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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중국 주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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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20.有子曰遷(유자왈천).

태사공에게는 이름이 천(遷)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221.遷生龍門(천생용문),

천은 용문(龍門)에서 태어나서




▶용문(龍門)/지금의 섬서성 한성시(韓城市) 부근으로 태원 북쪽에서 발원하여 산서성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분수(汾水)가 하수(河水)와 만나는 곳이다. 그 북쪽에 용문산(龍門山)이 있다.




222.耕牧河山之陽(경목하산지양).

그는 하수의 근처의 태항산(太行山) 남쪽에서 농사와 가축을 기르며 살다가




223.年十歲則通古文(연십세즉통고문).

나이가 10 살이 되자 고문(古文)을 익혀 통달하게 되었으며




▶고문(古文)/진시황이 중국의 문자를 금문(今文)으로 통일하기 전에 사용했던 선진시대의 문자.




224.二十而南游江, 淮,(이십이남유강회)

나이가 20세에 이르자 남쪽의 강회(江淮) 사이를 유람하고,




▶강, 회(江淮)/강수(江水) 즉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를 말한다.




225.上會稽(상회계),

월(越) 땅의 회계산에 올라




▶회계산(會稽山)/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시(紹興市)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하(夏)왕조를 세운 우(禹) 임금이 그곳에 올라 천하의 제후들을 불러모아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행한 곳이라 하여 이름을 회계라 지은 것이다. 회계(會稽)는 곧 회계(會計)이다. 춘추 말기에 월나라의 구천(句踐)이 오나라의 부차(夫差)에게 쫓겨 회계산으로 달아나 농성하다가 결국은 항복하였으나 후에 권토중래하여 부차를 멸망시키고 당시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226.探禹穴(탐우혈),

우(禹)임금이 묻혔다는 굴을 찾아 보고




▶ 우혈(禹穴)/ 우임금이 회계에 순수(巡狩)차 회계산에 들렸다가 사망하여 이곳에 묻혔다. 그러나 우임금은 죽은 것이 아니라 회계산 산중에 있는 굴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는데 우혈이란 그것을 말한다.




227.窺九嶷(규구억),

다시 구억산에 올라 순임금의 행적을 살펴보았으며




▶구억산(九嶷山)/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순임금이 순수를 나왔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 영원현은 광동성과 인접해 있는 호남성 남쪽에 있는 산으로 상수(湘水)의 발원지이다.




228.浮于沅, 湘( 부우완,상);

그곳을 흐르던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두 강에서 배를 타고 다녔다.




▶원수(沅水)/귀주성과 호남성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동서로 가로질러 동정호로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다.

▶상수(湘水)/광서성, 광동성, 호남성과의 접경지대의 구억산(九嶷山)에서 발원하여 호남성을 남북으로 흐르다가 상담시(湘潭市)와 호남성의 성도(省都)인 장사(長沙)를 지나 동정호(洞庭湖)로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다. 장사시에서 50여 키로 남쪽에 있는 상담시(湘潭市)는 모택동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또한 순임금이 구억산으로 순수 나왔다가 그곳에서 죽자 요임금이 딸이었던 순임금의 두 부인이 상심한 나머지 상수에 빠져 죽은 전설이 있다. 상군(湘君)은 상수에 빠져 죽은 순임금의 두 부인을 말한다.




229.北涉汶, 泗,( 북섭문,사)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문수(汶水)/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와 노나라 사이를 가로질러 두 나라의 국경선 역할을 했던 강 이름. 시경의 제풍(齊風)과 노풍(魯風)에 나오는 시가의 무대로 많이 나온다.

▶사수(泗水)/태산(泰山)에서 발원하여 노나라의 도성이었던 곡부를 거쳐 회수와 합쳐지는 회수의 지류.




230.講業齊, 魯之都(강업제, 노지도),

제(齊)와 노(魯) 두 나라의 도성에서 학문을 논했으며




231.觀孔子之遺風(관공자지유풍),

공자가 남긴 유풍을 살펴보고,




232.鄕射鄒,嶧 (향사추,역);

추(鄒)와 역(嶧) 땅의 향사(鄕射)를 참관했다.




▶추(鄒)/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에 있었던 고을 이름으로 맹자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역(嶧)/추현 동남쪽에 있었던 산 이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자 이 산에 올라 자기의 공적비를 세웠다.




233.厄困鄱, 薛, 彭城, (액곤파, 설, 팽성)

파(鄱)와, 설(薛), 팽성(彭城)에서 곤경에 처했다가




▶파(鄱)/지금의 산동성 등현(滕縣)을 말하고

▶설(薛)은 등현 경내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때 중소제후국이었다가 제나라에 편입되었다. 후에 맹상군(孟嘗君)의 아버지인 전영(田嬰)이 이곳에 봉해져 설공(薛公)이라 했고 다시 맹상군이 그 작위를 물려받았다.

▶팽성(彭城)/지금의 강소성 서주시(徐州市)를 말한다. 진시황이 죽고 한초(漢楚)가 천하를 놓고 다툴 때 초의 항우(項羽)가 도성으로 삼은 곳이다.




234.過梁, 楚以歸(과량, 초이귀).

양(梁)과 초(楚)를 지나 도성으로 들어갔다.




▶양(梁)/전국시대 때 위(魏)나라의 처음 수도는 지금의 산서성 남쪽의 하현(夏縣)에 있었던 안읍(安邑)이었으나 후에 진나라의 세력에 밀려 그 도읍을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開封市)로 옮기고 그 이름을 대량(大梁)이라 불렀다. 이어서 위나라는 나라이름을 양(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맹자의 양혜왕(梁惠王)이란 위혜왕을 가리킨다.




▶초(楚)/춘추전국시대 때 호북과 호남성 일대에 걸쳐 있었던 나라이름. 처음에는 지금의 호북성 형주시(荊州市)를 도읍으로 했으나 진나라의 세력에 밀려 지금의 하남성 진현(陳縣)으로 쫓겨 갔다. 다시 안휘성 거양(巨陽)을 거쳐 다시 지금의 수현(壽縣)인 수춘성(壽春城)으로 옮겼다가 그곳에서 진나라에게 멸망당했다.




그림5 기원전 110년 경 사마천의 중국 주유도


235.于是遷仕爲郎中(우시천사위낭중),

그리고 천(遷)은 조정에 나가 낭중이 되어




▶낭중(郎中)/진한시대 때 황제의 시위(侍衛)를 담당했던 관직명. 진나라 때 시위의 직분을 셋으로 나누었다. 황제의 여인들이 묶고 있는 곳을 드나들며 시위하도록 했던 직위를 중랑(中朗), 궁중에 거하며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낭중(郎中), 궁중 밖에서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외랑(外朗)이라 했다.




236.奉使西征巴,蜀以南(봉사서정파,촉이남),

황제의 명을 받들어 서쪽으로는 파(巴)와 촉(蜀) 이남 지방을 정벌한 다음,




▶ 파촉(巴蜀)/(巴)파는 지금의 중경시(重慶市)를 말하고 촉은 성도(成都)를 가리킨다.




237.南略邛, 笮, 昆明(남략공,착,곤명),

다시 남쪽으로는 공, 착, 곤명을 공략하고,




▶공(邛)/사천성 서창(西昌) 지구 일대에 살던 이민족 이름. 한무제(漢武帝) 때 이곳에 월수군(越 郡)을 두었다.

▶착(笮)/사천성 한원(漢源) 일대에 살던 이민족 이름. 한무제 때인 기원전 110년에 이곳에 심려군(沈黎郡)을 설치했다.

▶곤명(昆明)/지금의 운남성(雲南省) 대리주(大理州) 일대에 살았던 이민족 이름이다. 운남성의 주도(州都)인 곤명(昆明)은 이 민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38.還報命.

돌아와 복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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