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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0:14:446340 
제15회. 射中帶鉤(사중대구), 乾時大戰(건시대전)
양승국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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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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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射中帶鉤 乾時大戰(사중대구 건시대전)

허리띠에 꽂힌 화살로 군위를 차지하는 제환공이

건시에서 노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무찌르다.

1. 관포지교(管鮑之交)

- 나를 나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아는 자는 포숙이다. -

관이오(管夷吾)의 자는 중(仲)이라고 했는데 그는 큰 체구와 훤칠한 용모를 지니고 태어났다. 마음은 당당하고 호쾌했으며, 또한 학식은 옛날 경전에 통달하여 고금의 일을 꿰뚫고,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세상을 구하고 시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지략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는 옛날 포숙아(鮑叔牙)와 합자하여 장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장사를 끝내고 이익금을 나눌 때는 이오가 포숙아보다 항상 더 많이 취하곤 했다. 포숙의 종자가 불만을 토로하자 포숙이 말했다.

「관중이 구구한 이익금을 탐해서가 아니라 그 집안이 가난하여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 그리 된 것뿐이다.」

일찍이 군사들을 이끌고 원정을 따라 나선 적이 있었던 관중은 싸움에 임할 때마다 항상 후대에 있고 후에 군사가 되돌아 올 때는 선두에 서서 행군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중은 겁쟁이라고 비웃으나 포숙이 변호했다.

「관중은 노모를 모시고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지 정말로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포숙은 여러 번 관중과 일을 같이 했는데 왕왕 일이 잘되지 않았다. 포숙이 보고 옆에 사람에게 말했다.

「사람은 원래 때를 잘 만나는 시절이 있고 어떤 때는 못 만나는 시절이 있는 법이다. 관중이 때를 만난다면 백 가지 일 중에 한 가지도 잃지 않을 것이다.」

관중이 그 소리를 전해 듣고 말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포숙이로구나!」①

그래서 관중은 포숙을 찾아가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친구의 의를 맺었다.

제양공의 장자는 노녀(魯女) 소생으로 규(糾)라 했고 차자는 거녀(莒女) 소생으로 소백(小白)이라 했다②. 비록 두 사람이 모두 서출이었지만 군위를 이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스승을 정하여 가르치게 했다. 관중이 포숙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후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고 있네. 나와 자네가 각기 한 공자씩을 맡아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후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군위를 물려받으면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자기가 모시고 있는 군주에게 천거하기로 하세나!」

포숙이 동의했다. 그래서 관이오는 소홀(召忽)과 함께 공자규의 스승이 되었고 포숙아는 공자 소백의 스승이 되었다.

작(禚) 땅으로 가서 문강을 만나 음락을 즐기는 양공을 보고 포숙이 말했다.

「부군께서 음행의 일로 소문이 분분해져 나라의 사대부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기회를 보아 지금 못하게 하도록 하면 지나간 허물은 덮을 수 있겠지만 또다시 서로 왕래하면 마치 제방이 홍수에 무너져서 장차 물이 범람하게 되는 일과 같으니 그 자식 된 도리로서 문강을 만나지 못 하도록 간해야 합니다.」

소백이 과연 입궐하여 양공에게 직간했다.

「노후가 죽자 여러 사람들의 비난하는 소리가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이에는 항상 의심을 받게 되는 일이라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공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어린놈이 무얼 안다고 그리 말이 많으냐?」

양공이 발길로 걷어차자 소백은 더 이상 간하지 못하고 밖으로 피해 나왔다. 포숙아가 듣고 소백을 찾아가 말했다.

「비정상적으로 음행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이한 화가 미친다고 신은 들었습니다. 공자께서는 저와 함께 다른 나라로 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때를 기다려 뜻을 도모하십시오.」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좋겠습니까?」

「큰나라는 희비가 무상하니 작은 거(莒)③나라로 가야합니다. 거나라는 소국이지만 공자의 외가이고 또한 제나라와 가깝습니다. 나라가 작기 때문에 우리들을 태만히 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때 귀국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소백과 포숙아 일행은 즉시 거나라로 도망쳤다. 양공이 알았으나 뒤를 쫓게 하지는 않았다. 공손무지가 제양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제후의 자리에 앉은 후에 관중을 쓰기 위해 불렀다. 관중이 듣고 말했다.

「자기의 목도 이미 경각에 달했건만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까지 필요하다고 하는가?」

관중은 곧바로 소홀과 상의하여 자규를 모시고 그의 외가인 노나라로 몸을 피했다. 노장공은 세 사람을 생두(生竇)④라는 곳에다 거처를 마련해 주고 매 월 의복과 식량을 넉넉하게 보내 주었다.

2. 모살무지(謀殺無知)

- 모략을 꾸며 무지를 살해하는 제나라 대부 옹름(雍廩) -

주장왕15년은 노장공12년으로써 기원전682년이다. 그해 봄2월, 제나라의 공손무지 원년에 백관이 신년 원단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가 조정에 모였다. 연칭과 관지보가 공공연히 여러 관원들의 맨 앞줄에 서자 사람들은 모두 원한과 분노로 가슴을 태웠다. 옹름(雍廩)이 여러 관원들의 가숨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알고 거짓으로 한 번 말해 보았다.

「노나라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공자규가 장차 노나라의 군사를 빌려 우리나라로 쳐들어 올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소식을 들으셨으니까?」

여러 대부들이 모두 한입이 되어 말했다.

「듣지 못했습니다.」

옹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조정이 파하자 여러 대부들이 서로 약속하여 만나, 모두 함께 옹름의 집을 찾아 와서 공자규가 노나라 군사를 끌고 와서 제나라를 정벌한다고 한 말이 정말이냐고 물었다. 옹름이 대부들을 향해 되물었다.

「여러분들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동곽아(東郭牙)가 먼저 말했다.

「선군이 비록 무도했다고 하지만 그 자식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들은 매일 선군의 아들들이 돌아와 군위를 잇게 되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여러 대부들은 눈물을 흘렸다. 옹름이 다시 말했다.

「이 옹름이 무지에게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있지만 어찌 여러분들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제가 무지 일당에게 몸을 굽힌 목적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서로 돕는다면 임금을 시해한 반역도들을 같이 제거하여 선군의 아들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일이야 말로 의로운 거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동곽아가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청하자 옹름이 대답했다.

「고경중(高敬仲) 혜(傒)는 누대에 걸쳐 대신을 배출한 집안 출신의 원로일뿐 아니라 재주와 인망이 있어 평소에 사람들이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연칭과 관지보 두 도적은 고경중으로부터 한마디의 지지한다는 말을 얻는다면 황금 천 냥보다 더 중히 여기고 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달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경중으로 하여금 술자리를 마련하게 하여 두 도적을 초청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응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들은 공자규가 노나라 군사를 빌려 쳐들어온다는 가짜 서신을 만들어 무지 면전에 바치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용기도 없는 무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댈 것입니다.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기회를 보아 가까이 다가가 갑자기 칼로 무지를 찔러 죽인다면 누가 감히 그를 구하려고 나서겠습니까? 연후에 무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횃불을 올려 신호로 삼아 고경중에게 알려 두 도적을 대문 안에 가두고 주살하는 일은 마치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입니다.」

동곽아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고경중은 비록 두 도적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지만 자신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고경중은 아마도 일을 감당하겠다고 흔쾌히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서 온힘을 다하여 그가 필히 승낙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그 즉시 고혜(高傒)를 찾아간 동곽아는 옹름의 계획을 고하고 거사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청하자 고혜가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고혜가 다시 동곽아에게 명하여 연칭과 관지보의 집에 찾아가 자기가 두 사람을 위해 주연을 마련하여 모시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뜻밖에 고혜의 초청을 받은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하겠다고 승낙했다. 이윽고 약속한 기일이 되자 두 사람이 고혜의 집에 당도했다. 연칭과 관지보를 맞이하여 집안으로 들인 고혜가 술단지를 손에 들고 말했다.

「선군께서 많은 일을 저지른 끝에 실덕 하시어 그 결과 후사도 없이 목숨을 잃어 노부가 그 일을 걱정하다가 금일 다행히 대부들께서 신군을 세우셔서 노부 역시 가문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은 관계로 병이 들어 그 동안 조정에 나가지 못 했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천한 몸에 다소 차도가 있어 특별히 술상을 마련하여 개인적으로 입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합니다. 겸하여 제 후손들의 뒤를 두 분께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연칭과 관지보가 사양해 마지않았다. 고혜가 밖으로 나와 종자들에게 문을 굳게 닫으라고 명하고 돌아와서 두 사람 앞에서 말했다.

「오늘 술자리는 맘껏 즐기지 않고는 끝내지 않겠소!」

고혜는 비밀리에 집을 지키는 문지기들에게 밖에서의 어떠한 기별도 전하지 말고 단지 성안에서 횃불이 오르거든 즉시 들어와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미리 해 두었다.

한편 옹름은 비수를 가슴에 품고 궁궐의 문을 두드려 열게 하고 무지에게 알현을 청하고 고했다.

「공자규가 노나라의 군사를 빌려 쳐들어와 하루 밤이면 이곳에 당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적을 맞이할 계책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국구는 어디에 있는가?」

「국구와 관지보는 성문 밖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백관들이 모두 조정에 모여 오로지 주공과 상론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무지가 그 말을 믿고 조당에 나갔으나 옥좌에 미처 앉기도 전에 여러 대부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와 에워쌌다. 그 틈을 이용하여 옹름이 가슴에 품고 있던 비수를 뽑아 무지의 등을 찔렀다. 몸에서 흘린 피로 옥좌를 흥건히 적신 무지는 곧바로 절명했다. 무지가 군주로 있던 기간은 모두 합하여 단지 한 달여 남짓이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내궁에 있던 연부인은 변이 났음을 알고 궁중에서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었다.

양공의 사랑을 못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지의 부인이 되었는데

무지의 사랑도 받을 새 없이 죽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부인 자리 한 달만에 석자 길이의 비단으로 목을 매었구나!.

적막했겠지만 빈 궁궐이나마 지키고 있었더라면 어떠했겠는가?

只因無寵間襄公(지인무총간양공)

誰料無知寵不終(수료무지총부종)

一月夫人三尺帛(일월부인삼척백)

何如寂寞守空宮(하가적막수공궁)

무지를 죽인 옹름이 사람을 시켜 조당 밖에 한줄기의 연기를 피우게 했다. 연기는 하늘높이 치솟았다. 고혜가 손님들을 접대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문밖에서 문지기들이 판자를 두드려 신호를 하고 들어와서 보고했다.

「바깥에서 보니 성안에서 불길이 크게 치솟았습니다.」

보고를 받은 고혜가 즉시 몸을 일으켜 내당으로 들어갔다. 연칭과 관지보가 뜻밖의 사태에 놀라 그 연고를 물으려고 하는 순간 마루 밑에 매복하고 있던 장사들이 갑자기 튀어 나와 두 사람을 베어 토막을 내어 버렸다. 비록 두 사람이 종자들을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몸에는 아무런 무기도 간직하지 않아서 모두 함께 살해되어 두 사람과 운명을 같이 했다.

3. 射中帶鉤 佯死奪位(사중대구 양사탈위)

- 허리 띠에 맞은 화살로 죽음을 가장하여 제후의 자리를 차지한 제환공-

거사에 성공한 옹름과 여러 대부들이 속속 고혜의 집에 당도하여 뒷일을 공개적으로 의논했다. 우선 양공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사람을 고분의 이궁에 보내 양공의 시신을 찾아 도성으로 가져오게 하여 두 사람의 심장과 간을 꺼내 제물로 바친 후에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조당에 다시 모인 제나라의 군신들은 자규를 데려와 제후(齊侯)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노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한편 제나라에 변이 일어 난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한 노장공이 공자규를 호송하여 제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로 진군하려고 했다. 시백이 옆에 있다가 간했다.

「제와 노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국으로써 서로 강약을 다투고 있습니다. 제나라에 군주가 없음은 노나라에 득이 되는 일이오니 그 군주를 급히 세우기 위해 움직이지 마시고 그 추이를 잠시 관망하시기 바랍니다.」

장공은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그때 축구에서 머물던 문강은 제양공이 변란 중에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나라로 들어와 군사를 일으켜 무지를 토벌하여 자기 오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매일 밤낮으로 노장공에게 조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제나라 사자가 당도해서 무지가 살해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비어 있는 제나라의 군주 자리를 잇게 하기 위해 공자규를 모셔가겠다고 전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문강은 장공을 재촉하여 자규를 하루라도 빨리 제나라에 보내야 한다고 다시 재촉했다. 모친의 명을 어길 수 없었던 장공은 시백의 말과는 달리 친히 병거3백 승을 동원하여, 조말(曹沫)을 대장으로 진자(秦子)와 양자(梁子)를 좌우의 호위로 삼아 자규를 제나라에 호송하여 제후의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관중이 장공에게 말했다.

「공자 소백이 거나라에 있습니다. 거나라는 노나라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가 먼저 제나라에 들어가면 주객이 바뀌게 됩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얼마간의 거마와 군사를 맡겨 주신다면 제가 먼저 가서 길목을 막고 소백을 중도에서 요격하겠습니다.」

「병사는 얼마면 되겠는가?」

「병거30승이면 족하겠습니다.」

한편 거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공자 소백도 제나라에서 란이 일어나 군주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숙과 상의하여 계책을 세운 소백은 그 즉시 거자(莒子)에게 병거100승을 얻어 제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관중이 노나라의 병거를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 즉묵(卽墨)⑤에 당도했을 때는 소백과 포숙은 이미 거나라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미 그곳을 지나간 후였다. 관중이 그 뒤를 계속해서 추격하여 즉묵에서30여리 되는 곳에 이르자 거나라의 병사들이 행군을 멈추고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관중이 살펴보니 소백이 수레 안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관중이 달려가 수레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인사를 올렸다.

「공자께서는 무양하신지요? 지금 어디로 행차하십니까?」

「부친의 상에 참석하려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오.」

「형님이신 자규께서 마땅히 상례를 주관하실 예정이니 공자께서는 잠시 이곳에 머물러 스스로의 노고를 면하시기 바랍니다.」

포숙이 나와 관중을 꾸짖었다.

「관중, 자네는 물러가게나! 각기 그 주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우리가 그 주군 되시는 분들에게 구구한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관중이 거나라 병사들의 기색을 살펴보니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노려보면서 얼굴에 노기를 띠우며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기세였다. 자기가 데려온 노나라의 군사들의 수가 적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관중은 포숙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물러가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활에 화살을 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소백을 향해 쏘았다. 관중의 활에서 벗어난 화살은 쉿 소리를 내며 날아가 소백의 허리에 꽂혔다. 소백이 ‘악’ 소리를 외치며 선혈을 입에서 뿜어내고 수레 위에서 쓰러졌다. 포숙이 황망히 달려와 소백을 구하기 위해 온힘을 다하며 절규했다.

「공자께서 돌아가셨다.」

따라온 종자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곡을 하며 울었다. 관중이 노나라의 병거30승을 거느리고 말에 채찍을 가하여 바람처럼 달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관중이 길을 가다가 한탄하였다.

「자규께서 복이 있어 제나라의 군주가 되겠구나!」

관중이 노나라에 돌아와 장공에게 소백이 죽음을 고하고 자규에게 술잔을 바치며 경하의 말을 올렸다. 자규의 일행은 마음을 놓고 제나라를 향하여 행군했다. 제나라의 여러 고을의 관리들이 음식을 준비하여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자 노장공과 자규 일행은 여유롭게 즐기며 천천히 제나라로 행진했다. 그러나 관중이 쏜 화살은 단지 소백의 허리띠에 맞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평소에 소백은 관중의 활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쏜 화살이 단지 소백 자기의 허리띠에 맞았다는 사실을 관중이 안다면 다시 화살을 쏘리라고 소백은 짐작했다. 그래서 소백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혀끝을 깨물어 거짓으로 피를 흘리고 쓰러져 포숙을 포함한 주위 사람을 모두 속인 것이다. 포숙이 말했다.

「관중이 이미 가 버렸다고는 하나 그가 다시 올까 걱정됩니다. 제나라로 가는 행차를 더욱 서둘러야 합니다.」

소백은 그 즉시 변복을 하고 온거(溫車)⑥에 올라 소로를 이용하여 제나라 임치성을 향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을 재촉했다. 이윽고 소백과 포숙의 일행은 임치성 밑에 이르렀다. 소백과 거나라 군사들을 성밖에 머물게 한 포숙은 단거를 몰고 혼자 성안에 들어가 여러 대부들을 두루 만나 공자 소백의 현명함을 칭찬하고 다녔다. 여러 대부들이 말했다.

「공자규가 장차 당도하면 어찌 처리하려고 하십니까?」

포숙이 대답했다.

「제나라의 두 군주가 차례로 살해되어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공자규를 모시려고 결정했는데 소백이 먼저 왔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더욱이 노후가 공자규를 옹립하려고 하는 목적은 그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송장공이 정나라의 공자돌을 도와 정백으로 세웠다는 구실로 그 대가를 한없이 구해 병화가 수년간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근래에 수많은 난리를 치룬 우리 제나라가 대가를 요구하는 노나라의 요구를 어찌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 대부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후에게 어떤 핑계를 대고 군사를 물리칠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미리 군주를 정하면 노후는 스스로 군사를 물리쳐 자기나라로 돌아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부 습붕(隰朋)과 동곽아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포대부의 말씀이 옳습니다.」

마침내 소백은 임치성에 들어가 제후(齊侯)의 자리에 앉았다. 이가 제환공(齊桓公)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관중이 쏜 화살이 제환공의 허리띠에 맞아 목숨을 구한 일에 대해 말했다.

노공은 기뻐했고 거인(莒人)은 슬퍼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허리띠에 얽힌 구구한 사정을

단지 일시적인 임기응변만을 봐도

군주로써 합당한 지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겠노라!

魯公歡喜莒人愁(거인환희거인수)

誰道區區中帶鉤(수도구구중대구)

但看一時權變處(단간일시권변처)

便知有智合諸侯(편지유지합제후)

4. 乾時大戰(건시대전)

- 건시에서 벌어진 제나라 군위 계승전쟁-

제나라의 군주 자리를 차지한 환공에게 포숙이 말했다.

「노군이 당도하기 전에 마땅히 먼저 손을 써 물리쳐야 합니다.」

제환공이 즉시 중손추(仲孫湫)를 사절로 삼아 노장공을 영접하게 하고 나라에는 군주가 이미 섰음을 알리게 했다. 소백이 죽지 않고 임치성에 먼저 입성하여 비어있던 군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장공은 크게 노하며 말했다.

「무릇 군주의 자리에는 장자를 세우는 법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이 어린 동생이 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가? 먼 곳에서 달려온 우리 노나라 군사들의 걸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노라!」

중손추가 돌아와 보고하자 제환공이 말했다.

「노나라 군사가 물러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도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맞이하여 싸워야 합니다」

제환공이 즉시 삼군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우군 대장에는 왕자 성보(成父)와 부장에는 영월(寧越)을, 좌군 대장에는 동곽아와 부장에는 중손추를 임명하고 환공 자신과 포숙아는 친히 중군을 이끌고 옹름을 선봉으로 삼아 노군이 진격해 오는 방향을 향해 행군했다. 제나라가 동원한 병력은 모두5백 승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각기 군사를 나누어 삼군의 배치가 끝나자 동곽아가 포숙을 보고 자기의 계책을 말했다.

「우리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노후가 알게 되면 노후는 필시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앞쪽으로 얼마가지 않으면 수초가 많이 나는 건시(乾時)⑦라는 곳이 있습니다. 군사를 매복시킬만한 마땅한 장소입니다. 한 떼의 군마를 건시로 보내 매복시켜 기다리고 있다가 노나라의 군사들이 당도하여 미처 진용을 정비를 하기 전에 그 틈을 이용하여 공격하면 반드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훌륭한 계책이오!」

포숙은 다시 부서를 정하여 영월과 중손추에게 별도의 군사를 주어 건시로 나아가 양쪽으로 길을 나누어 매복하게 하고 왕자성보와 동곽아에게는 우군과 좌군의 본대를 이끌고 다른 길을 취해 우회하여 노군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선봉장에는 옹름을 임명하여 는 노나라 군사들에게 싸움을 걸어 유인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한편 공자규를 호송하여 건시에 당도한 관중이 앞으로 달려가 노장공을 알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소백이 군위에 오른 지가 오래되지 않아 백성들의 마음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신속히 움직인다면 틀림없이 안에서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대의 말을 따른다면 소백은 활을 맞고 이미 죽은 지 오래라! 아직도 할 말이 더 있단 말인가?」

관중의 말을 일축한 노장공은 그 즉시 영을 내려 건시에 진을 치도록 명했다. 노후는 앞쪽에 공자규는 뒤쪽에 각각 세운 영채는 그 거리가 약20리 정도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정탐병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이미 당도하여 앞에 진영을 세우고 선봉장군 옹름이 싸움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장공이 듣고 말했다.

「선봉대를 먼저 꺾어 제나라 군사들의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리라!」

장공은 즉시 진자와 양자로 하여금 자기가 탄 병거를 몰아 앞으로 진격하게 하고, 옹름의 이름을 불러 옛날 서로 친교를 맺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너 옹름은 적도를 주살하여 공자규를 옹립하겠다고 나에게 청하고는 이제 와서는 다시 마음을 바꾸니 정말로 신의가 없는 자로다.」

장공이 활에 화살을 제어 옹름을 쏘려고 조준했다. 옹름이 거짓으로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머리를 조아리며 쥐새끼 모양을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공이 조말에게 옹름의 뒤를 쫓도록 명했다. 도망가던 옹름이 되돌아서서 조말을 맞이해서 겨루다가 몇 합도 채 나누기도 전에 또다시 되돌아서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조말이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 발휘하여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뒤를 계속 추격하던 중 어느 틈에 포숙이 이끄는 대군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포위당하고 말았다. 조말은 옹름의 유인작전에 말려 적진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겹겹이 쳐진 포위망 속에 갇히고 말았다. 조말은 좌충우돌하며 노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정신없이 제군과 싸우던 조말은 몸에 화살을 두 대나 맞고서야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노나라 장수 진자와 양자는 적진 속에 갇힌 조말이 걱정되어 구원하려고 앞으로 진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좌우에서 포성이 진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길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영월과 중손추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노군에 대해 공격을 퍼붓는 사이 포숙아가 이끄는 중군은 마치 담장이 움직이는 형세로 노군의 전면에서 진격해 왔다. 삼면으로부터 적군을 맞게 된 진자와 양자의 노나라 군사들은 도저히 제군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져 달아나는 노나라의 군사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포숙이 제나라 진영에 명령을 전했다.

「노후를 사로잡는 자에게는 상으로 만호의 읍에 봉하겠다.」

포숙이 부하 군사들로 하여금 큰소리로 외치게 하여 모든 제나라 군사들에게 알리게 했다. 제군이 일제히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노장공의 어자(御者) 진자가 급히 비단에 수를 놓은 노후의 기를 융거(戎車)에서 뽑아서 땅바닥에 버렸다. 그 뒤를 따르던 양자가 앞으로 달려와 노후의 기를 다시 주워서 자기의 병거 위에 꽂았다. 진자가 그 이유를 묻자 양자가 대답했다.

「제나라 군사를 속여 나를 주군으로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요.」

제군의 공세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져 위급한 처지에 놓이게 된 노장공은 융거에서 내려 옆을 따르던 초거(軺車)⑧로 바꾸어 타고 미복차림의 군졸로 변장하여 포위망을 벗어나려고 했다. 진자가 장공의 뒤를 바짝 쫓으며 뒤를 추격하는 제군의 공격을 막았다. 그때 멀리서 수를 놓아 장식한 비단깃발을 발견한 영월은 노후가 탄 병거라고 생각하고 길옆에 엎드려 매복했다. 이윽고 노후의 깃발을 단 병거가 다가오자 병사를 휘몰아 겹겹이 에워쌌다. 양자가 갑옷과 투구를 벗고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노나라 장수 양자라는 사람이다. 우리의 주군은 이미 멀리 가신지 오래되었다.」

마침내 제군이 노군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자 포숙이 징을 울려 군사들을 불러들였다. 중손추는 노후가 타던 융거를 끌고 와서 환공에게 바치고 영월은 사로잡은 양자를 끌고왔다. 환공이 명하여 양자를 진영 앞에서 참수시켰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노군의 배후로 돌아 적진 깊숙이 들어간 왕자성보와 동곽아의 군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영월과 중손추와 그 군사들을 건시에 머물게 하여 만약에 사태에 대비하게 하고 환공 자신은 중군을 이끌고 임치성으로 개선했다.

한편 후방에 남아 노군의 치중을 맡고 있던 관중은 전대가 제군과의 싸움에서 대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소홀에게 공자규와 함께 진영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병거와 보졸들을 인솔하여 노군의 본대를 구원하기 위해 앞으로 행군 중에 이미 싸움에 지고 후퇴하고 있던 장공을 만났다. 장공의 뒤를 따라오던 노나라의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자기의 군사들과 합한 관중은 적을 맞이해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장공의 후위를 맡았던 조말도 역시 패잔병과 남은 병거를 수습하여 노군의 진영의 당도했다. 패주한 제군을 정돈하여 점고 해 본 결과 십에 칠이 꺾인 것을 보고 관중이 말했다.

「군사의 대부분이 꺽여 사기가 이미 크게 저하되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겠다.」

관중의 일행이 노나라를 향하여 회군하기 시작하여 이틀 째 되던 날, 갑자기 전방에 수많은 병거가 나타나 대열을 가로막았다. 초병을 보내 알아본 결과 왕자성보와 동곽아가 이끌고 노군 진영의 배후로 돌아온 제나라의 별동대였다. 조말이 극을 뽑아들고 휘두르며 앞으로 돌격하면서 뒤를 돌아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주공께서는 속히 앞으로 계속 행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활로를 열겠습니다.」

조말은 다시 진자를 향하여 소리쳤다.

「그대는 옆에서 나를 엄호하라」

진자가 달려나가 왕자성보의 앞을 가로막고 상대하자 조말은 동곽아를 상대하여 싸웠다. 관중은 장공을, 소홀은 공자규를 옆에서 각각 호위하면서 제군의 대열을 뚫고 달아났다. 그때 붉은 전포를 입은 나이 어린 장수하나가 제나라의 진영에서 튀어나와 장공의 일행을 맹렬히 추격해왔다. 노장공이 보고 활을 재어 어린 장수를 향해 쏘았다. 제나라의 어린 장수는 장공이 쏜 화살을 얼굴에 맞고 쓰러졌다. 또다시 하얀 전포를 입은 장수가 계속해서 장공의 뒤를 추격해 오자 장공이 다시 활을 쏘아 죽였다. 제나라 군사들이 보고 두려워하여 멈칫하는 사이에 제군이 한 가닥의 활로를 열어 퇴각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제군 진영을 통과한 관중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치중과 병거 등의 병장기들을 길에다 버리게 했다. 노군의 뒤를 추격하던 제군은 길에 떨어진 치중 등을 줍느라고 대오가 혼란해졌다. 노군은 그 틈을 타서 제나라 군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간신히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와중에 조말은 왼팔과 배에 칼을 맞아 부상을 당한 중에도 제나라 군사들의 목을 무수히 베고 무사히 생환했으나 진자는 불행히도 싸움 중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관은 장공이 건시의 싸움에서 진 것은 실은 자기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이라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자규는 원래 원수의 혈육인데

하필이면 군사까지 동원하여 군위에 앉히려고 했는가?

불구대천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인데

규보다는 무지를 도와야 하지 않았었겠는가?

子糾本始仇人胤(자규본시구인윤)

何必勤兵往納之(하필근병왕납지)

若念深仇天不戴(약념심구천부재)

助糾不若助無知(조규불약조무지)

호구를 벗어난 노장공 일행은 마치 어망을 빠져 나온 물고기 떼처럼 모두가 급급하게 도망치기에 바빴다. 한편 왕자성보와 동곽아는 제나라의 별동대를 이끌고 문수(汶水)를 건너 노나라 경내인 문양(汶陽)⑨의 들판에 까지 추격해와 그 고을을 모두 점령했다. 문양의 땅에 진지를 축조한 제군은 일단의 수비군을 남겨놓고 제나라 본국으로 회군하던 중 건시에 주둔하고 있던 영월과 중손추의 군대와 만난 후에 제나라로 개선했다. 노나라 군사들은 아무도 감히 싸움을 걸어 탈환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본국으로 개선했다.

제후의 자리를 차지한 소백이 아침 일찍 조정에 나가자 백관들은 모두 일어나 경하의 말을 올렸다. 포숙이 나와서 아뢰었다.

「공자규가 아직 노나라에 있으면서 관중과 소홀의 보좌를 받고 노나라는 계속 자규를 도울 것입니다. 심복지환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어찌 경하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건시에서의 일전으로 노후의 간담이 서늘해졌을 입니다. 신이 삼군을 이끌고 노나라 경계에 가서 시위를 하면서 규를 죽이라고 압력을 넣겠습니다. 노후는 두려워하여 우리의 압력에 굴복할 것입니다.」

「과인은 경의 말대로 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동원하여 노나라 경계로 보내겠소!」

포숙이 간단히 거마를 점검한 후에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여 곧바로 문양 땅에 당도했다. 노나라에 접한 경계선 주위를 깨끗이 소개 시킨 포숙은 편지를 한 통 써서 습붕을 사자로 삼아 노후에게 전하게 했다. 「외신 포숙아는 현명하신 노후 전하께 백배를 올리며 인사를 드립니다. 집안에는 주인이 둘이 없듯이 나라에도 임금이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 임금께서 이미 제나라의 종묘사직을 받들게 되었으나 공자규가 군위를 급히 빼앗고자 하는 행위는 형제간의 정리가 아닙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형제간의 정을 생각하여 그 형을 차마 죽일 수 없으니, 원컨대 상국의 손을 빌리고자 합니다. 관중과 소홀은 저희 임금의 원수라 태묘에 제사를 지낼 때 죽여 그 희생으로 바치고자 하니 저희에게 넘겨주시기를 청합니다.」

습붕이 편지를 들고 노나라로 출발하려고 하자 포숙이 다시 당부의 말을 하였다.

「관이오는 천하의 기재라 내가 주군께 천거하여 장차 중용하려고 합니다. 반드시 산채로 데려와야 합니다.」

「만약에 노나라가 관중을 죽이려고 한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 주군이 관중이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한 일로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면 노후는 믿을 것입니다.」

포숙의 당부를 받은 습붕이 노나라의 도성을 향하여 길을 출발했다. 포숙이 보낸 편지를 받아 읽어본 노장공은 모사 시백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제16회로 계속』

주석

①我生者父母, 知我者鮑叔哉!

②제양공(齊襄公), 자규(子糾), 소백(小白-후에 제환공(齊桓公))의 관계는 연의(演義)에는 자규와 소백이 제양공의 아들로 나오나 정사인 사기와 좌전에 의하면 제양공, 자규, 소백은 모두 제희공(齊僖公)의 배다른 형제다.

③거(莒)/ 현 산동성 거현(莒縣) 부근에 있었던 영성(贏姓) 제후국이다.

④생두(生竇)/ 현 하남성과의 접경지역에 있는 산동성 견성(鄄城) 서남쪽 약15키로 지점

⑤즉묵(卽墨)/ 현 산동성(山東省) 래서시(萊西市) 남서쪽 약30km 되는 곳의 평도현(平度縣) 경계의 동남

⑥온거(溫車)/ 사방에 휘장을 둘러 밀폐시켜 안을 따뜻하게 하여 장거리를 갈 때 누워서 편히 갈수 있게 만든 수레.

⑦건시(乾時)/ 지금의 산동성 익도현(益都縣) 경내

⑧초거(軺車)/ 사닥다리나 망루를 장착한 수레로써 휴전 중에는 성안의 적진을 정찰하거나 전투 중에는 성벽에 사닥다리를 대어 군사들이 타고 오르는데 사용되는 전차를 말한다. 또한 말 한 필이 끌어 좁은 길을 빠른 속도록 달릴 수 있는 수레를 말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말한다.

⑨문양(汶陽)/ 지금의 산동성 문상현(汶上縣)을 말함. 곡부시(曲阜市) 북서 약30키로 되는 곳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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