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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22 22:27:524067 
소동파의 범증론(范增論)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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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한(漢)나라에서 진평(陳平)의 계략을 써서 초(楚)나라의 군신을 이간시켜 소원하게 만들었다. 항우(項羽)는 범증이 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을 품고, 그 권한을 빼앗았다. 이에 범증이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 천하의 일은 대체로 결정되었습니다. 임금께서 손수 일을 해보십시오. 저는 벼슬을 그만두고 평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팽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나 소식이 말한다.

“ 범증이 떠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떠나지 않았더라면, 항우가 반드시 그를 죽였을 것이다. 다만 그가 일찍 항우를 떠나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

그렇다면 무슨 사건을 계기로 떠냐야 했는가? 범증이 항우에게 패공(沛公)을 죽일 것을 권했는데, 항우가 듣지 아니하여 이로 인해 천하를 잃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떠냐야 했는가? 아니다. 범증이 패공을 죽이려 한 것은 신하로써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이며, 항우가 패공을 죽이지 않은 것도 군주된 자로써의 도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증이 어찌 이 일로 떠날 수 있었겠는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일의 기미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하늘뿐이다.’라고 했으며 <시경(詩經)>에서는 ‘눈이 내리려고 할 때 먼저 조그마한 눈싸라기가 모인다.’ 라고 했다. 항우가 경자관군(卿子冠軍)을 죽였을 때 범증이 떠나야 했다.

진섭(陳涉)이 민심을 얻은 것은 항연(項燕) 때문이고 항우가 흥성할 수 있었던 것은 초나라 회왕(懷王)의 손자인 웅심(熊心)을 옹립했기 때문이며 제후들이 항우를 배반한 것은 항우가 의제(義帝)를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의제가 왕위에 오른 것은 범증의 계책에 의해서였다. 의제의 존망이 초나라의 성쇠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범증의 화복(禍福)도 관련된 것이었다. 의제가 죽고난 후에도, 범증이 오래 무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항우가 경자관군을 살해한 것은 의제를 죽일 조짐이고, 의제를 죽인 것은 범증의 근본을 의심한 것이다. 어찌 진평의 이간책 때문만이었겠는가? 먼저 물건이 푸패한 후에 벌레가 생기고, 먼저 의심한 후에 다른 사람의 참소하는 말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진평이 비록 지혜롭기는 했지만, 어찌 의심하지 않는 군주를 이간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일찍이 의제를 천하의 현명한 군주라고 논했었다. 그는 패공만을 관중에 들어가게 하고 항우는 보내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경자관군의 재주를 알아보고 상장으로 삼았다. 현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항우가 거짓으로 영을 내려 경자관군을 죽였으니, 의제는 분명히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항우가 의제를 죽이지 않으면 의제가 항우를 죽이리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처음에 범증이 항량(項梁)에게 권하여 의제를 옹립하자 제후들이 모두 복종했다. 중간에 의제를 죽인 것은 범증의 뜻이 아니었다. 그의 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죽이지 말도록 다투면서 옹립한 의제를 죽였다. 항우가 범증을 의심한 것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항우가 경자관군을 죽일 때 범증은 항우와 대등한 지위에서 의제를 섬겼고, 아직 군신의 신분이 정해지지 않았다. 범증의 역량이 항우를 죽일 수 있을 정도면 그를 죽이고, 죽일 수 없으면 그를 떠나가는 것이 의연한 대장부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범증이 나이 이미 일흔이었다. 뜻이 맞으면 머물러 있고 맞지 않으면 떠났어야 했는데, 거취의 명분을 분명히 하지 않고 항우에 의존하여 공명을 이루려 했으니, 비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비록 그렇지만 범증은 한고조가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었다. 범증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항우는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가지 결점이 있었기는 하지만 어쨋든 범증 역시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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