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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3 11:15:295907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하
운영자
일반


문공은 즉시 해장을 하대부의 벼슬에 임명하고는 그날로 해장을 앞세워 어가를 움직여 친히 면상산(綿上山)으로 가서 개자추가 사는 곳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문공의 일행이 면상산에 당도하자 첩첩한 산 봉오리들은 연이어 솟아 있었고 온갖 풀과 나무들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하늘에는 조각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으며 나무들 위에 앉은 새들이 울어대자 산골짜기에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렸다. 문공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아무리 애써 찾았지만 개자추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 산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구름이 너무 깊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노라!’라는 시구와 같았다. 주위의 농부들을 불러오게 하여 문공이 친히 묻자 농부들이 말했다.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도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뜻의 訪道子不遇(방도자불우)라는 제목의 시 중에 나오는 글귀로서 당나라 중기 때 문인(文人) 가도(賈島)라는 사람의 작품이다. 원래 중의 신분으로 그 법호를 무본(無本)이라고 하다가 당대의 문호 한유(韓愈)에게 인정받아 환속(還俗)하여 지은 이름이 가도(賈島)이다. 그가 <僧鼓月下門(승고월하문)>이라는 문구를 놓고 고심하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한유(韓愈)에게 물어 한유로 하여금 퇴고(推敲)라는 말로 고심케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방도자불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동자가 대답하기를 ‘스승은 약초 캐러 나가시어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중에 계실 것이나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이 하도 깊어 있는 곳을 모르겠다고’







주위의 농부들을 불러오게 하여 문공이 친히 묻자 농부들이 말했다.

“ 얼마 전에 한 사람의 남자가 등 뒤에 늙은 노파 한사람을 업고 와서는 땅에 내려놓고 이 산 아래에서 쉬면서 물을 마시더니 다시 등에 업고서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문공이 어가를 산밑에 멈추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산 속을 뒤지게 하였으나 몇 일이 지나도 도저히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공이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띄고 해장에게 말했다.

“ 개자추가 어찌 나에게 이렇듯 한을 심하게 품고 있는가? 내가 듣기에 개자추는 효자라서 만일 산에 불을 놓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모친을 등에 업고 산 속에서 나올 것이다!”

위주(魏犨)가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 옛날에 천하를 유랑할 때 개자추 한 사람만이 공을 세운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그 한 사람만을 갖고 이렇듯 번거롭게 하십니까? 오늘 개자추가 주군으로 하여금 어가를 몇 일간이나 머물게 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습니다. 만일에 그가 불을 피해 산 속에서 나온다면 신이 마땅히 그에게 수치를 알게 해주겠습니다.”

이어서 위주가 군사들을 시켜 산의 앞뒤에서 불을 놓자 화기는 바람을 맹렬히 타고 하늘로 치솟고 불길은 몇 리를 뻗쳤다. 불길은 삼일만에 꺼졌으나 개자추는 끝내 산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공이 군사들을 시켜 그들의 행방을 찾게 하였다. 이윽고 군사들은 불에 탄 버드나무 밑에서 두 모자가 서로 껴안고서 타죽어 있는 시신을 발견하였다. 군사들이 두 모자의 해골을 거두어 문공에게 가져와 바쳤다. 문공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문공이 좌우에게 명하여 면상산(綿上山) 밑에 사당(祠堂)을 짓고 제사를 지내 주도록 했다. 면상산 주위의 땅에서 나오는 세수(稅收)를 모두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부근에 살던 농부들에게 명하여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관하도록 했다. 문공이 다시 좌우에게 명하였다.

“ 면상산을 지금부터 개자추의 성을 따라 개산(介山)이라 불러라! 이것은 내가 개자추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를 빌고자 함이다.”

후세에 이르러 면상산이 있는 땅에 현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개휴현(介休縣)이라 했다. 그 것은 개자추가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뜻이었다. 산을 태운 날이 삼월 오일 청명절(淸明節)이었다.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은 것을 추모하여 불을 지피지 않고 익히지 않은 찬 음식을 한달 동안 먹었는데 후에 날짜를 줄여 삼 일로 했다. 지금도 태원(太原), 상당(上堂), 서하(西河), 응문(應門)등의 지방에서는 매년 동지 이후 105일 동안 마른 음식을 준비하여 냉수에 타서 먹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불을 피우는 것도 금하고 또한 연기 피우는 것도 금하고 있다. 청명절 하루 전날을 한식절(寒食節)이라고 하고 그 때가 되면 집집마다 대문 앞에 버들가지를 꽂아 놓고 이것으로써 개자추의 혼을 부르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편 들판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세워 종이돈을 태우는 풍습은 모두가 개자추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호증선생이 시를 지어 개자추의 고고함을 노래했다.




羈紲從遊十九年(기세종유십구년)

말의 재갈과 고삐를 붙잡고

천하를 유랑하기를 장장 19년인데




天涯奔走備顚連(천애분주비전련)

천하에 의지 할 곳이 없는 외로운 임금을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모셨다.




食君刳股心何赤(식군고고심하적)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임금에게 먹였으니

어찌 그 마음이 지극하다 하지 않겠는가?




辭祿焚軀志甚堅(사록분구지심견)

녹봉을 사양하고 산에 들어가 몸을 불태웠으니

그 뜻이 심히 굳다고 하겠다.







綿上烟高標氣節(면상연고표기절)

면상산의 하늘 높이 나는 연기는

그 높디높은 절개를 말하는 것이고




介山祠壯表忠賢(개산사장표충현)

장한 개산사의 모습은 그 충성스럽고

어진 마음의 표시이리라!




只今禁火悲寒食(지금금화비한식)

오늘에 이르러서도 때가 되면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개자추를 슬퍼하는 것은




勝却年年掛紙錢(승각연년괘지전)

해마다 종이돈을 태워

복을 비는 것보다는 뜻있는 일일 것이다.




-개자추 끝-


張德田
07-06-07 09:18 
삼가 운영자님의 행운을 빕니다. 개자추 관계 글을 퍼다가 소생의 블로그에 올리겠음을 海量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생의 블로그는 동양학문을 좀더 저변확대하는데 노력하는 사이트입니다.물론 귀 URL도 밝혀드리겠읍니다.
귀 사이트의 더욱더 많은 발전과 운영자님의 건승을 합장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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