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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0 21:39:574425 
고구려 태조대왕의 업적
양승국

94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고구려의 터전을 닦았던 태조대왕은 한국사를 통틀어 왕위에 가장 오랫동안 있었다. 김수로왕은 158년을 재위했다고 하나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여 믿기 어렵다. 태조대왕은 고구려의 6대 왕으로 2대 왕인 유리왕의 3자 재사(再思)의 아들로, 아명은 어수(於漱)다. 7세인 서기 53년에 등극하여 94년간 재위에 있다가 서기 146년인 그의 나이 100살 때 왕위를 동생인 수성(遂成)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은거하여 별궁에서 20년을 더 살다가 120세의 나이로 죽었다.


차대왕(次大王) 수성은 서기 146년에 즉위하여 165년 국상(國相) 명림답부(明臨答夫)에 의해 주도된 구데타에 의해 살해 될 때까지 21년간 재위에 있었다. 차대왕이 선양받을 때의 나이는 76세였고 그가 명림답부의 구데타로 살해될 때의 나이는 100살에 가까운 97세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태조 대왕이 죽어 그 왕위를 물려받기를 고대했던 수성이 그의 나이가 80이 가까워지자 참다 못하여 구데타를 일으키고 태조대왕을 유폐시켰다는 설도 있다.


태조대왕은 90여 년간의 통치기간 중 전반 50여년 간은 외침에 대비하기 위한 국방력 강화와 주변국 정리에 전력하여 국력을 충실히 양성했고 후반 40년 동안 그 동안 배양한 실력을 기반으로 대외경략에 나서 고구려가 북방의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1. 태조대왕의 전반기 활동


1) 요서지방에 10개의 성을 축조하여 거란족과 한나라의 군현인 현도군의 침략에 대비했다.


2)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 있었던 동옥저를 완전 병합하여 고구려에 복속시켜 한나라 군현인 낙랑군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고, 동부여가 망하자 여러 나라로 분열된 동족의 소국들을 병합했다.


2. 태조대왕의 후반기 활동

1) 을사전역(乙巳戰役)

서기 105년 태조대왕 53년 을사년에 한나라가 설치한 요동군을 공격하여 그 관하 16현 중 6현을 점령하여 고구려의 영토로 삼았다. 3월 봄에 공세를 시작하여 9월이 되어 동절기가 닥쳐오자 공세를 중지했다.

2) 요동반도 지방을 경락하기 위한 순시 감행

요동군의 1/3에 해당하는 6개의 현을 점령한 태조대왕은 요동반도를 경략할 계획을 품고 압록강 강안을 따라 그 하류로 나아가 요동반도의 동남부를 순행하였다.

3) 요동전역(遼東戰役)

태조대왕 66년 서기 118년 그 동안 줄기찬 고구려의 통상 요청을 거절한 한나라에 대해 고구려가 불만을 품은 결과 태조대왕은 이웃의 현도군을 공격했다.

4) 한나라 침략군의 퇴치

태조대왕의 고구려가 요동군 관하의 6개의 현을 빼앗아 가고, 다시 현도군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공격하자 이에 한나라는 위협을 느껴 고구려의 서진(西進)에 거국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느꼈다. 이에 유주자사(幽州刺史) 풍환(馮煥), 현도태수(玄도太守) 요광(姚光),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 등이 한 자리에 모여 고구려를 정벌하기로 했다. 태조대왕은 한나라 군사들이 공격에 대비하여 그 동생 수성(遂成)을 대장으로 삼아 정면으로는 대항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나라의 장수 세 사람간을 이간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한나라 선봉대 요광의 공격을 2천의 군사로 막으면서 작은 수의 군사로는 정면공격으로는 한나라 대군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거짓 항복을 청해 한군의 진격속도를 늦추고 고구려군의 지원병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번 다음 3천의 별동대로 하여금 현도군의 후방에서 급습하게 하였다. 이에 허를 찔린 현도태수 요광이 퇴각을 하자 그 뒤를 추격하여 태자하와 요하 사이에 있던 전략적 요지인 요대(遼隊)를 점령했다. 승세를 타고 계속진격하던 3천 명의 고구려군사들은 요대(遼隊)를 탈환하기 위해 지금의 요녕성 요양시(遼陽市)인 양평(襄平)의 치소에서 요동군의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던 요동태수 채풍과 조우하여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맹무쌍한 고구려군은 한나라 군사들을 대파하고 요동태수 채풍을 죽이는 대전과를 올렸다. 한편 태조대왕 자신은 선비족의 군대 8천 명과 1만 여명의 예맥 기병을 이끌고 현도군을 공격했다. 이에 한나라 조정의 회유를 받은 북쪽의 부여가 왕자 위구이(尉仇台)에게 1만의 기병을 주어 한나라를 돕게했다. 이에 형세가 불리하다고 느낀 고구려군은 군사를 거두어 본국으로 퇴각했다. 한편 한나라 조정도 유주자사부에 명하여 그 예하의 광양(廣陽), 어양(魚陽), 우북평(右北平), 탁군( 郡) 등의 군에서 3천 여기의 기병을 차출하여 지원하려고 하였으나 그 때는 이미 고구려군이 퇴각한 다음이었다. 부여의 참전으로 고구려는 한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고 강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5) 현도군과 서안평의 점령

태조대왕은 현도군과 서안평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땅으로 삼았다. 서안평은 지금의 신의주 압록강 북안에 있는 단동시의 고대 때의 이름이다. 고구려가 서안평과 현도군을 차지했다는 말은 요동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전진기지를 마련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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