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테마연의
테마연의
고사성어
열국영웅전
· 오늘 :  272 
· 어제 :  364 
· 최대 :  2,389 
· 전체 :  1,683,222 
 
  2004-05-11 22:04:333991 
서문표 외전
양승국
일반

서문표(西門豹) 외전


서문표가 업도(都)의 태수(太守)가 되어 다스리다가 일년만에 위문후(魏文侯)에게 시정을 보고하기 위해 안읍(安邑)에 들렸다. 위문후가 서문표를 보자 그가 정치를 잘못한 것을 꾸짖으며 태수의 직위에서 파면하려고 했다. 서문표가 사죄를 하며 일년 동안의 말미만 주면 그 동안의 실정을 만회해 보겠다고 청했다. 위문후가 허락하자 서문표는 임지로 돌아와 그때부터 백성들에게서 중세를 부과하고 재물을 긁어모아 위문후의 주변에 있던 총신들과 측근들에게 뇌물로 바쳤다. 이어서 약속한 일 년이 되자 서문표가 다시 안읍에 들려 위문후를 배알했다. 위문후가 그 동안 어떻게 했기에 업도가 잘 다스려졌냐고 서문표에게 물었다. 서문표가 대답하기를 처음 부임해서는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적게 걷으며 선정을 베푸는 데만 진력하여 위문후의 측근들과 총신(寵臣)들에게 아무 것도 바치지 않았다. 그래서 위문후의 주변 사람들이 그 자신을 헐뜯게 되어 군주의 책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일 년 간의 말미를 얻어 임지로 돌아간 다음에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걷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긁어모아 위문후의 측근들과 총신들에게 뇌물로 가져다 바치자 자기에 대한 평판이 높아지고, 자기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져 군주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위문후가 서문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며 서문표에게 계속해서 업도를 맡아 선정을 베풀어 달라고 청했으나 서문표는 업도의 태수자리에서 물러나 다시는 위(魏)나라의 벼슬을 받지 않았다.


출전 : 한비자

목록
7014
[일반] 대기만성 백리해-들어가는 이야기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원 주인공은 강태공(姜太公)입니다. 그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참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2 - 당진이 펼친 가도멸괵 작전에 의해 망하는 우(虞)나라

2. 당진의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에 떨어진 우공(虞公) 우(虞)나라와 괵(虢)나라는 주왕실과 같은 희(姬) 성의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백리해6.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진목공은 백리해가 재주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상경(上卿)
양승국 04-05-11
[일반] 백리해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간 건숙과 백리해

백리해 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은퇴하는 건숙과 백리해 섬진의 목공이 정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세 장수의 비밀스런 보고를
양승국 04-05-11
[일반] 관중의 경제정책

기원전 7세기 경 관중의 경제정책 <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이 제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
양승국 04-05-11
[일반] 결초보은(結草報恩)

결초보은 진경공(晉景公)은 순림보(荀林父)가 로국(潞國)1)을 토벌(討伐)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스스로 대군을 끌고 직산(稷山)2
양승국 04-05-11
[일반] 굴원이야기

굴원(屈原) 이야기 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새로운 왕에 소양왕(昭陽王 : 재위 기원전 295-251년))이 올랐다. 그는 얼마 전에 초나라가 제
양승국 04-05-11
[일반]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의 조씨고아 이야기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報恩) 이야기 옛날 기원전 550년 대인 춘추시대 중반의 일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니 공자보다
양승국 04-05-11
[일반] 합려의 며느리

합려의 며느리 때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려 하던 기원전 500년 경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신흥 세력인 오나라가
양승국 04-05-11
[일반] 합려의 딸

합려의 딸 합려(闔閭)라는 사람은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에 나오는 주연 배우 중 한 사람입니다. 오나라는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과 삼흉(三兇)

춘추오패 중 제일로 치는 제환공(齊桓公 : 재위 기원전 685- 643년)에게는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라는 신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수조(竪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 사후 그 아들들의 후계자 싸움

나이순 이 름 시호 군위에 오른 순서 비고 1 无虧 무휴 없음 1 환공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 공
양승국 04-05-11
[일반] 당진의 군제 변천표

당진(唐晉)의 군제(軍制) 변천표 1. 문공 4년 기원전 633년 성복대전(城挓大戰) 직전의 편제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
양승국 04-05-11
[일반] 제환공의 형제 자매들

제환공의 아버지인 제희공의 아들 딸 계보만 잘 이해하면 열국연의의 1/4정도는 통달하게 됩니다. 제희공의 아들 딸들이 시집가고 장가가서 벌리는 행
양승국 04-05-11
[일반] 한비자의 최후

한비자의 최후 진시황이 이사의 계책에 따라 내사등(內史騰)을 장수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주어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때 한나
양승국 04-05-11
[일반] 무당을 하백에게 심부름 보낸 서문표 이야기

그때 업도(鄴都)1)에 수장(守將)이 비어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황이 말했다. " 업도는 상당(上党)2).과 한단(邯鄲) 사이에
양승국 04-05-11
[일반] 서문표 외전

서문표(西門豹) 외전 서문표가 업도(鄴都)의 태수(太守)가 되어 다스리다가 일년만에 위문후(魏文侯)에게 시정을 보고하기 위해 안
양승국 04-05-11
[일반] 서문표, 그리고 60년 후의 제위왕은....

<사마천의 사기-진경중(전제) 세가 중 위왕 기사) 제위왕(齊威王:재위 기원전 357- 319년)이 처음에 즉위하자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모
양승국 04-05-11
[일반]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상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개자추(介子推) 다시 중이(重耳)의 일행이 길을 걸어 십여 리를 갔으나 더 이상 배가 고파 길을 걸을 수 없어
양승국 04-05-11
[일반] 거시기 열전

일찍이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진소양왕의 증손자 이인(異人)을 기화가거(奇貨可居)라고 알아보고 전 재산을 투자하여 진왕의 자리에
양승국 04-05-11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