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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60만평 지하4층 호화궁전
양승국











▲사진설명 :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병마용 1호갱 내부. 4~6m 깊이에 횡대와 종대로 늘어선 병마용들은 외모와 표정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조선일보 DB사진
세계 10대 수수께끼의 하나인 진시황릉(秦始皇陵)의 신비가 한꺼풀 벗겨졌다. 40여년에 걸친 시안 병마용(兵馬俑) 박물관팀의 노력으로 최근 진시황릉의 묘역 배치도가 상세하게 밝혀졌다고 홍콩 밍바오(明報)가 23일 보도했다. 밍바오는 “드디어 진시황릉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흥분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자신이 살았을 적에 파놓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황릉(皇陵)으로 들어간 지 2212년. 그동안 진시황릉은 ‘역사적 기적’으로 불리며 아직까지 그 실체가 베일에 감춰져 왔다. 밝혀진 것은 70년대 발견된 6000개 이상의 흙으로 빚은 병사들(병마용). 하지만 이 6척 장신의 토용(土俑)들만으로도 진시황릉은 ‘세계 10대 기적의 하나’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현재 기술로 발굴하다가 능을 훼손하기 십상”이라며 대대적인 발굴을 미뤄왔다.

◆ 사후의 또 하나 거대 도시 ="이번에" 시안 병마용 박물관팀의 연구결과 발표로 밝혀진 것은 진시황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라는 사실이다. 진시황의 묘만 해도 전체 면적이 2㎢(60여만평)에 달하고,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시안(西安)의 모습을 담았다. 묘역 외성곽 길이만 12㎞에 달한다. 이 정도면 무덤이라기보다 하나의 지하도시이다.

묘역의 핵심 지하궁전은 지하 4층까지 파들어가 4층 중앙에 관을 안치했다. 아울러 살아 있을 때처럼 무덤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별도의 편전(便殿), 부장품을 놓은 부장묘구(陪葬墓區)까지 설치했다. 황후(皇后)의 관은 진시황릉에 합장하지 않았다.

지형은 서쪽을 배경으로 하고 동쪽을 바라보는 좌서향동(坐西向東). 남쪽이 85m 높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전체적으로 한자 ‘돌아올 회(回)자’ 모양새를 나타낸다.

◆ 중국 최초의 묘역도시 ="밍바오는" “병마용 박물관측이 공개한 배치도를 보면 규모나 내용면에서도 특이한 사항이 많다”고 밝혔다. 우선 중국 최초로 하나의 도시구조를 능에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부장품묘·편전을 설치한 것도 진시황릉이 최초이다. 능안에 대형 말형상, 31마리의 갖가지 동물들, 48명의 궁인들의 부장묘, 3채의 사합원(四合院·4방향의 담 안에 □자 모양으로 지어진 베이징식 주택) 등도 특이하다.

바깥 성쪽에도 98마리의 말형상과 3곳의 묘소를 지었던 이들의 묘소와 돌을 다듬고 기와를 굽던 장소가 별도 마련돼 있다.

병마용 박물관팀 위안중이(袁仲一) 명예박물관장은 “황후를 합장하지 않고 진시황 단독 묘를 쓴 것은 당시 ‘황제권력은 한없이 높다’는 ‘황권지고무상관(皇權至高無上觀)’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안쪽, 바깥 성 등 도시모양새를 무덤에 담은 것은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는 ‘생사동일관(生死同一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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