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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14 14:41:533205 
廉頗藺相如列傳21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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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본편은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 두 사람을 위주로 조사(趙奢)와 이목(李牧)의 주요 사적을 함께 기록한 합본이다. 염파와 인상여의 고사는 현재도 누구나도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는 언제나 중요한 교육 자료로써 이용되고 있으며, 그 공은 본편을 저술한 사마천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인상여는 사마천이 추앙했던 역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이 때문에 인상여는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걸출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칭송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대지대용(大智大勇) 즉 큰지혜와 큰용기를 칭송하고, 완벽귀조(完璧歸趙)와 민지회맹(澠池會盟)이라는 두 개의 역사적 고사를 통하여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행동으로 강포한 진나라에 대항한 인상여를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또한 강대한 진나라의 위협과 능멸에 굴복하지 않고 기지와 과감한 행동으로 조나라의 위신을 지킨 것을 서술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 먼저 국가의 위급함을 생각하고 개인적인 원한관계는 나중에 생각한다’는 인상여의 고상한 인물됨을 칭송했다. ‘ 염파와 인상여의 우정’에 관한 단락에서는 자기를 능멸하는 염파에 대해 끝까지 인내하며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인상여로 인하여 마침내 염파를 감동시킨 결과 조나라의 대장군과 상국이 서로 화목과 단결을 이루어 적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기술했다. 그후 10 몇 년간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에 대한 대규모의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없게 된 것은 인상여가 주동한 조나라의 국내 사정을 안정시키려고 했던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후에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진나라의 반간계에 걸려 염파를 파면하고 조괄(趙括)을 임용하여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참패함으로 해서 조나라의 국력에 일대 타격을 입은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조왕 천(遷)이 간신 곽개(郭開)를 총애한 결과 명장 이목(李牧)을 죽여 조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것을 기술함으로 해서 후세 사람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주어 반면교사를 삼도록 했다.

염파는 본편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이다. 전국시대 말 명장 중의 한 사람으로 기술한 사마천은 비록 그가 용병에 능한 장군이라고 했지만 그 사적에 대해서는 그렇게 장황하게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염파에 대해서는 ‘ 부형청죄(負荊請罪)’행위에 대해서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것은 혁혁한 전공을 세운 명장의 신분으로 행하기 어려운 미덕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공을 믿고 자만에 빠진 염파는 인상여에게 반감을 품고, 늘상 자기의 협량한 마음을 표현하고 다녔다. 그러나 일단 자기가 잘못했다고 깨닫는 순간 즉시 ‘ 육단부형(肉袒負荊)’을 행하여 인상여에게 달려가 자기의 잘못을 사과한 것은 전장터에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 발휘하는 용기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마천은 염파를 높이 산 것이다. 사마천이 심혈을 기우려 기술한 본편의 이 단락은 천고에 걸친 역사상의 훌륭한 이야기가 되어 ‘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고사성어로 후세 사람들이 상용하는 바가 되었다.

조사(趙奢)나 이목(李牧)은 비록 주요 인물이 아니나, 작자는 그들 각자의 뛰어난 점을 그렸다. 조사의 경우 부세에 능한 세리가 용병에도 능한 점을 그렸고, 이목의 경우는 허명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실적만을 중히 여기는 점만을 묘사하어 독자들이 선명한 인상을 느끼도록 했다. 특히 사마천이 조괄이라는 사람을 기술함으로 해서 일찍이 군사의 일을 탁상공론으로 논한 전형으로 규정하여 후세 사람들이 항상 경계로 삼게 했다.

본편의 구성은 다른 열전 편에 비해 매우 특색이 있다. 70 열전 중 절반 이상이 합전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대부분은 그 주인공을 따로 나누어 몇 개의 인물들이 각기 독립된 문단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본편은 모두 상호 간에 뒤섞여 서로 전후로 연결되어 있다.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염파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두 번걸아 등장하며 어떤 때는 나뉘고 어떤 때는 합쳐지고, 끊어졌다고 다시 이어지곤 한다. 본편의 전문은 단락을 구분할 수 없는 마치 이음자리가 없는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진 천의(天衣)와 같다고 하겠다. 후세의 영웅호걸에 대한 고사를 먼저 기술하고 서로 연결시키는 <수호지(水滸志)>와 같은 기술법은 본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의 구성 방법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전 문백대조전역사기 : 중국 국제문화출판사 간-운영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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