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왕의 북진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초나라의 세력은 이미 중원전체로 퍼져 당진국에 대해서 일정한 우세를 점하게 대했다. 그러나 초장왕의 속셈은 그가 중원의 제후들을 향해 호령을 하기 위해서는 진(陳)과 채(蔡) 등의 나라를 복국시키는 것 만으로는 장기적인 전략으로는 불충분하고 필히 당진국으로부터 군사적인 군사적인 승리를 쟁취해야만 비로소 자기의 오랜 숙원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그래서 그는 당진과의 개전 시기를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초나라의 세력이 중원 전체에 다시 만연하게 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던 당진국은 자기의 패주로서의 위치를 지키려고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 정(鄭)과 송(宋) 등의 중원 제후국들은 당진과 초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어느 일방에 붙음으로써 다른 일방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는 두 나라의 눈치만을 살펴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해서 나라를 보존할 방책으로 삼았다. 특히 중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정나라의 처지야 말로 미묘했다. 정나라는 그 동안 당진과 초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며 복종했다가 다시 반하곤 했다. 기원전 598년 정나라가 다시 초나라로 돌아서고, 그해 여름 정과 초, 진(陳) 세 나라의 군주가 지금의 하남성 서화현(西華縣) 서쪽의 진읍(陳邑)에 모여 회맹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정나라는 이해득실에 따라 다시 당진국을 행해 강화를 청했다. 초장왕은 자신이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나라의 중요성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군사행동을 취하여 정나라를 완전히 굴복시켜 중원의 전략요충지를 장악하고 나아가 황하의 도하지를 봉쇄하고 당진군의 남하를 막으려고 했다. 초장왕은 이어서 정나라가 초나라를 배반하고 당진국과 통호를 했다는 죄명으로 주정왕(周定王) 10년 (기원전 597년) 봄 대군을 친히 인솔하여 정나라 원정길에 올랐다. 이로써 당진과 초 두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필(邲)의 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그해 6월, 초나라의 대군에게 포위되기 시작한 정나라의 도성은 6개 월 동안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은 초군에 의해 함락당하고, 정양공(鄭襄公)은 육단(肉袒)에 양을 끌고 도성에서 나와 초장왕에게 항복했다. 초장왕의 좌우의 대신들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정나라를 멸하고 초나라 영토에 병탄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장왕은 만일 초나라가 정나라를 멸한다면 정치적으로 결코 초나라에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패권전쟁을 대국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정나라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이고 즉시 그의 군대를 30리 뒤로 물리친 다음 사신을 보내 정나라와 회맹을 행하게 했다. 이에 정양공은 그의 동생인 자량(子良)을 초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정나라는 당진국에 있어서도 역시 중원으로 진출하는 통도에 해당하는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초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초나라가 정나라를 포위한 지 2달이 지나자 당진의 경공(景公)은 순림보(荀林父)를 중군의 원수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당진군은 이미 그 출동을 지연시켜 전기를 상실했고, 진군 또한 신속하지 못하여 정과 초 두 나라가 강화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야 비로소 그 주력이 지금의 하남성 황하 북안의 온현(溫縣)에 당도함으로 해서 전략적으로 이미 피동적인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이윽고 향후 군사행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진군의 내부에서는 첨예하고 격렬한 분쟁이 발생했다. 총사령관 순림보는 정나라가 이미 초나라에 항복했음으로 당진군이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계속 진군해봐야 그 의의가 이미 상실했다고 생각하고, 잠시 황하의 도하를 중지하고 군사를 멈추어 기회를 노리다가, 초군이 남쪽으로 철수하게 되면 진군하여 정나라에 압력을 가해 당진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했다. 상군원수 사회(士會)도 순림보의 의견에 찬동하며 오리지 정세를 관망하며 군사를 움직이는 것 외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군은 명분과 지리적인 잇점 및 절도가 있어 당진군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고 그런 정세 하에서 회전에 들어간다면 당진군에게 승산이 없기 때문에 그 시기를 기다려 패권을 다시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는 의심할 바 없이 정확하게 사태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었으나 중군부수 선곡(先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는 당진국이 중원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군대는 용맹스럽고 위세를 떨쳐야 하고, 그 신하들은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당진국이 정나라를 잃는다면 패권국으로써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또한 적을 앞에 두고 싸우지 않는다면 위세를 잃게 되어, 결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잃게 되어 그렇게 될 경우 죽느니만 못하다고 말했다. 더하여 ‘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음에도 적이 강하다해서 군사를 물리친다면 그것은 장부의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와 같은 호전적인 기분에 젖어있던 선곡은 순림보가 내린 군령을 개의하지 않고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황하를 도하해 버렸다. 그의 독단적인 행동은 당진군의 지휘계통을 완전히 흔들어 놓은 것이다.

선곡이 황하를 독단적으로 도하한 것을 본 하군대부 순수(荀首)는 당진군이 싸움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사마(司馬) 한궐(韓闕)이 순림보에게 ‘ 선곡이 그의 소부대로 적을 공격한다면 그 필시 싸움에서 패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패전의 책임은 원수가 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전군에게 명을 내려 그의 뒤를 따라 황하를 도하한다면 비록 그가 싸움에서 패한다 할지라도 패전의 책임은 지휘관 전부가 공동으로 지게 될 것이다.’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순림보는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못하다고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전군에게 명을 내려 황하를 도하했다. 당진군은 황하를 건너 지금의 하남성 형옹(衡雍)인 필(邲) 땅에 황하를 등에 지고 주둔했다.

그때 초장왕은 본대는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북쪽의 연(郔)에 주둔하고 있었다. 중군은 심윤(沈尹)이, 좌군은 공자영제(公子嬰齊)가, 우군은 공자측 자반(子反)이 이끌고 있던 초군은 황하의 북안에서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한 다음 당진군과 강화를 맺고 회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어서 당진군이 황하를 건너 그 남안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왕은 당진군과의 싸움을 피하여 군사를 물리치려고 했다. 그때 장왕의 총신 오삼(伍參)이 당진과의 일전을 벌리자고 주장했으나 영윤 손숙오가 반대하여 전차의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회군했다. 이에 오삼은 당진군의 내부 정황을 분석하고 초군이 충분히 승리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장왕은 오삼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초군의 진격 방향을 다시 북쪽으로 향하게 하여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경내인 관(管) 땅에 영채를 세우고 주둔했다. 당진군은 황하의 도강을 끝내고 오산(敖山)과 호산(鄗山) 두 산 사이에 주둔하고 있었다. 정나라가 사자를 당진군 진영으로 파견하여 자기들은 당진에 대해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뜻을 전달하며 초나라가 여러 번의 싸움에서 승리를 취한 끝에 교만하게 된 나머지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고 있는 틈을 타서 당진군은 밖에서 공격하고 정나라는 안에서 공격한다면 승리를 취할 수 있다고 건의했다. 당진군의 각 군 지휘관들은 정나라 사자의 권유사항을 듣고 회의를 열었으나 논쟁으로 쉽게 결말을 내지 못했다. 초장왕(楚莊王)은 두 번이나 계속해서 당진군 진영으로 사자를 파견해서 강화를 맺자고 청해 당진군의 내부를 교란시키려고 했다. 당진군은 초군의 강화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두 나라 대장들이 만나 결맹을 하며 강화조약을 맺을 날자를 정해 통보했다. 그와 동시에 초나라는 다시 일단의 군사를 당진군 진영 앞으로 출격시켜 도전하도록 하여 당진군의 전력을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때 당진의 장수 위기(魏錡)와 조전(趙旃)은 모두 지휘관의 자리를 노렸으나 뜻을 못 이루자 마음속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에 만일 두 진영 간에 강화가 이루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초군 진영에 답례사신으로 간 당진군의 사자들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출전을 요청하자 당진군의 대장 순림보가 찬성했다. 그래서 위기와 조전이 차례로 초나라 진영을 향해 출전했다. 두 사람이 출전하자 극극(郤克)과 사회(士會)는 초나라와의 강화에 대해 마음속으로 불만을 갖고 있던 그들이 초나라 진영으로 출전하여 도발하게 되면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중군 부장(副將) 선곡(先穀)은 오히려 순림보에게 건의하기를 그저 군사들만을 통제하면 될 일이지 별다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건의했다. 당진군 지휘부는 의견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결국은 각자 그 지휘관들의 생각대로 독자적인 행동을 취했다. 상군을 이끌던 사회는 장수 공삭(鞏朔)과 한천(韓穿)으로 하여금 휘하의 군사들을 7대로 나누어 오산(敖山)의 주위에 매복시켰다. 중군대부 조영제는 그의 부하들을 황하의 나룻터로 먼저 보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배를 준비하도록 했다. 한편 위기가 출전하여 초나라 진영에 당도하여 싸움을 도발한 다음 전차의 방향을 바꿔 회군하다가 초장 반당(潘黨)의 추격을 받았다. 위기가 지나가던 사슴을 활로 쏘아 잡아 반당에게 주자 반당은 추격을 멈추고 초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위기가 돌아가고 나서 저녁 무렵이 되자 조전이 초군 진영 앞에 당도하여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문 다음, 그의 부하들로 하여금 초나라 진영을 향해 돌진하도록 했다. 그때 좌광(左廣)의 전차부대와 함께 있던 초장왕이 조전의 부대를 발견하고 출전하여 그 뒤를 쫓았다. 조전은 전차를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가 도망쳤다. 초장 굴탕(屈蕩)이 그 뒤를 쫓아 조전(趙旃)과 육박전을 벌린 결과 그의 갑옷을 노획했다. 당진군이 전차부대를 보내 위기와 조전이 이끄는 부대를 구원하도록 했다. 초장 반당이 당진군의 전차가 일으키는 먼지를 보고 사람을 초나라 본대로 보내 당진군의 주력이 진격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초나라의 본대도 그들의 왕이 당진의 대군 속에 갇히는 것을 우려하여 진영을 나와 대오를 이루며 당진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초나라의 영윤 손숙오(孫叔敖)가 당진군을 기습하라는 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진군의 대장 순림보는 초나라의 대군이 진격해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결국은 북을 두드리면서 “ 하수를 먼저 건너는 자에게는 상을 주겠다!”라고 선포했다. 당진군은 중군과 하군이 섞여 서로 다투어 배에 오르려고 했다. 배에 먼저 오른 군사들이 칼을 휘둘러 후에 배에 오르려고 하던 군사들을 향해 칼을 휘둘러 그들의 손가락과 팔을 잘랐다. 이윽고 선상에는 당진군의 팔과 손가락이 무더기를 이룸으로 해서 당진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승기를 잡은 초군이 당진군을 섬멸하기 위해 하수 강안까지 진격하지 않은 것이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당진의 전군은 가까스로 하수를 도강하여 전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사회가 지휘하던 당진의 상군은 초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초나라의 공자 영제(嬰齊)가 지휘하는 우군을 기습하여 그 진공을 좌절시키고 황하 북안으로 질서정연하게 철퇴했다. 또한 당진의 하군대부 순수(荀首)는 지원병을 모아 초군의 포로가 된 그의 아들 순앵을 구원하기 위해 초군의 선두부대를 공격에 성공하여 초나라 장수 연윤(連尹) 양로(襄老)를 사살하여 그 시신을 취하고 다시 초장왕의 아들인 공자 곡신(谷臣)을 사로잡았다. 이에 사회와 순수 두 사람이 진군의 도하작전을 엄호 함으로 해서 당진 군사들의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다.

하루 동안의 격렬한 전투를 치른 초군이 당진군으로부터 승리를 취하여 마침내 필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서 초장왕은 형옹(衡雍)으로 나아가 승리자의 신분으로 초나라 선왕들을 위해 궁전을 수축하고 하수 연안에서 승전에 대한 의식을 거행한 다음 개선가를 부르며 남쪽으로 돌아갔다. 기원전 595년 초장왕은 필의 싸움에서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한층 더 분발하여 송나라 정벌군을 일으켜 그 도성 수양성을 포위했다. 송나라는 그 동맹국 당진국에 사태의 위급함을 고하고 구원을 청했으나, 당진국은 초나라의 군사력을 두려워했고, 또한 적적(赤狄)과 섬진의 침략을 견제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은 구두로 구원군을 출병하겠다고 승낙해 놓고 실제로는 아무런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송나라 도성의 군민들은 초군에게 9개월 이상을 포위당하면서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나 결국은 힘이 다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다음 해 여름 5월에 초나라에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초나라는 제(齊)와 노(魯) 두 나라와 차례로 통호를 함으로 해서 마침내 초장왕은 초나라의 세력을 중원에 뻗쳐 패주의 자리에 올랐다.

(中國軍事史-中國軍事科學出版社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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