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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10 10:15:144121 
진시황의 진황도행궁 복원도
운영자

















(베이다이허<중국 허베이성>="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해중 암석인 강녀분을 중심에 두고 갈석궁지에서 서쪽으로 2㎞를 간 지점 해변가에서는 출토 유물로 보아 갈석궁지와 같은 시기에 축조되고 활용되었음이 분명한 또 하나의 '진시황 행궁지' 후보가 있다.



흑산두(黑山頭)라고 일컫는 데가 그곳으로, 바다로 향해 돌출한 곳(岬) 끝 부분 평탄 대지에 조성된 대규모 건물터가 발견된 곳이다.



'갈석궁지'를 진시황 행궁지로 과연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무엇보다 흑산두 유적 또한 그렇게 지목되고 있다는 데서도 제기된다. 뿐만 아니다. 갈석궁지와 흑산두 외에도 그 반경 10㎞ 이내 지역에서는 이와 비슷한 다른 건물터만 현재까지 모두 4군데가 확인되고 있다. 이들 6군데 건물터가 모두 진시황 행궁지란 말인가?



이런 의문은 친황다오시 서쪽 베이다이허(北戴河)를 찾았을 때 한층 높아졌다.



금산취(金山嘴). 취(嘴)는 새의 부리를 말한다. 그러니 이런 명칭이 붙은 지명은 거의 예외없이 해변으로 돌출한 지역이라든가, 산맥이 끝나는 지점을 가리킨다.



예상대로 금산취 유적은 말끔하게 현대식으로 단장된 베이다이허 시내가 바다로 향해 돌출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난 금산취로(金山嘴路)라고 하는 도로 동쪽에 인접한 횡산(橫山)이란 곳이 금산취 유적 주소지였다.



목책을 둘러친 갈석궁지와는 달리 이곳은 어른 가슴에 해당하는 현대식 담장 위에다 또 어른 키 만한 철망을 얹어놓았다. 현장에는 아무도 없다. 남쪽 정문에 해당하는 곳에는 '베이다이허 진행궁 유지'(北戴河秦行宮遺址)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이름만 본다면 이곳 역시 틀림없는 진시황 행궁지가 된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은 우리의 사적지에 해당하는 '전국중점문물호보단위'로 지정돼 있다. 1996년 국무원이 이렇게 공포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이 얼마나 이 유적지를 중시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더 이상의 현장 접근이 불가능했다. 유적지를 두른 담장은 눈대중으로 사방 각 100m 가량이었다. 이 구역만이 소위 진행궁지인지는 확인이 어려웠다. 아마도 인근 지역 전체가 유적지일 것이다.



각종 발굴성과를 종합하건대, 금산취 유적은 면적이 6만㎡로 규모가 크다. 남북축을 중심으로 하는 궁전 유적이라 한다. 1987-1991년 발굴에서는 동서 50여m, 남북 13m 되는 건물터가 확인되기도 했다.



또 회랑이 발견됐으며, 두께 2.3m 정도 되는 담장 흔적도 확인됐다. 대청(大廳)이라 생각되는 건물지도 2기가 발견됐다. 주춧돌은 지름 1.3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유적지는 마름모꼴, 도철(상상의 동물), 구름 등의 무늬를 도안한 와당과 같은 출토유물로 볼 때 진.한(秦漢) 시대에 해당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한데 그 유물이 진한의 왕궁지에서 출토되는 것과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들어 중국 학계에서는 이 유적지 또한 진한시대의 유적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진한시대의 유적'이라는 말과 '진한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란 말은 그 차이가 번갯불과 반딧불의 그것만큼이나 크다.



그런데 갈석궁지와 흑산두 유적은 물론이고 이 금산취 유적에 대해 중국학계에서는 한결 같이 '진한시대의 유적'이라고만 하지, '진한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 혹은 주장대로라면, 진 시황제 시대에 발해만 연안에는 그의 행궁들이 마치 해변 별장들처럼 곳곳에 들어서 있었던 셈이 된다.



친황다오시 창리현(昌黎縣) 소재 갈석산을 포함해 21-22일, 이틀간에 걸친 이들 '진시황 벨트' 답사의 대미는 롼허(난하)로 장식했다.



이 롼허라는 강은 내몽고에서 발원해 남서쪽을 달려 베이다이허에서 다시 서쪽으로 수십 ㎞를 간 창리현에서 발해만으로 유입된다. 총길이는 880㎞로 한국에서 가장 길다는 압록강(803km)보다 조금 길다.



한국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롼허를 고조선(위만조선 포함)과 연(燕)나라, 위만조선과 진.한(秦漢)의 국경선 같은 선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특히 요서(遼西)와 요동(遼東)을 가르는 분기점인 고대의 요수(遼水)가 롼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답사단은 이러한 롼허가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어구 부근을 둘러 보았다. 오랜 기간 강물이 흘러내리면서 형성한 짙은 충적층이 드넓게 펼쳐진 어구 부근.



출어를 준비하는 어선 떼는 장관이었다. 다소 기분이 묘했던 것은 어구 부근에 형성된 롼허 지류에 드문드문 폐선으로 생각되는 선박들이 방치된 모습이었다.



그 장면을 본 누군가가 말했다. "고조선 선박도 저랬을까?".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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