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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의 거록지전(鉅鹿之戰)
양승국

항우가 경자관군 송의를 죽이자 그 위세는 초나라를 진동시키고 그 이름은 제후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즉시 당양군(當陽君)과 포장군(蒲將軍)에게 2만의 군사를 이끌고 하수를 건너 거록(鉅鹿)의 조군을 구원하도록 했다. 두 사람은 진군과 싸워 하수 북쪽 강안에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진여가 다시 사자를 보내 원병을 청하자 휘하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하수를 건넌 항우는 배를 강물 속에 가라앉히고, 솥을 깨고,-破釜沈舟(파부침주)- 막사를 불태운 후에 3일 치의 양식만을 지참케 하여 사졸들에게 필사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도록 했다. 이윽고 항우의 초군은 왕리의 진군(秦軍)과 회전에 들어가 아홉 번 싸워 모두 이기고 장한이 건설한 용도(甬道)를 끊어 대승을 거두었다. 진장 소각(蘇角)은 싸움 중에 살해당하고 왕리는 항우의 포로가 되었다. 또한 섭간(涉間)은 초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죽었다. 이로써 초군은 다른 제후군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때 조군을 구원하기 위해 거록으로 달려온 제후들이 세운 영채는 10여 개가 있었으나 아무도 군사를 이끌고 출격하여 진군과 싸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초군이 진군을 공격하자 제후군의 장수들은 모두 영루의 높은 곳에 올라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초나라의 군사들은 모두 용감하여 일당 십의 기개로 싸우면서 지르는 함성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자 제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이윽고 진군을 대파한 항우는 제후군을 이끌던 장수들을 불러 회견한 다음 원문(轅門)에 오르자 모든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그 앞을 지나가고 아무도 감히 그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다. 항우는 이로써 제후군의 상장군이 되었고, 제후들은 모두 항우에게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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