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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2-24 21:21:347277 
굴원가의열전(屈原賈誼列傳) 24-2.가의(賈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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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24-2 . 가의(賈誼)


가생(賈生)의 이름은 의(誼)고 낙양(駱陽) 사람이다. 나이 18세에 능히 시경을 낭송하고 서경에 익숙하여 그 명성이 군내에 알려졌다. 오정위(吳廷尉)1)가 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가의가 수재라는 소문을 듣고 불러 문하에 두고 매우 총애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문제가 하남태수 오공(吳公)의 치적이 천하제일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또한 오공은 이사(李斯)2)와 동향으로 그의 학설에 능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정위(廷尉)3)로 삼았다. 오정의가 가생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제자백가의 설에 매우 정통하다고 천거했다. 문제는 가의를 불러 박사(博士)4)로 삼았다. 그때 가생의 나이는 20살로 여러 명의 박사 중 가장 어렸다. 황제가 명을 발할 때 매 번 불려가 자문을 받았는데 여러 나이 많은 박사들도 능히 언급할 수 없었던 사안도 가생이 모두 대답했다. 사람들은 모두 각기 가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대신 말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박사들은 가생의 재능은 자기들이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효문제가 매우 기뻐하며 그의 직위를 차례를 뛰어 넘어 올렸다. 가생은 일 년만에 일약 태중대부(太中大夫)5)가 되었다.

 가생은 한나라가 일어나 문제가 즉위하기까지 20여 년이 지난 당시 천하는 화평하고 백성은 안락함으로 마땅히 정삭(正朔)6)을 바꾸어 역법을 새로 만들고, 복색을 새로 규정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관명을 새로 정하고, 예약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의 법제에 관한 초안을 작성하여 색은 황색을 숭상하고, 수는 다섯을 쓰며 새로운 관명 등을 새로 만들어 진나라 때 만든 모든 법제를 바꾸려고 했다. 효문제는 즉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겸양한 자세로 정사에 임했기 때문에 가생이 마련한 법제 등의 정책을 시행하려는 데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후에 여러 율령들을 모두 바꾸고 제후들은 모두 봉국으로 돌아가 각자의 나라를 다스려야 했던 일은 모두 가생으로 인해서 일어났다. 그래서 천자는 가생을 공경(公卿)의 자리로 승진시키려고 했다. 이에 강후(絳侯) 주발(周勃), 동양후(東陽侯)7) 장상여(張相如)8), 영음후(潁陰侯) 관영(灌嬰), 풍경(馮敬)9) 등과 같은 대신들이 모두 일어나 음해하며 가생의 잘못을 지적했다.

「낙양의 어린 나이에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자가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하는 마음에 조정의 정사를 문란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자는 가생을 멀리하고 그가 초안한 정책들을 채용하지 않고 마침내 가생을 장사왕의 태부로 보내고 말았다.

천자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 임지로 떠나게 된 가생은 장사는 멀리 떨어진 변방에 습한 지역이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더욱이 좌천되어 가는 자리라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상수(湘水)를 건널 때 부(賦)를 한 수 지어 굴원을 애도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恭承嘉惠兮俟罪長沙(공승가혜사죄장사)10)

은혜(恩惠)를 받고서 장사에서 죄를 기다린다.


仄聞屈原兮自湛汨羅(즉문굴원혜자담멱라)11)

어렴풋이 들으니 굴원이 멱라에 잠겼다기에


造托湘流兮敬弔先生 (조탁상류혜경조선생)

상강(湘江)의 물에 몸을 맡겨 선생을 조문한다.

遭世罔極兮迺隕厥身(조세망극혜내운궐신)

세상이 망극(罔極)하여 그 몸을 바쳤다니


嗚呼哀哉兮逢時不祥(오호애재혜봉시불상)

슬프도다! 좋을 때를 만나지 못함이여.


鸞鳳伏竄兮鴟鴞翶翔(난봉복찬혜치효고상)

난봉(鸞鳳)은 잡새를 피해 숨고 올빼미가 날개를 편다.


闒茸尊顯兮讒諛得志(탑용존현혜참유득지)12)

탑용(闒茸)이 높이 나와 참소(讒訴)에서 뜻을 얻어



賢聖逆曳兮方正倒植(현성역예혜방정도식)

현성(賢聖)이 역(逆)이 되니 옳은 이가 거꾸로 됬네.


謂隨夷溷兮謂跖蹻廉(위수이혼혜위척교렴)13)14)

변수(卞隨)와 백이(伯夷)는 탁다하고 척교(跖蹻)가 청렴탄다.


莫邪爲鈍兮鉛刀爲銛(막야위둔혜연도위섬)15)

막야(莫邪)가 둔하고 연도(鉛刀)가 날카롭다고 해서


于嗟黙黙生之亡故兮(우차묵묵생지망고혜)

아아! 이유없이 선생은 묵묵히 화(禍)입었다.


斡棄周鼎寶康瓠兮(알기주정보강호혜)16)17)

주정(周鼎)을 버리고 강호(康瓠)가 보배라하고

騰駕罷牛驂蹇驢兮(등가파우참건려혜)18)

피로한 소가 수레를 끌고

절뚝벌이 노새를 참마(驂馬)로 하네.


驥垂兩耳服鹽車兮(기수양이복염거혜)

천리마는 귀가 늘어져 소금수레나 끌고 있고


章甫薦屨漸不可久兮(장보천구점불가구혜)19)20)

장보(章甫)가 신발에 깔리니 오래가지 못하리라.


嗟苦先生獨離此咎兮(차고선생독리차구혜)

아아! 선생 홀로 이 허물에 걸렸구나!


誶曰(수왈)

노래를 다 부르고 일러 가로되,


已矣國其莫吾知兮(이의국기막오지혜)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니 별수가 없구나



子獨壹鬱其誰語(자독일울기유어)

선생 혼자 울분하여 누구에게 말을 할까?


鳳飄飄其高逝兮(봉표표기고서혜)

봉황은 표표히 높은 데로 오르며


夫固自引而遠去(부고자인이원거)

스스로를 끌어서 먼 곳으로 가버리고


襲九淵之神龍兮(습구연지신용혜)

구연(九淵) 속의 신룡(神龍)은


沕淵潛以自珍(물연잠이자진)

깊이 깊이 진중(珍重)하게 잠겨서


偭蟂獺而隱處兮(면고달이은처혜)

도마뱀을 피하여 숨어 있구나.

夫豈從蝦與蛭螾(부기종하여질인)

새우 거머리 따위를 어찌 따를 것인가?

所貴聖之神德兮(소귀성지신덕혜)

귀하게 여길 바는 성인의 신덕(神德)이니


遠濁世而自藏(원탁세이자장)

탁세(濁世)를 멀리하여 스스로를 숨김이라.


使麒麟可係而羈兮(사기린가계이기혜)

기린(麒麟)도 고삐매어 매어 둔다면


豈云異夫犬羊(기운이대견양)

개와 양과 다를 것이 그 무엇인가?


般紛紛其離此郵兮(반분분기리차우혜)

분분한데 섞여서 이런 허물 얻었으니


亦夫子之故也(역부자지고야)

역시나 부자(夫子-屈原)의 잘못인지


歷九州而相其君兮(역구주이상기군혜)21)

구주(九州)를 두루 돌아 그곳 임금 도울 것을


何必懷此都也(하필회차도야)

하필이면 이 도성(都城)에만 마음을 뒀나?


鳳凰翔于千仞兮(봉황상우천인혜)

봉황(鳳凰)은 천인(千仞)을 높이를 날다가

覽德輝而下之(남덕휘이하지)

덕이 빛나는 것을 보면 내려오고


見細德之險微兮(견세덕지험미혜)

덕(德)이 없고 험악(險惡)하면

遙增擊而去之(요증격이거지)

날개 거듭치고서 멀리 떠나버린다.


彼尋常之汗瀆兮(피심상지한독혜)

저 심상(尋常)한 조그만웅덩이에


豈容呑舟之魚(기용탄주지어)

배를 삼킬 큰 고기를 담을 수야 있으랴.


橫江湖之鱣鯨兮(횡강호지전경혜)

강호(江湖)에 가로누운 상어 고래가


固將制於螻蟻(고장제어루의)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제압당할라.


가생(賈生)이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된지 3년 되던 해에 부엉이가 가생이 묵고 있는 관사에 날아 들어와 방안 한 쪽 모퉁이에 앉았다. 초(楚)나라 사람들은 부엉이를 복(服)이라고 불렀다. 가생이 좌천되어 머물렀던 장사는 땅이 낮고 습기가 많아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계속 생각한 가생이 마음이 아파 그것을 슬퍼했다. 이에 부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單閼之歲兮 四月孟夏 (단연지세혜 사월맹하)24)

정묘년(丁卯年), 4월 맹하(孟夏)


庚子日施兮 服集予舍(경자일시혜 복집여사),

경자일(庚子日)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음이여,

부엉이 한 마리가 내 집으로 날아왔도다!

止於坐隅兮 貌甚閑暇(지어좌우혜 모심한가)。

내 방 모서리에 앉았음이여,

그 모습이 매우 한가롭구나!


異物來集兮 私怪其故(이물래집혜 사괴기고),

예사롭지 않게 날아든 생물이여,

가만히 생각하니 그 까닭이 괴이하도다!


發書占之兮 策言其度(발서점지혜 책언기탁)。

서책을 꺼내어 점을 쳐봄이여,

점사가 그 길흉을 알려주노나!


曰“野鳥入處兮 主人將去(왈야조입처혜 주인장거)

이르기를 “ 집으로 날아드는 들새여,

주인이 장차 떠날 괘로다!


請問於服兮“予去何之(청문어복혜 여거하지)?

물어보건대 부영이여,

내가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吉乎告我 凶言其災(길호고아 훙언기재)。

길하면 내게 고하고 흉하면 그 재앙을 알려다오!


淹數之度兮 語予其期(엄수지탁혜 어여기기)

생사의 늦고 빠름으로 정해진 운명이여,

그 기일을 나에게 말해다오!


服乃歎息 舉首奮翼(복내탄식 거수분익)

부엉이가 이내 탄식하며 머리를 들고 날개를 퍼득인다.


口不能言 請對以意(구불능언 청대이의)

입으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마음으로 대답할 것을 청하노라!


萬物變化兮 固無休息(만물변화혜 고무휴식)。

변화무쌍한 세상의 만물이여, 결코 멈추는 곳이 없음이라!


斡流而遷兮 或推而還(알류이천혜 혹추이환)

휩쓸려가는 소용돌이여, 다시 밀려서 돌아오는 구나!


形氣轉續兮 變化而蟺(형기전속혜 변화이선)。

서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외형(外形)과 내기(內氣)여,

매미가 허물 벗듯이 변하는 구나!

沕穆無窮兮 胡可勝言(물목무궁혜 호가승언)!

정교하고 심원하며 무궁한 세상의 도리여,

어찌 말로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禍兮福所依 福兮禍所伏(화혜복소의 복혜화소복)

화는 복에 기댐이여, 복은 화 속에 묻혀 있도다!


憂喜聚門兮 吉凶同域(우희취문혜 길흉동성)

한 문에 모이는 근심과 기쁨이여,

길하고 흉한 것은 같은 곳에 머무네!


彼吳強大兮 夫差以敗(피오강대혜 부차이패)

저 강대했던 오나라여, 부차25)가 이로 인하여 망했구나!


越棲會稽兮 勾踐霸世(월서휘계혜 구천패세)26)

회계에서의 농성했던 월나라여,

그것으로 구천(句踐)은 천하의 패자가 되었구나!


斯遊遂成兮 卒被五刑(사유수성혜 졸피오형)27)28)

진나라에 유세하여 대업을 이룬 이사(李斯)여,

결국은 오형(五刑)을 받고 멸족되었구나!


傅說胥靡兮 乃相武丁(부열서미혜 내상무정)29)

형도(刑徒)로 노역을 하던 부열(傅說)이여,

이내 무정제(武丁帝)의 재상이 되었구나!30)


夫禍之與福兮 何異糾纆(부화지여복혜 하이규묵)

무릇 화가 복을 데리고 다님이여,

새끼줄이 서로 얽혀 꼬여 있음과 무엇이 다른가?

命不可說兮 孰知其極(명부가설혜 수지기극)!

말로 이야기할 수 없는 천명이여,

누가 그 지극함을 알 수 있겠는가?


水激則旱兮 矢激則遠(영격즉한혜 시격즉원)

물이 격해지면 사납게 됨이여,

화살에 강한 힘이 실리면 멀리 나가도다!


萬物回薄兮 振蕩相轉(만물회박혜 진탕상전)

만물이 돌고 순환함이여, 부딪치고 서로 돌도다!


雲蒸雨降兮 糾錯相紛(운증우항혜 규착상분);

구름이 되고 증발하여 비가 내림이여,

서로 얽히고 교차하니 분분하구나!


大專檗物兮 坱圠無垠(대전벽물혜 앙알무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여,

한없이 넓은 세상에 가득찼구나!


天不可與慮兮 道不可預謀(천불가여려혜 도불가예모)

하늘의 뜻은 너무 높아 예측할 수 없음이여,

천도는 너무 심원하여 미리 도모할 수 없도다!


遲數有命兮 惡識其時(지수유명혜 악식기시)

빠르고 늦은 저 마다 운명이여,

어찌 그 때를 알 수가 있겠는가?


且夫天地爲爐兮 造化爲工(차부천지위로혜 조화위공)

또한 하늘과 땅을 구워낸 풀무여,

공인의 조화로다!


陰陽爲炭兮 萬物爲銅(음양위탄혜 만물위동)

음양은 숯으로 변했음이여, 만물은 구리가 되었음이라!


合散消息兮 安有常則(합산소식혜 안유상즉)

합치고 흩어지고 녹이고 더함이여,

어찌 일정한 법칙이 있겠는가?


千變萬化兮 未始有極(천면만화혜 미시유극)。

천 번 변하고 만 번 화함이여,

처음부터 끝이 없구나!


忽然爲人兮 何足控摶(홀연위인혜 하족공박)

홀연히 사람으로 태어남이여,

내 어찌 오래 사는 것에 연연하겠는가?


化爲異物兮 又何足患(화위이물혜 우하족환)!

사람이 죽어 다른 것으로 변함이여, 내 어찌 근심하랴?


小知自私兮 賤彼貴我(소지자사혜 천피귀아);

자기만을 생각하는 지혜롭지 못한 자여

남은 천시하고 자신은 높이도다!


通人大觀兮 物無不可(통인대관혜 물무불가)。

그러나 세상을 대관하는 통달한 사람이여,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마땅하지 않음이 없구나!


貪夫殉財兮 烈士殉名(탐부순재혜 열사순명);

탐욕스러운 사람 재물에 목숨을 검이여,

열사는 명예로운 이름에 거는구나!


誇者死權兮 品庶馮生(과자사권혜 물서풍생)。

허명을 쫓는 사람 권세에 목숨을 검이여,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는구나!


怵迫之徒兮 或趨西東(술박지도혜 혹추서동);

명리에 유혹되고 빈천에 쫓기는 자들이여

이리저리 달리느라 분주하구나!


大人不曲兮 億變齊同(대인불곡혜 억변제동)

결코 물욕에 현혹되지 않은 대인이여,

억만 번 변해도 한결 같구나!


拘士系俗兮 窘若囚拘(구사계속혜 군약수구)

세속에 묶인 어리석은 사람이여

자신을 죄수처럼 가두는구나!


至人遺物兮 獨與道俱(지인유물혜 독여도구)。

만물을 초월한 지극한 덕성의 사람이여,

홀로 도(道)와 함께 하는구나!


眾人惑惑兮 好惡積億(중인혹혹혜 호오적억);

미혹에 빠진 세상 사람들이여,

호오를 가슴에 쌓도다!


真人淡漠兮 獨與道息(진인담막혜 독여도식)。

담백무위(淡白無爲)의 진인(眞人)이여,

홀로 도(道)와 함께 머무르고 있구나!

釋知遺形兮 超然自喪(석지유형혜 초연자상);

지혜도 버리고 형체도 벗어남이여

자신도 잊어 초연하구나!


寥廓忽荒兮 與道翱翔(료곽홀황혜 여도고상)。

광대무변하고 황홀한 경지여

도(道)와 함께 훨훨 공중을 나는도다!


乘流則逝兮 得坻則止(승류즉서혜 득지즉지);

물길을 타고 흘러감이여

모래섬에 부딪치면 멈추도다!


縱軀委命兮 不私與己(종구위명혜 불사여기)。

육신을 내놓아 운명에 맡김이여

자기의 몸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도다!


其生若浮兮 其死若休(기생약부혜 기사약휴);

뜬 구름과 같은 삶이여

죽음은 휴식처로다!


澹乎若深 淵止之靜(담호약심연지지정),

마음의 담담함은 깊은 심연의 고요함과 같고

汜乎若不系之舟(사호약불계지주)。

공중에 둥둥 떠다님은 줄에 매이지 않은 작은 배라


不以生故自寶兮 養空而浮(불이생고자보혜 양공이부);

살아 목숨에 연연하지 않음이여

마음을 비워 구름처럼 떠다니도다!


德人無累兮 知命不憂(덕인무루혜 지명불우)。

세속에 찌들지 않은 지극히 높은 품덕이여

하늘의 명을 즐거워하니 어찌 근심하는 바가 있겠는가?


細故蒂芥兮 何足以疑(세고체개헤 하족이의)!

초목의 가시 같은 구구한 세상사여,

어찌 의심할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그리고 일 년이 조금 더 지난 후 가생은 부름을 받고 황제를 뵈었다. 그때 효문제는 선실(宣室)31)에 앉아 수리(受釐)32)를 막 행하려고 했다. 귀신의 일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 한문제가 가생에게 그 정체에 대해 물었다. 가생은 귀신의 각종 형태에 대해 소상하게 말했다. 이윽고 시간이 밤중이 되자 문제는 자리를 가생 앞으로 당겨 앉아 흥미를 더욱 표시했다. 이윽고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문제가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보지 못해 내 스스로 그대 가생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보니 내가 미치지 못함을 알았노라!

그리고 얼마 후에 가생은 양회왕(梁懷王)33)의 태부(太傅)로 임명되었다. 문제의 작은 아들로 총애를 받았던 양회왕은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다시 회남려왕(懷南厲王)34)의 네 아들을 모두 열후에 봉하자 가생이 그로 인해 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간했다. 가생은 여러 번 상소를 올려 제후들의 봉지가 너무 넓고 심지어는 여러 개의 군을 영지로 갖게 되는 일은 옛 제도에 부합하지 않음으로 서서히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가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양회왕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죽었으나 후사가 없었다. 가생은 회왕의 태부로써의 직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상심하여 일 년여를 곡하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그때 가생은 33살의 젊은 나이였다. 효문황제가 죽고 효무황제가 설 때가지 가생의 후손들 중 두 사람이 군수의 자리에 올랐고 그 중에서 학문을 좋아한 가가(賈嘉)는 그것으로 가문을 이루어 대대로 전해졌다. 나는 가가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소제(昭帝) 때에 이르러 그는 구경(九卿)의 대열에 올랐다.


태사공이 말한다.

「나는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郢) 등의 굴원의 시를 읽고 그의 품은 뜻을 슬퍼했다. 또 장사에 갔을 때 굴원이 빠져 죽은 깊은 강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굴원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생각해 봤다. 그리고 굴원을 조상한 가생의 글을 보고 당시 굴원이 그의 재능으로 제후들에게 유세했더라면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나라는 없었을 것임에도 스스로 그와 같이 행동을 한 것은 정말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복조부를 읽고 삶과 죽음을 같다고 여겨 진퇴를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마치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을 찾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 가생열전 끝 >


주석

1) 오정위(吳廷尉)/ 오공(吳公)이라고 칭하며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가 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가의가 문재(文才)가 있음을을 알고 불러 문하에 두고 매우 총애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문제가 하남이 크게 다스려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태수가 이사(李斯)와 같은 고을 출신에 또한 이사의 학술에 매우 밝다는 사실을 알고 불러 정위로 삼았다.

2) 이사(李斯)/ 태어난 해는 미상이고 기원전 208년 에 죽었다. 상채(上蔡) 사람으로 원래는 여불위(呂不韋)의 식객이었으나 후에 승상의 자리에 오르고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창건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진(秦)나라의 정체를 중앙집권제의 군현제를 확립하고 유가(儒家)들을 탄압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켰다.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조고(趙高)와 모의하여 장자(長子)인 부소(扶蘇)를 폐출 시키고 차남인 호해(胡亥)를 제위에 올렸다. 후에 권력싸움에서 조고(趙高)에게 패하여 피살되었다. 그의 행적은 열전(列傳) 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3)정위(廷尉)/ 전국의 형옥(刑獄)에 관한 모든 일을 관장한 관리들의 장관으로 구경에 속했다. 매년 전국에서 행해졌던 형옥의 일을 취합하고 그 중 주군(州郡)이나 현에서 의심스러운 사건은 정위에게 보고하여 판결을 요청했다. 정위는 항상 속관을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하고 다시 황제와 삼공에게 올바른 판결을 위한 의견을 제출했다. 정위는 황제의 명령에 근거하여 제후왕이나 대신들을 체포 구금한 후에 일의 내막을 조사하고 판결했다. 그 밖의 예의나 율령은 모두 정위가 간직하다가 사건의 추이에 따라 그들의 권한으로 고칠 수 있었다. 분(分), 척(尺), 촌(寸), 장(丈) 등의 도량형의 표준을 정하는 것도 정위의 소관이었다. 정위는 2천석이고 1천석에 해당하는 정위정(廷尉正)과 좌·우(左·右)의 감(監) 각 1인 씩과 그 밑에 연사(掾史)를 두었다.

4) 박사(博士)/선진시대 일반적으로 박학댜식한 사람들을 부르던 통칭이었다가 관명으로 변했다. 전국 말 제(齊), 위(魏), 진(秦) 나라가 먼저 설치하고 진나라와 한나라가 답습하여 봉상(奉常 ="太常)의" 속관으로 했다. 제자백가의 설, 시부(詩賦), 방기(方技), 술수(術數) 등의 분과로 나누어 박사를 두고 정치에 관해 고문과 공론을 행하는 군왕들의 참모역할과 의식(儀式)을 주관하는 예관(禮官)을 겸했다. 한무제 건원(建元) 원년 기원전 136년, 처음으로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하고 시경(詩經)을 전문하는 박사는 제(齊), 노(魯), 한(韓) 삼가에서 서(書), 역(易), 예(禮), 공양춘추(公羊春秋)는 각 일가 씩 모두 7명의 박사를 두었다. 한선제(漢宣帝) 황룡(黃龍) 원년 기원전 49년, 박사의 정원을 12명으로 늘렸다. 시경에 대해서는 예전의 3가로 하고, 서경(書經)은 구양(歐陽)과 대소(大小) 하후(夏后) 3가, 역경(易經)은 시(施), 맹(孟), 양구(梁丘) 3가, 예경(禮經)은 종전의 1가, 춘추(春秋)는 곡량(谷梁), 공양(公羊) 2가로 했다. 원제 때는 역경에 경(京) 일가를 증원하고 평제(平帝)와 왕망(王莽) 연간에는 악경(樂經)에도 박사를 두고 매 경마다 박사의 수를 5명으로 대폭 늘려 모두 30명으로 했다. 무제 이래 박사가 관장하는 업무는 계속 늘어나 정치를 의론하고, 예를 제정하며, 서책의 보관, 후계자들에 대한 교육, 정책의 제시, 천자의 명을 받아 사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진과 서한 시대 박사들의 녹봉은 6백석으로 비교적 낮은 편에 속했으나 그 위상은 매우 높아 승진이 나 이동이 급하게 이루어졌으며 한나라 왕조 때 박사 출신으로 공경이 되어 업적을 남긴 자가 매우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5) 태중대부(太中大夫)/ 진나라가 설치하고 한나라가 계승한 관직으로 조정의 공론과 고문에 응하는 직책으로 일정한 직책이 없이 황제의 명이 있을 때에 한하여 업무를 보았다. 궁중에 기거하면서 명의상으로는 낭중령(郎中令 : 후의 광록훈(光祿勛))의 속관이었으나 실제로는 광록훈의 지휘를 받지 않았던 황제의 고급 참모에 해당했다. 봉록은 1천석으로 급사중(給事中), 시중(侍中)으로 불리며 황제의 측근에서 보좌했기 때문에 영향력이 권력이 매우 컸다.

6) 정삭(正朔)/ 고대 역법(曆法)의 용어다. 즉 정월의 삭일(朔日)로 일년이 시작되는 첫 째 날을 말한다. 중국 고대의 여러 왕조들은 각기 다른 역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각 달이나 정월이 같지 않았다. 주나라 때의 정월은 동지가 있는 음력 11월을 정월로 삼았는데 초하루 날 황혼무렵의 북두칠성이 정북을 가르킨다고 해서 자정(子正), 건자(建子) 혹은 주정(周正)이라고도 칭했다. 상나라 때는 동지날의 한 달 후를 정월로 삼았는데 그 때의 북두칠성은 동쪽으로 약간 기우러진 축(丑) 시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서 축정(丑正), 건축(建丑) 혹은 은정(殷正)이라고 했다. 다시 하(夏)나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동짓날 두 달 후를 정월로 삼았는데 그때의 북두칠성은 북쪽으로 기우러진 동쪽의 인(寅) 시를 가리킨다고 해서 인정(寅正), 건인(建寅) 혹은 하정(夏正)이라고 칭했다. 현재의 음력은 하정(夏正)을 취하고 있다. 서로 다른 역법은 정월이나 달 및 그 달의 초하루, 간지, 시간 등으로 인해 윤달의 위치도 서로 다르게 되었다. 정삭을 바꾼다는 것은 역법을 개혁하여 새로운 역법을 채용한다는 뜻이다.

7) 동양후(東陽侯)/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65년에 죽은 서한 초의 대신 장상여(張相如)를 말한다. 진한 교체기에 유방이 기의할 때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한고조 6년 기원전 201년 중대부(中大夫)가 되고 후에 하간(河間)의 태수가 되어 치적을 쌓았고 또한 군사를 잘 부렸다. 조나라 상국 진희(秦稀)가 반할 때 그는 하간의 군사를 이끌고 유방의 토벌군에 종군하여 진희를 공격하고 이어서 주발과 함께 대 땅을 평정하여 군공을 세웠다. 한고조 11년 기원전 196년 동양후(東陽侯)에 봉해지고 천 3백호의 식읍을 받았다. 문제가 즉위하자 태자의 태부(太傅)가 되었다. 문제 전원년 14년 기원전 166년 흉노의 노상(老上) 선우가 기병 14만을 이끌고 한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자 그는 대장군이 되어 출정하여 막았다. 양군이 한 달 동안 서로 대치하여 비록 싸움에서 승리를 얻지 못해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결국 흉노가 더 이상 한나라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가야했다. 다음 해에 병으로 죽었다. 시호는 동양무후(東陽武侯)다.

8) 장상여(張相如)/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65년에 죽은 서한 초의 대신으로 봉호는 동양후(東陽侯)다. 진한 교체기에 유방이 기의할 때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한고조 6년 기원전 201년 중대부(中大夫)가 되고 후에 하간(河間)의 태수가 되어 치적을 쌓았고 또한 군사를 잘 부렸다. 조나라 상국 진희(秦稀)가 반할 때 그는 하간의 군사를 이끌고 유방의 토벌군에 종군하여 진희를 공격하고 이어서 주발과 함께 대 땅을 평정하여 군공을 세웠다. 한고조 11년 기원전 196년 동양후(東陽侯)에 봉해지고 천 3백호의 식읍을 받았다. 문제가 즉위하자 태자의 태부(太傅)가 되었다. 문제 전원년 14년 기원전 166년 흉노의 노상(老上) 선우가 기병 14만을 이끌고 한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자 그는 대장군이 되어 출정하여 막았다. 양군이 한 달 동안 서로 대치하여 비록 싸움에서 승리를 얻지 못해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결국 흉노가 더 이상 한나라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가야했다. 다음 해에 병으로 죽었다. 시호는 동양무후(東陽武侯)다.

9) 풍경(馮敬)/ 서한 초의 대신으로 진나라 장군 풍무택(馮毋擇)의 아들이다. 한초 쟁패시 위나라의 기병대 장수였다가 한신이 위나라를 정벌할 때 한나라에 항복했다. 한문제 9년 기원전 171년 전객(典客)에서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랐다. 가의가 제장한 율령과 의례를 반대했다. 또한 문제에게 회남왕(淮南王) 유장(油長)이 조정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을 사악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폭로했다.

10) 가혜(嘉惠) : 천자로부터 입은 은혜라는 뜻이다. 한문제(漢文帝 재위 전202-157년)의 신임이 두터운 가의(賈誼)를 간신들이 참소했다. 문제가 곧이듣고 가의를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시켰다. 이에 가의는 문제가 자기를 죽이지 않았음으로 은혜를 입었다고 한 것이다.

11)멱라(汨羅) : 강서성(江西省)과의 접경지역에서 발원하여 서남으로 흐르다가 동정호(洞庭湖)로 들어가는 지금의 멱강(汨江)을 말한다. 강하류에 멱라시(汨羅市)가 있으며 그 북쪽에 굴원(屈原)을 모신 사당(祠堂)이 있다.

12)탑용(闒茸) : 탑(闒)은 쪽문, 용(茸)은 작은 풀을 말한다. 모두 무능한 소인배들을 가리킨다.


13) 수이(隨夷) : 수(隨)는 은(殷) 나라 탕왕(湯王) 때의 현자(賢者) 변수(卞隨)로써 탕왕(湯王)이 천자(天子)의 자리를 그에게 양위(讓位)하려 하였으나 천하는 아무 짝에도 쓸 곳이 없다하며 받지 않았다. 이(夷)는 백이(白夷)로써, 부왕(父王)이 고죽국(孤竹國)의 왕 자리를 숙제(叔弟)에게 맞기니 숙제는 형인 백이(白夷)에게 양보했다. 백이(白夷)는 부왕(父王)의 뜻을 받들지 않았다. 이에 백이와 숙제는 모두 고죽국을 떠나 주(周)나라로 들어가 주문왕(周文王)을 모셨다.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치니, 백이(白夷)와 숙제(叔弟)는 신하(臣下)로서 임금을 쳐서는 안 된다고 간(諫)하고, 주(周) 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다가 굶어죽었다.

14) 척교(跖礄) : 척(跖)은 춘추 때 노(魯)나라의 대도 도척(盜跖)으로 노희공(魯僖公 : 재위 전659-627) 때 노나라 대부를 지낸 유하혜(柳下惠) 전획(展獲)의 동생이다. 교(礄)는 장교(莊礄)로 초회왕(楚懷王 : 재위 전 328-299) 때 영(郢)에서 수많은 무리를 이끌고 란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춘추전국 시대 때 전설적인 도적의 우두머리다.

15) 막야(莫邪) : 오(吳)나라의 장인 간장(干將)의 아내를 말한다. 오왕 합려(闔閭 : 재위 전514-496년)의 명을 받은 간장이 그의 아내와 명검 두 자루를 만들어 양(陽)에 해당하는 검에는 간장(干將), 음(陰)에 해당하는 검에는 막야(莫邪)로 이름 지어 왕에게 바쳤다. 이후로 간장과 막야는 칼날이 예리한 명검을 칭하는 말이 되었다.

16) 정(鼎) :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이 천하의 물길과 땅을 평정한 다음 전국을 구주(九州)로 나누고 그것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정(鼎)을 주조(鑄造)하였다. 이후로 천하의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전국(傳國)의 보기(寶器)가 되었다.

17) 강호(康瓠) : 기와로 만든 큰 표주박 모양의 그릇. 강(康)은 대(大), 호(瓠)는 표주박이다.

18) 참(驂) : 수레를 끄는 네 마리 말을 통틀어 사(駟)라 하고 그 중 바깥쪽의 두 마리를 참(驂)이라 한다. 참마(驂馬) 중 왼쪽 것은 좌참마(左驂馬) 오른쪽 것은 우참마(右驂馬)다.

19) 장보(章甫) : 은(殷)나라 사람들이 쓰고 다니던 검은 색의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말한다

20) 장보천구(章甫薦屨) : 장보관이 신발 밑에 깔린 것과 같이 세상이 뒤집혀져 있음을 의미한다.

21) 구주(九州) : 하나라를 세운 우(禹)임금이 중국 전역을 아홉 주로 나누어 다스렸다. 아홉 주의 이름은 기(冀), 예(豫), 청(靑), 서(徐), 양(揚), 형(荊), 연(兗), 양(梁), 옹(雍)이다.

22) 천인(千仞) : 산이나 바다가 아주 높거나 깊은 것을 말한다. 참고로 인(仞)은 주나라 때 길이를 재는 단위로 7자에 해당했다. 주나라 때 1자는 약 23cm에 해당함으로 1인은 1.6m, 천인은 1.6km에 달하는 거리다.

23) 심상(尋常) : 심(尋)은 여덟 자(8尺), 상(常)은 심(尋)의 그 배(倍)가 되는 것을 말함

24)단연지세(單閼之歲)/ 12지간 중 묘(卯)의 별칭으로 기년(紀年)으로 사용한다. 문제 7년 기원전 173년으로 정묘년에 해당한다.

25) 부차(夫差)/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95년에 왕위에 올라 473년에 죽었다. 춘추 때 오나라의 왕으로 희성(姬姓)에 오왕의 합려(闔閭)의 아들이다. 즉위 초에는 정사에 힘쓰고 내정을 개혁하여 부국강병을 이룬 다음 자기의 부왕인 합려를 죽게 만든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군을 격파하고 그 왕 구천을 사로잡고 월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후에 자존망대하여 사치를 일삼고 간신 백비의 참소를 믿고 충신 오자서를 죽였다. 지금의 장강 북안 도시인 양주시(揚州市)부터 청강시(淸江市) 까지 한구(邗溝)라는 운하를 파고, 수로를 이용하여 군사를 북진시켜 중원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애릉(艾陵 : 지금의 산동성 래무(萊蕪) 동북)에서 제나라와 싸워 크게 이겼다. 주경왕 38년 기원전 482년에는 황지(黃池)에서 중원의 제후국들을 대거 소집하여 당진과 맹주를 다투었다. 월나라가 그 틈을 타서 오나라를 기습하자 부차는 회군하여 월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후에 몇 차례에 걸쳐 월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했다. 주원왕 3년 기원전 473년에 월나라가 대거 공격해와 고소대(姑蘇臺)를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월왕은 그를 지금의 주산열도를 말하는 용동(甬東)에 옮겨 살게 하려고 했으나 그는 치욕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나라는 부차에 의해 망하고 월나라에 병합되었다.

26) 구천(句踐)/ 춘추 후반기의 월나라 군주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월왕 윤상(允常)의 뒤를 이어 기원전 495년에 왕위에 올라 기원전 465년까지 30년간 재위에 있었다. 기원전 496년 구천이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다. 구천은 지금의 절강성 가흥시(嘉興市)였던 취리(檇李)에서 싸워 오군을 대패시키고 합려의 발가락을 잘랐다. 합려는 그 때 입은 부상으로 얼마 후에 죽었다. 2년 후인 기원전 495년 부차와 지금의 강소성 오현(吳縣) 서남의 태호(太湖) 가운데의 부초산(夫椒山)에서의 싸움에서 크게 지고 패잔병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도망쳐 농성하다가 강화를 맺고 부차의 포로가 되었다. 구천은 오나라로 끌려가 부차의 수레를 끄는 마부가 되어 굴욕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후에 범려와 문종을 발탁하여 국정을 정비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자세로 10년 동안 국력을 비축하고 10년 동안 군사를 조련한 다음 오왕 부차가 중원을 제패하기 위해 북상하고 오나라가 비워 있는 틈을 타서 쳐들어가 일거에 그 도성을 점령했다. 계속하여 오왕 부차의 뒤를 추격하자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차의 뒤를 이어 북쪽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 州市) 남쪽의 서주(徐州)에서 중원의 제후들을 대거 소집하여 패자가 되었다.

27) 이사(李斯)/ 태어난 해는 미상이고 기원전 208년 에 죽었다. 상채(上蔡) 사람으로 원래는 여불위(呂不韋)의 식객이었으나 후에 승상의 자리에 오르고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진(秦) 나라의 정체를 중앙집권제의 군현제를 확립하고 유가(儒家)들을 탄압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켰다.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조고(趙高)와 모의하여 장자(長子)인 부소(扶蘇)를 폐출 시키고 차남인 호해(胡亥)를 제위에 올렸다. 후에 권력싸움에서 조고(趙高)에게 패하여 피살되었다. 그의 행적은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 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28)오형(五刑)/ 고대의 다섯 가지의 형벌. 즉 얼굴에 글을 새기는 묵형(墨刑), 코를 배는 의형(劓刑), 종지뼈를 제거하여 앉은뱅이를 만드는 빈형(臏刑),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宮刑), 그리고 사형에 처하는 대벽(大辟)을 말한다. 빈형(臏刑)을 당한 사람으로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제나라의 병법가 손빈(孫臏)이 있고 궁형을 받은 사람은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이 있다. 이사가 오형을 받았다함은 상기의 다섯 가지의 형을 모두 한꺼번에 받아 참혹하게 죽었다는 것을 말한다.

29)부열(傅說)/ 하나라의 무정제(武丁帝)가 즉위하여 쇠락해진 은나라를 부흥시키려고 하였으나 자신을 보좌해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3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사는 총재(冢宰)에게 맡겨놓고 나라의 기풍을 유심히 살폈다. 무정제가 꿈속에서 성인을 만났는데 그 이름을 열(說)이라 하였다. 무정제는 꿈에서 본 열의 모습을 대신과 관리들 속에서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백관들에게 나라 밖에서 찾아보게 했는데 드디어 부험(傅險)이란 곳에서 열을 찾아냈다. 열은 죄를 짓고 노역에 끌려나가 부험에서 길을 닦고 있었다. 무정제가 보고 “ 바로 이 사람이 내가 꿈속에서 본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이에 열을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으니 은나라는 훌륭히 다스려졌다. 무정제는 열을 부험이라는 곳에서 찾았다하여 그를 부열(傅說)이라고 불렀다.

30)무정제(武丁帝)/ 중국 상왕조의 제28대 왕으로 묘호는 고종(高宗)이다. 상나라는 군주가 살아 있을 때는 왕으로 칭하고 죽은 후에는 제(帝)로 칭했다. 소을제(少乙帝)의 아들이고 조경제의 아버지다. 전설에 의하면 소을제는 무경제가 어렸을 때 오랫동안 민간에 맡겨 살게 하면서 농사일을 거들어 일반 백성들과 같이 지내게 했다. 다시 무경제에게 군사를 주어 외적을 정벌시켰다. 소을제의 뒤를 이어 상나라 군주가 된 무정은 감반(甘盤)이라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가 다시 부암(傅岩)이라는 곳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노역을 하던 부열(傅說)이라는 사람을 발견하여 재상으로 등용하여 내정을 개혁하고 덕을 베풀었으며, 밖으로는 군사를 보내 서북의 귀방(鬼方)과 강방(羌方)을 평정하고 남쪽의 형만(荊蠻)을 무찔렀다. 이로써 상나라의 통치지역은 크게 확대되었다. 무정제는 55년 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상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룩했다.

31)선실(先室)/ 미앙궁(未央宮) 내에 있었던 궁실의 이름으로 주로 황제가 국가의 중요한 제사나 의식을 참석하기 위해 제계를 행할 때 거처했다.

32)수리(受釐)/ 한나라는 오치(五畤)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제도가 있었다. 황제는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낸 후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고기를 거두어 황제에게 바치도록 해서 복을 받는 것을 표시했는데 이것을 수리(受釐)라 했다. 오제(五帝) 즉 황제(黃帝), 염제(炎帝 : 赤帝), 백제(白帝), 청제(靑帝), 흑제(黑帝) 등에게 제사지는 장소를 모두 합쳐 오치(五畤)라 통칭했다. 오치는 지금의 섬서성 봉상(鳳翔) 서남쪽에 있었다.

33)양회왕(梁懷王)/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68년에 죽은 서한의 제후왕으로 이름은 유읍(劉揖)이다. 한문제의 작은 아들로 시(詩)와 서(書)를 즐겨했고 문제 2년 기원전 178년 양왕에 봉해졌다. 문제 12년 기원전 168년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34) 회남려왕(懷南厲王)/ 기원전 198년에 태어나서 174년에 죽은 한고조 유방의 작은 아들로 이름은 유장(劉長)이다. 고조 11년 기원전 196년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다. 문제 치세시 교만에 빠져 발호했다. 입조 할 때는 항상 황제가 타는 수레에 같이 동승하여 사냥을 나가고 봉국에 머물 때는 한나라 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법령을 따로 만들어 운용했다. 문제 6년 기원전 174년 흉노와 민월의 수령등과 연합하여 반란을 획책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제후왕에게 폐위되어 촉군으로 유배를 가던 중 음식을 끊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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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6-05-06
[일반] 전단열전(田單列傳) 22

열전22. 전단(田單) 전단(田單)은 제나라 공실의 성씨인 전(田) 씨의 지족이다. 민왕(湣王)1) 이 재위에 있을 때 단은 임치(臨菑)의 시
양승국 06-01-10
[일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21

열전21. 廉頗·藺相如(염파인상여) 1. 완벽귀조(完璧歸趙) - 인상여가 화씨벽을 보존하다. - 염파(廉頗)는 조나라의 명장이다. 조혜문왕(趙
양승국 05-12-15
[일반] 악의열전(樂毅列傳) 20

열전20. 악의(樂毅) 악의의 선조는 위나라의 장수 악양(樂陽)이다. 악양은 위문후(魏文侯)의 장수가 되어 중산을 정벌하여 취했다. 위문후는 그 공
양승국 05-12-05
[일반] 범수열전(范睢列傳) 19-2.채택(蔡澤)

채택(蔡澤)   채택(蔡澤)은 연나라 사람이다. 유세술을 배워 크고 작은 제후들을 수 없이 찾아다니며 벼슬을 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양승국 0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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