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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18회. 曹沫劫盟(조말겁맹), 寧戚擇主(영척택주)
양승국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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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18-2. 柯 땅의 회맹에서 제환공을 위협하여 문양의 땅을 되찾은 노나라의 장군 조말 복사.jpg  (1.7M)   download : 120
일반

제18회 曹沫劫盟 寧戚擇主(조말겁맹 영척택주)

칼로 회맹장을 범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은 조말과

제환공을 시험하여 자기의 군주로 선택한 영척

1. 존왕양이(尊王攘夷)

- 주천자를 받들고 이족을 물리쳐 패업을 추구하는 제환공. -

주리왕(周釐王) 원년은 기원전681년이다. 그해 봄 정월에 제환공은 새로 지은 조당에서 여러 신하들의 신년인사를 받았다. 군신들이 조배를 오리고 경하의 말을 모두 마치자 제환공이 관중을 향해 물었다.

「과인이 중보의 가르침을 받들고 또한 국정을 다시 크게 펼쳤습니다. 오늘날 나라의 군사들은 정예하고 양식은 풍족해 졌으며 백성들은 모두가 예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회맹(會盟)을 행하여 패업을 정하려고 하는데 중보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지금 백성들의 수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제나라만이 천하의 제후국들 중 최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쪽에는 형(荊) 땅의 초나라와 서쪽에는 당진(唐晉)과 섬진(陝秦)이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군주들은 모두가 스스로 영웅이라고 높이고 있으나 주왕을 받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패업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주왕실은 비록 쇠하여 그 힘이 미약하게 되었으나 아직은 천하의 주인입니다. 주왕실이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한 이래로 제후들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더욱이 정백 오생이 주환왕의 팔을 활로 쏘아 부상을 입혔고 후에 다섯 나라가① 주장왕의 명을 받들지 않고 주천자의 군사를 위나라 땅에서 물리친 결과 마침내는 열국의 신자들로 하여금 그 임금과 신하가 누구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초자(楚子) 웅통(熊通)이 왕호를 참칭하고, 송나라와 정나라는 그 군주들을 시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한 결과 군주를 죽이는 일은 예사롭게 되어 누구도 감히 죄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일에 이르러 주장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고, 새로운 천자가 등극하는 와중에도,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이 란을 일으켜 그 군주를 시해했습니다. 다행히 송나라의 국인들이 힘을 합쳐 역신은 비록 잡아 죽이기는 했으나 송나라의 군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사절을 주나라 왕실에 보내어 천자의 조칙을 구해 여러 제후들을 크게 모이게 하여 송군의 자리를 정하게 하십시오. 송군의 자리가 일단 정해지면 천자의 명을 받들어 제후들을 다스리고 안으로는 왕실을 높이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쳐야 합니다. 열국 중에 허약한 나라는 부추기고 강하고 횡포한 나라는 억누르시고, 명을 받들지 않고 천하를 혼란하게 하는 나라는 제후들을 인솔하여 토벌하십시오. 중원의 제후들이 우리가 공평무사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면 틀림없이 서로 무리를 지어 우리 제나라에 입조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군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능히 패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자를 낙읍으로 보내어 주리왕의 즉위를 경축하고 명을 받들어 회맹을 하여 송나라 군위를 정하겠다고 청했다. 주리왕이 말했다.

「백구(伯舅)가 우리 왕실을 잊지 않고 있으니 짐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로다. 사수(泗水)② 강변의 제후들은 오로지 백구의 명을 따르고 있으니 짐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북행지맹(北杏之盟)

- 북행에서 회맹을 주재하여 패자의 첫 발을 내딛는 제환공-

제나라의 사자가 주나라에서 돌아와서 환공에게 고했다. 환공이 즉시 왕명을 칭하여 송(宋), 진(陳), 채(蔡), 위(衛), 정(鄭), 조(曹), 주(邾)등의 나라에 널리 알려3월 삭일에 모두 북행(北杏)③의 땅에 모두 모이도록 전했다.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번 회맹을 열기 위해서는 병거를 얼마나 데리고 가야 합니까?」

「군주께서 왕명을 받들어 제후들에게 임하는데 어찌 병거를 몰고 갈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의장(儀仗)에 필요한 병거만을 데리고 가서 회맹을 주재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환공이 즉시 군사들을 먼저 북행으로 먼저 보내 제단을3층으로 쌓게 하고 각 층의 높이는3장이 되게 했다. 단의 왼쪽에는 종을 달게 하고 오른쪽에는 북을 매달았으며, 천자의 자리에 해당하는 맨 위의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 놓고 바로 그 곁에 토대(土臺)를 세웠다. 하얀 옥으로 깎아 만든 그릇들을 토대 위에 올려놓고 가지런하게 정열 해 놓았다. 또한 관사를 여러 곳에 미리 지어 준비하고 요충지를 파악하여 토지의 크고 넓음을 알고자 했다. 이윽고 약정한 기일이 되자 송환공(宋桓公) 어설(御說)이 먼저 당도하여 제환공과 상면하고 자기의 군위를 정하기 위하여 이렇듯 수고를 끼치게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올렸다. 다음날 진선공(陳宣公) 저구(杵臼)와 주자(邾子) 극(克) 두 사람의 군주가 뒤를 잇고 이어서 얼마 전에 식규(息嬀)의 일로 초나라에 사로잡혀 있다가 방면된 일에 대해 가슴 깊에 한을 품고 있던 채애후(蔡哀侯) 헌무(獻舞)도 역시 회맹장에 당도했다. 제후(齊侯)가 병거를 한 대도 끌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4국의 군주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을 했다.

「제후가 단신으로 이렇게 행차를 하니, 그가 사람을 진실된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제후들 역시 즉시 명하여 자기들이 끌고 온 병거를20리 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때는2월이 가고3월이 다가오는 계절이었다. 환공이 관중에게 말했다.

「소집한 제후들이 아직 모이지 않았으니 기일을 다시 정하여 그때까지 기다려 봄이 어떻겠습니까?」

「옛말에 사람 셋만 모여도 회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4국의 제후들이 모였으니 그 수가 부족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약속한 회맹의 기일을 변경함은 간에 믿음을 잃게 되는 행위입니다. 오지도 않을 제후를 무작정 기다리는 일도 왕명을 욕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제후들이 처음으로 한 곳에 모였는데 믿음이 없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이것 또한 왕명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뿐으로 그렇게 해서는 패업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맹(盟)과 회(會)라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합니까?」

「인심이 아직 하나가 되지 않았고, 다시 모이기를 기다려 흩어지지 않으니 이것은 곧 국가 간에 연합한다는 뜻의 맹(盟)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겠습니다.」

3월 삭일 이른 아침 다섯 나라 제후들이 단 밑에 모두 모였다. 서로 상견례를 치르고 나자 환공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예를 표하면서 여러 제후들에게 말하였다.

「왕명이 오랫동안 시행되지 않고 반란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천자의 명령을 받들어 여러 군주님들을 모시고 왕실을 보좌하는 일을 의논하려고 합니다. 금일의 일은 반드시 한 사람의 제후를 맹주로 정한 후에 그 권한을 위임하여 천자의 정령을 천하에 펼치도록 해야 합니다.」

제후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제환공을 맹주로 추대하려고 하였으나 송군의 작위는 공작(公爵)인데 반해 제후의 작위는 후작(侯爵)에 머물러, 높고 낮은 것에도 순서가 있다고 하여 송군을 세우려고 했으나, 송공이 스스로 자기가 즉위한지가 얼마 되지 않다고 생각하여 맹주의 자리를 제후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제후가 스스로 높이지 못하여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진선공 저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천자의 명으로 이렇게 모였는데 맹주를 제후(齊侯)로 하지 않으면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제후를 맹주로 추대하여야 합니다.」

여러 제후(諸侯)들이 모두 말했다.

「제후(齊侯)가 아니면 누가 이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진후의 말이 옳습니다.」

환공이 재삼 겸양하다가 마지못해 단에 올랐다. 제후(齊侯)가 맨 앞에 서고 다음에 송공(宋公), 진후(陳侯), 채후(蔡侯), 주자(邾子)가 순서를 정하여 차례로 도열했다. 제후들이 단위에 올라가 작위의 서열에 따라 차례로 줄을 서기를 마치자, 종을 울리고 북을 쳐서 먼저 비워둔 천자의 자리를 향하여 예를 행하고 연후에 서로 절을 교환하여 형제의 정을 나누기로 맹세했다. 제나라의 중손추가 죽간이 들어 있는 상자를 두 손으로 바쳐 들고 와서 무릎을 꿇고 읽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제소백(齊小伯), 송어설(宋御說), 진저구(陳杵臼), 채헌무(蔡獻舞), 주극(邾克)은 천자의 명을 받아 북행에 모여 힘을 합하여 왕실을 받들고 약한 자를 보살피고 쓰러지려는 자는 부축하여 돕고자 한다. 이 회맹에서 한 약속을 어기는 자는 나머지 열국이 힘을 합하여 토벌하기로 한다.』

제후들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예를 표하고 명을 받들었다. <논어>의 제환공을 칭찬하는 구절에, 제후가 제후들을 아홉 번 모이게 했는데 북행에서의 회맹은 그 아홉 번 회맹 중 그 첫 번째였다고 했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의관을 정제한 다섯 군주가 한 곳에 모이니 단상이 가득 찼구나!

제나라의 정치가 크게 펼쳐져 새롭게 빛나게 되었으니

모임에 먼저 달려 온 사람이 누구인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천하 제일인자로 추대되었던 사람은 제환공뿐이었다.

濟濟冠裳集五君(제제관상집오군)

臨淄事業赫然新(임치사업혁연신)

局中先着誰能識(국중선착수능식)

只爲推尊第一人(지위추존제일인)

제후들이 서로 술잔을 돌려 마시기를 마치자 관중이 계단을 통하여 단상에 올라 제환공에게 상주했다.

「노(魯), 위(衛), 정(鄭), 조(曹) 등의 나라는 왕명을 위반하여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토벌하여 죄를 물어야합니다.」

제환공이 손을 들어 읍을 하며 네 사람의 군주들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 제나라만의 병거로는 그 숫자가 부족하니 원컨대 여러 군주들께서 군사를 내어 같이 토벌에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진, 채, 주 세 나라 군주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여 대답하였다

「어찌 감히 폐읍의 군졸을 내어 종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송환공 혼자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잠자코만 있었다. 이윽고 날이 저물자 송공이 관사에 돌아가서 대부 대숙피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제후가 망령되게 스스로를 높이고 더욱이 회맹의 맹주가 되어 여러 나라의 군사들을 징발하려고 하오. 앞으로 우리나라는 제후의 명령을 받들기에 바빠 피폐해질 운명에 처했소.」

대숙피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회맹에 참석한 제후들이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제후를 거들고 있기 때문에 아직 제나라가 세를 규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나라가 제후들을 이끌고 노와 정 두 나라를 정벌하여 복종시킨다면 제나라는 패업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송나라에게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곳에 모인 네 나라 중에 오로지 송나라만이 대국입니다. 우리 송나라가 병사를 내지 않고 제후에게 협력하지 않는다면 남은 세 나라도 역시 흩어질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이곳에 와서 회맹에 참석한 이유는 단지 왕명을 받아 주군의 위를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이미 그 뜻을 이루어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먼저 돌아가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송환공이 대숙피의 말을 듣고 밤이 되어 오경이 되었을 때 수레를 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송공이 회맹을 배반하고 밤중에 몰래 도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제환공은 대노하여 중손추에게 군사를 주어 뒤를 쫓게 하려고 했으나 관중이 말리면서 말했다.

「도망간 송공의 뒤를 쫓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천자께 상주하여 군사를 청한 후에 정벌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송공의 일은 명분을 갖춘 뒤에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보다 더 급한 것부터 처리한 후에 송나라를 정벌해야 합니다. 」

「이 일 보다 더 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송나라는 멀고 노나라는 가깝습니다. 또한 왕실을 위하여 여러 나라가 회맹을 하고자 하는데 노나라를 먼저 복종시키지 않고 어찌 송나라를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노나라를 정벌하는 데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합니까?」

「제나라의 동북쪽에 수(遂)④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는 곧 노나라의 부용국(附庸國)으로 나라는 작고 그 세력은 약합니다. 또한 종족도 넷 밖에 없어 만약 많은 군사들 동원하여 압력을 가하면 반나절도 못되어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수나라의 항복은 필시 노나라에게는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한 사람의 사자를 보내어 회맹에 참석하지 않음을 꾸짖고 한편으로는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노부인에게 보내십시오. 노부인은 원래 아들인 장공이 외가인 우리 제나라와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 알아서 노후를 종용(慫慂)할 것입니다. 노후가 안으로 모친에게 압력을 받고 밖으로는 군사들의 위협을 받게 되면 두려워하여 반드시 회맹을 하자고 청해 올 것입니다. 노나라가 회맹을 청해 올 때를 기다렸다가 허락하십시오. 노나라 문제를 푼 다음에 군사를 송나라로 옮겨 천자의 신하로 임하게 되면 이것은 소위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계책입니다.」

3. 조말겁맹(曹沫劫盟)

- 칼로 회맹장을 범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은 조말-

제환공이 즉시 스스로 군사를 인솔하고 수나라로 진격하여 북을 한번 치자 수국의 군주가 즉시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어서 제환공은 군사를 움직여 노나라를 향해 진격하게 하여 문수(汶水) 강변에 주둔 시켰다. 과연 노장공이 두려워하여 군신들을 모두 모아 놓고 그 대책을 물었다. 공자경보(公子慶父)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우리나라를 두 번이나 쳐들어 왔었으나 한 번도 우리한테 이기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신이 나아가 제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겠습니다.」

여러 군신들 중에서 한 사람의 신하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불가, 불가합니다. 」

장공이 보니 다름이 아니라 모사 시백이었다.

「그대는 어떤 계책을 갖고 있는가?」

「신은 옛날에 전하께 ‘ 관자(管子)는 천하의 기재(奇才)라 살려두면 우리 노나라의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지금은 관자가 제나라의 정사를 맡아본지 오래라 병사들은 절제가 있고 그 세는 강성합니다. 우리가 제나라 군사들에게 대항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북행의 회맹은 주천자를 높인다는 명을 받들어 행한 일로써 주공께서 불참하신 일은 결국은 주천자의 명을 거슬리게 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후가 주공의 잘못을 천자의 명으로 책하는 모양새가 되어 우리가 대항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옛날 주공께서 공자규를 죽인 일은 제후를 위해 공을 세운 것이고, 또한 주천자의 왕녀와 제후의 혼사를 주관하시어 주공께서는 제후에게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군사를 내어 제나라 군사들과 싸운다면 왕년에 우리가 세웠던 공과 은혜를 버리고 오히려 원수의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니 그 세 번째 불가함입니다. 오늘 난국을 벗어나기 위한 계책은 오로지 화의를 신청하고 회맹을 맺어 제나라 군사들을 싸우지 않고 물러가게 하는 방법뿐입니다.」

조규가 시백의 뒤를 이어 군신들의 반열에서 나와 말했다.

「신의 뜻도 시백과 같습니다.」

노나라의 군신들이 조당에서 설왕설래하던 중에 장공을 모시던 시자가 달려와 고했다.

「제후가 사자 편에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

장공이 편지를 받아 겉봉을 뜯고 읽었다.

「과인과 군은 주왕실을 위해 일을 같이 함으로 해서 그 정은 동모 형제처럼 친하고 또한 두 나라는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인데도 북행의 회합에 군께서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과인이 감히 이번 기회에 그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만약에 다른 뜻이 있으셨다면 그 이유를 알려주기 바랍니다.」

제환공이 별도로 편지 한 통을 더 써서 문강(文姜)에게 보냈다. 제환공의 편지를 받아 본 문강은 장공을 불러 말했다.

「제와 노 두 나라는 대대로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인데 제나라로 하여금 우리들을 싫어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가 장차 무슨 방법으로 두 나라가 친하게 지낼 수 있겠느냐?」

노장공은 문강의 말에 오로지 「예, 예」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강 앞에서 물러 나와 시백으로 하여금 제환공에게 답서를 쓰도록 했다. 답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천한 몸에 병이 들어 왕명을 받들어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군후께서 대의로 이를 책망하시니 저는 죄가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회맹을 우리 노나라 도성 밑에서 행하는 일은 저에게는 실로 치욕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군후께서 군사들을 몇 사(舍)의 거리만큼 물리쳐 두 나라 사이의 경계에 두신다면 제가 어찌 감히 옥백(玉帛)의 예물을 들고 찾아뵈어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편지를 받아 읽어보고 크게 기뻐한 제후가 군사들에게 명령을 발하여 가(柯)⑤ 땅으로 퇴군했다. 노장공이 제후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그 군신들을 향해 물었다.

「누가 이 번 행차에 능히 나를 호종하겠는가?」

장군 조말(曹沫)이 자원했다. 장공이 보고 말했다.

「경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세 번 싸워서 모두 진 패장이 아닌가? 경을 데려갔다가 제나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되오!」

「그 동안 신은 제나라와 세 번 싸워 모두 패한 일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에 주공을 호종하여 설욕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 설욕한단 말이오?」

「군주는 마땅히 군주다워야 하며 신하된 자는 마땅히 신하다워야 하는 태도로 임하겠습니다.」

「나라의 국경을 벗어나 회맹에 참석하는 이 번의 행위는 다시 싸움터에 출전하는 행위와 같소. 만약 경이 이번 기회에 그 치욕을 설욕할 수 있다면 같이 가도록 하겠소!」

조말을 대동한 노장공은 노나라를 출발하여 제환공이 기다리고 있는 가 땅에 당도했다. 그때는 이미 제후가 흙으로 제단을 쌓아 놓고 노장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노장공이 먼저 사람을 보내 자기의 죄를 말하고 회맹하기를 청하자 제환공 역시 사람을 보내 의식을 행할 날짜를 정해 알려왔다. 이윽고 약속한 회맹일이 되자 제환공은 건장한 병사들을 단 밑에 도열시키고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청, 홍, 흑, 백의 깃발을 각각 세운 다음에 그 밑에 각기 대오를 정하고 그 대오를 지휘하는 장수를 두고 중손추에게 통솔을 맡겼다. 계단의 높이는 칠 층으로 하고 매 층마다 장사들로 하여금 노란색의 깃발을 들고 지키게 하였으며, 그 앞에는 방백이라고 수를 놓은 노란색의 큰 기를 세우고, 옆에는 큰북을 놓아 왕자성보로 하여금 관장하게 했다. 제단의 중간에는 제상을 준비하고 그 앞에는 탁자를 놓아 향로를 올려놓았다. 제상 위에는 주목으로 만든 접시와 옥으로 만든 술잔을 배열해 놓고 희생물의 피를 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여 습붕에게 명하에 주관하게 했으며, 향을 피우는 탁자 옆에는 흙으로 토대를 만들어 그 위에 금으로 만든 술병과 옥으로 만든 술잔을 올려놓고 시인(寺人) 초(貂)로 하여금 보살피게 했다. 제단의 서쪽에는 돌기둥을 두개를 세워 검은 소와 백말을 묶어 놓고 도인(屠人)을 대기시켜 두 마리의 희생을 잡을 준비를 시키고 궁전 요리사인 역아(易牙)에게 감독을 시켰다. 동곽아는 제단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을 영접하여 계단 위로 모시는 일을 맡겼다. 관중 자신은 회견의 의식을 주관하는 상(相)이 되어 제단 위로 올라가 서있었는데 그 기상이 자못 엄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환공 이윽고 입을 열어 명령을 내렸다.

「노나라의 군주가 당도하면 오로지 군주와 수행하는 신하 한 사람만을 제단에 오르게 하고 남은 사람들은 단 밑에 머물게 하라!」

한편 속에 갑옷을 받쳐 입고 손에는 예리한 칼을 든 조말은 노장공의 등 뒤를 바짝 붙어 따랐다. 장공은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마치 일전을 위해 싸움터로 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두려움에 떨었으나, 조말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노장공 일행이 제단입구에 당도하여 단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동곽아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오늘은 두 나라 군주께서 좋은 마음으로 회합을 하고자 하고 또한 재상들도 서로 예를 갖춰서 대하여야 하는데 손에 들고 가져가는 흉기는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하십니까? 원컨대, 칼은 이곳에다 두고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조말이 눈을 부릅뜨고 동곽아를 노려보는데 그의 양쪽 눈꼬리는 거의 찢어지는 듯했다. 동곽아가 놀라 주춤하며 뒤로 몇 걸을 물러났다. 그 사이에 노장공과 조말이 계단을 밟고 제단 위로 올라갔다. 두 나라의 군주들이 서로 상견례를 올리고 앞으로 두 나라는 서로 수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소리가 세 번 울리고 제단 위의 제상 앞에 준비된 향로에 향을 살라 회맹의 의식을 시작했다. 습붕이 희생의 피가 담긴 옥으로 만든 그릇을 가져와 두 사람의 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바치며 삽혈의 의식을 행하기를 청했다. 그 순간 노장공의 등 뒤에 서있던 조말이 앞으로 뛰어나오며 오른 손으로는 칼을 들고 왼손으로는 환공의 소매 자락을 움켜쥐고 노기발발한 기색으로 찌르려고 했다. 관중이 급히 몸으로 환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대부는 어찌하여 이리 무례하십니까?」

「노나라는 계속해서 제나라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후께서는 약한 자를 구하고 쓰러지는 자는 부축한다 하고, 여러 제후(諸侯)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회합하여 맹세하고서는 어찌하여 유독 우리 노나라에게만은 그리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대부께서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

「제나라는 그 군사의 강함만을 믿고 약자를 기만하여 우리 노나라의 문양(汶陽) 땅을 뺏어 갔습니다. 오늘 그 땅을 돌려주신다면 저희 주공과 저는 즉시 삽혈을 행하여 맹세하겠습니다.」

관중이 돌아서며 환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군께서는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

제환공이 말했다.

「대부께서는 칼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대부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조말이 즉시 칼을 거두고 습붕에게서 희생의 피가 담긴 옥으로 만든 그릇을 건너 받아 두 사람의 군주들에게 바쳤다. 두 군주가 모두 삽혈의 의식을 행하기를 마치자 기다리고 있던 조말이 다시 말했다.

「중보께서는 제나라의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계시니 원컨대 저와 같이 삽혈을 하여 징표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환공이 듣고 말했다.

「하필이면 중보와 같이하려고 합니까? 과인이 맹세하면 그만 아닙니까? 」

환공이 즉시 하늘에 떠 있는 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맹세했다.

「만약 내가 문양의 땅을 노나라에 돌려주지 않는다면 나에게 천벌을 내리소서!」

조말도 뒤따라 삽혈을 하고 나서 환공에게 감사의 말과 절을 올리며 술잔을 바치고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했다.

이윽고 두 나라 군주들의 회맹을 위한 의식이 끝나자 왕자성보를 위시한 제나라의 여러 군신들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불평했다. 그들은 환공에게 노후를 겁주어 조말에게서 받은 수모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환공이 듣고 말했다.

「과인이 이미 조말에게 허락한 일이오! 필부도 그 약속을 어기면 안 되거늘 항차 군주의 약속이야 말해야 무엇하리오!」

여러 군신들이 환공의 말을 듣고 물러갔다. 다음 날 환공이 다시 공관에 술자리를 준비하여 노장공과 작별의 술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환공은 귀국하는 즉시 명을 내려 남쪽 변경 마을의 수장에게 명하여 지난번에 노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은 문양의 땅을 전부 돌려주라고 했다. 후세의 사관이 이 일을 두고 논했다. 제환공이 회맹을 강제로 행하기 위해 남의 나라를 침범했지만 상대방을 속이지 않았다. 조말이 환공을 위협하여 자기의 뜻하는 바를 이루었으나 환공은 그를 용서했다. 이것이 소위 제환공이 천하의 패자가 된 연유라고 말했다. 이 일을 두고 노래한 시가 있다.

높고 높은 패업의 기세가 동쪽의 노나라를 삼켰는데

한 척 길이의 검으로 어찌 이것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신의로써 군웅들을 복종시키려고 하는데

문양 땅 한 조각이 어찌 아깝다 하겠는가?

巍巍覇氣呑東魯(외외패기탄동노)

尺劍如何能用武(척검여하능용무)

要將信義服群雄(요장신의복군웅)

不吝汶陽一片土(불린문양일편토)

또 조말이 단신으로 제환공를 위협한 일을 후세 사람들이 협객의 시조로 추대하여 시를 지었다.

파도처럼 몰려와 에워싼 과갑의 기세는 삼엄했는데

검 한 자루에 의지하여 제단에 올라선 기상이 호쾌하구나!

세 번의 싸움에서 패한 수치를 하루아침에 씻으니

천추의 협객들 중 조말을 그 수장으로 치노라!

森森戈甲擁如潮(삼림과갑용여조)

仗劍登壇意氣豪(장검등단의기호)

三敗羞顔一日洗(삼패수안일일세)

千秋俠客首称曹(천추협객수칭조)

4. 영척택주(寧戚擇主)

- 영척이 신하가 되기 전에 그 군주를 시험해보다. -

열국의 제후들은 가 땅에서 제와 노 두 나라가 회맹을 한 전말을 전해 듣고, 모두가 환공은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마음속으로 복종했다. 그래서 위(衛)와 조(曹) 두 나라는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북행에서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죄를 빌고 추후로라도 별도의 회맹을 열면 참석하겠다는 뜻을 통고했다. 제환공은 일단 송나라를 정벌한 다음에 그들 나라들과 회맹을 하기로 하고 그 기일은 후에 상의하여 정하기로 했다. 이어서 제환공은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 송나라가 회맹 중에 도주하여 왕명을 받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죄를 물어 토벌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왕실의 군사를 청하여 송나라를 토벌하여 죄를 묻겠다고 했다. 주리왕(周釐王)이 대부 선멸(單蔑)에게 군사를 주어 송나라를 정벌하는 제나라를 돕도록 명했다. 진(陳)과 조(曹) 두 나라도 군사를 보내와 송나라 정벌군의 선봉을 맡겠다고 청했다. 제환공은 관중에게 먼저 일군을 거느리고 나가 진과 조 두 나라 군사들과 합류하여 먼저 출발하게 하고 자기는 스스로는 습붕, 왕자성보 및 동곽아와 함께 대군을 일으켜 관중의 뒤를 따랐다. 이리하여 제나라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송나라 도성 수양성이 있는 상구(商丘)의 땅에서 모이게 되었다. 이때가 주리왕2년 기원전680년의 일이었다.

관중에게는 이름을 정(婧)이라 하고 종리(鍾離)⑥ 출신의 사랑하는 희첩이 있었다. 그녀는 글을 잘하고 지혜가 있었다. 제환공은 평소에 여색을 밝혀 매 번 출정을 나갈 때마다 반드시 희빈들을 데리고 다녔다. 송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할 때 관중도 역시 애첩 정을 데리고 출정을 나가기로 했다. 이윽고 출정할 날이 되자 관중은 정을 수레에 태우고 군사들과 함께 남문을 통하여 임치성을 나갔다.

관중의 행렬이 도성의 남문을 통하여 출병하여 약30여 리쯤 행군하여 노산(峱山)⑦이라는 곳을 지나가다가 산 밑에서 소에게 꼴을 먹이고 있는 농부 한 사람을 보았다. 그 농부는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중이 수레 안에서 노래 소리를 듣고 그 농부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술과 음식을 가져가 소치는 일의 노고를 위로하게 했다. 농부가 술과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말을 했다.

「내가 재상 중보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 주시오」

관중이 탄 수레는 이미 지나가 멀리 가버려 상면할 수 없다고 사자가 대답하자 그 농부가 말했다.

「그러면 ‘ 호호호백수(浩浩乎白水)’라는 말을 상국에게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자가 관중의 수레를 급히 뒤따라가 농부가 말한 문구를 전했다. 관중이 그 문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연해 하며 정에게 아는지 물었다. 정이 대답했다.

「옛날에 읽은 책 중에<백수(白水)>라는 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넓고 넓은 백수 중에

많고 많은 피라미

군께서 친히 오셔서 나를 부르시니

내가 어디에 몸을 두리오리까?

浩浩白水(호홉백수)

鯈鯈之魚(조조지어)

君來召我(군래소아)

我將安居(아장안거)

이 시의 내용으로 봐서 그 사람은 아마도 출사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관중이 즉시 수레를 멈추게 하고 사람을 보내 그 농부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 농부가 소를 근처의 농가에 맡겨 놓고 사자의 뒤를 따라 관중 앞에 대령했다. 농부는 관중에게 길게 읍은 올렸지만 엎드려 절은 하지 않았다. 관중은 농부에게 그 성과 이름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저는 위나라 출신으로 들에서 소를 치며 살아가는 농부입니다. 성은 영(寧)이고 이름은 척(戚)입니다. 상국께서 현인들과 사귀기를 즐겨 하시고 선비들을 예로서 대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평소에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불원천리 먼 길을 마다 않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나라에 들어와서 상국을 뵈올 길이 없어 촌사람들과 같이 소를 기르며 살다가 상국께서 지나가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이렇게 뵈옵게 되었습니다.」

관중이 영척의 학문을 떠보기 위해 몇 마디 물어 보자 그 대답하는 것이 마치 물 흐르듯 막힘이 없었다. 관중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호걸이 진흙탕 속에 묻혀서 욕을 보고 있는데 꺼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스스로를 빛낼 수가 있었겠습니까? 며칠 후면 우리 군주께서 대군을 이끌고 이곳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편지 한 통을 써서 드리겠으니 선생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우리 주군께서 당도하시면 보이고 배알하시기 바랍니다.」

관중이 즉시 편지 한 통을 써서 주고 영척과 헤어져 행군을 계속했다. 영척은 촌가에 돌아가 맡겨 놓은 소를 찾아 예전처럼 계속해서 꼴을 먹였다. 이윽고 관중의 선발대가 지나간 지3일 후에 제환공이 이끄는 본대가 영척이 살고 있는 마을에 당도했다. 예전의 짧은 바지와 홑옷을 입고 머리에는 찢어진 삿갓에 맨발의 영척은 길가에 서서 대군의 행렬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길가 옆으로 물러나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환공이 타고 있던 가마가 가까이 다가오자 영척이 즉시 소뿔을 두드리면서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깊고 푸른 물 속의 하얀 돌은 찬란하게 빛나고

그 물 속에 한 자 반이나 되는 잉어가 놀고 있구나!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행한 선양의 일을

내 평생 아직 보지 못했다.

짧은 바지 홑적삼이 정강이도 가리지 못하는데

새벽부터 시작한 소몰이는 어느덧 야밤이 되었네

길고 긴 밤이 언제나 지나고

새벽을 맞이하는 때는 그 언제이겠는가?

滄浪之水白石爛(창랑지수백석란)

中有鯉魚長尺半(중유잉어장척반)

生不逢堯與舜禪(생불봉요여순선)

短褐單衣才至骭(단갈단의재지한)

從昏飯牛至夜半(종혼반우지야반)

長夜漫漫何時旦(장야만만하시단)

환공이 듣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좌우의 시종에게 명하여 어가 앞으로 불러 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물었다. 영척이 자기의 성과 이름을 고했다.

「성은 영이고 이름은 척입니다.」

「소를 치는 농부의 주제에 어디서 정사의 일을 풍자하여 비방하는 노래를 배웠는가?」

「신은 소인이온데 어찌 감히 정사의 일을 풍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과인은 위로는 천자를 모시고 아래로는 제후들을 이끌어 왕실에 조공을 올리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모두 즐거이 생업에 종사하고 초목도 물이 올라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해와 같은 요임금이나 하늘과 같은 순임금 때도 이와 같지 태평하지 못했을 텐데 그대가 노래하기를 ‘요순(堯舜)과 같은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라고 하고 또한 말하기를 ‘밤이 길어 새벽이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것이 세상을 풍자한 말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냐?」

「신이 비록 촌에서 소를 치는 농부의 처지이나 오늘날 왕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요순 때에는 열흘마다 바람이 불고5일마다 비가 내려 백성들이 밭을 갈아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고, 땅을 파면 샘물이 솟아서 누구든지 마실 수가 있어 소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임금의 명을 순종하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작금에 이르러 왕실의 기강은 떨치지 못하고 왕화(王化)는 행해지지 않고 있는데 순임금 때의 해와 요임금 때의 하늘과 같다고 하니 진실로 소인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요순의 시대에는 백관이 올바르게 정사에 임하여 모든 제후들이 왕실에 복종했고 사흉(四凶)⑧을 쫓아내어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 세상의 인심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믿고 따랐고 또한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을 갖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군후께서 한 번 손을 들어 제후를 소집하였으나 송나라가 즉시 회맹에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 손을 들어 노나라를 협박하여 강제로 회맹을 맺었습니다. 동원된 군사들은 쉴 틈이 없어 고난에 시달리고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나 군후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초목에 물이 올라 봄을 맞이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소인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소인은 또한 요임금께서 아들 단자(丹子)를 버리시고 천하를 순임금에게 선양하려고 하자 순임금은 남하(南河)라는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백성들이 뒤따라가 모셔와 임금으로 받들자 그때서야 순임금께서는 어쩔 수 없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형을 죽이고 나라를 얻은 후 천자의 이름을 빌려 제후를 호령하고자 하시니 소인은 또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무슨 까닭으로 선양을 하셨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환공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촌에서 소나 치는 필부 주제에 언사가 너무나 불손하구나!」

제환공은 좌우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영척을 끌고 가서 목을 베어 죽이라고 했다. 군사들이 영척을 결박하고 끌고 나가 형을 집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척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한 자세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하나라의 걸왕(桀王)은 현신 용봉(龍逢)⑨을 죽이고 은나라의 주왕(紂王)은 충간하는 비간(比干)⑩을 죽였다. 오늘 영척은 그 뒤를 이어 세 번째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

습붕이 옆에서 듣고 환공에게 가서 말했다.

「이 사람은 권세있는 사람에게 따르지도 않고 위협을 가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니 범상한 사람이 아닌 둣 싶습니다. 부디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환공이 머리를 돌려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노기를 가라앉히고 즉시 영척의 결박을 풀어 놓아주라고 명했다. 환공이 영척을 향하여 말했다.

「과인이 그대를 한 번 시험하여 살펴보려고 했을 뿐이다. 그대는 진실로 훌륭한 선비로다.」

영척이 가슴속의 품을 더듬더니 관중이 써 준 편지를 꺼내어 환공에게 바쳤다. 환공이 겉봉을 뜯고 읽었다.

『신이 주군의 명을 받고 출병하던 중에 노산을 지나다가 위나라 사람 영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소를 치는 농부가 아니라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입니다. 주군께서는 마땅히 측근에 머무르게 하여 보좌를 받도록 하십시오. 만약 군께서 취하지 않아 이웃 나라에서 데려다 쓰게 되면 제나라로서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대는 이미 중보가 써준 편지를 갖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미리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신은 듣기에 ‘어진 임금은 그 신하를 가려 뽑고 어진 신하는 또한 그 군주를 가려 모신다’⑪라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직언을 싫어하시고 아첨을 좋아하여 오로지 노기로써 신을 대하셨다면 영척은 죽을지언정 결단코 상국의 편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좌우에게 명하여 영척을 수레에 태워 자기의 어가를 뒤따르게 했다. 어느 날이 어둑해지자 군사들에게 영채를 세우게 하고 휴식을 취하게 했다. 제환공은 불을 피워 주위를 밝게 하고 의관을 가져오라고 좌우에게 명했다. 시인(寺人) 수초가 말했다.

「군께서 의관을 찾으시는 연유는 혹시 영척에게 하사하시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 」

「위나라는 여기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위나라에 사람을 보내 영척이 과연 현인인지 알아보신 후에 작위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영척은 그릇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조그만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가 위나라에 있을 때 혹시 범한 조그만 과오를 내가 사람을 보내 사실을 알아내어 결국 작위를 아끼게 된다면 내가 내린 작위는 빛을 잃게 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서 그를 잃기라도 한다면 매우 후회막급한 일이 되지 않겠느냐?」

수초를 물리친 제환공이 즉시 등불 밑에서 영척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리고 관중과 함께 국정을 같이 맡아보게 했다. 영척이 의관을 바꾸어 입고 감사의 말을 올린 후에 밖으로 나갔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짧은 바지와 홑적삼의 궁색한 목부가

요순은 만나지 못했으나 환공은 만났구나

쇠뿔을 두드리며 부른 노래를 그치고 환공을 따랐으니

곰으로 변해 주문왕의 꿈속에 들어간 강태공의 환생이 아닌가?

短褐單衣牧竪窮(단갈단의목수궁)

不逢堯舜遇桓公(불봉요순우환공)

自從叩角歌聲歇(자종고각가성헐)

无復飛熊入夢中(무복비웅입몽중)

5. 인신불고(引绅不顾)

- 관끈을 잡아당기는 대숙피의 신호를 무시하고 영척의 유세를 받아들인 송환공-

제환공이 이끄는 군사들이 송나라 경계에 당도하자 진선공 저구와 조장공(曹莊公) 석고(射姑)가 군사를 이끌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주나라의 선자(單子)도 왕군을 이끌고 당도하여 제후군에 합류했다. 제후들과 선멸이 서로 간에 상견례를 끝내고 송나라를 공격할 계책을 상의했다. 영척이 앞으로 나와 환공에게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주공께서는 천자의 명에 따라 제후들을 규합하여 위엄으로 승리를 취하고자 하시는데 이는 덕을 베풀어 승리를 취하느니만 못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구태여 군사를 진격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세 치의 혀를 가지고 송공 앞에 나아가 화의를 이끌어 내도록 해보겠습니다.」

환공이 크게 기뻐하며 영을 내려 송나라 경계 상에 영채를 세우도록 명을 내린 후에 영척을 사자로 삼아 송나라에 보냈다. 영척이 조그만 수레를 타고 몇 명의 수행원과 함께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 밑에 당도하여 송공의 접견을 청했다. 송환공이 대숙피에게 물었다.

「제나라의 사자로 온 영척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까?」

「신이 듣기에 이 사람은 소를 치던 촌부였는데 제후가 발탁해서 대부에 봉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구변이 보통사람 이상으로 능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송나라로 들어오는 목적은 주공에게 유세하여 설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

「그를 어떻게 대하여야 합니까?」

「주공께서 그를 안으로 부르시어 무례하게 대하시며 그의 표정을 살피십시오. 만약 그가 하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신이 관끈을 잡아당기겠습니다. 그것을 신호로 삼아 무사들에게 명하여 포박해서 옥에다 가둬 버리면 제후의 계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송환공이 머리를 끄덕이고 무사들을 매복시키고 별도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숨어 있도록 했다. 이윽고 영척이 넓은 옷에 큰 허리띠를 두르고 의젓한 모습으로 조당에 들어와 송환공을 보고 읍을 길게 올렸다. 송환공은 영척의 인사에 답례도 하지 않고 한 마디의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저 멀뚱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영척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장탄식을 했다.

「위태롭구나, 송나라여!」

송환공이 놀라서 물었다.

「나의 작위는 상공이라 모든 제후들의 앞자리에 있는데 어찌하여 위태롭다고 하는가?」

「명공께서는 스스로를 주공(周公)과 비교하여 누가 더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공은 성인인데 내가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주공께서는 주나라를 잘 다스려 번성하게 하였고, 또한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 사방의 오랑캐를 입조하게 하여 복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토포악발(吐哺握髮)⑫조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천하의 현자를 맞이하였습니다. 지금 거의 망해 가고 있는 나라의 군주 자리를 차지하고 또한 각처에는 군웅들이 힘을 겨루고 있는 험난한 시대를 맞이하여 양대에 걸쳐 연속하여 시역한 나라를 물려받은 명공께서는 감히 주공을 본받으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선비 앞에서 몸을 낮추시고 또한 선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셔야 하거늘 오히려 망녕되게 스스롤 높여 현자를 멀리하고 선비를 대하는데 이렇게 태만하십니다. 또한 비록 신하 중에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다한들 그 신하의 말이 어찌 능히 명공의 귀에까지 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위태로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송환공이 악연히 놀라 자리에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가 군위에 앉은 지가 일천하여 군자의 도리에 대해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선생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깨우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옆에서 시립하고 있던 대숙피는 영척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라에서 일어나는 송환공의 모습을 보자 자기가 쓰고 있던 관끈을 계속해서 잡아 당겼다. 송환공이 대숙피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영척을 향하여 말했다.

「선생이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천자가 권위를 잃자 제후들은 흩어져 임금과 신하의 질서가 없어졌고 찬탈과 시역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을 참지 못하신 제후(齊侯)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지난 여름 북행 땅에서 회맹을 주관하고 명공의 이름을 회맹에 올려 군위를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회맹에 바로 등을 돌렸기 때문에 아직 명공의 군위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들으신 천자께서 매우 진노하시어 특별히 왕실의 신하에게 군사를 주어 보내시어 제후들과 함께 송나라를 토벌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명공은 이미 왕명을 따르지 않으셨고 또한 장차 천자의 군사들에게 항거하게 되어 싸움을 하지 않아도 신은 이미 그 승부를 점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소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한 묶음의 예물을 애석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제나라와 회맹을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위로는 주천자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회맹의 맹주가 되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군사를 움직이지 않으셔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송나라의 안전은 마치 태산처럼 튼튼해질 것입니다.」

「내가 한 때나마 실수를 하여 회맹을 끝맺지 못 했습니다. 오늘 제나라가 바야흐로 군사를 내어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데 어찌 제후가 우리 송나라의 예물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제후는 마음이 넓고 어질 뿐 아니라 도량이 커서 사람의 지나간 과실에 연연해하지 않고 옛날의 원한도 마음속에 두지 않습니다. 노나라가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가(柯)땅에서 다시 맹약을 맺고 더욱이 옛날에 빼앗았던 땅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항차 명공은 회합에 참석하기까지 했는데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장차 어떤 예물을 갖고 가면 되겠습니까?」

「제후는 이웃 나라들과 화목하기 위해 주는 예물은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은 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단지 한 다발의 육포로 예물을 삼으시면 되겠습니다. 나라의 부고를 기우려 많은 재물을 가져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송환공이 크게 기뻐하여 영척에게 사자를 딸려서 제나라 군중으로 보내어 화의를 맺도록 청하게 했다. 대숙피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가득 띄우고는 송환공 앞에서 물러갔다.

송나라 사자가 제후를 배알하고 사죄를 드리고 회맹의 의식을 행하기를 청했다. 벽옥(璧玉) 열 쌍과 황금 천일(千鎰)⑬을 예물로 받은 환공이 보고 말했다.

「천자의 명을 받들 뿐이었는데 어찌 감히 내가 스스로 이런 재물들을 받을 수 있겠는가? 왕실에서 나온 분을 통해 천자께 바쳐 송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주청드리는 것이 좋겠다.」

제환공이 즉시 금과 백옥을 선멸에게 보내 송공의 성의를 치하하게 했다. 선멸이 말했다.

「만일 군후께서 송공을 너그럽게 용서하시겠다고 하면 있는 그대로 천자께 복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감히 왕명대로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제환공은 그 즉시 송환공으로 하여금 직접 주나라에 사절을 보내 입조하게 하고 송나라와의 회맹을 위해 장소와 날짜를 정해 통고했다. 선멸이 제후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주나라로 귀국하자 제후를 위시하여 각 나라의 군주들은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제19회로 계속』

주석

①다섯 나라/ 위혜공 삭을 복위시키기 위해 제양공이 노, 송, 채, 진 등의4국과 함께 출병한5국을 말한다.(제14회 항왕입국 출렵우귀 편의 내용)

②사수(泗水)/ 지금의 산동성 신문현(新汶縣) 부근에서 발원하여 서쪽의 곡부시(曲阜市)를 거쳐 미산호(微山湖)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서주시(徐州市)를 거쳐 동으로 흐르다가 동쪽의 기수(沂水)와 합류하고 다시 홍택호(洪澤湖)에 이르러 회수(淮水)와 합쳐졌던 강의 이름.

③북행(北杏)/ 지금의 산동성 동아현(東阿縣) 북

④ 수(遂)/ 지금의 산동성 비현(肥縣) 남쪽에 있었던 소 제후국. 주리왕(周釐王) 원년 기원전681년 제환공에 의해 제나라에 병합되었다. 사기(史記) 제태공제세가(齊太公世家)에 ‘ 魯庄公請獻遂邑以平 ’이라는 기사가 있다.

⑤가(柯)/현 산동성 동아현(東阿縣) 서남쪽. 노나라의 도성인 곡부(曲阜) 북서쪽 약100키로 되는 지점에 있음.

⑥종리(鍾離)/ 지금의 안휘성 방부시(蚌埠市) 동쪽 약30키로 되는 곳의 회수 강안의 임회관(臨淮關)을 말한다.

⑦노산(峱山)/지금의 산동성 임치현(臨淄縣) 남쪽에 있었던 산이름이다.

⑧사흉(四凶)/ 전설상의 사람들로서 요(堯) 임금 때 네 사람의 흉악한 도적. 즉 혼돈(渾敦), 궁기(窮奇), 도올(檮杌), 도찬(饕餐). 나중에 순임금이 정벌하여 쫓아냄.

⑨용봉(龍逢)/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왕(桀王) 때의 충신.

⑩비간(比干)/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주왕의 폭정을 여러 차례 간하다가 주왕이 노하여 성인(聖人)의 심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고 비간을 죽여 그 시체를 갈라 간을 꺼내도록 했다.

⑪賢君擇人爲佐(현군택인위자), 賢臣亦擇主而輔(현신역택주이보)

⑫토포악발(吐哺握髮)/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에 의하면 주공(周公) 단(旦)이 그의 아들 백금(伯禽)을 가르치기를 자기는 식사 중에 손님이 와서 입 속의 음식물을 뱉어내고 뛰어 나가 손님을 접대하기를 세 번이나 했고 목욕 중에 손님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손으로 잡고 또한 뛰어나가기를 세 번이나 하면서 천하의 현자를 맞아 들였다고 말한 고사.

⑬천일(千鎰)/ 한 일은20량 혹은24량에 해당하고 춘추전국 때의 한 량은16그람에 해당함으로 지금의 단위로는320키로에서380키로 정도의 중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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