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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8 15:23:314406 
병길(邴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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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길(邴吉) 


1. 邴吉舊故(병길구고)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5년에 죽었다. 자는 소경(少卿)으로 서한 노국(魯國) 북해인(北海人)이다. 일찍이 정위감(廷尉監)과 광무성(光武省) 우감(右監)을 역임했다. 소제(昭帝) 때는 대장군 장사(長史)를 지내다가 선제(宣帝)가 즉위하자 위승상(魏丞相)의 뒤를 이어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위인이 사려가 깊고 너그러웠으며, 자기가 공적이나 선행을 들어내지 않았다. 지절(地節) 3년(前67),한선제가 황태자 자리에 오르자 병길은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가 몇 달 후에는 어사대부로 승진했다. 다시 5년 후에 위승상(魏丞相)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병길은 원래 형법을 다루는 소리였다가 기용되어 후에 시경(詩經)과 예경(禮經)을 공부하여 대의(大義)에 능통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벼슬이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무를 항상 관대하고 겸손한 자세로 처리하려고 애썼다. 한 번은 연사(掾史)1)가 절도행위를 하자 그를 직접 불러 논죄하지 않고 장기간의 휴가를 주어 그로 하여금 스스로 사직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절도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사람이 병길의 그런 행위에 대해 물었다.


“ 승상께서는 한나라 사직을 지키는 승상의 자리에 계십니다. 간사한 관리가 탐욕을 부려 법을 어겼는데도 그를 치죄하지 않은 것은 어찌된 처사이십니까? ”


병길이 대답했다.


“ 삼공(三公)의 부서에서 일하는 모든 속관들은 그들의 명성을 자세히 조사해서 기용했소. 그래서 나는 그들 중 누구라도 도적의 혐의를 받고 조사받음으로써 다른 속관들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오.”


후에 병길의 뒤를 이어 승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병길의 전례에 따라 삼공의 부서에 일하는 속관에 대해서는 그들이 죄를 짓게 되어도 직접 심문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병길이 시작해서 관례가 된 것이다.


한무제 정화(征和) 원년 기원전 91년, <무고(巫蠱)의 화(禍)>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당시 폐태자 유거(劉據)와 그의 아들 황손(皇孫) 유진(劉进)은 피살되고 사건에 연좌되어 살해된 자가 4만 명을 넘었다. 당시 유진의 아들 유병기(劉病己 : 후의 한선제(漢宣帝)로 순(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당시 갓 태어나 강보에 싸인 아기였으나 그 역시 옥사에 갇히게 되었다.


사건의 심리를 위해서, 당시 정위감(廷尉監)이었던 병길이 경성으로 불려가 폐태자 유거 사건을 처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태자가 모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병길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를 불쌍히 여겨 여죄수 호조(胡組)와 곽정경(郭征卿)을 깨끗하게 청소된 옥사로 옮겨 유병기를 그녀들의 젖으로 키우게 했다. 후에 무제가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어떤 자가 감옥에서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말하자 사자를 보내 옥에 갇힌 죄수들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조리 죽이라고 명했다. 황제의 명을 받은 사자가 저녁 늦게 도착하자 병길이 대문을 굳게 잠그고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말했다.

“ 황증손(皇曾孫)께서 여기 계십니다. 일반 사람도 무고하면 죽일 수 없는데 하물며 황상의 친증손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는 사이에 날이 밝아오자 사자는 어쩔 수 없이 궁궐로 돌아와 무제에게 고했다. 정신이 돌아온 무제가 말했다.

“ 증손을 살린 것은 하늘의 뜻이다. ”

무제는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병길이 황증손(皇曾孫)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많은 비용을 들여 양육하다가 황증손의 외할머니와 백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서야 그를 그녀에게 넘겨 키우도록 했다. 후에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贺)2)가 음란하여 황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병길은 대장군 곽광(霍光)을 찾아가 황태손 병기(病己)가 자질이 뛰어나고 성격이 온화하다고 고했다. 그래서 병기는 이름을 순(詢)으로 고치고 황태자의 자리에 오른 후 얼마 후에 소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선제는 자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일뿐만 아니라, 갓난 아이 때 병길에 의해 생명이 구해졌으며, 후에 몇 년 동안이나 병길에 의해 양육되었다는 사실을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한참 동안 모르고 지냈다. 후에 어떤 궁비 한 명이 글로 써서 황제가 어렸을 때 보살펴 준 사람은 병길이었다고 고했다. 그녀는 당시의 모든 전후 사정을 알리고 병길이 어린 한선제를 자기에게 맡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했다.

“ 네가 정성을 다해 황손을 양육하지 않는다면 너는 나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한선제는 그때서야 비로소 병길이 옛날에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병길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의 품성이 매우 고결하다는 것을 알았다.

병길이 귀하게 되어 부하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그들의 잘한 점만을 전하곤 했다.


2. 邴吉問牛(병길문우)

병길의 마부가 술을 매우 좋아했다. 일찍이 병길이 출행을 나갈 때 마부가 도 같이 따라 나갔으나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승상의 수레에 토하고 말았다. 서조(西曹)3)의 직에 있는 관원이 병길에게 그 마부를 쫓아내라고 권하자 병길이 말했다.


“ 술에 취해 실수를 좀 했다고 쫓아낸다면 저 마부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둘 수 있겠는가? 서조가 그저 그를 모른 체 해준다면 차부가 잘못한 것은 단지 마차의 방석을 더럽힌 일에 불과한 일일 뿐이라!”


그래서 병길은 마부를 파면하지 않았다. 그 마부는 원래 변경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변경의 요새에서 일어나는 군사의 일에 대해 매우 정통했다. 한 번은 외출을 나갔는데 마침 변방의 관청에서 보낸 공문을 지참하고 달려오는 전령을 보게 되었다. 마부가 눈치를 채고 역마의 말을 빌려 타고 전령이 타고 가던 수레의 뒤를 따라가 변경의 소식을 탐문했다. 마부는 흉노의 군사들이 운중(雲中)과 대군(代郡)을 침범한 것을 알았다. 마부가 급히 승상부로 돌아가 병길에게 변경의 긴박한 정세를 전했다. 이윽고 황제가 승상과 어사를 불러서 흉노가 변경을 침범했는데 군의 관리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병길은 황제의 묻는 말에 일일이 응대했으나 어사대부는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세하게 답변할 수 없었다. 황제는 어사대부를 질책했다. 병길이 능히 변경의 정세와 관리들의 수비태세에 대해 허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마부의 공로였다. 병길이 마부의 정확한 정보에 감탄하며 말했다.

“ 휘하 사람들의 잘못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들이 각기 갖고 있는 장기를 발휘할 수 있음이라. 만일 내가 마부가 전한 정보를 먼저 듣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황제로부터 포상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연사(掾史)은 병길이 현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 다시 병길이 외출했는데 길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패싸움을 벌려 도로 위에는 죽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병길이 무심히 지나치며 아무런 말도 묻지 않았다. 연사가 보고 괴이하다고 생각했다. 병길이 길을 계속 가는데 어떤 농부가 소를 몰고 오고 있었다. 그런데 소가 지쳐 혓바닥을 늘어뜨리며 매우 힘들어했다. 병길이 수레를 멈추게 한 다음 수행하던 기사(騎士)를 시켜 물어보도록 했다.


“ 소가 몇 리나 걸었는가?”


곁에 있던 연사가 길거리에서 벌어진 패싸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더니 헐떡거리는 소가 몇 리를 걸어왔는지 묻는 것은 매우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병길의 행동을 비난했다. 병길이 말했다.


“ 백성들이 싸움을 벌려 서로 간에 살상한 것은 바로 장안령(長安令)이나 경조윤(京兆尹)의 직책으로 그들이 할 일은 마땅히 싸움을 금지시키고 예방하며 그들을 체포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직책은 최종적으로 상벌 행하고 임용과 파면을 황제에게 주청하는 것이다. 재상이 하는 일은 길거리의 벌어지는 싸움과 같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지금 계절은 봄인데 기온이 너무 높아 소가 몇 리도 걷지 않아 숨을 헐떡거리니 그것은 금년은 이상기온이라 장차 전국의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해서이다. ”


이 말을 들은 연사는 비로소 즐거이 병길의 말에 승복했다. 원봉 5년 기원전 55년 봄에 노환으로 죽었다. 사후에 정후(定侯)에 봉해졌다.


1)연사(掾史)/ 연속(掾屬)의 통칭으로 한나라 이래 중앙과 지방 정부의 관직 중 비교적 중요한 부서의 속관으로 장관이 직접 임명한 비서에 해당하는 속관으로 업무를 분담하여 처리했다. 녹봉은 100석이다.


2)유하(劉賀 : 전92-59년)/ 그의 나이 5살에 부친 유박(劉髆)으로부터 창읍왕(昌邑王)의 봉작을 이어받았다. 원래 이광리(李廣利)와 유굴리(劉屈氂)는 창읍왕 유박을 태자로 옹립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 시도했으나 한무제에 의해 간파당하고 모조리 주살되었다. 기원전 74년 6월 소제(昭帝)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세도가 곽광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태자의 자리에 오른지 3개월 만에 그의 과도하게 음란한 생활이 문제가 되어 태자의 자리에 폐위되고 대신 무제의 황태자였다가 무고의 화 사건으로 억울하게 살해된 유거의 손자 유순이 황태손의 자리에 올랐다. 유순이 한소제의 뒤를 이은 한선제다.


3)서조(西曹)/ 태위의 속관으로 관리들에 관한 일을 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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