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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0:27:107360 
제24회. 盟楚召陵 (맹초소릉), 義戴天子(의대천자)
양승국   (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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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24회 盟楚召陵義戴天子(맹초소릉 의대천자)

소릉에서 초나라와 맹약을 맺고

규구(葵邱)①에서 대의를 밝혀 천자를 추대했다.

1. 맹초소릉(盟楚召陵)

- 소릉에서 초나라와 강화를 맺은 제환공-

굴완이 다시 제나라 진영을 찾아와 제후를 알현하고 초왕의 명을 전하려고 했다. 관중이 듣고 먼저 환공에게 말했다.

「초나라 사자가 다시 왔으니 이것은 틀림없이 화의를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주군께서는 예로서 대하십시오.」

굴완이 제환공을 알현하고 절을 올리자 환공이 답례하고 그가 온 뜻을 물었다. 굴완이 대답했다.

「우리 초나라가 매년 주왕실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군후께서 그 죄를 묻고자 토벌하러 왔으나 우리 군주께서는 그 죄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군께서 만약 일사(一舍)②의 거리를 뒤로 물러나 주신다면 우리나라가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대부가 능히 그대의 군주를 잘 보좌하여 옛날처럼 주왕실의 신하로써 그 직분을 다한다면 과인도 돌아가 천자께 복명할 수 있는데 어찌 그 밖의 다른 것들을 요구할 수 있겠소?」

감사의 말을 환공에게 올린 굴완은 제나라 진영을 나와 초나라로 돌아가서 성왕에게 그 결과를 복명했다.

「제후가 이미 신에게 군사를 뒤로 물리치기로 허락하였고 신 역시 주왕실에 조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약속을 지켜 신의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첩보가 올라왔다.

「8국 제후들의 군사들이 영채를 걷어 뒤로 물러가고 있습니다.」

초성왕이 초병을 보내 사실을 확인해보도록 했다. 초병이 돌아와 보고했다.

「제나라 군사는30리를 물러가서 소릉(召陵)③에 진채를 세웠습니다」

「제후들이 군사를 뒤로 물리친 이유는 틀림없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공을 이행하겠다고 한 약속에 대해 성왕이 후회한 듯한 표정을 짓자 자문이 말했다.

「저8국의 제후들은 일개 대부에게도 그 신의를 지켰는데 하물며 왕께서는 일개 대부로 하여금 여러 제후들에게 식언을 하게 만들려고 하십니까?」

초성왕이 대답을 못하고 즉시 굴완에게 명하여 금과 폐백을 실은 수레8대를 주어 소릉으로 다시 가서8국의 군사들을 호군하게 하고, 다시 청모(菁茅)④ 한 차를 별도로 준비하여 제나라 진영 앞에서 의례를 갖추어 표를 올림으로써, 주왕실에 직접 조공을 바치는 형식을 취하도록 명했다.

한편 허나라에서는 목공(穆公)의 관이 본국에 도착하자 세자가 장례를 주관하고 그 군주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 이가 허회공(許懷公)이다. 허회공이 제환공의 은혜에 감격하여 대부 백타(百佗)를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가서 소릉의 회합에 참석하도록 했다. 와중에 굴완이 다시 사자로 왔다는 소식을 접한 제환공은 여러 제후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각국의 병거와 보졸들은 전부7대로 나누어 일곱 방향으로 전개하시오.」

제나라 군사들은 제후들의 군사들과는 별도로 남쪽에 주둔시켜 초나라의 사자를 맞이하도록 했다. 이윽고 제나라 군중에서 북소리가 먼저 일어나더니 그 뒤를 따라 칠국의 군사들도 일제히 명금과 북을 울리고 병장기와 개갑(鎧甲)을 십분 정제하여 중원 국가들의 강함을 보여 위세를 떨치려고 했다. 굴완이 제나라 진중에 당도하여 제환공을 알현하고 군사들을 호군할 물품을 진상했다. 환공이 명을 내려 초나라가 가져온 청모를 검사하게 한 후에 곧바로 굴완에게 다시 돌려주고 초나라가 직접 천자에게 공물로 바치도록 했다. 이어서 제환공이 굴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부는 일찍이 우리 중원 국가의 병사들을 사열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 완(完)은 남쪽의 변방국가에 살아서 아직 중원국 병사들의 성대함을 보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한번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환공과 굴완이 융거를 같이 타고 각국의 군사들이 열병하고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8국의 군사들 진영이 각각 한쪽 방향을 차지하고 수십 리를 끊이지 않고 여덟 방향으로 연이어 늘어서 있었다. 제나라 군사들이 북소리를 한번 울리자 나머지7국의 군사들도 북을 울려 응대하니 북소리는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놀래게 하는 것 같았다. 환공이 희색이 만면하여 굴완을 향하여 말했다.

「과인이 이와 같은 많은 군사로 초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데 어찌 그 승패에 대해 걱정하겠소?」

굴완이 전혀 위축됨이 없이 제환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군후께서는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을 이끄는 회맹의 맹주로써 위로는 천자를 위하여 덕을 천하에 베풀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군후께서 제후들을 덕으로써 편안하게 한다면 누가 감히 복종을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군후께서 군사의 수가 많음을 기화로 힘을 과시한다면 초나라는 비록 변방에 자리 잡은 소국이지만 방성(方城)의 견고함을 보루로 삼고 한수를 해자(垓字)로 삼아 의지한다면 비록 백만 대군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환공은 얼굴에 무참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대부야말로 진실로 초나라의 동량입니다. 과인은 원컨대 그대의 초나라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우호관계를 맺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군주께서 보잘것없는 우리 초국의 사직을 복되게 하시고 또한 우리 군주와 동맹을 맺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수천 리 길을 찾아 오셨는데 어찌 우리가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바라겠습니까? 청컨대 군주께서는 과연 저희와 맹약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왜 맺을 수 없겠소?」

해가 저물자 굴완은 제나라 진영에 묶게 되었다. 제환공은 굴완을 위해 연회를 준비하여 성대하게 대접했다.

다음날 소릉에 단을 쌓고 회맹의 의식을 행하는데 환공이 소머리의 귀를 잡고 회맹의 맹주가 되고 관중은 회맹의 의식을 감독했다. 굴완이 초성왕의 명을 받들어 대신 행한다고 하여 환공과 같이 서서 맹세문을 썼다.

오늘 이후로는

대대로 우호할 것임을 맹세하노라!

自今以後(자금이후)

世通盟好(세통명호)

제환공이 먼저 소의 피를 바르자, 7국의 제후들과 굴완도 차례로 입술에 희생의 피를 발라 회맹을 행했다. 이윽고 회맹을 위한 의식을 끝낸 굴완이 환공에게 절을 하고 감사의 말을 올렸다. 관중이 굴완에게 은밀히 청하여 투장이 포로로 잡아간 담백을 정나라에 송환시켜 달라고 했다. 굴완 역시 채후를 용서하여 달라고 청했다. 두 사람이 각기 상대방의 요구를 응락하여 담백은 정나라로 돌아가고 초나라에 망명해 있던 채목공은 자기나라로 돌아가 복위했다. 이윽고 관중은8국의 병사들에게 회군하도록 령을 내렸다. 회군 도중에 포숙아가 관중에게 물었다.

「초나라는 왕호를 참칭하여 그 죄가 작지 않은데 기껏 포모(包茅) 한 수레로 그렇게 쉽게 용서한 처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네.」

관중이 설명했다.

「초나라가 왕호를 참칭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3대가 넘었네. 그 일 때문에 초나라는 중원 제후국들로부터 만이와 같이 대우를 받아왔다고 할 수 있네. 그러나 만약 내가 초나라가 왕호를 참칭한 죄를 물었다면 초나라가 머리를 숙여 우리의 말을 들었겠는가? 또한 만약에 초나라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두 나라 사이에 싸움이 반드시 벌어지고 싸움이 한번 벌어지면 쌍방 간에 보복이 반복되어 그 화가 몇 년에 걸쳐서도 없어지지 않고 남북 간은 이때부터 분쟁이 생겨 하루도 마음 놓고 쉴 틈 없이 천하는 혼란에 빠질 것일세! 그래서 나는 포모를 핑계 삼아 그들로 하여금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했네. 잠시나마 초나라가 스스로 자기의 죄를 인정한 사실을 제후들에게 보여주어 우리의 위엄을 세우고, 또한 돌아가 천자에게 보고 할 수 있으니, 군사를 내어 싸움 끝에 생기는 화근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래서 부득이 한 일이었네!」

포숙아가 찬탄하지 마지않았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초왕은 남해에 있으면서 주왕실을 안중에 두지 않아

중보가 당년의 일을 잘 헤아려 대책을 세웠다.

한 명의 군사도 쓰지 않고 화의를 맺었으니

제환공의 백업은 천추에 빛나게 되어 칭송받았다.

楚主南海目无周(초주남해목무주)

仲父當年善運籌(중보당년선운주)

不用寸兵成款約(불용촌병성관약)

千秋伯業誦齊侯(천추백업송제후)

그러나 염옹은 환공과 관중을 비난하는 시를 지었는데 두 사람의 군신은 임시방편으로 일을 호도하여 왕호를 참칭한 초나라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고 군사를 물리쳐 초나라가 중원을 넘볼 수 있는 빌미를 주어 그 후로는 중원의 제후국들이 초나라를 정벌할 군사를 다시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음을 비난했다.

남쪽을 쳐다보며 주저하기를 수십 년

원교(遠交) 근합(近合)하여 군사를 분연히 일으켰다.

큰 소리로 죄상을 밝혀 장한 기세를 떨치며

못된 초나라의 버릇을 고쳐 시비를 밝히려고 했다.

昭廟孤魂終負痛(소묘고혼종부통)

江黃義擧但貽愆(강황의거단이건)

不知一歃成何事(부지일삽성하사)

依舊中原戰血鮮(의구중원전혈선)

그러나 주소왕의 외로운 넋에 아픔만 더하게 하면서

강황(江黃) 두 나라의 의로운 행동은 허물만 남겼고

단지 한 번 묻힌 희생의 피로 무슨 일을 이루었다고 하는가?

중원은 여전히 전쟁으로 선혈이 낭자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南望躊躇數十年(남망주저수십년)

遠交近合各紛然(원교근합각분연)

大聲罪狀謀方壯(대성죄상모방장)

直革淫名局始全(직혁음명국시전)

2. 권상요목(勸上搖木)

- 정나라 신후(申侯)가 진나라 원도도(轅濤涂)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다. -

진(陳)나라 대부 원도도(轅濤涂)가 회군을 한다는 명령을 받고 정나라 대부 신후(申侯)와 상의했다.

「제후들의 군사들이 만약 우리 진․정(陳鄭) 두 나라를 경유하여 회군한다면 군사들에게 필요한 양식과 의복 및 신발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적지 않아 나라의 재정이 궁핍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후군을 동쪽의 강변으로 난 길을 이용하여 회군토록 한다면 주변의 서(徐)와 거(莒)나라로 하여금 그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어 우리 두 나라는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됩니다.」

신후가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하고 제환공에게 건의해보라고 했다. 원도도가 즉시 제환공을 찾아가 말했다.

「군주께서는 북쪽으로는 융족을 정벌하셨으며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토벌하시어 천하에 그 명성을 떨치셨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을 동쪽으로 취하시어 동이족과 그 주변의 제후들에게 중원 군사들의 위엄을 시위하신다면 두려움에 떤 그들의 어찌 감히 주왕실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대부의 말에 일리가 있도다!」

얼마 후에 신후가 혼자 와서 제후를 뵙겠다고 청했다. 환공을 접견한 신후가 말했다.

「신은‘군사의 일에는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시기를 놓치게 되면 본의 아니게 백성들에게 누를 끼치게 됩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 중원의 군사들은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풍찬노숙에 젖어 있어 매우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만약에 회군하는 진로를 진(陳)과 정(鄭) 두 나라를 통과하는 길을 취하신다면 양식과 의복 및 신발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어 군사들의 피로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회군로를 동방으로 잡으시어 만약 동이들이 길을 막고 나설 경우 그들과 싸워야 하고 더욱이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장차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원도도가 군주께 동쪽의 길을 취하라고 품의한 이유는 자기나라 만의 사정을 생각하여 낸 좋지 않은 계책입니다. 부디 군주께서는 살펴 행하십시오.」

「하찮은 소국의 대부 놈 때문에 내가 일을 그르칠뻔했구나!」

제환공은 즉시 명을 내려 군중에서 원도도를 잡아드려 감옥에 가둬 두도록 명하고 한편으로는 정백에게 명하여 호뢰(虎牢)의땅에 신후를 봉해 그의 공에 대해 보답하도록 했다. 제후는 다시 신후로 하여금 호뢰에 큰 성을 세우게 해서 남북으로 통하는 요로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겼다. 어쩔 수 없이 환공의 명을 따라 신후에게 호뢰의 땅을 하사하게 된 정백은 이때부터 마음속으로 제후에게 불만을 갖게 되었다. 한편 진후(陳侯)는 사자를 보내와 뇌물을 바쳐 재삼 원도도의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제환공은 며칠 후에 원도도의 죄를 용서하고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이윽고 제후들은 서로 헤어져 각기 자기 본국으로 되돌아갔다.

제나라로 귀환한 제환공은 관중의 공이 높이 사서 그의 봉읍과 접하고 있는 대부 백씨(伯氏)의 성읍에 속해 있던 식읍3백 호를 빼앗아 관중에게 주어 그의 봉작을 더욱 높여 주었다.

한편 초성왕은 제후들의 군사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보고 제후군과 약속한 포모를 주나라에 조공품으로 바치려고 하지 않았다. 굴완이 듣고 성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제나라에 신의를 잃으면 안 됩니다. 또한 초나라만이 주나라와 관계를 끊는다면 제나라로 하여금 더욱 주나라와 관계를 긴밀하게 해주는 결과가 됩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통하여 주나라와 통호하면 우리 초나라도 제나라와 함께 중원의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칭하고 있는 왕호는 어찌되는가?」

「왕호는 쓰지 마시고 단지 멀리 있는 신하 아무개라고만 칭하십시오.」

초성왕이 굴완의 말을 따라 그를 사자로 삼아 청모 열 수레와 금은과 비단을 싣고 가서 주천자에게 바치게 했다. 주혜왕이 크게 기뻐했다.

「초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오늘날 이와 같이 보내왔으니 이것은 아마도 선왕의 혼령이 보살펴 주신 덕분이 아닌가 한다.」

주혜왕은 즉시 그 사실을 문왕과 무왕의 묘에 고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그 제사고기를 초나라에 하사하면서 굴완을 향하여 말했다.

「그대 초나라는 남방을 안정시키는 일에만 전념하고 이후로는 중원의 제후국들을 침략하는 행위를 중지하기 바란다.」

굴완이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린 뒤에 물러갔다.

3. 義戴天子 一匡天下(의대천자 일광천하)

- 의로써 천자를 추대하여 천하를 한 번 바로잡다.-

초나라의 사자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제환공은 그 즉시 습붕을 주나라에 사자로 보내 자신이 초나라를 복종시켜 조공을 바치게 한 일을 고하게 했다. 혜왕이 습붕을 예로써 대했다. 이에 습붕이 세자의 알현을 청하자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띈 혜왕이 세자를 들라는 명을 내렸다. 곧이어 차자 대(帶)가 앞서고 그 뒤를 세자 정(鄭)이 따라 들어와 습붕의 인사를 받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습붕이 몰래 혜왕의 신색을 살폈다. 혜왕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자의 임무를 마치고 제나라에 돌아온 습붕이 제환공에게 복명했다.

「주나라는 장차 변란이 일어 날 것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주왕의 장자는 정(鄭)입니다. 작고한 왕비 강(姜)씨의 소생입니다. 정은 강씨가 살아 있을 때 이미 동궁에 봉해졌습니다. 강비가 죽자 차비였던 진규(陳嬀)가 혜왕의 총애를 받게 되어 왕비의 자리를 잇게 되었습니다. 진규가 아들 대(帶)를 낳았습니다. 대는 장성함에 따라 혜왕의 비위를 맞추는데 비상한 재주가 있어 총애를 독차지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대를 태숙(太叔)이라고 불렀습니다. 태숙을 총애한 주왕은 세자를 폐하고 대를 세우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혜왕의 신색을 살펴보았는데 혜왕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왕실에 조만간에 『소반(小弁)』⑤의 란이 일어나지 않을 까 걱정됩니다. 여러 제후들의 맹주이신 주공께서 주나라의 변란을 미리 막으셔야 합니다.」

환공이 즉시 관중을 불러 그 대책을 물었다. 관중이 의견을 말했다.

「신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는데 능히 주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계책입니까?」

「세자가 의심을 받아 위태롭게 되었으니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고립되어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주군께서 주왕에게 『제후들이 세자를 한 번 알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청컨데 제후들이 회합하는 자리에 세자를 왕림하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표장를 올려 청하시기 바랍니다. 세자가 일단 제후들의 회합장소에 왕림하게 되면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기정사실이 되어 주왕이 비록 세자를 바꾸고 싶어도 제후들과의 관계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환공이 즉시 제후들에게 격문을 발하여 다음해 여름 수지(首止)⑥의 땅에 모이라고 전하고 한편으로는 습붕을 주왕에게 다시 사자로 보내 제후들이 세자를 알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습붕이 주왕을 배알하고 말했다.

「제후들이 수지의 땅에서 세자를 뵙고 천자를 주왕실을 받드는 간절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어합니다.」

주혜왕의 마음은 세자정을 회합에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으나 제후들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습붕이 제나라에 돌아와 환공에게 복명했다.

해가 바뀌어 봄이 되자 환공이 진완(陳完)을 수지의 땅에 먼저 보내 궁궐을 짓게 하고 세자의 어가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여름철 오월에 제(齊),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 등의8개국 제후들이 수지의 땅에 모두 모였다. 세자정 역시 당도하여 어가를 멈추고 새로 지은 궁궐로 행차했다. 제환공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알현하려고 하자 세자정이 재삼 겸양하면서 단지 주인과 손님사이의 예로써 대하려고 했다. 제후들을 대표한 환공이 말했다.

「변방에서 왕실을 지키고 있는 소백(小白) 등은 황송하게도 세자 전하를 뵙는 일을 천자를 뵙는 일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머리를 숙여 배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자정이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여러 제후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그날 밤이 되자 세자정이 사람을 시켜 환공을 자기가 머물고 있는 행궁으로 불러 태숙대가 세자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환공이 듣고 말했다.

「소백과 여러 제후들은 전하를 세자로 모시기로 이미 맹세하였으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세자정이 감사의 말을 수 없이 되풀이했다. 계속해서 행궁에 머무르던 세자정은 주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후들 역시 감히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각기 관사에 머무르면서 순번을 정해 술과 음식을 바쳐 세자를 따라온 수행원들과 종자들을 대접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여러 제후들을 오랫동안 붙잡아 두어 그 노고가 많음을 걱정한 세자정이 왕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을 환공에게 말했다. 환공이 대답했다.

「전하와 함께 여러 제후들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전하의 부왕으로 하여금 우리 제후들이 전하를 세자로 추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부자지간에 서로 버림이 없이 하려는 뜻에서입니다. 또한 이렇게 해서 간사한 음모도 사전에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계절이 여름철 대서(大暑)입니다. 날씨가 서늘한 가을까지 더위를 피해 머무르시다가 돌아가십시오.」

제환공은 즉시 세자를 추대하기 위해 회맹의 의식을 행하기로 하고 태사에게 길일을 택해 날짜를 잡도록 명했다. 태사가 점을 쳐 그 해 가을8월 모일이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

한편 주혜왕은 수지로 행차한 세자정이 오래도록 되돌아오지 않자 그 이유는 제후(齊侯)가 세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불편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다시 혜후(惠侯)와 숙대가 조석으로 혜왕의 측근에 있으면서 세자정을 계속 참소하여 세자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재촉했다. 혜왕이 태재(太宰)의 직을 맡고 있는 주공 재공(宰孔)을 불러 말했다.

「제후가 비록 초나라를 정벌했다는 명분을 세웠으나 실은 초나라에게 죄를 묻지 못했소. 오늘 초나라가 조공을 바치면서 우리에게 행하는 태도를 보니 옛날의 죄를 크게 뉘우치고 있어 제나라보다 못하지 않소. 제나라가 또한 여러 제후들을 이끌고 세자를 오랫동안 잡아놓고 옹립하고 있으니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짐이 장차 발붙일 땅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겠소. 내가 태재를 번거롭게 불러낸 이유는 밀서 한 장을 정백에게 전하기 위해서요. 정백으로 하여금 제를 버리고 초를 따르도록 해서 초나라 군주가 주나라를 받들도록 하기 위함이니 부디 나의 뜻을 저버리지 마시오.」

혜왕의 말을 듣고 재공이 간했다.

「초나라가 우리 주나라를 받들게 된 원인은 제나라가 힘을 쓴 덕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우리 주나라를 오랫동안 열심히 모셔온 백구(伯舅)를 버리고 잠시 아부하고 있는 남쪽의 오랑캐 나라를 취하려고 하십니까?」

「지금 제후(齊侯)는 세자를 수지에 불러 놓고 제후들과 함께 떠나지 않으며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고 있소. 제후가 오랫동안 제후들을 거느리고 태자와 함께 있으면서 다른 음모를 꾸미지 않으리라고 누가 능히 알 수 있겠소? 나의 생각은 이미 정해졌으니 태재는 더 이상 부언하지 마시오!」

재공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혜왕은 그 즉시 밀서 한 장을 써서 옥새를 찍은 후에 봉투를 단단히 봉해 재공에게 주었다. 편지의 내용을 알지 못한 재공은 단지 사람을 시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게 하여 수지의 회맹에 참석하고 있던 정백에게 전달하게 했다. 정문공이 주혜왕의 보낸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세자정이 사당을 결성하여 나의 명을 어겼음으로 장차 주나라의 왕위를 계승시킬 수 없게 되어 차자인 대에게 물려주려고 하오. 숙부께서 만약 제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를 따르고, 두 나라가 같이 왕자대를 보좌한다면 나는 주나라의 정사를 숙부에게 맡기겠소.』

편지 읽기를 마친 정문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선조이신 무공(武公)과 장공(莊公)께서 대대로 주왕실의 경사로 봉직하시면서 제후들을 이끄셨는데 뜻밖에 중도에 맥이 끊어져 우리 정나라는 지금까지 변방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왕자퇴와 오대부가 란⑦을 일으켜 지금의 천자를 쫓아내자 선군이신 려공(厲公)께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복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나라의 변란을 진압하셨다. 우리 정나라는 지금의 주왕을 천자의 자리에 복위시킨 공로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 번도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 천자가 왕명을 나에게만 내렸으니 조만 간에 주나라의 정사는 내가 맡게 되었다. 여러 경들은 나에게 경하의 말을 올려도 무방할 것이다.」

대부 공숙이 나와서 간했다.

「제나라는 얼마 전에 초나라로부터 침략을 받은 우리 정나라를 위해 병사를 동원하여 먼 길을 마다 않고 초나라로 출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제나라를 반하고 초나라를 받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패덕(悖德)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또한 지금 제나라가 세자를 추대하는 일은 천하에 대의를 밝히는 의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주군께서만 홀로 다른 길을 취하는 행위는 불가합니다.」

「패주와 천자 중 어느 쪽을 따르는 편이 대의에 가까운 일이오? 하물며 천자의 뜻이 세자에게 있지 아니한데 나보고 제나라를 따르라고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오?」

「주나라의 사직을 잇는 방법은 오직 적장자에 의해서 입니다. 유왕은 서자인 백복(伯服)⑧을 총애하고 환왕(桓王)과 장왕(庄王)은 각각 차자들인 자극(子克)⑨과 자퇴(子頹)를 총애한 결과 사직이 망하거나 변란이 일어난 사실을 주군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몸은 상하고 일을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대의를 따르지 않고 굳이 자퇴와 오대부의 전철을 밟으려고 하십니까? 뒤에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초나라 망명객 출신의 대부 신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천자의 어명이 있는데 누가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제나라에 복종하여 회맹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곧 천자의 명을 버리는 일과 같게 됩니다. 우리가 회맹 전에 먼저 철수한다면 여러 제후들이 반드시 의심을 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면 흩어지게 되어 회맹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또한 태자에게는 호응하는 무리가 외부에 있다고 한다면 태숙은 내부에 호응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두 왕자들 싸움의 승패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대로 회맹장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서 잠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함이 어떻겠습니까? 」

정문공이 신후의 말을 쫓아 제환공에게 사절을 보내 나라에 변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인사의 말도 하지 않고 정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정백이 밤사이에 도망쳐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환공이 크게 노하여 세자정을 모시고 제후군을 이끌고 진군하여 정나라를 토벌하려고 했다. 관중이 나와서 계책을 말했다.

「정과 주나라는 영토가 서로 접해 있습니다. 이 일은 틀림없이 주왕이 정나라를 부추겨서 생긴 일입니다. 제후 한 사람이 갔다고 해서 대계를 이루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또한 회맹하기로 한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제후들과 함께 세자정을 추대하는 의식을 행한 후에 제후군을 이끌고 나아가 정나라를 토벌하더라도 늦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제환공이 즉시 명을 내려 수지에 단을 쌓고 피를 입술에 발라 회맹의 의식을 행했다. 제, 송, 노, 진, 위, 허, 조 등, 공히7국의 제후가 회맹에 참가했다. 세자정이 참석했으나 같이 입술에 피를 바르지 않아 제후들이 감히 세자와 같이 할 수 없다는 예를 보였다. 제후들은 회맹의 의식을 행하며 서약을 써서 맹세했다.

우리가 다같이 맹세하노니

힘을 합쳐 왕자를 도와

왕실을 바로 잡는다

맹세를 어기는 자가 있다면

천지신명께서 용서하지 않으리라

凡我同盟(범아동맹)

共翼王儲(공익왕저)

匡靖王室(광정왕실)

有背盟子(유배맹자)

神明殛之(신명극지)

제후들의 회맹을 위한 의식이 끝나자 세자정이 단상에서 계단을 내려와 재후들을 향해 읍을 하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선왕들 영령의 보살핌에 힘입어 여러 제후들께서 아직도 주왕실을 잊지 않고 나를 돕고 있습니다. 문무(文武) 대왕 이래 제후들의 도움을 얻어 그 은혜를 갚았는데 항차 내가 어찌 감히 여러 제후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후들이 모두가 엎드려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다음날 귀국하려는 세자정의 숙소에 각국의 제후들이 모두 거마와 보졸들을 보내 호송하게 했다. 제환공이 위후와 같이 친히 위나라 경계까지 나아가 전송했다. 세자정은 눈물을 흘리며 환공의 일행과 헤어졌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왕이 서출에게 빠져 세자의 자리가 위험에 처했는데

정백은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대의를 저버렸다!

수지에서 한 회맹으로 세자의 자리가 공고해졌으니

이로 인해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지는 욕은 면했도다.

君王溺愛冢嗣位(군왕익애총사위)

鄭伯甘將大義違(정백감장대의위)

首止一盟儲位定(수지일맹저위정)

綱常賴此免凌夷(강상뢰차면릉이)

한편 제후들이 회맹을 하고 장차 정나라를 토벌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들은 정문공은 감히 초나라와 통호를 하지 못하고 쌍방 간의 눈치만 살펴보고 있었다. 이에 초나라 성왕은 정나라 군주가 수지의 땅에서 회맹을 같이 행하지 않고 사전에 도망쳐 자기나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가 장차 정나라를 얻을 수 있음이라!」

초성왕은 즉시 사자를 정나라의 신후에게 보내어 서로 통하고, 초나라가 정나라와 수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주선해 주도록 부탁했다. 원래 신후는 초나라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탐욕스러운 성격과 함께 아첨에 능한 위인으로 초문왕이 살아 있을 때는 총애와 신임을 받았었다. 초문왕이 임종할 때에, 뒤에 남은 사람들이 신후를 용납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백벽(白璧) 몇 쌍을 그에게 주며 자기 사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화를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가 살라고 명했다. 이에 신후는 초나라에서 도망쳐 당시 역성(櫟城)에서 정백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정려공을 모시게 되었다. 신후는 다시 옛날 초문왕에게서 받은 총애와 신임을 정백으로부터도 얻게 되었다. 뒤이어 려공이 력성에서 복국하여 정백의 자리에 복위하자 신후는 정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신후와 옛날에 서로 친교가 있었던 초나라 신하들은 아무도 몰래 신후와 내통하고 신후로 하여금 정나라가 제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를 받들도록 부추겼다. 신후가 아무도 몰래 정문공을 찾아가 말했다.

「초나라가 아니면 제나라를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왕명만을 받들고자 하면 우리 정나라는 제와 초 두 강대국들과는 모두 원수지간이 되어 정나라는 버티지 못하고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정문공이 신후의 말에 혹하여 즉시 신후를 초나라에 사자로 보내 비밀리에 우호관계를 맺었다.

주혜왕26년 기원전655년 제환공은 회맹에 참여한 제후들을 이끌고 행군하여 정나라의 신정성을 포위했다. 그때는 초나라에 사자로 간 신후가 아직 정나라에 귀국하지 않고 있었다. 신후가 정나라의 사정을 초성왕에게 말했다.

「정나라가 초나라의 지붕 밑으로 들어온 일은 오로지 초나라만이 제나라에 대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께서 정나라를 구하지 않으신다면 신은 정나라에 돌아가서 정백을 뵐 면목을 잃게 됩니다.」

초성왕이 군신들을 불러 의견을 묻자 영윤 자문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예전에 제환공이 제후들을 소릉으로 불러낼 때 허목공이 병든 몸을 이끌고 나와 결국은 진중에서 죽었습니다. 제후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허나라를 각별하게 대했습니다. 허나라도 역시 제나라를 정성을 다해 받들고 있습니다. 왕께서 만약 군사를 내어 허나라를 공격하면 제후는 열국의 군주들을 이끌고 반드시 허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들의 방향을 돌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나라에 대한 포위망은 자연히 풀리게 됩니다.」

초성왕이 그 말을 쫓아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허성을 포위한 후 맹공을 가했다. 허나라가 초나라 군사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환공은 과연 신정성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허나라를 향해 군사를 이동시켰다. 제후연합군이 허나라를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초성왕은 즉시 군사를 거두어 초나라의 중원진출의 전진기지인 신읍(申邑)으로 회군했다. 초왕과 헤어져 정나라에 돌아간 신후는 제후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한 공적은 전적으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득의양양한 자세로 정군에게 자기의 봉지를 넓혀 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옛날에 제환공에 명에 의해서 봉해진 호뢰(虎牢)의 땅은 신후에게 과분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정문공은 그의 청을 허락하지 않고 봉지를 더해주지 않았다. 신후는 입 밖으로는 직접 불만을 말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 해 봄에 제환공은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옛날에 초나라 정벌군에 참가했을 때 신후에게 이용당하여 제환공에게 죄를 짓고 살해당할 뻔한 일이 있었던 진(陳)나라의 대부 원도도는 그때까지 신후에게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정나라의 공숙에게 편지를 써서 신후를 비난했다.

「신후는 옛날에 정나라의 땅을 스스로 바치고 제후에게 아첨을 하여 호뢰의 땅을 봉지로 하사 받았습니다. 오늘 또한 정나라를 바쳐 초나라에 아첨함으로 그대의 군주로 하여금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를 등지게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병화가 일어나 환란을 자초하고 그 화가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신후를 죽여야만 싸우지 않고 제나라 군사들을 돌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

공숙이 원도도의 편지를 정문공에게 바쳤다. 옛날 공숙의 말을 듣지 않고 회맹의 자리에서 도망친 행동으로 인해 후에 제나라 군사들의 침략을 두 번이나 받아 입게 된 전화를 마음속으로 크게 후회하고 있던 정백은 그 모든 잘못을 신후에게 전가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문공이 즉시 신후를 불러들여 큰소리로 책임을 추궁하였다.

「너는 옛날 오로지 초나라만이 제나라에 대적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제나라 병사들이 다시 침범해 왔는데 초나라의 구원병은 어디에 있는가?」

신후가 미처 변명하기도 전에 정문공이 좌우의 무사들에게 호령하여 신후를 끌고 나가 참수하라고 명했다. 잠시 후에 무사들이 신후의 수급을 가져오자 그것을 상자에 넣어 공숙에게 주어 제환공에게 바치게 했다. 공숙이 제환공에게 사자로 가서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 옛날에 신후의 아첨하는 말에 현혹되어 군후와의 일이 좋지 않게 되었었습니다. 이번에 그 잘못을 뉘우치고 신후의 목을 참하여 저로 하여금 군주의 막하에 죄를 청하게 하였으니 원컨대 군후께서는 저희 주군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연길몽란(燕姞夢蘭)

- 란초의 태몽으로 정나라 세자를 잉태한 연길(燕姞) -

평소에 공숙(孔叔)이 어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제환공은 즉시 그의 청을 받아들여 정나라와의 화의를 허락했다. 제환공은 다시 제후들을 영모(寧母)⑩의 땅으로 불러 모이도록 했다. 정문공은 주왕의 명을 받은 관계로 의심을 살까 걱정하여 감히 영모 땅의 회맹에 참석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세자 자화(子華)를 대신 보내 회맹에 참석하고 환공의 명을 받아오게 했다.

자화와 그의 동생 자장(子臧)은 모두 정부인의 소생인데 부인이 처음에는 문공의 총애를 받아 자화를 세자로 세울 수 있었다. 후에 다시 부인 둘을 더 세웠는데 모두가 아들을 낳았다. 적실 부인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문공의 총애를 잃게 되자 마음을 상한 나머지 얼마가지 않아 죽었다. 또 후에 남연(南燕)의 길씨(姞氏)가 그의 딸을 정나라 궁실에 바쳐왔다. 길녀(姞女)가 정나라에 들어와 정문공을 모시기 전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한 사람의 훤칠한 장부가 손에는 난초를 들고 길녀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피라미들의 왕인 백조(伯鯈)다. 즉 너의 조상이니라. 오늘 이 난의 향기로 너의 온 나라를 가득 차게 하고 자식을 낳게 하여 그대의 나라를 번창하게 하리라.」

그 장부가 손에 들고 있던 난초를 길녀에게 주었다. 이윽고 길녀가 꿈에서 깨어나자 온 방안에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길녀가 꿈 이야기를 곁에 있던 궁녀들에게 이야기했다. 그 궁녀들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군주의 자식이라도 낳는다는 말이냐?」

그때 마침 정문공이 내궁에 들렀다가 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자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보고 서로 웃었다. 문공이 웃고 있던 시종들을 보고 그 연유를 묻자 길녀의 꿈 이야기를 했다. 문공이 듣고 말했다.

「이것은 매우 좋은 징조라! 내가 그대의 꿈을 이루게 하리라!」

문공이 즉시 길녀에게 난초의 꽃봉오리를 따오게 한 후에 말했다.

「이 꽃을 오늘밤의 징표로 삼으리라!」

이윽고 밤이 되자 문공이 길녀를 불러서 잠자리를 같이 했다. 후에 길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란(蘭)이라 했다. 길녀도 역시 시간이 갈수록 문공의 총애를 더욱 깊이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길녀를 연길(燕姞)이라고 불렀다.

한편 세자화는 부군이 여러 부인들을 총애하자 후일에 자기가 세자로부터 폐립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세자화가 은밀히 숙첨을 찾아가 의논했다. 숙첨이 세자화에게 말했다.

「총애를 받고 안 받고는 하늘의 뜻이니 아들 된 자로서 효성을 다해 모시는 길 밖에는 다른 수는 없습니다.」

5. 자화간명(子華奸命)

- 군명을 어지렵혀 나라를 차지하려다가 비명에 죽은 정세자 자화(子華) -

숙첨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말을 듣지 못한 세자화가 다시 공숙에게 가서 그 대책을 물었으나 공숙에게도 역시 마음을 다하여 효도를 하라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세자화가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세자화의 동생 자장은 성격이 원래 이상야릇한 것만을 좋아했다. 자장은 도요새의 깃털을 모아 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녔다. 사숙이 자장을 보고 말했다.

「그 모자는 예에 맞지 않으니 공자께서는 쓰고 다니시면 안 됩니다.」

사숙의 직언을 고깝게 생각한 자장이 형인 세자화에게 고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자화는 정나라의 삼량(三良)이라고 불리던 숙첨(叔詹), 공숙(孔叔), 사숙(師叔) 등 세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때가 되어 정문공이 세자화에게 명하여 제후가 소집한 맹회에 숙첨을 대동하고 대신 참석하도록 했다. 자화는 제후가 부군 대신 자기를 보낸 일을 괘씸하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맹회에 참석하기를 내켜 하지 않고 출발을 자꾸 지연시켰다. 숙첨이 자화에게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하자 자화가 마음속으로 더욱 숙첨을 원망했다. 이어서 그는 맹회에 참석하여 일의 전말을 제후에게 고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윽고 회맹장에 당도한 자화는 제환공을 알현하고 좌우의 사람을 물리쳐 주도록 부탁한 후에 정나라의 일을 고했다.

「정나라의 정사는 모두가 설씨(泄氏), 공씨(孔氏)와 자인씨(子人氏) 3족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저의 부군께서 회맹 중에 도망친 일은 실은3족이 꾸몄습니다. 만약 군후께서 돌보아 주시어3족 출신의 신하들을 제거한 후 제가 정나라의 군주의 자리에 앉게 된다면 저희 정나라는 제나라의 부용(附庸)이 되어 영원히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환공이 혹해서 허락했다.

「그대의 말대로 하겠노라!」

제환공은 즉시 자화가 한 이야기를 관중에게 알리고 그를 도와 정백의 자리에 올리도록 명했다. 관중이 듣고 환공에게 다급히 말했다.

「절대로 불가한 일입니다. 제후들이 제나라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예의와 신의에 따라 일을 처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화가 그 아비에게 불충하니 그것은 예에 어긋난 일입니다. 또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왔는데 오히려 그는 자기 나라를 변란으로 몰아넣고자 합니다. 이것은 신의에 어긋난 일입니다. 또한 신이 정나라의 대부 세 사람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기로는 모두가 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써 정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삼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릇 맹주가 귀하게 받들어지는 이유는 백성들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자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니 그 화는 필시 자신에게 미칠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자화는 장차 그 자신에게 미치는 화를 피하지 못하고 낭패를 당할 운명입니다. 주공께서 허락하시면 안 됩니다.」

환공이 관중의 말을 듣고 자화를 다시 불러 좋은 말로 달랬다.

「세자가 한 이야기는 진실로 국가의 중대사라 세자가 후에 정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될 때를 기다려 그때 일을 도모하는 편이 좋겠소.」

자화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그는 즉시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정나라로 돌아갔다. 관중이 자화의 불충함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정나라에서 온 사람에게 자화가 제후에게 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그 정나라 사람이 자화보다 먼저 정나라에 돌아와서 정문공에게 고했다. 곧이어 자화가 귀국하여 문공에게 회맹에 다녀온 바를 거짓으로 꾸며 복명했다.

「제후가 부친께서 직접 회맹에 참여하시지 않았다고 괴이쩍게 생각하여 우리와 맹약 맺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초나라를 섬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정문공이 큰소리를 치면서 꾸짖었다.

「역자가 어찌하여 나라를 팔아먹고자 했으면서 아직도 감히 궤변을 늘어놓고 있느냐?」

정문공은 즉시 좌우의 시자들에게 명하여 자화를 깊숙한 곳의 밀실 가두도록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자화는 밀실의 벽에 구멍을 뚫고 탈출한 후에 나라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정문공의 자객을 시켜 자화의 뒤를 추격하여 죽였다. 과연 자화의 운명은 관중이 생각한 대로 되었다. 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화를 보고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한 자장은 송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도망쳤다. 정문공이 듣고 사람을 보내 추격하도록 하여 도중에서 자장마저 잡아서 죽였다. 정문공은 제후가 자화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일을 자기에게 알려준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공숙을 사자로 보내면서 정나라가 제나라와 맹약을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하고 청했다. 호증(胡曾) 선생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정나라는 삼량(三良)을 마치 대들보처럼 썼는데

일조에 대들보를 뽑아 버리면 지탱하기 어려웠으리라!

부친의 명을 어기고 나라를 팔고자한 자화는

도망치다 몸은 죽고 불효자라는 이름만 남겼구나!

鄭用三良似屋楹(정용삼량사옥영)

一朝楹撤屋難撑(일조영철옥난탱)

子華奸命思專國(자화간명사전국)

身死徒留不孝名(신사도유불효명)

이 일은 주혜왕24년 기원전653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해 겨울 주혜왕이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혜후와 태숙대가 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노시초사하고 있던 세자정은 먼저 하사(下士) 왕자호(王子虎)를 제나라에 보내 주혜왕의 병이 위중함을 고하게 했다. 주혜왕은 앓아누운 지 얼마 후에 죽었다. 세자정은 주공공(周公孔) 및 소백요(召伯寥)와 상의하여 혜왕의 상을 발하지 않고 먼저 제나라에 가있던 왕자호에게 사람을 보내 혜왕의 죽음을 알렸다. 왕자호가 즉시 제환공에게 달려가 고하자, 환공은 즉시 모든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조(洮)⑪ 땅으로 모이도록 했다. 정문공도 역시 친히 회맹에 참석하여 맹약의 의식을 행했다. 삽혈의 의식을 행한 제후들은 제(齊), 송(宋), 노(魯), 위(衛), 진(陳), 정(鄭), 조(曹), 허(許) 등 여덟 나라였는데 모두가 표문에 서명을 하고 각기 그 나라의 대부들을 주나라로 보냈다. 새로운 주천자를 배알하러 간 대부들의 이름은, 제(齊)의 대부 습붕(隰朋), 송(宋)의 대부 화수노(華秀老), 노(魯)의 대부 공손오(公孫敖), 위(衛)의 대부 영속(寧速), 진(陳)의 대부 원선(轅選), 정(鄭)의 대부 자인사(子人師), 조(曹)의 대부 공자무(公子戊), 허(許)의 대부 백타(百佗)였다.

이윽고 여덟 나라의 대부들이 탄 수레가 줄을 이어 왕성 앞에 당도했다. 새의 깃털로 치장한 대부들의 타고 온 수레의 모습이 무척이나 장중했다. 열국의 대부들이 혜왕을 문안한다는 핑계를 대고 왕성밖에 진을 쳤다. 왕자호가 먼저 마차를 몰아8국의 대부들이 왕성밖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을 주나라 조정에 전하자 세자정이 소백요를 불러 팔국의 대부들을 위문하게 하고 이어서 혜왕의 죽음을 발상 했다. 여러 대부들이 새로운 왕을 알현하기를 하자 주공공과 소백요 두 사람이 왕세자를 받들어 혜왕의 상을 주관하게 했다. 팔국의 대부들은 혜왕을 알현하러 온 김에 자기들 군주가 조상을 하라는 명령을 모두 받았다고 하면서 즉시 공개적으로 세자정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청했다. 이윽고 세자정이 주관하여 혜왕의 장례를 끝내고 주왕의 자리에 오르자 여러 백관들이 왕세자의 즉위를 경축했다. 이 사람이 주양왕(周襄王)이다. 혜후와 숙대가 마음속으로 고통에 부르짖었으나 감히 다른 뜻을 밝힐 수가 없었다. 주양왕은 해가 바뀌자 개원을 하고 각 제후국에 자기가 주왕의 자리에 올랐음을 알렸다.

주양왕 원년, 기원전651년 봄에 제사를 지낸 후에 주공공에게 명하여 제사고기를 제환공에게 하사하여 주나라 천자를 추대한 공로를 표창했다. 제환공이 그 소식을 먼저 듣고 다시 제후들을 모두 규구(葵邱)⑫의 땅에 모이게 했다.

6. 제환입사(齊桓立嗣)

- 적서나 장유를 불문하고 현능함을 따져 후계자를 정하는 제환공-

제환공이 규구의 회맹장으로 가는 도중에 관중과 주나라의 일을 상의하던 중에 자연히 화제가 제나라의 후사 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관중이 말했다.

「주나라 왕실은 적서를 분명하게 가르지 못하여 화란이 머지않아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지금 주군께서도 아직 세자의 자리를 정하지 않고 계시는데 마땅히 빠른 시일 내에 세자를 세워 후일의 환란을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과인에게는 아들이 여섯이 있는데 모두 서출뿐입니다. 제일 나이가 많기로는 무휴(无虧)이고 현능하기로는 소(昭)인 것 같습니다. 나를 제일 오랫동안 받든 부인은 장위회(長衛姬)라 무휴를 세자로 세우겠다고 그녀와 이미 약속했습니다. 이아(易牙)와 수초(竪貂)도 여러 번 무휴를 세워야 한다고 나에게 간했습니다. 과인은 공자소(公子昭)의 현능함을 사랑하고 있으나 아직 나의 뜻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오늘 중보께서 결정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교활하고 망녕된 이아와 수초가 평소에 장위희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던 관중은 장차 무휴가 제나라의 군주의 자리를 잇게 되어 안팎으로 합당하게 되면 제나라의 국정은 틀림없이 문란하게 된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공자소는 정희(鄭姬)의 소생인데 정나라와는 얼마 전에 회맹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공자소를 세자로 세우면 이 일을 기화로 정과 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관중이 환공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패주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신다면 현능한 공자가 아니면 불가합니다. 주군께서도 이미 공자소가 현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공자소를 후계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무휴가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후계의 자리를 다투게 되면 어찌합니까?」

「주나라 천자의 자리도 시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정해 졌는데 금번 회맹에 참가한 제후 중에서 가장 현명한 제후를 주군께서 선택하시어 공자소의 후견을 부탁하면 이 또한 후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환공이 관중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환공의 행렬이 규구의 땅에 당도했다. 주나라의 태재(太宰) 주공공도 시간을 같이하여 당도하여 각기 관사에 들어가 행장을 풀었다. 그때 송나라에서는 환공 어설(御說)이 죽자 세자 자보(慈父)가 송군의 자리를 자신의 서형인 공자 목이(目夷)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목이가 한사코 사양하며 받지 않자 자보가 송공의 자리를 이었다. 이가 송양공(宋襄公)이다. 송양공이 맹주인 제환공의 회맹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자 비록 상중이었지만 감히 오지 않을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로 회맹장에 당도했다. 관중이 환공에게 말했다.

「송공이 자신의 군주의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이 있으니 가히 현자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복을 입고 회맹에 참석하고자 왔으니 제나라를 매우 공손하게 받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세자의 후견인으로 세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고 즉시 그에게 명하여 송양공의 관사를 아무도 몰래 방문하도록 하여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관중으로부터 제환공의 말을 전해들은 송양공은 친히 제환공의 막사로 찾아 접견을 청했다. 송양공을 맞이한 제환공이 공자소의 후일을 간곡하게 부탁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군주께서 제나라의 사직이 보존 될 수 있도록 세자의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기 바랍니다.」

송양공이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감히 감당하기 어렵다고 겸양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제후가 자기에게 제나라의 후사에 관한 일을 진심으한 부탁에 감격하여 이미 세자의 후견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윽고 회맹의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 되어 각 나라 제후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옷에 치장한 방울소리를 울리며 회맹장에 당도했다. 주천자의 사자로 참석한 주공공을 먼저 제단 위에 오르도록 한 후에 제후들은 각기 순서에 의해 그 뒤를 따랐다. 제후들은 제단의 북쪽에 준비된 천자의 빈자리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땅에 엎드려 재배를 드림으로써 마치 주나라 조정에서 왕에게 배알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했다. 배알의 의식이 끝나자 제후들이 순서에 따라 자리를 잡고 도열했다. 천자가 하사한 제사고기를 두 손으로 받쳐든 주공공이 동쪽을 바라보고 서서 새로 등극한 주나라 천자의 명을 전했다.

「천자가 주나라를 창건하신 문왕과 무왕의 유지를 받들어 주공공을 시켜 백구(伯舅)에게 이 제사고기를 하사하노라!」

제환공이 계단을 내려가 절을 올리고 고기를 받으려고 했다. 주공공이 제지하며 다시 말했다.

「천자께서 후에 다시 명을 내리셨는데 백구가 나이가80이 이미 넘어,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노고를 걱정하여 작위를 높여 공(公)으로 높였으니 절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제환공이 그 말을 따르고자 하자 관중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천자께서 비록 겸양의 뜻을 말한다고 해서 신하된 자로서 어찌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고 즉시 응대하여 주공공을 향하여 말했다.

「천자의 위엄이 지척지간에 있지 않다고 해서 어찌 소신 소백(小白)이가 감히 왕명을 핑계로 신하된 자의 직분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제환공은 즉시 제단 위에서 달려 내려가 다시 고개를 땅에 대고 절을 올린 후에 제단으로 올라와서 제사고기를 두 손으로 받았다. 여러 제후들은 제후에게 예의가 있다고 마음속으로 승복했다. 환공이 여러 제후들이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자 다시 우호관계를 맺는 맹세를 하고 주나라를 받들기 위해 다섯 가지 금기 사항을 정했다.

우물을 메우면 안 된다.

곡식의 매매를 막으면 안 된다.

자식을 바꾸어 후사를 세우면 안 된다.

첩으로 부인을 삼으면 안 된다.

아녀자가 국정 간섭하면 안 된다.

毋雍泉(무옹천)

毋遏冞(무알미)

毋易樹子(무이수자)

毋以妾爲妻(무이첩위처)

毋以婦人與國事(무이부인여국사)

이어서 제후들에게 다섯 가지 금기사항을 어기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만들었다.

「무릇 동맹을 맺음은 다만 우호를 하기 위함이라!」

맹세문이 적힌 죽간(竹簡)에 제후들의 이름을 올리고, 희생을 다시 잡아 올리게 한 후에, 사람을 시켜 서장에 적힌 제후들의 이름을 크게 외쳐 알리게 했다. 그러나 회생물의 피를 바르는 삽혈의 의식은 반복하지 않았다. 제후들은 비록 삽혈의 의식을 행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마음속으로 제환공에게 승복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춘추를 일컬어 반란과 의심의 시대라고 하지만

초를 물리치고 주를 받들어 천하를 호령했도다.

제환공이 공업을 크게 일으키지 않았다면

어느 제후가 삽혈도 없이 믿고 따랐겠는가?

紛紛疑叛說春秋(분분의반설춘추)

攘楚尊周握勝籌(양초존주악승주)

不是桓公功業盛(부시환공공업성)

誰能不歃信諸侯(수능불삽신제후)

7. 封禪不成 僭越天子(봉선불성 참월천자)

- 봉선을 행하지 못하자 천자의 의례를 범한 제환공-

이윽고 회맹의 의식이 끝나자 제환공이 갑자기 태재 주공공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기에 하·상·주(夏商周) 3대에 걸쳐 봉선(封禪)이라는 의식을 행하여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그 절차가 어떠한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재공(宰孔)⑬이 대답했다.

「옛날 선인들이 태산(泰山)에 지내는 제사를 봉(封)이라 하고 태산의 낮은 봉우리 양보산(梁父山)에 지내는 제사를 선(禪)이라 합니다. 태산에 봉하는 방법은 흙으로 제단을 쌓아 그 위에 금분으로 겉을 칠한 궤(几)속에 폭이 좁은 옥편(玉片)에 제문을 적어서 넣은 후에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높은 형상의 땅을 정하여 높은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봉이라고 합니다. 양보에 선(禪)한다는 말은 형상이 낮은 곳을 택하여 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올리는 제사를 행하고, 갯버들로 수레를 만들고 수초와 볏짚으로 멍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후에 그것들을 모두 땅에 묻어 땅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하상주3대가 천명을 받아 일어나 흥성하게 된 것은 하늘과 땅의 도움에 힘입어서라고 생각하여 아름다운 보은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이렇듯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

제환공이 듣고 말했다.

「하나라는 안읍(安邑)⑭)에, 상나라는 박(亳)⑮에, 주나라는 풍호(豊鎬)⑯에각기 도읍이 있었는데 모두가 태산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산에 봉선을 행했습니다. 지금 두 산이 모두 우리 제나라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니 내가 천자에게 부탁하여 차제에 봉선을 행하고 싶소!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말해 보기 바랍니다.」

자신이 세운 공이 높다고 자부한 나머지 기고만장한 제환공을 보고 재공이 말했다.

「군주께서 하고자 하시는데 누가 감히 불가하다고 하겠습니까?」

「오늘은 시간이 이미 늦었으니 내일 다시 모여 의논하도록 하리다.」

제후들이 모두 흩어지자 재공이 조용히 관중을 찾아와 말했다.

「무릇 봉선이라는 의식은 제후가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이 아닌데 중보께서는 어찌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으셨습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호승벽이 있으셔서 조용히 간해야만 막을 수 있습니다. 정면에서 반박하게 되면 오히려 일이 더 어렵게 되어 제가 듣고만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밤에 조용히 찾아가 말씀을 드리려던 참입니다.」

이윽고 밤이 되자 관중이 환공을 찾아가 알현을 청한 후에 말했다.

「주공께서는 봉선을 정말로 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찌하여 못한단 말입니까?」

「지금까지1천5백여 년 동안 봉선을 드린 사람들은 하나라의 무회(無懷)⑰씨부터주나라 성왕 때까지 모두72명뿐이었는데 모두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봉선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환공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과인이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정벌하여 소릉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산융을 정벌하고 영지(令支)에 이르러 고죽국의 왕의 목을 베었습니다. 또한 서쪽으로 진격하여 유사(流沙)라는 사막을 건너 태항산(太行山)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내 말을 거역했던 제후들은 하나도 없었고 또한 과인이 병거를 끌고 제후들과 회합하기를 세 번, 의상행렬을 이끌고 회합하기를 여섯 번, 모두 합하여 제후들과 아홉 번을 회맹하고 천자를 받들어 천하를 한 번 바로 세웠습니다. 비록 삼대가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다고 하나 어찌 나보다 더 공덕이 크다고 하겠습니까? 태산과 양보산에 봉선하는 일은 자손들에게 그 공덕을 보이고자 함인데 어찌 불가하다고 하십니까?」

「옛날 하늘로부터 명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야 하고 연후에 제물을 준비하여 태산과 양보산에 봉선을 했기 때문에 그 의식이 매우 성대하게 되었습니다. 호상(鄗上)⑱땅에서는 한 줄기에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기장이 출현했고, 북리(北里)⑲의땅에서는 또한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벼가 나와서 이후에 태평성대가 이루어 졌고 강수와 회수사이의 땅에서는 띠가 세 개의 등줄기를 갖고 있는 것이 생겨나서 소위 신령스럽다는 뜻의 영모(靈茅)라고 불렀습니다. 왕된 사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야만 이런 일이 생겨난다고 옛날에 책으로 만들어 기록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해에서는 비목어(比目魚)⑳가 몰려들고 서쪽의 끝에서는 비익조(比翼鳥)㉑가쌍쌍이 날아왔는데 모두가 상서로운 조짐이라 이것은 모두가 사람이 불러서 온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나고 나타난 일로써 이런 일이 무려15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사서에 기록하여 자손이 번영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봉황이나 기린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날라드는 것은 흉악한 소리개와 올빼미들뿐입니다. 한 줄기에 이삭이 여러 개 달린 가화(嘉禾)는 생겨나지 않고 번식하는 것이라고는 잡초와 쑥대풀 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봉선을 기어이 행하시고자 하신다면 열국의 제후들과 식자들이 주군을 보고 비웃지나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제환공이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봉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회맹을 끝내고 제나라로 환국한 제환공은 자기의 공이 지극히 높다고 스스로 자부하여 궁궐을 크게 증축하고 그 장식을 화려하게 꾸몄다. 또한 제환공이 타는 수레와 복식 및 호위하는 시종들은 모두 주왕실의 제도를 따라 왕의 것과 같이 시행하자 제나라의 사대부들은 환공이 참람하게 천자의 의식을 따른다고 뒤에서 비난하는 의견이 들끓게 되었다. 관중도 자기의 부중에 거대한3층 누각을 짓고 이름을 삼귀대(三歸臺)라고 했다. 즉 백성들이 따르고 제후들이 따르고 사방의 오랑캐들이 따른다는 뜻이었다. 또한 궁궐과 시정사이에 장막을 치고 문을 만들어 안과 바깥을 가리우고는 반점(反坫)㉒을 만들어 열국의 사신들을 접대하게 했다. 의아하게 생각한 포숙이 관중을 찾아와서 비난했다.

「주군이 사치한다고 하여 자네도 사치하고 군이 참람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자네도 같이 따라서 하니 군주를 간하여 막지는 못할망정 어찌하여 같이 덩달아 할 수 있는가?」

「주군은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공업을 이루어 단지 한때나마 즐거움을 누리게 했을 뿐이네. 만약 예만을 주장하여 주군을 속박하면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오히려 나태한 생활을 하시게 될 것일세. 내가 같이 덩달아 이렇게 행하는 일도 역시 주군께 쏟아질 비난을 조금이나마 나누어 보고자 함일세.」

포숙아가 입으로는 단지 그렇기도 하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관중이 일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주나라의 태재 주공공이 규구에서 회맹의 의식을 끝내고 헤어져 귀국하는 도중에 우연히 회맹에 참석하고자 오고 있던 당진(唐晉)의 헌공(獻公)을 만났다. 재공이 헌공을 보고 말했다.

「회맹은 이미 끝났습니다. 」

헌공이 발을 구르며 한탄하였다.

「우리 당진국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회맹에 시간을 맞춰 도착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중원 제후들의 성대한 모임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나와는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군주께서는 안타까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제후가 공을 스스로 높여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무릇 달이 차면 기울고,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치게 됩니다. 제나라도 이와 같이 기울고 넘치게 되었으니 군주께서 스스로 보중하여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어찌 상심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진의 헌공은 즉시 수레를 서쪽으로 돌렸으나 돌아오는 도중에 병이 나서 진나라에 당도하자마자 죽었다. 헌공이 죽자 진나라는 크게 어지러워져 난리가 나게 되었다.

《제25회로 계속》

주석

①규구(葵邱)/ 송나라 경내에 있던 곳으로 현 하남성(河南省) 란고현(蘭考縣)과 산동성 조현(曹縣) 사이에 있었던 고을이다. 제양공이 연칭(連称)과 관지보(管至父)를 이곳에 주둔시켜 주나라 왕군의 침입을 막으라고 하면서 다음 해에 오이가 익으면 교대해 준다고 약속했으나 그때가 되었음에도 약속을 어기고 바꾸어 주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규구의 주둔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제양공을 살해했다. 양공의 뒤를 이은 제환공(齊桓公)이 그 재위 기간 동안 천하의 제후들과 아홉 번에 걸쳐 회맹을 하였는데 마지막 회맹이 행해진 곳이다.

②일사(一舍)/ 삼십 리를 말하며 춘추 때의 일리(一里)는400미터에 해당한다. 즉 일사(一舍)의 거리는12키로를 말하며 고대에 있어서 군대가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했다.

3)소릉(召陵)/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鄢城縣) 동쪽의 고을로 후에 초나라에 복속되었다. 제환공과 제후들의 연합군이 한수 강안에서30리를 후퇴하여 소릉에 진을 쳤다는 기사는 원작자의 잘못이다. 한수에서 소릉까지의 거리는1200리 즉300키로 이상 되는 거리이다. 따라서 이전에 전개된 내용과 사기와 좌전의 내용으로 추정하면 제환공이 진격한 곳은 초나라와 경계선을 이루었던 방성(方城) 부근으로 추측된다.

④청모(菁茅)/ 띠풀의 일종, 일명 삼척모(三脊茅)라고도 함. 고대에서 청모초(菁茅草)를 볏단으로 만들어 그 위에 부어 거른 술로 제사를 지냈음.

⑤『소반(小弁)』/『시경(詩經)·소아(小雅)』 중에 수록된 시가로서 소반(小弁)은 갈가마귀라는 뜻이다. 주유왕이 신후(申后) 소생인 태

운영자
13-06-20 15:22 
①규구(葵邱)/ 송나라 경내에 있던 곳으로 현 하남성(河南省) 란고현(蘭考縣)과 산동성 조현(曹縣) 사이에 있었던 고을이다. 제양공이 연칭(連称)과 관지보(管至父)를 이곳에 주둔시켜 주나라 왕군의 침입을 막으라고 하면서 다음 해에 오이가 익으면 교대해 준다고 약속했으나 그때가 되었음에도 약속을 어기고 바꾸어 주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규구의 주둔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제양공을 살해했다. 양공의 뒤를 이은 제환공(齊桓公)이 그 재위 기간 동안 천하의 제후들과 아홉 번에 걸쳐 회맹을 하였는데 마지막 회맹이 행해진 곳이다.
②일사(一舍)/ 삼십 리를 말하며 춘추 때의 일리(一里)는 400미터에 해당한다. 즉 일사(一舍)의 거리는 12키로를 말하며 고대에 있어서 군대가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했다.
3)소릉(召陵)/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鄢城縣) 동쪽의 고을로 후에 초나라에 복속되었다. 제환공과 제후들의 연합군이 한수 강안에서 30리를 후퇴하여 소릉에 진을 쳤다는 것은 원작자의 잘못이다. 한수에서 소릉까지의 거리는 300키로 이상 되는 거리이다. 따라서 이전에 전개된 내용과 사기와 좌전의 내용으로 추정하면 제환공이 진격한 곳은 초나라와 경계선을 이루었던 방성(方城) 부근으로 추측된다. 
④청모(菁茅)/ 띠풀의 일종, 일명 삼척모(三脊茅)라고도 함. 고대에서 청모초(菁茅草)를 볏단으로 만들어 그 위에 부어 거른 술로  제사를 지냈음.
⑤『소반(小弁)』/『시경(詩經)·소아(小雅)』 중에 수록된 시가로서 소반(小弁)은 갈가마귀라는 뜻이다. 주유왕이 신후(申后) 소생인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의 소생인 백복을 세우자 당시 태자의 태부였던 사람이 이 시를 지어 태자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참언으로 인하여 그 부친에게 쫓겨난 자식의 애절한 서러움을 호소한 시가이다. 소반의 란이란 세자를 바꾸는 일을 말한다.
⑥수지(首止)/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으로써 송나라 도성이었던 상구시(商丘市) 서쪽 약 50km 되는 곳에 있었던 고을이다.
⑦자퇴(子頹)와 오대부(五大夫)/ 주장왕(周庄王)이 세자를 호제(胡齊)로 세웠으나 후에 도희(桃姬)라는 애첩을 얻어 퇴(頹)를 낳자 총애하게 되었다. 장왕이 죽고 세자 호제(胡齊)가 즉위하여 리왕(釐王)이 되었으나 재위 5년 만에 리왕(釐王)이 죽고 그 아들 랑(閬)이 뒤를 이었다. 이가 주혜왕(周惠王)이다. 자퇴(子頹)는 자신이 왕의 숙부라는 신분을 과시하여 나이가 어린 혜왕을 무시하며 전힁 하다가 위국(蔿國), 변백(辺伯), 자금(子禽), 축궤(祝跪), 첨보( 詹父) 등의 주나라의 다섯 대부들과 작당하여 란을 일으킨 후에  위혜공(衛惠公)의 지원을 받아 주혜왕을 쫓아내고 스스로 주왕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정나라로 몸을 피한 혜왕이 정려공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반격해오자 자퇴는 대항하여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군사들에게 잡혀서 죽었다. 이를 오대부의 란이라고 한다. (연의 19회 내용 참조)
⑧백복(伯服)/ 주유왕과 포사 사이에 놓은 아들이다. 주유왕은 처음에 장자인 의구를 태자로 세웠다가 폐하고 그의 외가인 신국(申國)으로 쫓아낸 후에 백복을 대신 태자로 세웠다. 후에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아 유왕과 포사 및 백복 등은 견융에게 살해당했다.
⑨자극(子克)/ 주환왕(周桓王 재위 기원전719년-697년)은 주평왕의 손자이다. 장자 타(佗)를 세자로 책봉했으나 후에 차자인 자극을 총애하여 그를 세자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자 임종하기 전에 주공 흑견(黑肩)을 불러 자기가 죽은 후에라도 타가 먼저 죽게 되면 그 후사로 자극을 세우라고 유언했다. 환왕이 죽고 타가 즉위했다. 이가 주장왕(周庄王)이다. 후에 장왕의 의심을 받은 흑견이 자극을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모의했다. 이를 신백(申伯)이 알고 장왕에게 고하여 주공 흑견은 잡혀서 죽고 자극은 연나라로 도망쳤다. 기원전 693년에 일어난 일이다.
⑩영모(寧母)/ 지금의 산동성 금향현(金鄕縣) 동남의 춘추 때 노나라 영토다. 『춘추(春秋)』7년 기원전 653년, ‘노후(魯侯)가 제후(齊侯), 송공(宋公), 진세자(陳世子) 관(款), 정세자(鄭世子) 화(華)가 영모에 모여 회맹했다.’라는 기사가 있다. 
⑪조(洮)/ 지금의 산동성 곡부 북 약 20키로 되는 곳에 있었던 고을
⑫규구(葵邱) / 현 하남성 조현(曹縣) 서 약 20km 지점
⑬재공(宰孔)/ 주공공(周公孔)의 관직이 태재(太宰)였기 때문에 관직과 그의 이름을 따서 재공이라 한 것이다.
⑭안읍(安邑)/ 하나라의 도읍으로써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運城市) 부근. 하남(河南), 섬서(陝西省)과의 경계인 하곡부(河曲部)에 있었음. 후에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의 하나인 위(魏)나라의 초기 수도가 되었다. 
⑮박(亳)/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丘市)로 은나라의 초기 도읍이다. 후에 은나라는 안양시(安陽市) 소둔촌의 은허(殷墟)로 옮겼음으로 나라 이름도 은으로 바꾸었다. 주무왕이 은나라를 멸하고 그 후예들을 상구시 주변의 땅으로 이주시키고 송나라에 봉했다.
⑯풍호(豊鎬)/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西安市) 서쪽 근교에 있었던 서주의 도읍
⑰무회(無懷)/ 중국 상고시대의 부락으로 그 수령을 무회씨라고 했다. 
⑱호상(鄗上)/『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에 「호상지서(鄗上之黍)」에 나오는 지명으로 지금의 섬서성 서안 서쪽의 호수(鄗水) 강안을 가리킨다. 후에 호현(鄗縣)으로 바뀌었다.
⑲북리(北里)/『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의 ‘ 古之封禪, 鄗上之黍, 北里之禾 所以爲盛’에 나오는 지명으로 정확한 위치는 미상이다.
⑳비목어(比目魚)/ 암수가 다 눈 이 하나인 물고기.
㉑비익조(比翼鳥)/ 암수가 다 눈이 하나 날개가 하나인 새. 늘 날개를 나란히 해야만 하늘을 난다하여 부부의 의가 좋음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㉒반점(反坫)/ 제후들이 회맹할 때 헌수(獻酬)의 예를 행하고 나서 빈 잔을 엎어두는 받침대.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제후이외는 아무도 갖을 수 없는 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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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4-05-11 1540
[일반] 제20회. 違卜立妃(위복립비), 子文相楚(자문상초)

제20회 違卜立妃 子文相楚(위복립비 자문상초) 점괘를 무시하고 여희를 부인으로 세우는 진헌공과 재상이 되어 초나라를 부흥시킨 자문 투곡오토( (1)
양승국 04-05-11 1557
[일반] 진헌공의 복잡한 가계 현황표

부인명 소생 결과 비 고 가희(賈姬) 없음 태자 때 부인이었으나 소생 없이 일찍 죽었다. 제강(
양승국 04-05-11 1675
[일반] 제19회. 擒將復國(금장복국), 殺頹反正(살퇴반정)

제19회擒將復國 殺頹反正(금장복국 살퇴반정) 부하(傅瑕)를 사로잡아 나라를 다시 찾은 정려공 돌과 왕자퇴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위에 복귀한 주 (1)
양승국 04-05-11 1657
[일반] 재18회. 曹沫劫盟(조말겁맹), 寧戚擇主(영척택주)

제18회 曹沫劫盟 寧戚擇主(조말겁맹 영척택주) 칼로 회맹장을 범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은 조말과 제환공을 시험하여 자기의 군주로 선택한 영척
양승국 04-05-11 1691
[일반] 제17회. 戱言招禍(희언초화), 除狼得虎(제랑득호)

제17회 戱言招禍 爭媚强楚(희언초화 쟁미강초) 신하를 희롱하다 맞아 죽은 송민공과 서로 다투어 초왕을 받들다가 해를 입는 식채(息蔡) 두나라
양승국 04-05-11 1623
[일반] 제16회, 釋囚薦相(석수천상), 長勺敗齊(장작패제)

제16회 釋囚薦擧 長勺敗齊(석수천거 장작패제) 함거의 죄수를 풀어서 천거하는 포숙과 장작에서 제나라 군사를 물리친 조귀(曹劌) 1. 가
양승국 04-05-11 1777
[일반] 제15회. 射中帶鉤(사중대구), 乾時大戰(건시대전)

. 제15회 射中帶鉤 乾時大戰(사중대구 건시대전) 허리띠에 꽂힌 화살로 군위를 차지하는 제환공이 건시에서 노나라 군사와 싸워 크게 무찌르다.
양승국 04-05-11 1580
[일반]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양승국 04-05-11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