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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4:49:376571 
문종의 일곱가지 계책과(文種之七策)과 토사구팽
양승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문종칠계(文種七計)


첫째, 재물을 보내어 상대국의 임금과 신하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며

둘째, 곡식의 가격을 올려 그들의 창고를 비우게 하고 셋째, 아름다운 미녀를 보내어 그들의 마음과 의지를 빼앗고

넷째, 솜씨 좋은 목공과 좋은 재목을 보내어 그들의 궁실을 크게 짓게 하여 그 나라의 재물들을 탕진하게 만들 것이며

다섯째, 아첨을 잘하는 신하를 보내어 그들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여섯째, 직간 하는 충신들을 구석으로 몰아 스스로 죽게 만들어 그 나라의 임금을 보좌할 수 있는 인재의 벽을 얇게 만들고

일곱째, 그들로 하여금 사사로이 재물을 축적하게 하며 한편으로는 군사를 동원하여 대외원정 하게 하여 그 나라의 재정을 피폐하게 만든다.

(1. 捐貨幣, 以悅其君臣 2.貴 粟槁, 以虛其積聚 3. 遣美女, 以惑其心志 4. 遣之巧工良材, 使作宮室, 以 其財 5. 遣之諛臣, 以亂其謀 6.强其諫臣使自殺, 以弱其輔 7.積財練兵, 以承其弊.)


월왕은 옛날부터 문종(文種)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으나 오나라가 없어진 후부터는 문종의 재능이 소용없게 되고 오히려 그 재능으로 란을 일으키게 되면 아무도 그를 당해 낼 수 없게 된다고 걱정하여 마음속으로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를 죽일 만한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노나라에서는 계손씨(季孫氏), 맹손씨(孟孫氏), 중손씨(仲孫氏) 등과 노애공(魯哀公) 사이에 틈이 벌어져 애공은 삼가를 토벌하기 위해 월나라의 군사를 빌리기 위해 조빙한다는 명분으로 친히 월나라를 방문했다. 구천은 마음속으로 문종이 걱정이 되어 군사를 내어 노애공을 돕지 못했다. 노애공은 결국은 노나라에 돌아가지 못하고 월나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월왕 구천이 갑자기 병문안을 한다고 하면서 병상에 누워 있는 문종을 방문했다. 문종이 할 수 없이 병상에서 일어나 월왕을 맞이하였다. 구천이 허리에 찬 칼을 풀어 옆에 세워 두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과인이 듣기에 ‘뜻 있는 선비는 몸이 죽게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단지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닌가 만을 걱정한다(志士不懮其身之死, 而懮其道之不行)’라고 했오! 경은 나에게 옛날 오나라를 멸하는 계책 일곱 가지를 말했는데 과인은 그 중에 세 가지만을 행하였소. 그 세 가지 계책만으로도 오나라를 멸하였으니 나머지 네 가지 계책은 어디다 쓸 작정이요?」

「신은 그 계책이 어디에 소용이 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그 네 가지 계책을 이미 죽어 지하에 묻힌 오나라의 왕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소?」

말을 마친 월왕 구천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가마를 타고 가 버렸다. 월왕은 그가 앉을 때 풀어 놓은 칼은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갔다. 문종이 칼을 들고 살펴보니 칼집의 겉에 촉루(屬鏤)라는 글이 써 있었다. 촉루검은 바로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주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한 칼이었다. 문종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하였다.


「옛말에 ‘너무 큰 공은 보상받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옛날에 범려(范蠡)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은 월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다시 스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세 후에 사람이 있어 나를 자서와 같은 반열에 놓을 것이니 그렇게 원망만 할 일은 아니로다!」

문종은 즉시 촉루검으로 배를 갈라 죽었다.


문종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크게 기뻐한 월왕은 그의 시신을 와룡산(臥龍山) 밑에 묻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그 산을 종산(種山)이라고 불렀다. 문종을 장사지내고 일년 후에 해수(海水)가 들이닥쳐 산허리에 구멍이 크게 뚫려 문종의 무덤이 갈려졌다. 어떤 사람이 자서와 문종이 같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 바닷물의 풍랑을 따라 헤엄쳐 갔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오늘도 전당강(錢塘江)에는 해조(海潮)가 밀려들어 올 때면 앞에 오는 물결을 자서(子胥)라 하고 뒤에 오는 물결은 문종(文種)이라고 부르고 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문종을 노래했다.


忠哉文種(충재문종)

충성스러운 신하, 문종이여!



治國之杰(치국지걸)

치국의 인재였다.



三術亡吳(삼술망오)

세 가지 계책으로 오나라를 망하게 했으나



一身殉越(일신순월)

그 한 몸은 월나라를 위해 죽었다.



不共蠡行(불공려행)

범려와 같이 물러나지 않아



寧同胥滅(영동서멸)

그 몸은 오자서의 뒤를 밟게 되었다.



千載生氣(천재생기)

천년 세월이 지났건만 그 기운은 생생하니



海潮疊疊(해조첩첩)

바다의 파도만 첩첩이 밀려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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