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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열전(黥布列傳)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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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31. 경포(黥布)


경포는 육읍(六邑)1) 출신으로 성은 영(英)이다. 진나라 때 어떤 사람이 포의(布衣)의 어린 나이였던 그의 관상을 보고 말했다.

" 죄를 지어 형을 받게 되나 결국 제후왕이 될 상이다. "

이윽고 장성한 경포가 법에 연좌되어 경형(黥刑)을 받게 되자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 내 관상이 형을 받은 후에 제후왕이 된다고 했는데 이제 드디어 그 예언이 실현되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조롱하면서 비웃었다. 형을 받은 경포는 여산(驪山)으로 보내져 진시황릉 축조공사에 노역으로 복역하게 되었다. 당시 여산에는 수십 만에 달하는 노역들이 복역하고 있었는데 경포는 그중 노역들의 두목 및 영웅호걸들과 교제를 맺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노역들을 이끌고 여산의 공사장을 탈출하여 상수(湘水) 주변의 강도떼가 되었다.

진승이 기의하자 경포는 즉시 파군(番君) 오예(吳芮)를 찾아가 뜻을 같이하고 반진의 깃발을 들어 군사 수천 명을 모았다. 파군이 그의 딸을 경포의 처로 주었다. 장한이 진승을 멸하고 다시 잔당인 여신(呂臣)까지 격파하자 경포는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여 진나라의 좌우 교위(校尉)를 공격하여 청파(淸坡)에서 무찔리고 계속 동쪽으로 진군했다. 그때 진영(陳嬰)2)은 항량이 강동(江東)의 회계(會稽)에서 일어나 강수를 도하하여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씨들은 대를 이은 초나라의 장군 가문이라고 생각한 진영은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회수를 도하하여 남쪽으로 가서 항량의 밑으로 들어갔다. 경포와 포장군(蒲將軍) 역시 그 뒤를 따라 항량의 군대에 합류했다. 항량이 서쪽으로 진격하여 경구(景驅)와 진가(秦嘉)3) 등을 공격할 때 경포의 공로는 항상 여러 장군들 위였다. 설(薛)에 당도한 항량은 진왕(陳王) 진승이 장한이 이끄는 진군(秦軍)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즉시 초나라 왕실의 후손을 찾아 왕으로 추대하고 초회왕(楚懷王)이라고 불렀다. 항량은 무신군(武信君)이 되고 경포는 당양군(當陽君)이 되었다. 얼마 후에 항량이 정도(定陶)에서 진군과의 싸움에서 죽자 초회왕은 치소를 팽성(彭城)으로 옮기고 여러 장수들과 함께 영포도 함께 도성으로 불러 모이게 했다. 당시 진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당해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받고 있던 조나라 군대가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회왕은 송의(宋義)를 상장(上將), 범증을 말장(末將), 항우(項羽)를 차장(次將)에 임명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그때 영포와 포장군은 초나라의 장군으로 모두 송의에 속하여 북으로 진군하여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다. 도중에 항우가 송의를 하상(河上)에서 살해한 후, 회왕이 자신을 송의 대신 상장군에 임명했다고 공포했음으로 모든 장수들은 다시 항우에게 속하게 되었다. 항우가 먼저 영포를 시켜 하수를 건너 진나라 군사들을 공격하도록 하자 영포는 여러 번 진나라와 싸워 모두 승리했다. 항우가 즉시 모든 군사를 이끌고 하수를 건너 진군을 격파하고 진나라 대장 장한의 항복을 받았다. 초나라 군사들은 싸우면 항상 승리했음으로 그들의 공적은 여러 제후들 위에 있어 제후들의 군사들은 초나라 장령들의 말에 복종해야 했다. 그래서 영포는 여러 장수들을 호령할 수 있었다.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다가 신안(新安)에 당도하자 경포를 시켜 깊은 밤을 이용하여 장한이 데리고 항복한 진나라 군졸 20여 만 명을 습격하여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이윽고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한 항우는 수비군의 저항으로 통과하지 못하자 다시 경포 등을 시켜 먼저 샛길로 진격시켜 함곡관을 공격하게 했다. 영포가 관문을 지키던 군사를 격파하고 항우를 입관시켜 그 뒤를 따라 함양에 입성했다. 경포는 항상 항우의 군대의 선봉에 섰다. 항우가 휘하의 장수들을 제후왕으로 봉할 때 경포는 구강왕(九江王)이 되어 도읍을 육(六)으로 삼았다.

한 원년 기원전 206년, 희하(戱河)에서 해산한 제후들은 각기 자기 봉국으로 부임했다. 항우는 회왕을 의제(義帝)로 세우고 그 도읍을 장사로 옮기게 한 후에 즉시 구강왕에게 령을 내려 도중에 의제의 행렬을 습격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그해 8월 경포는 군사를 이끌고 의제의 행렬을 습격하여 도주하는 의제를 침현(郴縣)까지 추격하여 살해했다.


한 2년 기원전 205년, 제왕 전영(田榮)이 초나라에 반기를 들자 항우는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구강왕에게 참전을 요청했다. 구강왕은 병을 핑계로 오지 않고 수천 명의 군사와 장수를 보냈을 뿐이었다. 한나라가 팽성의 싸움에서 초나라에게 패할 때도 경포는 다시 병을 칭하고 초나라를 돕지 않았다. 항왕은 이로써 경포를 원망하며 여러 번 사자를 보내 경포를 책망하며 소환했으나 경포는 감히 항우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항우가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조나라에 대한 근심이 있고 서쪽으로는 한나라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세력은 오로지 구강왕 한 사람뿐이었고 또한 재능이 있는 경포와 친해져서 다시 쓰고 싶은 욕심에 공격하지 않았다.

한 3년 기원전 204년, 한왕이 초나라를 공격했으나 팽성의 대전에서 패하고 양나라 땅을 벗어나 우읍(虞邑)에서 이르러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 그대들과 같은 인사들 중에서 나와 더불어 천하의 대사를 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구나!"

알자(謁者) 수하(隨何)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 폐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

한왕이 말했다.

" 누가 능히 나를 위해 사자가 되어 회남(淮南)의 구강왕에게 가서 초나라를 배반하게 만들어 항왕이 군사를 내어 제나라에 몇 개월 더 머무르게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내가 천하를 취하는 데 만전을 기할 수 있겠는가? "

수하가 대답했다.

" 신이 회남으로 가는 사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

수하는 그 즉시 20여 명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회남에 사자로 갔다. 회남에 당도한 수하는 회남국 태제에게 주재를 부탁했으나 3일 동안이나 회남왕을 접견하지 못했다. 수하가 태제에게 말했다.

" 구강왕이 이 수하를 접견하지 않은 이유는 필시 초나라는 강하고 한나라는 약하기 때문에 한나라가 이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오. 이 수하로 하여금 접견을 허락했다가 내 말이 맞는다면 그것은 구강왕께서 듣고자 하는 바이고, 내 말이 확실하지 않다면 이 수하와 함께 20여 명의 수행원들을 회남의 시중에서 도끼로 참수하여 왕이 한나라를 멀리하고 초나라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징표로 삼으면 되는 일이오. "

태제가 그 즉시 구강왕에게 수하의 말을 고하자 왕은 곧바로 수하의 불러 접견했다. 수하가 경포를 보고 말했다.

" 한왕이 신으로 하여금 서신을 주어 대왕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신이 보건대 대왕과 초나라는 어떻게 친하게 지내는지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

" 과인은 북쪽의 항왕을 향해 신하의 신분으로 모시고 있소."

" 대왕과 항왕은 같은 제후의 신분이 아닙니까? 북면하여 신하로써 받들고 있다면 그것은 필시 초나라가 강하기 때문에 나라와 몸을 맡길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항왕이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몸에 친히 영채나 보루를 세울 때 이용하는 판축(版築)과 같은 기구를 몸에 지고 사졸들 앞에 서서 진군할 때 대왕께서도 마땅히 회남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종군하여 초나라 군사의 선봉에 섰어야 했음에도 기껏해야 4천의 군사만을 보내 초나라를 돕게 했습니다. 무릇 북면하여 신하로써 남을 모시는 방법이 원래 이렇습니까? 옛날 한왕이 팽성을 공격했으나 제나라를 공격하던 항왕이 미처 귀환하지 못했을 때 대왕은 마땅히 재빠른 행동으로 회남의 군사를 이끌고 회수를 건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팽성으로 달려가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만여 명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던 대왕께서는 단 한 명도 회수를 건너지 않고 팔을 늘어뜨린 채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맡기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원래 그래야 합니까? 대왕께서는 입으로만 초나라를 섬긴다 말하고서는 지금은 다시 확실히 스스로를 항왕에게 맡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은 대왕으로써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초나라에 등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한나라가 아직 약하기 때문에 대왕의 몸을 맡길만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초나라 군사가 비록 강하다고 하나, 천하에 이미 의롭지 못하다는 이름을 얻은 원인은 제후들끼리 한 맹약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의제(義帝)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왕은 전투력만을 의지하여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는 반면에 한왕은 제후들을 이끌고 성고(成皐)와 형양(滎陽)으로 돌아와 지키며 촉(蜀)과 한중(漢中)의 곡식을 군량미 삼아 보루를 깊게 한 후에 군사들을 나누어 변경을 순찰하고 성과 요새를 지키고 있습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뒤를 추격해 왔으나 중간의 양나라 땅을 가로질러 8-9백리에 달하는 적국의 땅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전투를 하고자 하나 상대방이 응해주지 않아 싸울 수도 없고, 성을 공격하려고 하나 힘이 닿지 못하는 사이 늙고 유약한 군사로 천리 밖의 군량을 운송하고 있습니다. 초나라가 군사들이 형양과 성고에 이르렀으나 한군이 굳게 지키기만 할뿐 미동도 하지 않으니 앞으로 나아가고자하나 관문을 돌파할 수 없고, 후퇴하고자 하나 한군의 추격이 두려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고로 초나라 군사들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설사 초나라가 한나라의 싸움에 승리를 취한다 해도 그 정세는 쉽게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즉 초나라의 강포함을 두려워한 제후들은 스스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단결하여 서로 구원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초왕이 대중들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초나라가 한나라보다 못하다는 것은 정세를 보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한나라와 뜻을 같이 하여 만전을 기하지 않고 위망(危亡)의 초나라에 몸을 맡기려고 하심은 신이 생각하기에 잘못 판단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남의 군사들만으로는 초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군사를 내어 초나라에 등을 돌리신다면 항왕은 필시 대왕의 군사로 인하여 지체할 것이고, 그 지체된 수 개 월 동안 한나라는 천하를 취하는데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과 함께 칼을 뽑아 들고 한나라에 귀항하시면 한왕은 필시 땅을 떼어 대왕을 제후왕에 봉할 것이니 회남은 말할 것도 없이 대왕의 봉지가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한왕은 신을 사자로 보내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리게 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회남왕이 말했다.

" 그대의 뜻을 받들겠소!"

경포는 비밀리에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항복하기로 하고 절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그때 초나라 사자도 회남에 당도하여 관사에 짐을 풀고 바야흐로 경포에게 군사를 내라고 독촉하려는 찰나였다. 수하가 곧바로 초나라 사자가 묶고 있는 관사에 들려 상석에 앉아 말했다.

" 구강왕은 이미 한나라에 속하기로 결정했는데 초나라 사자는 어찌하여 아직도 군사를 내라고 조르고 있소? "

경포가 듣고 악연히 놀란 초나라 사자가 자리에 일어나 역관 밖으로 나갔다. 수하가 경포를 설득했다.

" 대왕과 한나라는 이미 화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초나라 사자가 돌아가 고하지 못하도록 그의 뒤를 쫓아가 죽이시고 이제는 오로지 한나라와 함께 힘을 합치도록 하십시오. "

경포가 대답했다.

" 그대의 가르침대로 군사를 일으켜 항왕을 공격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는 것 같소."

그래서 경포는 사람을 보내 초나라 사자를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가 항성(項聲)과 용저(龍且)를 장수로 삼아 회남을 공격하게 하고 항왕은 하읍(下邑)4)으로 진공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용저가 회남을 공격하여 경포의 군사를 격파했다. 경포는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한나라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도중에 초왕에게 잡혀 살해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샛길을 이용하여 수하와 함께 한나라로 들어갔다. 회남왕이 도착했을 때, 한왕은 평상에 앉아서 시녀들로부터 발을 씻고 있는 상태에서 거만한 태도로 경포를 불러 접견했다. 경포가 크게 노하여 후회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품게 되었다.


이윽고 접견을 끝내고 한나라가 준비한 관사에 들어가지 휘장이 쳐진 방에는 준비된 음식과 수행관원들은 모두 한왕 자신에게 행하는 것과 같음을 본 경포는 기대이상이었음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경포는 수하를 몰래 구강(九江)으로 들여보냈다. 그때는 이미 초나라가 항백을 시켜 구강의 군사들을 모두 수습한 후 경포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난 후였다. 경포가 보낸 사람은 평소에 경포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수천 명을 모아 끌고 와서 한나라에 복속시켰다. 한나라는 경포의 군사에 증원병을 더하여 함께 북쪽으로 진군시켜 성고를 지키게 했다. 한왕 4년 기원전 202년 7월, 경포를 회남왕에 봉하고 함께 항우를 공격했다.

한왕 5년 기원전 201년, 경포가 사람을 구강으로 보내 그 중 몇 개 현을 얻었다.

한왕 6년 기원전 200년, 경포와 유가(劉賈)가 구강으로 들어가 대사마 주은(周殷)을 설득하자 주은은 초나라를 배반하고 구강의 군사들을 모두 동원하여 한군과 함께 항우를 공격하여 해하(垓河)에서 초군을 격파했다.

항우가 죽고 천하의 향방이 이미 정해지자 황제가 공신들을 위해 주연을 베풀었다. 황제가 수하의 공을 폄하하며 썩은 유자(孺子)를 천하에 어디다 쓰겠느냐?라고 말했다. 수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 옛날 폐하께서 군사들을 이끌고 팽성을 공격할 때, 제나라를 공격하던 초왕이 미처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폐하께서는 보졸 5만과 기병 5천으로 능히 회남을 취할 수 있었겠습니까? ”

황제가 대답했다.

“ 할 수 없었소! ”

수하가 계속 말했다.

“ 폐하의 명으로 소신을 포함한 20여 명이 회남에 사자로 가서 폐하의 뜻하신 바를 행했습니다. 그때 이 소하가 세운 공은 보졸 5만과 기병 5천이 세운 공보다 더 훌륭한 일인데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소신을 부유(腐儒)라고 말씀하시고 부유의 무리는 천하에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십니니까?”

황제가 말했다.

“ 내가 이제야 비로소 그대의 공이 큰 것을 알게 되었소.”

황제는 그 즉시 수하를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하고 경포에게 부절을 주어 회남왕에 봉하고 육(六)을 치소로 삼아 구강(九江)、여강(廬江)、형산(衡山)、예장(豫章) 등의 군을 모두 속하게 했다.

  한고조 7년 기원전199년에는 진(陳)으로 나아가 조현을 올렸고 8년 에는 낙양(駱陽)에, 9년에는 장안(長安)에 들어가 조현을 올렸다.

한고조 11년 기원전 195년, 고후(高后)가 회음후(淮陰侯) 한신을 주살했다. 경포가 그 일로 인해 마음속으로 매우 두려워했다. 여름, 한나라가 양왕 팽월을 주살하고 그 시신으로 젓갈로 담아 상자에 넣어 제후들에게 두루 돌렸다. 젓갈이 회남에 당도했을 때 회남왕은 사냥을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조정의 처사에 크게 분노한 회남왕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군사를 모아 인근의 군현에 경계를 강화시켰다.

경포에게는 사랑하는 희첩이 있었다. 몸이 아파 의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청했다. 의사의 집은 중대부 분혁(賁赫)의 집과 대문을 마주보고 있는 이웃집이었다. 여러 번 의원의 집을 드나들던 희첩을 보게 된 분혁은 자신이 궁중에서 시중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희첩을 접대하는 일도 자기의 직무라고 생각하여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의원의 집을 찾아가 같이 먹었다. 희첩이 궁중으로 돌아가 경포의 시중을 들다가 한담하던 중에 분혁이 장자(長子)라고 칭찬했다. 경포가 노하여 물었다.

“ 그대가 어찌 분혁을 아는가?"

희첩이 저간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으나 경포는 두 사람이 음란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이를 두려워한 분혁이 병을 칭하고 궁중에 일하러 나오지 않았다. 왕이 더욱 노하여 분혁을 체포하려고 했다. 분혁은 회남왕이 반란을 희책하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린 후에 몰래 전거(傳車)를 타고 경포를 고발하기 위해 장안으로 달아났다. 경포가 알고 뒤를 추격하게 했으나 잡지 못했다. 장안에 당도한 분혁은 고변장을 써서 경포의 모반을 조정에 고발했다. 경포가 이미 모반을 계획한 증거가 있으며 그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그를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했다. 황제가 고변장을 읽고 상국 소하에게 의견을 물었다.“

소하가 말했다.

“ 경포가 마땅히 모반을 하지 않았다면 원한을 품고 있는 자의 무고로 죄 없는 자를 주살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청컨대, 우선 분혁을 잡아들이고, 별도로 사람을 시켜 비밀리에 회남왕의 동태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

죄를 짓고 도망친 분혁이 이미 조정에 자기를 고발했으며, 더욱이 분혁이 폭로한 자기의 비밀스러운 일은 원래 의심을 받고 있었던 일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 조정에서 보낸 사자가 당도하여 어느 정도 자기의 계획을 눈치 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경포는 즉시 분혁의 가족들을 몰살시키고 군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소식을 들은 황제는 분혁을 바로 석방하고 토벌군의 장군으로 임명했다.


황제가 여러 장수를 향해 물었다.

" 경포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어찌해야 하오?"

장수들이 모두 말했다.

"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여 그 애숭이를 땅에 묻어버리겠습니다. 어찌 능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

여음후(汝陰侯) 등공(滕公)이 초나라 영윤을 지냈던 사람을 불러 그의 의견을 물었다. 영윤을 지냈던 사람이 대답했다.

" 옛날부터 당연히 일어나게 되어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등공이 그 까닭을 물었다.

" 황제가 땅을 떼어 그를 왕으로 삼아 작위가 매우 존귀하게 되어 남면하는 만승의 나라 주인이 되었는데 그런 것들을 놔두고 어찌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

" 금년에 죽인 팽월, 작년에 죽인 한신, 그리고 경포 세 사람은 세운공이 똑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 화가 자기 몸에 미쳤다고 생각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등공이 궁궐로 들어가 황제에게 영윤의 말을 전했다.

" 신의 문객 중에 옛날 초나라의 영윤을 지냈던 사람으로 설공(薛公)이라고 있습니다. 설공이 제법 육도삼략에 밝사오니 불러서 한 번 하문해보시기 바랍니다."

황제가 설공을 불러 경포의 반란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설공이 대답했다.

" 경포의 반란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경포가 상책을 취한다면 태항산 이동은 한나라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중책을 취한다면 그와 한나라와의 승패는 알 수 없게 되고, 하책을 취한다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청하실 수 있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 상책이란 어떤 계책인가? "

설공이 대답했다.

" 동쪽으로 오나라를 취하고, 서쪽으로는 초나라를 취하면서 동시에 제를 병탄하고 노(魯) 땅을 점령한 후 격문을 연(燕)과 조(趙) 땅에 전하여 그 땅을 굳게 지키라고 하면 태항산 이동의 땅들은 이미 한나라 땅이 아닐 것입니다. "

" 그렇다면 중책은 어떤 경우인가?"

" 동쪽으로 오를 취하고 서쪽으로는 초(楚)를 점령한 후에 한나라와 위(魏)나라 땅을 겸병하고 오산(敖山)의 곡창(穀倉)을 취하여 성고(成皐)의 관문을 봉쇄하여 한나라에 대항한다면 그 승패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

“ 그렇다면 하책은 어떤가? ”

“ 동쪽으로 오(吳) 땅을 취하고 서쪽으로는 하채(下蔡)를 점령한 후, 치중을 모두 옛날 월(越)나라 땅으로 옮기고 본인은 장사(長沙)로 들어가는 방책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하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잠을 청하실 수 있고 조정은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영포는 그 중 어떤 계책을 취할지 알 수 있겠는가? ”

“ 그는 오로지 하책을 취할 수 있을 뿐입니다. ”

“ 무엇 때문에 그는 상책이나 중책을 취하지 않고 하책만을 취한단 말인가? ”

“ 영포는 원래 형을 받아 여산에서 노역을 하던 형도(刑徒) 출신에 불과한 자로 스스로 분투하여 대국의 군주로 성공했습니다. 그가 이룬 모든 성과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였지 자기 뒤의 만세에 걸쳐 백성들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하책을 취한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

황제가 설공의 말을 칭송했다.

“ 그대의 분석이 매우 훌륭하다. ”

황제는 설공을 천호의 식읍에 봉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유장(劉長)을 회남왕(淮南王)에 봉하고 군사를 일으켜 친히 인솔하여 영포를 토벌하기 위해 동쪽으로 진군했다.

반기를 들 때 든 영포가 그의 장수들에게 말했었다.

“ 황제는 이미 나이가 들어 노쇠해져 싸움을 싫어하니 틀림없이 직접 출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휘하의 장수를 보낼 터인데 두려운 사람은 오직 회음후 한신과 팽월 뿐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이미 죽었음으로 나머지 장군들 중에는 내가 두려워할만한 사람은 없다. ”

그리고는 그 즉시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과연 설공이 예측한 대로 영포는 동쪽의 형(荊)을 쳤다. 형왕 유가(劉賈)는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치다 부릉(副陵)에서 살해되었다. 유가의 군사를 모두 접수한 영포는 회수를 건너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가 군사를 출동시켜 서(徐)와 동(僮) 사이의 땅에서 영포의 군사들을 막았다. 초나라 장수들은 그들의 군사를 3대로 나누어 서로 호응할 수 있도록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도록 진을 쳤다. 초나라 장수가 말했다.

“ 영포는 용병에 능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법에는 제후들이 자신의 영토 내에서 작전을 벌이게 되면 사졸들은 자기의 집과 농지가 훼손될 것을 꺼려하여 쉽게 도망치고 맙니다. 지금 초나라의 군사를 삼분한 남은 2군은 모두 도망치고 말 것인데 어찌 서로 구할 수 있겠습니까? ”

초왕이 듣지 않았다. 영포가 과연 초나라 군사의 일군을 격파하자 나머지 2군은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계속해서 영포가 서쪽으로 진격하여 황제가 이끄는 군사들과 기현(蘄縣)의 서쪽 회견(會甄)에서 조우했다. 영포의 군사들의 사기가 매우 높았음으로 황제는 곧바로 용성에 벽루를 쌓은 후에 영포의 군영을 살펴보았다. 영포가 진 군진은 옛날 항우가 행하던 진법과 같아 황제가 매우 싫어했다. 황제가 벽루 위에서 서로 마주보며 영포를 향해 외쳤다.

" 너는 무엇이 못 마땅해서 반란을 일으켰느냐? "

영포가 대답했다.

" 황제가 되고 싶어서다."

황제가 영포에게 욕을 하며 이어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영포의 군사가 싸움에 패하여 달아났다.

회수를 도하한 후에도 여러 번 싸움을 했으나 그때마다 이기지 못하고 백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강남으로 도주했다. 옛날 영포에게 딸을 주어 영포의 처로 삼게 한 파군 오예(吳芮)은 장사왕에 봉해졌으나 그때는 이미 죽고 그 뒤를 아들 오신(吳臣)이 잇고 있었다. 장사애왕 오신이 사람을 경포에게 보내 거짓으로 경포와 함께 도망쳐 월(越)로 유인하게 했다. 다시 경포가 믿고 그를 따라 다시 파양(鄱陽)으로 들어갔다. 파양 사람이 자향(玆鄕)의 백성들 밭의 막사에서 숨어있다가 경포를 살해하고 이어서 경포의 종족들을 멸족시켰다.

황제가 유장을 회남왕으로 세우고 분혁은 기사후(期思侯)에 봉했다. 싸움에 종군하여 공을 세운 많은 장수들도 후에 봉해졌다.

태사공이 말한다.

" 영포라는 사람은 그 선조가 모두 춘추 때 초나라에 멸망한 제후국 영(英), 육(六)을 세운 고도(皐陶)의 후예가 아니었던가? 죄를 지어 경형을 받은 몸으로 참으로 신속하게 흥기할 수 있었다. 항우에 의해 천만 명에 달하는 사졸들이 갱살을 당할 때 경포는 항상 그 학살의 현장에 선두에 서 있었다. 그가 세운 공은 다른 제후들 위에 있어 결국 제후왕에 봉해졌으나 후에 역시 그 자신도 세상 사람들에게 의해 찢겨져 목숨을 잃게 되었다. 화는 자기가 사랑하는 희첩이 심었고, 투하는 마음이 환란을 일으켜 마침내는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 경포열전 끝 >


주석

1) 육(六)/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동북의 육안시(六安市)에 있었던 언(偃) 성(姓)의 군소 제후국. 순임금이 수리 공사에 공을 세운 고도(皐陶)를 이곳에 봉했다. 초목왕 4년 기원전 622년에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2) 진영(陳嬰)/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84년에 죽은 서한의 창업공신이다. 지금의 안휘성 천장시(天長市)인 동양(東陽) 사람으로 진말 동양현의 옥리였다. 위인이 근면, 신중했으며 신의를 잘 지켜 평소에 장자(長子)라고 불리웠다. 진2세 원년 기원전 209년 동양의 백성들이 진승의 기의에 호응하여 일어설 때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감히 스스로 왕의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백성들을 이끌고 항량을 찾아가 그의 부하가 되었다. 항량은 그를 장군에 임명했다. 초회왕이 서자 그는 상주국(上柱國)에 임명되었으며 5개 현에 봉해졌다. 한고조 5년 기원전 202년 항우가 죽자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한나라에 항복했다.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하여 예장, 절강 등의 땅에 할거하여 스스로 왕호를 참칭하고 있던 장식(壯息)을 공격하여 평정했다. 다음 해에 그는 당읍(堂邑)에 봉해지고 1,800호의 식읍을 받았다. 후에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의 상(相)이 되어 11년 동안 있었다. 여태후 4년인 기원전 184년에 죽었다.

3) 진가(秦嘉)/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08년에 죽은 진한교체기의 광릉(廣陵 :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揚州市)) 출신 기의군(起義軍) 장령이다. 진나라 이세황제 원년 기원전 209년 진승이 진나라에 대항해서 거병하자 그와 동설(董緤)은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의 동해태수 경(慶)을 담(郯)에서 공격했다. 진승이 무평군(武平君) 반(畔)을 보내 진가의 군사들을 통수하는 장군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그는 그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대사마가 되어 무평군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진가는 무평군을 진왕(陳王)의 명이라고 빙자하여 살해했다. 다음 해에 진승이 싸움 중 전사하자 그는 다시 경구(景駒)를 초왕으로 세우고 자기는 상장군이 되어 팽성(彭城)에 주둔했다. 이때 유방(劉邦)과 장량(張良)이 같이 와서 진가를 따랐다. 그때 하비에 주둔하고 있던 항량이 북진하려고 하자 그의 북상을 저지하려고 하던 진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진가는 싸움에서 지고 달아나다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魚臺縣) 동남에서 경구와 같이 싸움 중에 죽고 그 군사들은 모두 항량의 군대에 합쳐졌다.

4) 하읍(下邑)/ 지금의 안휘성 탕산현(碭山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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