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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11:494470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의 귀감- 동호필(董狐筆)과 태사간(太史簡)
양승국
일반

- 동호(董狐)와 태사씨(太史氏)들-

중국인들의 사서를 기록하는 자세는 참으로 치열하다. 글자 하나에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사실을 기록한 사관이 있었기에 그 많고 많은 왕조의 역사가, 있는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명멸했던 수 많은 왕조 중 정사로 인정하는 역사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까지 합해 26사로 친다. 십팔사략이라는 책은 송나라때까지의 중국 18왕조의 역사 중 교훈이 될 만한 기사를 발췌한 책이다. 중국의 어느 왕조가 정통왕조에 포함되는지의 여부는 전 왕조의 역사서를 편찬했느냐 아니냐로 결정된다. 그 전의 사서가 편찬된 내력을 상세히는 모르겠으나, 송왕조의 사서는 원나라가 원나라의 사서는 명왕조가 명왕조의 것은 청왕조 이런 식이다. 후계왕조가 전왕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그것은 한국의 역대 정권의 행태를 보면 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및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권이 전 정권을 의도적으로 폄하시키는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세하고 치밀하기로 세계 제일이라는 이조실록도 객관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능하면 전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전정권의 업적에 해당하는 것도 폄하하는 행위가 이루어진 것이 한국의 사서라고 보면 된다.


중국의 역대 사관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된 두 사건에 대한 연의 장면을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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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607년의 동호직필(董狐直筆)-연의 제51회


조돈(趙盾)은 그의 조카 조천(趙穿)이 도원에서 영공을 시해한 일을 항상 마음속으로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던 중 하루는 발걸음을 사관(史館)으로 옮겨 태사(太史) 동호(董狐)에게 영공(靈公)에 대한 기록을 보자고 청했다. 동호가 영공의 일을 기록한 죽간을 찾아서 조돈에게 바쳤다. 조돈이 죽간을 받아서 읽었다. 동호가 영공의 죽음에 대해서 죽간에 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가을 7월 을축(乙丑) 일에 조돈이 그 군주 이고(夷皐) 를 도원(桃園)에서 시해했다.'


조돈이 깜짝 놀라 말했다.


" 태사는 일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그때는 나는 하동(河東)으로 나가 강성 밖 200리 되는 곳에 있었는데 내가 어찌 시군(弑君)의 일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곧 그대가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다는 것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대가 나를 무고(誣告)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오? "


동호 " 경은 상국의 신분으로 도망간다 하면서 국경를 넘어가지 않았오. 다시 도성에 돌아와서도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오. 이 일을 상국이 꾸미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오?"


조돈 " 이 기록을 좀 고칠 수 없겠오?"


동호 " 시시비비를 가려야 만이 사관이 기록한 것을 믿을 수있습니다. 나의 목을 자를 수 있을지언정 이 죽간의 내용은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


조돈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사관의 권세가 상국보다 더 무겁구나! 내가 어찌하여 국경 밖으로 나가지 않아 만세에 악명을 남기는 것을 면하지 못했는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로다! 후회막급이로다!"


이때부터 조돈이 성공을 받들기를 더욱 공경하고 매사에 더욱 근신하였다. 그런데 조천은 오히려 자기가 공을 세웠다고 으스대며 정경의 자리를 원했다. 조돈이 공론이 일 것을 두려워하여 조천의 청을 물리쳤다. 조천은 가슴속에 분노가 치솟아 병을 얻게 되어 등뒤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 조천에게는 조전(趙旃)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가 조돈을 찾아와 자기 부친의 직을 잇게 해 달라고 청했다. 조돈이 조전에게 말했다.


" 후일에 네가 공을 세우게 되면 비록정경의 자리인들 구하기가 어렵겠는가? 잠시 기다리다보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


후세의 사관들은 조돈이 조천 부자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모두가 동호의 직필 때문이라고 논하였다. 사관이 동호의 직필을 찬하였다.


庸史紀事 良史誅意(용사기사 양사주의)

보통의 사관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지만,

훌륭한 사관은 부정한 뜻을 죽이는 도다


穿弑其君 盾蒙其罪(천시기군 돈몽기죄)

조천이 그 군주를 시해했는데,

조돈이 그 죄를 뒤집어 쓴 것은


寧斷吾頭 敢以筆媚(영단오두 감이필미)

비록 내 머리는 짜를 수 있지만,

내 감히 붓으로 그대에게 아첨을 하리요


卓哉董狐 是非可畏(탁재동호 시비가외)

장하다, 동호여!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구나!



2. 기원전 548년 제나라 태사씨(太史氏)의 자세-연의 제65회


장공을 시해한 최저는 다시 태사백(太史伯)에게 명하여 제후(齊侯)가 학질에 걸려서 죽었다고 역서(曆書)에 쓰도록 하였다. 태사백이 듣지 않고 목간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주양왕 24년 여름 5월 을해(乙亥) 일에 최저(崔杼)가 그의 군주인 광(光)을 시해했다.'


주양왕 24년이라 함은 기원전 548년을 말함이다. 최저가 목간(木簡)의 기사를 보고 대노하여 태사백을 죽였다. 태사백에게는 제나라 사관(史館)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동생이 셋이 있었는데 이름이 각각 중(仲), 숙(叔), 계(季)라 했다. 중(仲)이 다시 역서(曆書)에 자기 형인 백(伯)이 기록한 것과 똑같은 기사를 써 넣었다. 최저가 다시 중(仲)을 죽였다. 숙(叔)도 다시 그의 형들과 같이 썼다. 최저가 숙(叔)도 죽였다. 계가 다시 자기 세 형들이 쓴 것과 똑같이 쓰자 최저가 목간을 잡고서 계(季)에게 말했다.


" 너의 세 형들이 이 간 때문에 모두 죽었다. 이제 너 혼자 남았는데 어찌 너라고 해서 목숨이 아깝지 않겠느냐? 만약 네가 그 구절을 바꾸어 쓴다면 내 너를 용서하여 줄 것이다."


계가 듣고 대답했다.


" 있는 일을 그대로 쓰는 것은 태사들의 직분이요. 그 직분을 잃고 목숨을 구하느니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것이오. 옛날에 당진의 조천(趙穿)이 그의 군주인 영공(靈公)을 시해하자 태사 동호(董狐)가 조돈(趙盾)이 당시 정경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적을 토벌하지 않아 역서(歷書)에 ' 조돈이 그의 군주인 이고(夷皐)를 죽였다.'라고 썼었오. 조돈은 개의치 않게 생각하고 태사의 직을 폐할 수 없다 했오. 내가 비록 쓰지않는다 해도 세상의 어느 곳에는 필시 이를 바르게 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 것이오. 그 일을 쓰지 않는다 해서 상국의 잘못이 덮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식자들에게 웃음거리만 남길 것이오. 내가 죽음을 그다지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모든 것은 상국의 생각에 달린 일이니 알아서 하시기 바라오!"


최저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 내가 사직이 망할 것을 걱정한 끝에일이 이미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비록 직필(直筆)로서 그 일을 기록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나를 이해 할 것이다."


최저는 즉시 목간을 던져서 계(季)에게 돌려줬다. 계가 목간을 들고서 물러갔다. 계가 태사들이 근무하는 사관(史館)에 당도하자 남사씨(南史氏)가 당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계가 남사씨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가를 물었다. 남사씨가 대답했다.


" 내가 들으니 그대 형제들이 모두 죽으면 금년 5월에 일어난 시해 사건을 기록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내가 그 일을 대신 기록하려고 이렇게 온 것이오!"


그러자 계(季)는 자기가 갖고 있던 목간을 남사씨에게 보여줬다. 남사씨가 보고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염옹(髥翁)이 사서(史書)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감탄하여 칭송하는 글을 지었다.


朝綱紐解 亂臣接迹(조강유해 란신접적)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지니, 란신들이 날뛰는도다


斧鉞不可 誅之以筆(부월불가 주지이필)

부월은 들지 않았으나, 붓 한 자루로 죽였다.


不畏身死 而畏溺職(불외신사 이외익직)

죽음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사관(史官)으로써의 직분을 잃을까 걱정했네


南史同心 有遂无格(남사동심 유수무격)

남사씨도 같은 마음이어서 그 뒤를 따르려고 했는데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皎日靑天 奸雄奪魄(교일청천 간웅탈백)

청천 하늘의 해는 밝고 밝은데,

간웅은 넋을 빼앗겼다.


彼哉諛語 羞此史冊(피재유어 수차사책)

아아 슬프도다, 아첨배들이여!

이 사서를 읽고 부끄러워할지어다.


최저가 태사들의 글쓰는 필법을 두려워하여 시군(弑君)의 죄를 고수(賈竪)에게 뒤집어 씌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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