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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00:12:023212 
6. 황조(黃鳥) - 꾀꼬리 -
양승국
일반

黃 鳥





맹명시(孟明視)가 거씨(車氏)의 삼 형제인 엄식(奄 息), 중항(仲行), 침호(鍼虎)가 모두 인자하고 덕 을 갖추었다고 해서 진목공(秦穆公)에게 천거하였 다. 나라 안의 백성들은 그들을 삼량(三良)이라 불 렀다. 목공이 그들을 모두 대부의 벼슬에 임명하고 예를 갖추어 공경하였다. 이윽고 목공이 죽자 그의 시신은 옹성(雍城)의 동쪽에 묻혔다. 목공(穆公)의 장례는 서융(西戎)의 습속에 따라 산 사람을 순장했는데 모두 177명이나 되었다. 거씨의 삼 형제도 그 숫자에 포함되어 산채로 목공의 묘에 묻혀 죽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이 거씨 형제들의 죽음을 <황조(黃鳥)>라는 시를 지어 슬퍼하였다.




一.

交交黃鳥 止于棘(교교황조 지우극)

꾀꼴꾀꼴 꾀꼬리, 가시나무에 앉았네




誰從穆公 子車奄息(수종목공 자거엄식)

누가 목공을 따라갔나? 거씨의 아들 엄식이로다.




維此奄息 百夫之特(유차엄식 백부지특)

거씨의 아들 엄식이여! 백 사람보다 낳도다




臨其穴 惴惴其慄(임기혈 췌췌기율)

무덤에 임했을 때는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겠지




彼蒼者天 殲我良人(피창자천 섬아양인)

저 푸른 하늘이여! 어찌 우리의 훌륭한 분을 죽였는가?




如可贖兮 人百其身(여하속혜 인백기신)

대속할 수만 있다면, 우리 백 사람의 몸이라도 바치겠지만




★ 흥(興)이다. 교교(交交)는 날아다니면서 왕래하는 모양이다. 목공(穆公)을 따른다는 것은 그를 따라 죽는다는 뜻이다. 자거(子車)는 씨(氏)요, 엄식(奄 息)은 이름이다. 특(特)은 엄식이 뛰어난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혈(穴)은 광(壙) 즉, 동굴식으로 판 제후들의 묘이다. 췌췌(惴惴)는 두려운 모양이고 율(慄)은 두려움이다. 섬(殲)은 다함이요, 양(良) 은 선(善)함이요, 속(贖)은 바꿈이다. 진목공(秦穆公)이 죽을 때 같이 순장했던 자거씨 (子車氏)의 세 아들은 모두가 진(秦)나라의 현량 (賢良)이었다. 국인(國人)들이 슬퍼하여 황조(黃鳥)라는 제목으 로 불렀다고 󰡔좌전(左傳)󰡕에 전하니, 바로 이 시(詩)를 말함이다. “ 교교(交交)하는 황조(黃鳥)는 가시나무에 앉는 다. 누가 목공(穆公)을 쫓는가? 자거(子車) 엄식 (奄息)이로다!”라 말하였으니, 아마도 지은이가 본 것을 읊어 흥(興)을 일으킨 것이다. 구덩이에 임하여 두려워함은 산채로 광(壙)안에 던져졌음 이다. 세 사람이 모두 나라의 현량(賢良)인데 하루아침에 죽이니, 만약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두 백 사람이라도 대신해서 대속 하기를 원한 것이다.




二.

交交黃鳥 止于桑(교교황조 지우상)

꾀꼴꾀꼴 꾀꼬리, 뽕나무밭에 앉았네




誰從穆公 子車仲行(수종목공 자거중행)

누가 목공을 따라갔나? 거씨의 아들 중항이라네!




維此仲行 百夫之防(유차중행 백부지방)

거씨의 아들 중항이여! 백 사람보다 낳도다




臨其穴 惴惴其慄(임기혈 췌췌기율)

무덤에 임했을 때, 부들부들 떨었겠지




彼蒼者天 殲我良人(피창자천 섬아양인)

저 푸른 하늘이여! 어찌하여 훌륭한 분을 죽게 했는가요?




如可贖兮 人百其身(여가속혜 인백기신)

대속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백 사람의 몸이라도 바칠텐데







★흥(興)이다. 방(防)은 감당함이니 한 사람으로 백 사람을 감당함을 말한 것이다.




三.

交交黃鳥 止于楚(교교황조 지우초)

꾀꼴 꾀꼴 꾀꼬리, 가시덤불 위에 앉고요




誰從穆公 子車鍼虎(수종목공 자거침호)

누가 목공을 따라갔나? 거씨의 아들 침호라네




維此鍼虎 百夫之禦(유차침호 백부지어)

거씨의 아들 침호여, 백 사람을 당할 분이로다




臨其穴 惴惴其慄(임기혈 췌췌기율)

무덤에 임했을 때, 부들부들 떨었겠지




彼蒼者天 殲我良人(피창자천 섬아양인)

저 푸른 하늘이여! 어찌하여 우리의 훌륭한 분을 죽게 했는가요?




如可贖兮 人百其身(여가속혜 인백기신)

대속 할 수만 있다면 백 사람의 몸이라도 대신할 수 있었을 것을




★ 흥(興)이다. 어(禦)는 당(當)과 같다. 황조(黃鳥)는 삼장(三章)에, 한 장은 십이구로 되어 있다. 󰡔좌전(左傳)󰡕에 군자가 말하기를 “ 진목공이 맹주가 되지 못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죽을 때 백성 중의 가장 귀중한 존재인 유능한 인재들을 빼앗아갔다. 선왕이 세상을 떠날 때는 오히려 아름다운 법도를 남겼는데 풍화(風化)와 성교(聲敎)를 수립하고 신분의 구별을 밝혔으며, 착한 말을 지어서 뒷사람을 경계하고 도량형과 법도가 있었다. 모든 일에 표준을 마련하고 위의(威儀)를 정했으며, 볍율과 제도를 마련하고 선왕의 경전(經傳)을 가르쳤다. 악을 방지하고, 이를 일으키는 일로써 인도하고 직책을 각기 유사(有司)에게 맡겼으며, 예의로써 가르쳤다. 그런데 어찌 어진 인재를 빼앗는 일을 하겠는가. 시(詩)에 이르기를 ‘사람이 없어지면 나라도 끝장난다. (人之雲亡 邦國殄瘁) ’라고 했는데 이는 어진 인재가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 이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옛날의 왕자는 명이 오래지 못함을 알게 되면 성지(聖知)와 철인(哲人)의 길로 바르게 하고, 지방의 아름다운 풍속을 잃지 않게 했다. 이와 같이 해서 백성이 편안함을 얻은 뒤에 천명을 마쳤던 것이다. 이제 설사 아름다운 법도를 만들어서 후사에게 남겨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또 그 어인 인재를 거두어서 따라 죽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고서는 남의 위에 설 수 없는 것이다. 군자는 이런 까닭으로 진나라가 다시 동쪽을 칠 수 없는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다만 목공(穆公)의 유명(遺命)이 이와 같거늘 어떤 사람은 세 사람이 자살하여 쫓았다고 하는데, 세 사람 역시 죄가 없을 수 없거니와 지금 구덩이에 임하여 췌율(惴慄)한 말을 본다면 이는 강공(康公)이 아버지의 란정(亂政)을 쫓아서 핍박하여 구덩이에 넣을 것을 명한 것이니 그 죄를 돌릴 곳이 있으랴.




또 󰡔사기(史記)󰡕를 살펴보니, “ 진무공(秦武公)이 죽을 때 처음에는 사람을 따라 죽게 하여 죽은 자가 66인이었다가, 목공(穆公) 때에 드디어 177인에 이르고 세 사람의 현량(賢良)이 끼었으니, 아마도 그 처음에는 융적(戎狄)의 풍속에서 나왔음에도 명왕(明王)과 현백(賢伯)이 그 죄를 성토하지 않았다. 이에 습관적으로 순장이라는 행위에 대해 떳떳함을 삼으니, 비록 목공(穆公)의 어진 마음으로도 그 잘못을 면할 수 없었다. 그 일을 논한 자 또한 한갓 삼량(三良)의 불행만을 슬퍼하고 진(秦)의 쇠미함만을 탄식하고 왕정(王政)의 기강이 없어서 제후들이 명을 함부로 발하여 살인(殺人)을 꺼리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시황(始皇)을 장사할 적에 후궁(後宮)에게 모두 따라 죽을 것을 명하고 공장(工匠)을 산채로 묘 안에 매장한 것은 모두 목공으로 기인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소동파(蘇東坡) 만은 이 일에 대해 글을 지어 진목공(秦穆公)의 무덤에 바쳤는데 그 생각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 성의 동쪽으로 백보도 되지 않은 곳에 탁천(橐泉)이라는 샘물이 있다.이곳이 바로 목공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옛날에는 이곳은 성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섬진의 백성들은 이것을 표시로써 목공의 무덤을 알았을 것이다. 옛날에 목공이 살아 있었을 때 맹명(孟明)을 세 번이나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데 어찌 그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삼량을 살려 두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곧 옛날의 전한 때 제(齊)나라의 전횡(田橫)이 죽자 그를 따르던 두 사람도 같이 죽었듯이 이 세 사람도 목공을 위해서 스스로 죽은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단지 밥 한 끼만 얻어먹어도 그에 대한 보답을 위해 능히 그 몸을 버렸는데 오늘날은 그와 같이 행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던 관계로 옛날 사람들의 일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행함을 우리가 도저히 따를 수가 없으니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 옛날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 일이다.”

▶ 전횡(田橫)/한초(漢楚) 쟁패 시 제(齊)나라 왕으로써 항우(項羽)의 편에 섰다.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겨 한왕조를 세운 유방(劉邦)이 소환하자 옛날 왕까지 한 신분으로 한낱 시골의 한량 출신인 유방에게 허리를 굽히는 치욕을 받을 수 없다 하고 자결하였다. 뒤를 따르던 두 사람의 장수와 500명의 부하들이 모두 전횡의 뒤를 따라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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