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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20:57:242971 
순망치한(脣亡齒寒)
양승국
일반

순망치한(脣亡齒寒)


이때 우(虞)[1])나라와 괵(虢)[1])나라는 주왕실과 같은 희성의 제후국이었는데 입술과 이와의 관계처럼 상호의존하며 지내왔다. 두 나라의 영토는 당진(唐晉)과 경계가 맞닿아 있었다. 당시 괵국의 군주 이름은 추(醜)라고 했는데 병사의 일을 좋아하고 스스로 교만한 위인이라 수차에 걸쳐 당진의 변경을 침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변경을 지키는 당진의 관리가 달려와 괵나라가 침략해 왔다고 사태의 위급함을 알려왔다. 헌공(獻公)이 괵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여희가 말했다.


“ 다시 한번 신생(申生)을 시켜 괵국을 정벌하시지 그러십니까? 그의 이름이 이미 나 있으니 사졸들을 딸려 보내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헌공은 이미 여희의 말에 빠져들어, 만일에 신생이 괵(虢)을 토벌하는데 성공이라도 한다면 신생의 이름이 더욱 높아져 제압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걱정하여 신생을 보내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헌공(獻公)이 대부 순식(荀息)을 불러 물었다.


“ 괵국(虢國)을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이 있는가?”


순식 “ 우(虞)와 괵(虢)은 서로 화목하여 우리가 괵을 공격하면 우나라가 괵국을 도울 것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두 나라를 상대하는 것이니 신의 생각으로는 싸운다고 해도 반드시 이긴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


헌공 “ 그렇다면 과인이 괵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단 말인가?”


순식 “ 신이 듣기에 괵공은 여색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합니다. 주군께서 성의를 다하여 나라 안에서 많은 미녀들을 구하신 후에 노래와 춤을 가르친 다음 화려한 마차를 준비하여 태워서 괵공에게 바치면서 우리를 낮추며 화의를 신청하면 괵공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미녀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괵공이 미녀들에게 빠지게 된다면 정사에 소흘 하게 되어 충성스러운 신하들과는 사이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견융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괵나라의 국경지방을 어지럽히게 한 후에 그 틈을 타서 우리가 공격을 한다면 괵국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헌공이 순식(荀息)의 계책을 받아들여 진나라 전국에서 많은 미녀들을 뽑아 가무를 가르친 후에 괵나라에 보내자 괵공이 기뻐하며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괵국의 대부인 주지교(舟之橋)가 간하면서 말했다.


“ 이것은 진나라가 괵나라를 낚기 위한 낚시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미끼를 삼키시려고 하십니까?”


괵공(虢公)은 주지교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즉시 진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이후로 괵공은 매일마다 낮에는 미녀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탐닉하고 밤에는 미색을 접하게 되어 자연히 조정의 정사 일에는 소흘하게 되었다. 주지교(舟之橋)가 다시 간하자 괵공이 노하여 그를 하양성(下陽城)을 지키는 하양관(下陽關)이라는 곳으로 보내어 국경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당진(唐晉)은 다시 견융(犬戎)에게 뇌물을 바쳐 괵나라를 공격하도록 시켰다. 당진의 뇌물을 받은 견융(犬戎)은 과연 괵나라의 국경을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면서 위예(渭汭)[1])의 땅까지 쳐들어 왔으나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한 괵공에게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견융주가 자기나라 돌아가 남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괵나라를 쳐들어 왔다. 괵공은 위예(渭汭)의 싸움에서 승전한 것에 자신감을 갖고 견융의 군사를 막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와서 상전(桑田)[1])의 땅에서 견융군과 대치하였다. 당진의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 이번에 괵이 상전(桑田)에서 견융과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서 괵을 정벌하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순식 “ 우와 괵의 사이가 아직 멀어지지 않아 아직 때가 아니라고생각합니다. 신에게 계책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먼저 괵을 취하고 다시 우를 멸할 수 있습니다.”


헌공 “ 어떤 계책인가?”


순식 “ 주군께서 우(虞)나라에 재물을 후하게 주어 우리를 먼저 믿게 한 다음에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멸하는 것입니다. ”


헌공 “ 우리는 새로이 괵과 화친을 하여 정벌할 명분도 없는데 어찌 우(虞)나라가 우리나라를 믿고 길을 빌려주겠는가?”


순식 “ 주군께서 몰래 남쪽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에게 괵나라에 시비를 걸게 만든다면 괵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는 반드시 우리나라를 비방하고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핑계 삼아 우나라에게 수호를 청하면 될 것입니다. ”


헌공이 순식의 계책을 받아 들여 변방을 지키는 장수에게 괵나라의 변경을 침입하게 하여 소란하게 만들었다. 과연 괵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가 비난하면서 당진의 변경을 침입해 왔다. 두 나라 군사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괵공은 견융과 서로 대치 중에 있던 관계로 자기 나라의 변경에서 벌어지고 있던 사태를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 드디어 우리가 괵을 정벌하는데 명분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떤 재화로 뇌물을 바쳐야 우나라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순식 “ 우공은 그 성격이 본래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천하의 보물이 아니면 우공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나라의 두 가지 보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단지 주군께서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헌공 “ 무슨 보물인지 경은 말해 보라.”


순식 “ 우공은 원래 벽(璧)과 양마(良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군께서는 수극지벽(垂棘之璧)[1])과 네 필의 굴산지마(屈産之馬)[1])가 끄는 수레가 있지 않습니까? 청컨대 이 두 가지 물건으로 우나라의 길을 빌려야 할 것입니다. 우공은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옥과 명마에 욕심을 내어 우리의 계략에 떨어져 청을 들어 줄 것입니다.”


헌공 “ 그 두 물건은 다시없는 나의 보물인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순식 “ 신은 주군께서 두 가지 보물을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정벌한다면 우나라의 구원을 받지 못한 괵은 반드시 망하고 말 것입니다. 괵이 망하면 우나라는 혼자 존립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나라도 우리가 점령할 것인즉 그때 벽과 명마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단지 벽(璧)과 명마(名馬)는 밖에 있는 부고와 외양간에 잠시 맡겨 두는 것과 같은 일일 것입니다. ”


대부 리극(里克)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寄)와 백리해(百里奚)라고 하는 두 사람의 현신이 있는데 모두 세상 이치에 밝아, 두 사람이 간하여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순식 “ 우공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비록 두 사람이 간하더라도 절대 따르지 않을 입니다.”


헌공이 즉시 벽과 명마를 순식에게 내주어 우공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우공(虞公)이 당진(唐晉)의 사신이 와서 괵을 정벌하기 위하여 길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당진의 사신이 가져온 수극지벽(垂棘之璧)과 굴산지마(屈産之馬)를 보자 화를 가라앉히며 얼굴에는 금방 기쁜 기색을 띠었다. 우공이 손으로 벽을 만지면서 명마를 쳐다보며 순식에게 물었다.


“ 이것들은 귀국의 갖고 있던 천하의 보물인데 어찌하여 나에게 주는 것인가?”


순식 “ 우리 군주께서는 주군의 어진 마음을 평소에 흠모하던 중 우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사사로이 이렇게 귀한 보물을 갖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대국에 바쳐 환심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공 “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 아닌가?”


순식 “ 괵나라가 여러 번에 걸쳐 우리의 남쪽 변경을 침략해와 사직이 위태롭게 생각되어 이렇듯 뜻을 굽혀 수호를 청하는 것입니다. 금일 우리와 괵국이 맺은 조약서의 글씨가 아직 마르기도 전임에도, 괵나라는 우리의 변경을 어지럽히면서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고 있어 우리 군주께서 귀국의 길을 빌려 괵국을 토벌하여 그 죄를 묻고자 합니다. 다행히 괵국을 쳐서 승리를 한다면 노획하게 되는 모든 전리품은 군주께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군께서는 군주 님과 우호관계를 맺고 영원토록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십니다.”


우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궁지기(宮之奇)가 듣고 나와서 간했다.


“ 주군께서는 허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게 된다고 했습니다.[1]) 당진(唐晉)이 자기들과 동성의 제후국을 멸하여 삼킨 것이 어디 한 두 나라뿐입니까? 유독 우와 괵 두 나라를 아직까지 삼키지 못한 것은 두 나라가 이웃에 연하여 있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도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괵국이 망하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 화가 우리나라에 닥칠 것입니다.


우공 “ 진나라 군주가 이렇게 귀중한 보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인에게 주어 이렇듯 나를 기쁘게 하는데 내가 어찌 몇 리의 길을 빌려주는 것을 아까워하면 되겠는가? 하물며 당진(唐晉)은 괵국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인데 괵나라를 버리고 대신 당진(唐晉)을 새로 얻는다면 어찌 그것이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그만 물러가서 나의 일을 더 이상 망치지 말라!”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고 하자 곁에 있던 백리해가 궁지기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궁지기가 우공의 면전에서 물러 나와 같이 나온 백리해에게 말했다.


“ 그대는 내가 주군에게 간하는 것을 거들지는 못할 망정 어찌하여 막았는가?”


백리해 “ 나는 듣기에 어리석은 자에게 좋은 말을 올리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구슬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충신 관룡봉(關龍逢)[1])을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현신(賢臣) 비간(比干)[1])을 죽인 것은 모두가 그 간함의 도를 높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공의 안색을 살펴보니 대부가 위태롭게 느껴져서 말린 것입니다.”


궁지기 “ 그렇다면 우나라는 반드시 망할 터인데 그대와 나는 다른 나라로 떠나야 될 것이 아닌가?”


백리해 “ 대부께서 먼저 떠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나라도 남아 있게 된다면 도망친 대부의 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아 있다가 기회를 봐서 천천히 떠나겠습니다.”


궁지기(宮之寄)가 그날 밤 가솔들을 전부 데리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어느 나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순식(荀息)이 우나라에서 돌아와 헌공(獻公)에게 보고하였다.


“ 우공이 이미 우리의 벽(璧)과 명마(名馬)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길을 빌려주기로 허락하였습니다.”


헌공이 듣고 친히 군사를 이끌고 괵국을 정벌하러 나서려고 하자 리극이 들어와 말했다.


“ 괵국을 정벌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군께서 번거롭게 직접 나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헌공 “ 괵을 정벌하는 계책을 갖고 있는가?”


리극 “ 괵은 도성을 상양성(上陽城)에 두고 있습니다. 상양성으로 진격하지 위해서는 그 하수 맞은편에 있는 하양성(下陽城)을 먼저 점령하여야 합니다. 하양성을 함락시키기만 한다면 괵국을 멸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미력한 힘이나마 진력을 다하여 공을 세우고자 하오며 만일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온 다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헌공(獻公)이 리극을 대장(大將)으로 순식을 부장(副將)으로 삼아 병거 400승을 내어 주고 괵을 정벌하라고 명했다. 순식은 즉시 사자의 임무를 띠고 우나라에 가서 당진의 군사들이 도착할 시기를 알렸다. 우공이 순식을 보고 말했다.


“ 과인이 귀국의 귀중한 보물을 받고서도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있어 기다리고 있던 중이라! 차제에 과인도 군사를 이끌고 그대 나라의 군사 뒤를 따르겠다.”


순식 “ 군주께서 군사를 내어 우리를 돕는다면 하양성(下陽城)은 이미 파(破)한 것이나 같다고 하겠습니다. ”


우공 “ 하양성은 괵국이 평소에도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 곳인데 내가 어찌 싸우지도 않고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순식 “ 신이 듣기에 괵군(虢軍)과 견융군(犬戎軍)이 상전(桑田)의 땅에서 크게 싸웠으나 승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싸움을 돕기 위해 병거를 끌고 왔다고 하면서 몰래 우리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하양성에 들어가신다면 하양의 관문은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에게 철엽거(鐵葉車)[1])가 100승이 있으니 군주께서 끌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공이 순식의 계책(計策)를 쫓아 당진군(唐晉軍)을 이끌고 하양성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그때 하양성은 대부 주지교(舟之橋)가 지키고 있었다. 주지교(舟之橋)는 우공(虞公)이 구원군을 끌고 왔다는 말을 믿고 관문을 열고 맞아 들였다. 우공이 끌고 온 철엽거 안에 숨어 있던 당진군이 뛰쳐나와 관 안으로 진입하여 일제히 괵군을 향해 공격하였다. 주지교가 관문을 닫으려고 하였으나 당진군들은 이미 관 안으로 진입한 후라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리극이 우공의 뒤를 이어 당진군의 본대를 이끌고 하양성 안으로 들어 왔다. 주지교는 하양성을 잃었다고 괵공에게 문책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하양성을 지키는 수비군을 거느리고 당진의 군사들에게 항복하였다. 리극이 주지교와 하양성의 수비군을 향도로 삼아 상양성을 향하여 군사를 진격시켰다.


한편 괵공이 상전(桑田)에서 견융군(犬戎軍)과 대치하고 있다가 당진군의 공격을 받은 하양성이 떨어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괵공이 본국을 구하기 위해 황급히 군사를 거두어 퇴각하려는 순간에 견융의 공격을 받고 괵군(虢軍)은 크게 꺾였다. 괵공의 뒤를 따르는 병거의 수는 단지 십여 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괵공은 간신히 상양성에 당도하기는 하였으나 이미 견융군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려 대책 없이 망연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당진의 군사들이 상양성 앞에 당도하여 그 주위를 물샐틈없이 포위하였다. 그해 팔 월에 포위 당하여 십이 월 되자 성중에는 땔나무와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이어서 싸움을 걸어봤으나 막강한 당진의 군사들을 이기지 못하여, 사졸들은 지치고 백성들이 내는 울음소리는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리극이 주지교에게 시켜 편지를 써서 화살에 메달아 성안으로 쏘게 하여 괵공으로 하여금 항복을 권하게 하였다. 괵공이 편지를 읽고 나서 말했다.


“ 우리의 선조들은 대를 이어서 주나라 왕실에서 경사(卿士)의 직을 맡아 왔는데 어찌 내가 아래 직급의 제후에게 항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괵공은 밤이 되자 가솔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주나라 도성을 향하여 도망쳤다. 리극(里克)은 괵공(虢公)이 달아날 수 있도록 뒤를 쫓지 않았다. 괵(虢)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서 향기로운 꽃과 등불을 손에 들고 리극 등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였다. 리극은 백성들을 안전한 곳에 모이게 한 후에 휘하의 군사들이 추호도 범하지 못하도록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이어서 휘하의 군사들을 일부 수비병으로 남겨 괵성을 지키도록 한 다음에, 괵나라의 부고(府庫)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도록 하고 그 중 십 분의 삼과 괵공에게 주었던 미녀들을 모두 우공(虞公)에게 주었다. 우공이 수많은 보물과 미녀들을 받고 크게 기뻐했다. 리극이 한편으로 사람을 헌공(獻公)에게 보내어 괵나라를 정벌한 것을 보고하고 자기의 몸에 병이 났다고 핑계를 대고 휘하의 군사들을 우나라 도성밖에 머물며 쉬게 한 다음, 자기의 병이 낳게되면 당진으로 회군할 것이라고 우공에게 전하게 했다. 우공이 수시로 음식과 약을 가지고 와서 리극의 병 문안을 하였다.


이렇게 한 달여가 지나던 중에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우공이 사람을 보내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온 연유를 물어 보게 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하면서 말했다.


“ 괵나라를 정벌하러 나간 당진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그들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우공이 듣고 말했다.


“ 과인이 마침 당진의 군주를 만나 수호를 맺고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당진의 군주가 스스로 찾아오니 과인이 바라고 있던 바였다.”


우공이 듣자 황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도성 밖으로 나가 진후를 맞이하였다. 두 나라 군주가 서로 만나서 피차간에 사례의 인사를 나누었다. 헌공(獻公)이 우공(虞公)에게 기산(箕山)에서 사냥대회를 하자고 하였다. 우공이 당진(唐晉)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냥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성안의 모든 무장병들과 병거를 끄는 군마(軍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사냥터로 끌고 나와 헌공(獻公)과의 시합에 임하려고 하였다.


이윽고 약속한 날자가 되어 두 나라의 군주들은 사냥터에서 만났다. 진시(辰時)[1])에 시작한 사냥이 신시(申時)[1])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성안에서 급보가 왔다.


“ 성안에 불이 났습니다. ”


헌공이 옆에서 듣고 말했다.


“ 그것은 민간이 잘못해서 일어난 불일 것이요. 시간이 지나면 진화가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냥이나 계속 합시다.”


성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우공을 붙잡아 다시 한번만 더 사냥터를 에워싼 후 내기를 하자고 청하였다. 대부 백리해(百里奚)가 은밀히 우공에게 다가와 말했다.


“ 성안에 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시면 안될 것입니다. ”


우공이 헌공(獻公)의 청을 사양하고 이어서 작별인사를 한 다음에 먼저 사냥터를 떠났다. 우공의 일행이 회군하여 반쯤 갔을 때 수많은 백성들이 란을 피해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잇는 것이 보였다. 백성들이 우공 일행을 보자 말했다.


“ 성은 이미 허를 찔려 당진의 군사들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우공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 속히 성으로 수레를 몰아라.”


우공 일생이 이윽고 우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으나 성문 위에는 한 사람의 대장 복장을 한 장군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리극(里克)이 투구와 갑옷을 선명하게 차려 입고 난간에 의지하여 위풍도 당당하게 우공을 향하여 말을 했다.


“ 예전에 군주가 길을 빌려준 은혜를 입어 괵나라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군주께서 나라까지 빌려주시어 감사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공이 대노하여 성문을 향하여 공격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자 성 위에서 갑자기 딱다기 소리가 커다랗게 들리더니 화살이 마치 비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우공은 즉시 수레를 뒤로 물리라고 명한 다음 전령을 시켜 뒤따라오는 후군에게 명령을 전달하게 하여 행군을 빨리하여 달려오도록 하였다. 전령이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하였다.


“ 뒤에 천천히 따라 오던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들에 의해 길이 끊겨 일부는 항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병장기와 거마들은 모두 당진의 군사들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당진의 군주가 대군을 이끌고 우리 뒤를 따라 진군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우공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이 되어 한탄하며 말했다.


“ 궁지기(宮之寄)의 간언을 듣지 않는 것이 후회되는 구나!”


다시 곁에 있던 백리해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대는 그때 어찌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백리해 “ 주군께서 궁지기의 간언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제가 간


하는 말을 들었겠습니까? 신이 간언은 드리지 않았지만 정작 몸은 빼지 않고 지금까지 주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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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04-05-10
[일반] 총명하고 주도면밀한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위험이 따라다니는데 (聰明深察而近于死者…

이는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박학하며, 언변에 뛰어나고, 식견이 넓은 사람은 그 몸이 위태로운데, 이는 남의 나쁜 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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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불치병 6가지

성인(聖人)으로 하여금 질병의 증상을 미리 알게 하여 좋은 의사를 찾아 일찍 치료하게 한다면 병은 나을 수가 있고 몸도 살 수가 있다.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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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자식사랑은 필히 깊고 멀리 내다봐야 하는 법이다. 爱子必为其计深…

그때 조나라는 혜문왕이 죽고 태자 단(丹)이 그 뒤를 이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가 효성왕(孝成王)이다. 효성왕은 나이가 아직 어려 모후인 혜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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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경지교(刎頸之交)

이윽고 회맹의 의식이 끝나고 조나라에 돌아온 조왕은 인상여의 공이 크다고 생가하여 그를 상경에 제수하여 염파의 위에 두었다. 이에 염파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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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절영대회(絶纓大會)

절영대회(絶纓大會) 초장왕은 투월초와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영도(郢都)의 궁궐 안에 있는 점대(漸臺)위에 큰 연회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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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고태살요(刳胎殺夭)

刳胎殺夭(고태살요) 배를 갈라 태아를 죽이면 기린이 도성밖에 이르지 않고, 연못을 마르게 하여 고기잡이를 하면 교롱(蛟龍)이 구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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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인불악군(仁不惡君).........

仁不惡君(인불악군), 智不重困(지불중곤), 勇不逃死(용불도사) 인자는 그 군주를 원망하지 않고 지자는 거듭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으며 용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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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무룻 예란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406.夫禮禁未然之前, 무릇 예란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고 407.法施已然之後; 법이라는 것은 이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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