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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3:495268 
한비자의 최후
양승국
일반

한비자의 최후


진시황이 이사의 계책에 따라 내사등(內史騰)을 장수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주어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그때 한나라는 환혜왕(桓惠王)이 얼마 전에 죽고 태자 안(安)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한나라의 공자 중에는 비(非)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형명학(形名學)과 법률학(法律學)에 조예가 깊었다. 그가 보기에 한나라가 진나라에 영토를 빼앗겨 나라가 약해지는 것을 보고 여러 차례에 걸쳐 표장을 써서 상주(上奏)하였으나 한왕은 그 계책을 받아 들일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윽고 진나라가 군사를 보내어 침략을 해오자 한왕이 두려워하여 나라를 들어 항복하려고 했다. 한비(韓非)가 스스로 자기의 재능을 믿고 진나라에 가면 자기를 임용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왕에게 진나라에 친선사절로 가서 강화조약을 체결하겠다고 청하자 한왕은 허락했다. 한비(韓非)가 진나라에 당도하여 진시황을 알현하고 한왕이 나라를 들어 진나라에 바치고 자기는 진나라의 동쪽 변경을 지키는 외신이 되겠다는 뜻을 전하자 진시황은 크게 기뻐하였다. 한비는 계속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계책을 진왕에게 말했다.


" 신에게는 진나라가 천하를 병탄 시키는 데 제후국들의 합종을 깨뜨릴 방책을 갖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채용하신다면 조나라는 나라를 들어 항복할 것이며, 한나라는 망하고 초와 위나라는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이며, 제와 연나라는 진나라에 복속될 것입니다. 만약 신의 말대로 되지 않는다면 원컨대, 신의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시어 불충한 신하가 어떤 벌을 받는 가를 경계로 삼게 하시기 바랍니다."


한비는 자기가 저술한 <세난(說難)>, <고분(孤憤)>, <오두(五 )>, <세림(說林)> 등 10여 만 자로 된 책을 바쳤다. 진시황이 한비의 책에 몰두하여 다 읽고 그 내용에 반하여 한비를 객경으로 임명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을 받을려고 했다. 이사가 그의 재능을 시기하여 진시황에게 참소했다.


" 제후의 공자들은 각기 그들의 공실과 관계를 끊지 못하는데 어찌 그들을 쓰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한나라를 공격하니 한왕이 황급히 한비를 보낸 것은 혹시나 옛날 소진(蘇秦)이 사용했던 반간계(反間計)를 쓰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비(韓非)는 결코 진나라가 쓸 수 없을 것입니다. "


진시황 " 그렇다면 한비를 진나라에서 추방해야 하는가?"


이사 " 옛날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 무기(无忌),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이 모두 진나라에 머물다가 진나라가 등용을 하지 않고 모두 자기나라로 돌려보내 결국은 후에 진나라의 우환거리가 되었습니다. 한비는 재능이 있는 선비라 차라리 죽여 한나라의 날개를 잘라 뒷날의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진시황이 즉시 한비를 운양(雲陽)으로 보내 옥에 가두게 한 다음에 죽이려고 했다. 한비가 알고 옥리를 향해 말했다.


"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어야 한단 말인가?"


옥리가 대답했다.


" 날아다니는 새도 한 둥지에는 암수가 같이 살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세상 인심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쓰임이 당하지 않게 되면 죽게 되어있는데 구태여 꼭 죄가 있어야만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한비가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지었다.


說果難(세과난)

<세난(說難)>을 말하기란 과연 어려운 일이로다




憤何已(분하이)

<고분(孤憤)>을 이미 읊었어도 가슴속의

울분은 억제할 수 없도다!



五履未除(오이미제)

<오두(五蠹)>를 없애지 못했으니



說林何取(세림하취)

<세림(說林)>으로 무엇인들 얻을 수 있겠는가?



膏以香消(고이향소)

고기의 향기로 인해 짐승은 죽고


麝以臍死(사이제사)

노루는 배꼽에 사향을 달고 있어 목숨을 잃는구나!


그날 밤, 한비는 관 끈을 풀어 스스로 자기의 목을 졸라 죽었다.




세난(說難) : 한비자 제12편으로 세(說)란 다른 사람을 말로써 설득하여 동감하게 만드는 유세(遊說)의 의미이다. 그래서 세난이라 하면 남을 유세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뜻이 된다. 전국시대 유세의 행위란 재주 있는 자들의 벼슬을 얻을 수 있는 등용문이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이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고분(孤憤) : 제11편으로 고분이란 말은 '외롭게 홀로 울분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본장의 내용은 고립무원에 처한 법술가(法術家)들은 대개가 권신들의 방해를 받아서 자신의 재주와 지혜를 중용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비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하고 있는 장이다.


오두(五두) : 제49편으로 나라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좀벌레에 비유하여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 가지의 좀벌레에 해당하는 부류로는 유가(儒家), 유세객(遊說客)과 종횡가(縱橫家), 유협(遊俠)의 무리들, 권문귀족(權門貴族), 상공인(商工人)을 들고 있다.


세림(說林) : 제22편, 23편으로 세(說)란 유세한다는 말이며 각종 사물들이 모여져 있으면 수풀과 같다고 하여 림(林)이라 하였다. 즉 무림(武林)이라 유림(儒林)의 림(林)과 같은 뜻으로 쓴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유세가 횡행하던 풍조에서 한비는 유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 참고로 쓰이게 하고자 하면서 하나의 편으로 엮어 세림이라 명하고 상하로 나누어 모두 71개의 고사를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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