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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21 16:08:053796 
고조본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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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 항우는 포학하였으나 한왕 유방(劉邦)은 공을 세우고 덕을 베풀었으며 촉한(蜀漢)1) 땅에서 분발하여 관중으로 나와 삼진(三秦)1)을 평정하고 항우를 죽이고 제업을 이루자 천하는 비로소 안정되었고 엄혹한 진나라의 법제를 고치고 백성들의 풍속을 바꾸었다. 이에 고조본기(高祖本紀) 제8을 지었다.”라고 했다. 사마천이 본 편을 저술한 기본 정신인 것이다. 확실히 고조본기는 유방(劉邦)이 항우에게 어떻게 싸움에서 승리를 취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한나라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 중점을 두어 묘사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제국의 창건자 유방이 통일천하의 위업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행한 중요한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서술했다.


★1)촉한(蜀漢)/ 지금의 한중(漢中)을 말함. 한고조 유방은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에 의해 한중왕(漢中王)에 봉해졌다.

★1)삼진(三秦)/ 항우가 진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옹(雍), 색(塞), 적(翟) 등으로 삼분하여 다스렸다. 함양 이서의 섬서성과 감숙성 동부는 장한(章邯)에게 맡겨 옹왕(雍王)에, 함양 이동지역은 사마흔(司馬欣)에 맡겨 색왕(塞王)에, 섬서성 북쪽은 동예(董예)에 맡겨 책왕(翟王)에 봉했다. 후에 한신의 전격작전에 의해 삼진은 모두 한왕의 소유가 되어 후에 항우와의 결전에서 유방의 후방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사마천은 두 사람을 확실하고, 강열하게 대비시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방법은 사마천이 선명하고 강렬한 대비의 수법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항우와 유방이 군사들을 이끌고 두 대로 나뉘어 관중으로 들어가 진나라를 공격할 때, 항우군의 행동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이윽고 반진군의 대장 송의(宋義)를 살해한 항우(項羽)는 스스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경포(黥布) 등 여러 장수들을 부하로 삼아 진장 왕리(王離)와 그 군사들을 물리치고, 장한(章邯)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반진군의 영수가 될 수 있었다.”

사마천(司馬遷)이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항우(項羽)의 경우 단순한 군사 방면의 성공인데 비해, 유방을 묘사할 때는 그의 군사적인 책략 외에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 유방은 그 군대가 이르는 곳은 어디나 노략질을 금하게 했다.”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기뻐함으로 해서 진군은 스스로 와해되어 싸움에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라고 써서 대비시킴으로 해서 유방(劉邦), 항우(項羽) 및 각 제후들이 행한 책략을 예로 들었다.

항우의 경우, 휘하의 장수가 스스로 제후왕을 지칭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기 위해 출동했으나, 유방의 경우는 한신이 제나라의 가왕(假王)으로 임명해 달라고 청할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직접 출전하여 한신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장량의 깨우침을 받고 바로 태도를 바꾸어 오히려 장량에게 가왕 대신에 정식으로 제왕(齊王)의 인과 인끈을 주어 파견하여 한신을 제왕으로 임명했다. 진나라가 무너진 틈을 타서 일어난 군웅들이 천하를 놓고 다투는 형세 하에서 다른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연합한 것은 유방이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난 점이다. 본 고조본기는 유방이 천하를 안정시킨 후 공신들에게 말해 후에 인구에 회자(膾炙)된 그의 용인술을 특별히 기재했다.

“ 무릇 군영의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하여 천리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위무하며, 군량을 준비하여 그 공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蕭何)보다 못하고, 백만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항상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는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인중호걸들이라고 할 수 있소.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세 사람을 능히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인 것이오. 항우는 그나마 있었던 범증(范曾) 한 사람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사로잡히게 된 것이오.”

이 말도 유방과 항우의 용인술에 대해 비교한 것이다. 항우는 고집불통으로 남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임에 반해 유방은 마음이 겸허해서 인재를 잘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쓸 줄 알았다. 이와 같은 수많은 대비를 통해 그 의미가 확연히 들어 나도록 함으로 해서 결국은 초한쟁패의 필연적인 귀결을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다.

“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옳지 않은 행동을 숨기지 않는다(不虛美, 不隱惡).”라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실록’ 정신”은 바로 사기 전편을 꿰뚫고 있는 기본원칙인 것이다. 그러나 본편은 유방의 성공에 중점을 둠으로 해서, 그의 인품과 기타 방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그의 교활하고 사기성 있는 행동, 거짓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며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한 것과 같은 행동 등은 사기의 다른 편에서 서로 번갈아 가며 표현했으나 본편에서는 적극적으로 많이 기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편도 상세히 읽다보면 희귀하지만 그런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조가 정장(亭長)의 신분이었을 때 한 노인이 고조의 모든 식구들에게 관상을 봤다. 고조의 관상을 본 노인이 “ 당신의 관상은 너무 귀해 말로 다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고조는 너무 기뻐 감격하며 “ 진실로 노인의 말처럼 귀하게 된다면, 이 은덕을 잊지 않겠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 말 뒤에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더 써넣었다. “ 이어서 고조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때는 그 노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 이 한 구절은 비록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사마천은 고조에 대해 포폄(褒貶)을 행한 것이다.

<고조본기(高祖本紀)>는 그 구성상에도 특색이 있다. 이경성(李景星)은 그의 저서 <사기논문(史記論文)>에서 “ <항우본기(項羽本紀)>는 사건 하나마다 단락을 이루고 그것을 모두 합하면 훌륭한 한 편이 되나, <고조본기(高祖本紀)> 안의 모든 이야기는 어수선하고 연결성이 없어 각기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연한 것 같으면서도 어지러워 보이고, 어지러운 것 같으면서 정연하여 결코 밖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하며 사마천의 절묘한 서술 방법을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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