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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국론(六國論)
양승국
 기원전 430년 경 전국시대 정세도.jpg  (372.5K)   download : 23
일반


소철(蘇轍)


내가 일찍이 <사기(史記)> 중 육국세가(六國世家)를 읽고 천하의 제후들이 진(秦)나라의 다섯 배의 땅과 열 배나 되는 군사로 힘써 서쪽을 향해 출병해 효산(殽山) 서쪽 천리의 진나라를 공격했는데, 결과적으로 진나라에 패배한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서, 여섯 나라가 스스로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계책이 있었다고 여겼다. 당시의 모사들이 나라일에 대해 걱정하는 바가 주도면밀하지 못했고, 나라의 이익에 대한 안목이 없었으며, 게다가 천하대세를 알지 못했다고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진나라가 제후들과 천하를 다툰 것은, 본래 제(齊), 초(楚), 연(燕), 조(趙), 등의 나라 땅이 아니라 한(韓)과 위(魏) 두 나라 변경 지역이었다. 한과 위나라 존재는 진나라에게 복심지질(腹心之疾)과 같았다. 한과 위 두 나라가 진나라의 요도를 가로막아 효산 동쪽 제후들을 잘 보호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천하에 한과 위 두 나라 보다 더 중한 곳이 없었다.

옛날에 진나라가 범수(范睢)를 등용하여 한나라를 빼앗고, 상앙(商鞅)을 채용하여 위나라를 멸망시켰다. 진나라 소왕(昭王)이 한과 위 두 나라의 중심부를 점령하지 않은 채 출병하여 제나라 강수(江水) 지방을 공격했는데, 범수가 이것을 걱정했다. 그런 즉 진나라가 꺼리는 바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를 넘고 위나라 건너 다른 나라 국도(國都)를 공격하는데, 연과 조 두 나라가 앞에서 저항하고 한과 위나라가 기회를 엿본다면 위험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진나라가 연과 조나라를 공격하면서도 한과 위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한과 위나라가 진나라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한과 위나라는 제후들의 방호벽과 같은 곳인데, 진나라가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했으니, 이것이 어찌 천하의 대세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힘없는 한과 위나라에게 호랑이와 늑대 같은 진나라를 막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굴복하여 진나라에 투항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한과 위나라가 굴복하여 진나라에 투항한 후에, 진나라는 그 군사를 동쪽 제후들과 통할 수 있게 되어, 모든 천하는 진나라부터 재앙을 받게 되었다.

한과 위 두 나라가 단독으로 진나라를 당해낼 수 없었는데도, 천하 제후들이 이 두 나라에 의지하여 그들의 서쪽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므로 한과 위 두 나라를 가까이 하고 후하게 대해, 그들로 하여금 진나라를 막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랬더라면 진나라가 감히 한과 위나라를 넘어 제(齊), 초(楚), 연(燕), 조(趙) 등의 네 나라를 엿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 결과 그들도 안전을 확보했을 것이다. 외환(外患)이 없었던 네 나라가 원수인 진(秦)에 인접한 한과 위나라를 도와 동쪽을 돌아볼 근심을 없게 하여, 천하를 위해 나서서 진나라 군대를 막게 했어야 했다. 한과 뒤 두 나라에게 진나라를 맡도록 하고 제초연조(齊楚燕趙) 네 나라는 국내에서 편히 있으면서 위급할 때는 은밀히 도와주어야 했다. 이렇게 했더라면 진나라에 대처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했을 터이니, 저 진나라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계약도 모르고 국경의 조그마한 이익만을 탐내어 맹약을 저버리다가 서로 도살하고 말았다. 진나라 군대가 출병하기 전에, 천하 제후들은 이미 스스로 곤궁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진나라 군사가 기회를 엿보아 나라를 취하게 했으니 이 어찌 비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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