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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기열전-화식열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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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식열전2] 노예들의 유통 프랜차이즈!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현대적 관점에서 본 화식열전2]


화식열전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흥미로운 재테크… 오늘날의 주식투자 그대로 빼닮은 방법론도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중국 전국시대 인물인 백규는 시세의 변화를 살피기를 좋아했다. 그는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들일 때 팔아넘겼다.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옻을 팔았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풀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팔았다. 이처럼 백규는 풍년과 흉년이 순환하는 것을 살펴서 사거나 팔아 해마다 물건 사재기하는 것이 배로 늘어났다.”

“오지현의 나(나-한자임)라는 사람은 목축이 본업이었다. 그는 가축이 늘자 신기한 비단을 사서 남몰래 융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대가로 나에게 열배나 더 많은 가축을 주었다. 그래서 그의 가축은 골짜기 수로 말과 소의 수를 셀 정도가 됐다.”











△ 말은 부자가 되는 주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목축업자 나라든가 교요는 모두 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림은 흉노와 한나라군의 기마전.




이극 vs 백규


“파촉에 청이라는 과부가 살았는데, 그 조상이 단사(丹沙·수은)를 생산하는 동굴을 발견해 물려받았다. 이 단사 광산을 여러 대에 걸쳐 독점해 재산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는 가업을 지키고 재물을 이용해 자신을 지켜 사람들로부터 침범당하지 않았다.”

“조나라 출신인 탁씨는 원래 철을 캐고 제련해 부자가 된 사람이다. 그런데 진나라에 조나라가 망해 포로가 되는 바람에 재물을 빼앗기고 강제 이주까지 당하게 됐다. 비슷한 처지에 빠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나라 관리들에게 남은 재산을 털어 뇌물로 바치면서 가까운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청탁했다. 그러나 탁씨는 먼 곳이라도 옮겨가겠다고 해서 촉 땅의 임공으로까지 갔다. 그는 철이 생산되는 산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들었다. 그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기술자로 이용하면서 주변 지역과 교역해 부자가 됐다.”

“제나라 사람들은 노예를 업신여겼는데 조간만은 이들을 사랑하고 귀하게 대했다. 사납고 교활해 사람들이 싫어하는 노예들을 발탁해 그는 생선과 소금 장사를 시켰다. 그는 노예들의 그런 능력을 빌려 결국 수천만금의 부를 쌓았다.”

“선곡에 사는 임씨의 조상은 창고 관리였다. 진나라가 싸움에 졌을 때 호걸들은 모두 앞다투어 금·은·옥을 차지했으나, 임씨만은 창고의 곡식을 굴 속에 감춰두었다. 그 뒤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가 형양에서 대치하자, 쌀 한섬 값이 1만전까지 뛰었다. …호걸들이 차지했던 금·은·옥은 모두 임씨의 것이 됐다.”

“오초 7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장안에 있는 크고 작은 제후들은 토벌군에 가담하기 위해 이잣돈을 얻으려 했다. 돈놀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후들이 이길지 어떨지 아직 모르겠다’며 기꺼이 빌려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무염씨만은 천금을 풀어 빌려주었다. 그러면서 이자를 원금의 10배로 했다. 석달 만에 난이 평정되고 제후들은 승리했다. 무염씨는 겨우 한해 만에 원금의 10배를 이자로 받아 재산이 관중 전체의 부와 맞먹게 됐다.”

“한나라가 흉노를 친 뒤 변경의 땅을 넓혔을 때, 교요라는 사람만이 말 1천 마리, 소 2천 마리, 곡식 수만종을 얻었다.”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재테크는 매우 흥미롭다. 2500여년 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 진시황릉의 모습. 아직 발굴하지 않은 황릉 속에는 단사(수은)로 이뤄진 '대해'가 설치돼 있다고 전해진다. 특수물질로 장묘용으로 쓰인 이런 단사를 통해 청은 거부를 유지했다.




무협용 소재로 충분한 청의 이야기


먼저 백규부터 보자. 이 사람의 방법론은 오늘날의 주식투자에 대입해도 그대로 들어맞을 것만 같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정통적인 방법론을 그대로 빼닮아 있는 것이다. 당시 그와 대치되는 재테크론자로 ‘화식열전’에 나타난 사람은 위나라의 이극이다. 이극은 ‘토지의 생산력을 발휘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고 기록돼 있다. 추정컨대 당시 중국 대륙은 통일되기 전이라 황하나 회하의 치수관리를 천하적 관점에서 실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천하적 스케일의 치수정책은 한나라의 통일 이후 사실상 본격화되고 있다.

따라서 통일 이전 생산력의 증대는 (1)제한된 각국 농경지의 생산력 최대화 (2)국내-국외 상업 및 무역의 확대라는 2가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백규는 이 가운데 각국간 경쟁과 견제 때문에 불안정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는 (2)의 방법론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농경지의 생산력 증대를 지향하는 이극의 방법론이 주류적 방법론이라면, 백규의 그것은 비주류적 방법론인 셈이다. 백규의 방법이 성공하는 요체는 바로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는 데 있다. 이 문제를 백규는 당시의 천문학과 순환론에 기대고 있다는 약점을 보여주긴 한다. 목성 뒤에 있는 세성을 가리키는 태음을 이용해 풍년과 흉년, 가뭄과 홍수를 추산하고 그에 따라 전략물자의 매입·매각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우리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밖에 백규가 취한 방법을 보면 나름대로 백규가 대단한 강점을 지녔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돈을 불리려면 값싼 곡식을 사들이고, 수확을 늘리려면 좋은 종자를 썼다.”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억눌렀으며… 노복들과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했다.” “시기를 보아 나아가는 것은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빨랐다.”

청이라는 사람은 유일한 여성으로서 눈길을 끈다. 그의 특징은 거부를 약속하는 세습광산을 훌륭히 지키고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화식열전’만 보면 이 여성이 친가로부터 세습을 받았는지 시가로부터 받았는지 불분명하다. 어쨌든 그의 부는 단사라는 당시 각광받던 특수물질 때문에 가능했다. 단사는 바로 진시황의 지하 황릉에 대량으로 집어넣었다는 그 물질이다. 당시 진시황은 지하 황릉에 단사로 된 ‘대해’를 설치하는 컨셉트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가 통일 뒤 바다에 심취한 것이라든가, 장묘문화와 관련된 단사의 특수성 등이 결합해 단사의 대해를 지하에 자리잡게 한 것이다.

단사는 고대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도 분묘용으로 각광받았다. 대단히 넓은 폭의 온도대에서 물질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었던 것을 인간들이 주목한 것이다. 당시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이 황금알을 낳는 수은광산을 노린 자가 한둘이었겠는가? 도적은 도적대로, 탐관은 탐관대로, 토호는 토호대로 이 여성을 노리는 눈길과 손길, 음모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법하다. 이 여성의 이야기는 사실 무협지나 무협영화의 소재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조간의 재테크도 혀를 내둘게 한다. 노예를 이용해 유통 프랜차이즈를 대대적으로 성공시켜 거부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2500여년 전에 등장한 노예들의 유통 프랜차이즈라니!!! 사람들한테 버림받은 사람들을 긁어모아 신화에 도전하는 ‘공포의 외인구단’인 셈이다.


전쟁에서 승리할 제후쪽에 베팅하라













△ 진나라 때의 반량전. 반냥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를 지녔던 진나라의 반량전은 한나라 들어 점차 얇아져 실질가치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무염씨의 이야기에 이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지경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면서도 경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저 유명한 유럽의 유대계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 전쟁 때 워털루 전투의 승리 예측을 통해 거부를 움켜주고 세계적인 부를 쌓은 것과 그대로 빼닮았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런던·파리·나폴리·빈·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5대 도시를 무대로 금융업을 하고 있었다.

주로 왕가에 전비를 대부해주고 거액의 이자를 받는 방식이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영국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전투에서 영국쪽이 승리할 것을 로스차일드 가문은 독자적인 정보망을 통해 정확하게 예측하고 막판에 영국의 전쟁채권을 무더기로 사들인 것이다. 무염씨도 엄청난 동광산을 배경으로 거금을 주조해 경제력을 갖춘 오초 7국과, 황제의 정통성을 장악한 한나라 제후쪽 사이의 전쟁에서 제후쪽에 베팅해 크게 성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승패를 어떻게 맞혔는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천금의 거금을 투자하는 무염씨가 나름대로 확신할 만한 정보와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승패가 예측과 달리 정반대로 갔다면 그는 단순히 천금을 날릴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날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오월이 집권해 황제에 즉위했다면 반대편에 거금을 지원한 무염씨를 그대로 놓아둘 리 없다. 어쨌든 이 판단 하나, 예측 하나로 그는 당시 관중의 부를 장악하고 있던 전씨 일족을 능가할 정도가 된다. 그것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벌어들인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에 나오는 20여명의 부자 가운데 정치에 직접적으로 깊이 관여한 인물이라든가 화식의 방법론이 자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빼면 12명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백규로부터 교요에 이르는 사람들을 분석하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2명 가운데 3명만이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했고 나머지 9명(75%)이 제조업과 유통업(상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12명 가운데 3명 정도가 독점적 성격의 사업을 한 것으로 집계된다. 청이라는 여인이 단사라는 특수물질의 광산을 운영한 것, 나라는 사람이 융 왕에게 비단 선물을 바쳐 다시 거대한 목축지와 많은 가축을 대가로 받아 목장과 사육 가축을 계속 선순환적으로 늘린 것, 그리고 교요가 흉노 땅 점령 뒤 말·소·양·곡식을 특혜로 받은 것 정도가 사실상 독점적 성격의 사업을 한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나의 경우는 그 방식을 다른 사람도 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중간 정도의 독점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전쟁특수를 통해 치부를 한 사람도 3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유씨 황제 경제에 대해 난을 일으킨 오초 7국의 난 때 제후들에게 고리로 전비를 빌려줘 거부를 챙긴 무염씨와, 흉노 평정 뒤 특혜를 받은 교요 그리고 진나라 패망 때 창고 곡식을 숨겼다가 초한대전 때 거금을 움켜쥔 임씨가 그렇다.


한 가지 사업에서 점차 다각화로 진화


유통형 프랜차이즈를 해서 돈을 번 사람이 노예를 이용한 조간 말고도 또 한 사람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사사라는 사람이 바로 장사에 대해 적극적인 주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동원해 수레 이동형 유통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한 가지 기술이나 방식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이 점차 사업 다각화쪽으로 진화해갔다는 점도 눈에 띈다. 공씨의 경우 처음에는 탁씨나 정정처럼 제철을 통해 부를 이룩한 다음에는 큰 못을 만들어 양식업을 하고, 다시 제후들과 사귀며 거액의 거래를 하며 이익을 얻었다. 병씨의 경우 대장장이로 성공한 뒤 그 물건을 내다파는 행상도 겸업하고 나중에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부업에까지 진출한다.



















고대 부자들의 영욕













△ 진시황의 병용. 시황제는 성년남자의 분가와 결혼을 촉진하는 등 경제우대정책을 썼으며, 경제인도 크게 우대했다.



고대의 부자들은 영욕을 항상 함께 먹고 살았다. ‘화식열전’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융왕에게 특혜를 받아 목축으로 크게 일어선 나와, 단사광산의 여주인공 청은 모두 진시황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진시황은 나를 군(君)으로 봉해진 자들과 똑같이 대우해 봄 가을 정해진 때마다 대신, 제후들과 함께 조회에 들게 했다. 일개 목축업자가 황제의 행사에 대신처럼 정기적으로 참례했던 것이다. 청도 진시황으로부터 ‘정조 있는 부인’으로 평가받아 빈객으로 대우받았다. 진시황은 나아가 그를 위해 여회청대(女懷淸臺)를 지었다. 청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모여 담소하고 교류할 수 있는 누각을 지어준 것이다. 유교문화권의 황제와 다른 기개와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당시 오랑캐의 땅으로 평가받던 촉 땅의 한 광산주를 위해 황제가 엄청난 대접을 해준 것이다.

진시황이 이처럼 경제인을 우대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무엇보다 진나라를 부국으로 이끈 경제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나라의 경우 (1)성년남자가 한 집에 2명 이상 있으면서 분가하지 않으면 세금을 배로 물리는 등 경제단위의 증대에 힘썼으며, (2)농업과 양잠에 노력해 곡식과 견사를 많이 생산하는 사람은 일생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국력 증대에 온갖 신상필벌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다. 이런 전통을 진시황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부자들은 동시에 관직에 나서는 것이 오랫동안 막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는 물론 한나라 초기까지 이 전통은 유지됐다.(여불위의 경우는 이런 전통을 깬 것으로 그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아무리 거금을 모아도 상업은 ‘말단의 생업’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이런 억상정책은 한나라 때 농업정책의 실패, 흉노전쟁 등 대외전쟁 확대, 세수 감소 등에 따라 일종의 공개적인 매관매직 정책을 대대적으로 채택하면서 무너진다. 따라서 상인들은 부의 증식을 위해, 신분 안정을 위해 부를 기울여 제후들과 교제하거나 그 뒤를 지원하는 역할을 떠맡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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