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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0-18 04:28:314759 
안사의 난을 통해 들여다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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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을 통해 들여다보는 중국


절도사의 설치

당 현종(712년~756년)의 재위기는 ‘개원의 치[開元之治]’라는 표현으로 미화되어 있다. 국내에선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종 재위기 초반부의 대외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제국의 변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712년 설납이 이끄는 당군 6만이 어양을 침공한 거란, 발해의 연합군에게 패배.

714년 고구려의 옛 땅을 관할하던 안동도호부가 평주로 밀려남(처음에 평양에 설치되었다가 요동으로 밀려나고 다시 영주로 밀려난 상태였음). 투르크 출신의 당나라 장수 아사나헌이 서북전선에서 승리하여 카를룩과 돌육을 복속시킴. 하지만 카를룩은 곧 다시 당에게 반기를 듦.

717년 튀르키쉬의 지도자 소록이 안서 4진을 공격.

720년 당이 거란의 내분에 개입하였다가 패배. 바스밀-거란-당 연합군의 투르크 공격이 투르크의 아시테 톤유쿠크에게 격파당함.


이 불안한 상황의 제일 큰 책임자는 현종의 증조부인 당태종이었다. 당태종은 재위기에 무리한 대외침략을 일삼은 바 있다. 이 침략은 당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데에는 일시적으로 기여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당 주변 이민족들의 당에 대한 적대감을 극대화시켰다. (그 적대감은 투르크 비문 같은 자료에 잘 드러난다.) 위대한 정복군주는 따지고 보면 대재앙에 다름 아니다.


이때를 즈음하여 당에서는 군사체제를 변화시켰다. 징병을 원칙으로 하는 부병제의 폐지 움직임이 일어나고 모병제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723년, 중앙군 병력 12만이 모집되어 725년에 정식으로 부병을 대신하는 중앙군의 주체가 되었다. 지방에서의 전환은 이보다 훨씬 빨랐다. 측천무후 말기부터 단결병들이 변방 수비에 동원되고 있었는데, 이 단결병들은 대부분 변방 출신의 이민족들이었다. 그리고 이 이민족 병사들을 지휘하는 절도사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원래 절도사란 관직 이름은 당고종(현종의 조부) 재위시에 '도독'을 특수하게 부르는 명칭이었으나 현종 대에 이르러 정식 관직으로 설치되었다. 현종 즉위 직전인 711년에 하서절도사 설치를 시작으로 721년에는 9절도사와 1경략사가 주둔하는 10대 병진의 설치가 완료되었다.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고전하던 당에게는 변방의 지리에 익숙하고 늘 전투태세를 갖춘 이민족 군사집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0대 병진의 병력 중 절대다수는 모병을 통해 충원되었다. 다음은 10대 병진의 위치와 병력 수이다.


안서 : 현 쿠차 24000명

북적 : 현 우루무치 동남쪽 부근 2000명

하서 : 현 감숙성 무위현 73000명

삭방 : 현 영하회족자치구 영무현 64700명

하동 : 현 산서성 태원시 55000명

범양 : 현 북경시 91400명

평로 : 현 요녕성 조양 37500명

농우 : 현 청해성 낙도현 75000명

검남 : 현 사천성 성도시 30900명

영남오부 : 현 광주 15400명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하여 이민족 출신 절도사들이 기용되기 시작했다. 이민족 출신 절도사들의 기용을 주도한 사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이림보(李林甫)라는 간신배였다. 이림보는 736년에 중서령이 되었으며 안록산(安綠山), 가서한(哥舒翰), 고선지(高仙芝) 같은 인물들을 절도사나 절도부사로 기용했다. 742년에 투르크에서 당에 귀순해 이헌충(李獻忠)이란 이름을 받은 아부스부족의 족장은 이림보의 양아들이 되기도 했다. 이민족 출신의 절도사가 이민족군대를 지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화사상에 젖은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민족 절도사의 임용이 당나라 쇠망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서한이나 고선지는 끝까지 당에 충성하여 안록산과 맞서 싸운다.


※口蜜腹劒

십팔사략(十八史略 )》에 있는 고사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의 정치의 난맥(亂脈)을 바로잡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여 주색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임보(李林甫)라는 자가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이 된 사람이다. 이임보는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彈劾)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있으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해서 신하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설령 직언을 생각하고 있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말했다[李林甫 妬賢嫉能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劒(이임보 투현질능 성음험 인이위 구유밀복유검)].”


그가 야밤 중에 그의 서제 언월당(偃月堂) 들어앉아 장고를 했다하면 그 다음날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주살(誅殺)되었으며 자주 옥사(獄事)를 일으켰으므로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재상 지위에 있기를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했다. 그리고 안녹산(安祿山)도 이임보의 술수를 두려워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양국충도 재상이 되자 마자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하자 이제서야 깨닫고 크게 화가 난 현종은 명령을 내려 그의 생전의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폐가망신과 함께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임보가 죽은지 3년째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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