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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19 06:07:034124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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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왕(滕王) 이원영(李元婴)




당고조 이연(李淵)의 22번 째 아들이며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동생이고 당고종 이치(李治)의 숙부로 이원영(李元嬰 : ?-684)의 왕호다. 정관(貞觀) 13년 (639)에 산동(山東) 등현(滕縣)을 식읍으로 받아 등왕에 피봉되었다. 어려서부터 이연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교만하고 방종하여 누차에 걸쳐 법을 범했다.




이원영이 등현의 봉지에 부임함과 동시에 사치를 일삼고, 음락을 즐기며 멋대로 부세를 징수하여 걷은 재물로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켰기 때문에 당지의 백성들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할수 없이 태종 이세민은 이원영을 소주(蘇州)로 옮겨가 살게 했다. 그러나 이원영이 등현에 있을 때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여러 개의 정(亭)과 대(臺)를 지어 놀았음으로 부근 일대에서 이미 악명이 나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열악한 않은 환경에서 지내야만 했다. 또한 그의 봉지 등현(滕縣)은 이미 몰수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원영은 소주에서 자사로 있다가 후에 지금의 남창인 홍주도독으로 옮겼다. 이때에도 그는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행을 답습했다. 영휘(永徵) 4년(653) 그는 다시 감강(竷江)의 강변에 터를 잡은 후에, 널리 유명한 공인과 장인을 모아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은 누각을 한 채 짓기 시작했다. 이 건물이 바로 왕발(王勃)에 의해 묘사된 등왕각이다. 고종 조로(調露) 원년(679), 이원영은 다시 융주(隆州) 자사로 옮겨졌다. 융주는 지금의 사천성 랑중시(閬中市)다.




당시 고조는 황제의 자리를 태종에게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어 융주의 낭중으로 물러나 산중에 거하고 있었으나 이원영은 개의치 않고 궁원에 머물려 장기를 두며 즐겨 놀았다. 다시 가릉강(嘉陵江) 변의 옥태산(玉台山) 허리에 높고 웅장한 행궁을 지었다. 후에 두보가 지나가다 지은 시 중에 등장하는 랑중등왕각(閬中滕王閣)이라는 건물이다. 이원영의 임지를 소주에서 오지인 사천의 랑중으로 옮긴 것은 고종 이치가 그에게 근신하라는 1차 경고였으나 그는 여전히 예전처럼 사치하고 방종한 생활을 계속하며 이치의 경고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여지기승(輿地紀勝)에 의하면 ‘ 랑중에 당도한 이원영은 일찍이 등현에서 행한 폭정으로 얻은 아역비루(衙役鄙陋)라는 악명에 맞게 큰 토목공사를 일으켜 웅장한 궁궐과 높은 누각을 지은 후에 그 이름을 랑원(閬苑)이라 불렀다. 다시 랑중의 옥태산에서 풍경을 즐기기 위해 등왕정(滕王亭)을 지으면서 랑중 생활 5년 동안 그는 즐거움에 묻혀 장안으로 돌아갈 생각을 잊었다.’고 했다. 또 신당서(新唐書)에는 ‘ 등왕이 좌천되어 랑중으로 임지를 옮겼으나 그는 여전히 국법을 지키지 않고 더욱 방종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녹사참군(錄事參軍) 배위(裵韋)가 보다 못해 이원영에게 간했다가 오히려 매를 맞기도 했다.’고 했다.




한 번은 고종이 대대적으로 황실의 제왕들에게 상을 내려 모두에게 채색비단 5백 필을 하사했으나 단지 등왕에게만은 두 수레에 마로 엮은 새끼줄을 주면서 말하기를 “ 등왕께서는 돈과 비단은 이미 많이 갖고 계시어 별도로 비단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두 수레에 실은 마로 꼰 새끼줄을 드리는 것은 가지고 계시는 돈을 꿰는 데 사용하는데 필요하실 것 같아서입니다.” 고종은 사치하고 방종한 이원영에게 완곡하게 경고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후세의 사가들은 이원영이 지나칠 정도로 호사하고 방종한 생활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한 것은 잔혹한 황권 쟁탈전 와중에서 자기의 재능을 숨기는 일종의 도회지계(韜晦之計)의 방편으로 인정하고 있다. 자신은 결코 호사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길 뿐이지 황권에는 절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들게 하여 태종 이세민이나 고종 이치의 경계에서 벗어나나 자기의 몸을 보전하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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