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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8 13:05:202115 
3. 緜(면) - 면면하게 이어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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緜(면)

- 면면하게 이어지도다 -

서(書)에서는 문왕이 크게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조부인 태왕 고공단보의 치적 때문이라고 했다. 주희는 이 시도 주공이 성왕에게 경계를 주기 위해 지었다고 하면서 태왕이 처음으로 기산(岐山) 밑으로 옮겨 왕업의 터전을 마련했고 이로써 문왕이 천명을 받게 되었음을 읊은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과 뒤의 생민(生民), 공류(公劉)의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편에서는 ‘民之初生(민지초생), 自土沮漆(자토저칠)“이라 하여 빈(豳)땅을 주나라의 발상지로 삼고 그곳에서 기산(岐山)으로 옮겼던 일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생민에서는 시조 후직(后稷)이 태(邰) 땅에서 이주한 빈 땅에 집을 마련했고 공류에서는 공류가 태 땅에서 빈 땅으로 옮겼다고 했다. 즉 이 시에 나오는 시대보다 한 단계 더 앞선 시대를 다루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또한 이 시에서는 빈(豳) 시기의 주거는 도복도혈(陶復陶穴)이라 하여 혈거생활을 영위했던 사실을 나타내고 있지만 공류에 의하면 빈 땅에 커다란 궁전을 지어 이미 어 느정도 진보된 문화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시들이 서로 당시의 생활상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관련된 시들이 각기 다른 시대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일장은 빈(豳)땅에 있었던 일, 이장은 기산(岐山) 밑에서의 일, 삼장은 집지을 곳을 정했던 일, 사장은 백성들에게 토지를 주어 살게 한 일을, 오장은 종묘를 짓는 일을, 육장은 궁실을 짓는 일을, 칠장은 사직단을 세우는 일을, 팔장은 이윽고 문왕 때에 이르러 곤이(混夷)를 복속시킨 일을, 구장은 마지막으로 문왕이 천명을 받은 일에 대해서 말했다.


綿綿瓜瓞 民之初生(면면과질 민지초생)

주렁주렁 달려 있는 크고 작은 오이들,

백성들이 처음으로 와서 살던 곳이다.


自土沮漆 古公亶父(자토저칠 고공단보)

저수와 칠수의 강가에서 고공단보 님께서는


陶復陶穴 未有家室(도복도혈 미유가실)

흙으로 아궁이를 만들고 흙으로 집을 지으시고

아직 가옥은 마련하지 못하셨다네

비(比)다. 면면(綿綿)은 끊임없는 모양이다. 오이의 큰 것을 과(瓜)라 하고 작은 것을 질(瓞)이라 하는데, 뿌리 가까이에서 처음 자란 오이는 항상 작고, 그 덩굴이 끝에 달린 오이는 크다. 민(民)은 주나라 백성들이다. 자(自)는 부터요, 토(土)는 땅이다. 沮·漆(저칠)은 두 강의 이름인데 豳(빈) 땅에서 발원하여 위수(渭水)로 흐른다. 고공(古公)은 호(號)고, 단보(亶父)는 이름으로 후대에 이르러 태왕(太王)으로 추서했다. 도(陶)는 구들이고, 복(復)은 이중 구들이며, 혈(穴)은 토실(土室)이다. 가(家)는 문내(門內)의 통칭이다. 서융(西戎)과 가까운 빈(豳)땅은 날씨가 매우 추웠다.

이 편은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시라고 했다. 태왕이 부족들을 이끌고 기풍(岐豊)으로 옮겨와서 왕업(王業)을 여시니, 이로 인해 문왕께서 천명을 받아 주나라를 창건했음을 칭송했다. 오이덩굴이 처음에는 작고 나중에 커짐을 말하여 주나라 사람들이 처음에 칠저(漆·沮)의 강변에서 살았는데, 고공(古公) 때에 요조(窯竈)와 토실(土室) 중에 살아서 그 나라가 매우 작았는데, 문왕 때에 이르러 커졌음을 비유했다.



古公亶父 來朝走馬(고공단보 래조주마)

고공단보 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말을 달려


率西水滸 至于岐下(솔서수호 지우기하)

서쪽의 호수를 건너, 기산 밑에 당도하셨다네


爰及姜女 聿來胥宇(원급미녀 율내서우)

그곳에서 강녀를 얻어, 새 살림을 차리셨다네

부다. 조(朝)는 아침이고, 주마(走馬)는 적인(狄人)의 난리를 피해 말을 타고 이동함이다. 호(滸)는 물가이니 칠수와 저수의 강변이다. 기하(岐下)는 기산(岐山) 아래다. 강녀(姜女)는 태왕의 비로 태강(太姜)이다. 서(胥)는 상(相)으로 서로 쳐다봄이다. 우(宇)는 거처할 집이다. 맹자가 말했다.

“빈 땅에 거(居)던 태왕이 적인(狄人)의 침범을 받을 때마다 피폐(皮幣)·주옥(珠玉)·견마(犬馬)를 공물로 바쳐 섬겼음에도 적인이 침범을 멈추지 않자, 기노(耆老)들을 모아서 ‘적인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땅이다. 군자는 재물로 인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게 됨을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 장차 그대들을 위해 이곳을 떠나리라!’ 라고 말한 후에 빈 땅을 떠나서 양산(梁山)을 넘어 기산 밑에 당도하여 읍을 삼아 정착했다. 이에 빈의 백성들은 ‘고공은 인인(仁人)이다. 우리가 결코 잃을 수 없다.”라 말하고, 고공을 쫓는 자가 시장에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周爰膴膴 菫荼如飴(주원무무 근도여이)

주나라 들판은 기름져서

오두(烏頭)와 씀바귀도 엿처럼 달았다네


爰始爰謀 爰契我龜(원시원모 원계아귀)

그래서 이곳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거북등을 태워 점을 쳐보니


曰止曰時 築室于玆(왈지왈시 축실우자)

머물러 살만 하다 하니, 비로소 이곳에 집을 지으셨네

부다. 주(周)는 땅이름으로 기산(岐山) 남쪽으로 지금의 섬서성 서부의 기산현(岐山縣)이다. 넓고 평원한 들판을 원(原)이라 한다. 주원은 칠수와 저수 강변의 평원이다. 무무(膴膴)는 땅이 비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근(菫)은 오두(烏頭)라 하는데 초오(草烏)다. 초오를 오두(烏頭)라고 하는 이유는 그 생김새가 까마귀 머리와 같다고 해서다. 또 두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 까마귀의 부리와 같다고 해서 오훼(烏喙)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요동(遼東)의 변방 밖에서는 가을이 되면 초오두(草烏頭)의 즙을 내어 햇볕에 말려 독약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할 때 사용했으므로 사망(射罔)이라고도 했다. 도(荼)는 고채(苦菜)로 씀바귀다. 이(飴)는 당(餳)으로 엿강정이다. 설(契)은 불을 태워 거북을 지지는 행위이니, ࡔ의례(儀禮)ࡕ의 이른바 ‘초돈(楚燉)’이다. 혹자는 거북의 껍질에 뚫고자 하는 곳을 칼로 파는 행위라고 했다.

○ 주원(周原)의 토지가 비옥하고 아름다워서 그곳에서 자란 식물은 비록 쓴 것조차도 엿강정처럼 달았다. 그래서 태왕은 비로소 자기를 따르는 빈 땅의 족속들과 거주하려는 생각으로, 거북을 지져 점을 쳐서 이미 그 길조를 보았으므로 백성에게 “집을 지어 거주할만 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



迺慰迺止 迺左迺右(내위내지 내좌내우)

이에 머물러 편안하게 되니, 좌우에 집을 짓게 하셨다.


迺疆迺理 迺宣迺畝(내강내리 내선내무)

땅을 나누어 경계 짓고, 도랑을 파고 이랑을 만드셨으니


自西徂東 周爰執事(자서조동 주원집사)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주관하셨네

부다. 위(慰)는 편안히 함이요, 지(止)는 거처함이다. 좌우(左右)는 동서로 열을 지음이다. 강(疆)은 경계를 크게 정하는 일이고, 이(理)는 조리있게 구별함이다. 선(宣)은 흩어져 거처함이라고 했으나, 혹자는 구혁(溝洫)으로 즉 도랑을 파고 물길을 냈음을 뜻한다고 했다. 무(畝)는 전도(田疇) 즉 밭두둑을 다스리는 행위다. 자서조동(自西徂東)은 서쪽 강변으로부터 동쪽으로 이주함이다. 주(周)는 두루라는 뜻이니, 무슨 일이건 빼먹지 않고 모두 챙겨서 행함을 뜻한다.



乃召司空 乃召司徒(내소사공 내소사도)

이어서 사공을 부르시고, 다시 사도도 함께 부르시어


俾立室家 其繩則直(비립실가 기승즉직)

큰집을 지으시고자, 먹줄을 곧게 그으시게 하셨다.


縮版以載 作廟翼翼(축판이재 작묘익익)

축판을 새우시니, 세운 종묘는 장엄하였네

부다. 사공(司空)은 국도(國都)를 관장하는 관리의 장이고 사도(司徒)는 도역(徒役)의 일을 관장하는 관리의 장이다. 승(繩)은 먹줄로 곧게 만들기 위해 위치를 측정할 때 먼저 먹줄로 바르게 표시한 후에 판자를 묶어 흙을 쌓는다. 축(縮)은 묶음이고, 재(載)는 상하가 서로 이어지게 하는 연결하는 행위다. 그래서 새끼줄로 판자를 묶어 흙을 던져 쌓는 일을 마치면 밑에서부터 올라가서 서로 받들어 잇닿게 함을 말한다. 군자가 장차 궁실을 축조하려고 한다면 종묘(宗廟)가 최우선이고, 마구간과 창고는 그 다음이며, 거실은 맨 뒤가 된다. 익익(翼翼)은 엄정한 모습이다.



捄之陾陾 度之薨薨(그지잉잉 탁지흉흉)

축판의 흙더미, 던지는 소리 요란하고


築之登登 削屢馮馮(축지등등 삭루풍풍)

담 다지는 소리는 등등하며, 바깥 쪽 깎아 평평하게 하여


百堵皆興 鼛鼓弗勝(백도개흥 고고불승)

모든 담벽 세우기를 마치니

기뻐 울리는 북소리 끊이지 않네

부다. 구(捄)는 그릇에 흙을 담는 행위다. 잉잉(陾陾)은 많음이다. 탁(度)은 판자에 흙을 던져 채우는 일이다. 훙훙(薨薨)은 여러 사람이 내는 구령이고 등등(登登)은 서로 호응하는 소리이다. 삭루(削屢)는 완성된 담의 중복된 곳을 깎아 다듬는 행위다. 풍풍(馮馮)은 단단한 담이 내는 소리다. 다섯 판자를 도(堵)라 하고, 흥(興)은 일어남이니 이는 궁실 짓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고고(鼛鼓)는 길이가 한 장 두 자의 큰 북으로 인부들이 공사를 할 때 울린다. 불승(弗勝)이라는 말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사에 열중하니 북치기를 그칠 수 없음을 뜻한다.



迺立皐門 皐門有伉(내립고문 고문유항)

성밖에 고문을 세우니

그 고문은 높아 하늘을 찌를 듯 했다.


迺立應門 應門將將(내립응문 응문장장)

다시 성문의 정문을 세우니, 그 정문의 모습은 장엄하였다.


迺立冢土 戎醜攸行(내립총토 융추유행)

사직단(祀稷壇)을 세우시어, 군사들이 출전할 때 고하게 하셨네

부다. 모전에 이르기를 “고문(皐門)은 왕도의 성곽에 낸 문이다.”라고 했다. 항(伉)은 문이 높은 모양이다. 태왕 때에 제도가 없어서 다만 두 개의 문만을 만들고 고문과 응문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주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됨에 이르러 결국은 천자의 문으로 높여서 제후들로 하여금 세우지 못하게 정했다. 총토(冢土)는 사직단으로 태왕이 세우기 시작한 것인데, 후에 천자의 제도로 삼았다. 융(戎)은 대(大)고 추(醜)는 중(衆)으로 대중(大衆)이다. 고대에 큰 사섭을 일으켜 대중을 동원할 때는 반드시 제사를 준비하여 조상들에게 고하게 한 뒤에 출발하니, 이것을 의제사(宜祭祀)라고 했다.



肆不殄厥慍 亦不隕厥問(사부진궐온 역불운궐문)

오랑캐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않으셨으나

그 어진 소문 끊이지 않고 퍼져나가


柞棫拔矣 行道兌矣(작역발의 행도태의)

떡갈나무 두릅나무 베어, 백성들이 다니는 길을 내니


混夷駾矣維其喙矣(곤이태의 유기훼의)

오랑캐들이 두려워하여, 숨을 헐떡이며 달아 났다네

부다. 사(肆)는 수(遂)와 통하니 앞의 문장을 이어서 아래의 문장을 연결시키는 어조사다. 진(殄)은 끊음이고, 온(慍)은 노(怒)함이며, 운(隕)은 실추(失墜)함이다. 문(問)은 문(聞)으로 명성이다. 작(柞)은 떡갈나무로, 가지가 길고 잎이 무성하고 총생하며 가시가 있다. 역(棫)은 백유(白桵)로 두릅나무다. 역시 총생하며 가시가 있다. 발(拔)는 위로 쑥 뻗어서 곧게 자람이니 구부러지거나 덮이거나 빽빽하지 않는 모습이다. 태(兌)는 통함이니 비로소 떡갈나무나 두릅나무 숲 가운에 길을 내서 통하게 했음이다. 곤이(混夷)는 곤이(昆夷)로 중국 고대의 서융의 일족으로 흉노족의 조상이다. 태(駾)는 말을 타고 도망가는 행위고 훼(喙)는 숨쉼이다.

○ 태왕이 능히 곤이의 사나운 성정을 고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게 된 이유는 비록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반드시 남들이 자기에게 성내게 못하는 경우도 있음으로, 단지 스스로의 몸을 수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태왕이 처음으로 기산 밑의 주원(周原)에 이르렀을 때에는 모두 원시림으로 덮여 통행이 불가했고 사람이나 물자가 매우 적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산물이 많이 나기 시작했고 태왕을 찾아와 귀의하는 자가 더움 많아져 초목이 우거진 숲속 사이에 길이 생겼음으로 곤이들이 두려워하여 말을 타고 멀러 달아나 그곳에서 쉴 수 있었을 뿐이었다. 태왕의 덕이 성해짐에 곤이도 스스로 복종했음을 말했으니 그때는 이미 문왕 때에 일어난 일인 듯하다 .



虞芮質厥成 文王蹶厥生(우예질궐성 문왕궐궐생)

우와 예나라가 재판을 청해오니

문왕께서 일어나시어 말씀하셨네


予曰有疎附 予曰有先後(예왈유소부 예왈유선후)

내가 이르노니 사람들은 모두 왕을 따라서

또한 이르노니 사람들은 선후가 있어야 할 것이며


予曰有奔奏 予曰有禦侮(예왈유분주 예왈유어모)

덕을 칭찬하고 또한 끊임없이 널리 알릴 것이며

적의 침략을 당해서는 힘껏 막을 지어다.

부다. 후(虞)는 지금의 하남성 평륙시(平陸市)에 있었던 제후국이고 예(芮)는 섬서성 대려시(大荔市)에 있었던 제후국이다. 질(質)은 바르게 함이고, 성(成)은 화평하게 함이다. 모전(毛傳)에서 말하였다.

「우와 예의 군주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오래도록 화평치 못하였다. 그래서 두 군주가 문왕의 판결을 받아 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함께 주나라에 들어가니 밭가는 자는 밭두둑을 양보하고, 행인은 길을 양보했으며, 다시 주나라의 도읍에 들어가니 남녀는 길을 달리하고 반백의 사람은 짐을 들거나 끌지 않았으며, 다시 조정에 들어가서 보니 사(士)는 대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대부는 경(卿)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나라 군자가 감동하여 “우리들은 소인이라 군자 나라의 경계를 밟을 수 없다.”라고 서로 말한 후에 서로 양보하여 그 분쟁하던 토지를 한전(閒田)으로 삼기로 하고 물러갔다.」

이에 이 말을 전해들은 천하의 제후들이 귀의했는데 모두40여 나라에 달했다.」

○ 곤이가 이미 복속되고 우예(虞·芮)가 와서 오래된 그들의 송사를 해결하여 화평을 이루니, 이에 주나라에 귀한 제후들이 많게 되어 문왕이 이로 인해 흥기하게 되었다. 이는 문왕의 덕이 성(盛)했을 뿐만 아니라 네 신하의 도움을 받아 천명을 받았음을 말했다.

綿 九章이니 章 六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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