(안서도호호청총)

안서도호 고선지 장군 태운 호청마,

▶안서도호(安石護)/ 고선지는 開元(713-741년) 말년인 741년 당시에는 안서도호부(安石護府) 부도호(副都護)였다. 당나라는 정관 24년인 기원 650년 고창국(高昌國)을 평정하고 그곳에 안서도호부(安石護府)를 설치하여 서쪽의 돌궐계 이민족의 침입에 대처하고 서역의 무역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호총마(胡驄馬)/ 서역에서 나는 푸른색 갈기의 호마(胡馬)

聲價欻然來向東(성가훌연내향동)

높은 명성 휘날리며 동쪽으로 달려왔네!

此馬臨陣久無敵(차마임진구무적)

싸움터에 나가면 당할 자가 없었고

與人一心成大功(여인일심성대공)

주인과 한 마음 되어 큰공을 세웠구나!

功成惠養隨所致(공성혜양수소치)

귀여움을 오로지 받아 항상 함께 다니니

飄飄遠自流沙至(표표원자류사지)

바람처럼 날쌔게 달려 머나먼 유사(流沙)에서 왔구나!

▶유사(流沙)/고대 중국의 서북사막을 일컫는 말로써 통상적으로 감숙성과 신강성의 경계지역을 말한다.

雄姿未受伏櫪恩(웅자미수복력은)

늠름한 자태는 마구간에 엎드려 있기를 거부하고

猛氣猶思戰場利(맹기유사전장리)

용맹스러운 기개는 전장터의 싸움만을 그리고 있도다!

脘促蹄高如踣鐵(완촉제고여부철)

발목 관절 가늘고, 말발굽은 높아 쇳덩이 엎어 놓은 듯 하고

交河幾蹴層氷裂(교하기축층빙렬)

교화의 두꺼운 얼음 깨뜨리기를 몇 번인가?

▶교하(交河)/ 지금의 신강성 투르판(吐魯番) 분지에 있던 강이름이다.

五花散作雲滿身(오화산작운만신)

오색무늬 흩어져 구름 몸에 감도니

萬里方看汗流血(만리방간한류혈)

만리를 달려야 땀을 흘린다던

한혈마(汗血馬)를 이제야 보았구나

長安壯兒不敢騎(장안장아불감기)

장안성 장사들도 감히 타볼 엄두 못 내는 건

走過掣電傾城知(주과체전경성지)

번개보다 빠르다는 것 온 성안 사람이 알았기 때문이라네

靑絲絡頭爲君老(청사락두위군로)

푸른 비단 머리에 메고 주인 위해 늙으려 하니

何由却出橫門道(하유각출횡문도)

어찌하면 횡문으로 나가 서역 땅을 내달릴까?

▶횡문(橫文)/ 장안성 북서쪽에 있던 성문(城門). 서역(西域)으로 출정하기 위해서는 이 성문을 나가야 했다.

당현종 말기에 지방의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절도사들의 세력이 더욱 강해진 결과 범양(范陽)과 하동(河東) 두 곳의 절도사를 겸직하고 있던 안록산과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켰다. 범양절도사는 치소(治所)를 지금의 천진시 계현(薊縣)에 두고 하북성 일대와 요녕성 남쪽 지역을, 하동절도사는 그 치소를 지금의 태원(太原)에 두고 산서성 일대를, 평로절도사는 그 치소를 조양시(朝陽市)에 두고 요동반도를 포함한 요녕성 북부지역과 길림성 남쪽 지역을 관할했다. 안록산과 사사명은 기원 755년에 간신 양국충(楊國忠)의 목을 벤다는 명분으로 그들 휘하의 15만에 달하는 군사들을 범양에 집결시킨 후 반란을 일으켜 남쪽의 낙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당현종은 봉상청(封常淸)을 범양평로(范陽平盧) 절도사로 임명한 다음 낙양으로 달려가 안록산의 진격을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봉상청은 원래 고선지가 안서절도사로 있을 절대적으로 신임을 받았던 그의 휘하 장수로써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던 고선지를 대신하여 상주문이나 표장을 당나라 조정에 올렸고, 고선지가 멀리 원정을 나갈 때면 그는 본진에 남아 후방을 담당하곤 했었다. 황제의 특명으로 낙양에 도착한 봉상청은 군사들을 모집하여 어느 정도 대오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당현종은 영왕(榮王) 완(琬)을 토벌군 원수로 고선지를 부원수로 임명하여 별도의 토벌군을 일으켰다. 고선지는 장안에서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동관을 빠져나가 지금의 하남성의 섬현(陝縣) 방면으로 진격했다. 한편 안록산은 휘하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하남으로 진격하여 형양(滎陽)을 점령한 다음 계속해서 낙양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봉상청은 온 힘을 다하여 안록산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그의 군사들은 워낙 급조되어 오합지졸들이라 변경을 지키던 잘 훈련된 정예병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봉상청은 결국은 낙양을 내주고 섬현(陝縣)에 주둔하고 있던 옛날의 상관이었던 고선지에게 달려갔다. 고선지는 섬현에다 보루를 높이 쌓고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봉상청은 반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고선지에게 알려주고 다시 반군을 막는 데는 동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동관은 장안으로 들어가는데 거쳐야만 하는 전략상의 관문으로 방어 거점으로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고선지는 봉상청의 권고대로 태원에 있는 국고를 열어 양곡과 군수품을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동관으로 후퇴하여 반란군을 기다렸다. 고선지가 태원에 있던 창고를 열어 그 양식을 군사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그 식량이 반군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고선지가 거느린 관군은 보급품과 장비가 매우 양호했었고 군사들의 사기도 점점 오르고 있었다. 고선지의 뒤를 따라온 반군들이 동관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공격했지만 방어태세가 철통과 같아 결코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때 고선지 부대의 감군으로 와있던 사람은 환관 출신인 변령성이었다. 그는 옛날 고선지가 일차 서역원정을 끝내고 돌아온 후에 고선지의 직위가 자기보다 더 높아진 것을 시기한 부명영찰로부터 모함과 핍박을 받을 때 도움을 주어 고선지를 위험에서 구해준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옛날 자기가 베푼 은혜를 들먹이며 고선지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그 요구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현종에게 비밀리에 고선지를 모함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봉상청과 고선지가 싸움다운 싸움도 하지 않고 많은 요해지를 반군에게 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군량미를 쌓아 두었던 태원창(太原倉)을 열어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어 황제의 물품에 손해를 끼쳤다고 참소했다. 현종은 변령성의 밀고만을 믿고 봉상청과 고선지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봉상청은 상표문을 현종에게 쓴 다음 형을 받았다. 그 때 고선지는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진중에 없었다. 고선지가 순시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왔을 때는 봉상청은 이미 처형된 다음이었다. 변령성은 황제가 봉상청과 고선지 두 사람의 목을 베라는 칙명을 받았다고 고선지에게 전했다. 고선지는 변령성을 향해 물었다.

“ 후퇴한 것이 죄라면 나는 죽어 마땅하다. 허나 내가 군량을 풀어 군사를 나누어 준 것이 천자의 물건을 훔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이어서 그는 뒤에 도열하고 있던 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 내가 그대들을 군사로 모집한 것은 본래 대적을 멸한 다음 크게 상을 받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 적의 기세가 잠시 성함으로 이 곳 동관까지 후퇴한 것이며, 또한 동관을 지키기 위함이다. 만약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대들은 천자께 상주하고 그렇지 않다면 당장에 억울하다고 외쳐주기 바란다!”

그러자 온 병영은 “억울합니다”라는 울음 섞인 외침으로 진동치 듯 했다. 하지만 간신 변령성은 끝내 고선지의 목을 베었다. 이로써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써 그 이름을 당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공적을 쌓은 고선지 장군의 40여 년의 짧은 생은 끝났다.

<고선지 끝>

후기: 간신의 말만 믿고 믿음직한 두 명장을 처형한 당현종은 동관을 돌파한 안록산의 반군에 쫓겨 사천성으로 도망가야 했으며, 도중에 근위병들의 항명 사건으로 양국충(楊國忠)과 그의 애첩인 양귀비(楊貴妃)를 처형해야만 했다. 당현종은 사천성으로 피난 가면서 민심의 수습을 위해 황제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8년 간에 걸친 안록산의 란이 진압되자 당현종은 상황(上皇)의 직위로 장안에 환국하는 이야기는 백락천(白樂天)이 지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시에 잘 나타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