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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0:585095 
합려의 딸
양승국
일반

합려의 딸


합려(闔閭)라는 사람은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에 나오는 주연 배우 중 한 사람입니다. 오나라는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시를 근거로한 당시로는 후진국에 속했습니다. 소주시는 태호를 끼고 있는 호반 도시이며 상해에서 버스로 3-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초나라의 서울인 영성은 지금의 호북성 형주시에 있습니다. 소주시에서 형주시까지의 거리는 약 1500키로 정도 될 것입니다.


오왕 합려는 오자서(伍子胥)의 도움으로 사촌 동생인 왕료를 암살하고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리고 오자서와 손무(손자)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호북성 형주시에 있었던 초나라의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오나라가 초나라의 도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이라크 같은 나라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점령하여 쑥밭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초나라는 기원전 900년 경에 건국하여 그때 당시에는 중국 전체 면적의 근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갖고 있었던 초강대국이었으며 합려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 동안 한 번도 그 서울이 공격당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오자서와 손무의 도움으로 합려가 점령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200여년 후에 사천성의 물자와 병력을 동원하여 장강의 수로를 이용한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에 의해 침략당할 때까지 외적의 침입이 없었습니다. 초나라는 백기에 의해 호북성 형주시에서 쫓겨 하남성 진성으로, 다시 안휘성 수현으로 옮겨 결국은 기원전 223년 진나라의 장군 왕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오자서와 합려가 활약했던 시기는 기원전 520년부터 500년에 걸친 20여년의 기간입니다.


중국은 합려, 부차, 그리고 월나라의 구천이 활약했던 오월동주의 시대로 춘추시대가 끝나고, 바로 전국시대로 접어듭니다.


와신상담의 주인공 부차는 합려의 손자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합려의 무자비하고 포악한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잔악함은 그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왕 합려에게는 승옥(勝玉)이라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는데 궁궐 안에서 잔치상에 요리사가 생선을 쪄서 합려에게 바쳤다. 합려가 그 생선을 절반을 먹다가 맛이 있어 절반을 남겨 승옥에게 보내어 먹도록 했다. 승옥이 그의 부왕이 먹다 남은 음식을 자기에게 먹으라고 보내자 화가 나서 말했다.


“ 왕이 먹다 남은 생선을 나에게 보내어 나를 욕보이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승옥이 자리에서 물러나 침실로 들어가서 목을 매어 죽었다. 합려가 매우 슬퍼하여 그의 시신을 거두어 그 상을 성대하게 치르고 오도(吳都)의 서쪽 창문(閶門) 밖에 토목 공사를 벌려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었다. 그 흙을 판 자리는 큰 호수가 되었는데 오늘날 소주시 교외의 여분호(女墳湖)란 호수가 되었다. 합려는 자기의 사랑하던 딸을 위해 화려한 무늬가 있는 돌을 깎아 관을 만들고 , 금으로 만든 발이 셋 달린 솥(金鼎), 옥으로 깎아 만든 술잔, 은으로 만든 술단지, 주옥이 달린 저고리 등 오나라 부고에 있던 재화의 거의 절반과 또한 명검 반영(磐郢)을 같이 묻어 주었다. 다시 백학(白鶴)을 시켜 오나라 시정에서 춤을 추게 한 후에 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에게 령을 내려 구경을 하게 하였다. 구경을 마친 백성들에게 다시 명을 내려 굴속으로 들어가 승옥의 장례를 전송하게 하였다. 그러나 굴속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 백성들이 모두 그 속으로 들어가자 기관이 즉시 발동하기 시작하여 문이 닫히며 사람들은 모두 흙더미에 묻혀 굴속으로 들어간 만 명의 백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숨을 잃었다. 죄 없는 백성들을 생매장한 합려가 말했다.


“ 내 딸을 위해 만 명의 백성들을 같이 묻어 주었으니 저승에 가서라도 쓸쓸하지는 않으리라!”


지금도 오나라 지방에서 장사 지낼 때 초상집의 정자나 집 위에 백학을 만들어 메달아 놓는 습속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일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고한 백성들을 무수히 죽여 자기 딸의 죽음을 전송했으니 합려야말로 극악무도한 사람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일을 논했다.


三良旬葬共非秦(삼량순장공비진)

섬진의 삼량(三良)을 순장했음에도

세상의 공론은 진목공(秦穆公)을 비난했는데


鶴市何當殺萬人(학시하당살만인)

시정에서 춤추는 학을 이용하여

만 명의 백성을 죽였으니 이것이 웬 말인가?


不待夫差方暴骨(부대부차방폭골)

부차가 나와서 오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말하지 말라!


闔閭今日已无民(합려금일이무민)

그날 합려가 이미 나라의 백성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삼량(三良)

진목공이 죽을 때 진나라의 조정 대소 신료 170명을 순장시켰다. 그 중 차씨 삼형제가 같이 묻혔는데 진나라 백성들이 그 일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황조가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시경 국풍 중 진풍에 실려 있는 황조가는 차씨 삼형제가 순장 당했을 때의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 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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