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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2 15:16:023737 
고구려 멸망의 원인1
양승국

한국상고사학회 (펌)
작성자 : 무명

'고구려 멸망의 핵심, 대외적 원인'

고구려 멸망의 원인을 한반도 내부의 정황으로만 파악해서는 그 전모를 알기가 힘들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독재는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 어떤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의 내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의 멸망의 원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중국의 통일왕조로부터의 무자비한 공격입니다. 기원 311년 서진이 멸망하고 5호16국과 남북조의 오랜 분열을 수나라가 근 300년 만인 기원 589년 중국을 통일하자 잠정적인 가장 큰 적국인 고구려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주변국을 복속시키고 고구려만 남겨둔다는 것도 통일왕조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것이겠죠.

그 후 고구려의 치열한 방어전에 수나라는 상당한 타격을 입고 결국 무너집니다. 그후 당나라는 당연히 수나라의 교훈을 알면서도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당태종조차 그 교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아래 두 천자가 존재할 수 없듯이 고구려와 당은 어차피 일전을 치르고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피할 수 없고 그 끝을 보아야만 하는 싸움에서 진 것이죠.

연개소문의 독재나 후계자들의 내분은 단지 최악의 상황으로 달리고 있는 국제정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하는 입장의 문제일 뿐 그것이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결과로 일어난 일을 원인이라고 잘못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의 멸망원인은 역시 국제관계 속에서 나옵니다.

통일왕조를 건설해 나가는 당은 당시의 최대의 적대세력이던 돌궐을 630년 당태종이 직접 원정하여 실리카간을 압송해오고 동돌궐을 멸망시킵니다.

동돌궐의 멸망이야 말로 고구려 멸망의 커다란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의 군사력이 동으로 몰려 고구려를 공격할 때 당의 내지를 공격해줄 동맹군인 동돌궐이 멸망하자 고구려는 당의 공격에 대비할 아무런 국제적 연맹을 가지지 못하고 그후 오히려 잠재적 동맹군이던 돌궐병의 공격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실제 645년 당태종의 공격에 돌궐이 참전한 기록이 있죠.

그러자 고구려는 서돌궐의 설연타와의 동맹을 맺게됩니다. 당의 서쪽에서 웅크리고 있던 설연타와 동맹을 맺는데 성공하자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645년 안시성을 에워싸고 당이 고구려를 공격하고 있을 때, 설연타는 중국의 오르도스지역을 침공합니다.(사서의 기록으로는 설연타의 침공은 당의 고구려 철수직후 입니다만...) 후방이 불안한 상태에서 대규모 원정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겠죠. 당은 결국 안시성을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고구려에 대한 원정을 실패한 당태종은 돌아가자 마자 설연타를 공격해 다음해인 646년 설연타를 멸망시킵니다.

이때 당황한 고구려는 당에 화해를 요청하나 당은 거절합니다.

당은 협공을 당할 염려가 이제 없어졌습니다. 고구려는 동맹군이 사라지고 후방은 신라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집니다. 고구려는 결국 동맹군을 찾아 중앙아시아 사마르칸드까지 가서 그곳의 소그드왕에게 동맹을 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사마르칸트의 고구려사신도) 소그드왕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노태돈 설)


이 시기가 되면 모든 돌파구가 막힌 상태에서 고구려가 내분으로 가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항복할 것인가 말것인가?> <어떻게 해야 고구려가 살아남을 것인가?> 연개소문의 독재와 그 아들들의 내분은 살아남기 위한 고민으로 봐야 합니다.

그 때문에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고구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소치로 생각됩니다. 결과가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완벽한 동맹군의 협공시스템을 갖춘 거대제국과 모든 동맹의 가능성이 차단된 50년 전쟁에 시달린 고구려의 대결은 당연한 결과로 밖에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때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역사상 엄청난 미스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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