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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13 10:49:477689 
화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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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貨殖列傳(화식열전)







" 무위무관의 평민으로서 정치를 어지럽히지도 않고 남의 생활을 방해하지도 않고 때를 맞추어 거래해서 재산을 늘려 부자가 되었다. 지혜로운 자는 여기서는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69에 화식열전을 서술한다"




이 글은 태사공(太史公) 司馬遷(사마천)이 貨殖列傳(화식열전) 첫머리에 쓴 자서이다.




아시다시피 司馬遷(사마천)은 기원전100여년 전 중국에서 태어난 사기를 저술한 유명한 역사가이다. 그의 부친 사마담은 중국 한대의 천문과 역법 그리고 도서를 관장하는 太史令(태사령)이었는데 부친의 유업을 받들어 후일 사기 저술을 완성한 역사가이다.




당시 그는 친구인 이릉이라는 장군이 전쟁에 출전하였다가 匈奴(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을 변호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BC 99년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 불알을 까는 형)을 받았다.




그는 <보임안서(報任安書)>라는 명문에서 궁형의 치욕 때문에 죽으려고 하였으나 부친의 유업인 《사기》저술을 위하여 묵묵히 감옥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그의 나이 55세 때 사기를 완성하였다. BC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 (中書令)이 된 사람이다.




기원전 중국 전한(前漢)시기의 <사기> 貨殖列傳(화식열전) 편은 지금 읽어보아도 조금도 고리타분한 사상의 냄새가 나지 않는 "부자아빠"를 몇 배 압축한 파일들이다. 내용을 더듬어 가다 보면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는 理財法(이재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司馬遷(사마천)은 貨殖列傳(화식열전)에서 기원전 중국 富豪(부호)들의 이재법을 소개하면서 부자들의 사업에 대한 통찰력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 부를 얻는 데는 일정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물건의 주인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업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부가 집중되고 우매하고 불초한 자에게는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시를 지배하는 제후에 비길 만하고 수만금을 가진 부호는 왕자(王者)와 즐거움을 같이 한다. 그들이야말로 무관(無冠)의 제후(諸侯)라 할 만하지 않을까"




" 천승(千乘)의 왕이나 만가(萬家)의 제후 그리고 백실(百室)의 군(君) 조차도 가난한 것을 걱정하는 판에 하물며 일반 서민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司馬遷(사마천)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까지 극언하고 있다. "집이 가난하고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처자식들은 밥벌이를 못할 지경이며, 그리고 명절이 되어도 조상에게 제사 지내거나 술자리를 마련할 돈도 없고 또한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기본적인 衣食住(의식주)도 마련하지 못하는 주제에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인간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사마천은 일부 특수한 사정으로 인하여 빈한한 생활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을 질책하고 실패한 인생이라 비판하고 있다. 오늘날에 적용하여도 거의 손색이 없는 現實觀이 아닐 수 없다. 사마천(司馬遷)이 이러한 주장을 한 후 이미 2천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대륙의 지식인들조차 마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이런 이야기를 감히 입 밖으로 쉽게 내지 못한다. 사마천은 당시 민중의 가슴에 흐르는 현실적 삶의 精髓(정수)를 꿰고 있었으며 그것을 加減(가감) 없이 표현하는데 솔직하고 용감했던 것이다.




司馬遷(사마천)의 ≪사기≫를 읽어 가다 보면 오늘날에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낭만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간적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어떤 틀에 얽매이거나 고리타분한 학자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며 상쾌하고 발랄하며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




사마천(司馬遷)이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저는 어려서부터 생기발랄한 성격이었으며 커서는 동네에서 착실하다는 평판을 듣지 못했습니다」는 고백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司馬遷(사마천)이 자주 거론했던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用, 女爲悅己容)는 이야기는 물론 유교 도덕에 근원을 둔 표현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미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굳어진 고전적 유교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司馬遷(사마천)이 이러한 주장을 과감하게 했기 때문에 훗날《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게 된다.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에서 반고는 다음과 같이 비난을 퍼부었다.「사마천의 가치관은 성인(聖人)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있다. 인생 만사의 최고 기준을 논함에 있어 유가 사상보다 도가 사상을 우위에 놓았고, 협객(俠客)을 논하면서 高潔(고결)한 인물을 뒤로 하고 간웅(奸雄)을 치켜세웠다. 또한 돈 문제로 들어가면 권력과 재물을 숭상하고 빈곤함을 경멸하였으니 이런 점들이 사마천의 誤謬(오류)라 할 것이다.」




司馬遷(사마천)과 班固(반고)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인데도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돌이켜 보면 사마천의 통찰력은 반고의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하여 더욱 돋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반고의 사상은 2백 년 전 우리의 實事求是(실사구시)를 제창한 實學者(실학자) 들이 나오기 전까지 조선왕조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의 사상과 脈(맥)이 닿아 있다.




그래도 중국인들에게 불행 중 다행인 것이 반고(班固)가 《한서(漢書)》를 쓰기 이전에 사마천(司馬遷)이란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가 없이 그냥 반고(班固)로부터 중국의 정사(正史)가 시작되었더라면 중국 역사의 전통은 획일적인 문이재도(文以載道)의 방침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문이재도(文以載道)란?" 모든 글은 도덕적 윤리적 기반 위에서 서술해야 한다는 뜻이다.)




司馬遷(사마천)과 같은 實事求是(실사구시)를 존중하는 통찰력있는 인물을 중국이 가지지 않았더라면 표현에 인색한 중국인들이 더욱 위선적이고 더욱 無味乾燥(무미건조)해졌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상을 자유롭게 펼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전통도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司馬遷(사마천)의 貨殖列傳(화식열전)에 담겨있는 사상의 가르침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중국인들은 태생적으로 상업과 협상에 능한 것 같다. 중국인들과 協商時 우리가 훨씬 많은 카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終局(종국)에는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고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은 수 천년 간 쌓아온 그들의 노하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우리와 달리 상업을 천한 직업으로 보지 않고 훌륭한 부자를 존경하고 따르는 전통을 지켜왔다. 다만 중국 공산혁명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는 잠시 조정의 기간을 거쳤지만, 개방과 함께 중국인들의 噴出(분출)하는 부에 대한 욕구를 지켜보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돈에 대한 강한 집념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는 胎生的(태생적) 遺傳因子(유전인자)임이 확실한 것 같다.




서양의 부자 아빠만 읽을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財貨觀(재화관)의 寶庫(보고)인 貨殖列傳(화식열전)을 읽으며 富(부)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고 중국인의 金錢觀(금전관)과 事業觀(사업관)을 이해하고 연구하여 중국과의 무역이나 사업에서 큰 성취를 이루는 전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http://blog.naver.com/fulfield/12000672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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