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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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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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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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58:244592 
제106회 反間殺將(반간살장) 刎頸保密(문경보밀)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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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06회 王敖反間 刎頸保密(왕오반간 문경보밀)

반간계로 조나라의 명장 이목을 살해한 왕오와

형가를 추천한 후에 죽어 비밀을 지킨 협객 전광

1. 燕丹逃脫(연단도탈)

- 진나라를 탈출하여 연나라로 도망친 태자 단(丹) -

한편 조왕 천 5년 기원전 231년, 대군에 큰 지진이 나서 민가의 담장과 집들이 대부분이 무너지고 평지가 갈라져 그 넓은 곳은 130보가 넘었다. 또한 한단에는 큰 한발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져서 다음과 같은 동요가 돌아 다녔다.

진나라 사람들은 웃고

조나라 사람들은 통곡하리라.

이것이 믿기 지 않는다면

맨땅에서 털이 솟아나리다!

秦人笑(진인소)

趙人號(조인호)

以爲不信(이위불신)

視地生毛(시지생모)

다음해에 과연 땅에서 흰털이 솟아나더니 그 크기가 한 자가 넘게 되었다. 곽개가 그 사실을 숨겼음으로 조왕은 알지 못했다.

한편 진왕은 왕전과 양단화를 각각 대장으로 삼아 두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조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왕전은 태원으로 가는 길을 취하고 양단화는 상산의 뒷길로 돌아 조나라로 진격하였다. 진왕은 다시 내사등으로 하여금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상당에 주둔하면서 두 사람을 후원하도록 했다.

그때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던 연나라의 태자단은 진나라가 대거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정벌하러 출전하는 것을 보고 머지않아 그 화가 연나라에도 미칠 것임을 알았다. 이에 그는 밀서를 한 통 써서 그 부왕에게 보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진나라의 침공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만 한다고 간했다. 다시 연왕으로 하여금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어 거짓으로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태자인 자기의 귀국을 청해 달라고 했다. 연왕 희가 그의 청에 따라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태자를 보내달라고 청했다. 진왕이 사자에게 말했다.

「연왕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태자를 귀국시켜 달라고 한단 말인가? 연나라의 태자는 까마귀의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말 엉덩이에 뿔이나 돋아나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태자단이 진왕의 말을 전해 듣고 하늘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울부짖자 그 원기(怨氣)가 하늘을 뚫었음인지 하늘을 날고 있던 까마귀의 머리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래도 진왕은 태자단을 결코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태자단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미복으로 바꿔 입고, 얼굴에 상처를 내어 종복의 신분으로 위장한 다음에 함곡관을 빠져나가 밤낮으로 달려 연나라로 도망쳤다.

오늘 날 진정부(眞定府)1) 관하의 정주(定州)2) 남쪽의 문계대(聞鷄臺)란 이름의 높은 누각이 있는데, 태자단이 진나라에서 도망칠 때 이곳에서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일찍 출발한 곳이다. 그때 한과 조 두 나라를 공략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었던 진왕은 진나라에서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간 태자단의 죄를 물을 겨를이 없었다.

2. 殺李牧墮長城(살이목타장성)

- 이목을 죽여 장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조나라 -

한편 조나라의 무안군 이목의 대군(代軍)은 회천산(灰泉山) 밑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가 세운 조나라의 영채는 몇 리에 걸쳐 연결되어 뻗쳐 있었다. 진나라의 양로 군은 감히 회천산(灰泉山)을 향해 진격하지 못했다. 진왕이 이 소식을 듣고 왕오를 왕전의 군중으로 다시 보냈다. 왕오가 당도하여 왕전에게 말했다.

「이목은 조나라의 북방을 지키던 명장이라 쉽게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잠시 그와 강화를 맺으시되 구체적인 약속은 하시지 마시고 시간만 끄시기 바랍니다. 쌍방의 사자들이 오고가는 동안에 제가 따로 계책을 써보겠습니다.」

왕전이 왕오의 말대로 사람을 조나라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청했다. 이목도 역시 강화 요청에 응하여 사자를 진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그 사이에 왕오는 조나라의 한단성으로 들어가 곽개와 내통하여 말했다.

「이목이 진나라와 비밀리에 강화를 맺고 조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자기가 대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감께서 이 일을 조왕에게 고해 이목을 다른 장수로 바꾸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진왕에게 대감이 이룬 공이 적지 않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곽개는 이미 조나라에 대해 딴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조왕에게 달려가 왕오가 시킨 대로 조왕에게 밀고했다. 조왕 천이 비밀리에 좌우의 측근을 시켜 이목의 진영을 찾아가 곽개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이목은 왕전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강화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곽개의 말이 사실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조왕은 곽개를 불러 대책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조총과 안취는 지금 이목의 군중에 있습니다. 대왕께서 사자에게 병부를 주어 이목의 군중으로 보내, 이목을 대신하여 조총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이목은 조나라의 상국에 임명한다고 명을 전하게 한다면 이목은 필시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왕이 그 말을 쫓아 사마상(司馬尙)에게 병부를 주어 조군의 주둔지인 회천산 군중으로 보내 조왕의 명령을 전했다. 이목이 듣고 말했다.

「지금 나는 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진나라의 양로 군사들과 대치하고 있어 나라의 운명이 이 한 사람의 몸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수를 바꾸니 저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왕명이라 하지만 내가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사마상이 주위를 물리친 다음 조용한 목소리로 이목에게 고했다.

「장군이 모반할 것이라고 참소한 곽개의 말을 조왕이 곧이 듣고 소환하는 것입니다. 장군을 상국에 임명한다는 말은 실은 장군을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목이 분개하며 말했다.

「곽개란 놈이 옛날에 염파를 참소하여 나라를 위급하게 만들더니 이제 다시 나를 모함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 먼저 조왕의 곁에 있는 악의 무리들을 없애버린 후에 진나라 군사를 물리쳐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장군이 조왕의 궁궐을 범한다면, 장군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충성된 마음에서 행했다고 말하겠지만,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모반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여 참소한 사람의 말을 증명해 주는 일이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장군의 재주라면 어디든지 가셔서 공을 세우고 이름을 얻을 수 있는데 구태여 조나라에 연연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목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악의와 염파같은 충신들이 자기가 공을 세운 나라에서 일생을 보내지 못했던 일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뜻밖에 그 일이 나에게 닥칠 줄은 몰랐소!」

이목이 이어서 다시 말했다.

「조총이란 자는 나를 대신하여 조군을 이끌만한 재목이 못되니 내가 직접 대장의 인장을 그에게 전해주지는 못하겠소.」

이목은 대장의 인장을 군막에 걸어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평복으로 옷을 바꿔 입고 몸을 숨겨 위나라로 도망치려하였다. 조총은 자기를 대장으로 천거해준 곽개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다가, 다시 자기에게 직접 대장의 인장을 전해주지 않은 이목의 행위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되었다. 이에 조총은 즉시 자객을 보내 이목의 뒤를 추격하여 잡아오게 했다. 조총이 보낸 장사들은 주막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이목을 발견하고 그의 목을 베어 가지고 와서 조총에게 바쳤다. 애석하게도 일세를 풍미하던 명장 한 사람이 곽개에게 해를 입어 허무하게 죽고 말았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었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진군을 물리치고 대 땅을 지켜 그 이름이 천하에 떨쳤고

무너지는 큰 건물을 혼자 몸으로 떠받치고 있었던 그를

어찌하여 곽개는 외국의 재물만을 탐하여

조나라의 장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단 말인가?

却秦守代著威名(각진수대저위명)

大夏全凭一木撑(대하전빙일목탱)

何事郭開貪外市(하사곽개탐외시)

致令一旦壞長城(치령일단괴장성)

조왕의 명을 전하러 갔던 사마상은 감히 한단성으로 돌아가 복명하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쳐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달아나 버렸다.

조총은 대장의 인장을 몸에 차고 이목을 대신하여 조군의 대장이 되었고 안취는 부장이 되었다. 평소에 이목을 따랐던 대군(代郡)의 군사들은 아무 죄도 없이 죽임을 당한 이목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하루밤 사이에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모두 달아나 흩어져 버렸으나 조총은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이목의 죽음을 알게 된 진나라 군사들은 군중에서 잔치를 벌려 술을 마시며 서로 축하했다. 왕전과 양단화의 양로 군사들은 각기 조군이 주둔하고 있던 회천산을 향해 진격했다. 조총이 안취를 불러 조나라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태원과 상산으로 나아가 구원하겠다고 했다. 안취가 듣고 말했다.

「대장이 새로 바뀌어 군심이 아직 안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지키면서 힘껏 버틴다면 진나라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낼 수는 있다고 생각합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군사를 나누게 된다면 우리의 군세는 더욱 약해져 진나라의 공세를 막아 낼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상의를 계속하고 있는데 탐마가 달려와 보고했다.

「왕전이 랑맹성(狼孟城)3)에 대한 공세를 급하게 하여 조만간에 성이 버티지 못하고 함락될 것 같습니다.」

조총이 듣고 말했다.

「맹성이 무너지면 왕전은 곧바로 정형(井陘)4)까지 진출하여 양단화의 군사들과 합류하여 상산을 협공할 것이며 그리되면 한단성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랑맹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조총은 안취의 간함을 듣지 않고 군령을 내려 영채를 걷고 모든 조나라의 군사들을 랑맹으로 진군시켰다. 정탐병을 통하여 조군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왕전은 큰 계곡에 군사를 미리 매복시켜 놓고 조군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찰병을 산등성이에 올려 보내 조군의 행군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시야에 나타나면 즉시 보고하도록 했다. 이윽고 조나라 군사들이 계곡을 절반쯤 지나갔을 때 포 소리를 신호로 매복되어 있는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공격하여 조군을 두 대로 절단했다.진군에 의해 선두와 후미가 갈라진 조군은 서로 도울 수가 없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왕전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달려와 조군을 공격해 왔다. 조총은 진나라 군사들을 맞이하여 대항하였으나 크게 패하고 자신은 왕전에게 살해되었다. 안취는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한단으로 들어갔다. 진나라 군사들은 랑맹성을 함락시키고 정형으로 나와 그 일대의 고을들을 차례대로 점령하면서 진군했다. 양단화도 역시 상산의 주위 고을들을 공략하고 남쪽으로 계속 진군하여 왕전과 합류하여 한단성을 같이 포위했다.

3. 韓亡(한망)

- 기원전 230년 멸망하여 진나라의 군현으로 병탄되는 한나라 -

진왕은 조나라에 보낸 양로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이겼다는 첩보를 받고 즉시 상당에 주둔하고 있던 내사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한나라로 이동하여 한나라의 영토를 접수하라고 했다. 진군의 위세를 크게 두려워한 한왕 안(安)은 한나라의 모든 성들을 들어 바치고 진나라에 들어가 진왕의 신하가 되었다. 진나라는 한나라 땅에 영천군(穎川郡)을 설치했다. 한왕 재위 9년 만인 진왕 17년인 기원전 230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나라는 무자(武子) 한만(韓萬)이 당진의 무공(武公)으로부터 한원(韓原)에 봉해지고 그의 현손(玄孫)인 헌자(獻子) 한궐(韓闕)이 당진(唐晉)의 집정을 담당하고 나서부터 유력한 호족이 되었다. 한궐 이후 5전하여 강자(康子) 한호(韓虎)에 이르러 지가(智家)를을 멸하고 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한호가 다시 이전하여 경후(景侯) 한건(韓虔) 때 열후(列侯)가 되었고 한건 이후 6전하여 선혜왕(宣惠王)에 이르러 왕호를 칭했다. 왕호를 칭한 지 4전하여 한왕 안(安)에 이르러 나라를 들어 진나라에 바친 것이다. 한호 6년부터 선혜왕 10년에 이르기까지 열후의 칭호로 80년, 선혜왕 10년부터 한왕 안(安) 9년 진나라에 의해 망할 때까지 공히 90년 간 왕호를 칭했다. 이 후로는 육국은 오국이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한나라를 노래했다.

한만이 한원에 봉해지고

그 자손에 궐이란 어진 사람이 태어나

조씨 고아를 보전하여

그들의 은공을 잊지 않고 갚았다.

그때부터 한씨들은 당진의 육경이 되었고

후에 당진을 셋으로 나누어 한나라를 세웠으나

결국은 끝까지 지키고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진나라 궁궐로 들어갔다.

한비가 비록 진나라에 사자로 들어갔으나

한나라의 멸망은 막지 못했다.

萬封韓原(만봉한원)

賢裔有厥(현예유궐)

計全趙孤(계전조고)

陰功不泄(음공불설)

始偶六卿(시우육경)

終分三穴(종분삼혈)

從約不守(종약불수)

稽首秦闕(계수진궐)

韓非雖使(한비수사)

無救亡滅(무구망멸)

4. 郭開賣國 趙國覆亡(곽개매국 조국복망)

- 곽개의 매국으로 멸망하는 조나라 -

한편 진나라 군사들은 한단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해오자 안취는 한단성의 모든 군사들을 동원하여 방어하기에 바빴다. 조왕 천이 사자를 제후국들에게 보내어 구원병을 청하려고 하자 곽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한왕은 이미 진나라에 항복하여 신하가 되었고 연과 위는 자기 스스로 간수하기에도 여념이 없는데 어찌 그들이 우리에게 구원군을 보내 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진나라 군사들의 세력이 막강하니 차라리 조나라의 남은 모든 성을 들어 항복하여 열후의 작위라도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조왕 천이 곽개의 말을 따르려고 하자 공자 조가(趙嘉)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간했다.

「선왕께서 조나라의 종묘사직을 왕께 전했는데 어찌하여 버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원컨대, 신과 안취가 힘을 합하여 전력을 다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진나라 군사들을 막아내겠습니다. 그럼에도 한단성을 지키지 못한면, 북변의 대군(代郡)은 사방 수백 리에 걸치는 넓은 땅이라 나라를 그곳으로 옮긴다면 그래도 사직만은 보존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스스로 두 손을 묶고 진나라의 포로가 되려고 하십니까?」

「성이 함락되고 왕이 포로가 되는데 어떻게 대군까지 달아날 수 있단 말이오?」

공자가가 허리에서 칼을 뽑아들고 곽개를 향해 겨누고 말했다.

「나라를 들어먹는 간신 놈아! 어찌 감히 말이 많으냐? 내가 마땅히 너의 목을 베어 죽여야겠다.」

조왕 천이 공자가를 가로막아 진정시켜 서로 헤어지게 했다.

조왕 천이 조회를 파하고 궁궐로 돌아와 어려운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 궁리를 했으나 아무런 대책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단지 술이나 마시며 마음을 달랠 수 있을 뿐이었다. 곽개는 진나라 군사들과 내통하여 한단성을 들어 바치려고 했지만 공자가가 그 종족들과 빈객들을 이끌고 안취를 도와 전의를 불태우며 한단성의 방어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이 철통같이 지켰음으로 진나라 군사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조나라에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었던 관계로 성 밖 백성들은 모두 달아나 버려 진군이 주둔하고 있던 한단성 밖 교외는 풀 한 포기 없는 들판 밖에 없어 군량미를 노략질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한단성 안에만은 양식이 가득 쌓여 있어 성중 백성들이 먹고 지내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진나라 군사들은 양식이 바닥이 나기 시작해서 한단성에 맹공을 퍼부어 그 양식으로 군량미를 확보하려고 했으나 한단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왕전은 할 수 없이 양단화와 상의하여 우선 양식을 확보하기 위해 잠시 군사를 한단성 앞 50리 되는 곳까지 후퇴시켰다. 한단성 성루 위의 조나라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들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잠시 해이해져 경계를 풀고 매일 한 번씩 성문을 열고서 백성들의 출입을 허락했다. 곽개가 그 틈을 타서 자기의 심복 한 사람을 성 밖으로 나가게 해서 밀서 한 통을 진나라 군중에 전달하게 했다. 밀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저는 이 한단성을 진나라에 바치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만 지금까지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여 그 뜻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왕은 완전히 진나라 군사들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만일에 진왕께서 친히 어가를 움직여 왕림하신다면 제가 조왕을 설득하여 함벽여친(銜璧輿櫬)5)의 예를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

왕전이 곽개의 밀서를 전해 받아 읽고는 즉시 사람을 진왕에게 보내 그 편지를 전하게 했다.

진왕이 친히 진나라의 정예병 3만을 선발하여 이신(李信)을 대장으로 삼아 자기의 어가를 호종하게 하고 태원의 길을 취하여 진나라 군중에 당도하였다. 진왕은 왕전에게 명하여 한단성을 다시 포위하게 하고 주야로 맹공을 퍼붓게 했다. 성루 위의 군사들은 진나라 진영에 펄럭이는 대패기(大旆旗)6)에 진왕이라는 글씨를 보고 즉시 조왕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조왕은 더욱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었다. 곽개가 보고 말했다.

「진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임한 것은 한사코 한단을 함락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에서입니다. 공자가(公子嘉)나 안취 따위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과인이 진왕에게 항복을 하려고 해도 혹시라도 그가 나를 살려두지 않을까 두렵소!」

「진왕은 한왕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는데 어찌 대왕을 죽인단말입니까? 만약에 화씨벽(和氏璧)과 한단의 지적도를 꺼내어 바친다면 진왕은 필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경이 알아서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쓰기 바라오.」

곽개가 조왕의 명에 따라 항서를 쓰고 나서 조왕을 향해 말했다.

「항서는 이미 준비가 되었으나 공자가가 알면 필시 방해할 것입니다. 제가 들으니 진왕의 본영은 서문 쪽에 있다하니 대왕께서는 성을 지키는 군사들을 점검한다는 구실을 대어 서문으로 가서 어가가 그곳에 당도하면 스스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진왕에게 항복하십시오. 결코 진왕이 항복을 받아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조왕은 원래 혼미한 자라 오로지 곽개의 말이 옳을 줄만 알고 그대로 따라 하다가, 그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더욱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곽개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그때 마침 북문에서 군사들을 점고하고 있던 안취는 조왕이 서문을 빠져나가 진나라 진영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다. 공자가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와 안취를 보고 말했다.

「성루 위에는 조왕의 명에 따라 항기가 이미 세워지고, 진군은 이미 성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소.」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북문을 열고 탈출로를 만들어 볼테니 공자께서는 공족 분들을 모두 몰고 뒤따라오십시오. 촌각을 다투어 북문으로 오시면 저와 함께 대 땅으로 몸을 피한 후에 그곳에서 조나라를 다시 일으킬 계획을 세우십시오.」

공자가가 그의 말을 쫓아 휘하의 공족들을 모두 이끌고 함께 북문을 빠져나가 밤낮으로 달려 대 땅으로 갔다. 안취가 공자가에게 권하여 대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대군에 살던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이어서 이목의 공을 기리어 그의 관작을 복위시키고 대왕(代王) 가가 친히 제단을 준비하여 이목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려 대군에 살던 백성들의 마음을 거두려고 하였다. 대왕은 다시 사자를 동쪽의 연나라에 보내어 연합하고 군사들을 상곡(上谷)7)에 주둔시켜 진나라의 침략에 대비했다. 이렇게 해서 대국은 다소나마 안정이 되었다.

5. 水之無情 社稷淪亡(수지무정 사직윤망)

- 무정한 강물이여, 사직은 망했도다! -

한편 진왕은 조왕 천의 항복을 허락하고 대군을 휘몰아 거칠 것이 없이 한단성 안으로 진입하여 조왕이 살던 궁궐에 묵었다. 조왕이 신하의 예로써 배알하자, 진왕은 자리에 일어서지도 않고 왕좌에 앉아서 거만하게 절을 받았다. 그 광경을 보던 조나라의 많은 신하들은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진왕은 화씨벽을 감상하며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선왕께서 15개의 성을 주겠다고 하면서도 얻지 못했던 보물이다!」

이어서 진왕은 영을 내려 조나라의 땅을 관할로 하는 거록군(鉅鹿郡)을 설치하여 진나라의 군현으로 삼았다. 다시 조왕 천은 방릉(房陵)8)으로 옮겨 살게, 하고 곽개에게는 진나라의 상경 벼슬을 내렸다. 방릉에 당도한 조왕 천은 그때서야 비로소 곽개가 나라를 진나라에 팔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탄하며 말했다.

「이목이 살아 있었더라면 어찌 진나라 군사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한단성 부고에 있던 곡식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조왕이 살고 있던 방릉의 집은 사방이 모두 돌로 된 하나의 석굴 모양의 방과 마찬가지이었다. 조왕이 석실에 살고 있는데 졸졸거리며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렸다. 조왕이 묻자 좌우의 시종이 대답했다.

「옛날 초나라의 도성이었던 영성(郢城)은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강의 이름은 강수(江水), 한수(漢水), 저수(沮水) 및 장수(漳水)인데 지금 듣고 계시는 강물은 저수가 흐르는 소리입니다. 저수는 이 방릉 남쪽에 있는 방산(房山)에서 발원하여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흘러 강수와 한수로 들어갑니다.」9)

조왕이 듣고 마음이 처연해져 한탄해 하며 말했다.

「무정한 물은 언제나 스스로 흘러 강수로 흘러 들어가는데 나는 이곳에 갇혀 살아 몇 천리 밖의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무슨 수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조왕 천이 <산수지구(山水之謳)>라는 시를 지어 노래했다.

방산을 궁궐로 삼음이여!

저수의 물을 마시며 사는도다.

거문고 소리도 들리지 않음이여!

세차게 흐르는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도다.

무정한 강물이여!

언제나 스스로 한수와 강수로 흐르는 도다.

아, 슬프도다! 만승지국의 임금이여!

하릴없이 고향만을 그리워하며 꿈을 꾸는도다.

누가 나로 하여금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그자는 곧 공장과 같은 간신 때문이로다.

어진 신하들은 모두 죽고 없음이여!

사직은 모두 무너져 망해버렸구나.

어리석은 말에 현혹되었음이여!

내가 진왕을 원망할 수 없음이라!

房山爲宮兮(방산위궁혜)

沮水爲漿(저수위장)

不聞調琴奏瑟兮(불문조금주슬혜)

惟聞流水之湯湯(유문유수지탕탕)

水之無情兮(수지무정혜)

猶能自致于漢江(유능자치우한강)

嗟余萬乘之主兮(차여만승지주혜)

徒夢懷乎故鄕(도몽회호고향)

夫誰使余及此兮(부수사여급차혜)

乃讒言之孔張10)(내참언지공장)

良臣淹沒兮(양신엄몰혜)

社稷淪亡(사직윤망)

余聽不聰兮(여청불총혜)

敢怨秦王(감원진왕)

조왕 천은 하루 종일 무료하여 매일 쉬지 않고 그 노래를 불러 좌우에 있던 사람들을 애통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병이 들어 자리에 일어나지 못하더니 이내 숨을 거두고 말었다. 대왕 가가 조왕 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유류왕(幽謬王)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오나라의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을 듣고 나라를 잃더니

조왕 천은 탐욕스러운 곽개 때문에 객지에서 죽었도다.

탐망(貪妄)한 신하들을 멀리 할 수 있는 것을 배웠더라면

금성탕지11)와 같은 나라를 영원히 물려주었을 것을!

誤主喪邦繇佞嚭(오주상방요영비)

趙王遷死爲貪開(조왕천사위탐개)

若敎貪佞能疏遠(약교탐영능소원)

萬世金湯永不隤(만세금탕영불퇴)

진왕은 조나라를 멸한 후에 함양으로 회군하여 군사들을 쉬도록 했다. 곽개는 황금을 너무 많이 모아놓았기 때문에 진왕을 따라 함양성으로 갈 때 모두 가져갈 수 없었다. 그래서 곽개는 남은 황금을 모두 한단의 자기 집 뒷마당을 파고 묻었다. 함양성에서의 일이 모두 정리가 되자 진왕을 찾아가 조나라에 돌아가 가재를 함양성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휴가를 달라고 청했다. 진왕이 미소를 지으며 곽개의 청을 허락했다. 곽개가 한단성에 당도하여 자기 집의 뒤뜰에 묻어 놓은 황금을 파내어 여러 대의 수레에 싣고 함양성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도중에 도적들이 곽개의 일행을 습격하여 모두 죽이고 황금이 가득 실은 수레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아마도 이목(李牧)의 문객들이었을 거라고도 했다. 오호라! 나라를 팔아 모은 황금이거만 이제는 몸은 죽어 모두 허사가 되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다!

6. 田光薦荊軻(전광천형가)

- 협객 형가를 태자단에게 천거하는 전광 -

한편 태자단은 진나라에서 도망쳐서 연나라로 돌아와 진왕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가재를 털어 빈객들을 대거 모아 진왕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계획을 세우려고 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장사 하부(夏扶), 송의(宋意)를 얻어 후하게 대접했다. 그 외에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13세에 백주 대낮에 시정 저잣거리에서 원수를 죽이자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태자가 그의 죄를 면하게 하고 거두어 그의 문하에 두었다. 그때 진나라 장수 번오기(樊於其)가 둔류성으로부터 탈출하여 연나라에 들어와 깊은 산중에 숨어 있다가 태자단이 빈객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문하로 들어갔다. 태자단이 그를 상빈으로 모시고 역수(易水)의 동쪽 편에 성 하나를 쌓아 그곳에 살게 하고 그 성을 번관(樊館)이라고 불렀다. 태부 국무(鞠武)가 태자단에게 간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심성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제후국들을 잠식하고 있어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트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하물며 진왕이 원수로 알고 표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을 거두어 상객으로 모시고 있으니 이것은 마치 용의 비늘을 건드려 화를 불러들이는 일과 같으니 필시 상해를 입을 것입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속히 번장군을 흉노로 보내어 그들의 손으로 죽게 하시고 서쪽의 삼진과 남쪽의 제와 초, 북쪽의 흉노와 연합하여 시간을 갖고 도모하면 가히 진나라를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태부의 계책은 헛되이 시간만 보내는 일입니다. 이 단의 마음은 마치 타오르는 화로와 같아 제가 잠시라도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번오기 장군은 곤궁한 처지가 되어 나를 찾아와 이 단이 애처롭게 여겨 그와 교우를 맺었습니다. 제가 어찌 강포한 진나라를 이유로 번오기 장군을 먼 변방의 황막한 사막에다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설사 죽는다 할지라도 그런 일을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태부께서는 이 단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저 약한 연나라가 강한 진나라에 대항하는 행위는 마치 화로에 양털을 던지면 형체도 없이 타버리고, 계란을 바위에다 던지면 깨져버리는 이치와 같습니다. 신의 지혜는 얕고 아는 바는 적어 태자를 위해 좋은 계책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이름이 전광(田光)이라는 선생이 있는데 사람됨이 지혜가 깊고 용기가 있으며 많은 식견을 갖추고 있는 세상에 보기 드문 이인입니다. 태자께서 만일 진나라를 꼭 도모하시겠다면 전광 선생에게 계책을 물으십시오.」

「이 단은 아직 전광 선생과 교분을 맺지 못했으니 태부께서 저를 위해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국무가 즉시 수레를 몰아 전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그를 만나 태자의 뜻을 전했다.

「태자단께서 선생의 이름을 경모하여 찾아뵙고 나라의 일에 대해 같이 의논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선생은 사양치 마십시오.」

「태자는 고귀하신 분입니다. 어찌 감히 태자로 하여금 수레를 몰고 오는 수고로움을 끼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 광을 비루하다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국사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려 하신다면 제가 마땅히 찾아가 뵙겠습니다. 어찌 감히 제가 스스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왕림하시는 수고로움을 개의치 않으신다니 이것은 참으로 태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국무는 즉시 전광과 수레를 같이 타고 태자가 머물고 있는 궁궐로 들어갔다.

태자단은 전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궁 밖까지 나와 영접하고 전광이 내릴 때 말고삐를 잡았다. 이윽고 전광의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여 궁궐로 들어가 재배의 예를 올려 경모의 뜻을 나타낸 후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자리의 먼지를 털고 나서 앉기를 청했다. 연로하여 구부정한 모습으로 전당에 올라 상좌에 앉는 전광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보고 모두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태자단은 좌우를 물리치고 가르침을 청했다.

「오늘의 정세를 살펴보면 연과 진 두 나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들으니 선생은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조만간에 망할 이 연나라를 구할 방도가 없겠습니까?」

「신은 ‘천리마는 젊었을 때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노쇠하게 되면 노마(駑馬)에게도 뒤진다’12)라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국태부께서 신의 젊고 강건할 때만 알고 계실 뿐이지 지금은 이미 늙어 노쇠해 버린 사실을 모르고 계시어 저를 이렇게 태자님께 천거한 듯 합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교분을 맺고 있는 사람 중에 혹시 젊고 강건할 때의 선생처럼 지혜와 용기를 갖추고 선생을 대신하여 일을 맡을 만한 사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광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혹시 태자께서는 빈객들 중 쓸만한 사람은 몇이나 거느리고 계십니까? 제가 한번 그들의 상을 한번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자단이 즉시 하부(夏扶), 송의(宋意) 및 진무양(秦舞陽)을 모두 불러들여 전광으로 하여금 그 상을 보게 하였다. 전광이 세 사람의 상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며 성과 이름을 묻고 물러가게 한 후에 태자단에게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신이 삼가 태자의 빈객들 모습을 살펴본 결과 그들 중 아무도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부(夏扶)는 혈기만 믿고 용기를 뽐내는 자라 화가 나면 그 얼굴은 즉시 벌겋게 달아오르고 송의는 기운만 믿고 설치는 자라 화가 나면 얼굴이 새파랗게 변합니다. 또한 진무양은 등치만 믿고 제멋대로 구는 자라 화가 나면 얼굴이 하얗게 변하게 되어 대저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노기를 얼굴에 나타냅니다. 자기의 품은 뜻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채게 만든다면 무엇 한 가지인들 세상에 성사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는 평소에 교분을 두텁게 지내고 있는 사람 중에 형가(荊軻)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곧 귀신과 같은 용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슴속에 일어나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모습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형가야말로 저 세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가란 사람은 무엇을 하며 어디에 사는 사람입니까?」

「형가의 원래 성은 경慶) 씨로 제나라의 대부 경봉의 후예입니다. 경봉이 오나라로 달아나 주방(朱方)에 살다가 초영왕(楚靈王)에게 토벌 당하여 살해되자13) 그 남은 종족들은 위(衛)나라로 도망칠 때 같이 따라가 살았습니다. 위나라 사람들은 형가를 경경(慶卿)으로 불렀습니다. 경씨들은 검술에 능하여 위원군(衛元君)14)에게 출사를 하려고 했지만 원군이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진나라가 위나라의 동쪽 땅을 점령한 다음 위나라의 복양(濮陽) 땅과 합쳐 동군(東郡)을 설치할 때 형가는 다시 위나라에서 연나라로 도망쳐와 성을 형씨(荊氏)로 바꾸어 살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연나라 사람들은 그를 형경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격이 술을 좋아하고 축15)을 잘 타는 이곳 연나라 출신 고점리(高漸離)와 사귀고 있습니다. 형경이 그 소리를 듣기를 즐겨하여 매일 그와 함께 연나라 도성의 저잣거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게 되면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경은 그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 부르기를 끝마치면 천하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 사람은 가슴속에 깊은 지략을 숨기고 사는 사람이라 저와 같은 사람은 만 명이 있다 한들 그 한 사람을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단은 아직 형경과는 교분이 없습니다. 원컨대 형경은 선생으로 말미암은 일이니 부디 가셔서 나의 뜻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경은 가난하여 신이 매번 그의 술값을 대주고 있습니다. 제가 찾아가 말한다면 나의 말을 따를 것입니다.」

7. 刎頸保密(보밀이사)

- 형가를 천거하고 죽음으로써 비밀을 지킨 전광 -

태자단이 전광을 궁문 밖까지 나와 자기가 평소에 타고 다니던 수레를 내어주고 내시로 하여금 말고삐를 수레를 몰게 하여 전송하게 하였다.

전광이 수레에 올라타자 태자단이 당부의 말을 했다.

「이 단이 선생께 드린 말씀은 모두 나라의 큰일이라, 원컨대 선생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발설하지 마십시오.」

전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노신이 어찌 감히 태자께서 당부하는 말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전광이 수레에 올라 형가가 술을 마시고 있음직한 성중의 저잣거리로 향했다. 그때 형가와 술집에 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던 고점리가 어느 정도 거나해지자 이윽고 축(筑)을 켜기 시작했다. 전광이 축 소리를 듣고 곧바로 수레에서 내려 두 사람이 있는 술집을 찾아가 형가를 큰 소리로 불렀다. 고점리는 축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피했다. 형가와 전광이 서로 상견의 예를 취한 후에 둘이서 수레를 같이 타고 전광의 집으로 갔다. 전광이 형가를 보고 말했다.

「아직도 세상에 그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고 계십니까? 나도 역시 이 전광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탄식해 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광은 이미 늙어 정력이 쇠하고 근력도 다 떨어져 이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불러도 달려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나와는 달리 아직 혈기가 왕성하니 흉중의 포부를 한번 펼쳐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찌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단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나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연나라의 태자단께서는 자세를 낮추어 빈객들을 극진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오늘 태자단께서 이 전광이 나이가 들어 노쇠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부르시어 진나라에 대한 대책을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동안 친근하게 지낸 결과 그대가 재주 있음을 알고 이 사람 대신 태자단에게 천거했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태자궁에 한 번 들려 태자단을 알현하시기 바랍니다.」

「선생의 명이 계시는데 이 사람이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전광이 형가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위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광이 듣기에 ‘군자는 타인에게 의심스러움을 주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16)라고 했습니다. 오늘 태자가 국사를 의논하고 나서 나에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광의 행함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성사하게 만들려고 하는데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의심하는 마음을 일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광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의심을 스스로 밝히겠습니다. 그대는 속히 태자단에게 달려가 나의 일을 고하시기 바랍니다.」

전광은 말을 마치고 즉시 허리의 칼을 뽑아 목을 찔러 죽었다.

형가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고 있는데 태자가 보낸 사자가 와서 물었다.

「형선생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까?」

형가는 태자단의 성의를 알고 즉시 전광과 함께 타고 온 태자의 수레를 타고 태자궁을 찾아갔다. 태자가 형가를 맞이하여 전광에게 한 것과 똑같이 접대하였다. 상견례가 끝나자 태자단이 형가를 향해 물었다.

「전광 선생은 어찌해서 같이 오지 않았습니까?」

「전광 선생께서는 태자께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고 죽음으로서 그 일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이미 칼로 목을 찔러 돌아가셨습니다.」

태자단은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전광 선생이 나로 인하여 목숨을 끊으셨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8. 燕丹尊荊軻爲上卿(연단존형가위상경)

- 연태자 단이 형가를 높여 상경으로 삼고 성심성의를 다해 접대하다. -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태자단은 눈물을 거두고 형가를 맞이하여 안으로 들여 상좌에 앉힌 후에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형가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절을 올리며 답례 했다.

「전광 선생께서 이 단을 불초하다고 여기시지 않으시어 형선생을 천거해 주셨으니 참으로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합니다. 원컨대, 형선생께서는 이 단을 비루하다고 여겨 버리지 마십시오.」

「태자께서 진나라로 인하여 그렇듯 고뇌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진나라는 마치 호랑이나 승냥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 다른 나라를 통째로 삼키고도 만족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천하의 땅을 다 병탄하고 해내(海內)의 백성들을 모두 신하로 거느린 왕이 된다 해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한왕은 이미 그의 모든 땅을 바쳐 진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고, 그 자신은 진왕의 신하가 되어버렸습니다. 진나라의 대장 왕전은 대병을 이끌고 조나라를 정벌하여 한단성을 함락시킨 후에 조왕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조나라가 망했으니 그 다음 차례는 필경 우리 연나라 일 것입니다. 이 일로 해서 이 단은 앉은자리가 불안하고 음식을 먹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태자님의 생각은 군사를 대거 일으켜 진나라와 한 번 승부를 결해 보겠다는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복안을 갖고 계십니까?」

「연나라는 작은 나라라 병사의 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된 전쟁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근자에 이르러 조나라의 공자가가 북쪽의 대 땅으로 달아나 대왕(代王)을 칭하며 우리 연나라와 힘을 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단은 온 나라의 군사들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진나라의 일군도 당해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대국의 군사들과 힘을 합한다 할지라도 세력이 크게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위와 제 두 나라는 평소에 진나라에 친하게 지내 우리를 도우려고 하지 않으며, 초나라는 또한 우리나라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됩니다. 또한 제후들은 진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합종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단은 속으로 어리석으나마 한 가지 계책을 궁리해 냈습니다. 성심을 다하여 천하의 용사를 얻은 후에 진나라에 사자로 위장시켜 보내 많은 이익으로서 진왕을 유인하려고 합니다. 진왕은 원래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틀림없이 그 용사의 접근을 허락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틈을 노리고 있다가 칼을 들고 협박하여 제후들로부터 빼앗아간 땅들을 모두 돌려주라고 한다면, 그것은 옛날 조말(曺沫)17)이 제환공을 협박하여 노나라의 빼앗긴 땅을 찾았던 일과 같이 매우 훌륭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만일 진왕이 말을 듣지 않아 그를 찔러 죽이게 되면 진왕의 밑에서 군사들을 장악하고 있는 대장들은 각기 상하가 정해져 있지 않아, 진나라는 어지러워져 상하는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초와 위 두 나라와 연계하여 한과 조의 후예들을 찾아 나라를 다시 세워준 후에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여 파한다면 이것은 곧 하늘과 땅을 다시 만드는 큰 일이 됩니다. 저의 생각은 오로지 형선생의 뜻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형가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더니 이윽고 입을 떼고 말했다.

「이것은 천하의 대사인데 둔하고 어리석은 제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태자단은 형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간청했다.

「형경께서는 의기가 높은 의사라! 이 단의 목숨을 경에게 맡기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형가는 재삼 겸양한 끝에 허락했다. 이어서 형가의 지위를 높여 상경으로 삼고, 다시 번관(樊館)의 오른쪽에 별도의 성을 지어 그 이름을 형관(荊館)으로 부르고 그곳에 형가를 살게 했다.

태자단은 매일 형관에 들려 형가의 안부를 묻고 태뢰(太牢)18)의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하였다. 하루걸러 수레에 미녀를 태워 형관으로 보내 형가가 원하는 대로 처분하도록 하면서 태자단은 오로지 그것들이 형가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어느 날 형가가 태자와 같이 동궁에서 연못을 쳐다보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못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는 커다란 거북이를 보자 형가가 기왓장을 들고 거북이를 향해 던졌다. 태자단이 금쟁반을 형가에게 주며 기왓장 대신에 던지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형가와 태자단은 말타기 시합을 벌렸다. 그때 태자단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천리마를 타고 있었다. 형가가 농담으로 그 천리마의 간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궁중의 요리사가 천리마를 죽여 꺼낸 간을 가지고 요리를 해와 형가에게 바쳤다. 태자단은 진나라 장군 번오기가 진왕에게 죄를 짓고 달아나 지금은 연나라에 와있다고 말했다. 형가가 태자단에게 청하여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태자단은 화양대(華陽臺)라는 누각에다 술자리를 준비하게 하고 형가와 번오기를 초청하여 두 사람을 만나 교우를 맺게 해주었다. 태자단은 또한 자기가 사랑하는 미인들을 나오게 해서 형가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여 손님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고 시켰다. 형가는 거문고를 타던 미인의 옥같이 하얀 손을 보고 찬탄하는 말을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손이로구나!」

이윽고 연회가 끝나자 태자단이 내시를 시켜 쟁반에 무엇인가를 넣어 가지고 형가에게 바치게 했다. 형가가 쟁반의 덮개를 열고 살펴보니 그것은 바로 절단된 미인의 손이었다. 태자단은 형가가 원하면 무엇이든 아까울 것이 없다는 마음을 명백히 밝혔다. 형가가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태자가 이 사람을 맞이하여 이렇듯 후하게 대접하니 내 마땅히 죽음으로서 그 은혜에 보답하리라!」

< 제 107회로 계속 >

[주석]

1)진정부(眞定府)/ 명조(明朝) 때 경사(京司)에 속했던 중간 행정구역의 하나로 지금의 산서성 서쪽 일부와 하북성을 남부를 관할했다. 치소(治所)는 지금의 하북성 성도인 석가장(石家庄) 경내의 북쪽에 있었다.

2)정주(定州)/ 진정부(眞定府) 관하의 고을로 지금의 하북성 정현(定縣)을 말하며, 전국 때 조나라의 영토로 연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다.

3)랑맹(狼孟)/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북쪽 30키로 되는 곳의 양곡현(陽曲縣)을 말함.

4)정형(井陘)/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石家庄市) 서 약 20키로 되는 곳에 있는 곳으로 조나라 한단(邯鄲)으로 통하는 전략상의 중요한 거점이다.

5)함벽여친(銜璧輿櫬)/ 함벽(銜璧)이란 말은 고대 중국에서 전쟁에서 진 군주나 장군이 투항할 때 스스로 결박을 한 다음에 그 입에는 벽옥(璧玉)을 입에 물고 상대방 군주나 장수를 알현하는 행위를 말하고 여친(輿櫬)은 자기의 목숨을 상대방 군주나 장수의 뜻에 맡긴다는 의사표시로 수레에 관을 만들 수 있는 목재를 싣고 가서 투항하는 의식을 말한다.

6)패(旆)/ 검은 바탕에 잡색의 비단으로 그 가장 자리를 꾸미고 끝은 갈라져서 제비꼬리 처럼 생긴 기. 주로 대장이나 왕이 사용하던 기..

7)상곡(上谷)/ 전국 때 연(燕)과 대국(代國)의 경계 지역으로 지금의 북경시 서쪽 경계의 하북성 회래현(懷來縣) 동남을 말하며 후에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후에 지금의 장가구시(張家口市) 일대에 걸친 이 지역에 상곡군(上谷郡)을 설치했다.

8)방릉(房陵)/ 현 호북성(湖北省) 방현(房縣) 부근. 양번시(襄樊市) 서쪽 약 100키로 지점.

9)저수(沮水)와 장수(漳水)/ 저수는 저수(雎水)라고도 한다. 저수는 방산(房山)에서 발원하고 장수(漳水)는 형산(陘山)에서 발원하여 모두 남쪽으로 흘러 강수 즉 양자강에 흘러들어 간다. 조왕 천(遷)은 저수가 한수와 합류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 그가 지은 산수지구(山水之謳)란 시에 한수와 합류한다고 노래했다. 열국연의 원작자인 풍몽룡은 조왕 천의 노래의 내용을 따른 듯하다.

10)공장(孔張)/

11)금탕(金湯)/ 금성탕지(金城湯池)를 말함. 아주 단단한 성과 그 둘레에 파 높은 못. 곧 방비가 아주 견고한 성. 참고로 탕지(湯池)라는 말은 끓는 물을 넣어 둔 못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깊고 넒게 파서 적이 감히 건널 수 없게 만든 해자(垓字)를 가리킴.

12)騏驥盛壯之是 一日而馳千里, 及其衰老 駑馬先之.

13)경봉(慶封)/ 기원전 548년 제나라 대신 최저와 함께 제장공(齊莊公: 재위 기원전 553- 548년)을 시해하고 경공(景公 : 재위 기원전548- 490년)을 세웠다. 후에 장공의 호위무사 출신인 로포계(盧蒲癸)의 계략으로 제나라에서 쫓겨나 오나라에 가서 주방에 봉해져 살았으나 기원전 538년 초영왕이 보낸 초군에게 사로잡혀 영도(郢都)로 호송되어 살해되었다. 상세한 이야기는 본문 65회부터 67회 참조

14)위원군(衛元君)/ 전국시대 때의 위(衛)나라 군주로 기원전 252년에 재위에 올라 기원전 229년에 죽었다. 위원군 재위 때인 진왕 6년 기원전 241년에 진나라가 위나라의 도성인 조가(朝歌)를 함락시키고 그 땅에 동군(東郡)을 설치하자 위원군은 종족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달아나 야왕성(野王城 : 지금의 산서성 심양현(沁陽縣) 소재)의 험지에 의지하여 명맥을 의지했다. 이후 위나라는 전국이 진왕에게 통일될 때까지 계속 독립국으로 존재하다가 이세황제 때 이르러서야 진나라에 복속되었다. 형가가 연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가가 진나라에 함락된 기원전 241년 이후로 추측된다.

15)축(筑)/ 거문고와 비슷하게 생긴 대나무로 만든 현악기

16)長子以行, 不使人疑

17)조말(曺沫)/본문 18회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제환공(齊桓公)이 노장공(魯庄公)을 기원전 681년 가(柯 : 지금의 산동성 동아현(東阿縣) 서남) 땅으로 소환했을 때 장공을 호종(扈從)하여 따라가 회맹을 할 때 제환공을 칼로 위협하여 노나라로부터 뺏어간 땅을 돌려 받았다. 열국지에 나오는 최초의 의협(義俠)이다.

18)태뢰(太牢)/ 소, 돼지, 양 각 한 마리씩을 잡아 음식을 준비하는 것.

[평설]

중국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던 삼진(三晋)을 먼저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천하를 통일하려는 진나라의 동진정책은 마침내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정세의 변화에 따라 그 대상을 옮겨 알맞은 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진나라는 유연하게 작전을 전개함으로 해서 삼진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삼진 중 한나라를 골라 공격하다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게 그 태도를 바꿔 공격을 멈추고 위협을 가하여 복종하게 하고, 또한 군대를 진공시키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그 공격을 잠시 뒤로 미루고 진군 방향을 바꿔 다른 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에 의해 제일 먼저 멸망의 위기를 맞은 것은 가장 가깝게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한나라였다. 기원전 233년 한비가 진나라에 들어와 진시황에게 제와 조 두 나라를 먼저 멸하고 후에 한나라를 평정하라는 표를 올렸다. 그 목적은 한나라가 숨을 돌릴 틈을 얻어 정세를 관망하다가 정세에 따라 대응하여 그 나라를 보존시키기 위해서였다. 한비자로서는 자기 조국 한나라를 위해 매우 고심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를 진나라의 가장 큰 화근이라고 생각한 이사는 한비를 죽이고 한왕에게 조현을 하라는 구실로 진나라에 불러들여 구류시키려고 했다. 한왕이 진나라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해서 이사의 음모는 실현되지 않았다. 기원전 231년 한나라가 태항산 남쪽의 남양(南陽) 지구를 진나라에 바치자 진시황이 내사(內史) 등(騰)을 보내 접수하고 남양태수의 직을 겸임하라고 명했다. 기원전 230년 진나라의 내사 등이 한나라를 기습하여 한왕을 포로로 잡고 한나라의 남은 땅을 모두 점령했다. 진나라가 한나라의 땅에 영천군(潁川郡)을 설치함으로 해서 한나라는 멸망했다.

기원전 229년 진나라가 다시 대거 조나라를 공격했다. 그때 조나라에는 설상가상으로 큰 지진이 일어나 그 재난이 매우 심각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조나라의 명장 이목은 조군을 이끌고 진군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했다. “반간계를 이용하여 이목을 살해한 왕오(王敖)” 편은 진나라의 왕오가 조왕의 총신 곽개(郭開)를 매수하고, 곽개가 다시 이목을 조왕에게 모함하자, 우매한 조왕이 이목을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조왕은 명장 이목을 억울하게 죽임으로써 자기를 보호하고 있던 성을 스스로 허물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한단성은 함락되고 조왕은 진군의 포로가 되었다. 진나라는 조나라 땅에 거록군(鉅鹿郡)을 설치했다. 조나라의 공자 가(嘉)가 대(代) 땅으로 달아나 스스로 대왕(代王)이 되어 그 사직을 간신히 연명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병탄하고 조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군사적인 실력 외에도 간첩을 이용한 반간계도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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