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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0:425151 
합려의 며느리
양승국
일반

합려의 며느리


때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려 하던 기원전 500년 경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신흥 세력인 오나라가 오자서와 손무의 활약으로 춘추시대를 통틀어 줄곧 강국으로 군림해 왔던 초나라를 초토화시키고 중국의 패자로 군림하던 시기였습니다.


합려의 오나라는 중원의 여러 나라에 비해 군사적으로는 강할지 모르나 문화적으로는 매우 뒤떨어져 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막강한 군사력에 비해 하는 행동은 골목대장 노릇밖에 못하는 미국과 비슷한 성격의 나라였을 것입니다.


어느 집안이던지 돈과 권력은 있는데 전통과 문화가 짧으면 가난하지만 유서가 깊은 집안과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합려는 자기의 며느리를 중원의 일류국가인 제나라에서 데려오려고 합니다.


당시 제나라의 군주는 제경공(齊景公)입니다. 제경공은 기원전 547년에 재위하여 58년간을 군주의 자리에 있다가 기원전 490년에 죽은 사람입니다. 재위 시 안영과 사마양저의 도움으로 제환공 이후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차례로 죽고 본인도 나이가 너무 들어 제나라의 국력이 급격하게 약해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합려가 군사력으로 위협을 하며 제경공에게 그의 딸 중 하나를 오나라로 시집보내라는 요청을 합니다. 제경공은 합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당시 6-7 살 먹은 자기의 어린 딸을 몇 천리 떨어진 오나라로 시집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먼 이국으로 시집와서 고향을 그리워하다 병이 들어 죽은 이야기가 매우 애처롭습니다.


합려는 이 일이 있고서 몇 년 후에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공격했다가 오히려 싸움 중에 월왕 구천이 쏜 활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 몇 달 후에 죽습니다. 그 해가 기원전 496년입니다.


그리고 태자파(太子波)의 아들이며 합려의 손자인 부차가 그의 뒤를 이어 오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는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句踐)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제나라가 초나라와 수호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오왕 합려(闔閭)는 먼저 제(齊)나라를 정벌하고 후에 월(越)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오나라의 상국(相國) 자서(子胥)가 합려(闔閭)에게 말했다.


“ 이웃 나라끼리 수호를 하는 것은 늘 상 있는 일입니다. 제나라가 아직은 초(楚)나라를 도와 우리 오나라에 해로움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갑자기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정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태자파(太子波) 님의 원비(元妃)께서 돌아가셨음에도 아직 그 계실(繼室)을 맞이하지 못 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어 태자의 혼사를 구하시어 제나라와 수호(修好)를 맺으려고 하시지 않으십니까? 제나라가 우리의 청혼을 거절하면 그때 가서 정벌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합려가 자서의 말을 쫓아 대부 왕손락(王孫駱)을 사자로 제나라에 보내 태자 파의 혼사를 청하도록 했다.

그때 제나라의 경공(景公)은 이미 나이가 70이 넘었다. 그래서 기력이 쇠잔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여 스스로 일을 주제 할 수가 없었다. 제나라의 궁중에는 시집을 가지 않은 여자아이는 단지 어린 여아 한 명밖에 없었다. 어린 여아를 오(吳)나라로 시집 보낼 수는 없었으나 그 때는 제나라에는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현명한 신하도 없었고 그렇다고 오나라의 공격을 막아낼 만한 장수도 또한 없었다. 그래서 오나라의 청을 거절하게 되면 오나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키게 하여 침략을 받아 옛날 초(楚)나라가 당한 것처럼 전화(戰禍)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이에 초나라와 수호(修好)를 맺은 것을 후회하였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대부 여미(黎弥)도 역시 제경공(齊景公)에게 오나라의 청혼을 거절하여 오나라의 분노를 사면 안 된다고 의견을 말하였다. 경공이 할 수 없이 그의 나이 어린 딸 소강(小姜)을 오나라에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왕손락(王孫駱)이 오나라로 돌아가 합려(闔閭)에게 제나라가 오나라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복명하였다. 합려가 다시 왕손락을 제나라에 예물로 폐백(幣帛)을 바치게 하고 소강(小姜)을 맞이해 오도록 했다. 경공이 나이 어린 딸을 매우 사랑했지만 오나라도 역시 매우 두려워하여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며 말했다.


“ 만약 평중(平仲)*이나 양저(穰苴)*가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어찌 한갓 오나라 따위로 걱정을 하겠는가?”


경공이 대부 포목(鮑牧)을 향해 말했다.


“ 번거롭겠지만 과인을 위해 나의 어린 딸을 오나라에 데려다 주고 오기 바라오! 소강은 나의 사랑하는 어린 딸이니 오왕에게 잘 보살펴 주도록 부탁하기 바라오!”


포목과 왕손락이 제나라의 어린 소강(小姜)을 모시고 길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경공이 친히 소강을 품에 안아서 수레에 태우고 남문 밖까지 따라가 전송을 한 후에 돌아갔다. 포목이 소강을 모시고 오나라에 당도하였다. 포목이 오왕에게 제후(齊侯)가 당부하는 말을 전했다. 포목은 또한 오자서(伍子胥)가 어진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와 교분을 맺고 서로 두터운 우정으로 사귀게 되었다.

한편 소강은 나이가 매우 어렸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오(吳)나라 태자파와 혼인을 한 후에도 그녀는 마음속으로 오직 부모 생각만을 하며 매일 밤낮으로 흐느껴 울었다. 태자파가 계속 달랬지만 소강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은 소강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게 되었다. 합려가 듣고 불쌍하게 여겼다. 즉시 북문의 성루를 개조하게 하여 극히 화려하게 꾸민 다음 그 이름도 제나라를 볼 수 있다는 뜻의 망제문(望齊門)이라 고치고 소강(小姜)에게 명하여 그 위에 올라 놀도록 했다. 소강이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북쪽을 쳐다보았으나 제나라가 보이지 않자 마음속의 슬픈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그녀의 병은 더욱 심해졌다. 그녀가 죽음에 임하여 태자 파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 첩은 우산(虞山)*의 꼭대기에 오르면 저희 제나라가 있는 동해가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그곳에 묻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혼백이 있다한다면 이승에서나마 한번 제나라를 볼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태자 파가 그 부왕인 합려에게 말하여 소강을 우산의 꼭대기에 상자 지냈다. 지금도 강소성(江蘇省) 상숙현(常熟縣) 북쪽의 우산 꼭대기에는 제나라 소강의 무덤이 있다. 또한 그 옆에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바로 소강이 죽어서나마 제나라를 쳐다 볼 수 있게 세운 것이다. 후대에 장홍(張洪)이라는 시인이 <제녀분(齊女墳)>이란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南風初勁北風微(남풍초경북풍미)

남풍은 사납게 불고 북풍은 잔잔한데


爭長諸姬復娶齊(쟁장제희복취제)

장강의 야심 많은 오나라가 제나라에 청혼을 했다.


越境定須千兩送(월경정수천양송)

국경을 넘을 때 황금 천냥을 주어 보냈지만


半途應拭萬行啼(반도응식만생제)

도중에 흘린 눈물은 만 번도 더 되었으리!


望鄕不憚登臺遠(망향불선등대원)

고향을 보고 싶은 마음에

멀리 있는 고대(高臺)에도 마다 않고 올랐고


埋恨惟嫌起冢低(매한유혐기총저)

한을 묻은 무덤이 낮은 곳에 있어

일어나면 고향 땅이 보이지 않을까 싫다 하였다.


蔓草垂垂猶泣露(만초수수유읍로)

저 늘어진 무성한 잡초에 맺힌 이슬은

제녀가 울어 흘린 눈물이러니


倩誰滴向故鄕泥(천수적향고향니)

누가 저 제녀가 흘린 눈물로 고향땅을 적셔줄꼬?


태자 파(波)가 제녀를 그리워 하다가 그 역시 병이 들어 곧이어 그녀의 뒤를 따라 죽었다.


주(註)

1) 평중(平仲)/ 안영(晏嬰)을 말함. 평중(平仲)은 그의 자임.

2) 양저(穰苴)/ 경공(景公) 때 제나라의 전략가인 사마양저(司馬穰苴)를 말함. 사마병법(司馬兵法)이라는 저술이 있음.

3) 우산(虞山)/ 현 강소성(江蘇省) 상숙현(常熟縣) 부근. 오도(吳都)였던 소주시(蘇州市) 북쪽 약 40키로, 장강 남쪽 약 10키로에 위치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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