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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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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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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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0:16:287959 
제17회. 戱言招禍(희언초화), 除狼得虎(제랑득호)
양승국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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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17-1. 송나라와 함께 노나라에 반격을 가하는 제나라 복사[1].jpg  (1.2M)   download : 126
일반

제17회 戱言招禍 爭媚强楚(희언초화 쟁미강초)

신하를 희롱하다 맞아 죽은 송민공과

서로 다투어 초왕을 받들다가 해를 입는 식채(息蔡) 두나라

1. 조귀논전(曹論戰)

- 조귀가 전쟁의 승패를 논하다. -

노장공이 제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친 후에 조귀에게 물었다.

「경이 어떻게 하여 한 번 친 북소리로 세 번 친 북소리를 이길 수 있었는가?」

조귀가 설명했다.

「무릇 싸움이란 기를 위주로 합니다. 기가 뻗어 나면 이기게 되고 기가 쇄하면 집니다. 북소리를 울리는 목적은 곧 기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북소리를 한 번 울리면 기를 성하게 하고 두 번 울리면 쇠하게 하며 세 번 울리면 다합니다. 제가 북을 치지 않고3군의 사기를 키우고 있는 동안 적은 이미 북을 세 번 울려 그 기가 이미 다하게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북을 한 번 울려 기를 성하게 하니 가득한 기로 이미 다한 기를 제압했습니다. 어찌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겠습니까?”

장공이 다시 물었다.

「제나라 군사들이 이미 패하여 도망쳤는데 처음에 어떤 생각으로 추격하지 못하게 하고, 후에는 어떤 생각으로 다시 추격하게 했는가? 그 연유를 말해 줄 수 있는가?」

「제나라 사람들은 평소에 속임수가 많아 복병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들이 싸움에 져서 달아나고 있는지의 여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레에서 내려 살펴보니 제군의 병거 바퀴자국이 종힁으로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제나라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어지러워 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개를 들어 멀리 살펴보니 후퇴하는 제군은 깃발을 정연하게 잡지 못하고 어지러이 도망가기에 급급함을 보고 주공께 뒤를 추격하도록 말씀 드렸습니다.」

조귀의 정연한 설명에 장공이 감탄했다.

「경은 가히 군사의 일을 안다고 할 수 있겠다!」

노장공은 그 자리에서 즉시 조귀를 대부의 직에 제수하고 시백에게는 훌륭한 사람을 천거했다는 공으로 후한 상을 내렸다. 사관이 조귀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강제의 침략을 받은 노나라의 조정이 근심했지만

포의의 은사가 이미 승전의 계책을 준비해 놓고 있었네!

변경의 군사들로부터 첩보가 없다고 괴이하다 생각하지 말라

원래 육식자는 좋은 계책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는 법이다.

强齊壓境擧朝懮(강제압경거조우)

韋布誰知握勝籌(위포수지악승주)

莫怪辺庭捷報杳(막괴변정첩보묘)

繇來肉食小佳謀(요래육식소가모)

주장왕(周庄王) 13년 기원전684년의 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나라 군사가 싸움에서 지고 돌아오자 제환공이 노하여 말했다.

「군사가 출동하여 공을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어찌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포숙이 송구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제와 노 두 나라는 모두 천승의 나라라 그 세력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강하고 약함으로 인하여 주객이 수시로 바뀝니다. 옛날에 건시에서의 싸움은 우리가 주인이었고 노나라가 손님이었던 관계로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장작의 싸움에서는 반대로 노나라가 주인이고 우리는 손님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졌습니다. 원컨대 명을 내려주시면 송나라에서 군사를 빌려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노나라를 공격하여 장작에서의 패전을 설욕하겠습니다.」

제환공이 포숙의 청을 허락했다. 포숙은 즉시 송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그때 송나라는 장공(莊公) 풍(馮)이 죽고 아들 민공(閔公) 첩(捷)이 뒤를 이어 군위에 있었다. 제양공 때부터 양국사이에는 어떤 일이건 항상 행동을 같이 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송민공은 제나라에 소백이 새로이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통호를 하려는 중이었다. 제나라의 지원 요청을 곧바로 허락한 송민공은 그 즉시 출병할 날짜를 그해 여름6월 초순으로 정하고 제나라 군사들과는 랑성(郎城)①에서 회합하기로 약속했다. 이윽고 출병할 날이 되자 송민공은 남궁장만(南宮長萬)을 대장으로 맹흭(猛獲)을 부장으로 삼아 노나라를 공격하는 제군을 돕기 위해 출병하자 제나라도 포숙을 대장으로 중손추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각기 대병을 이끌고 출전시켰다. 두 나라의 군사들이 약속한 날짜에 당도하여 제군은 낭성의 동북에 송군은 동남에 각각 진을 쳤다. 두 나라 군사가 랑성에 포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장공이 말했다.

「포숙아가 원한을 품고 다시 쳐들어오면서 송나라 군사까지 몰고 왔는데 송나라의 대장 남궁장만이란 장수는 촉산(觸山)에 있는 가마솥까지 들어 올렸다는 장사라 우리나라에는 그를 대적할만한 장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 군사들이 마주보면서 상호간에 서로 기각지세(掎角之勢)②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막아 낼 수 있겠는가?」

공자언(公子偃)이 앞으로 나와서 아뢰었다.

「신이 나아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펴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공으로부터 출전을 허락 받은 공자언이 물러 나와 전차를 타고 진영 밖으로 나간 후 얼마 후에 다시 돌아와 보고했다.

「제군 대장 포숙은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군용이 매우 엄숙합니다. 그러나 송나라의 대장 남궁장만은 자기의 용기를 과신한 나머지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 대오가 매우 난잡합니다. 만일 우문(雩門)③을 통하여 몰래 성문 밖으로 나아가 그들이 아직 정비를 하지 않고 있을 때 기습하면 송나라 군사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송군을 무찌르면 제군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갈 것입니다.」

「그대가 장만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신이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내가 친히 그대의 뒤를 엄호하리라!」

공자언이 군사들을 이끌고 곧바로 호랑이 가죽 백여 개를 말에다 뒤집어씌우고 몽롱한 달빛을 이용하여 깃발을 접고 북소리를 죽여 우문을 통해 성문 밖으로 출동했다. 공자언이 이끈 노나라 군사들이 송군 진영에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불구하고 송나라 군사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공자언은 군사들에게 송군 진영에 불을 놓게 하고 일시에 하늘이 진동하도록 쟁이와 북을 울리면서 송군 진영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도록 명했다. 먼 불빛 아래에서 한 떼의 호랑이들이 포효하고 있다고 생각한 송나라 진영의 군사들은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허둥대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남궁장만이 비록 용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서로 다투어 도망치기에 바쁜 병거와 보졸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노장공이 노군의 본대를 이끌고 전장터에 당도하여 공자언의 부대와 합친 후 밤을 도와 도망치는 송군의 뒤를 추격했다. 남궁장만이 도망치다가 승구(乘邱)④ 땅에 이르러 부장 맹획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맹획이 장만의 명령에 큰 소리로 대답하고 진영 앞으로 나아가 공자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궁장만도 길다란 창을 들고 노후가 있던 곳으로 돌진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군사들을 모두 찔러 넘어뜨렸다. 장만의 사나운 용력을 겁낸 노나라 군사들은 더 이상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노장공이 융우(戎石)⑤ 전손생(顓孫生)을 향해 말했다.

「과인은 평소에 그대의 용력에 대해 소문을 익히 들었다. 장만과 한판 승부를 결하여 그 우열을 가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손생이 장공의 명을 받고 역시 대극을 손에 들고 장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 앞을 가로막고 싸움을 걸었다. 장공이 수레 앞의 횡목(橫木)에 기대어 서서 둘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전손생이 장만을 당해내지 못하자 곁에 있던 시자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내가 금복고(金僕姑)를 사용하리라!」

- 금복고란 노나라 군기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갑옷을 뚫을 수 있는 힘이 좋은 화살이다- 시자가 달려가서 금복고를 가져와 장공에게 바쳤다. 장공은 화살을 활시위에 메겨 장만을 잔뜩 겨냥해서 쉿 소리를 내며 화살을 날렸다. 장공이 쏜 화살은 장만의 오른쪽 팔에 꽂혀 뼛속 깊이 밝혔다. 장만이 손으로 화살을 뽑는 사이에 전손생이 그 사이에 죽을힘을 다하여 대극으로 장만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상처를 입고 땅에 쓰러진 장만이 다급하게 저항해 보려고 했으나 역불급으로 전손생에게 잡혀 두 손을 결박당하고 말았다. 이어서 수많은 노나라 군사들이 달려들어 장만을 에워싼 후에 사로잡아서 노나라 진영으로 끌고 왔다. 주장이 사로잡힌 것을 본 맹획은 전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노장공은 송군과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를 한 후에 쟁이를 울려 군사를 불러 들였다. 전손생이 장만을 끌고 와서 노장공에게 바쳤다. 팔과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장만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였으나 추호도 그 아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장공이 그 용기를 가상하게 생각하고 예를 갖추어 대했다. 송나라 군사가 노나라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포숙은 제군만으로는 노군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군사를 이끌고 퇴각해 버렸다.

노나라도 감히 그 뒤를 추격하지 못하고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자 그 후로 제노 두 나라는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2. 욕사초화(辱士招禍)

- 장사를 모욕하여 목숨을 잃은 송민공-

그리고 얼마 후 행차를 대대적으로 준비한 제환공은 습붕을 사자로 삼아 주나라에 보내 자기의 즉위를 고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주왕실에 혼사를 청했다. 다음 해에 주나라가 주왕실의 왕녀를 제나라에 시집보내기로 하고 노장공으로 하여금 제환공과의 혼사에 관한 일을 주관하게 했다. 서(徐), 채(蔡), 위(衛) 세 나라는 각기 그 공녀를 왕녀의 몸종으로 바쳤다. 노장공이 혼사를 주선하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자 이후로는 제와 노는 서로 다시 통호하고 두 번의 싸움에서 이기고 진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그해 가을철 송나라에 큰 홍수가 나자 노장공이 돕고자 신하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제나라와는 이미 통호를 하였는데 송나라와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원수지간으로 지내고 있는가?」

노장공은 즉시 사자를 보내어 홍수의 피해를 입은 송나라를 위문했다. 수재를 위문하는 노나라의 마음에 고맙게 생각한 송나라 역시 사자를 보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장만을 석방하여 보내 달라고 청했다. 노장공이 송나라의 청을 받아들여 장만을 석방하여 귀국하게 했다. 이때부터 제(齊), 노(魯), 송(宋) 세 나라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되어 각기 옛날의 좋지 않았던 감정을 털어 버렸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건시와 장작의 싸움에서도 서로 자웅을 가리지 못하더니

또다시 승구에서 송나라 군사가 복멸 되었다.

승부는 서로 무상하여 결국은 잃는 것뿐이니

수호를 맺어 서로간의 위태로움을 없애야 되지 않겠는가?

乾時長勺互雄雌(건시장작호웅자)

又見乘邱覆宋師(우견승구복송사)

勝負無常終有失(승부무상종유실)

何如修好兩无危(하여수호양무위)

이윽고 남궁장만이 노나라에서 방면되어 송나라에 당도하자 송민공이 놀리면서 말했다.

「옛날에는 내가 장군을 매우 존경했으나 지금은 노나라의 잡혀갔다가 온 일개 포로에 불과할 뿐이라 더 이상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

장만이 크게 부끄러워하여 민공 앞에서 물러 나왔다. 대부 구목(仇牧)이 아무도 몰래 조용히 민공에게 말했다.

「군신간에는 서로 예로써 대하여야 하며 희롱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는 서로 높이지 않는 것이며 높이지 않게 되면 즉 태만하게 됩니다. 태만하면 예의가 없어지게 되어 패역의 일로 발전하게 됩니다. 주군께서는 이 점을 필히 가슴에 새겨 장만을 대할 때 더 이상 희롱하는 마음을 금하시기 바랍니다. ”

민공이 구목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대답했다.

「나와 장만은 어려서부터 자라면서 서로 간에 스스럼없는 사이라 그는 마음을 상하지 않을 것이오.」

기원전681년 주장왕이 재위15년 만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태자 호제(胡齊)가 뒤를 이어 주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주희왕(周僖王)이다. 주나라의 사자가 천자의 부고를 들고 송나라에 당도했다. 그 때 송민공은 궁인들과 호수 가로 놀러 나와서 장만에게 척극(擲戟) 놀이를 시켜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 장만은 기막힌 재주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극을 여러 장 높이로 공중에 던진 놓고 극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손으로 잡는 기술인데 백 번에 한 번도 노치는 일이 없었다. 궁인들이 그 기술을 보고자 하였음으로 민공이 장만을 불러 척극 놀이를 해보라고 시켰다. 장만이 명을 받들어 한바탕 재주를 피우자 궁녀들이 그 재주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궁인들이 환호하자 민공은 속으로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 내시에게 명하여 장기판을 가져오도록 하여 장만과 내기장기를 두어 진 사람은 커다란 금잔에 술을 가득 따라 벌주로 마시기로 했다. 그러나 장기 두기는 민공의 장기였다. 연달아 다섯 판을 지게 되어 벌주 다섯 잔을 내리 마시게 된 장만은 이미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고 다시 한 번만 더 두자고 민공에게 졸랐다. 민공이 소리쳤다.

「지는 것 밖에 모르는 죄수 주제에 어찌 감히 나와 장기를 또다시 두어 이기려고 하느냐?」

장만은 마음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하여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궁 안의 시종이 와서 보고하였다.

「천자의 명을 전하기 위해 주나라의 사자가 당도했습니다.」

송민공이 주나라 사자를 접견하고 그 온 뜻을 묻자, 천자가 붕어하여 새로운 천자가 섰음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민공이 말했다.

「주왕실에 이미 새로운 왕이 섰으니 마땅히 사자를 보내 돌아가신 왕에 대해 조문을 행하고 신왕에게는 경축의 뜻을 표해야 하겠다.」

장만이 곁에 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청했다.

「신은 아직 주나라 왕도의 번성함을 본적이 없습니다. 원컨대 제가 사자의 명을 받들어 주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민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송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죄수로 있던 자에게 사자의 임무를 맡기겠느냐?」

곁에 있던 궁인들이 모두 웃자 장만의 얼굴과 목이 붉게 물들면서 수치심이 분노로 변하고 또한 술이 많이 취한 관계로 갑자기 노기를 폭발시켜 군신간의 직분도 잊은 채 송민공을 향해 욕을 했다.

「무도혼군아! 너는 죄수가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송민공도 역시 화를 내며 말했다.

「죄수출신의 도적놈이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이냐?」

송민공은 장만이 재주를 자랑하기 위해 사용했던 극을 들고 장만을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장만은 민공의 극을 피하려고 하는 대신에 곁에 있던 장기판을 들어 민공을 향해 던졌다. 장기판에 맞고 쓰러진 민공에게 장만이 달려들어 주먹으로 머리를 쳤다. 가엽게도 민공은 장만의 철퇴같은 주먹을 맞자 머리가 터져 죽고 말았다. 궁인들이 갑자기 일어난 참혹한 일에 놀라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장만이 노기를 식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극을 잡고 걸어 나오는데 대부 구목을 만났다. 구목이 물었다.

「주공은 어디 계십니까?」

「혼군이 무례하여 내가 이미 죽여버렸소.」

구목이 농담인줄 알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군께서 많이 취하셨습니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은 정말이다.」

장만은 곧바로 자기의 손바닥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구목에게 보여주었다. 구목이 갑자기 안색을 바꿔 큰 소리로 꾸짖었다.

「시역을 저질은 도적놈아! 하늘이 용서하지 않으리라!」

구목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홀(笏)을 높이 들어 장만을 향해 내리 쳤다. 그러나 구목은 호랑이 같은 장만의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구목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장만은 오른 손으로 홀을 잡아 땅에 떨어뜨리고 왼손을 한 번 휘둘러 구목의 머리를 가격했다. 가엽게도 구목의 머리는 마치 가루가 되듯 부서져 버렸다. 다시 장만이 이미 숨이 넘어간 구목의 시체를 들어 앞으로 던지자 구목의 몸은 솟구쳐 날아가 문짝에 박혀 그 깊이가 세 치나 되었다. 실로 장만은 보기 드물게 힘이 센 장사였다. 구목을 맨손으로 죽인 장만이 바닥에 떨어진 극을 주어들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수레에 올라타는데 그 태도가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송나라 군위에 즉위한지10년 만에 송민공은 단지 한마디의 희롱하는 말 때문에 역신의 독수를 만나 죽고 말았다. 춘추의 난세에 군주를 시해하기를 마치 닭 모가지 비틀어 죽이듯이 하여 가히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후세의 사관이 『구목을 찬함』이라는 글을 지었다.

세상의 도덕이 무너지고

강상(綱常)이 땅에 떨어졌다.

당 사이에 발을 치지 않고

군신이 함부로 희롱했다.

군주가 먼저 말로써 놀리니

신하가 극으로 답했다.

장하다 구목이여!

잡고있던 홀(笏)로 역적을 내리치니

흉포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을 막아서

충성스러운 가슴에서 피가 흘렀다

죽음은 태산과 같이 무겁고

이름은 해와 달보다 더 밝게 빛났도다

綱常掃地(강상소지)

堂簾不隔(당렴불격)

君臣交戱(군신교희)

君戱以言(군희이언)

臣戱以戟(신희이극)

壯哉仇牧(장재구목)

以笏擊賊(이홀격적)

不畏强禦(불외강어)

忠肝瀝血(충간력혈)

死重泰山(사중태산)

名光日月(명광일월)

변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태제 화독이 군사를 동원하여 란을 진압하기 위해 칼을 찾아 옆구리에 차고 수레를 몰아 궁을 향해 달려갔다.동궁의 서쪽으로 나아가던 화독은 마침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장만과 마주쳤다. 화독에게 다짜고짜로 덤벼들어 한 창에 찔러 수레 밑으로 떨어뜨린 장만이 쓰러진 화독의 몸을 다시 한 번 더 찔러 살해했다. 공부가와 송상공을 비명에 죽게 한 악인의 허무한 말로였다. 장만은 민공의 종제(從弟)인 공자유(公子游)를 받들어 송나라 군주로 삼고 오족(五族)의 종족들을 모두 도성 밖으로 추방했다. 오족이란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 목공(穆公), 장공(庄公)의 후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송나라의 공자들 대부분은 소국(蕭國)⑥으로 도망쳤으나 공자어설(公子御說)만은 박(亳)⑦땅으로 갔다. 장만이 말했다.

「어설은 학문이 깊을 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고 또한 죽은 혼군의 동모제가 되기 때문에 박 땅에 머물게 내버려둔다면 반드시 변란을 일으킬 것이다. 어설 한 사람만 죽인다면 다른 공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장만은 그의 아들 남궁우(南宮牛)에게 맹흭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들을 주어 박 땅을 포위하여 어설을 토벌하도록 했다. 그해 겨울10월에 소숙대심(蕭叔大心)이 오족(五族)의 무리들을 이끌고 조(曹)나라의 군사들과 합하여 박성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공자어설이 박성 사람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와 호응했다. 앞뒤에서 협공을 당한 남궁우의 군사들은 대패하고 남궁우 자신은 싸움 중에 죽었다. 남궁우가 이끌고 온 패잔병들은 모두 어설에게 항복했다. 맹획은 감히 송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위(衛)나라로 달려가 투항했다. 대숙피가 어설에게 계책을 말했다.

「항복한 군사들의 깃발을 사용하여 남궁우 등이 이곳 박을 점령하여 어설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는 중이라고 소문을 내면서 도성으로 진격하시기 바랍니다.」

어설이 먼저 몇 사람을 보내 소문을 퍼뜨리게 하자 장만은 그 말을 믿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어설과 여러 공자들의 군사들이 당도하여 남궁우의 군사들이라고 속이자 성안 사람들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 주었다. 성안으로 돌입한 어설과 공자들의 군사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역적 한 사람만 잡고자 하니 다른 사람들은 놀라지 말라!」

장만이 창망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황급하게 조당으로 달려가 공자유를 데리고 성밖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조당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시 한사람이 조당 안에서 나오더니 소식을 전했다.

「공자유께서는 이미 공자들의 군사들에게 살해 당하셨습니다.」

장만이 장탄식을 한번 하더니 열국의 여러 나라 중에서 송나라와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오로지 진(陳)나라뿐임을 생각해 내고 그곳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집에 계시는 팔십 노모에 생각이 미치자 탄식하며 말했다.

「어찌 천륜을 저버릴 수가 있겠는가?」

장만이 도망치다 말고 수레의 방향을 돌려 집으로 달려가서 노모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는 오른손으로는 극을 들고 왼손으로는 말의 고삐를 잡아 성문을 향해 달렸다.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을 극으로 찔러 죽인 후에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갔는데 그 행동이 마치 바람 같아 아무도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송나라와 진나라는2백6십리 거리였으나 장만은 수레를 몰아 불과 하루 만에 당도했다. 과연 귀신같은 장사로 고금에 없던 희귀한 일이었다.

한편 이미 공자유를 죽인 여러 공자들은 공자 어설(御說)을 받들어 송군으로 추대했다. 이가 송환공(宋桓公)이다. 송군의 자리에 오른 송환공은 대숙피를 대부로 삼고5족 중에 현명한 사람을 뽑아 공족대부를 시켰다. 소숙대심은 봉지인 소성(蕭城)을 지키기 위해서 임지로 돌아갔다. 또한 사자를 위나라와 진나라에 각각에 보내어 맹획과 남궁장만을 잡아서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 때 나이가6살 난 공자 목이(目夷)가 송환공의 옆에 서 있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목이는 환공의 서장자다.

「장만은 데려오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 네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용력이 있는 장사는 모든 군주들이 얻고 싶어 하는 법입니다. 송나라가 버렸으니 진나라가 반드시 가지려고 할 것입니다. 사자가 빈손으로 가서 어떻게 장만을 압송해 올 수 있겠습니까?」

송환공이 크게 깨닫고 즉시 명을 다시 발하여 많은 보물을 내어 사자에게 주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치게 했다. 먼저 송나라 사자가 위나라에 당도하여 맹획을 넘겨달라고 청하자 위후 삭(朔)이 여러 중신들에게 말했다.

「맹획을 주는 것이 좋겠는가? 주지 않는 것이 좋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사람이 궁한 처지에 우리에게 투항하였는데 어찌 이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대부 공손이(公孫耳)가 간했다.

「천하의 악은 모두 한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송나라의 악한 것은 위나라에도 악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악당을 머무르게 한다고 해서 위나라에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항차 위나라와 송나라는 통호하여 사이좋게 지낸 지 오랜데 맹획을 잡아서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송나라는 반드시 화를 낼 것입니다. 한사람의 악당을 비호하려다 한 나라의 환심을 잃게 되니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위혜공은 곧바로 맹획을 잡아 포박하여 송나라로 보냈다. 한편 진나라로 간 송나라 사자는 가지고 간 많은 보물을 진선공(陳宣公)에 바쳤다. 송나라에서 보내온 막대한 뇌물에 혹한 진선공은 장만을 잡아서 압송해달라는 송나라의 요청을 허락했다. 그러나 힘이 절륜한 장만을 잡아 포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한 진선공은 별도의 계책을 세웠다. 진선공의 명을 받은 공자결(公子結)은 남궁장만을 찾아가 환대하고 결의형제를 맺었다. 다음 날 장만이 친히 공자결의 집을 방문하여 자신을 환대해준 공자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공자결이 다시 술을 내와 장만에게 권하여 거나하게 취하게 만든 후에 다시 집안의 비첩들을 모두 나오게 하여 계속 술을 권하게 했다. 공자결의 비첩들이 따라주는 술을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신 장만은 대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공자결이 장사들에게 물소 가죽으로 만든 자루 속에 장만을 집어넣고 소 힘줄로 만든 밧줄로 겉을 묶게 했다. 진선공이 장만과 그의 노모도 함께 잡아서 송나라 사자에게 넘겨주자 사자는 밤을 도와 수레를 재촉하여 자기 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송나라로 돌아오는 도중에 장만이 술에 깨어 몸을 비틀면서 서피로 만든 자루를 발로차고 밟고 하였으나 가죽은 단단하고 소의 힘줄은 질겨서 끝내는 몸을 빼내지 못했다. 그러나 송나라 도성에 가까이 왔을 때는 장만이 최후의 발악을 하여 서피 가죽으로 만든 자루가 모두 헤어져 장만의 팔다리가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압송하던 군인들이 몽둥이로 때려 장만의 정강이뼈를 모두 분질러 놓았다. 송환공은 먼저 잡아온 맹획과 같이 묶어 큰 길거리로 끌고 나가 칼로 무수히 찌르게 하여 만든 고기 덩어리를 다시 요리사에게 명하여 담근 육젓을 군신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말했다.

「신하된 자로써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이처럼 육젓이 되리라!」

장만의 팔십 먹은 노모도 역시 같이 죽음을 당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탄식했다.

위풍당당하고 절륜한 힘을 지닌 장사가 아깝구나!

모친만 중한 줄 알았지 군주 중한 줄은 몰라

모자가 같이 육시를 당하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장래의 역적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였도다!

可惜赳赳力絶倫(가석규규력절륜)

但知母子昧君臣(단지모자매군신)

到頭騈戮難追悔(도두병륙난추회)

好諭將來造逆人(호유장래조역인)

송환공은 소숙대심이 박 땅에 있던 자기를 구하여 준 공로를 생각하여 소성(蕭城)을 부용(附庸)으로 승격시키고 대심을 소군(蕭君)이라고 부르게 했다. 또한 란 중에 죽은 화독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그 아들 화가(華家)를 사마(司馬)로 삼았다. 그 후로 화(華) 씨는 대대로 송나라의 유력한 세가가 되었다.

3. 살자팽조(殺子烹調)

- 아들을 죽여 요리를 만들어 바치다. -

한편 관중의 말을 듣지 않고 노나라와 싸움을 벌려 장작의 싸움에서 지고 군사를 출병시킨 일을 마음속 깊이 후회한 제환공은 그 즉시 나라의 정사를 모두 관중에게 맡겨버리고 자기는 매일 여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겼다. 나라의 일로 보고하러 오는 자가 있으면 환공은 늘상 말했다.

「어찌하여 중보에게 고하지 않는가?」

그때 환공의 측근에는 수초(竪貂)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환공이 사랑하는 동자였다. 내궁에서 환공을 가까이 모시기 위하여 밖에서 왕래하는 절차가 불편하다고 해서 스스로 거세한 후 내궁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환공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더욱 총애하고 믿어 자기 곁에 잠시도 떨어지지 않게 했다. 또 제나라의 옹읍(雍邑)⑧에 이름이 무(巫)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옹무(雍巫)라고 하고 자를 이아(易牙)라고 했다. 위인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활을 잘 쏘았다. 또한 음식을 삶아서 조리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하루는 위희(衛姬)가 병이 났다. 이아가 오미채(五味菜)를 요리하여 바치자 위회가 먹고 병이 낫게 되었다.그래서 이아를 좋아하게 되어 곁에다 두고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이아는 또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수초에게 바쳐 아첨을 했다. 수초가 이아를 환공에게 추천했다. 환공이 이아를 불러서 물었다.

「나는 네가 요리를 잘한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과인은 날짐승, 네발 달린 짐승과, 버리지 종류와 그리고 물고기 등 모든 요리를 다 먹어 봤으나 아직 사람의 고기로 조리한 요리를 먹어 보지 못해 그 맛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이아가 물러 나와 점심때에 요리를 해서 찐 고기 한 접시를 갖다 바쳤다. 그 고기는 젖먹이 양고기보다 연하고 그 맛은 감미롭기가 그지없었다. 제환공이 다 먹고 난 다음 이아에게 물었다.

「무슨 고기인데 이렇듯 맛이 있는가?”」

「그 고기는 사람의 고기입니다.」:

환공이 놀라 물었다.

「사람의 고기를 어떻게 얻었는가?」

「세 살 난 신의 큰아들을 잡아서 요리한 고기입니다. 신은 ‘ 임금에게 충성된 자는 그 집안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군께서 아직 사람의 고기 맛을 못 보셨다고 하시어 신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만든 요리입니다.」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제환공은 이아도 역시 좋아하게 되어 믿고 총애하기 시작했다. 또한 위희도 자기의 병이 낫은 이후로는 이아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수초와 이아가 안팎으로 환공의 수발을 들게 되어 마음속으로 관중을 시기했다. 관중을 모함할 시기만을 엿보고 있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수초와 이아가 같이 환공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저희들은 ‘군주은 령을 발하고 신하는 받든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나라는 하나도 중보(仲父)이고 둘도 중보이니 백성들은 모두 제나라에는 군주가 없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환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인은 중보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몸에 팔다리가 붙어 있음과 같다. 팔다리가 있음으로 해서 그 몸이 온전해지듯이 나에게 중부가 있음으로 해서 군주로써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같은 소인배들이 어찌 알겠느냐?」

두 사람이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관중이 제나라의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기를3년이 되자 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게 되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의심하면 쓰지 말고 쓰게 되면 의심하지 말라

중부가 상국으로 제나라를 혼자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환공이 능히 신임했기 때문인데

수초나 옹무같은 소인배들이 백 명이라 한들 어찌했겠는가?

疑人勿用用无疑(의인물용용무의)

仲父當年獨制齊(중보당년독제제)

都以桓公能信任(도이환공능신임)

貂巫百口亦何爲(초무백구역하위)

4. 爭媚强楚 雙雙受害( 쟁미강초 쌍쌍수해)

- 초나라 받들기를 다투다가 나라를 망친 식채(息蔡) 두 나라-

그때 초나라는 등(鄧)⑨나라를 멸하고, 권(權)⑩나라는 점령하고 수(隨)⑪나라는 복종시키고 운(鄖)⑫나라와는 싸움을 벌려 패배시켜 바야흐로 국세가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교(絞)⑬나라와는 동맹하고 식(息)나라는 그 백성들을 불러 노역을 시켰다. 마침내 한수 동쪽의 소국들은 모두가 초나라에게 신하의 나라로 칭하고 조공을 바쳤다. 그때 채나라는 제후(齊侯)와 혼인관계를 맺고 중원의 여러 나라와도 통호를 행해 아직 초나라에 복종하기 전이었다. 기원전 689년 초무왕(楚武王) 웅통(熊通)의 뒤를 이어 문왕 웅자(熊貲)가 즉위했다. 칭왕한 지가 이미2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투기(鬪祈), 굴중(屈重), 투백비(鬪伯比), 원장(薳章), 육권(鬻拳) 등 여러 훌륭한 신하들의 보좌를 받고 있던 문왕은 호시탐탐 중원으로 진출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한편 채애후(蔡哀侯) 헌무(獻舞)는 식나라 군주와 함께 진선공(陳宣公) 저구(杵臼)의 딸 자매를 각각 한 명씩 얻어 부인으로 삼았었다. 채후가 장녀를 취하고 식후는 차녀를 취해 두 사람의 관계는 동서지간이었다. 그런데 식후의 부인 식규(息嬀)는 천하절색이었다. 식규가 친정집에 들르기 위해 채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다. 채애후가 소식을 듣고 말했다.

「처제가 우리나라를 지나가는데 어찌 내가 한번 상면하지 않고 보낼 수 있겠는가?」

채애후가 즉시 사람을 시켜 식규를 궁중으로 데려오게 하여 접대하는데 희롱하는 말뿐이고 전혀 공대하는 뜻이 없었다. 식규가 크게 노한 마음을 품고 친정인 진나라로 갔다. 얼마 후 채나라를 거치지 않고 다른 길을 이용해서 식나라로 귀국한 식규가 식후에게 채후가 심히 무례하게 굴었다고 고했다. 식후는 그 원수를 갚고자 궁리한 끝에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어 공물을 바치며 초문왕에게 은밀히 고했다.

「채후가 중원의 여러 나라를 믿고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초나라가 군사를 보내 우리 식나라를 공격하면 우리는 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겠습니다. 채후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친히 구원하기 위해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와 초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채나라를 공격한다면 채후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채후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채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일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식후의 편지를 보고 크게 기뻐한 초문왕이 즉시 군사를 내어 식나라를 공격하는 척했다. 이에 식후가 채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자 과연 채애후가 친히 대병을 이끌고 식나라를 구원하려고 출동했다. 채나라 군사들이 영채를 아직 세우기도 전에 미리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습했다. 애후가 초나라의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식나라 도성으로 도망쳐 왔다. 식후가 성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자 채후는 그 뒤를 추격해 온 초군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도망가기에 바빴다. 초나라 군사들이 신야(莘野)⑭까지 추격해 와서 채후를 사로잡은 후에 식나라로 회군했다. 식후가 초문왕을 성대하게 접대하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초나라 군사들을 배불리 먹여 초군의 노고에 보답했다. 이윽고 채후를 포로로 잡아 귀국하는 초문왕이 귀국길에 오르자 식후가 국경까지 나와서 배웅했다. 이 모든 것이 식후가 꾸민 계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채애후는 한이 뼈 속까지 사무쳤다.

5. 兵諫君王 自戕示懲(병간군왕 자장시징)

- 칼을 들어 군왕에게 간하고 자기 다리를 잘라 스스로를 벌하다. -

초문왕이 회군하여 채후를 끓는 물에 삶아 죽여서 초나라 조상들의 위패가 있는 태묘에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육권이 말리면서 간하였다.

「대왕께서는 바야흐로 중원을 도모하시려고 하는데 만약에 헌무를 죽인다면 중원의 제후들은 폐하를 두려워하여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채후와 동맹을 맺은 후에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육권이 재삼 힘써 간하였으나 초문왕이 듣지 않았다. 분기가 발발한 육권이 곧바로 왼쪽 손으로는 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단검을 뽑아 문왕을 위협하면서 말했다.

「신이 마땅히 왕과 함께 같이 죽을지언정 제후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차마 참을 수 없습니다.」

초문왕이 놀라서 말했다.

「내가 경의 말을 듣겠노라!」

초문왕은 즉시 채후를 풀어주도록 했다. 육권이 다시 나와 말했다.

「대왕께서 다행이 신의 말을 들어주시니 이것은 초나라의 복입이다. 그러나 신하된 자가 그 군주를 범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청컨대 도끼로 허리를 잘라 군주를 범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을 집행하시어 저를 벌해 주십시오.」

「경의 충성심은 저 하늘의 태양이 알고 있는데 내가 어찌 벌을 줄 수 있겠소!」

「대왕께서 비록 그 신하된 자를 용서하셨으나 그 신하된 자가 어찌 감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육권이 즉시 들고 있던 단검으로 자기의 발목을 자르고 난 후에 큰소리로 외쳤다.

「무릇 신하된 자가 그 군주께 무례하게 굴면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초문왕이 명하여 육권의 발목을 부고에 보관하게 하도록 명령하면서 말했다.

「내가 육권의 간함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으니 나의 과실이로다.」

초문왕은 의원를 불러 치료하게 하여 육권의 상처는 나았지만 스스로 걸어 다니지는 못했다. 초왕이 육권을 도성 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대혼(大閽)⑮의 직에 임명하고 태백(太伯)이라는 칭호를 내려 존경하는 마음을 표했다.

6. 杯酒虜息嬀(배주로식규)

- 술잔을 따르던 식규를 잡아 부인으로 삼은 초문왕-

또한 채후를 석방하여 귀국시킨다는 명을 내려 공포하고 그를 위해 전별연(餞別宴)을 열어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불러와 접대하게 했다. 여인들 중 쟁이를 타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용모가 수려했다. 초문왕이 그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인은 미색과 기예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군주께 술 한 잔을 바치게 하리다!」

초문왕이 즉시 그 여인에게 명하여 큰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채후에

게 바치게 했다. 채후가 술잔을 받아 한숨에 마셔 버리고 다시 그 술잔을 채워 만수무강을 빌면서 초왕에게 바쳤다. 초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군주께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세미인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채후는 식후가 초나라를 끌어들여 자기를 속여 초나라의 포로로 잡히게 만든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 원수를 갚을 요량으로 말했다.

「천하의 미색으로 식후의 부인인 식규만한 사람을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식규야 말로 진실로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 눈은 마치 가을날의 고요한 물 같고 얼굴을 또한 복숭아꽃 같으며 그 길고 짧은 것이 적당하고 걸음걸이는 활기가 있어 아직까지 그녀와 비견될 수 있는 여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과인이 식부인을 한 번 볼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소!」

「대왕의 위엄이면 비록 제나라나 송나라 군주의 딸들일지라도 어려움이 없을 진데 하물며 그 밑의 반열인 일개 부인인 바에야 어려울 바가 어디 있겠습니까?」

초왕이 크게 기뻐하며 채후와 하루 종일 술을 마음껏 마시고 연회를 끝냈다. 이윽고 채애후가 작별의 인사를 초왕에게 올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연회석 상에서 채후가 한 말을 마음속에 새겨 둔 초문왕은 이내 식규를 얻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지방을 순시한다는 핑계를 대고 식국을 방문했다. 식후가 마중 나와 초왕을 알현하고 공경하기를 극진히 했다. 식후는 친히 관사의 청소를 감독하고 다시 조당에 큰 연회석을 마련하여 잔치를 성대하게 벌렸다. 초문왕이 연회에 참가하여 좌정하자 식후가 앞으로 나가 큰잔에 술을 따라 바치면서 만수무강을 빌었다. 초왕이 잔을 받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옛날에 과인이 이미 그대의 부인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리고 오늘 내가 여기에 와 있는데 그대의 부인은 어찌하여 나에게 한 잔의 술을 따르지 않는 것이오?」

식후가 초나라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껴 감히 거절을 하지 못하고 단지 “예, 예”라고만 대답하고 즉시 궁중에 사람을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고 식규를 불러오게 했다. 얼마 후 허리에 옥고리를 찬 식부인이 방울 소리를 내면서 호화로운 옷차림으로 초왕 앞에 당도했다. 초왕 앞에 담요를 깐 다음에 절을 올린 식부인은 예전에 자기를 위해 애써 준 노고에 감사의 말을 올렸다. 초왕이 당황한 기색으로 답례하기를 반복해 마지않았다. 식부인 규씨(嬀氏)가 백옥을 깎아 만든 잔에다 술을 가득 따라 초왕에게 바쳤다. 식규의 하얀 손이 백옥의 술잔과 어울려 마치 한 쌍의 옥을 깎아 만든 조각품과 같았다. 초왕이 보고 크게 놀랐다. 과연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라는 소문이 무색하지 않는 진실로 세상의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황홀지간에 초왕이 친히 손을 내밀어 식부인으로부터 술잔을 받고자 하였으나 규씨가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은 자세로 술잔을 궁녀 한 사람에게 전하여 초왕에게 바치게 했다. 잔을 받은 초문왕은 한 번에 마셔 잔을 비웠다. 식규가 다시 절을 하며 물러나기를 청하여 궁으로 돌아갔다. 초왕이 식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 술을 몇 잔 더 마시다가 자리를 파하고 관사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초왕이 그 전날 식규의 접대에 보답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관사에 잔치상을 차려 놓고 무장한 병사를 몰래 매복 시켰다. 식후가 와서 자리에 앉아 술기운이 무르익자 초왕이 일부러 취한 척 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과인이 군주의 부인을 위해 큰공을 세웠고 또한 나와 같이 공을 세운 삼군의 군사들이 또한 여기에 와 있는데 군주의 부인은 어찌하여 과인을 위하여 내가 거느린 군사들에게 호군을 행하지 않고 그 노고에 보답하지 않는 것이오?」

식후가 단호한 어조로 거절했다.

「저희 식나라는 변방에 치우친 조그마한 나라라 대왕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뛰어난 신하들의 수효가 부족합니다. 부디 저와 같은 작은 나라 군주의 처지를 헤아려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초문왕이 술상을 발로 박차며 외쳤다.

「필부가 배은망덕하여 감히 교언으로 나의 청을 거절하느냐? 좌우의 무사들은 저자를 잡아 묶지 않고 무엇하느냐?」

식후가 초왕 앞에 나아가 호소를 하려는 순간 매복하고 있던 무장한 무사들이 갑자기 일어나 연회석 상으로 달려 나오고 초문왕을 모시며 잔치상에 동석하고 있던 원장과 투단 두 장군도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 식후를 잡아서 묶어 버렸다. 초왕이 군사를 끌고 곧바로 식국의 궁궐로 쳐들어가서 식규를 찾게 했다. 식규가 변을 듣고 탄식하였다.

「호랑이를 안방으로 불려 들였으니 이것은 내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식규는 곧바로 후원으로 달아나 우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고 했다. 그때 식규의 뒤를 따라온 투단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옷자락을 붙들고 말했다.

「부인께서는 식후가 목숨을 보전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두 분이 같이 죽으려고 하십니까?」

식규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다. 투단이 식규를 데리고 오자 초문왕이 좋은 말로 위로하고 식후를 죽이지 않고 식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해서 지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초문왕은 곧바로 군중에서 식규를 부인으로 세운 후에 수레에 태우고 자기의 뒤를 따르게 하여 초나라로 귀국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식규의 얼굴이 복숭아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도화부인(桃花夫人)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호북성 한양성(漢陽城) 밖의 도화동(桃花洞)에 도화부인(桃花夫人)의 묘가 있는데 이것이 즉 식규의 무덤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두목(杜牧)⑯이시를 지어 식규를 노래했다.

세요궁⑰안의이슬 맺힌 복숭아가 새로운데

가슴속에 품은 채 말도 하지 않고 지내기를 몇 해이던가?

식후의 죽음은 필시 식규의 미모 때문인데

금곡원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녹주만 가련하구나⑱

細腰宮里露桃新(세요궁리로도신)

脉脉无言幾度春(맥맥무언기도춘)

畢竟息亡緣底事(필경식망연저사)

可怜金谷墜樓人(가령금곡추루인)

초왕이 식후를 여수(汝水)⑲강변의 안치하고 십 호의 읍에 봉하여 식나라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식후가 분하여 마음이 상하여 화병으로 죽었다. 초나라의 무도함은 이렇듯 끝간데가 없었다.

『제18회로 계속』

주석

①랑성(郞城)/ 춘추 때 노나라 땅으로 지금의 산동성 곡부현 부근.

②기각지세(掎角之勢)/ 한 사람은 사슴의 한 다리를 붙들고 다른 또 한 사람은 앞에서 뿔을 붙잡고 있는 형세의 뜻으로 적을 앞과 뒤에서 협공하는 형세를 말함.

③우문(雩門)/ 기우제를 지낼 때 사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 놓은 성문

④승구(乘丘)/ 지금의 산동성 거야시(巨野市)와 하택시(荷澤市) 사이의 용고진(龍堌鎭) 부근의 춘추 때 송나라 땅.

⑤융우(戎右)/ 군주의 수레에 같이 타고 그 군주를 호위하는 장수를 말함. 고대의 전차에는 세 사람이 탔는데 중앙에는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군주나 지휘관은 어자의 왼쪽에 그 오른쪽에는 지휘관을 호위하는 장수가 탔기 때문에 융우(戎右)나 차우(車右)라고 했다.

⑥소국(蕭國)/ 현 안휘성(安徽省) 소현(蕭縣) 경내로서 서주시(徐州市) 서쪽 약30KM 지점.

⑦박(亳)/ 현 하남성(河南省) 조현(曹縣) 남쪽20KM 지점

⑧옹읍(雍邑)/ 현 하남성 기현(杞縣)이다.

⑨등(鄧)/ 현 호북성(湖北省) 양번시(襄樊市) 부근에 있었던 소 제후국

⑩권(權)/ 지금의 호북성 형문시(荊門市) 부근에 있었던 소 제후국.

⑪수(隨)/ 현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로 흘러 한수와 같이 장강(長江)과 합쳐지는 운수(溳水-淸發水)의 상류에 있었던 희성(姬姓) 제후국(諸侯國). 현 수주시(隨州市) 부근임.

⑫운(鄖)/ 현 호북성(湖北省) 안륙시(安陸市)-무한시 북서쪽 약70키로에 있었던 군소제후국

⑬교(絞)/현 섬서성(陝西省)과 경계지역인 호북성(湖北省) 운현(鄖縣)-한수(漢水)의 상류에 있었던 소제후국.

⑭신야(莘野)/ 지금의 산동성 신현(莘縣) 부근의 고을로 하남성과 접경지역에 있다.

⑮대혼(大閽)/ 도성 안의 행정을 총괄하던 초나라의 관직

⑯두목(杜牧)/ 기원803년에 태어나서853년에 죽은 당대 말엽의 시인이다.

⑰세요궁(細腰宮)/ 초나라 궁전을 말하며<후한서(後漢書)>의 기록에 초영왕(楚靈王)이 허리가 가는 궁녀를 좋아하였음으로 초나라 여인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하여 밥을 먹지 않아 많은 처녀들이 굶어 죽었다고 했다.

⑱금곡추루인(金谷墜樓人)/ 서진(西晉)의 거부인 석숭(石崇)의 처 녹주(綠珠)를 말함. 녹주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석숭이 자기집의 후원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별장을 지어 살게 했다. 당시의 세도가인 손수(孫秀)라는 자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여 군사를 보내 석숭을 잡아오게 하자 녹주는 금곡원의 누각 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⑲여수(汝水)/ 하남성 여양(汝陽) 부근에서 발원하여 언성(偃城), 탑하시(漯河市), 신채시(新蔡市)등을 지나 회수(淮水)와 합류했던 강이름으로 춘추시대 때 정나라를 북서에서 남동으로 가로질러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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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후연표-2부2권 (기원전 685-6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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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K 양승국 04-05-11 1959
[일반] 춘추오패 연표

紀元前 年代表 齊 宋 唐晉 陝秦 楚 685 제환공 소백(小白) 즉위하고 관중(管仲)을 제나라 상국으로
35.4K 양승국 04-05-11 1709
[일반] 2부-2권 관중과 포숙 목차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제
양승국 04-05-11 1856
[일반] 제24회. 盟楚召陵 (맹초소릉), 義戴天子(의대천자)

제24회 盟楚召陵義戴天子(맹초소릉 의대천자) 소릉에서 초나라와 맹약을 맺고 규구(葵邱)①에서 대의를 밝혀 천자를 추대했다. 1. 맹초소릉(盟 (1)
양승국 04-05-11 1835
[일반] 제23회. 好鶴亡國(호학망국), 南征荊蠻(남정형만)

제23회 好鶴亡國 南征荊蠻(호학망국 남정형만) 학에 탐닉하여 나라를 잃은 위의공과 제후군을 규합하여 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제환공 1.
양승국 04-05-11 1477
[일반] 제22회. 魯國三桓(노국삼환), 澤鬼委蛇(택귀위사)

제22회 魯國三桓 澤鬼委蛇(노국삼환 택귀위사) 시작되는 노나라 삼환씨의 권세와 늪 속의 위사를 제환공에게 고한 농부 황자 1. 경보지란(慶 (1)
양승국 04-05-11 1457
[일반] 제21회. 智辨兪兒(지변유아), 兵定孤竹(병정고죽)

제21회智辨兪兒 兵定孤竹①(지변유아 병정고죽) 지혜로써 유아를 알아보는 관중과 북벌을 행하여 고죽국을 평정한 제환공 1. 북벌산융(
양승국 04-05-11 1498
[일반] 제20회. 違卜立妃(위복립비), 子文相楚(자문상초)

제20회 違卜立妃 子文相楚(위복립비 자문상초) 점괘를 무시하고 여희를 부인으로 세우는 진헌공과 재상이 되어 초나라를 부흥시킨 자문 투곡오토( (1)
양승국 04-05-11 1528
[일반] 진헌공의 복잡한 가계 현황표

부인명 소생 결과 비 고 가희(賈姬) 없음 태자 때 부인이었으나 소생 없이 일찍 죽었다. 제강(
양승국 04-05-11 1632
[일반] 제19회. 擒將復國(금장복국), 殺頹反正(살퇴반정)

제19회擒將復國 殺頹反正(금장복국 살퇴반정) 부하(傅瑕)를 사로잡아 나라를 다시 찾은 정려공 돌과 왕자퇴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복귀한 주 (1)
양승국 04-05-11 1622
[일반] 재18회. 曹沫劫盟(조말겁맹), 寧戚擇主(영척택주)

제18회 曹沫劫盟 寧戚擇主(조말겁맹 영척택주) 칼로 회맹장을 범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은 조말과 제환공을 시험하여 자기의 군주로 선택한 영척
양승국 04-05-11 1651
[일반] 제17회. 戱言招禍(희언초화), 除狼得虎(제랑득호)

제17회 戱言招禍 爭媚强楚(희언초화 쟁미강초) 신하를 희롱하다 맞아 죽은 송민공과 서로 다투어 초왕을 받들다가 해를 입는 식채(息蔡) 두나라
양승국 04-05-11 1575
[일반] 제16회, 釋囚薦相(석수천상), 長勺敗齊(장작패제)

제16회 釋囚薦擧 長勺敗齊(석수천거 장작패제) 함거의 죄수를 풀어서 천거하는 포숙과 장작에서 제나라 군사를 물리친 조귀(曹劌) 1. 가
양승국 04-05-11 1740
[일반] 제15회. 射中帶鉤(사중대구), 乾時大戰(건시대전)

. 제15회 射中帶鉤 乾時大戰(사중대구 건시대전) 허리띠에 꽂힌 화살로 군위를 차지하는 제환공이 건시에서 노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무찌르다.
양승국 04-05-11 1512
[일반]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양승국 04-05-11 1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