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이인호 교수님 홈페이지에서 전재했습니다.>

저는 중국민족의 공통시조 황제(黃帝)로부터 제가 살았던 당시 한무제(漢武帝)에 이르는 근 3천년을 기록한 통사(通史) <사기>를 저술했습니다. 모두 130편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왕을 기록한 12본기(本紀), 제후를 기록한 30세가(世家), 뛰어난 인물을 기록한 70열전(列傳), 그리고 각종 제도를기록한 8서(書), 연대기에 해당하는 10표(表)가 그것입니다.

<사기> 이전의 역사기록은 단편적인 사실(史實)을 기록하거나 간략한 연대기적 서술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수많은 문헌과 기행(紀行)을 통해 저의 독특한 역사관을 투영시킨 인물중심의 새로운 역사기술 형태-기전체(紀傳體)를 창조했습니다. 이것은 후세의 정통으로 굳어져 대대로 계승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마도.. 외람되나마... 이웃 나라 역사책도 제 스타일을 참조할 것입니다.

사실.. 제가 지은 <사기>의 가치는 방대한 역사기록이나 최초의 정사(正史)에만 그치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거의 공백상태가 되어버린 중국 고대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계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선진(先秦) 학술의 윤곽을 밝히는데도 필수 도서로 취급해 할 것입니다.

한편 객관적인 서술이 생명인 역사서에서 진실을 왜곡하지않으면서도 진한 감정을 투영시킨 문학적 서술은 외람되나마 동양 삼국의 허다한 독자들을 감동시킬 것이며, 그 감동은 서양사람들에게도 전파될 것입니다.

또한 저는 절대적 권력 앞에서 양심을 굽히지 않은 죄로 궁형(宮刑)에 처해졌던 비극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비극을 <사기>의 저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런 불굴의 정신은 앞으로 종종 전개될 암울한 시대의 많은 인물들에게 나름대로 정신적 지주가 될 것입니다. 현실의 부정부패를 과감히 비판하고 정의와 의리를 찬송하는 내용은 저 이후의 역사책에서는 사실 찾아보기가 쫌 힘들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저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반추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과제인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조금 깊이 있게 생각했었습니다. <백이열전>이라고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제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의미, 처세의 태도, 인간관계 등에 대해서 도 쫌 사색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책이란 것이 대개 문학 역사 사상이 두루두루 섞인 것이긴 해도, 저처럼 단 1질의 역사기록 <사기>로의 문학 사학 사상을 포괄하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게다가 강자의 부당한 핍박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그와 동시에 약자에 대한 인류애적 동정심을 진하게 표현했다는 점은 경이롭지 않습니까. 제 <사기>가 한무제를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방서'란 소리도 물론 나오겠지만 그러나 후세로 갈수록 인류 전체의 고전(古典)으로 평가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