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회 刺客荊軻 王翦論兵(자객형가 왕전논병)

지도를 바친다하고 진왕을 암살하려고 했던 자객 형가와

병법을 논하여 이신을 대신하여 진나라의 대장이 된 왕전

1. 荊軻借頭(형가차두)

- 진왕을 암살하기 위해 번오기의 목을 빌리는 형가 -

형가는 옛날에 다른 사람들과 검술을 논할 때 아무도 그 솜씨를 인정해 주지 않았으나 오로지 유차(楡次)① 사람 개섭(盖聶)에게만은 자기가 미칠 수 없다고 심복하고 그와 친구가 되어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후에 형가가 연나라의 태자단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그를 위해 서쪽의 진나라로 가서 진왕을 겁박하는데 도움을 줄 사람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개섭을 연나라로 데려와 같이 의논하려고 했다. 그러나 개섭은 자기의 고향을 떠나 멀리 놀러나가 그 종적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그를 데려 올 수 없었다.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형가가 호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태자단은 아침저녁으로 공경하기만 할뿐 감히 그에게 재촉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변경을 지키던 관리가 달려와 고했다.

「진왕이 대장 왕전을 보내 조나라의 북쪽 땅을 평정하도록 명하여 그의 군사들이 이미 우리 연나라의 남쪽 경계에 이르렀습니다. 대왕(代王) 가(嘉)가 우리에게 사자를 보내 두 나라가 군사를 합쳐 상곡(上谷)②에 주둔시켜 진나라 군사들을 막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태자단이 크게 두려워하여 형가를 찾아가 말했다.

「진나라 병사들이 조만 간에 역수(易水)를 건너 연나라를 침공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형경께서 비록 연나라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그 계책이 준비되기도 전에 진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형가가 대답했다.

「신이 심사숙고해 봤습니다만, 제가 만약 진왕에게서 신임을 받을 만한 징표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제가 비록 진나라에 들어간다 해도 그의 곁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이곳에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번오기 장군의 목을 얻기 위해 진왕은 황금 천근과 일만 호의 식읍을 현상으로 걸어 놓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부터 진나라 왕들은 기름진 우리 연나라의 독항(督亢)③ 땅을 탐내 왔습니다. 만약에 제가 번장군의 목과 독항의 지적도를 가지고가서 바친다고 하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쁜 마음으로 저를 만나줄 것입니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신이 진왕을 찔러 죽여 태자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번장군은 처지가 곤궁하게 되어 나에게 몸을 의탁해 왔는데 어찌 차마 그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항의 지적도는 내가 아까워하지 않고 내드리겠습니다.」

태자단이 차마 번오기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형가는 아무도 몰래 그를 찾아가 말했다.

「진나라로부터 화를 당한 장군께서는 그 원한에 매우 사무쳐 있습니다. 부모와 종족들은 모두 진왕에게 도륙되고 또한 제가 들으니 장군의 목에는 황금 천근과 식읍 일만 호가 현상으로 걸렸다고 합니다. 장군은 장차 무슨 방법으로 원한을 갚으시려고 하십니까?」

번오기가 형가의 말을 듣더니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나는 매일 진왕 정이라는 놈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부둥켜안고 같이 죽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으나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할 따름입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연나라로서는 그 환란을 피할 수 있고 또한 번장군으로서는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번오기는 귀가 솔깃하여 재빨리 물었다.

「그 계책이란 무엇입니까?」

형가가 주저하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자 번오기가 재촉했다.

「어찌하여 형경은 운만 떼어놓고 말씀을 하시지 않으십니까?」

「계책은 모두 서있으나 단지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서입니다.」

「만일 진왕에게 나의 원수만 갚을 수 있다면 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한들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터인데 어찌하여 말을 하지 않으시고 어렵다고만 하십니까?」

「진왕에게 접근하여 비수로 그를 찔러 죽이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 걱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장군의 머리를 얻어 진나라에 바친다고 한다면 진왕은 필시 이 사람에게 접견을 허락할 것입니다. 그때 제가 왼손으로 진왕의 옷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그의 가슴에 비수를 찌른다면 장군을 위해서는 원수를 갚는 일이 되며, 연나라로서는 멸망의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번오기가 즉시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놓으며 두 팔을 허공에 휘젓고, 다시 두 발을 땅에 동동 구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 사람은 매일 밤마다 절치부심하며 원수를 갚을 계책을 새우지 못함을 한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오늘에서야 밝은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번오기는 말을 마치자마자 즉시 칼을 빼어 자기의 목을 베었다. 자신의 칼에 그의 인후는 잘려 숨이 넘어갔으나 미처 다 잘리지 못하고 그 몸통에 붙어 있는 목을 형가가 다시 칼을 들어 떼어내었다. 이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묘책을 전해들은 번오기는 미친 듯이 기뻐하여

죽은 혼으로 변하여 이미 함양으로 달려갔다.

형가가 만약에 도룡계(屠龍計)④를 성공했다면

번오기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을 텐데

聞說奇謀喜欲狂(문설기모회욕광)

幽魂先已赴咸陽(유혼선이보함양)

荊卿若遂屠龍計(형경약수도룡계)

不枉將軍劍下亡(불왕잔군검하망)

형가는 사람을 태자단에게 보내 번오기의 죽음을 알리게 했다.

「번 장군의 목을 이미 얻었습니다!」

태자단이 듣고 수레를 타고 형가에게 달려와 그의 시신에 엎드려 통곡하며 매우 애통해했다. 다시 좌우에게 목 없는 시체나마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라고 명하고, 그 머리는 나무상자 안에 넣어 보관하도록 했다. 형가가 태자단에게 말했다.

「태자께서는 이미 예리한 비수를 준비해 놓고 있지 않습니까?」

「조나라 사람 서부인(徐夫人)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던 비수인데 그 길이는 한자 팔촌이며⑤ 칼날은 매우 예리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백금을 주고 사서 공인에게 명하여 그 칼날에 독을 발라 다른 사람에게 한번 사용해봤는데 칼날이 살갗에 닿기만 해도 즉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형경에게 드리려고 오랫동안 보관해 두고 있었습니다. 형경께서는 언제나 진나라로 들어가실 계획이십니까?」

「신이 기다리고 있는 개섭이라는 친구가 아직 당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나의 조수로 삼아 길을 출발할까 합니다.」

「형경께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끼를 찾는 일과 같은데 그를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저의 문하에 있는 몇 명의 용사 중에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장사가 제법 쓸만 하니 그를 조수로 데려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형가는 태자단이 매우 조급해 하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제가 지금 비수 한 자루 외는 아무 것도 없이 강포한 진나라에 들어가니, 이번에 길을 떠나면 결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신이 이렇듯 시간을 끌며 나의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만전을 기하여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자께서는 이미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하시니 제가 길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곧이어 태자단은 초안한 국서를 준비하고 독항 땅의 지적도와 함께 번오기의 머리가 든 나무상자를 형가에게 모두 주었다. 다시 태자단은 천금을 들여서 형가의 행장을 꾸리도록 했다. 진무양은 형가의 부사가 되어 진나라에 동행하게 되었다.

2. 壯士一去不復還(장사일거불복환)

- 한 번 떠나간 장사는 돌아오지 않으리! -

이윽고 형가가 출발할 날이 되자 태자단과, 형가의 임무를 알고 있던 상객들은 모두 하얀 색의 옷과 관을 착용하고 형가의 일행을 역수 강안까지 나와 마중했다. 태자단은 역수 강안에 잔치상을 준비시켜 전별연을 열었다. 친구 형가가 진나라에 사자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고점리(高漸離) 역시 돼지 다리와 술통을 들고 찾아왔다. 형가가 고점리를 태자단에게 인사시켰다. 태자단은 고점리도 같이 합석하도록 허락했다. 술잔이 몇 순 배 돌자 고점리가 축을 켜기 시작하고 형가가 그 곡조에 맞춰 변치(變徵)⑥의 성조로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소소한데 역수는 차겁구나!

한 번 떠나간 장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風蕭蕭兮 易水寒(풍소소혜 역수한)

壯士一去兮 不復還(장사일거혜 불복환)

그 목소리가 처참하고 애처로워 그 곳에 모인 빈객들이나 수행원들은 마치 형가 일행을 문상이라도 하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형가가 노래를 다 부르고 하늘을 향해 한 번 고함을 지르자 그가 발하는 기운이 하늘로 치솟더니 하얀 무지개로 변하여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뚫었다. 그것을 본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마지 않았다. 형가가 비분강개하며 우성(羽聲)⑦의 곡조로 다시 노래를 불렀다.

호랑이 굴을 찾아감이여,

교룡이 살고 있는 수궁으로 들어가도다!

내 하늘을 향해 한번 기운을 뻗치니

무지개가 되어 태양을 뚫는구나!

探虎穴兮(탐호혈혜)

入蛟宮(입교궁)

仰天噓氣兮(앙천허기혜)

成白虹(성백홍)

그 소리는 격렬하고 웅장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을 부릅뜨며 마치 적을 앞에 두고 의기분발하려는 병사들의 모습과 같았다. 이어서 태자단은 큰 술잔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무릎을 꿇으며 형가에게 바쳤다. 형가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진무양의 팔을 이끌고 달려가 수레에 올라타더니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비호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태자단은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 지켜보고 있다가 형가의 수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음이 처연해지며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궁궐로 되돌아갔다. 서진(西晉)의 처사 도정절(陶靖節)⑧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연나라 태자단이 용사를 기르기를 좋아했음은

강포한 진나라에 복수하기 위해서 였다.

훌륭한 장사를 수 없이 모았지만

한 해가 다가서야 형가를 얻을 수 있었다.

燕丹善養士(연단선양사)

志在報强嬴(지재보강영)

招集百夫良(초집백부량)

歲暮得荊卿(세모득형경)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하면서

칼 한 자루를 차고 연나라 도성을 나갔다.

백마는 큰길을 달리며 슬피 우는데

형가를 전송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비장했었다.

君子死知己(군자사지기)

提劍出燕京(제검출연경)

素驥鳴廣陌(소기명광맥)

慷慨送我行(강개송아행)

곤두선 머리카락은 관모를 들먹거리게 하고

맹렬한 기운은 관끈을 끊을 듯했다.

역수의 강가에 송별연을 차리니

사방에는 영웅들이 둘러앉았구나!

雄發指危冠(웅발지위관)

猛氣冲長纓(맹기충장영)

飮餞易水上(음전역수상)

四座列群英(사좌열군영)

왼쪽에서는 고점리가 앉아서 구슬피 축을 타고

오른쪽에서는 형가가 일어나 노래를 크게 불렀다.

스산하고 애처러운 바람 불고

담담하고 차거운 파도 이는구나!

左席擊悲筑(좌석격비축)

右席唱高聲(우석창고성)

蕭蕭哀風逝(소소애풍서)

淡淡寒波生(담담한파생)

상음(商音)의 낮은 곡조소리 사람들을 울리더니

우음(羽音)의 웅장한 곡조 용사들의 마음을 끓게 한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후세에 이름을 영원히 남겼다.

商音更流涕(상음경유체)

羽奏壯士驚(우주상사경)

心知去不歸(심지거불귀)

且有后世名(차유후세명)

3. 荊軻刺秦王(형가자진왕)

- 형가가 진왕을 죽이기 위해 비수로 찌르다. -

일행과 함께 함양에 당도한 형가는 진나라 조정의 형세를 정탐하여 중서자(中庶子)⑨ 벼슬에 있는 몽가(蒙嘉)라는 사람이 진왕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알아냈다. 형가는 황금 천근을 뇌물로 주고 진왕의 배알을 청했다. 뇌물을 받아 챙긴 몽가는 조당에 나가 진왕에게 고했다.

「대왕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껴 감히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군사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연왕이 자신의 봉토와 백성들을 우리 진나라에 바쳐 천자를 받드는 제후들처럼 진나라의 군현이 되어 그들 선조의 종묘나마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연왕은 두려워하여 스스로 와서 고하지 못하고, 삼가 번오기를 참하여 그 머리와 함께 연왕이 친히 봉함한 독항의 지적도를 사자 편에 보내왔습니다. 여기 함양성에 이미 당도해 있는 연왕의 사자는 상경의 직에 있는 형가라는 자인데 지금 역관에 머물면서 폐하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명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번오기를 이미 죽여 그 수급을 가져왔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한 진왕은 즉시 조복으로 갈아입고 구빈지례(九賓之禮)⑩의 의식을 준비시키고 연나라 사자를 함양궁으로 불렀다. 형가는 비수를 소매 속에 감추고 번오기의 목이 담긴 나무상자를 바쳐 들었고, 진무양은 독항의 지적도가 든 상자를 들고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진왕을 알현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진무양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변하여 사색이 되더니 이어서 공포감에 사로잡혀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진왕의 옆에 시위하고 있던 근시가 보고 물었다.

「사자의 얼굴색이 어찌하여 그렇게 하얗게 변하는가?」

형가가 진무양을 돌아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전당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신의 부사는 진무양이라는 사람이온데 북방 경계 밖의 만이족 출신이라 생전 처음으로 천자를 뵙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다리가 떨려 송구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결과 평상시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그의 죄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사자의 임무를 끝내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왕이 명을 내려 정사 한 명만이라도 전당으로 올라도 좋다고 허락했다. 진왕의 좌우에 있던 측근들이 큰 소리로 꾸짖으며 진무양에게 계단 밑으로 내려가 서 있으라고 명했다. 진왕은 형가가 바친 나무상자를 받아 열어보고 과연 번오기의 머리가 들어있는 지를 확인하고 형가를 향해 물었다.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 역적을 죽이지 않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그 목을 바치는 것인가?」

「천자께 죄를 얻고 아무도 몰래 도망쳐 북변의 사막에 몸을 숨긴 번오기를 저희 연왕께서 천금의 상금을 내걸어 그를 붙잡아 산채로 대왕께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산채로 보냈다가 중도에게 무슨 변고라도 날까 걱정하여 그의 머리를 잘라온 것은 대왕의 노여움을 다소나마 풀어드리기 위함입니다.」

형가는 침착한 모습에 더욱 온화한 표정을 짓고 말을 했기 때문에 진왕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계단 밑에는 진무양이 여전히 두 손으로 지적도가 들어 있는 상자를 떠받들며 머리를 숙이고 꿇어앉아 있었다. 이에 진왕이 형가를 향해 말했다.

「저 진무양이란 자가 손에 들고 있는 지적도를 이리 가져오라. 과인이 한번 살펴보리라!」

형가가 계단을 내려가 진무양의 수중에서 지도상자를 건네받아 계단을 다시 올라가 진왕에게 바쳤다. 진왕이 지도를 펼쳐 살펴보려고 하는 순간, 형가의 소매 속에 숨겨둔 비수가 밖으로 튀어나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형가는 한 순간이나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가는 할 수 없이 왼손으로 진왕의 옷소매를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들어 진왕의 가슴을 향해 찔렀으나 비수는 미처 진왕의 몸에 닿지 못했다. 진왕은 크게 놀라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나며 형가에게 잡혀 있던 옷소매를 떨치자 그의 옷자락이 찢어져 떨어져 나갔다. - 당시의 계절은 오월 초순으로 얇은 비단으로 만든 홑겹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찢어져 나갔던 것이다. - 진왕은 황망 중에 왕좌 곁의 길이가 여덟 자 되는 병풍을 향해 달려가 발로 쳐서 넘어뜨리고 그 위를 뛰어 넘어 형가의 칼을 피해 달아났다. 형가는 비수를 손에 들고 진왕의 뒤를 바짝 쫓았다. 진왕은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고 기둥을 사이에 두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형가의 비수를 피했다. 원래 진나라 법에, 전당에 올라 임금을 시위하는 자들은 어떠한 사소한 무기라도 휴대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여러 낭중이나 숙위병들과 같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관리들은 모두가 전당 밑에서 도열하고 있어야만 했다. 즉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함부로 전당에 오를 수 없었다. 창졸간에 변고를 당한 진왕은 전당 밑의 시위 병사들을 부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전당 위의 여러 신하들은 진왕을 위해 힘을 합하여 맨손으로 형가에게 달려들었다. 형가는 힘이 센 장사였기 때문에 그에게 가까이 접근해 온 사람들은 모조리 발로 차서 땅에 쓰러뜨렸다. 진왕의 시의(侍醫) 하무저(夏無且)가 약이 든 포낭으로 형가를 가격했다. 형가가 팔을 휘저어 포낭을 뿌리치자 그 안에 있던 약재가 모두 흩어졌다. 힘이 장사인 형가를 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달려들어 붙잡지는 못했지만, 형가가 여러 사람들을 힘들여 상대하는 바람에 그 틈을 타서 진왕이 도망가 형가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진왕은 평소에 록로(鹿盧)라는 이름의 보검을 차고 다녔는데 그 길이는 여덟 자⑪에 달했다. 그가 형가에 대항하기 위해 칼을 뽑으려고 하는데 칼의 길이가 너무 길어 칼이 칼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어린 나이의 내시 조고(趙高)가 보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대왕께서는 칼집을 등 뒤로 돌려서 칼을 빼십시오.」

진왕이 그 말을 알아듣고 칼집을 등 뒤로 돌리자 앞쪽에 여유가 생겨 쉽게 칼을 뽑을 수 있었다. 진왕도 형가에 못지않은 힘이 센 장사였고, 형가가 들고 있던 비수는 그 길이가 불과 두 자도 안 되어 상대방을 찌르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해야 했으나, 진왕의 칼은 여덟 자가 되어 멀리서도 공격할 수 있었다. 진왕이 장검을 손에 쥐게 되자 마음이 담대해져 곧바로 형가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형가는 진왕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가고 그의 몸은 구리기둥의 왼쪽으로 쓰러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형가가 주저앉아 비수를 들어 진왕을 향해 던졌다. 진왕이 몸을 재빨리 피하자 형가가 던진 비수는 진왕의 외쪽 귀 옆을 살짝 비켜 날아가 구리 기둥의 오른쪽 켠에 꽂히면서 불꽃이 튀었다. 진왕이 다시 형가를 향해 칼을 내리치자 형가가 맨손으로 칼을 막는 바람이 손가락 세 개가 잘려나갔다. 진왕은 계속해서 여덟 번이나 칼을 휘둘러 형가의 몸을 난자했다. 기둥에 몸을 기대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형가가 진왕을 쳐다보며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허벅지를 뻗고 앉아 진왕을 꾸짖었다.

「참으로 운이 좋은 자로다! 내가 옛날 노나라 대부 조말(曺沫)의 고사를 본받아 너를 산채로 잡아 위협하여 다른 제후국들로부터 빼앗은 땅들을 돌려주려고 하였건만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여 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너는 다행히 화를 면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다만 하늘의 뜻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구나! 그러나 너는 힘만을 의지하여 여러 제후국들을 병탄하고 있으니 너라고 한들 어찌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

형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왕의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앞다투어 형가에게 달려들어 죽였다. 전하에게 서있던 진무양은 형가가 손을 쓴 것을 알고 그 역시 전당 위로 올라가 형가를 도우려고 하였으나 전당 밑에 도열하고 있던 낭중들과 시위병사들이 달려들어 살해했다.

- 이 사건은 진왕 재위 20년인 기원전 227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애석하게도 연나라 태자단(太子丹)에게 오랫동안 후하게 대접을 받은 끝에 진나라에 큰 뜻을 품고 왔다가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으니, 그의 목숨뿐만 아니라 전광, 번오기, 진무양 등의 세 사람 목숨도 헛되게 만들었고, 또한 연왕 희와 태자단의 연나라 강산도 그 대가 끊기게 했으니 그것은 모두가 그의 능숙치 못한 검술 때문이었다고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비수를 품고 함양성에 단신으로 들어갔으나

용력은 귀신같았지만 검술에는 서툴렀다.

장사는 돌아오지 못하고 일도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번오기의 머리는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神勇其如劍術疏(신용기여검술소)

獨提匕首入秦都(독시비수입진도)

壯士不還謀不就(장사불환모불취)

樊君應與覓頭顱(번군응여멱두노)

뜻밖의 황당한 일을 당한 진왕은 마음이 산란하고 눈앞이 아찔하여 반나절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윽고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평상심을 회복한 진왕은 죽어 있는 형가의 시체가 있는 곳을 찾았다. 형가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진왕이 두려워하여 형가와 진무양의 시체를 거두어 번오기의 수급과 함께 시중에 가져가 불태워 버리라고 명했다. 이어서 연나라에서 온 형가의 수행원들은 모조리 죽여서 성문 앞에 효수시키도록 명한 진왕은 수레를 몰아 내궁으로 들어갔다. 궁중의 후비들은 조당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달려와 진왕의 안부를 묻고 그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술상을 차려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한 진왕을 칭하했다. 후비들 중에 호희(胡姬)는 원래 조왕(趙王) 천(遷)의 후비였던 것을 진나라가 조나라를 점령하자 함양으로 데리고 온 여자였다. 호희는 거문고를 잘 타 진왕의 총애를 받아 후비의 대열에 설 수 있었다. 진왕이 낮에 일어났던 일을 잊기 위해 호희에게 거문고를 타보라고 명했다. 호희가 거문고를 받아들고 곡조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홑겹의 얇은 비단옷이여!

찢기어 떨어져 나갔도다.

여덟 자 길이의 병풍이여!

뛰어 넘어 달아날 수 있었도다.

녹노의 보검이여!

등에 메고 뽑을 수 있었도다.

가소롭도다, 흉악하고 간교한 도적이여!

몸은 죽고 나라를 망쳤도다.

羅縠單衣兮(나곡단의혜)

可裂而絶(가열이절)

八尺屛風兮(팔척병풍혜)

可超而越 (가초이월)

鹿盧之劍兮(녹노지검혜)

可負而拔 (가부이발)

嗤彼凶狡兮(치피흉교혜)

身亡國滅(신만국멸)

진왕은 즉석에서 노래말을 지어낸 호희의 총명함에 반하여 비단 한 상자를 그녀에게 하사하고 그날 밤 그녀와 함께 마음껏 술을 마시고 잠자리를 같이했다. 이 일로 해서 후에 호희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호해(胡亥)라 지었다. 호해는 진왕이 죽자 이세(二世) 황제로 진왕이 천하를 통일하고 얼마 후에 죽어 그 뒤를 이었으나 진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다음 날 아침 진왕은 조회를 열어 논공행상을 행했다. 하무저가 제일 큰 공을 세웠다고 해서 황금 200일을 하사하며 말했다.

「무저는 과인을 사랑하여 약낭을 형가에게 던져 나를 위험에서 구했다.」

다음 상은 어린 내시 조고에게 내리면서 말했다.

「칼을 등 뒤로 돌려 멘 다음 뽑으라고 가르쳐준 너의 공이 크도다!」

진왕은 조고에게도 역시 황금 백일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형가에게 달려들어 맨손으로 싸우다가 입은 부상의 크고 작음에 따라 여러 신하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전하에서 진무양을 격살한 낭중들과 시위들에게도 역시 상을 하사했다. 형가의 알현을 주선한 몽가는 그의 잘못을 물어 일가를 멸족시켰다. 그때 몽오는 병으로 먼저 죽고 그 아들 몽무(蒙武)가 작위를 이어 비장으로 있었는데 몽가의 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여 그 죄를 특별히 용서받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모산 진왕은 연나라에 그 죄를 묻기 위해 왕분(王賁)에게 별도의 군사를 주어 원정 중인 그 부친 왕전(王翦)을 도와 연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형가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연나라의 태자단은 나라 안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역수의 서쪽으로 나와 왕전이 지휘하고 있는 진나라 군사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연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대패하고 용사 하부(夏扶)와 송의(宋意)도 모두 전사했다. 태자단은 도성인 계성(薊城)으로 달아나고 국무(鞠武)는 도중에 진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죽었다. 왕전은 태자단의 뒤를 추격하여 계성을 포위한 끝에 그 해 10월에 드디어 함락시켰다. 연왕 희가 태자단을 원망하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는 모두 네 놈 때문이다!」

태자단이 승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나라와 조나라가 망하게 된 것도 저 때문입니까? 제가 아니더라도 진나라는 우리나라를 쳐들어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성중에는 아직 2만여 명의 정예스러운 군사들이 있으니 요동(遼東)의 산과 하천에 의지하여 대항한다면 충분히 지킬 수는 있습니다. 부왕께서는 속히 요동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연왕은 별다른 수가 없이 수레에 올라 동문을 통하여 계성을 빠져나가 요동으로 몸을 피했다. 태자단은 성중의 정예병들을 모두 이끌고 몸소 연왕의 후위를 엄호했다. 연왕은 요동까지 후퇴하여 평양(平壤)⑫에 도읍을 정했다. 왕전은 연나라의 도성 계성을 함락시키고 함양의 진왕에게 승전보를 전하면서, 그 동안 피로가 쌓이고 몸은 병이 들어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상주했다.

진왕이 명을 내려 전하게 했다.

「태자단에게 아직 원수를 갚지 못해 과인이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왕전 장군은 어찌하여 늙었다고 여기서 그만두려 하시오?」

진왕은 장군 이신(李信)으로 하여금 왕전을 대신하여 군사들을 지휘하여 연왕 부자의 뒤를 추격하도록 했다. 왕전은 함양으로 불러 많은 상급을 내리고 정성으로 대했다. 왕전은 병이 들었다고 하면서 진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빈양(頻陽)⑬으로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려고 했다.

한편 이신이 군사를 이끌고 평양까지 추격해오자 연왕이 사자를 대왕 가에게 보내어 구원군을 청했다. 대왕 가가 연왕에게 국서를 보내 답해왔다.

「진나라 군사들이 연나라를 그렇듯 몰아 부치고 있는 이유는 태자단에 대한 원한 때문입니다. 왕께서는 태자단을 죽여 진나라에 사죄하시면 진나라는 분노를 풀게 되어 연나라의 사직은 다행히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왕 희는 아들 태자단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주저했다. 연왕에게 살해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태자단은 그의 빈객들과 함께 바다 가운데의 도화도(桃花島)⑭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이신은 그 군사들을 수산(首山)⑮)에 주둔시키고 사자에게 편지를 주어 연왕에게 보내 태자단의 죄를 열거했다. 연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긴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다고 태자단을 평양으로 불렀다. 이윽고 평양에 당도한 태자단을 연왕은 잔치를 벌려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에 끈으로 목을 졸라 죽여 그의 목을 잘랐다. 그때는 계절이 한 여름인 오월이었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큰 눈이 내리더니 평지에 두 자 반이나 쌓이고 날씨는 엄동설한처럼 추워졌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태자단의 원한 때문이라고 했다. 연왕이 태자단의 머리를 함에 넣어 사죄의 편지와 함께 이신의 군중으로 보냈다. 이신이 편지를 써서 진왕에게 고했다.

「오월 여름에 큰 눈이 내려 그 추위로 인하여 군사들은 모두 한질에 걸려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잠시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가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왕이 울료(尉繚)에게 그 대책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연나라는 요동에, 조나라는 대 땅에 둥지를 틀고 연명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마치 떠돌아다니는 혼백에 불과하여 머지않아 스스로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먼저 하셔야 할 일은 위나라를 점령하고, 계속해서 형초(荊楚)를 평정하는 일입니다. 그런 연후에 대와 연나라의 뿌리를 뽑는다면 천하를 쉽게 평정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

진왕은 즉시 이신에게 조칙을 내려 군사를 이끌고 회군하라고 하고 다시 왕분을 대장으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함곡관을 나가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4. 水淹大梁 虜魏王假(수엄대량 로위왕가)

- 수공으로 대량을 물에 잠겨 위왕 가를 포로로 잡다. -

그때 위나라는 경민왕이 죽고 태자 가(假)가 즉위한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본 위왕 가는 대량성 밖에 성곽을 크게 증축하고 안팎으로 해자를 깊이 파 진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 사자를 제왕에게 보내어 힘을 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게 될 경우의 이해득실의 설명과 함께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위와 제 두 나라는 입술과 이와 같은 관계입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립니다. 위나라가 망하면 그 화는 필시 제나라에 미치게 됩니다. 원컨대 힘을 합하여 진나라의 공격에 대항하도록 합시다.」

그때 제나라는 군왕후가 죽고 그녀의 동생 후승(后勝)이 상국의 되어 정사를 맡아하고 있었다. 진나라로부터 막대한 황금을 뇌물을 받은 후승은 제왕에게 위나라와 연합하면 안 된다고 적극 만류하였다.

「진나라는 지금까지 우리 제나라에 아무런 원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위나라와 합종을 맺는다면 우리는 진나라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제왕 건(建)은 후승의 말에 현혹되어 위나라가 제의한 합종을 거부하고 사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진나라의 장군 왕분은 연전연승하며 진격하여 대량성을 포위했다. 그때 하늘에서 억수같은 비가 여러 날 동안 쏟아졌다. 군막과 병거에 기름을 먹이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명을 내린 왕분은 주위를 찾아다니며 강물의 흐름을 살펴봤다. 대량성의 서북쪽으로는 황하가 흐르고, 형양(滎陽)에서 발원한 변하가 동쪽으로 흘러 성의 서쪽을 관통하여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왕분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대량성의 서북쪽에 두 강의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물길을 파고 두 강에는 강심을 가로질러 제방을 쌓아 물을 가두었다. 군사들은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공사를 감행하고 왕분은 우산을 써가며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진나라 군사들의 물길 공사가 완성되었을 때는 비가 계속해서 열흘 동안이나 쉬지 않고 내려 제방 안에 갇힌 수세는 실로 대단했다. 왕분이 이윽고 제방을 끊도록 명을 내리자 엄청난 양의 물이 새로 판 물길 속으로 흘러 들어가 대량성은 성안이건 성밖이건 모두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대량성이 물 속에 잠겨 3일이 지나자 성곽 중에 몇 군데가 허물어 졌다. 진나라 군사들이 그 틈을 이용하여 성내에 진입했다. 위왕 가가 군신들과 의논하여 항복문서를 써서 바치게 했다. 위왕과 그 신하들은 모두 왕분에게 사로잡혀 함거에 실려 궁궐의 비빈들과 함께 함양으로 호송되었다. 위왕 가는 함양으로 호송 도중에 병이 들어 죽었다. 왕분은 위나라의 모든 땅을 점령하고 삼천군에 속하게 했다. 이어서 야왕(野王)에 도망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위군(衛君) 각(角)을 붙잡아 서인으로 만들었다.⑯

당진의 헌공(獻公) 때 위나라의 선조인 필만(畢萬)이 위(魏)⑰ 땅에 봉해졌다. 필만은 망계(芒季)를 낳고, 망계는 위무자(魏武子) 주(犨)를 낳았다. 위주는 진문공이 패업을 이루는데 공을 세우고 그 후손들은 진(晉)나라의 유력한 세가가 되었다. 다시 위주로부터 4세에 이르러 위치(魏侈)가 위씨들의 종주가 되어, 조앙(趙鞅)과 힘을 합하여 범씨(范氏와 중항씨(仲行氏)를 멸했다. 이어서 위치의 손자 환자(桓子)는 한선자(韓宣子)와 조간자(趙簡子)와 더불어 지씨(智氏) 가문을 멸하고 그 봉지를 나누어 가졌다. 환자의 손자인 문후(文侯) 사(斯) 때에 이르러 한과 조와 함께 당진을 멸하고 그 땅을 세 나라가 나누었다⑱. 다시 7전하여 조왕 가에 이르기까지 200년 동안 존속하다가 이윽고 이 해에 진나라에게 망한 것이다. 후세의 사관이 위나라의 역사를 노래했다.

위나라는 필공의 후예가 세운 나라인데

나라 이름을 종족의 이름으로 삼았다.

후손들이 번창하여

대를 이어 진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畢公之苗(필공지묘)

因國爲姓(인국위성)

胤裔繁昌(윤예번창)

世戴忠正(세재충정)

문후 때 처음으로 제후가 되었고

무후(武侯) 때에 나라가 더욱 강성해 졌다.

혜왕은 싸움을 좋아하여

아무도 위나라와는 다투지 못했다.

文始建侯(문시건후)

武益强盛(무익강성)

惠王好戰(혜왕호전)

大梁不競(대량불경)

인재들을 양성한 신릉군 덕분에

위나라의 사기는 다소나마 진작되었으나

경민왕 때에 이르자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다음 대에 이르러 그 운명을 다했다.

信陵養士(신릉양사)

神氣稍振(신기소진)

景湣式微(경민식미)

再傳而隕(재전이운)

5. 王翦論兵(왕전논병)

- 왕전이 병법을 논해 60만의 대군을 얻다. -

위나라가 망한 해는 진왕 22년 기원전 225년이었다. 그 해에 진왕은 울료의 계책에 따라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장군 이신을 불러 물었다.

「장군은 초나라를 정벌하는데 얼마의 군사를 동원하면 가능하리라고 봅니까?」

「20만 정도의 군사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왕이 다시 곁에 있던 왕전을 향해 묻자 그가 대답했다.

「20만의 군사로 초나라를 쳐들어갔다가는 결코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60만의 군사를 동원하지 않으면 초나라를 정벌할 수 없습니다.」

진왕은 왕전의 대답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왕전은 이미 나이가 들어 겁쟁이가 되어 버렸구나! 젊고 씩씩한 이신 장군에게 맡겨야 되겠다!」

진왕은 왕전을 대장의 직위에서 물러나게 한 후에 이신을 대신 세우고 몽무(蒙武)를 부장으로 삼아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이신이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자신은 평여(平輿)⑲로, 몽무는 침구(寢邱)⑳로 진군했다. 나이가 젊고 사나운 장수 이신은 북소리 한 번에 평여성(平輿城)을 떨어뜨리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격하여 신성(申城)㉑을 함락시킨 후에 몽무와 연락하여 성보(城父)㉒에서 만나 군사를 합친 후에 주성(邾城)㉓을 공격하려고 했다.

한편 그때 초나라는 이원이 춘신군 황헐을 살해하고 유왕(幽王) 한(捍)을 세웠으나 유왕은 곧 이원의 여동생 이언(李嫣)과 황헐 사이의 소생이었다. 유왕이 재위 10년 만에 죽었으나 슬하에 아들을 두지 못했다. 그때는 이원도 역시 죽었기 때문에 군신들이 상의하여 여러 공자들 중에 한 사람인 유(猶)를 세웠다. 이가 초애왕(楚哀王)이다. 애왕이 초왕의 자리에 오른 지 두 달만에 그의 서형 부추(負芻)에게 습격당해 피살되었다. 부추가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부추 재위 3년은 기원전 225년이다. 이 해에 진나라가 군사를 대거 일으켜 초나라로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초왕 부추는 항연(項燕)을 대장으로 삼아 20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수륙(水陸)의 두 길로 나아가 진나라의 대군을 막게 했다. 항연이 서릉(西陵)㉔으로 진군한 후에 부장 굴정(屈定)에게 명하여 노태산(魯台山)㉕의 계곡 일곱 군데에 매복시켰다. 자신의 용기를 과신한 이신은 초나라로 전진하다가 중도에서 항연이 거느린 초군과 조우했다. 두 나라 군사들이 접전에 들어가 싸움이 무르익으려고 하는 찰나 노태산 계곡에 잠복하고 있던 일곱 군데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진나라 군사들의 후방을 들이쳤다. 이신은 양쪽에서 달려드는 초나라 군사들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항연이 그 뒤를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 추격하여 7명의 진나라 도위(都尉)를 붙잡아 죽이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진나라 군사들의 목을 베었다. 이신은 잔병을 이끌고 후퇴하여 명액(冥阨)㉖으로 들어갔다. 항연이 뒤따라 와서 명액을 공격하자 이신은 성을 버리고 도망쳐 몸을 숨겼다. 항연은 계속 진격하여 평여와 침구 등의 빼앗긴 땅을 수복하였다. 몽무는 그때까지 성보에 당도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신이 싸움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역시 군사를 물리쳐 조나라의 옛 땅으로 후퇴한 후에 사태의 위급함을 진왕에게 고했다.

진왕은 크게 노하여 이신의 관작과 식읍을 몰수하고 평민으로 만든 후에 어가를 움직여 왕전이 은퇴하여 살고 있던 빈양을 찾아갔다. 진왕이 왕전을 만나 말했다.

「장군은 전에 20만의 군사만으로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반드시 싸움에서 패한다고 말했는데 오늘 과연 장군의 말대로 진나라의 군사들은 치욕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소. 장군이 비록 몸이 아프다고는 하지만 과인을 위해 병석에서 몸을 일으켜 군사를 이끌고 한번 출전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왕전이 재배하며 사양하였다.

「신은 늙은 나이에 몸에는 병까지 들어 행하는 바가 어지럽고 마음과 근력이 모두 쇠해져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오니 대왕께서는 다른 훌륭한 장수를 택하여 일을 맡기기 바랍니다.」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장군 외는 없으니 결코 사양하지 마시오.」

「대왕께서 꼭 신을 쓰시겠다고 하신다면 60만의 군사를 내어 주십시오.」

「내가 알기로는 옛날 대국은 삼군을 두었고 그 다음에 큰 나라는 이군, 그리고 소국은 일군을 두었으나 싸움이 일어나면 전군을 동원하지 않았음에도 그 수가 부족하지 않았다고 했소. 후에 오패가 일어나 제후들을 위협했을 때도 그 군세는 불과 천승을 넘지 않았으니, 일승을 75인으로 계산해도 그 군사들의 수효는 결코 10만을 넘지 못했소. 그러나 오늘 장군께서 60만의 군사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 그렇게 많은 군사들을 동원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

「옛날에는 싸움을 할 때, 서로 시간을 약속하고 진을 세우고, 진이 모두 세워지면 교전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행군을 하거나 싸움을 할 때도 모두 일정한 규칙에 따라 행했으며, 중상을 당한 군사들에게는 다시 공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죄를 성토만 했지 그 영토를 빼앗지 않았으며, 비록 접전을 하던 중이라도 예절을 지키며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해서 제왕(帝王)이 군사를 일으킬 때도 그렇게 많은 군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환공이 내정을 일으켜 쌓은 재부로 모은 군사들도 3만 명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번을 바꾸어 가며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열국들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서로 다투는 방법은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업신여기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쳐들어가 싸움을 했다하면 적군을 죽이고 땅이 있으면 점령합니다. 한 번 싸움에 몇 만 명의 수급을 베고 큰 성의 포위에는 몇 년이 걸리게 되는 때도 있어 그때가 되면 농민들도 모두 무기를 들고 나오게 되고, 어린아이들까지도 군적에 올려 싸움에 임하게 되어, 적은 수의 군사들을 동원하게 된다면 결코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초나라는 그 영토가 동남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일단 한번 동원령을 내리기만 하면 백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습니다. 신은 60만의 군사로도 혹시 당해내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 다시 거기에서 줄일 수 있겠습니까?」

진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싸움터를 누비고 다니며 잔뼈가 굵은 왕장군 외는 아무도 이렇듯 용병술에 밝지 못하오. 과인이 장군의 말대로 하리다!」

6. 王翦求田(왕전구전)

- 왕전이 전답을 졸라 진왕을 안심시키다.

진왕은 왕전에게 수레를 타고 자기의 뒤를 따르라 명하고 함양으로 돌아와 입조하여 그날로 대장에 임명한 후에 60만의 군사를 주었다. 부장에는 예전처럼 몽무를 임명했다. 출정할 날이 되자 진왕은 파수(灞水)㉗의 강안으로 친히 나가 전별연을 차리게 했다. 왕전이 술잔에 술을 따라 바치며 진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면서 말했다.

「대왕께서 이 술잔의 술을 비우시면 제가 청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진왕이 단숨에 술잔의 술을 들이켜고 왕전에게 물었다.

「무슨 청이오?」

왕전이 소매 속에서 목간 한 개를 꺼내어 진왕에게 바쳤다. 그 목간에는 함양성 내의 아름다운 집과 비옥한 전답이 있는 몇 개의 지명이 적혀 있었다. 왕전이 진왕에게 말했다.

「목간에 적혀있는 목록을 신에게 하사한다고 허락해 주십시오.」

「장군이 만약 초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온다면 과인은 바로 장군과 더불어 부귀영화를 누려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가난함을 걱정하시오?」

「신은 이미 늙어 대왕께서 비록 신의 노고를 치하하시어 열후에 봉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라 제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신이 살아 있을 때 아름다운 저택과 전답을 하사 받아놓고 있다가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대왕의 은혜를 입게 해 주고 싶어서입니다.」

진왕이 큰소리로 웃으며 허락했다. 이어서 왕전이 군사를 이끌고 함곡관에 당도했을 때, 다시 사자를 진왕에게 보내 연못이 있는 땅 몇 군데를 더 달라고 청했다. 몽무가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 구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으십니까?」

왕전이 몽무에게 아무도 몰래 가만히 말했다.

「진왕은 성격이 급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오. 오늘 60만에 달하는 진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내게 맡겼소. 이것으로 진나라는 텅 비게 되어 나라의 운명을 나에게 맡겼다고 할 수 있소. 내가 몇 번에 걸쳐 아름다운 저택과 기름진 전답 및 연못이 딸린 땅을 청하여 자손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목적은 진왕의 마음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요.」

「장군의 깊은 생각은 이 사람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 제 108회로 계속 >

①유차(楡次)/현 산서성 유차현(楡次縣) 경내. 태원시(太原市) 동남 20키로 있었던 전국 때 조나라 영토였다.

②상곡(上谷)/ 전국 때 연나라 장군 진개(秦開)가 동호(東胡)를 정벌하고 그곳에 설치한 군현이름이다. 지금의 하북성 적성(赤城), 북경시 연경(延慶) 이서, 창평(昌平)과 내장성(內長城) 이북, 하북성 소오대산(小五臺山), 장가구(張家口) 이동 일대를 관할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후에 지금의 장가구시(張家口市) 일대에 걸친 이 지역에 상곡군(上谷郡)을 설치했다.

③독항(督亢)/ 지금의 북경시 남쪽과 접경지역인 하북성 탁현(𣵠縣)과 고안현(固安縣) 일대의 연나라 땅을 가리킨다.

④)도룡계(屠龍計)/ 황제를 암살하는 계책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용은 황제나 임금을 의미한다.

⑤한자 팔촌 : 약 40cm임

⑥변치(變徵)/고대 중국의 음률인 칠성(七聲)의 하나이다. 궁(宮), 상(商), 각(角), 변치(變徵), 치(徵), 우(羽), 변궁(變宮) 등의 칠성이며 서양음악의 C, D, E, F, G, A, B등의 7조(調)에 해당한다. 변치(變徵)는 F조에 해당하여 그 소리가 처량하고 구슬픈 곡조이다.

⑦우성(羽聲)/ 칠성(七聲)의 하나로 서양음악의 A조에 해당한다. 그 소리는 높고 사람들을 격앙하게 한다.

⑧도정절(陶靖節)/ 서진 때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의 호다.

⑨중서자(中庶子)/ 주나라 때 서자(庶子)라는 관제로 주로 제후와 경대부들의 서자들에 대하여 계율과 교리(敎理)를 관장했다. 나라에 일이 있을 때 그들은 모두 태자에게 귀속되어 그 지시를 받았다. 전국 때 각 제후국들은 이를 본 따 중서자라는 관제를 만들어 운용했다.

⑩구빈지례(九賓之禮)/ 외국이나 제후의 나라에서 보내온 사자를 맞이할 때 구빈에 해당하는 모든 관원들이 참석하여 행하는 가장 성대한 의례식. 구빈(九賓)이란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고(孤), 경(卿), 대부(大夫), 사(士)를 말한다.

⑪여덟 자/약 1m 80cm 정도이다.

⑫평양(平壤)/지금의 요녕성(遼寧省) 요양시(遼陽市)로 심양(瀋陽) 남쪽 50키로다.

⑬빈양(頻陽)/ 지금의 섬서성 부평(富平) 동북의 미원진(美原鎭) 부근. 빈산(頻山)의 남쪽에서 생긴 지명임. 함양에서 동북으로 약 50키로 떨어져 있음.

⑭도화도(桃花島)/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秦皇島)의 명나라 때 이름이다.

⑮수산(首山)/ 지금의 하북성 노룡(盧龍) 동북에 있는 수양산을 말한다. 백이와 숙제가 죽은 곳이라는 설도 있다.

⑯위원군(衛元君)이 진나라의 침입으로 조가(朝歌)에서 달아나 야왕성으로 몸을 피한 해는 진왕 6년 기원전 241년이다. 그 뒤를 이은 위군(衛君) 각(角)이 즉위한 해는 진왕 18년 기원전 229년이며 위군 각은 계속해서 야왕성에 의지하여 위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진왕이 죽고 이세(二世) 황제 원년인 기원전 209년에서야 야왕성을 점령하고 위군 각을 서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위(魏)나라가 왕분에게 멸망당한 해는 진왕 22년 기원전 225년의 일임으로 본문의 내용은 원작자인 풍몽룡(馮夢龍)의 착오이다. (사기-칠국연표)

⑰위(魏)/ 위나라의 선조인 필만의 봉읍인 위(魏) 땅은 지금의 산서성 하곡부(河曲部)의 황하 북안 예성현(芮城縣)이다.

⑱위문후 때까지의 위(魏)나라 계보

필만(畢萬)→ 무자(武子) 위주(魏犨)→ 도자(悼子)→ 위소자(昭子) 위강(魏絳)→ 헌자(獻子) 위서(魏舒)→ 양자(襄子) 위치(魏侈)→환자(桓子) 위구(魏胊)→문후(文侯) 위사(魏斯)

⑲평여(平輿)/ 지금의 하남성 남쪽의 평여현(平輿縣) 경내. 신채시(新蔡市) 북 10키로.

⑳침구(寢邱)/ 지금의 안휘성 임천현(臨泉縣) 경내. 안휘성 부양시(阜陽市) 서쪽의 하남성과의 경계에 있다.

㉑신성(申城)/ 지금의 하남성 양번시(襄樊市) 경내

㉒성보(城父)/ 지금의 하남성 평정산시(平頂山市) 경내

㉓주성(邾城)/ 지금의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남쪽의 추현(鄒縣)에 있었던 고을이다.

㉔서릉(西陵)/ 지금의 하남성 서협(西峽) 부근의 석천현(淅川縣) 경내를 말한다. 호북성, 섬서성과의 경계를 흐르고 있는 단수(丹水) 강안의 요새지다.

㉕노태산(魯台山) /호북성 무한시 황피구(黄陂区) 전천가(前川街) 노태촌에 있는 면적 3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큰 구릉이다.

㉖명액(冥阨)/ 지금의 하남성 신양시(信陽市) 남쪽의 호북성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계공산(鷄公山) 부근의 요새지다..

㉗파수(灞水)/ 섬서성 남쪽의 진령(秦嶺)에서 발원하여 서안(西安)의 동쪽으로 흘러 위수(渭水)와 합류하는 위수의 지류

[평설]

“ 지도를 바친다고 하면서 진나라 궁궐을 소란하게 한 형가(荊軻)” 편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될 위기에 몰린 연나라가 취한 최후의 수단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전 228년 진장 왕전은 조나라의 도성 한단을 함락시킨 후에 대군을 연나라 국경과 가까운 중산(中山) 지구에 주둔시켰다. 진나라의 대군이 국경 근처에서 위협을 가하자 연나라의 군신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이에 연나라의 태부 국무(鞠武)는, 서쪽으로 삼진(三晋)과 협력하고, 남쪽으로 제초(齊楚)와 연계한 다음, 북쪽의 흉노 선우를 끌어 들여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한나라는 멸망당했고, 위나라는 진군에 의해 몇 년 동안이나 포위당해 거의 멸망직전에 몰려 있었으며, 조나라도 본국은 망하고 그 잔존 세력이 대(代) 땅으로 들어가 사직을 근근이 보존한 상태에 있었다. 또한 제(齊)와 초(楚) 두 나라는 이미 진나라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런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미 실현이 불가능한 허황된 말에 불과했다. 그때 마침 국내에 기근을 당한 진나라가 잠시 군사 행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결코 연나라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시간을 갖고 서서히 도모함으로 해서 결국은 연나라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국무가 주장한 합종책은 당시로써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는 사실이다.

약한 국력의 연나라가 강대한 진나라에 대항할 수 없고, 또한 제후들이 모두 두려움에 복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종을 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연나라의 태자 단(丹)은 군사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대신 자객을 보내 진시황을 암살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옛날 춘추시기에 제환공에게 노나라의 장수 조말(曹沫)이 행했던 행동의 재현을 상정하고 진왕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관대히 용서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다른 한편 혹자는 만일 당시 형가가 진왕을 살해했다면 진나라에 내란이 일어나게 되고 그 기회를 틈타 연나라가 초(楚)와 위(魏) 두 나라와 연합하여 이미 망한 한(韓)과 조(趙) 두 나라를 복국시킨 다음 힘을 합하여 공격했다면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당시 제환공이 추구했던 바는 단지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패주의 지위에 불과했으나 진나라가 노리는 것은 천하를 겸병하여 통치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때와는 정황이 완전히 달랐다. 비록 형가가 진왕을 살해하는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진나라는 또 다른 왕을 옹립하고 그들이 가졌던 통일에 대한 집착과 전략은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장래 어느 날 합종이 설사 성사되었다고 해도 예전처럼 육국이 서로 시기하게 되어 이미 나라가 쇠약해진 국면에서 근본상 판세를 되돌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원전 227년 형가가 진나라에 들어갔으나 지도 속에 숨겨 놓은 비수가 발각되어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때의 형가 이야기는 후세에 전해져 비운의 노래를 불렀던 강개지사(慷慨之士)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진왕을 죽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몸은 진나라 궁정에서 죽고 말았다. 진왕을 암살하려던 연나라 태자단의 계획은 철저히 무산되었다. 진시황은 중산에 주둔하며 대기하고 있던 왕전(王翦)에게 명하여 즉시 연나라로 진군하라고 했다. 연나라는 대국(代國)과 연합하여 진군과 역수(易水)의 서쪽에서 회전했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다음 해인 기원전 226년 왕전은 연나라 도성 계(薊)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왕전의 위협을 받은 연왕은 태자 단을 죽여 그 목을 진나라에 보냈다. 왕전에게 쫓긴 연왕은 요동으로 도망가 나라를 보존했다. 연나라의 대부분의 영토는 모두 진나라 땅으로 편입되었다.

산동의 육국 중에 남은 나라는 단지 위(魏), 초(楚), 제(齊) 세 나라 뿐이었다.

기원전 225년 위나라 도성 대량성을 공격하고 있던 왕분(王賁)이 8개의 인공하천을 시굴하여 끌어들인 황하의 물로 수몰시켰다. 수공으로 대량성을 함락시킨 왕분은 위왕 가(假)를 포로로 잡고 위나라의 모든 땅을 점령함으로 해서 위나라 역시 멸망했다.

이어서 진나라는 울료(尉繚)의 장기적인 전략에 따라 대군을 일으켜 초나라 정벌에 나섰다. “ 병법을 논하고 이신(李信)을 대신하여 초나라 정벌군 대장이 된 왕전” 편은 진나라 내부에서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얼마의 병력을 출동시켜야 하는 문제에 대해 논쟁했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동원하는 병력의 수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만 기본문제에 해당한다. 왕전은 초나라를 공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0만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신은 20만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서로 다른 병력의 수효는 두 사람의 판단이 같지 않다는 점을 의미하고 결국은 서로 상이한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