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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1:184408 
제환공과 삼흉(三兇)
양승국
일반

춘추오패 중 제일로 치는 제환공(齊桓公 : 재위 기원전 685- 643년)에게는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라는 신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수조(竪貂), 이아(易牙), 개방(開方) 등의 삼흉이라 칭했던 측근이 있었다.



그때 수초는 환공의 수발을 드는 동자였었다. 그는 내정(內庭)에서 환공을 가까이 모시기 위하여 밖에서 왕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스스로 거세한 후 내궁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환공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더욱 총애하고 믿어 자기 곁에 잠시도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또 제나라의 옹읍(雍邑)에 무(巫)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을 옹무(雍巫)라 부르고 자를 이아(易牙)라고 불렀다. 위인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활을 잘 쏘았다. 또한 음식을 삶아서 조리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하루는 제환공의 부인인 위희(衛姬)가 병이 났다. 이아(易牙)가 오미채(五味菜)를 요리하여 바치자 위희가 먹고 병이 낫게 되었다. 그래서 이아를 좋아하게 되어 곁에다 두고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이아는 또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수초(竪貂)에게 바쳐 아첨을 하였다. 수초(竪貂)가 이아(易牙)를 환공에게 추천하였다. 환공이 이아를 불러서 물었다.

" 나는 네가 요리를 잘한다고 들었다. "

이아 " 그렇습니다. "

환공 " 과인은 날짐승, 네발 달린 짐승과, 버리지 종류와 그리고 물고기 등 모든 요리를 다 먹어 봤으나 아직 사람의 것은 먹어보지 못하여 그 맛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

이아가 물러 나와 점심때에 요리를 해서 찐 고기 한 접시를 갖다 바쳤다. 그 고기는 젖먹이 양고기보다 연하고 그 맛은 감미롭기가 그지없었다. 제환공이 다 먹고 난 다음 이아(易牙)에게 물었다.

" 무슨 고기인데 이렇듯 맛이 있는가?"

이아 " 그 고기는 사람의 고기입니다. ":

환공이 놀라 물었다.

" 사람의 고기를 어떻게 얻었는가?"

이아 " 세살 난 신의 큰아들의 고기입니다. 신은 ' 임금에게 충성된 자는 그 집안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군께서 아직 사람의 고기 맛을 못 보셨다고 하시어 신은 아들을 죽여 요리를 한 후 바치게 된 것입니다. "

환공 " 그만 물러가도록 하라 "

제환공은 이아(易牙)도 좋아하게 되어 역시 믿고 총애하게 되었다. 또한 위희(衛姬)도 자기의 병이 나은 이후로는 이아(易牙)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때부터 수초와 이아가 안팎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되어 마음속으로 관중(管仲)을 시기하게 되었다.


관중이 병이 나서 자리에 눕자 제환공이 친히 병 문안을 왔다. 관중의 신색이 파리하게 여위었음을 본 환공은 관중의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 중보의 병이 매우 중한 것 같습니다. 불행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과인은 장차 누구에게 정사를 맡겨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그때는 이미 영척(寧戚)과 빈수무(賓須无)가 세상을 뜬 후였다. 관중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 영척이 먼저 죽어 진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

환공 " 죽은 영척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떻습니까? 내가 포숙아를 중보의 후임으로 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


관중 " 포숙아라는 사람은 군자라 정사를 맡기면 안됩니다. 그는 사람됨이 좋고 나쁜 것이 분명하여 무릇 좋은 것은 한없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또한 무조건 배척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정사를 감당하겠습니까? 포숙아는 사람의 나쁜 면을 일단 한번 보면 평생토록 잊지 못하여 그것이 그 사람의 가장 나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공 " 그렇다면 습붕은 어떻습니까?"


관중 " 습붕(隰朋)이라면 가할 것입니다. 습붕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의 집에 있을 때에도 공사를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관중이 말을 마치고 한탄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하늘이 습붕을 낳게 하여 이오를 위하여 그 혀 노릇을 하였습니다. 신이 죽는데 어찌 혓바닥만이 홀로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습붕을 오래도록 쓰시지는 못할 것입니다."

환공 " 그렇다면 이아(易牙)는 어떻습니까?"

관중 " 주군께서 하문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아(易牙), 수초(竪貂), 개방(開方) 이 세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환공 " 이아는 그의 자식을 삶아 요리를 하여 나의 입맛을 돋구었습니다. 그는 나를 그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그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관중 " 사람의 갖고 있는 정 중에는 자식 사랑만큼 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 자식에게 그처럼 잔인하게 했는데 하물며 주군에게 인들 어찌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환공 " 또한 수초(竪貂)는 궁궐 안으로 드나들기 번거롭다고 자기스스로를 거세하여 나의 곁에서 있으면서 지성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관중 " 사람의 가지고 있는 정 중에 자기 몸에 대한 사상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그 자신의 몸에 대해 그렇게도 잔인하게 대했는데 어찌하여 주군에겐들 잔인하게 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환공 " 개방(開方)은 위(衛)나라의 공자입니다. 그는 천승국(千乘國)의 태자였는데 그 자리를 마다하고 신하가 되어 나를 섬기고 있어 과인의 총애를 받는 것을 그의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부모가 죽었음에도 가서 조상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과인을 자기 부모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더 이상 의심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중 " 사람의 정 중에는 자기의 부모만큼 친한 것이 없습니다. 그 부모에게조차 잔인한 사람이니 어찌 주군에게 인들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천승국의 군주가 되는 것은 사람이 바라는 것으로써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승국의 군주자리를 버리고 주군을 따랐으니 그의 바라는 바는 천승국보다 훨씬 큰나라이오니 주군께서는 반드시 가까이 두시면 안될 것입니다. 가까이 두신다면 틀림없이 나라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환공 " 이 세 사람은 나를 받든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중보께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평소에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다가 지금에서야 멀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관중 " 신이 평소에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은 주군이 그 세 사람을 좋아하시어 주군의 기쁨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이것을 물에 비유한다면 신은 주군을 위한 제방 역할을 하여 물이 마르거나 넘치게 하지 않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방이 무너지려고 하니 장차 물이 옆구리로 새어 흐르는 물이 환난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옵서는 부디 그 세 사람을 멀리하시어 앞으로의 일에 낭패를 당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말에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않고 물러 나와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일 후에 관중이 세상을 떠났다. 제환공은 습붕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관중의 후임으로 삼았다. 그러나 관중의 예언대로 습붕도 얼마 안 있어 병으로 죽고 말았다.


제환공이 다시 포숙아를 불러 습붕의 뒤를 이어 제나라의 정사를 맡도록 했으나 포숙아가 고사하였다. 환공이 말했다.

" 현재 조당을 통틀어 경 만한 사람이 없는데 경이 불가하다면 따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포숙아 " 신은 선한 것만을 좋아하며 악한 것은 싫어하여 호오(好惡)가 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주군께서 저를 꼭 쓰시겠다고 하신다면 이아(易牙), 수조(竪刁)와 개방(開方)을 멀리 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신다면 제가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환공 " 중보가 당부한 말인데 어찌 내가 경의 말을 따르지 않겠 습니까?"

당일로 세 사람을 파직하여 쫓아낸 후 다시는 궁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포숙아가 이어서 환공의 명을 받아 제나라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때 회이(淮夷)가 기(杞)국을 침범하자 기국의 사신이 달려와 사태의 위급함을 제나라에 고했다. 제환공이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 등의 칠국의 군사들을 소집하여 친히 원정하여 기(杞)나라를 구한 후 그 도성을 연릉(緣陵)으로 옮겨주었다. 각국의 제후들이 변함없이 제후의 영을 받든 것은 포숙아를 임용하고 관중이 지난날에 만들어 놓은 정령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환공은 포숙아에게 정사를 위임하고 관중의 유언을 따라 수조(竪刁), 옹무(雍巫) 및 개방(開方) 세 사람을 궁중에서 쫓아냈지만 먹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밤중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여 입에서는 즐거운 말이 나오지 않고 얼굴에는 웃음을 짓지 않았다. 장위희(長衛姬)가 보다 못하여 환공에게 말했다.

" 주군께서 수조(竪刁) 등을 내치신 후에는 국정도 돌보시지 않으시고 용안(龍顔)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 지시고 있습니다. 좌우에 모시고 있는 시자(侍子)들이 주군의 뜻을 잘 살피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그들을 불러 시중을 들라 하시지 않으십니까?"

환공 " 과인 역시 그 세 사람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단지 이미 쫓아낸 그들을 다시 부른다는 것은 포숙아의 뜻을 거슬리게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요."

장위희 " 포숙아인들 좌우에 시자(侍者)를 어찌 데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주군께서는 이미 연로하셨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이렇듯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주군께서는 단지 입맛을 돋구는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시면서 먼저 이아(易牙)를 불러들이십시오. 그리 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자연히 이아를 따라 왕래를 하게 될 것 입이다. 공연히 개방과 수조를 한꺼번에 불러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환공이 장위희(長衛姬)의 말을 쫓아 옹무(雍巫)를 들어오게 하여 요리를 하여 바치게 했다. 포숙아가 들어와서 간했다.

" 주군께서는 벌써 중부의 유언을 잊으셨으니까? 어찌하여 옹무(雍巫)를 불러 들이셨습니까?"

환공 " 그 세 사람은 나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나라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중부의 유언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환공은 끝내 포숙아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개방과 수조마저도 같이 불러 들어오게 하였다. 삼 인이 동시에 환공의 부름을 받고 옛날의 직위를 다시 찾은 후에 환공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포숙아는 환공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세 사람을 다시 궁중에 불러 들여 곁에 두자 화를 참지 못하고 병이 나서 죽어 버렸다. 제나라는 이때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이제는 거리낄 사람이 아무도 없고 환공은 80이 넘어 무능해지자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에게 복종하는 자는 모두 귀하거나 부자가 되고 그들을 거슬리면 죽거나 쫓겨나게 되었다.


환공이 비록 당대의 영주였으나 그가 수십 년 간 모든 제후들을 거느리면서 패자의 지위에 있어 항상 자기 스스로 만족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칼도 오래 쓰면 날이 무디어 지고 나이가 들면 총기가 흐려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그는 또한 주색에 지나치게 탐닉하여 마음을 맑게 갖고 있지 못하고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그의 나이가 이미 80이 넘어 몸은 더욱 쇠약해지고 마음은 자연히 혼미해져 게으르게 되었다. 더욱이 관중이 죽을 때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 세 사람을 불러 다시 측근에 두어 환공의 이목을 가렸고 단지 즐거운 것만 알았지 근심스러운 것은 알지 못하고 충성스러운 말에는 귀를 안 기울 리고 참언만을 쫓았다. 다섯 명의 공자들이 각기 자기의 모친을 동원하여 환공에게 태자의 자리를 구하게 하였으나 환공은 단지 애매한 대답을 할 뿐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 사람은 먼 앞날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그 근심거리는 반듯이 가까운 곳에서 맞게 된다'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환공이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옹무는 편작(扁鵲)이 와서 보지도 않고 다른 나라로 가버린 것을 보고 환공의 병은 낫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시 수조와 상의하여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었는데 환공의 명령인 것처럼 꾸며 현판에 글을 써서 궁문 앞에 걸었다.

" 과인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해 지는 정충(怔忡)이라는 병에 걸려서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되면 병이 악화된다고 하니 군신이나 공자 및 부인 등 누구를 막론하고 나를 보러 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일체 불허한다. 사인 수초(竪貂)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궁문을 엄중히 지키고 옹무는 갑병을 이끌고 궁궐 주위의 순라(巡邏)를 돌기 바란다. 모든 국정은 과인의 병이 낳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올리도록 하라."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환공의 명을 가장하여 현판을 궁문에 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켰다. 유독 공자 무휴(無虧)만은 장위희가 살고 있는 궁실에 머물게 하였다. 다른 공자들은 아무도 들어와서 환공에게 문안을 올리지 못 하도록 막았다. 삼일이 지나도 환공이 죽지 않자 옹무와 수조가 환공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남녀불문하고 모두 쫓아내고는 궁문을 모두 폐쇄시켜 버렸다. 또한 침실 주변은 담장을 삼 장 높이로 싸서 외부로부터 격리시켜 바람 한 점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단지 담장 밑에 마치 개구멍처럼 한 개의 통로를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나이 어린 조그만 내시로 하여금 기어 들어가게 해서 환공이 죽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궁궐의 병사들을 정돈하여 여러 공자들이 일으킬지 모르는 내란에 방비하게 하였다.

한편 제환공이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서 심부름하는 시종들을 불렀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그런 상태로 몇 일이 지나자 환공의 두 눈에서는 빛이 사라지더니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마치 위에서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창문을 밀고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환공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들어온 사람은 곧 비천한 신분의 안아아(晏蛾兒)였다. 환공이 안아아 임을 알아보고 말했다.

“ 내가 배가 매우 고프다. 미음을 한 그릇 먹을 수 없겠느냐?”

안아아 “ 아무 데에서도 미음을 구할 수 없습니다.”

환공 “ 그렇다면 뜨거운 물이라도 한잔 마시어 갈증을 풀고 싶구나!”

안아아 “ 뜨거운 물 역시 구할 수가 없습니다.”

환공 “ 어째서 구할 수 없다고 하느냐?”

안아아 “ 이아와 수조가 란을 일으켜 궁문을 지키고 폐하가 누워 계신 곳은 삼 장 높이의 담을 쌓아 바깥 세상과 격리를 시키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음식인들 어떻게 들여 올 수 있겠습니까?”

환공 “ 그러는 너는 어떻게 들어 올 수 있었느냐?”

안아아 “ 천첩은 옛날에 한번 주공의 은총을 입은 바 있어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 와서 주공의 명복을 빌러 왔습니다.”

환공 “ 태자 소(昭)는 어디 있느냐?”

안아아 “ 이아와 수조가 막아 입궁을 못하고 있습니다. ”

환공이 한탄하며 말했다.

“ 중보야말로 성인이로구나! 성인의 말씀하신 것이 이렇듯 불원간에 이루어지는 구나! 내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내가 불명한 탓이니 어찌 남을 원망할 수 있으랴!”

이어서 분기탱천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 하늘이여! 하늘이여! 소백이 어찌하여 이렇듯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환공은 계속해서 몇 번 더 부르짖더니 입에서 피를 한웅큼 토해 내고 나서 안아아(晏我兒)에게 말했다.

“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부인이 여섯이나 있고 자식은 십여 명에 달하고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한 사람도 내 앞에 없구나! 다만 아아(蛾兒) 너 한 사람만이 나의 임종을 지켜 주는구나! 평소에 너를 후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심히 후회되는구나!”

안아아 “ 주공께서는 부디 몸을 보중하옵소서! 만일에 주공께서 돌아가신다면 제가 죽음으로써 황천에 가시는 길에 동행하여 드리겠습니다. ”

환공 “ 내가 만약 죽어서 아무 것도 모른다면 그것으로 되겠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 있던 일을 기억하게 된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관중(管仲)을 볼 수 있겠는가?”

곧이어 옷소매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는 연속해서 한탄만을 하더니만 숨이 끊어 졌다. 제환공은 주장왕 12년 원전 685년 여름 5월에 즉위하여 주양왕 9년 즉 기원전 643년 겨울 10월에 죽었으니 모두 합하여 43년간을 재위에 있었다. 제환공(齊桓公)이 행한 훌륭한 일만을 읊은 잠연(潛淵) 선생의 시가 있다.


姬轍東遷綱紀亡(회철동천강기망)

희성의 주나라가 동쪽으로 나라를 옮겨 천하의 기강이 허물어 지자


首倡列國共尊王(수창열국공존왕)

열국의 제후들을 이끌어 주왕실을 섬겼다.


南征僭楚包茅貢(남정참초포모공)

왕호를 참칭하는 초국을 남정하여

포모를 바치게 하고


北啓頑戎朔漠疆(북계완융삭막강)

북쪽의 흉악한 오랑캐를 제압하여

강토를 사막까지 넓히게 하였으며


立衛存邢仁德著(입위존형인덕저)

망한 위나라는 다시 세워 주고 형나라는 지켜 주어 인과 덕으로 세상을 밝혔고


定儲明禁義聲揚(정저명금의성양)

주나라 세자를 바꾸지 못하게 하고 오금1)의 법도를 밝혀 천하에 의를 높이게 하였다.


정저(定儲)/주혜왕(周惠王)이 세자 정(鄭)을 폐하고 그의 동생인 태숙대(太叔帶)를 대신 세우려고 한 것을 제환공이 관중의 계책을 받아들여 제후들을 이끌고 수지(首止)에서 회맹을 하고 세자 정(鄭)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세자 정의 지위가 기정사실화 됨으로 해서 혜왕이 죽자 주왕의 자리를 이었다. 이가 주장왕이다. ( 연의 24회 참조)

☛오금(五禁)/제환공은 주혜왕(周惠王)이 죽고 세자 정(鄭)이 즉위하자 주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던 태숙대(太叔帶)로부터 주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팔국(八國)의 대부들을 지금의 산동성 곡부시 영양현 부근인 조(洮) 땅에 모이게 하고 제후(諸侯)들에게 다섯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게 한 것을 말한다. 다섯 가지의 금기 사항은 다음과 같다. (24회 참조)

毋雍泉 우물을 메우지 말 것이며

毋遏糴 곡식의 매매를 막지 말 것이며

毋易樹子 자식을 바꾸어 후사를 세우지 말 것 이며

毋以妾爲妻 첩으로 부인을 삼지 말고

毋以婦人與國事 아녀자로 하여금 나라의 정사에 간섭하지 못

하게 한다.



正而不譎春秋許(정이불휼춘추허)

춘추시대에 기강이 사라지지 않게 하고 정의가 서도록 한 것은


五伯之中業最强(오잭지중업최강)

오패 중 그 업적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할 수 있도다!


염선(髥仙)이 또 한 수의 시를 지어 환공이 일세를 풍미한 영웅으로 살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을 한탄하였다.


四十餘年号方伯(사십여년호방백)

40여 년간을 방백으로 불리면서


南摧西抑雄无敵(남최서억훙무적)

남쪽의 초나라를 정벌하고 서쪽의 오랑캐를 무찔러 당대에 대항할 자가 없었다.


一朝疾臥牙刁狂(일조질와아조광)

그러나 하루아침에 병이 들어 눕게 되자 이아(易牙)와 수조(竪刁)가 발호하여 미쳐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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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4-05-11
[일반] 합려의 며느리

합려의 며느리 때는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려 하던 기원전 500년 경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신흥 세력인 오나라가
양승국 04-05-11
[일반]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의 조씨고아 이야기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報恩) 이야기 옛날 기원전 550년 대인 춘추시대 중반의 일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니 공자보다
양승국 04-05-11
[일반] 굴원이야기

굴원(屈原) 이야기 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새로운 왕에 소양왕(昭陽王 : 재위 기원전 295-251년))이 올랐다. 그는 얼마 전에 초나라가 제
양승국 04-05-11
[일반] 결초보은(結草報恩)

결초보은 진경공(晉景公)은 순림보(荀林父)가 로국(潞國)1)을 토벌(討伐)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스스로 대군을 끌고 직산(稷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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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관중의 경제정책

기원전 7세기 경 관중의 경제정책 <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이 제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
양승국 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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