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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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18:07:203693 
사기강독2-사기의 체제
양승국
일반

 

사기는 처음에는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는데 끝부분에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130권의 주제를 간단히 기술하고 제목을 달았다. 전체의 체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천하의 방실(放失)된 구문(舊聞)을 망라하였고, 왕적소흥(王迹所興)의 원시(原始)를 따지고 종말을 살폈으며 성쇠를 고찰하였다. 행적을 논고하고 삼대를 대략 추정하고 진과 한을 기록하였다. 위로는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2본기를 저술하였다.


본기의 조목을 정리하였지만 동시대 또는 다른 시대에 따라 연차가 불명함으로 10표를 지었다.


예악의 손익과 율력이 바뀌게 된 것, 병권 및 산천, 귀신 및 천(天)과 인(人)의 관계가 시폐(時敝)에 따라 통변하는 것( 경제, 제도 같은 것)을 8서로 작성하였다.


29성좌(星座)가 북신(北辰)을 따라 순환하고, 수레바퀴살 30개가 바퀴 중심(一轂)을 공유하며 운행하듯, 황제를 보필하는 고굉지신(股肱之臣)이 있어 충과 신으로 행동하고 황제를 받드니 30세가를 엮었다.


의를 부지하고 재능이 탁이하며 주어진 기회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에 대하여 70열전을 지으니, 모두 130권 52만 6천자로 태사공서가 되었다.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의 다섯 체제를 다시 상론하면 다음과 같다.


본기(本紀)의 본은 근본 또는 근본에 연계한다는 뜻이다. 기(紀)란 다스린다는 뜻의 이(理)를 말한다. 즉 중사(衆事)를 통리(統理)하여 근본에 연월(年月)로 연계하니 제왕의 사업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까지의 오제본기를 제일로 해서 하(夏), 은(殷), 주(周), 진(秦), 진시황(秦始皇), 항우(項羽), 고조(高祖), 여태후(呂太后), 효문제(孝文帝), 효경제(孝景帝), 금상본기(今上本紀)까지 총 12권이고 연대로는 약 2400년간이다.


오제본기(五帝本紀)가 서경의 요에 관한 기록보다 훨씬 상대인 황제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사마천 자신도 많은 논란을 예상한 듯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진본기에서는 진의 흥기 과정을 살폈고, 진시황본기에서는 통일제국의 통치자 시황제의 치적을 적고 있다. 항우본기는 항우가 천명을 받은 황제는 아니었으나, 진한교체기의 실질적인 지배자였기에 본기에 넣은 것 같다. 상대적으로 초의제(楚義帝)는 괴뢰군주였으니 뺐을 것이고, 한고조 사후 실권을 휘두른 여태후의 본기가 있고 혜제본기가 없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의도는 자못 명백하다. 말하자면 현실주의적 입장이 그만큼 강하였다.


반고의 한서(漢書)는 명분과 형식을 중시하기에 혜제본기가 따로 있는 것과 대조가 된다.


표는 연대표이다. 사마천의 대가다운 면모와 과학적 사고, 정통을 중시하는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삼대연표(三代年表),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 육국연표(六國年表),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 한흥이래제후왕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고조공신연표(高祖功臣年表), 혜경간제후연표(惠景間諸侯年表),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등 10표가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 특히 진초지제월표 같은 표는 격동기의 급변하는 상황을 월별로 일목요원하게 정리한 아주 뛰어난 저술이다. 본래 연대기란, 경전처럼 사인(私人)이 입수,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왕실에 소장되어 왔었다. 진나라는 천하통일 후 진기(秦記) 이외는 모두 파기했었다. 따라서 사마천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노나라의 연대기인 춘추와 진기, 그 외 다른 책 속에 흩어져 있는 약간의 자료뿐이었다. 이런 빈약한 자료를 가지고 주왕실 중심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표의 앞부분에는 대개 짤막한 서(序)가 붙어 있는데, 이런 소론 형식을 빌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흥미로우면서도 독창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10표는 광대한 중국의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종횡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본기와 열전에 빠진 것을 보완해 주는 의미도 있어 사기 중에서도 중요한 창작으로 꼽히고 있다.


서(書)란 본래 오경육적(五經六籍)의 총명이며, 제도나 현실 문제를 논의하는 문체의 일종이다. 사기에는 8서(書)가 있어 국가대체를 서술하였다. 즉, 한 분야에 대하여 상고로부터 당시까지의 유래와 변천을 적었고, 실제적인 운용을 기록한 분류사적인 서술을 전개하고 있다.


8서(書)는 예서(禮書), 악서(樂書), 율서(律書), 천관서(天官書), 봉선서(封禪書), 하거서(河渠書), 평준서(平準書) 등인데, 모두 당시의 현실이나 정치와 깊은 관계가 있는 분야들이다. 예악은 본래 지배계층이 교화의 수단으로 고대부터 강조한 것들이며, 법률의 집행, 역법의 시행을 비롯하여 봉선의식의 거행 또한 국가의 주요 행사였다. 황하의 치수사업은 역대 제왕들과 백성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이 8서의 각 분야에 대해 사마천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봉선서는 무제가 행한 희생제(犧牲祭)와 종교행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본래 사관의 전담분야였으며 직접 무제를 수행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거서(河渠書)의 치수사업도 사마천이 직접 체험한 생생한 기록이며, 역서 또한 사마천의 전공분야에 대한 서술이었다. 8서는 현실 고발과 문제의 파악, 해결 방법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사기의 어느 부분보다도 중요성을 띠고 있다.


평준서를 보면 당시의 재정과 민생의 측면에서 강한 현실비판의 정신을 담고 있다. 즉, 무제의 영웅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많은 외정과 빈번하게 일어나는 치수사업, 봉선과 순유(巡遊) 등이 국가 재정을 고갈시켜 해내(海內)가 숙연하기에 이르렀기에 평준법이라는 흥리(興利) 사업을 전개했고, 매관을 통한 상인의 등용과 백성의 불평 그리고 탄압, 이어서 경제적인 착취를 위하여 엄격한 법을 시행해야만 했었다. 평준서는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열전 부분의 혹리열전과 함께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폭로와 고발을 하고 있다. 8서가 후대 사서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사기에서 창안된 이런 서술 방법은 반고의 한서에 지(志)라는 명칭으로 계승된다. 이후 정사서의 대부분에 지(志)가 있는데 이는 사마천의 공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가(世家)란 말은 맹자에도 보인다. 등문공편(滕文公篇) 하(下)에 ‘ 중자제지세가야(仲子齊之世家也)’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세가란 세경지가(世卿之家), 즉 경의 지위에 있어 봉록에 대한 세습적 권리를 갖고 있는 가문이라는 뜻이다.

사기에는 제후들의 가문에 대한 내력과 변천, 전성과 몰락 등을 본기와 비슷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마천은 제후들의 흥기와 멸망이라는 순환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세가에는 오세가(吳世家)부터, 제(齊), 연(燕), 진(晉), 조(趙), 초(楚), 위(魏) 같은 춘추전국시대의 강국은 물론, 노(魯), 송(宋), 진(陳), 정(鄭) 같은 소국 및 외척세가(外戚世家)도 있고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같은 한대 공신들의 세가도 망라되어 있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공자세가(孔子世家)와 진섭세가(陳涉世家)이다. 공자와 진섭은 결코 제후의 위에 오른 적이 없다. 공자가 비록 노나라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기는 했지만 제후는 아니다. 또 진섭은 진나라에 반기를 든 이후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고 스스로 진왕(陳王)이라 자처했지만 다른 제후처럼 몇 대를 존속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공자는 그 후손들이 한나라 당대까지 이어져 왔고, 제왕 및 황제의 존숭을 받는 다는 점과, 당시에 공자를 무관의 제왕이란 뜻의 소왕(素王)이라 불렀다는 관점에서 공자를 세가에 포함시킨 것이다. 진섭세가의 끝부분에 “ 비록 진승은 죽었지만 그가 봉한 후왕(侯王)과 장상들이 진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진섭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조 때에 탕(碭)에 있는 진섭의 무덤을 지키는 호구가 30호였고 지금까지 혈식(血食)을 받고 있다.”며 진섭이 진나라의 학정에 최초로 항거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그 말미에 한대 명문장인 고의(賈宜)의 과진론(過秦論)을 수록하고 있으니 진섭세가를 통해 진나라 멸망의 교훈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사마천의 명백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열전의 사전적 의미는 ‘敍列人臣事跡傳於後世(서열인신사적전어후세 : 인신의 사적을 서술 열거하여 후세에 전한다.)이다.


열전은 사기에서 분량이 많기도 허거니와 사기의 명성을 만고에 빛나게 한 역작이며, 후세의 전기문학 및 소설, 회곡에까지 영향을 끼친 사마천 정열의 결정체이다. 열전에서는 천자와 제후들을 둘러싸고 함께 역사의 흐름에 참여한 인간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박진감 있는 문장으로 활기차고 생생하게 그려내어 마치 눈앞에 그 영상을 보는 듯하다.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 층은 아주 다양하다. 시간적으로는 약 3천 년에 걸쳐 존재했던 인물들의 활동사진이다.

백이열전을 제일로 해서 귀족, 관료, 장군, 문장가, 경학가(經學家), 세객, 자객, 유협, 은자, 토호, 화식열전에 나오는 상인, 의원, 점술가, 활계를 잘한 배우, 도척, 군왕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에 관한 영행열전(佞幸列傳)도 있다. 또, 흉노, 남월, 조선, 서남이, 대완열전 등 당시 중국인들의 의식이 미치는 한도까지 전세계의 역사를 서술코자 했다. 열전이 이만한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주의 봉건제도 붕궤 이후 실력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의 시대가 되자, 개인의 일예일기(一藝一技)가 중시되었다는 점과 그 재능에 따라 천하에 공명을 떨치는 개인의 활동이 역사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뜻한다.


사기 이전의 사서인 춘추(春秋), 전국책(戰國策), 국어(國語) 등에도 개인의 활동이 서술되고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내용일 뿐이다. 그러나 사기에서는 개개인의 인간상을 세세히 묘사하여 사건의 주체로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어 사기는 단순히 사서의 단계가 아닌 인간 탐구의 서이며, 인간의 혼이 살아 숨쉬는 문학의 서, 철학의 서라고 할 수 있다. 열전을 인물의 개인 전기라고 하지만 그 생애와 업적을 다 기록하지는 않고, 그 인물의 개성이나 일화 등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관안열전(管晏列傳) 중 안영(晏嬰)의 공적인 경력과 업적, 교시 같은 것은 그의 개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두어 개의 일화에 의해 감추어져 버린다.


열전 끝에는 ‘太史公曰’로 시작되는 인물평 및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위에 말한 관안열전 중,


“ 안영이 최저(崔杼)한테 시해 당한 제장공(齊庄公)의 시신 앞에 나아가 통곡을 하고 예를 표한 것은 이른바 ‘ 의를 보고 행하지 않음은 곧 무용(無勇)’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주군의 면전에서 직간하는 경우의 안영은 ‘進思盡忠, 退思補過 즉 조정에 나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조정에서 물러나서는 자기의 과오를 고친는 사람이다. 만약 그런 안영이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수레를 끄는 마부가 되겠다.”


이렇게 두어 개의 일화와 의견 제시로 안영의 모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마천의 천재성에 기인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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