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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20:56:433768 
제갈공명이 양보음(梁父吟)으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를 노래하다.
양승국
일반


촉한의 선주 유비는 관운장과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고 기의 한 후 20여 년 가까이 정착을 못하고 유력한 군벌들 사이를 전전했다. 그때 마침 양양성(襄陽城) 근교의 융중(隆中)에 제갈공명이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얻어 그가 제안한 천하삼분지계에 의해 일순간에 촉(蜀)나라를 세우고 위(魏)와 오(吳)와 함께 천하를 다투는 내용이 동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는 삼국연의의 주요한 내용이다. 유비는 비록 중국에 새로운 통일왕조를 세운 황제의 대열에 끼지는 못하고 조그만 지방정권의 황제로 생을 마쳤지만 중국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의 한 명이다. 제갈공명을 만나기 이전에도 유비에게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라는 든든한 장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만으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당시 벌떼처럼 일어나 할거하고 있던 군웅들의 대열에 끼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전략적으로 사고를 할 줄 아는, 그 동안 그가 데리고 다녔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관우와 장비 등과 함께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그런 인재를 계속해서 찾고 있던 유비에게 마침내 제갈공명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유비는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여 자기 조직의 2인자의 자리를 내주었을 때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관운장과 장비라는 존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비록 유비집단에게는 근거지로 삼을 만한 조그만 땅도 갖고 있지 못하여 그 세력은 아주 미미했지만,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 등은 20여 년 동안 숱한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세운 공로로 이미 천하의 맹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무명 서생에다가 나이도 아들 또래 밖에 먹지 않는 제갈공명이 2인자의 위치에서 명령을 내릴 때 두 사람은 결코 그 명령을 받들지 않을 것이라고 유비는 생각한 것이다. 유비가 26세의 제갈공명을 영입 할 때 그의 나이는 48세, 관운장 47세, 장비 45세 였었다. 그래서 유비가 생각해 낸 것이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퍼포먼스인 것이다. 삼고초려라는 퍼포먼스로 유비가 노린 것은 관운장과 장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은 것을 직접적인 말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 내가 이렇게 지극히 존경하는 훌륭한 분이니 너희 동생들도 나의 마음을 헤아려 비록 새로 영입된 사람이 나이가 어린 일개 서생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한편 유비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공명은 일부러 피하며 만나 주지 않고 시 한 수 지어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가 지어 후세에 남긴 유일한 양보음(梁父吟)이라는 제목의 시다. 여기서 아버지 부(父)는 사람이름이나 지명으로 사용할 때는 보라 읽는다. 즉 양보(梁父)는 양보산을 의미한다. 천명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전통으로 전해오는 봉선(封禪)이라는 의식을 지내게 되어있다. 황제가 봉선을 행할 때 하늘의 신에게는 태산(泰山)에서, 땅의 신에게는 낮은 구릉인 양보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나라 임치성 동문 밖으로 걸어 나서면

탕음리가 저만치 보이는데

그곳에는 무덤이 세 개가 있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의 무덤이냐고 묻자

전개강, 고야자, 공손첩, 삼걸(三傑)의 무덤이로다.

힘은 남산을 등에 업을 수 있었고

지략은 능히 지기(地紀)1)를 끊어 놓을 만 했는데

하루아침에 음모에 떨어져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의 장사가 죽음을 당했다.

누가 능히 세 장사를 이렇게 죽일 수 있었는가?

제나라의 상국 안자(晏子) 이었더라!

步出齊東門(보출제동문)

遙望湯陰里(요망탕음리)

里中有三墳(이중유삼분)

累累正相似(누누정상사)

問是誰家冢(문시수가총)

田開古冶子(전개고야자)

力能排南山(력능배남산)

文能絶地紀(문능절지기)

一朝中陰謀(일조중음모)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誰能爲此者(수능위차자)

相國齊晏子(상국제안자)

제갈공명이 위의 양보음을 통해서 유비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자기를 불러서 천하를 경영할 생각이 있다면 당신과 함께 20여 년간을 싸움터를 누비고 다니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당신 의형제에 대한 조치를 먼저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신호였던 것이다.

안자라는 사람은 제경공의 재상으로 공자보다 한 세대 전에 활약한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 관안열전(管晏列傳)에 사마천은 ‘안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의 말고삐를 잡아 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할 정도로 존경한 사람이다. 지금 시대로 말하면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안자의 승용차 운전기사가 되어 그를 모시고 다녀 봤으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다’라는 말이다. 안자는 경공을 보좌하여 춘추시대 때 패자가 되어 황제를 등에 업고 패권을 휘둘렀던 제환공의 영광을 제나라에 되살린 사람이다. 그는 당시 제나라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대장 감으로 일찍부터 사마양저(司馬穰苴)라는 사람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그때 제나라의 조정에서는 조그만 공적으로 경공의 총애를 받았고 있었던 안하무인의 고야자, 공손첩, 전개강이라는 세 장사가 있었다. 안자는 그 세 사람을 그대로 둔 채로 사마양저를 대장으로 발탁했다가는 사마양저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세 사람의 장사를 제거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를 방문한 노나라의 군주를 위해서 열린 연회장에서 안자는 두 나라 군주와 그 재상들이 남긴 천도복숭아 두 개로 평상시에 갖고 있던 세 사람 간의 경쟁심을 교묘하게 유발시켜 모두 자살로 몰았던 것이다. 이것이 제갈량이 양보음으로 노래한 이도살삼사(二桃三殺士)의 내용이다. 세 사람이 죽자 안자는 곧바로 시골에 은거하며 농사를 짓고 살던 사마양저를 불러와 제경공에게 천거하여 제나라의 국방을 맡겼다.

한편 시골의 농사짓던 촌부가 갑자기 대장군에 임명되어 제나라의 군권을 담당하게 된 사마양저의 행동도 매우 시사적인 면이 있다. 그는 안자의 천거로 대장군에 임명되어 제나라를 침략해 온 외적을 막기 위해 출전하라는 명을 받았다. 사마양저 자신은 시골의 농사짓던 촌부의 신분에서 갑자기 대장군이 된 사람이라 군사들이 자기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대고, 경공이 신임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군감(軍監)으로 붙여 주면 군사들을 지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경공은 사마양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총애하는 공족 출신의 장가(庄賈)라는 사람을 군감으로 임명하여 사마양저를 따라 종군하도록 명령했다. 사마양저와 장가 두 사람은 상면을 하고 다음 날 일정한 시각에 군영에서 만나서 같이 출전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윽고 다음 날 약속 시간이 되었으나 장가는 집안에서 마련해 준 전별연에서 마신 술 때문에 약속시간에 나올 수 없었다. 사마양저는 장가가 경공이 총애하는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군법에 따라 처형했다. 사마양저는 군주가 총애하는 공족출신의 귀족을 처형함으로 해서 군법의 엄숙함을 밝혀 제나라 군대의 기강을 잡고 그 지휘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사마양저는 사마병법의 저자이기도 하다.

제갈공명이 양보음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멧세지는 임용권자인 유비에게 새로 등용한 사람이 마음 놓고 자기의 뜻한 바를 펼칠 수 있도록 20여 년 동안 데리고 다녔던 가신이나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온 부하들을 단속함으로서 자기가 뜻을 펴칠 수 있도록 사전준비를 해주기를 요청하고, 만일 자기가 등용되면 유비의 뜻에 반하더라도 사마양저처럼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여 비록 유비가 사랑하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1)지기(地紀) : 지유(地維)라고도 하며 땅을 지탱하는 밧줄. 이것이 끊어지면 땅이 기울어 뒤집이 진다는 중국의 옛 신화. 하늘을 받드는 기둥과 땅을 지탱하는 밧줄 즉 天柱地維가 있어 세상이 보전된다고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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