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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해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간 건숙과 백리해
양승국
일반

백리해 9. 90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은퇴하는 건숙과 백리해



섬진의 목공이 정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세 장수의 비밀스런 보고를 받고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를 불러 상의하였다. 두 사람의 노신이 이구동성으로 간하여 말렸다.


" 섬진과 정나라는 천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싸움에서 이겨 정나라 사람을 포로로 잡아올 수는 있으나 그 땅은 구한다고 하여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무릇 병사들을 이끌고 천리 길을 행군한다는 것은 그 소요되는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닐진 데 어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가며 그 먼 거리를 행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정나라가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미리 대비를 하게 될 것이며 그리되면 우리의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며 행군도중 필시 뜻밖의 봉변을 당할 것입니다. 무릇 그 나라를 지키게 한다고 군사를 남겨 놓고는 다시 그 군사를 이용하여 그 나라를 도모하는 것은 신(信)이 아닌 것이며, 또한 상(喪)을 당한 틈을 이용하여 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인(仁)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설사 우리의 계획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 이익은 적으니 그것은 지(智)가 아닌 것입니다. 이 신(信)과 인(仁)과 지(智) 세 가지를 모두 잃으시려고 하시니 신등은 도무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목공이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 과인이 당진의 군주를 세 번 세웠으며 당진의 난리를 두 번 평정하여 그 이름이 중원 천지에 드높게 되었소. 단지 당진의 군주가 성복(城濮)에서 초나라의 군사를 파하는 바람에 패자(覇者)의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게 된 것이요. 이제 당진의 군주가 세상을 뜬 이 마당에 천하에 누가 우리 섬진과 다툰다고 하겠소? 정나라는 마치 외로운 새가 되어 사람을 향하여 달려드는 형국과 같아 누구에겐 가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정나라를 멸한 다음 그 땅과 당진의 하동(河東) 땅을 바꾸자고 한다면 당진도 필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데 어찌 유리한 점이 없다 하는 것이오?"


건숙이 다시 간했다.


" 주군께서 그렇다면 당진에 조문 사절을 보내시고 그것을 기화로 정나라에도 조문 사신을 보내어 과연 정나라를 공격해도 되는지 살펴보게 하십시오. 기자(杞子)와 같은 무리들의 허언을 현혹되어 일을 그르치면 안될 것입니다."


목공 " 만약 조문사절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군사를 출동시키게 되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일년이 족히 걸릴 것이요. 무릇 군사를 움직일 때는 벼락치듯이 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귀를 막을 틈도 주지 말아야 하거늘 그대들 늙은이들은 어찌 그것을 모른단 말이오!"


목공은 즉시 기자가 보내온 사람에게 이월 상순에 군사를 정성(鄭城)의 북문에 당도시키겠으니 안에서 호응하여 절대로 착오가 없도록 당부하였다.


밀사가 떠나자 맹명시(孟明視)를 대장으로 서걸술(西乞術)과 백을병(白乙丙)은 부장(副將)으로 명하여 섬진의 많은 군사들 중 선발한 정예병 삼천 명과 병거 삼백 승을 동원하여 옹성(雍城)의 동문밖에 대기하도록 하였다. 맹명시(孟明視)는 곧 백리해(百里奚)의 아들이고 백을병(白乙丙)은 건숙(蹇叔)의 아들이다. 드디어 출병의 날이 되자 건숙과 백리해가 곡을 하며 군사들을 전송하면서 말했다.


" 참으로 슬프도다! 내가 이제 너희들의 출병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겠구나!"


목공이 두 노인이 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노하여 불러서 물었다.


" 그대들은 군사들이 출동하는데 어찌하여 곡을 하여 군심을 어지럽히는 것입니까?"


건숙과 백리해가 한 목소리로 답했다.


" 신들이 어찌하여 우리 군사들을 향하여 곡을 하겠습니까? 신들이 곡한 것은 저희들 자식놈들을 위하여 곡을 한 것입니다."


백을병은 부친이 슬프게 곡을 하는 것을 보고 출전을 하지 않겠다고 건숙에게 말하자 건숙이 말했다.


" 우리 부자가 섬진으로부터 록을 후하게 받아 살아왔는데 네가 출전하여 죽는다면 스스로 직분을 다하여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


건숙이 즉시 아무도 몰래 겉을 봉지에 싼 목간을 하나 건네주었는데 그 봉함이 심히 견고하였다. 건숙이 다시 당부의 말을 하였다.


"네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내가 준 목간에 써 있는 대로 행하기 바란다."


백을병이 부친의 명을 받고 출전을 하였으나 그 마음은 매우 황당하고 처량하였다. 단지 맹명시만은 자기의 재주와 용기를 믿은 나머지 자신만만하여 기필코 공을 이루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마음을 태연하게 쓰며 개의치 않았다.


섬진의 대군이 이미 행군을 시작하여 도성을 떠나자 건숙은 병을 칭하고 조당에 나오지 않더니 곧이어 정사의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청해왔다. 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건숙이 다시 병이 매우 깊다고 하면서 자기의 고향인 명록촌(鳴綠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백리해가 문병하기 위해 건숙의 집을 찾아와 말했다.


" 이 해(亥)는 어느 길이 옳은 것인지 모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구차스럽지만 머물고자 하는 것은 아직 내 자식이 생환하는 것이나마 보고 싶어서 입니다. 형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 한마디 가르침이 없으십니까?"


건숙 " 이번의 출전에서 우리 섬진의 군사를 틀림없이 패할 것이요. 동생은 이 일을 자상(子桑)에게 몰래 고하여 하하(河下)라는 곳에 배들을 모아놓고 기다리라고 하고 만일 우리 군사들이 몸을 빼내어 도망쳐 온다면 배에 싣고 재빨리 섬진으로 귀환시키라고 하시오! 절대로 잊지 마시오."


백리해 " 형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목공은 건숙이 초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을 알고 황금 20근과 채색비단 백 필(匹)을 하사했다. 군신들이 모두 교외에 있는 관문까지 나와서 전송하고는 돌아왔다. 백리해가 공손지(公孫枝)의 손을 붙잡으며 건숙이 한 말을 전했다.


" 건숙형이 이일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말고 자상(子桑)에게 부탁하라고 당부하셨소. 이는 장군께서 충성과 용기를 갖춘 분이시라 능히 나라의 우환을 같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절대 이일을 다른 사람에게는 발설하시지 마시고 아무도 몰래 이 일을 준비하셔야 될 것입니다."


공손지 "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공손지는 백리해의 부탁을 받고 스스로 하수 변의 하하(河下)로 나가 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 맹명시(孟明視)는 백을병(白乙丙)이 건숙에게서 밀봉된 목간을 받은 것을 알고 그것이 정나라를 파할 수 있는 기계(奇計)가 적혀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날 밤 영채를 세우기가 끝나자 맹명시가 백을병을 찾아와 그 밀간(密簡)을 뜯어보기를 청했다. 백을병이 겉봉을 뜯고 나서 목간을 읽어봤다. 목간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 이번의 출정에서 염려할 나라는 정나라가 아니라 바로 당진(唐晉)일 것이다. 행군하여 통과를 해야할 효산(殽山)은 지세가 험하니 그대들은 마땅히 조심해야 될 것이다. 내가 마땅히 너희들의 해골을 그곳에서 찾아야 될 것 같구나!'


맹명(盟明)이 눈을 감고 소리쳤다.


"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참으로 불길한 말이로다. 불길한 말이로다!"


이윽고 섬진의 목공은 맹명시 등 세 명의 장수들이 정나라 정벌에 실패하고 귀환 도중 효산에서 당진군의 매복에 걸려 군사를 잃고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속으로 괴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하여 침식을 모두 폐하고 자리에 들어 누워 버렸다. 몇 일을 자리에 누워 있던 중 다시 세 장수가 당진에서 석방되어 귀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띄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좌우에 있던 군신들이 목공에게 간했다.


" 맹명시 등 세 장수가 군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나라를 욕보여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옛날에 초나라는 성복의 싸움에서 패한 성득신을 죽여 삼군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주군께서도 마땅히 군법을 엄히 시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목공 " 건숙(蹇叔)과 백리해(百里奚)가 간한 것을 듣지 않고 고집을 세워 군사를 출병시킨 결과 그 화가 세 장수에게 미쳤다. 그 죄는 나에게 있는 것이지 그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다고 하겠는가?"


목공은 즉시 소복을 차려 입고 성문 밖의 교외에까지 마중을 나가 죽은 군사들에 대한 조상을 하면서 곡을 했다. 목공이 세 장수를 다시 임용하여 병사의 일을 맡기고는 더욱 예를 갖추어 대했다. 맹명시의 문안을 받은 백리해가 한탄의 말을 하였다.


" 우리 부자가 다시 만났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즉시 목공에게 고하여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목공이 허락하고 즉시 요여(繇余)와 공손지(公孫枝)를 각각 건숙과 백리해가 맡고 있었던 좌우(左右) 서장(庶長)에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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