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247 
· 어제 :  266 
· 최대 :  2,389 
· 전체 :  1,653,443 
 
  2004-05-11 10:25:516831 
제22회. 魯國三桓(노국삼환), 澤鬼委蛇(택귀위사)
양승국   (1463)
 지도22-1. 경보의 란 때 노나라 정세도 복사.jpg  (342.0K)   download : 111
일반

제22회

魯國三桓 澤鬼委蛇(노국삼환 택귀위사)

시작되는 노나라 삼환씨의 권세와

늪 속의 위사를 제환공에게 고한 농부 황자

1. 경보지란(慶父之亂)

- 두 군주를 시해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노나라의 공자 경보

노나라의 공자 경보(慶父)는 자는 중(仲)이고 노장공(魯莊公)의 서형이다. 경보의 동모제로서 자를 숙(叔)이라고 하는 공자아(公子牙)가 있었다. 노장공도 동모제로 공자우(公子友)가 있었는데 손바닥에 ‘우(友)’ 라는 글씨를 갖고 태어나 이름으로 삼고 자를 계(季)라 하여 계우(季友)라 불렀다. 비록 삼 형제가 모두 대부의 벼슬을 살았지만 첫째는 적서의 신분이 있었고 둘째는 계우만이 어질고 현명했기 때문에 장공이 유독 계우를 믿고 가까이 했다. 장공이 즉위한지 3년 되던 옛날 궁 밖의 낭대(郎臺)에 놀러 나갔다가 당씨(棠氏)의 딸 맹임(孟任)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용모와 자색이 수려한 맹임을 장공이 내시에게 명해 불러오게 했다. 그러나 맹임은 장공의 명에 따르지 않았다. 장공이 말했다.

「나를 따른다면 너를 부인으로 세우겠다.」

맹임이 장공에게 맹세를 하도록 청했다. 장공이 허락하자 맹임은 자기의 팔을 장도로 찔러 피로써 장공으로 하여금 하늘을 향해 맹세시키고 낭대에서 잠자리를 같이했다. 장공은 다음날 맹임을 어가에 태워 궁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 후 일 년이 지나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반(般)이라 했다. 장공이 맹임을 부인으로 세우고 싶어 문강에게 청했으나, 문강은 허락하지 않았다. 반드시 그의 아들을 친정 집안의 여인과 맺어 주기를 원했던 문강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양공의 갓난 딸과 혼인시키기로 정하고 그녀가 시집갈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장공의 부인으로 데려 오기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맹임은 비록 장공의 정부인이 되지 못했지만 양공의 딸이 성장할 때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궁의 주인 노릇을 했다. 양공의 갓난 딸 애강(哀姜)①이 마침내 성장하여 노나라에 들어와서 부인이 되었을 때는 맹임은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거동하지 못했다. 맹임은 결국 병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장공은 맹임을 정부인의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한편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한 애강은 그녀의 동생 숙강(叔姜)을 제나라에서 오게 하여 장공을 모시게 했다. 숙강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계(啓)라고 했다. 그 전에 장공에게는 수구자(須句子)의 딸 풍씨(風氏) 첩실로 두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아들을 얻어 이름을 신(申)이라고 지었다. 장공의 뒤를 자기 아들로 잇게 하려는 마음을 품은 풍씨가 장래를 계우(季友)에게 맡기려고 하자 계우가 거절하면서 말했다.

「공자반의 나이가 이미 성년이 되었습니다.」

장공은 애강을 비록 부인으로 맞이하였으나 그 부친을 살해한 원수의 딸이라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어 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장공의 서형 경보는 태어나면서부터 외모가 준수하고 훤칠한 헌헌장부였다. 애강이 보고 몰래 내시를 통하여 불러와 사담을 나누다가 결국은 경보와 사통을 하게 되어 둘 사이에는 깊은 정분이 생겼다. 그로 말미암아 경보가 그의 동모제인 숙아와 일당을 이루어 앞으로 일을 같이 공모하여 자기는 노나라의 군주가 되고 숙아는 상경이 되기로 서로 약속했다. 이 일에 대해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정위 두 나라의 음풍은 세상사람 모두가 아는 일인데

그렇다고 제나라의 음풍에 당할 수야 있겠는가?

제나라와 수호를 맺은 노나라가 사람들의 웃움거리가 되고

문강에 이어 애강이 제나라의 음픙을 세상에 떨쳤구나.

淫風鄭衛只尋常(음풍중위지심상)

更有齊風不可當(갱유제풍불가도)

堪笑魯邦偏締好(감소노방편체호)

文姜之后有哀姜(문강지후유애강)

장공이 즉위한지31년 되던 해는 겨울 내내 비가오지 않았다. 장공이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교외로 나가다가 대부 양씨(梁氏)의 집에 들려 묶게 되었다. 양씨가 장공을 위해 정원에다 연회를 베풀었다. 양씨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공자반이 이미 양씨의 딸을 알고 사랑하게 되어 몰래 왕래하고 있었다. 공자반 역시 양씨의 딸에게 자기가 노나라 군주의 자리에 앉게 되면 정부인으로 세우겠다고 약조했다. 장공이 양씨 집에서 묶던 날 양녀(梁女)의 딸이 담장에 사다리를 놓고 장공을 위해 정원에서 연주하고 있는 음악과 가무를 구경했다. 그때 어인(圉人)② 락(犖)이 양씨 집 담장 밖에 있다가 담장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양씨의 딸을 보게 되었다. 양녀의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 어인락이 담장 밑에 서서 의도적으로 노래를 하나 지어 수작을 부렸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복숭아꽃이여

추위를 이기고자 더욱 애쓰는 구나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굴뚝같건만

담장을 뛰어넘을 수 없음이여

원컨대 같이 날개를 달아

한 쌍의 원앙이 되고 싶어라

桃之夭夭兮(도지요요혜)

凌冬而益勞(능동이익로)

中心如結兮(중심여결혜)

不能逾墻(불능유장)

愿同翼羽兮(원동익우혜)

化爲鴛鴦(화위원앙)

장공을 따라와 양씨의 집에 기거하던 공자반 역시 음악과 가무를 구경하고 있다가 어인 락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다. 양녀에게 수작을 거는 어인락을 보고 크게 노한 공자반이 좌우에게 명해 붙잡아와 그의 등을 채찍으로 300대를 때리게 했다. 어인락의 등은 채찍에 맞아 흘러내리는 피로 흥건히 적셨다. 목숨을 애걸하는 어린락을 불쌍히 생각한 공자반이 풀어 주었다. 공자반이 이 일을 장공에게 고하자 장공이 말했다.

「락이라는 놈이 참으로 무례한 자로구나! 채찍으로 다스릴 일이 아니라 마땅히 죽였어야 했음이라. 락이라는 놈은 행동이 민첩하고 용력이 뛰어나 세상에 겨룰 수 있는 장사가 없는데 채찍으로 벌을 주었으니 그놈은 반드시 너에게 한을 품었을 것이다.」

원래 어인락은 힘이 천하장사이고 행동은 민첩했다. 옛날에 한 번은 직문(稷門)을 타고 성루에 오르고 다시 몸을 밑으로 날려 땅에 닿았는데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 몸을 솟구쳐 손으로 기둥을 잡고 기어올라 무사히 지붕의 한 모서리를 잡고 손으로 흔들어 루각 안을 진동시킨 일도 있었다. 장공이 락을 죽이라고 한 것은 그의 힘이 절륜하기 때문에 후환이 두려워서였다. 공자반이 말했다.

「그자는 한 사람의 필부에 불과한 자 일 뿐인데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인락이 과연 공자반에게 한을 품고 경보의 문하에 들어갔다. 다음 해 가을에 병에 걸려 위독하게 된 장공은 경보를 마음속으로 의심했다. 그래서 일부러 먼저 공자 숙아를 불러서 자기가 죽은 후의 후사에 대해 마음을 떠보기 위해 물었다. 숙아가 예상했던 대로 경보의 재주를 칭찬해 마지않으면서 말했다.

「만약에 경보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한다면 사직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어 우리 노나라의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부친이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뒤를 잇게 되는 일은 노나라의 법도인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장공은 숙아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숙아가 나가자 장공이 다시 계우를 불러 자기 사후의 일에 대해서 물었다. 계우가 대답했다.

「옛날 군께서는 맹임과 맹세를 굳게 해놓고서도 부인으로 세우지 않았으면서 오늘 다시 그 아들을 폐하려고 하십니까?」

「숙아가 와서 나에게 권하기를 경보로 내 뒤를 잇게 하라고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보는 잔인하고 동기간의 정도 없는 사람이라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이 못됩니다. 또한 숙아가 경보를 천거한 이유는 두 사람이 동모제라는 사사로운 정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신은 죽음으로써 반을 군주로 받들겠습니다.」

장공이 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하더니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계우가 장공의 침소를 나와서 급히 내시를 숙아에게 보내 대부 침계(鍼季)의 집에 와서 장공의 군명을 받들라고 전하게 했다. 숙아가 내시의 말을 믿고 침계의 집으로 와서 장공의 명령을 기다렸다. 계우가 짐주(鴆酒) 한 병을 봉하여 대부 침계에게 주어 숙아에게 마시게 하여 죽이라고 했다. 계우는 별도로 편지를 써서 숙아에게 전하게 했다.

「주공께서 명하여 형님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형님이 이 술을 마시고 죽는다면 형님의 자손들은 그 직위를 잃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형님의 집안을 멸족될 것입니다.」

숙아가 머뭇거리며 짐주를 마시려고 하지 않자 침계가 그의 귀를 잡고 짐주를 입 속으로 강제로 부어 마시게 했다. 얼마 후에 숙아는 구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계우가 짐주로 숙아를 죽인 일을 노래했다.

주공은 동생 관숙을 죽여 주나라 왕실을 평안케 했고

계우는 동생 숙아를 짐주로 죽여 노나라를 편안케 했다.

그것은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대의멸친하기 위해서였다.

육조③ 때의 골육상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었다.

周公誅管安周室(주공주관안주실)

季友鴆牙靖魯邦(계우짐아정노방)

爲國滅親眞大義(위국멸친진대의)

六朝底死忍相戕(육조저사인상장)

그날 저녁 노장공이 죽었다. 때는 주혜왕 15년 기원전 662년의 일이었다. 계우가 공자반을 모시고 장공의 장례를 치르고 노나라의 사대부들에게 다음 해에 개원할 것을 선포했다. 주변의 많은 제후국에서 조문 사절을 보내왔다.

그해 겨울10월에 외조부 당신(党臣)이 병이 들어 죽자 외가인 당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던 공자반이 문상을 위해 궁밖으로 행차했다. 경보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인락을 불러 말했다.

「너는 옛날에 반으로부터 등에 채찍을 맞은 원한을 잊었는가? 무릇 물을 떠난 교룡은 힘없는 필부도 잡을 수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당씨 집에서 당한 원한을 갚으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너를 위하여 준비해 주리라!」

「공자께서 저를 도와주기만 하신다면 제가 어찌 명을 따를지 않겠습니까?」

경보의 사주를 받은 어인락이 즉시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밤이 깊어지자 당대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당대부의 집에 당도했을 때는 시간이 이미 삼경이 넘어있었다. 어인락은 담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가 중문 밖에서 날이 희미하게 밝아 질 때까지 숨어 있었다. 이윽고 어린 동자가 한 명이 물을 기르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온 틈을 타서 공자반이 자고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침상에서 일어나 신을 신고 있던 공자반이 어인락을 보고 크게 놀라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감히 이곳에 들어 왔느냐?」

「작년에 너한테 채찍으로 맞은 원한을 갚으러 왔다.」

공자반이 급히 침상의 머리맡에 걸려 있던 칼을 뽑아 휘둘러 어인 락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어인락이 왼손으로 자반이 휘두르는 칼을 부여잡고 오른 손으로는 비수를 꺼내어 공자반의 옆구리를 찌르자 자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어린 동자가 보고 놀라 당씨들에게 알렸다. 당씨의 가병들이 뛰어나와 어인락을 공격했다. 자반이 휘두른 칼에 이미 머리에 상처를 입은 어인락은 가병들의 공격에 대적하지 못했다. 어인락은 수많은 가병들이 휘두른 칼에 난도질을 당하여 숨이 끊어지고 그의 몸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세자 반이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계우는 그 일은 경보가 꾸민 일임을 알았다. 화가 자기 몸에도 미칠까 두려워한 계우는 진(陳)나라로 도망쳐 경보로부터 화를 피했다. 경보는 짐짓 모르는 체하고 어인락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그 집안을 멸하고 노나라의 사대부들에게 해명했다. 노장공의 부인 애강이 경보를 노나라의 군주 자리에 세우려고 했으나 경보가 사양하며 말했다.

「아직 두 공자 계(啓)와 신(申)이 살아 있어, 그 두 사람을 전부 죽이기 전에는 노후의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자신(公子申)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신은 나이가 이미 장성하여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 즉시 자반의 죽음을 발상한 경보는 부고를 전해야 한다는 명분을 핑계 삼아 친히 제나라에 가서 자반의 변고를 고하고 수초에게 뇌물을 바쳐 공자계를 노후로 세웠다. 그때 공자계의 나이는 겨우 8살에 불과했다. 이가 노민공(魯閔公)이다. 민공은 곧 숙강의 아들이고 숙강은 또한 애강의 동생이라 제환공에게는 생질이다. 안으로는 애강을, 밖으로는 경보를 두려워한 민공은 외가인 제나라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민공이 제환공에게 사람을 보내 낙고(落姑)의 땅에서 회견을 청했다. 이윽고 두 나라 군주들이 낙고로 나가 서로 만났다. 노민공(魯閔公)이 환공의 옷자락을 잡으며 아무도 몰래 경보가 란을 일으킨 일에 대해 고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환공이 민공을 향해 물었다.

「지금 노나라 대부 중에서 누가 가장 어질다고 보시오?」

「오로지 계우가 제일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란을 피하여 진(陳)나라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계우를 불러서 노나라의 정사를 맡기지 않소?」

「계우를 불려 들여서 정사를 맡기면 경보에게 해를 입을까 걱정하여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우를 나의 뜻이라고 해서 부른다면 누가 감히 거역하겠소?」

환공이 즉시 사람을 진나라에 보내 자기의 명령으로 계우를 낙고로 불렀다. 민공이 랑(郞)④ 땅까지 행차하여 기다렸다가 계우를 맞이하여 같이 수레를 타고 노나라에 돌아갔다. 노민공은 계우를 상경으로 임명하고 노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일련의 일들은 모두 제후(齊侯)의 명에 따라 행해진 일이라 아무도 감히 이의를 달 수 없었다. 그때가 주혜왕 16년 기원전 661년으로서 노민공 원년의 일이었다.

그해 겨울에 제후가 다시 노민공의 군주 자리와 계우의 상경 자리가 불안하다고 생각되어 대부 중손추를 노나라에 보내어 노후의 안부를 묻게 하고 한편 경보의 동정을 살펴보게 했다. 노민공은 제나라 사자로 온 중손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중손추가 공자신(公子申)과 노나라의 일에 대해 상론하였는데 그 말에 심히 조리가 있었다. 중손추가 혼자말로 말했다.

「이 사람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그릇이로다.」

계우를 만난 중손추가 공자신을 잘 보살피라고 부탁하고 경보를 빨리 죽이라고 권했으나 계우는 단지 한 손바닥을 펴서 보일 뿐이었다. 중손추는 그것이 고장난명(孤掌難鳴)의 뜻이라고 알아듣고 계우에게 말했다.

「이 추는 마땅히 경보의 일을 우리 주군께 아뢰겠습니다. 만일 노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제나라는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경보가 많은 뇌물을 가지고 중손추를 찾아가 자기의 일을 부탁하려고 했다. 중손추가 경보를 향해 말했다.

「만일 공자께서 능히 사직에 충성을 바치신다면 저희 주군께서도 역시 그 재물을 받으실 것입니다. 어찌 이 추가 사사로이 그 재물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중손추가 한사코 고사하며 받지 않았다. 경보가 송구하여 물러갔다. 중손추가 민공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제나라에 돌아와서 환공에게 아뢰었다.

「경보를 없애지 않고는 노나라의 란을 종식시킬 수 없습니다. 」

「과인이 군사를 끌고 가서 토벌하면 어떠하겠는가?」

「경보가 아직 그 흉악한 행위를 밖으로 들어내지 않아 토벌할 명분이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이 보건대 경보라는 위인은 남의 밑에 있으면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라 앞으로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가 난을 일으킬 때를 기다려 죽이면 패왕(覇王)의 업적이 세우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당한 말이오.」

민공2년 경보가 찬위할 마음이 더욱 급하게 되었으나 단지 민공은 제환공의 생질이고 또한 계우가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보좌하고 있어 감히 행동을 가볍게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자가 와서 보고하였다.

「대부 복기(卜齮)가 와서 뵙고자 합니다. 」

경보가 나가서 마중을 하여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복기의 얼굴에 노기가 등등한 기색을 보자 경보가 그 까닭을 물었다. 복기가 대답했다.

「저는 태부 신불해(愼不害)의 농장과 이웃하여 전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불해가 자기의 세력이 강함을 믿고 빼앗아 갔습니다. 제가 주공에게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신불해가 자신의 사부라는 이유로 오히려 나에게 양보하도록 명했습니다. 주공께 나의 억울함을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하고자 이렇게 공자님을 찾아왔습니다. 」

주위의 시자들을 밖으로 내보낸 경보가 복기를 보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주공은 아는 것이 없어 내가 비록 말씀을 드린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오! 그대가 만약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신불해를 죽여주겠소. 어떻게 생각하오?」

「계우(季友)가 주공 옆에서 지키고 있으니 일을 도모한다 해도 성사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주공은 아직 어린아이라 밤이 되면 항상 무위문(武闈門)⑤을 통하여 궁궐 밖으로 나가서 시정에서 놀기를 즐겨 합니다. 그대가 자객을 구해 무위문 옆에 매복시켜 기다리게 했다가 주공이 궁궐 밖으로 나오면 칼로 찔러 죽이게 하고 단지 도적이 한 짓이라고 둘러대면 아무도 누가 한 짓인지 모를 것이오. 연후에 국모의 명으로 내가 노후의 자리에 앉게 되면 계우를 쫓아내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오.」

복기가 경보의 말을 허락하고 즉시 자객을 수배하여 추아(秋亞)라는 장사를 얻었다. 복기가 추아에게 예리한 비수를 주어 무위문 밖에 숨어 노후가 나오기를 기다리게 했다. 밤이 되어 과연 궁궐 밖에로 나온 민공을 추아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비수로 찔러 죽였다. 민공을 호위하고 있던 시종들이 놀라 격투 끝에 추아를 사로잡았으나 복기가 가병을 이끌고 와서 빼앗아 갔다. 그 사이에 경보는 가병을 이끌고 신불해 집으로 쳐들어가 그 일족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또다시 변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 계우는 그날 밤 공자신을 찾아가 경보가 란을 일으켰음을 고하고 두 사람이 같이 주(邾)나라⑥로 도망쳐 란을 피했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자반과 민공이 연달아 시해되었는데

당시에 비수를 갈아 일을 꾸민 자는 누구였던가?

노나라의 변란은 모두 내궁에서 일어났는데

하필이면 음탕한 제녀만을 데려와 부인으로 삼았는가?

子般遭弑閔公戕(자반조시민공장)

操刃當時誰主張(조인당시수주장)

魯亂眞由宮閫起(노란진유궁곤기)

娶妻何必定齊姜(취처하필정제강)

2. 계우감란(季友戡亂)

- 경보의 란을 평정한 계우 -

한편 평소에 계우를 마음속으로 복종하고 있었던 노나라의 사대부들은 노후가 피살되고 계우가 나라밖으로 도망쳤다는 소문을 듣고 분노하여 온 나라가 불만의 소리로 들끓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복기를 원망하고 경보에게 원한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 안의 모든 거리에 있던 집의 문이 닫히고 사대부들이 시정으로 나와 모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천여 명이 되어 복기의 집으로 몰려가 포위하고 복기와 그 가족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그 사이에 수효가 더욱 늘어난 군중들은 경보의 집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성난 군중들이 자기 집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경보는 백성들의 마음이 자기를 떠나 자신은 노후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 나라 밖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옛날 거(莒)나라에 망명했던 제후(齊侯)가 후에 거나라의 힘을 빌려 제나라 군위를 차지했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던 경보는 거나라로 우선 몸을 피한다면 거나라의 은혜를 입은 제후가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며, 그러다가 틈을 봐서 거자를 시켜 그의 처지를 제후에게 호소해 용서를 받아 다시 기회를 노리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문강은 원래 거나라 의원과 정을 나눈 적이 있었고, 지금 노나라 국모 애강은 문강의 질녀라는 인연을 내세운다면 거나라가 자신을 내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보는 즉시 평민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장사치로 분장하여 수레에 재물을 가득 싣고 거나라로 도망쳤다. 경보가 거나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애강도 역시 신변에도 불안감을 느끼고 경보를 뒤따라 거나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애강의 측근들이 말했다.

「부인께서는 도망친 경보로 인하여 사대부들에게 죄를 얻었는데 오늘 다시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그를 만난다면 노나라 백성들 중 누가 부인을 용서하려고 하겠습니까? 지금 주(邾)나라에 머물고 있는 계우를 백성들이 다시 불러 노나라의 정사를 맡기려고 하니 부인께서는 차라리 주나라로 가서 계우에게 사정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애강이 즉시 계우를 만나기 위해 주나라로 갔다. 그러나 계우는 애강을 만나 주지 않았다. 경보와 애강 두 사람이 노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우는 즉시 공자신과 같이 노나라에 돌아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제나라에 보내 노나라의 변란을 고했다. 제환공이 공손추를 불러 물었다.

「오늘 노나라에 군주가 없는데 우리 제나라가 그 땅을 합치면 어떻겠는가?」

「노나라는 예의지국이라 비록 시역의 란을 맞이하여 일시적으로 혼란스러우나 백성들의 마음이 주공의 가르침을 잊지 않아 예을 잃지 않으니 취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공자신은 나라의 일에 밝고 또한 계우는 변란을 평정할 수 있는 인재입니다. 그 두 사람은 틀림없이 노나라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군사를 내어 병합하기 전에 잠시 지켜보시고 사태의 추이를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알겠소.」

제환공은 즉시 상경 고혜(高傒)에게 명하여 남양(南陽)⑦의 정예로운 갑사3천 명을 이끌고 노나라에게 가서 동정을 살펴 형세를 보아가며 움직이도록 명했다.

「공자신이 과연 사직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 된다면 즉시 그를 도와 노나라 군주의 자리에 앉혀 이웃나라로서의 우호관계를 세우도록 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노나라의 땅을 접수하여 우리 제나라에 병합시키도록 하시오.」

고혜가 환공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노나라를 향해 행군했다. 이윽고 그들의 일행이 노나라에 당도하자 마침 공자신과 계우도 주나라에서 돌아와 있었다. 고혜가 보니 공자신의 몸가짐이 단정하고 그 말하는 품이 조리가 있어 마음속으로 십분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계우와 상의하여 계책을 정하고 공자신을 옹립하여 노후로 삼았다. 이가 노희공(魯僖公)이다. 고혜가 제나라에서 데리고 온 갑사들로 하여금 노나라 사람들을 도와 녹문(鹿門)에 성을 쌓게 하고 주(邾)와 거(莒) 두 나라의 침입에 방비하게 했다. 계우가 공자 해사(奚斯)로 하여금 회군하는 고혜를 따라가 제후에게 노나라의 변란을 진정시켜준 노고에 감사의 말을 올리게 했다. 또 한편으로는 사자를 거나라로 보내 거자가 경보를 죽여준다면 그 보답으로 많은 재물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한편 경보는 거나라로 도망칠 때 수레에 많은 금은보화를 싣고 가서 문강의 병을 치료했던 거의(莒醫)를 통해 거자(莒子)에게 바치게 했다. 경보의 뇌물을 받은 거자는 다시 노나라가 주겠다는 뇌물에 탐이 나서, 사람을 시켜 경보에게 자기의 뜻을 전했다.

「거나라는 변방에 치우친 조그만 소국이오. 공자로 인하여 병화를 입을까 걱정이 되니 원컨대 다른 나라를 찾아 몸을 의탁하기 바라오.」

경보가 주저하며 거나라를 떠나지 않자 거자가 영을 내려 경보를 강제로 쫓아내게 했다. 궁지에 몰린 경보는 옛날 제나라에 가있을 때 수초에게 뇌물을 바쳐 서로 친하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고 주나라를 경유하여 제나라로 들어가 몸을 의탁하려고 했다. 경보가 노나라에서 저지른 죄를 알고 있었던 제나라의 국경을 지키는 관리는 감히 자기 마음대로 나라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경보가 왔음을 제후에게 알리고 경보는 문수(汶水) 강변의 초막집에 머물게 하고 본국에서 별도의 명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마침 제나라에서의 사절 임무를 마치고 노나라로 귀국하던 공자 해사가 문수 강변에 당도하여 경보와 상면하게 되었다. 공자 해사가 자기의 수레에 경보를 태워 노나라로 같이 들어가려고 했으나 경보가 거절하며 말했다.

「계우는 틀림없이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자어(子鱼)가 귀국하면 나를 위해 계우에게 돌아가신 부군과 형제의 정을 생각하여 이 한 목숨을 살려준다면 이 경보는 필부의 신분으로 평생 지낼 것이며, 죽을 때까지 변치 않겠다는 나의 맹세를 전해주기 바란다.」

자어는 해사의 자다. 해사가 노나라에 돌아와 제나라에 가서 행한 일을 복명한 후에 계속해서 제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문수 강변에 머물고 있던 경보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희공이 경보를 받아들이려고 했으나 계우가 반대하면서 말했다.

「군주를 시해한 역신을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면 어떻게 후세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희공의 면전에서 물러나온 계우는 해사에게 은밀히 말했다.

「경보가 만약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의 직위와 재산을 그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게 하고 그 집안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전하시오.」

계우의 명을 받고 다시 문수 강변으로 가서 경보에게 말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차마 입을 열어 말할 수 없었던 해사는 경보가 묶고 있는 초막의 문 밖에 엎드려 큰소리를 내어 통곡했다. 문 밖에서 나는 우는 소리를 들은 경보는 그가 해사임을 알고 듣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자어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저리 애처롭게 우니 내가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음이라!」

경보는 즉시 자기의 허리띠를 풀어 나무에다 걸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해사가 안으로 들어와서 시체를 나무에서 끌어내린 후 관에 넣어 수레에 싣고 노나라로 데려와 경보가 죽은 일에 대한 전말을 고하자 희공은 탄식해 마지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변경의 관리가 급보를 보내왔다.

「거자가 그의 동생 영나(嬴拿)에게 군사를 주어 우리국경에 보냈습니다. 경보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옛날에 우리가 주기로 한 재물을 달라고 합니다. 」

계우가 놀라 말했다.

「거인이 언제 경보를 잡아와서 우리에게 바친 적이 있다고 재물을 요구하고 있는가?」

계우가 말을 마치고 즉시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거나라 군사들과 싸우기 위하여 출전했다. 노희공이 출전하는 계우에게 허리에 찬 보검을 풀어 주며 말했다.

「이 칼은 이름은‘맹로(孟勞)’라고 하는데 길이는 비록 한자도 안 되지만 예리하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명검입니다. 숙부께서 거나라 군사들과 싸울 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계우가 감사의 말을 올린 후에 맹로를 받아 허리에 차고 군사를 이끌고 거나라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출전했다. 계우의 군사들이 행군하여 력(酈)⑧땅에 당도하자 거나라 공자 영나가 군사들로 하여금 대오를 갖추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우가 군사들 앞에서 훈시했다.

「우리나라는 지금 임금이 새로 선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의 정세가 아직 안정되지 않고 있다. 만약 이번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동요하여 혼란에 빠져 나라가 망할지로 모른다. 거자가 욕심이 많아 그의 동생 영나를 시켜 무모하게 싸움을 걸어오니 내가 마땅히 계책을 세워 그를 사로잡으리라.」

계우는 즉시 노나라 진영 앞으로 나아가 거나라 진영에 사람을 보내 영나를 만나 대화를 하고 싶다고 전하게 했다. 영나가 앞으로 나오자 계우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군사들이 무슨 죄가 있어 고생을 시키겠는가? 들으니 공자께서 힘이 절륜하여 적군과 싸울 때에 상대를 사로잡는데 장기가 있다고 들었소. 내가 감히 청하여 우리 두 사람이 각기 자기가 갖고 있는 무기를 들고 싸워 자웅을 결하면 어떻겠소?」

영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바라던 바다.」

그 즉시 계우와 영나가 각기 자신들의 군사들을 뒤로 물러나도록 명하고 두 진영 사이에 싸울 곳을 만들게 했다. 격투장이 완성되자 사람이 나와 서로 간에 허점을 보이지 않게 대치하다가 이윽고 싸움이 시작되어 50여 합을 겨루었으나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때 계우가 매우 사랑했던 여덟 살 먹은 아들 행보(行父)가 계우를 따라 종군하여 군중에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뒤에서 관전하고 있던 행보가 싸움이 계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자 큰소리로 외쳤다.

「맹로는 어디다 두셨습니까?」

행보의 외치는 소리를 들은 계우가 갑자기 깨닫고 고의로 허점을 보이기 위하여 대치하고 있던 자리에서 몸을 돌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체했다. 영나가 한 걸음을 앞으로 다가오자 계우가 몸을 다시 돌려 허리에 차고 있던 맹로를 뽑아 영나를 향해 번개처럼 휘둘렀다. 가엾게도 영나의 두개골은 눈썹을 따라서 옆 방향으로 절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러나 맹로의 칼날에는 핏자국이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참으로 맹로는 보기드문 천하의 보검이었다. 거나라 군사들이 자기들의 주장의 머리가 계우의 한 칼에 두 동강이가 난 광경을 보고 싸울 마음이 없어져, 각자가 목숨을 구하여 달아나 버렸다. 계우는 거군과의 싸움에 이기고 개선했다. 노희공이 친히 계우를 영접하기 위하여 도성밖에 까지 나와서 마중했다.

3. 노국삼환(魯國三桓)

- 삼환(三桓)을 세워 노나라에 재앙을 잉태시키다.-

조정으로 돌아온 희공은 계우를 상경으로 삼고 비읍(費邑)⑨을 채읍으로 하사했다. 계우가 희공에게 아뢰었다.

「신과 경보 및 숙아는 모두 돌아가신 환공의 낳은 형제들입니다. 신이 사직을 위하여 숙아에게는 짐주를 먹이고 경보는 목을 매달게 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직을 위해 대의멸친(大義滅親)을 하지 않았다면 노나라를 보전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두 사람은 모두 죽었지만 신만은 아직 살아서 영화을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큰 고을을 채읍으로 받았으니 제가 죽는다면 어떻게 지하에 계신 선친의 얼굴을 뵐 수가 있겠습니까?」

희공이 위로의 말을 했다.

「두 사람이 반역을 꾀했기 때문에 봉읍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숙부의 잘못이라고 하겠습니까?」

「두 사람이 반역할 뜻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행동으로 옮기기 전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정당한 형벌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두 사람의 아들에게 그들의 후사를 세우시어 친족 간의 정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

노희공이 계우의 말을 따라 즉시 경보와 숙아의 후사를 각각 그들의 장자 공손오(公孫敖)와 공손자(公孫玆)를 불러 세웠다. 공손오는 후에 맹손씨(孟孫氏)의 시조가 되고 공손자는 숙손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래 경보는 비록 환공의 서장자였으나 군주보다 높은 자를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중(仲)이라는 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중손(仲孫)을 씨로 삼았다가 후에 장자의 자를 찾아 맹손(孟孫)으로 씨를 바꾸어 사용했다. 희공은 공손오에게는 성읍(郕邑)⑩을 공손자에게는 후읍(郈邑)⑪을 식읍(食邑)으로 각각 주었다. 계우는 식읍인 비읍(費邑) 외에 문양(汶陽)⑫의 땅을 더 받았는데 후에 계손씨(季孫氏)의 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계손씨, 맹손씨, 숙손씨가 솥발같이 서서 노나라의 정권을 번갈아 장악하여 노환공(魯桓公)의 세 아들 후손이라는 뜻에서 삼환씨(三桓氏)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나라 도성의 남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너졌다. 노나라의 식자들은 멀쩡한 존귀함을 의미하는 문이 갑자기 무너졌으니 후에 반드시 다른 것이 무너진 것을 대체하게 되는 화를 입게 될 징조라고 하면서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고 했다. 사관이 이 일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손금의 징조가 기이하더니 마침내 공을 세웠다.

맹손과 숙손을 어찌하여 같이 봉하게 했는가?

난세에 하늘이 역신의 자손들을 편들었으니

삼가의 종주는 바로 노환공(魯桓公)이었다.

手文征異已褒功(수문정이이포공)

孟叔如何亦幷封(맹속여하역병봉)

亂世天心偏助逆(란세천심편조역)

三家宗裔是桓公(삼가종예시환공)

한편 애강이 주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환공이 고 관중에게 말했다.

「노나라의 환공과 민공 두 군주와 공자반이 자기 명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이유는 모두 우리나라의 두 강씨 때문이었습니다. 애강을 불러 죄를 묻지 않는다면 노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원망하고 혼인으로 맺은 두 나라 사이의 좋은 관계는 끊어지게 될까 걱정됩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그 시댁에 죄를 얻는다 할지라도 그 친정집에서는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주공께서 그녀를 불러 치죄하시려고 한다면 마땅히 아무도 몰래 은밀히 하셔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환공은 즉시 수초를 주나라에 보내 애강을 제나라로 데려오도록 명했다. 애강이 수초를 따라 이(夷)⑬ 땅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관사에 묵게 되었다. 수초가 애강을 찾아가 고했다.

「부인께서 공자반과 민공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노인이건 제인이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부인께서 노나라에 돌아가신다면 무슨 면목으로 태묘에 절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부인의 잘못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

수초가 하는 말을 들은 애강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큰소리로 목 놓아 울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우는소리가 멈추며 조용해 졌다. 수초가 사람을 시켜 잠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애강은 이미 목을 메달아 죽은 후였다. 이 땅의 관리에게 지시하여 애강의 시신을 수습한 수초가 노희공에게 사람을 보내 급보를 띄웠다. 노희공은 애강의 시신이 담긴 관을 맞이하여 부인의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게 하면서 말했다.

「모자의 정은 끊을 수 없다.」

이어 시호를 애(哀)라 하였기 때문에 후에 애강(哀姜)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 하던 절차에 따라 애강을 노나라의 태묘에 모셨는데 이것은 도에 지나친 처사라 했다.

4. 택귀위사(澤鬼委蛇)

- 늪지의 귀신 위사(委蛇)의 모습을 고한 제나라의 농부 황자(皇子)

한편 제환공이 연나라를 산융의 침입으로부터 구해 내고 내란이 일어난 노나라를 평정하여 그 위엄이 더욱 중원에 떨치게 되었다. 천하의 제후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제환공에게 복종했다. 관중을 더욱 신임하여 모든 제나라의 정사를 일임한 제환공은 자기는 연회와 사냥을 즐기는 일에 전념했다. 하루는 수초에게 수레를 몰게 하여 큰 소택지의 언덕으로 사냥을 나갔다. 수레와 말을 탄 사수들이 달아나는 짐승들을 향하여 활을 날리는 광경을 보고 환공은 매우 즐거워했다. 그러던 와중에 환공이 갑자기 눈길을 멈추고 얼마동안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엇인가를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수초가 보고 물었다.

「주공께서 무엇을 보고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과인이 금방 하나의 귀신을 보았다. 귀신의 모습이 심히 기괴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모습이 사라졌다. 아마도 상서롭지 못한 징조가 아닌가 해서다.」

「귀신은 어두운 곳이거나 밤에 나타나는데 어찌 백주 대낮에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선군께서 고분(姑棼)의 들에 나가서 사냥을 하시던 중에 만난 큰 멧돼지 귀신도 밤이 아니라 백주 대낮에 나타났었다. 너는 빨리 가서 중보를 모시고 오너라.」

「중보는 성인이 아닌데 어찌 귀신의 일을 모두 알 수 있겠습니까?」

「중보는 능히‘유아(兪兒)’도 알 수 있었는데 어찌하여 성인이 아니라고 하느냐?」

「연나라 원정길에서는 주공께서 유아의 모습을 중보에게 먼저 설명했기 때문에 중보가 주공의 뜻을 짐작하여 아름다운 말로 장식하여 주공으로 하여금 행군을 계속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주공께서 단지 귀신을 보았다는 말 외는 다른 말을 일체 하지 말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보가 그 귀신에 대해 맞춘다면 중보는 진정한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환공이 허락하고 즉시 어가를 몰아 궁궐로 돌아왔으나 환공은 그 귀신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 속에 두려운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날 밤 환공은 학질과 비슷한 증상의 큰 병을 앓았다. 다음 날 관중과 여러 대부들이 문병을 왔다. 환공이 관중을 불러 그 전날 사냥터에서 귀신을 보고 나서 병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귀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하여 말로써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보께서 그 귀신의 모습을 대신 이야기 해줄 수 없겠습니까?」

관중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했다.

「신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초가 환공의 곁에 서 있다가 관중이 물러가자 웃으면서 말했다.

「신은 원래 중보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환공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관중이 심히 걱정하여 성문 위에다 방을 써 붙이게 하였다.

「만약에 우리 주공께서 사냥터에서 보신 귀신을 알아맞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받은 봉읍의1/3을 나누어주도록 하겠다.」

관중이 방을 붙인 지 며칠이 지나자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몸에는 더덕더덕 기운 누더기를 걸친 걸인 모습의 사람이 한 명 찾아와 관중에게 접견을 청했다. 관중이 직접나와 두 손을 높이 올려 읍을 하고 안으로 안내했다. 그 걸인 차림의 사람이 말했다.

「주군께서 병이 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걸인차림의 사람이 다시 물었다.

「주군께서는 그 병을 큰 소택지 가운데서 얻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대는 주군께서 보신 귀신의 모습을 상세히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마땅히 그대와 함께 부귀를 함께 하리라!」

「청컨대 주군을 배알하게 해주시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관중이 환공의 침실로 찾아가자, 환공은 방석을 여러 장 겹쳐 깔고서 앉아 있으면서 궁녀들에게는 등과 발바닥을 주무르게 하고 있었다. 수초가 탕약을 바치자 환공이 받아서 마셨다. 관중이 환공에게 말했다.

「주공의 병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군께서 부르시어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

제환공이 그 걸인 차림의 사람을 불러서 침실로 들어오게 했다.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몸에는 누더기를 걸쳐 입고서 침실 안으로 들어오는 초라한 모습의 사람을 본 환공은 마음이 매우 불쾌했다. 제환공이 다짜고짜로 그 사람을 향하여 물었다.

「중보가 귀신의 일을 알아맞힐 사람을 데리고 왔다던데 그 사람이 바로 그대인가? 한번 그 귀신에 대해 말해보라!」

그 걸인 차림의 사람이 대답했다.

「군주께서 스스로 몸을 상하게 했지 귀신이 어떻게 감히 주군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귀신이 없다는 말인가?」

「왜 없겠습니까? 물에는 ‘망상(罔象)’⑭이 있고, 언덕에는 도깨비 귀신 ‘신(峷)’이 있습니다. 깊은 산중에는 ‘기(夔)⑮’가, 넓은 들에는 ‘방황(彷徨)’, 큰 늪에는 ‘위사(委蛇)’라는 귀신들이 있습니다. 주군께서 보신 귀신은 위사입니다.」

「그대는 위사의 모습을 말할 수 있는가?」

「무릇 위사라는 귀신은 몸통은 커다란 수레바퀴 같고 그 길이는 수레의 끌채와 같습니다. 몸에는 자색 옷을 입고 머리에는 붉은 색의 관을 쓰고 있습니다. 위사는 수레가 달릴 때 나는 소리를 제일 싫어합니다. 수레가 달리는 소리가 나면 머리를 들어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모습이 너무도 무서워 감히 자세하게 쳐다보지 못합니다. 그런 위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시하여 자세히 쳐다본 사람은 반드시 천하를 제패한다고 했습니다.」

제환공이 껄껄 웃더니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대가 말한 내용은 과연 내가 본 것과 같다!」

어느 사이에 환공의 정신이 맑아지더니 이윽고 언제 아팠냐는 듯이 병은 말끔히 나아버렸다. 제환공이 그 걸인 차림의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는가?」

「신의 이름은 황자(皇子)라고 합니다. 제나라 서쪽 변경에서 땅을 갈아먹고 사는 농부입니다.」

「그대는 내 곁에 머물며 벼슬을 살면 어떻겠는가?」

제환공이 즉시 대부의 작위를 황자에게 내리려고 하였으나 황자가 사양하며 말했다.

「주공께서 왕실을 떠받들고 사방의 오랑캐를 억누르며 천하를 안정시켰기 때문에 백성들도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은 단지 주공께서 이룩한 태평성대를 맞이하여 한 사람의 백성으로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데 방해나 받지 않는다면 만족할 뿐이겠습니다. 저로서는 벼슬을 감당할 만한 재주가 없습니다.」

「과연 그대는 고고한 선비로다!」

제환공은 즉시 황자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하고 관리에게 명하여 그가 사는 시골집을 수리해 주도록 명했다. 또한 관중에게도 많은 상을 내렸다. 수초가 보고 말했다.

「이 일은 중보가 아니라 황자가 한 일입니다. 어찌하여 중보에게 중상을 내리십니까?」

「과인이 알기에‘일을 혼자만 하려는 자는 어리석고,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려는 자는 지혜롭다’고 했다. 중보가 아니었다면 과인이 어찌 황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겠느냐?」

수초가 환공의 말에 감복했다.

주혜왕17년 기원전 660년에 적인(狄人)이 형국(邢國)⑯ 침범하고는 다시 군사를 움직여 위나라를 공격해 왔다. 위나라 의공(懿公)은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했다. 여러 대부들이 구원병을 보내 위나라를 구원할 것을 환공에게 청했다. 환공이 말했다.

「우리나라 군사들이 북쪽의 융족을 정벌한 피로를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봄이 되면 여러 제후들과 군사를 합하여 구해도 늦지 않으리라!」

그해 겨울에 위나라 대부 영속(寧速)이 제나라에 와서 고했다.

「우리 위나라 도성은 적인들에 의해 이미 점령되고 의공은 싸움 중에 전사하였습니다. 지금 이곳 제나라에 살고 계시는 공자훼(公子毁)를 모셔가 저희 위나라 군주로 받들고자 합니다. 」

제환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내가 구원병을 일찍 보내 구하지 않아, 그 사이에 위나라가 망했으니 모두가 나의 잘못이로다!」

《제23회로 계속》

주석

①애강(哀姜)/ 연의(演義) 원전에는 제양공(齊襄公)의 어린 딸이며 문강(文姜)의 조카라고 했지만 정사에 의하면 제양공의 어린 여동생이다. 제희공(齊僖公) 소생인 제환공의 형제자매들은 다음과 같다. (나이 순)

1. 선강(宣姜)- 위선공의 부인이다. 선공의 세자인 급자(急子)의 부인으로 위나라에 시집갔다가 선강의 미모에 반한 선공이 그 부인으로 삼았다.

2. 제양공- 동생인 문강(文姜)과 사통하다가 과시(瓜時)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연칭(連称)과 관지보(管至父)의 반란에 의해 살해되었다.

3. 자규(子糾)- 환공 소백과 제후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노장공에 의해 살해당했다.

4. 소백(小白)- 제양공의 뒤를 이어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제환공이다.

5. 문강(文姜)- 노환공이 부인이었으나 자기의 오빠인 제양공과 간통하다가 탄로나자 제양공에게 부탁하여 노환공을 죽이게 했다. 노환공과의 사이에서 노장공을 낳았다.

6. 애강(哀姜)- 문강의 어린 여동생이나 문강의 소생인 노장공의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장공의 총애를 받지 못하자 노장공의 서형인 공자 경보(慶父)와 사통했다. 환공이 제나라로 소환하던 중에 죽였다.

7. 숙강(叔姜)- 애강이 노장공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지 못하자 노장공의 차비가 되었다. 장공과의 사이에 공자 계(啓)를 낳았다. 이가 노민공(魯湣公="閔公)이다."

②어인(圉人)/ 궁중의 말을 기르는 관리들의 우두머리

③육조(六朝)/ 후한이 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존재했던 한족이 세운 여섯 왕조를 말한다. 즉 위(魏), 진(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왕조다.

④랑(郞)/ 춘추 때 노나라 땅으로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동북이라는 설과 다른 한편 사기 공자세가 중 冉有爲季氏將師, 與齊戰于郞이라는 기사가 있으나 좌전 애공(哀公) 11년 조에는 「戰于郞」 대신에 「戰于郊」라고 되어 있어 랑(郞)을 교(郊)의 오기(誤記)로 봤다. 즉 노민공(魯閔公)이 계우(季友)를 불러 만난 곳은 지금의 곡부시 근교로 보았다.

⑤무위문(武闱门)/ 궁궐의 통로에 세운 문.

⑥주(邾)/ 주루(邾婁)라고도 한다. 춘추 때 조성(曹姓)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산동성 비현(費縣), 추현(鄒縣), 등현(滕縣), 제녕시(濟寧市) 일대를 전전했던 소 제후국이다. 처음에는 지금의 산동 곡부시 동남의 추촌(陬村)을 도읍으로 하다가 주경왕(周頃王) 5년 기원전 614년 주문공(邾文公) 때 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 남쪽에 있던 추역산(鄒繹山) 밑으로 천도했다. 전국 때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맹자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⑦남양(南陽) /춘추전국 때 남양이라는 지명은 다음이 세 곳이 있었다.

1.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에서 획가현(獲嘉縣)에 이르는 태항한 남록(南麓)과 황하의 북안 일대를 가르킨다.

2. 지금의 하남성 서남부 일대의 복우산(伏牛山) 남쪽과 한수(漢水)의 북쪽 사이의 일대를 말한다.

3. 지금의 산동성 태산(泰山)의 남쪽과 문수(汶水)의 북쪽 지방 일대를 가르키며, 춘추 때 노나라에 속했으나 후에 제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본문의 남양은 이곳을 말한다.

⑧력(酈)/ 전국 때 초나라 령으로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서북에 있었다. 진나라 때 이 곳에 역현(酈縣)을 설치했다. 거나라와 노나라가 싸운 력성(櫪城)은 이곳이 아니나 알 수 없

⑨비읍(費邑)/ 지금의 산동성 비현(費縣) 북에 있던 고을로 춘추 때 노나라 삼환씨 중의 하나인 계손씨들의 봉읍이다.. 전국 때는 노나라가 초나라에 멸망당한 후에도 독립된 후국으로 남아있었다.

⑩성읍(郕邑)/ 현 산동성 곡부(曲阜) 북쪽 25키의 영양현(寧陽縣) 경내에 있었던 노나라 소속의 고을로, 정장공(鄭庄公)과 제희공(齊僖公) 때 연합군을 결성하여 공격하여 제나라의 위성국(衛星國)이 되었다. 후에 다시 노나라에 편입되어 노나라 삼환씨 중의 하나인 맹손씨(孟孫氏)의 식읍(食邑)이 되었다. ⑪후읍(郈邑)/ 지금의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북서쪽 약 50키로 되는 곳으로 동

⑫문양(汶陽)/ 산동성 태산(泰山)에서 발원하여 태안시(泰安市) 동쪽을 우회하여 동평시(東平市)와 문상시(汶上市)를 남북으로 가르며 동쪽으로 흘러 양산(梁山) 부근에서 대야택(大野澤)으로 흘렀던 춘추 때 제와 노 두 나라를 갈랐던 문수(汶水) 북안과 태산 서남 일대의 땅을 총칭한 지명이다. 평현(東平縣) 경내에 있었다.

⑬이(夷)/ 지금의 산동성 청도시 관할 즉묵시(卽墨市) 남천진(南泉鎭)이다.

⑭망상(罔象)/용의 모습을 하고 물 속에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귀신으로 용망상(龍罔象)이라고도 한다.

⑮기(夔)/ 고대 전설에 나오는 다리가 하나인 용과 비슷한 동물의 일종. 황제가 기를 잡아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치우와 판천의 뜰에서 싸울 때 사용했다고 했다.

⑯형국(邢國)/ 서주 초부터 춘추 초기까지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일대에 존재했던 희성(姬姓)의 제후국이다. 작위는 후작으로 주공(周公) 단(旦)의 4자 형붕숙(邢朋叔)이 봉해졌다. 기원전 635년, 위문공(衛文公) 훼(毁)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멸망시키고 그 땅은 위나라에 병탄되었다.

울리히
12-05-01 00:59 
잘 보았습니다.
목록 비추천
1511
占쏙옙占쏙옙천
[일반] 제후연표-2부2권 (기원전 685-651년)

제2부-제2권 관포지교( 기원전 685-651년) 기원 전 周 대사(大事) 魯 齊 唐晉 陝秦 楚 宋 衛 陳
42.5K 양승국 04-05-11 1962
[일반] 춘추오패 연표

紀元前 年代表 齊 宋 唐晉 陝秦 楚 685 제환공 소백(小白) 즉위하고 관중(管仲)을 제나라 상국으로
35.4K 양승국 04-05-11 1713
[일반] 2부-2권 관중과 포숙 목차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제
양승국 04-05-11 1862
[일반] 제24회. 盟楚召陵 (맹초소릉), 義戴天子(의대천자)

제24회 盟楚召陵義戴天子(맹초소릉 의대천자) 소릉에서 초나라와 맹약을 맺고 규구(葵邱)①에서 대의를 밝혀 천자를 추대했다. 1. 맹초소릉(盟 (1)
양승국 04-05-11 1843
[일반] 제23회. 好鶴亡國(호학망국), 南征荊蠻(남정형만)

제23회 好鶴亡國 南征荊蠻(호학망국 남정형만) 학에 탐닉하여 나라를 잃은 위의공과 제후군을 규합하여 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제환공 1.
양승국 04-05-11 1479
[일반] 제22회. 魯國三桓(노국삼환), 澤鬼委蛇(택귀위사)

제22회 魯國三桓 澤鬼委蛇(노국삼환 택귀위사) 시작되는 노나라 삼환씨의 권세와 늪 속의 위사를 제환공에게 고한 농부 황자 1. 경보지란(慶 (1)
양승국 04-05-11 1463
[일반] 제21회. 智辨兪兒(지변유아), 兵定孤竹(병정고죽)

제21회智辨兪兒 兵定孤竹①(지변유아 병정고죽) 지혜로써 유아를 알아보는 관중과 북벌을 행하여 고죽국을 평정한 제환공 1. 북벌산융(
양승국 04-05-11 1503
[일반] 제20회. 違卜立妃(위복립비), 子文相楚(자문상초)

제20회 違卜立妃 子文相楚(위복립비 자문상초) 점괘를 무시하고 여희를 부인으로 세우는 진헌공과 재상이 되어 초나라를 부흥시킨 자문 투곡오토( (1)
양승국 04-05-11 1531
[일반] 진헌공의 복잡한 가계 현황표

부인명 소생 결과 비 고 가희(賈姬) 없음 태자 때 부인이었으나 소생 없이 일찍 죽었다. 제강(
양승국 04-05-11 1634
[일반] 제19회. 擒將復國(금장복국), 殺頹反正(살퇴반정)

제19회擒將復國 殺頹反正(금장복국 살퇴반정) 부하(傅瑕)를 사로잡아 나라를 다시 찾은 정려공 돌과 왕자퇴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복귀한 주 (1)
양승국 04-05-11 1627
[일반] 재18회. 曹沫劫盟(조말겁맹), 寧戚擇主(영척택주)

제18회 曹沫劫盟 寧戚擇主(조말겁맹 영척택주) 칼로 회맹장을 범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은 조말과 제환공을 시험하여 자기의 군주로 선택한 영척
양승국 04-05-11 1655
[일반] 제17회. 戱言招禍(희언초화), 除狼得虎(제랑득호)

제17회 戱言招禍 爭媚强楚(희언초화 쟁미강초) 신하를 희롱하다 맞아 죽은 송민공과 서로 다투어 초왕을 받들다가 해를 입는 식채(息蔡) 두나라
양승국 04-05-11 1579
[일반] 제16회, 釋囚薦相(석수천상), 長勺敗齊(장작패제)

제16회 釋囚薦擧 長勺敗齊(석수천거 장작패제) 함거의 죄수를 풀어서 천거하는 포숙과 장작에서 제나라 군사를 물리친 조귀(曹劌) 1. 가
양승국 04-05-11 1745
[일반] 제15회. 射中帶鉤(사중대구), 乾時大戰(건시대전)

. 제15회 射中帶鉤 乾時大戰(사중대구 건시대전) 허리띠에 꽂힌 화살로 군위를 차지하는 제환공이 건시에서 노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무찌르다.
양승국 04-05-11 1517
[일반]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양승국 04-05-11 1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