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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1 23:53:046840 
굴원가의열전(屈原賈誼列傳) 24-1.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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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열전24-1. 굴원(屈原)



굴원은 이름이 평(平)이고 초나라 왕족 출신이다.1) 초회왕(楚懷王)2) 때 좌도(佐徒)3)였다. 위인이 견문이 넓고 의지가 굳세었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밝았으며 문장에 뛰어났다. 조정에 들어가서는 왕과 함께 국사를 논한 후에 호령을 내렸으며 밖으로 나와서는 제후들이 보내는 빈객들을 접대하고 제후들을 상대했다. 이에 왕이 그를 매우 신임했다.

굴원이 상관대부(上官大夫) 근상(靳尙)과 같은 반열에 오르자 근상은 초왕의 총애를 차지하고자 마음속으로 굴원의 능력을 시기하여 해치려했다. 회왕이 굴원에게 명하여 나라의 율령을 제정하라고 했다. 굴원이 율령의 초안을 미처 완성하기 전에 상관대부가 알고 그 일을 빼앗으려고 했다. 굴원이 그 일을 넘겨주지 않자 상관대부는 왕에게 다음과 같이 참소했다.

「대왕께서 굴원을 시켜 율령을 제정하라고 명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법령이 나올 때마다 그는 자기의 공이라고 자랑하며 ‘내가 아니면 율령을 제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에 초왕은 노하여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

왕이 한쪽의 말만 듣고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것과, 아첨과 모함하는 말을 구별할 줄 모르는 것과, 사악하고 비뚤어진 무리가 공명정대한 사람을 해치려는 것과, 단정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애통하게 생각한 굴원이 우수와 근심에 잠겨 <이소(離疎)>5)를 지었다.

이소는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음을 말한다. 대저 하늘은 사람의 시초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궁지에 이르면 근본을 돌이켜보는 까닭에 힘들고 피곤할 때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으며, 질병으로 고통스럽고 참담해지면 부모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곧게 실천하여 충성을 바치고 지혜를 발휘하여 임금을 섬겼는데, 도리어 군주와 그의 사이가 이간질 당하여, 궁지에 처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바쳤으나 비방을 당하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는 본디 이런 원망으로부터 이루어진 노래다. <국풍(國風)>은 미인을 읊으면서도 음탕하지 않았고, <소아(小雅)>는 원망과 비난을 담고 있으나 반란의 내용이 아니었다. 이 이소는 그 두 가지를 다 겸한 시가라고 할 수있다. 위로는 제곡(帝嚳)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환공(齊桓公)을 말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상탕(商湯)과 주무왕(周武王)에 대해 기술하여 그것으로써 세상일을 풍자했다. 도덕의 넓고 높음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인과관계를 밝혀 모두 자세히 드러나게 하지 않음이 없다. 그 문장은 간략하나 자세하고, 그의 정신은 정결하며 그의 행동은 청아하다. 그 문장은 비록 작은 일을 세세하게 묘사했으나 그것이 뜻하는 바는 지극히 크고 깊으며 예로 든 것은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심오(深奧)하다. 그의 정신은 고결했음으로 그는 즐겨 자신을 향초(香草)로 비유했다. 그는 올곧은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도 소인배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몸은 진흙 구덩이 속에서 있으나 능히 더러움을 씻을 수 있고, 마치 매미가 더러운 오물 속에서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듯이 세속의 먼지구덩이 밖으로 헤엄쳐 나와 더러운 세상의 떼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청백하고 고결하여 진흙 속에 있어도 결코 물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에 그의 지조를 추측해 본다면 그는 해와 달과도 빛을 다투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굴원이 배척되어 왕과의 사이가 소원해진 뒤 얼마 후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제나라가 초나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합종을 맺었다. 이를 근심한 진혜왕(秦惠王)6)이 장의를 초나라에 보내 후한 예물을 바치게 하고 위질(委質)7)의 예를 행하여 초나라를 섬기겠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우리 진나라는 제나라에 많은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나라는 초나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합종을 맺고 있습니다. 만일 초나라가 진실로 제나라와 절교를 한다면 우리 진나라는 상오(商於)8)의 600리 땅을 할양하겠습니다.」

초회왕은 욕심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장의의 말을 믿고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한 후에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상오의 땅 600리를 받아오게 했다. 그러나 장의가 사술을 부려 말했다.

「이 장의가 초왕과 주기로 한 땅은 6리이지 600리를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초나라 사자가 화를 내며 돌아와 회왕에게 보고했다. 분노한 회왕이 대군을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도 군사를 보내 반격했다. 초군을 단수(丹水)와 석수(淅水)에서 대파한 진군은 그 군사 8만의 목을 베었으며 초장 굴개(屈丐)를 포로로 잡고 마침내 초나라의 한중(漢中) 땅마저 점령했다. 회왕이 다시 초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진나라 땅 깊숙이 쳐들어가 남전(藍田)에서 진군과 교전에 들어갔다. 이에 위나라가 알고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기습하여 등(鄧)에 이르렀다. 이를 두려워한 초군은 할 수 없이 진나라로부터 회군했다. 합종을 파기한 초나라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제나라는 초나라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아 이로써 초나라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 해에 진나라가 한중의 땅을 떼어 초나라에 돌려주겠다며 강화를 청해왔다. 이에 초회왕이 진나라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중의 땅이 아니라 장의요. 내가 장의만 얻는다면 그것으로써 매우 만족하겠소.」

장의가 그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이 장의 한 사람으로 한중의 땅을 감당할 수 있다면, 제가 초나라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윽고 장의가 초나라에 당도하여 많은 뇌물을 초나라의 권신 근상(靳尙)에게 바쳤다. 근상은 초왕의 총희 정수(鄭袖)로 하여금 궤변으로 초왕을 현혹시키게 했다. 정수의 말에 혹한 초왕은 장의를 석방하여 진나라에 돌아가게 했다. 이때 초왕과 사이가 소원했던 굴원은 관직에 다시 오르지 못하고 있다가 제나라에 사자로 가 있었다. 이윽고 제나라에서 돌아온 굴원이 초왕에게 물었다.

「어째서 장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회왕이 후회하고 추격군을 보내 장의를 잡으려고 했으나 장의는 멀리 달아난 후였다.

그 후에 제후들이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군을 크게 물리치고 그 대장 당매(唐眛)를 죽였다.

진나라의 새로운 군주 소양왕(昭襄王)이 혼인을 맺어 양국이 우호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초회왕과 회합을 갖자고 했다. 이에 굴원이 회왕에게 말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나라입니다. 결코 믿을 수 없으니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회왕의 어린 아들 자란(子蘭)이 ‘어째서 진나라의 호의를 물리치시는 것입니까?’라고 말하자 결국은 회왕은 진왕을 만나러갔다. 회왕이 무관을 통하여 진나라 땅에 들어가자 진나라가 군사를 매복시켜 그 퇴로를 끊고 회왕을 억류시켰다. 진나라는 회왕에게 초나라 땅을 떼어 할양하라고 강요했다. 회왕이 노하여 진나라의 요청을 거절했다. 후에 회왕은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조나라로 도망쳤으나 진나라의 후환을 두려워한 조왕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회왕은 다시 진나라에 끌려가 결국은 그곳에서 죽었다. 진나라는 회왕의 시신을 초나라에 보내 장례를 치르게 했다.


회왕의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초왕의 자리에 오르고 그의 동생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이 되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 환국하지 못한 원인은은 모두 자란의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굴원도 자란이 행한 옛날 행위에 대해 매우 통탄스럽게 생각했다. 비록 몸은 이미 추방되었음에도 초나라를 그리워하고 초회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마음에 언젠가는 조정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도 왕이 어느 날 갑자기 깨우쳐서 나쁜 습속이 개량되기를 기대했다. 그는 왕을 모시고 나라를 부흥시켜 쇠퇴해 가는 국세를 역전시켜 보고자 한 편의 시를 세 번씩이나 되풀이 하여 그 뜻을 전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러한 노력도 모두 허사가 되고 진나라에 들어간 회왕은 돌아오지 못했다. 회왕은 결국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남의 군주가 되는 자는 그 자신이 총명하거나, 우둔하거나,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를 불문하고 모두가 충신을 찾아 자기를 위하도록 하고 또한 현인을 임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자기를 보좌하게 만드는 바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문이 절단 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성군이 대를 이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리는 모습을 보기 힘든 이유는 소위 충신이란 자는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자는 어질지 않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회왕도 역시 충신들을 구분하지 못했음으로 안으로는 정수에게 현혹되었고, 밖으로는 장의에게 속임을 당했으며, 충신인 굴원을 멀리하고 탐욕스러운 상관대부 근상(靳尙)과 자란(子蘭)을 가까이 했다고 할 수 있다. 군사들은 꺾이고 영토는 잠식당해 무려 6개 군에 달하는 영토를 진나라에 빼앗겼으며 자신의 몸은 진나라에 사로잡혀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입은 화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우물 물이 맑아도 와서 마시지 않는구나!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함은, 이 물은 가히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 명철하다면, 또한 그 복을 받는 법이다.」라고 했으니 왕이 밝지 못하니, 어찌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영윤 자란은 굴원의 그러한 태도를 전해 듣고 대노하여 마침내 상관대부 근상을 시켜 굴원을 경양왕에게 모함했다. 경양왕도 노하여 굴원을 도성 밖으로 쫓아냈다.


굴원이 도성에서 추방되어 강수의 강변을 따라 배회하다가 호수가에 이르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노래를 부르며 배회했다. 안색은 초췌하고 몸은 비쩍 말라 야위어 있었다. 강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가 보고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闾大夫)가 아닌가?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굴원이 대답했다.


擧世皆濁我獨淸(거세개탁아독청)

온 세상이 모두 탁했으나 나 혼자만은 맑았으며


衆人皆醉我獨醒(중인개취아독성)

세상사람들은 모두 취했으나 나 혼자만은 깨어 있었소!


是以見放(시이견방)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쫓아냈소.


어부가 다시 말했다.


聖人不凝滯於物(성인불응체어물)

옛날 성인들께서는

어느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시는 법이 없으셨고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

세상의 돌아가는 추이에 따라 능히 어울릴 수가 있었소.


世人皆濁(세인개탁)

세상사람들이 모두 탁하다고 한다면


何不淈其泥(하불굴기니)

어찌하여 그 세상 사람들이 빠져 있는 진흙탕에 같이 들어가

而揚其波(이양기파)

그 흙탕물을 튀겨서 파고를 일으켜 보기도 하고


衆人皆醉(중인개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何不餔其糟(하불보기조)

어찌하여 먹다 남긴 술지개미만을 얻어 배불리 먹고


而歠其釃(이철기시)

그 거른 술을 같이 마시지 않는가?


何故深思高擧(하고심사고거)

그대의 생각이 얼마나 깊고 몸은 또한 고고하다고


自令放爲(자령방위)

스스로 화를 취하여 쫓겨나게 되었는가?


굴원이 대답했다.


吾聞之(오문지)

내가 듣기에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새로 머리를 감으려는 사람은 필히 관을 벗어서 털어야 하고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

새로이 몸을 씻으려는 사람은 필시 옷을 벗어 흔들어야 한다고 했소.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어찌 이 맑고 깨끗한 몸으로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

더럽고 욕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영부상류)

내가 설사 상수에 물결에 빠져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수장되어 고기들의 밥이 된다 할지언정


安能以晧晧之白(안능이호호지백)

어찌 희고 깨끗하며 결백한 마음의 내 몸에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몽세속진애호)

이 속된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습니까?


어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노를 뱃전에 두드리며 떠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맑고 맑은 창랑의 강이여!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내 갓끈을 씻을만하구나


滄浪之水濯兮(창랑지수탁혜)

탁하고 탁한 창랑의 강물이여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내 발을 씻을만하구나

어부는 마침내 가 버리더니 다시는 그 소식은 전해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굴원은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陶陶孟夏兮(도도맹하혜)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이라

草木奔奔 (초목망망)

초목이 무성도하구나.

傷懷永哀兮(상회영애혜)

쓰라린 마음에 영원한 슬픔 안고


汩徂南土(율조남토)

유유히 흘러서 남쪽 땅으로 가련다.



瞬兮杳杳(순혜묘묘)

쳐다만 보아도 아득하고 멀어서

孔靜幽黙(공정유목)

조용한 것이 소리조차 없구나.

鬱結紆軫兮(울결우진혜)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離愍而長鞠(이민이장국)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撫情效志兮(무정효지혜)

정(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寃屈而自抑(원굴이자억)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네.


刓方以爲圜兮(완방이위환혜)

모난 것을 깎아서 동그라미 만들어도


常度未替(상도미체)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易初本廸兮(이초본적혜)

근본(根本)이나 초지(初志)를 고치는 것은


君子小鄙(군자소비)

군자(君子)가 얕보는 것이라.


章畫志墨兮(장화지묵혜)

먹으로 분명히 그려 놓은


前圖未改(전도미개)

옛날의 설계는 고치지 않으며,


內厚質正兮(내후질정혜)

충정이 후덕하고 성질이 올바르기를


大人所盛(대인소성)

대인(大人)이 기리는 바요.


巧倕不斲兮(교수불착혜)

교수(巧倕)라도자르지 않는데


孰察其揆正(수찰기규정)

누가 그 칫수의 바름을 알겠나?


玄文處幽兮(현문처유혜)

검은 무니가 어두운데 놓이면


矇睡謂之不章(몽수위지부장)

청맹과니는 불분명타 하고


離婁微睇兮(이루미제혜)

이루(離婁)가 실눈을 뜨더라도


瞽以爲無明(고이위무명)

소경은 못 보는 줄로 여기지.


變白以爲黑兮(변백이위흑혜)

흭색을 바꾸어 검다고 하고


倒上以爲下(도상이위하)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한다.

鳳凰在笯兮(봉황재노혜)

봉황(鳳凰)은 새장 속에 있는데


雞鶩翔舞(계목상무)

닭과 집오리는 나다니며 춤을 추네.


同糅玉石兮(동류옥석혜)

옥(玉)과 돌을 한 곳에 섞어 놓고


槪面相量(일개면상량)

하나의 평미래로 재려고 하니

夫惟黨人之鄙固兮(부유당인지비고혜)

저 도당들의 비천함이여!


羌不知余之所藏(강부지여지소장)

내가 가진 것의 값어치를 모른다.


任重載盛兮(임중재성혜)

무거운 짐을 많이도 실어

陷滯而不濟(함체이부제)

바퀴가 빠져서 움직이질 않네.


懷瑾握瑜兮(회근악유혜)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지만


窮不知所示(궁부지소시)

길이 막혔으니 보일 데를 모르겠다.


邑犬之群吠兮(읍견지군폐혜)


마을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吠所怪也(폐소괴야)

이상한 사람있어 짖는 것이고


非俊疑傑兮(비준의걸혜)

영웅과 호걸을 비방하는 건


固庸態也(고용태야)

본래가 용렬해서 그렇다.


文質疏內兮(문질소내혜)

무늬와 바탕은 안으로 갖췄으니


衆不知余之異采(중부지여지이채)

중인(衆人)들은 이채로운 걸 모르고


材朴委積兮(재박위적혜)

재목과 원목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莫知余之所有(막지여지소유)

내 것인 줄 모르는 구나.


重仁襲義兮(중인습의혜)

어짐(仁)이 겹치고 정의가 이어지고


謹厚以爲豊(근후이위풍)

근신과 온후함이 풍성하여도


重華不可迕兮(중화불가오혜)

순임금님은 만날 수 없으니


孰知余之從容(숙지여지종용)

누가 나의 거동을 알아나 줄까?


古固有不竝兮(고고유불병혜)

옛적에도 성군과 현신이 같이 나지 않는


豈知其何故(기지기하고)

까닭을 어찌 알기나 하랴?


湯禹久遠兮(탕우구원혜)

탕(湯)과 우(禹)는 먼 옛날이야기


邈而不可慕(막이불가모)

아득하여 생각할 수도 없다.


懲違改忿兮(징위개분혜)

잘못을 뉘우치고 원한을 삭이고


抑心而自强(억심이자강)

마음을 억눌러서 스스로 참아


離愍而不遷兮(이민이불천혜)

시름이 겨워도 변하지 않으리니


願志之有像(원지지유상)

이 뜻을 본보기로 하리라.


進路北次兮(진로북차혜)

길을 나아가 북쪽에 다달으니


日昧昧其將暮(일매매기장모)

해는 뉘엿뉘엿 어두워진다.


舒憂娛哀兮(서우오애혜)

시름을 풀고 서글픔을 달래며


限之以大故(한지이대고)

지나간 큰일들을 마감하리라.


亂曰(난왈)

노래 끝에 이르기를,


浩浩沅湘(호호원상)

넘실거리는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分流汩兮(분류율혜)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고


脩路幽蔽(수로유폐)

닦아 놓은 길은 깊숙이 가리워 져


道遠忽兮(도원홀혜)

저쪽 편 먼 길은 사라져 버린다.


懷質抱情(회질포정)

가슴에 품은 도타운 정은


獨無匹兮(독무필혜)

비할데 없이 우뚝하지만


伯樂旣沒(백락기몰)

백락(伯樂)이 이미 죽었으니


驥焉程兮(기언정혜)

천리마를 어찌 알아보려나?


萬民之生(만민지생)

만민(萬民)이 한 세상에 태어나

各有所錯兮(각유소착혜)

각기 제자리가 있거늘


定心廣志(정심광지)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余何畏懼兮(여하외구혜)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增傷爰哀(증상원애)

상심이 더하여 서럽게 울며


永歎喟兮(영탄위혜)

기다랗게 한숨을 쉰다.


世溷濁莫吾知(세혼탁막오지)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이 없으니


人心不可謂兮(인심불가위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울 수 없구나.


知死不可讓(지사불가양)

죽음을 물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爰勿愛兮(원물애혜)

애석하다 여기지 말아라.


明告君子(명고군자)

분명히 군자에게 고하노니


吾將而爲類兮(오장이위류혜)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리라!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이 죽은 후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문학을 좋아하여 부(賦)로써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굴원과 같이 완곡하고 함축적인 문체에는 능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직간을 행하지 않았다. 초나라는 날이 갈수록 국세가 약화되어 굴원이 죽고 나서 몇 십년 후에 마침내 진나라에 의해 멸당당하고 말았다.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이래 100년여 년이 지나자 한나라에 가의(賈誼)란 사람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가 되어 상수(湘水)를 지나다 제문을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을 애도했다.


< 가의열전으로 계속 >


주석

1) 초무왕의 아들 막오(莫敖) 하(瑕)가 굴(屈에 봉해져 그 성을 굴(屈)로 삼았다.

2) 초회왕(楚懷王)/ 기원전 328년에 즉위하여 296년까지 재위한 초나라 군주다. 미(羋) 성에 이름은 웅괴(熊槐)이며 초위왕(楚威王)의 아들이다. 집정기간 중, 제나라와 합종을 맺어 진나라의 동진을 막았다. 이에 진혜왕(秦惠王)이 장의(張儀)를 보내 제나라와 절교를 하면 그 댓가로 상오(商於)의 땅 6백리를 할양하겠다고 했다. 상오의 땅을 탐낸 회왕이 제나라와 절교를 하고 사람을 보내 상오의 땅을 받아오게 했다. 그러나 장의는 당시 주기로 한 땅은 6리라고 발뺌을 했다. 분노한 회왕이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계속된 싸움에서 많은 군사를 잃고 영토를 빼앗겼다. 진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소왕(昭王)이 회담을 제의하자 무관(武關) 들어간 들어간 회왕은 진나라에 의해 억류되고 말았다. 진나라는 회왕을 협박하여 초나라 땅의 할양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에 구금된 상태로 있다가 감시가 소흘한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했으나 진나라의 추격군에게 사로잡혀 결국은 환국하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병들어 죽었다.

3) 좌도(佐徒)/ 초나라의 관직 이름으로 왕의 정사를 보좌하고 조령(詔令)을 초안했다.

4) 근상(靳尙)/ 전국 때 초나라의 대신으로 초회왕에 의해 상관대부로 임명되었다. 회왕이 굴원에게 나라의 율령을 제정하라고 명하자 그는 질투심에 한을 품고 굴원이 작성한 율령의 초안을 빼앗으려고 시도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굴원이 자기의 공을 지나치게 과시하여 교만해 한다고 참소했다. 이로써 굴원은 회왕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후에 진나라가 장의를 보내 초나라에 유세를 행하게 하여 초와 제 두 나라의 동맹을 교란시키려고 하자 회왕이 장의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장의로부터 뇌물을 받은 근상은 온 힘을 다해 변호하여 장의가 살아서 돌아가게 했다.

5)이소(離疎)/ 애타는 걱정에 걸리다, 근심에 걸리다, 애타는 호소, 또는 불평불만(不平不滿)」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애타는 호소」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6)진혜왕(秦惠王)/기원전 337년 재위에 올라 311년에 죽은 진나라의 군주다. 태자시절 사부(師傅) 공자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의 사주를 받아 고의로 상앙(商鞅)이 시행하고 있던 신법을 범했다. 이에 상앙은 그의 사부들을 잡아 죄를 물었다. 효공의 뒤를 이어 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혜왕은 상앙을 반역죄로 몰아 거열형에 처했으나 상앙이 시행하던 신법은 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외확장과 내정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수차에 걸쳐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황하 이서 지역의 위나라 령의 하서(河西) 지구를 수복하고 계속해서 진군하여 북쪽의 상군(上郡)을 점령했다. 사마착(司馬錯)의 건의를 받아들여 촉(蜀), 저(苴), 파(巴) 등의 나라를 멸하고 진나라의 영토에 편입시켜 진나라의 국력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켜 후에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기반을 마련했다. 제(齊)와 초(楚) 두 나라가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하자 장의를 초나라에 파견하여 600리의 땅을 할양한다고 속임수를 써서 초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의 우호관계를 끊게 만들었다. 이어서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진나라를 공격하자 단양(丹陽)과 남전(藍田)의 2차에 걸친 싸움에서 초군을 대파하고 초나라 령이었던 한중(漢中)의 땅 600리를 점령했다. 초나라를 이로써 국세가 기우러지기 시작하여 후에 결국은 수도를 진나라에 빼앗기고 나라를 지금의 하남성 진현(陳縣)으로 옮겨야 했다.

7)위질(委質)/ 타국의 신하가 상대국의 군주를 접견할 때 무릎을 끓고 땅에 엎드리는 의식에서 나온 말로 귀순(歸順), 신복(臣服)이란 말로 쓰이게 되었다.

8)상오(商於)/ 상(商)과 오(於)를 말하며 상(商)은 지금의

9) 삼려대부(三閭大夫)/ 초나라의 관직명으로 왕족에 관련된 업무를 관장했다. 사기집해에 ‘삼려의 직책은 왕족인 즉 소(昭), 굴(屈), 경(景) 등의 삼성의 일을 관장하고 족보를 만들었으며 현량을 이끌고 국사에 참여했다.‘고 했다.

10)회사(懷沙)/ ‘돌을 가슴에 품고’라는 뜻이다. 굴원은 이 시를 지은 후에 돌을 가슴에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11)교수(巧倕) : 중국 고대 신화상의 인물 공공(共工-技術官)의 이름이다. 교(巧)는 공공의 재주가 교묘하여 붙인 것이다.

①신화 상의 인물로 염제의 후손이다. 인면사신(人面蛇身)에 붉은 털의 몸으로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녔다. 전욱(顓頊)과 임금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화가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자 하늘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부러뜨리고 땅을 감싸고 있던 그물을 끊어 싸움에서 승리를 취했다.

② 요순(堯舜) 때 대신으로 이름은 궁기(窮奇)이다. 공공은 치수를 담당하는 관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요임금이 그 신하들과 자기의 후계자로 누구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자 대신 중에 환도(讙兜)라는 사람이 그를 추천했다. 그러나 요임금이 공공은 입으로는 선을 말하나 속으로는 사악한 마음을 품고 있고, 겉으로는 공경하는 자세를 취하나 안으로는 커다란 증오심을 품고 있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잇자 환도가 다시 그 후계자로 공공을 천거했으나 순임금 역시 요임금의 유시를 따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후에 공사(工師)의 직을 맡은 공공은 그의 사악한 행동이 들어나 환도, 삼묘(三苗), 곤(鮌) 등의 3인과 소위 사흉(四凶)이라는 죄명을 받아 유주(幽州)로 추방되었다.

12)이루(離婁)/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는 털로 볼 수 있었다는 중국 고대 신화상의 황제(黃帝) 때 인물이다.

13)백락(伯樂)/ 춘추 때 진나라 목공 때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했다.

14) 기원전 279년 초나라의 도성 영도가 백기가 이끄는 진군에게 의해 함락되자 이에 상심한 굴원이 돌을 가슴에 품고 멱라수에 빠져 죽은 해는 기원전 278년이다. 영성을 빼앗긴 진나라는 나라를 하남성 진현으로 옮겼다가 다시 안휘성 수춘(壽春)에서 기원전 224년 왕전이 거느린 진군에 의해 멸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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