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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3 16:56:34385 
토붕와해(土崩瓦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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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토붕(土崩)과 와해(瓦解)



조나라 사람 서락(徐樂)이 상소문을 올려 당시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은 듣건대 천하의 우환거리는 토붕(土崩)에 있는 것이지 와해(瓦解)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어째서 토붕이라고 하겠습니까? 진나라 말년에 진섭은 천승의 존귀한 몸도 아니었고, 한 치의 땅도 갖지 못했으며 출신성분은 왕공이나 대족의 후예도 아니었고 시골마을에서 조차도 명성이 없었습니다. 또한 공자(孔子), 묵자(墨子), 증자(曾子)와 같은 현능함도 갖추지 못했고 도주공(陶朱公)과 의돈(猗頓)과 같이 부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난뱅이들이 사는 골목에서 창자루를 휘두르며 몸을 일으켜 한쪽 어깨를 들어내고 크게 한 번 소리치자 천하 사람들은 바람처럼 몰려와 그를 따랐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백성들은 곤궁한데 임금은 그들의 처지를 돌보지 않았고, 밑에서는 원망을 하고 있었음에도 임금은 그것을 몰랐으며 세상은 혼란에 빠져 정령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섭은 이 세 가지를 밑전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토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하의 근심거리는 토붕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와해라고 합니까? 오(吳), 초(楚), 제(齊), 조(趙)의 병란이 바로 그것입니다. 칠국이 모의하여 대역죄를 범하면서 스스로 만승(萬乘)의 임금이라고 칭하면서 일으킨 수십 만에 달하는 무장한 병사들의 위세는 나라 안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고 재물은 그 군사들을 유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쪽의 땅을 한 치도 빼앗지 못하고 그 몸은 중원에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권력은 필부의 것보다 가볍고 군사는 진섭의 것보다 약해서가 아닙니다. 당시의 형세로써는 선제의 은덕이 아직 쇠하지 않아 편안히 한 곳에 정착하여 풍속을 즐기려는 백성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을 국경 밖에서 도와주는 세력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와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하의 근심은 와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천하는 진실로 토붕의 형세에 놓이게 되면 비록 포의의 곤공한 선비 중에 어떤 자는 악행을 제창하여 해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데 진섭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물며 삼진(三晋)의 군주들과 같은 강자가 존재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천하는 아직 크게 다스려지지 못하고 있다하나 진실로 토붕지세가 없다면 비록 강대국이 강한 군대를 일으킨다 해도 결국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그들의 몸은 사로잡히게 되었으니 그들이 바로 오, 초, 제, 조 등의 나라였습니다. 하물며 군신과 백성들이 어떻게 능히 란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이 두 가지 요체는 국가의 안위에 직결되는 것으로써 현능한 군주는 유의하고 깊이 살펴야 합니다. 이즈음 관동에는 오곡이 몇 년 째 여물지 않아 아직 수확이 회복이 되지 않고 있어 백성들이 곤궁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변경의 전쟁이 겹쳤습니다. 이것을 순리에 따라 살펴보면 앞으로 그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백성들이 생길 겁니다. 백성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면 쉽게 동요되고 쉽게 동요되는 것은 토붕의 형세입니다. 그래서 옛날 현능한 군주들은 만물이 변화하는 원인을 살펴서 안정되거나 위태로움의 관건을 분명히 밝히고 조정에 앉아서 정무에 열중하여 화란이 형체를 드러내기 전에 없앴습니다. 그 요지는 천하에 토붕의 형세가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강대국의 고강한 군대가 쳐들어오더라도 폐하께서는 단지 도망다니는 짐승을 쫓고 하늘을 나는 새를 쏘며 잔치를 여는 정원을 더욱 넓혀서 마음껏 즐기고 말을 몰아 사냥의 즐거움을 더할 수 없이 누린다 해도 아무런 일이 없는 듯 평온할 것입니다. 금석사죽(金石絲竹)에서 나오는 음악이 폐하의 귀에서 끊이지 않고 장막 안에서 미녀들과의 운우지정을 나누시며 배우들과 난쟁이들의 웃음소리가 폐하의 면전에서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천하에는 근심이 오래도록 쌓이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명망이 상탕(商湯)과 주무왕(周武王)과 같기를 바랄 필요가 있을 것이며 풍속이 주성왕(周成王)과 강왕(康王) 시대와 같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성군(聖君)의 자질을 타고 태어나시어 관후하고 인자하시니 성의를 다하여 천하를 다스리기에 힘쓰신다면 탕왕이나 무왕과 같은 명망을 얻는 일은 어렵지 않고 성강(成康)의 풍속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이 토붕과 와해라는 두 가지를 피하는 근본을 확립한 연후에 존위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당대에 명망과 영예를 드높여 천하 백성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사방의 오랑캐들은 복종시키면, 은혜와 덕은 수대에 걸쳐 융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폐하께서 하실 일은 조정에서 남면하여 도끼 무늬가 그려진 병풍을 의지하여 소매를 걷어붙이고 왕공과 대인들로 하여금 읍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왕업을 기도하면 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라를 안정시키기에는 충분하다고 합니다. 천하가 편안해지면 폐하께서 구하시는데 어찌 못 얻을 것이 있겠으며, 무슨 일을 하던 어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것이며 어디를 정벌하던 어찌 복종시키지 않을 곳이 있겠습니까?”
(사마천의 사기 공손홍주보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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