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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회. 馮驩彈鋏(풍환탄협) 桀宋招亡(걸송초망)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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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4회 馮驩彈鋏 桀宋招亡 (풍환탄협 걸송초망)

맹상군의 식객이 되어 장검을 두드리며 노래 부른 풍환과

폭정으로 나라를 망친 송나라의 폭군 언왕

1. 馮驩彈鋏(풍환탄협)

- 장검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 풍환 -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탈출해 제나라로 가던 중 조나라를 들렀다. 평원군 조승이 도성 밖 30리까지 나와 영접하며 매우 극진하게 대했다. 조나라 사람들은 평소 맹상군의 명성을 전해 들었으나 그때까지 아무도 그의 실제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 조나라 사람들은 맹상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앞 다투어 길거리로 나와 그를 구경하려고 했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쉽게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구경나온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맹상군의 일행을 보고 비웃었다.

「옛날에 내가 맹상군을 사모한 것은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 기골이 장대해 보통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를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생기기가 쥐방울만한 소장부일 뿐이로구나!「

그리고는 큰소리로 웃어대자 여러 사람들이 따라 같이 웃었다. 그날 밤 맹상군을 보고 웃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머리가 잘렸다. 평원군은 마음속으로 그 일은 맹상군의 문객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그에 대한 죄를 추궁하지 못했다.

한편 맹상군을 진나라로 보낸 제나라의 민왕은 마치 자기의 양쪽 팔이 없어진 것처럼 아쉬워하며 진나라가 맹상군을 임용하고 돌려 보내주지 않을까 봐 매우 걱정했다. 이윽고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도망쳐 제나라를 향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제민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제나라에 당도한 맹상군을 민왕은 예전처럼 제나라의 상국으로 임명했다. 제나라 선비들은 맹상군이 돌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기 시작하여 그의 문객들의 수효는 예전보다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맹상군은 문객들이 거처하는 객사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상등의 객사는 대사(代舍), 중등의 객사는 행사(幸舍), 그리고 하등 객사를 전사(傳舍)라고 불렀다. 상등객사를 대사라고 한 것은 ‘맹상군을 대신할 수 있는 인사들이 살고 있는 객사 ’라는 뜻에서였으며 상객들을 거주하게 하여 고기를 먹게 하고 수레를 내주어 타고 다니게 했다. 행사란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객사’라는 뜻으로 중객들을 머물게 하고 음식으로 고기를 먹게 했으나 수레는 내주지 않았다. 전사란 껍질을 벗긴 곡식으로 지은 밥을 내주어 기아나 면하게 해주며, 출입 시에는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하객들을 머물게 했다. 옛날 진나라에 갔을 때 계명구도(鷄鳴狗盜)한 사람과 역권을 위조해여 자기를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들은 모두 대사에 거주하는 상객의 반열에 세웠다. 그때 객사의 운영비용은 자기의 봉읍인 설읍(薛邑)에서 걷는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었으나 먹여 살려야할 식객 수가 너무 많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맹상군은 설읍의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수확시기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아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풍채는 장대했으나 낡아빠진 옷에 짚신을 신은 한 사나이가 찾아와서 자기는 제나라 출신으로 성은 풍(馮)이고 이름은 환(驩)이라고 하면서 맹상군을 뵙기를 청했다. 맹상군이 마중나와 읍을 하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주신 까닭은 무슨 가르침이 있어서입니까?「

「없습니다. 단지 군께서 선비들을 좋아하고 그 사귐에 있어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비천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의탁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맹상군이 풍환을 하객들이 묵고 있는 전사에게 머물도록 했다. 그리고 10여 일이 지나서 맹상군은 전사의 집사장에게 물었다.

「새로 온 문객은 지금 무엇을 하면서 소일하고 있는가?」

「풍선생은 워낙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라, 신변에는 아무런 기물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한 자루 칼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칼집이 없이 풀로 엮어 만든 밧줄로 메어 허리에 차고 다닙니다. 풍선생은 식사가 끝나면 그 장검을 밥상에 올려놓고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장검아,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여기에 있다가는 물고기도 먹지 못하겠구나!

長鋏歸來兮, 食無魚

맹상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음식이 시원찮다고 나를 비난하는군!」

맹상군이 즉시 풍환을 중객들이 묵고 있는 행사로 옮겨 물고기와 육류를 먹게 해주고 그 집사장에게 그의 거동을 지켜보라고 하면서 말했다.

「닷새 후에 나에게 와서 그가 어떻게 지내는 지를 고하라!」

이윽고 5일이 지나자 집사장이 와서 보고하며 말했다.

「풍선생은 옛날과 같이 식사를 끝내면 칼을 식탁에 올려놓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단지 그 노래말이 옛날과는 같지 않습니다.」

장검아, 집으로 가자꾸나!

여기에 있다가는 수레도 못 얻어 타겠구나!

長鋏歸來兮, 出无車

맹상군이 듣고 놀라서 말했다.

「그가 나에게서 상객으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구나! 그 사람은 필시 기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맹상군이 다시 와서 그를 대사로 옮겨주도록 했다. 다시 대사의 집사장 불러 그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지를 살펴보고 그 결과를 자기에게 보고하도록 명했다. 풍환이 수레를 타고 해가 뜨면 나가고 밤이 되면 돌아와서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장검아,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여기에 있다가는 집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하겠구나!

長鋏歸來兮, 無以爲家

2. 討債買義(토채매의)

- 빚을 탕감하여 인의를 사들이다. -

대사의 집사장이 와서 고하자, 맹상군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 얻어먹는 주제에 이리 염치가 없는가?」

다시 집사장에게 그이 행동을 계속해서 살펴보게 했으나 풍환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풍환이 맹상군의 객사에서 일 년여를 지내고 있을 때 객사를 관장하던 총집사상이 맹상군을 찾아와 고했다.

「지금 객사에는 비용과 양식이 한 달 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맹상군은 봉읍인 설읍(薛邑)의 백성들에게 양식을 빌려주고 받은 증서를 찾아서 살펴보았다. 백성들이 그에게 빌려간 양식의 양이 매우 많아 그의 측근들에게 물었다.

「문객들 중 나를 위해 설읍에 가서 백성들에게 빌려준 빚을 받아 올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사의 집사장이 말했다.

「풍환 선생은 그가 무슨 재주를 갖고 있는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성실한 사람 같으니 능히 맡겨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자기가 스스로 상객을 자청했으니, 이번 기회에 그를 시험해 보시지요.」

맹상군이 풍환을 불러 설읍에 가서 백성들에게 빌려준 빚을 거두어 오는 일을 맡아 달라고 청했다. 풍환은 두말없이 흔쾌히 허락하더니 즉시 행장을 꾸려 수레를 타고 설읍으로 출발했다. 풍환은 설읍의 치소에 당도하여 그 부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설읍의 호구 수는 만 호였는데 대부분이 맹상군에게서 양식을 얻어가 빚을 지고 있었다. 맹상군이 그이 문객 중 상객을 보내 이자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고 달려와 풍환에게 바쳤다. 이윽고 풍환이 이자로 받은 돈이 십만 전에 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풍환은 그 돈으로 소와 술을 사서 설읍의 부중에 쌓아놓고 백성들에게 통고하게 했다.

「맹상군에게 이자를 갚지 못한 사람들은 갚을 능력이 있건, 능력이 없건, 내일 모두 부중에 와서 여러분들이 써놓은 문서를 확인하고 준비한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기 바란다.」

다음 날이 되자 백성들은 풍환이 소고기와 술로 자기들을 배불리 접대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설읍의 부중으로 모였다. 풍환이 일일이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배불리 마음껏 먹도록 권했다. 백성들이 술과 음식을 먹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본 풍환은 그들 중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를 모두 알아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빚문서를 꺼내어 서로 맞추어보게 하였다. 생활에 여유는 있으나 일시적으로 돈을 마련하지 못해 그 당시는 갚지 못했으나 나중에라도 갚을 수 있는 백성들은 그 상환 기일을 다시 정하여 빚문서에 적었고, 정말로 가난하여 상환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그 상환 기일을 연기해 달라고 애걸했다. 풍환이 곁에 있던 관리들에게 명하여 모닥불을 피우라고 명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빚문서가 들어 있는 상자를 모두 불 속에 던져 태워버리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이 백성들에게 돈을 꿔 준 것은, 그대 백성들이 돈이 없어 살아 갈 수 없을 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지 그것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맹상군께서는 먹여 살려야 할 식객이 수천 명이나 되어 이 고을에서 걷어 들이는 부세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부득이 이식이라도 거두어 그 돈으로 식객을 먹여 살리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갚을 기일을 다시 연기하고, 도저히 갚을 수가 없는 사람들은 그 빚문서를 태워 그 빚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습니다. 맹상군께서 그대들 설읍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덕이 적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기뻐하며 말했다.

「맹상군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부모와 같은 분이시로다!」

설읍의 어떤 사람이, 빚을 거두러 온 풍환이 공연히 빚문서만을 태워버리는 것을 보고, 임치성으로 달려와 맹상군에게 일의 전말을 고했다. 맹상군이 듣고 대노하여 사람을 설읍으로 보내 풍환을 서둘러 소환했다. 풍환이 빈손으로 돌아와 맹상군 앞에 대령했다. 맹상군이 아무 것도 모른 척하고 풍환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설읍의 일로 노고가 많으셨는데 읍민들로부터 이자를 걷는 일을 다 끝내셨습니까?」

「제가 비록 군을 위해 빚을 받아오지 못했지만 그들의 인심을 걷어 가지고 왔습니다.」

맹상군이 정색을 하고 풍환을 책하며 말했다.

「이 사람의 집에는 식객이 3천 명이 있습니다. 제가 설읍에서 걷어 들이는 부세만으로는 그들을 먹이기가 부족하여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아 비용으로 쓰려고 한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선생께서는 이자로 받은 돈으로 모두 술과 소를 사서 그곳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다시 빚문서를 반이나 불에 태웠다고 하는데, 오히려 인심을 걷어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시니, 저로서는 무슨 인심을 가지고 오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으니 군께서는 잠시 노여움을 푸시기 바랍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술과 고기를 준비하지 않고 그들을 부른다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선뜻 부름에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지 않는다면 제가 백성들 중 빚을 갚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내어 그 상환 기일을 다시 정해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을 갚지 않는다고 엄히 문책한다 할지라도 그들 역시 상환할 능력이 없어 오래 동안 놔두면 이자만 늘어나 결국은 다른 지방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설읍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이나 군의 선친께서 하사 받은 봉읍이라 그곳의 백성들은 군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처지입니다. 지금 아무 소용없는 빚문서를 태운 것은 군께서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군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인의(仁義)라는 명성은 만세에 전해지는 것이라서 소인이 군께서 인심을 얻으셨다고 한 것입니다.」

맹상군은 식객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급하게 되어 마음속으로 여전히 석연치 않게 생각했으나 빚문서는 이미 타버렸음으로 어쩌는 수가 없어, 이어서 얼굴에 온화한 기색을 띄우고 풍환을 향해 읍을 하며 그 수고를 칭하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좋은 접대만을 요구하던 사람을 맞이하여 상빈으로 삼았건만

빚문서만 불살라 주인의 분노만 샀구나!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인의(仁義)를 거두어 왔으니

장검을 두드리며 노래한 사람은 진정 고명한 인사였음이라!

逢迎言利号佳賓(봉영언리호가빈)

焚卷先虞觸主嗔(분권선우촉주진)

空手但收仁義返(공수단수인의반)

方知彈鋏有高人(방지탄협유고인)

3. 狡免三窟(교토삼굴)

- 지혜로운 토끼는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세 개의 굴을 마련한다 . -

한편 진나라의 소양왕은 맹상군은 놓친 것을 마음속으로 후회하다가 다시 그가 한 놀라운 행위를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맹상군이라는 사람이 제나라에 돌아가서 임용된다면, 결국은 그는 우리 진나라에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소양왕이 즉시 사람을 시켜 요언을 널리 퍼뜨리게 하여 제나라에까지 흘러 들어가게 했다.

「맹상군은 천하에 이름이 드높은 명사라 세상 사람들은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는 줄만 알고 왕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어 머지않아 맹상군이 제왕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소양왕이 다시 사자를 보내 초나라의 경양왕을 설득하게 했다.

「옛날 육국이 진나라를 정벌할 때 제나라 군사들만이 유독 행동을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초나라가 합종의 맹주가 되었기 때문에 맹상군이 불복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옛날 우리 진나라에 머무르고 계시던 대왕의 선왕이신 회왕(懷王)님을 우리 진왕께서 귀국시키려고 했지만, 맹상군이 사람을 보내와 돌려보내지 말라고 권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제나라에 태자의 신분으로 인질로 가있던 대왕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진나라가 대왕의 선왕을 죽여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대왕을 인질로 이용하여 초나라의 요충지를 얻으려고 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왕께서는 잘못했으면 초나라로 돌아오지 못할 뻔했었습니다. 그래서 선왕께서는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 진왕께서 초나라에 죄를 짓게 원인은 모두가 맹상군의 농간 때문이며 진왕께서 초나라에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사죄하기 위해 맹상군을 유인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마는, 맹상군은 기회를 틈타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다시 달아난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권력을 잡게 되었으니, 이제 그가 제나라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과 초 두 나라는 맹상군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은 명약관하한 일입니다. 저희 진왕께서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초나라와의 관계를 개선시키시고자 왕의 따님을 대왕의 부인으로 보내 혼인을 맺어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맹상군이 일으키는 변란에 대비하려고 하십니다. 바라옵건대 대왕의 허락을 바랍니다.」

초나라의 경양왕(頃襄王)은 진나라 사자의 말에 혹하여 결국은 진나라와 통호하고 그 왕녀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경양왕은 다시 사람을 몰래 제나라로 파견하여 맹상군이 반역을 일으켜 제왕이 되려고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게 했다. 제민왕이 결국은 맹상군을 의심하여 즉시 그에게서 상국의 인장을 거둬들인 다음 봉읍인 설읍으로 돌아가 살도록 했다.

맹상군이 제나라 상국의 자리에서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식객들은 뿔뿔이 흩어져 그 많던 사람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풍환만이 곁에 있으면서 맹상군을 위해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맹상군을 태운 수레가 설 땅에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설읍의 백성들은 노인네들은 부축하고 어린아이들은 손을 잡고 길거리에 나와 환영하면서 서로 앞을 다투어 술과 음식을 바치며 맹상군에게 어디에 묶을 것인지 물었다. 맹상군이 감격하여 풍환에게 말했다.

「선생이 말씀하신 ‘인심을 걷어왔다’라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에게 수레 한 대를 빌려주신다면 틀림없이 군께서 이 나라에 더욱 중하게 임용되게 만들고 군의 봉읍을 더욱 크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로지 선생의 처분만을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맹상군이 풍환이 요청한대로 황금과 비단을 가득 실은 수레 한대를 준비하여 풍환에게 주며 말했다.

「선생께서 가시고 싶은 대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풍환이 수레를 몰고 서쪽으로 나가 진나라의 함양성으로 들어가 가져간 황금과 비단을 왕의 측근에게 바쳐 소양왕을 접견하고 말했다.

「진나라에 와서 유세를 하는 선비들은 모두가 진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제나라의 세력을 약화시키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제나라에 와서 유세를 하는 선비들은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진과 제 두 나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강대국들이라 패권다툼에서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이긴다면 그 나라는 곧 천하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께서 무슨 계책으로 진과 제 두 나라의 패권다툼에서 우리 진나라가 이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제왕이 맹산군을 상국의 자리에서 몰아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과인이 그 소문은 진즉 들었으나 아직 그것이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제나라가 천하의 제후국들로부터 존귀하게 대접을 받고 있음은 바로 맹상군의 지혜 때문입니다. 오늘 제왕이 측근들의 참소에 미혹되어 하루아침에 재상의 인장을 거두어들이고 그가 세운 공에 상을 주기는커녕 죄를 주었습니다. 이 일로 해서 맹상군은 필시 제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제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대왕께서는 그를 불러 상국에 임명하고 진나라의 정치를 맡기십시오. 진나라가 그를 불러 쓴다면 제나라의 모든 비밀스러운 일들을 진나라에게 알려줄 것이며 그것을 이용하여 제나라를 도모하면 진나라는 가히 제나라를 차지 할 수 있는데 어찌 애써 다른 방법을 써서 천하를 얻고자 하십니까? 대왕은 한시라도 빨리 많은 황금과 비단을 사자에게 들려 제나라에 보내 아무도 몰래 설 땅에 있는 맹상군을 데려오십시오. 결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만일 제왕이 맹상군을 파직한 일을 후회하여 다시 그를 복직시켜 제나라의 정치를 맡긴다면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하의 패권다툼의 승패는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때 진나라는 저리질이 얼마 전에 죽어 소양왕은 그 후임으로 지혜로운 사람을 급히 찾아 진나라의 상국으로 임명하려고 하던 중이었다. 소양왕이 풍환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수레 열 대에 황금 백일을 사자에게 주어 승상에게 행하는 예를 갖추어 맹상군을 모셔오게 하였다. 풍환이 소양왕에게 다시 말했다.

「소신이 대왕을 위해 먼저 달려가 이 소식을 맹상군에게 알려 그로 하여금 행장을 꾸려 대기하고 있다가 진나라 사신이 당도하면 지체 없이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풍환이 수레를 질풍과 같이 달리게 하여 제나라에 돌아와 맹상군을 만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제왕에게 곧바로 달려가 접견하고 말했다.

「제와 진 두 나라는 상호간에 천하의 쟁패를 다투고 있는 강국이라는 사실을 대왕께서는 이미 아시고 계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어진 사람을 얻어 정치에 임하는 나라는 패권을 차지하게 되고, 어진 사람을 얻지 못하여 정치를 잘하지 못하는 나라는 패권을 잡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신이 이곳으로 달려오던 길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진왕은 제나라가 맹상군을 상국의 자리에서 파직시킨 일을 기뻐하며 아무도 몰래 훌륭한 장식으로 치장한 수레 10대와 황금 백일을 보내 맹상군을 모셔다가 진나라의 상국에 임용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맹상군께서 서쪽으로 나가 진나라의 재상이 된다면, 제나라를 위한 계책은 오히려 진나라를 위한 계책이 되어 천하의 패권은 모두 진나라에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제나라의 임치성과 즉묵성의 안전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풍환의 말에 제민왕은 얼굴색이 변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과인이 어찌해야 하겠소?」

「진나라의 사자 일행은 조만 간에 설읍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먼저 맹상군의 옛날 상국 자리를 다시 돌려주고 봉읍을 늘려 주신다면, 맹상군은 필시 마음속으로 은혜에 감사하며 대왕의 명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진나라의 사자가 비록 당당한 강국에서 온다하지만 어찌 대왕에게 고하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제나라의 재상을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상국의 자리를 맹상군에게 다시 돌려주도록 하겠소!」

제민왕이 입으로는 맹상군을 다시 기용한다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풍환의 말을 그다지 깊이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민왕은 사람을 시켜 제나라 국경에 가서 과연 진나라의 사절이 오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보게 했다. 민왕이 보낸 사자가 제나라 국경으로 달려가 수레와 호위 군사들이 서둘러 오는 일단의 행렬을 발견하고 조사를 해보니 과연 진나라의 사절들이었다. 사자가 밤낮으로 달려가 제왕에게 복명했다. 민왕은 즉시 풍환에게 명하여 부절을 가져가 맹상군을 모셔오게 하여 제나라 상국의 자리에 다시 앉히고 천 호의 호구를 봉읍에 더해 주었다. 진나라의 사자가 설읍에 당도했으나 그때는 이미 맹상군은 다시 제나라의 상국에 임명되어 임치성으로 가버린 후였다. 진나라의 사자는 결국은 맹상군을 못 만나고 수레의 방향을 바꿔 진나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4. 富貴多士 貧賤寡友(부귀다사 빈친과우)

- 부귀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가난하면 친구는 떠나는 법이다. -

맹상군이 다시 제나라의 재상 자리에 복위하자 그를 떠났던 옛날의 빈객들이 다시 찾아왔다. 맹상군이 풍환을 보고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빈객들을 사귀기를 좋아하여 그들에게 예를 잃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느 날 상국의 자리에 쫓겨나자마자 빈객들이 모두 나를 버리고 가 버렸습니다. 오늘 다시 선생의 도움에 힘입어 상국의 자리에 다시 앉게 되니 여러 빈객들이 다시 찾아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슨 염치로 나를 다시 찾는지 참으로 뻔뻔하기가 그지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저 인간사의 영욕과 성쇠는 만물의 상도입니다. 군께서는 대도시의 저잣거리를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침에는 서로 어깨를 부딪쳐가며 서로 앞 다투어 밀려들지만 저녁때가 되면 곧바로 그 번화하던 거리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는 텅 빈 거리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저잣거리에는 팔려고 하는 물건이 더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릇 부귀하게 되면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고 가난하고 천하게 되면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게 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상도(常道)인데 군께서는 어찌하여 이를 괴이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맹상군이 풍환에게 재배를 올리며 말했다.

「삼가 선생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5. 秦齊稱帝(진제칭제)

- 제호(帝號)를 칭하는 진(秦)과 제(齊) 두 강대국. -

그때 위나라의 소왕(昭王)은 한나라의 안리왕(安釐王)과 함께 주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내어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가 장군 백기를 시켜 두 나라의 연합군을 막도록 했다. 백기는 군사들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와 이궐(伊闕)1)에서 싸워 두 나라의 군사 24만 명의 목을 베고 한나라의 장수 공손희(公孫喜)를 사로잡았다. 백기는 계속 한나라 땅으로 진격하여 무수(武遂)2)의 땅 사방 200리를 점령하였다. 계속해서 승세를 탄 백기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위나라 하동(河東)의 사방 400리 땅을 차지하였다. 소양왕이 크게 기뻐하며 자기와 같은 대국의 왕이 나머지 육국의 왕들과 같은 왕호를 칭한다는데 불만을 느낀 나머지 그는 별도의 제호(帝號)를 사용하여 자기의 신분이 다른 왕들에 비해 더 높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만 제호를 사용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다고 생각하여 사자를 제민왕에게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지금에 있어서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가 왕호를 칭하고 있어 누가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지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과인은 다른 왕들과는 구분 짓기 위해 서제(西帝)라 칭해 천하의 서쪽을 다스리고, 제나라는 동제(東帝)라고 칭해 천하의 동쪽을 다스려, 천하를 양분하고 싶은데 대왕의 뜻은 어떠한지 알고 싶습니다.」

제민왕이 뜻을 결정하지 못하고 맹상군을 불러 그의 의견을 물었다. 맹상군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강포한 진나라의 전횡은 천하 제후들의 원한을 사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절대 진나라의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 달 후에 진나라가 다시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어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조나라를 공격하여 그 빼앗은 땅을 나누어 갖자고 제안해 왔다. 그때 마침 소대가 연나라로부터 사자의 임무를 띠고 제나라에 들렸다. 제민왕이 먼저 진나라가 제나라와 제호를 같이 사용하자는 요청에 대해 소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소대가 말했다.

「진나라가 제호를 같이 사용하자고 다른 나라에는 감히 청하지 않고 유독 제나라에만 청하고 있는 이유는, 제나라를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의 청을 물리치면 즉 진나라의 원한을 사게 되고, 그 청을 받아들이면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진나라의 청을 받아들인다고 허락하고는 제호는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먼저 진나라 혼자 제호를 칭하게 하여 서쪽의 제후들이 진나라를 받들게 되는 것을 보고 나서 대왕께서도 제호를 칭하여 동방의 제왕으로 임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진나라가 제호를 칭함으로써 제후들이 원한을 품게 된다면 대왕은 이를 진나라의 잘못으로 돌리십시오. 」「

「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제민왕이 다시 소대에게 물었다.

「진나라가 우리와 같이 조나라를 정벌하여 그 빼앗은 땅을 나누어 갖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명분 없이 군사를 움직이게 되면 일을 이루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조나라는 지금 정벌을 당할 만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른 일이 없는데 그 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 이유는 진나라가 땅을 빼앗아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라 제나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 송나라 군주가 무도하여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군주를 걸송(桀宋)이라고 불러 포학무도한 은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진나라와 함께 조나라를 정벌하기보다는 송나라를 정벌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송나라의 땅을 얻게 되면 능히 지킬 수 있고, 그 백성들을 얻게 되면 마땅히 신민으로 삼을 수 있으며 또한 비록 송나라를 멸한다 할지라도 폭군을 정벌했다는 명분을 얻어 은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이나 주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업적에 비견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민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진나라에 제호를 받아들인다고 통고를 하였으나 스스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어서 진나라의 사자를 후하게 대접하고 조나라를 정벌하자는 요청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사절했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스스로를 서제로 칭하다가 두 달도 채 못 되어, 제나라는 옛날과 같이 여전히 왕호를 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양왕은 즉시 제호를 거둬들이고 감히 진나라 단독으로는 제호를 칭하지 못했다.

6. 射天鞭地(사천편지)

- 하늘을 활로 쏘고 땅을 채찍으로 때리다. -

한편 송나라의 강왕(康王)은 곧 송벽공(宋辟公) 벽병(辟兵)의 아들이며 척성(剔成)의 동생이다. 옛날 서(徐)나라의 언왕(偃王)3)이 강왕의 모친 꿈속에 나타나 그녀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후에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언(偃)이라고 지었다. 강왕은 태어났을 때 그 모습은 참으로 기이하였다. 그가 자람에 따라 키는 9자 4치에 이르렀고 얼굴은 그 넓이가 1자 3치에 눈동자는 마치 커다란 별과 같았고 얼굴의 안색은 신광(神光)이 발하는 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또한 강왕은 능히 쇠로 만든 갈고리를 맨손으로 펼 수 있는 천하의 장사였다.

이어서 주현왕(周顯王) 41년, 즉 기원전 328년 언은 그의 형 척성을 몰아내고 스스로 송군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송군의 자리에 선지 11년 되던 해에 송나라의 국인 한 사람이 새둥지를 뒤져 참새 알을 얻었는데 그 알이 부화되어 매가 나왔다. 그 국인이 기이한 일이라고 하여 그 매를 송군 언에게 바쳤다. 언은 태사를 불러 점을 쳐서 길흉을 알아보게 시켰다. 태사가 점괘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적은 것에서 큰 것이 나왔으니 이것은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갑자기 흥성하여 패업을 이룰 괘입니다.「

강왕이 듣고 말했다.

「지금 송나라의 세력은 매우 약한데, 과인이 일으키지 못한다면 누가 이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강왕은 즉시 나라 안에서 장정을 모아 친히 훈련을 시켜 정병 10만을 얻었다. 그는 그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나가 제나라를 정벌하여 다섯 개의 성을 빼앗고 남쪽의 초나라를 패퇴시켜 송나라의 국경을 300리 밖으로 확장시켰다. 서쪽의 위나라를 물리치고 그들의 성 두 개를 빼앗고 다시 등(縢)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송나라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에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어 통호를 청하자 진나라 역시 사자를 보내 송나라의 화친요청에 응했다. 이때부터 송나라는 중원의 강국으로 불리게 되어 제, 초, 삼진 등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언(偃)도 이어서 왕호를 칭하여 송왕이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는 천하에 자기에 비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여 하루라도 빨리 패왕의 업을 이루고 싶어 했다. 송왕은 조당에 임할 때마다 신하들에게 명하여 일제히 만세를 외치도록 시켰으며 자기가 당상에서 한번 ‘만세’하면 당하의 군신들이 따라 소리치고, 이어서 궐문 밖의 시위병사들도 역시 따라서 ‘만세’하며 외치게 하여 그 소리가 도성 밖 멀리 까지 들렸다. 다시 가죽부대에다 소의 피를 가득 담은 후에 장대 끝에 달아놓고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다. 송왕이 강궁과 날카로운 화살촉을 사용하여 공중에 매단 가죽부대를 뚫자 부대 속의 소피가 하늘에서 비오듯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이어서 사람들을 시켜 시중에 말을 퍼뜨리게 하였다.

「우리 왕께서 하늘에 활을 쏘아 천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셨다.」

송왕이 다시 땅의 지신을 항복시키려고 한다면서 특별히 채찍 한 개를 제작하여 땅을 향해 내리치게 하고는 사직을 때려 부수고 이어서 불태우고는 사람들에게 시중에 말을 퍼뜨리게 했다.

「우리 왕께서는 채찍으로 내리쳐 지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나가 자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고 했다. 다시 온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며 즐기면서 신하들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고 자기는 아무도 몰래 측근들에게 뜨거운 물을 따르게 하여 술이라고 한 다음 마셨다. 평소에 주량이 크다고 자랑하던 신하들은 모두 더 이상 마시지 못하고 술에 크게 취해 몸도 가누지 못하고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오로지 강왕(康王) 한 사람만은 정신이 멀쩡하였다. 좌우의 측근 한 사람이 이 것을 보고 아첨을 하자 모든 신하들이 강왕의 주량에 대해 칭하했다.

「대왕의 주량은 마치 바다와 같이 커서 천 섬의 술을 마신다 할지라도 결코 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강왕은 또한 부녀자들을 모아 놓고 음락을 즐기는데 하루 밤에 열 명의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하고는 사람들에게 시켜 말을 퍼뜨리게 했다.

「송왕의 정력은 수백 명의 여인을 상대할 수 있어 아무리 많은 여인들과 정사를 한다 할지라도 결코 싫증내시지 않는다!」

송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백성들과 신하들을 속이고 있었다.

7. 相思連理(상사연리)

- 사랑하는 마음에 죽어서도 연리지가 된 한빙(韓凭) 부부 -

하루는 봉부(封父)의 빈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뽕 밭에서 뽕을 따던 여인의 자태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 주변의 청릉(靑陵)에다 대를 지어 놓고 그 여인이 뽕을 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어서 사람을 시켜 그녀의 집을 알아보게 한 결과, 그녀는 곧 왕실의 잡일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던 한빙(韓凭)의 처 식씨(息氏)였다. 강왕이 사람을 보내 한빙을 설득하여 그의 처를 왕에게 바치라고 하였다. 한빙이 자기 처에게 왕의 사자가 한 말을 전하고 그녀의 뜻을 물었다. 식씨가 시를 지어 강왕에게 보냈다.

남산에 새가 있는데

북산에 그물을 쳤도다

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데

그 그물로 어찌 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南山有鳥(남산유조)

北山張羅(부간장라)

鳥自高飛(조자고비)

羅當奈何(나당나하)

송왕은 식씨가 자기의 청을 거절하자 더욱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겨 사람을 그녀의 집으로 보내 강제로 데려오게 했다. 한빙은 식씨가 수레에 타고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왕이 식씨를 불러 같이 청릉대(靑陵臺)에 올라 말했다.

「나는 송나라의 왕이니라! 내가 능히 사람을 부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며 또한 역시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도 있다. 더욱이 그대의 부군은 이미 죽었는데, 그대는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가? 만약에 나의 뜻을 따른다면 마땅히 그대를 왕비로 삼아 부귀영화를 같이 누리리라!」

식씨가 다시 시를 지어 송왕의 말에 대답했다.

하늘을 나는 잡새들도 암수가 있어

봉황이 꾄다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첩은 단지 천한 백성이라

송왕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鳥有雌雄(조유자웅)

不逐鳳凰(불축봉황)

妾是庶人(첩시서인)

不樂宋王(불락송왕)

「그대는 이미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대가 비록 나를 따르지 않겠다 한들 내가 어찌 그대를 취하지 않겠는가?」

「첩으로 하여금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바꾸어 입고 나의 죽은 지아비의 원혼에 작별의 인사를 드린 다음에 대왕의 시중을 받들겠습니다.」

송왕이 허락하자 식씨는 그의 면전에서 물러 나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은 후에 하늘을 쳐다보며 절을 두 번 올리더니 대 위에서 땅 밑으로 뛰어내렸다. 송왕이 보고 좌우에 있던 사람에게 명하여 급히 식씨의 옷자락을 붙잡으라고 시켰으나 미치지 못했다. 대 위에서 뛰어 내려 땅에 떨어진 식씨를 살펴보니 숨이 이미 넘어간 뒤였다. 죽은 그녀의 신변을 조사해 보니 치마를 두른 끈 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제가 죽거든 저의 유골을 남편인 한빙의 무덤에다 합장하여 주시면 황천에서나마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송왕이 대노하여 일부러 무덤을 두 개로 만들어 멀리 떨어진 곳에다 묻어 서로 바로 보게 만들어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송왕은 식씨를 매장한 다음 3일을 더 머문 다음에 도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한 밤중에 한빙과 식씨가 묻힌 무덤에 갑자기 아름다운 모습의 가래나무가 두 무덤 곁에서 각각 한 그루씩 생기더니 열흘도 못되어 그 크기가 세 장이 넘게 자라, 그 나무 가지가 뻗어 나와 서로 뒤엉켰다. 이어서 원앙 한 쌍이 날아와 그 나무 가지에 앉아 목을 맞대며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보고 애처롭게 생각하며 말했다.

「저 가래나무와 원앙새는 한빙 부부의 혼이 변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나무 이름을 ‘ 상사수(相思樹)’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염선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상사수 나무 위에 앉은 한 쌍의 원앙이여!

천고의 아름다운 넋은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구나!

위세로 능히 여인의 절개를 꺾을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군왕에게 항거하여 뜻을 지킨 사람은 한 사람의 부인이었더라!

相思樹上兩鴛鴦(상사수상양원앙)

千古情魂事可傷(천고정혼사하상)

莫道威强能奪志(막도위강능탈지)

婦人執性抗君王(부인집성항군왕)

8. 齊伐桀宋(제벌걸송)

- 포악한 송언왕을 정벌하는 제민왕 -

송나라의 신하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포학한 송왕을 보고 간언을 올렸다. 그러나 송왕은 신하들이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좌석 옆에다가 활과 화살을 비치해 놓고 자기에게 다가와 간하는 자가 있게 되면 재빨리 활에 화살을 재어 쏘아 죽였다. 어느 날은 하루 사이에 활로 쏴 죽인 사람이 경성(景成), 대오(戴烏), 공자발(公子勃) 등 세 사람에 달했다. 이 후로는 조정에는 아무도 입을 열러 강왕에게 간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제후들은 송왕이 하나라의 마지막 왕 폭군 걸왕과 같다고 해서 그를 걸송(桀宋)이라고 불렀다.

이때 제민왕이 소대의 진언에 따라 초와 위 두 나라에 사자를 보내 송나라를 같이 공격하여 점령하게 되면 그 나라를 똑 같이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다. 두 나라가 제민왕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사를 발하여 송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은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송나라는 얼마 전에 우리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통호를 하여 우리와 친한 나라이다. 제나라가 만일 송나라를 정벌한다면 내가 군사를 내어 송나라를 구원하도록 하겠다.」

구원병을 보내 송나라를 구원하겠다는 진나라를 두려워한 제민왕은 소대를 불러 그 대책을 물었다. 소대가 말했다.

「제가 서쪽의 진나라에 들어가 진나라가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겠으니 대왕께서는 즉시 송나라를 정벌하여 공을 세우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소대가 즉시 진나라로 달려가 소양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제나라가 지금 송나라를 정벌하고 있어 신이 감히 달려와 대왕에게 경하의 말을 올리고자 합니다.」

「제나라가 송나라를 정벌하는데, 어찌하여 선생이 과인에게 경하의 말을 올린다는 말입니까?」

「제왕은 포학하기가 송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은 초와 위 두 나라에게 송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갖자고 약속하여 두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만, 제왕의 평소에 하던 행위를 보건대 송나라가 멸하게 되면 필시 두 나라와의 약속를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초와 위 두 나라가 제나라에 기만을 당하게 된다면 그들은 필시 고개를 서쪽으로 돌려 진나라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나라가 송(宋) 한 나라를 잃은 대신 초와 위 두 나라를 얻게 되는 일입니다.그런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이 일이 진나라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이런 연유로 경하의 말을 제가 감히 대왕께 올렸습니다.」

「과인이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원병을 보낼까 하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왕은 그 포학무도한 행위로 천하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어 송나라가 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만이 유독 송나라를 구원한다면 천하 사람들의 공분은 진나라로 옮겨질 것입니다.」

진왕이 결국은 송나라를 구원하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한편 송나라의 교외에 제나라의 군사가 먼저 당도하고 계속해서 초와 위 두 나라의 군사들도 뒤따라 도착하여 3국의 군사들이 한 곳에 집결하였다. 제장 한섭(韓聶), 초장 당매(唐昧), 위장 망묘(芒卯) 등 세 사람의 장수가 한 자리에 모여 작전을 협의하였다. 초장 당매가 말했다.

「송왕은 그 포부가 황당하고 교만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마땅히 우리가 허약하다는 것을 보여 그를 유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장 망묘도 의견을 내 놓았다.

「송왕은 음탕하고 포학한 자라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떠났습니다. 옛날에 우리 세 나라는 그와 싸워 싸움에 지고 영토의 일부를 빼앗긴 치욕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가 격문을 지어 그의 악행을 널리 알려 우리 세 나라가 빼앗긴 땅의 백성들을 효유하면 필시 그들은 손에 든 무기의 방향을 우리에게서 돌려 송나라로 향할 것입니다.」

제장 한섭이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세 사람이 상의한 대로 즉시 격문을 써서 송왕이 저지른 10가지의 커다란 죄를 열거하였다.

一. 형을 내쫓고 송군의 자리를 찬탈하였으니, 나라를 얻은 방법이 옳지 못했다. 逐兄纂位, 得國不正(축형찬위, 득국부정)

二. 등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병합하였으니, 강한 것을 믿고 약한 것을 능멸하였다. 滅滕兼地, 桀强凌弱(멸등겸지, 걸강능약)

三. 침략과 싸움을 즐겨하여, 대국의 변경을 범하였다. 好攻樂戰, 侵犯大國(호공락전, 침범대국)

四. 하늘의 거죽부대를 향해 활을 쏘아, 상제로부터 죄를 얻었다. 革囊射天, 得罪上帝(혁낭사천, 득죄상제)

五. 밤새도록 술만 마시며,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다. 長夜酣飮, 不恤國政(장야감음, 불휼국정)

六. 다른 사람의 부인을 빼앗아 취하니, 음탕하여 그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奪人妾女, 淫蕩無恥(탈인첩녀, 음탕무치)

七. 간언을 올리는 신하들을 활로 쏴 죽여, 충신들의 입을 막았다. 射殺諫臣, 忠良結舌(사살간신, 충량결설)

八. 왕호를 감히 참칭하여, 망녕되이 스스로를 높였다. 僭擬王號, 妄自尊大(참의왕호, 망자존대)

九. 송나라 혼자만이 강포한 진나라에 아첨하여, 이웃 나라들의 원한을 샀다. 獨媚强秦, 結怨隣國(독미강진, 결원인국)

十. 하늘을 기만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니, 임금의 도리를 모르는 자다.慢神虐民, 全無君道(만신학민, 전무군도)

강왕의 죄를 열거한 격문이 송나라 땅 도처에 나 붙자 백성들은 놀라 두려워하였다. 옛날 강왕의 침략에 의해 송나라로 편입된 땅에 살던 세 나라의 백성들은 송나라 백성으로 지내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가 송왕의 죄를 열거한 격문을 보고, 모두 들고 일어나 송나라의 관리들을 쫓아내고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면서 세 나라의 연합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 결과 삼국의 연합군은 아무런 싸움도 겪지 않고 곧바로 수양성(睢陽城)으로 쳐들어 갈 수 있었다.

송언왕이 대거 병거와 보졸들을 열병하고 스스로 중군대장이 되어 수양성 성문을 나와 십리 밖에다 진영을 세워 삼국의 연합군을 막으려고 했다. 제장 한섭이 먼저 수하 장수인 여구검(閭丘儉)에게 군사 5천을 주어 송군에게 도전하게 했다. 그러나 송나라 군사들은 도전에 응하지 않고 진영에서 나오지 않았다. 여구검이 목소리가 큰 군사 몇 명을 선발하여 초거의 망루에 오르게 하여 송왕이 저지른 10가지 죄목을 외치게 했다. 송왕이 듣고 대노하여 장군 노만(盧曼)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진영 밖으로 나가 적군과 대적토록 했다. 노만을 맞이한 제장 여구검은 몇 합을 겨루다가 당해내지 못한 척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노만이 뒤를 추격하자 여구검은 그의 거마와 모든 병장기를 길에다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가기에 바빴다. 송왕이 진채의 망루에 올라 살펴보고 있다가 제나라 군사들이 싸움에서 패하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제나라 군사들을 패주 시켰으니 초와 위 두 나라 군사들도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것이다!」

송왕이 말을 마치고 영채 안에 남아 있던 군사들을 모두 거느리고 밖으로 나와 곧바로 제군의 본채를 덮쳤다. 한섭이 다시 진영을 거두고 20리 뒤로 후퇴하여 진영을 세웠다. 그 사이 당매와 망묘가 거느리는 초와 위 두 나라의 군사들은 좌우 양쪽의 길을 취하여 송나라 영채의 뒤로 돌아 수양성을 향해 진군했다.

다음 날, 송왕 언은 단지 제나라 군사들이 어제의 싸움에 패하여 겁을 집어먹고 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송나라 군사들에게 명하여 진채를 걷고 일제히 제나라 진영을 곧바로 달려가 공격하도록 명했다. 제나라의 선봉장 여구검은 도망치다 말고 한섭이 이끌던 제나라 본대의 군사들이 깃발을 흔들어 보내는 신호를 받고 뒤돌아서서 진영을 정비하여 송나라 군사들의 앞을 막아섰다. 여구검은 송왕과 진시와 오시 사이에 30여 합을 겨루었다. 송왕 언은 과연 영용하여 손수 제나라 장수 20여 명과 사졸 1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송장 노만은 싸움 중에 란군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여구검이 다시 싸움에서 대패하여 수많은 병거와 병장기를 뒤에 남겨 놓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송나라 병사들은 앞 다투어 달려가 제나라 군사들이 버리고 간 수레와 병장기를 노획하였다. 앞으로 내 보냈던 정탐병이 급히 돌아와 송왕에게 보고하였다.

「적군의 일부가 우리 배후를 우회하여 수양성을 공격하고 있어 사태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 적군의 동정을 알아보니 그들은 바로 초와 위 두 나라의 군사들이었습니다.「

송왕이 대노하여 황급히 송군의 대오를 정비하여 수양성을 향해 회군하다가 그들의 행렬이 5리도 채 전진하기 전에 비탈 길 안에서 한 떼의 군마가 갑자가 나타나 큰 소리로 외쳤다.

「제나라의 상장 한섭이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오래다. 무도혼군은 어찌하여 속히 항복하여 목숨이나마 부지하지 않느냐?」

송왕이 좌우에 있던 장수 대직(戴直)과 굴지고(屈志高)에게 명하여 병거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앞으로 나가 한섭을 막게 했다. 한섭이 귀신과 같은 용맹을 발휘하여 단칼에 굴지고의 머리를 베어 수레 밑으로 떨어뜨렸다. 대직은 간담이 서늘해져 감히 한섭에게 대항할 생각을 못하고 송왕을 호위하며 싸우면서 앞으로 달아났다. 이윽고 송군이 송언왕은 호위하여 수양성 성 밑에 당도하자 수양성을 지키던 장수 공손발(公孫拔)은 달려오고 있는 군사들을 자기편으로 알아보고 성문을 활짝 열어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삼국의 군사들이 힘을 합하여 수양성을 주야를 쉬지 않고 번갈아 가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삼국의 진영 뒤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더니 또 다른 대군이 수양성을 바라보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곧 제민왕이 친히 거느린 제나라의 원군이었다. 한섭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한 민왕이 친히 대장 왕촉(王蠋)과 태사교(太史敫) 등과 함께 송나라 원정군을 돕기 위해 달려 온 3만의 제나라 군사들이었다. 민왕이 거느린 제나라 원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왕성했다. 수양성 안의 송나라 군사들은 제나라 왕이 친히 군사들을 이끌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간이 콩알만 해져 싸우려는 마음을 잃고 말았다. 또한 송왕은 군사들의 어려움을 전혀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끌고 다니며 성 위에서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시키면서 아무런 상급도 내리지 않아 송왕을 원망하는 소리가 온 성안에 가득 차게 되었다. 대직이 송왕 언에게 말했다.

「적군의 세력이 흉맹하고, 성안의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대왕의 곁을 떠났습니다. 대왕께서는 성을 버리시고 잠시 하남(河南)으로 몸을 피하셨다가 다시 기회를 보아 후사를 도모함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천하를 제패하려는 마음은 품고 있었던 송왕은 한순간에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 버리자, 탄식을 크게 한 번 하더니 대직과 함께 밤이 이슥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성 밖으로 달아나 몸을 숨겼다. 공손발은 송왕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백기를 새워 항복을 알리고 제민왕을 수양성 안으로 맞이해 들였다. 제민왕은 성안의 백성들을 위무하고 한편으로는 전군에게 명령을 내려 도망간 송왕의 뒤를 추격하도록 했다. 송왕은 달아나다가 온읍(溫邑)에 이르자 추격군에게 덜미를 잡혔다. 대직이 송왕을 위해 추격군의 앞을 가로막았다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다. 도망치던 송왕은 추격군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신농간(神濃澗)이라는 계곡물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미쳐 익사하기 전에 추격군들에게 의해 물에 건져져서 참수를 당하고 그 목과 시신은 수양성으로 보내졌다. 마침내 제, 초, 위 세 나라 연합군은 송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약속대로 3분하여 나누어 가지기로 하였다.

9. 湣王自大(민왕자대)

- 송나라를 멸해 자존망대하는 제민왕 -

초와 위나라의 군사들이 해산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가자 민왕이 말했다.

「송나라의 정벌전은 제나라가 주로 힘을 많이 써서 성공할 수 있었는데 어찌하여 그 땅을 두 나라에 나누어 줄 수 있단 말인가?」

제민왕은 즉시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려, 본국으로 회군하던 초나라 군사들의 배후를 중구(重丘)4)라는 땅에서 급습하여 패주 시켰다. 제나라 군사들은 승세를 타고 싸움에서 지고 달아나는 초군의 뒤를 계속 추격하여 승세를 타고 초나라의 회수 이북의 땅을 모두 차지하여 제나라 영토로 삼았다. 다시 서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삼진의 땅을 침략하여 수차에 걸쳐 그 군사들을 패주시켰다. 초와 위 두 나라는 약속을 배신한 제민왕에게 원한을 품고 과연 두 나라가 모두 사절을 진나라에 보내어 우호관계를 맺을 것을 청하여 진나라는 오히려 소대가 말한 것처럼 두 나라의 마음을 얻게 되었다.

제민왕은 마침내 송나라 땅을 차지하자 그 마음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그 행동이 방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총신 이유(夷維)를 위(衛), 노(魯), 추(鄒) 등 세 나라의 군주들에게 사자로 보내 그들로 하여금 신하로 칭하며 제나라 조정에 입조하라고 강박했다. 세 나라의 군주들은 제왕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정벌 당할 것을 걱정하여 감히 민왕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더욱 기세가 오른 민왕이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과인은 연나라를 무찔러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게 하고 다시 송나라를 정벌하여 그 영토를 천 리나 넓혔다. 또한 위나라와 싸워 이기고 초나라의 회수 이북 땅을 모두 제나라의 영토로 만들어 그 위엄이 천하의 제후들을 떨게 하였다. 노(魯)와 위(衛)가 이미 나에게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를 했으니, 사수(泗水) 연안의 제후국들은 나의 위엄에 떨지 않는 나라가 없게 되었다. 조만 간에 한 떼의 군사를 일으켜 동서 양주(兩周)5)를 차지하여 구정(九鼎)을 임치로 옮기고 천자라고 칭하고 그 영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그 누가 감히 나의 명을 거역하겠는가?「

맹상군 전문이 듣고 간했다.

「송왕 언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제나라가 그의 나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송왕의 일을 경계 삼으십시오. 무릇 주나라가 비록 그 국세가 미약하다고 하지마는 아직 열국들이 한 뜻으로 천하의 주인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지금 일곱 나라가 서로 싸우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지만 감히 주나라만은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천자의 이름을 아직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옛날에 제호(帝號)를 버리고 칭하지 않아 천하의 열국들이 제나라가 겸양지덕이 있다고 칭송하고 있던 차에 오늘 갑자기 주나라를 대신하시겠다는 마음을 품고 계시니 신은 그것이 제나라에 화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바입니다.「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은 하나라의 걸왕을 쫓아냈고 주무왕은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했는데, 걸주(桀紂)는 모두 두 사람의 주인이 아니었던가? 과인의 업적이 어찌하여 탕왕이나 무왕보다 못하단 말인가? 상국이 이윤(伊尹)이나 태공(太公)과 같은 그릇이 못되는 것이 참으로 애석할 뿐이오!」

제민왕은 다시 맹상군을 상국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10. 信陵之義(신릉지의)

- 매를 죽여 비둘기의 원수를 갚아 준 신릉군의 신의 -

제나라의 상국 자리에서 물러난 맹상군은 민왕에게 살해될 것을 두려워하여 즉시 그 빈객들을 데리고 위나라의 대량성으로 가서 신릉군(信陵君)에게 몸을 의탁했다. 신릉군 위무기(魏無忌)는 위소왕(魏昭王)의 작은아들로 위인이 겸손하고 선비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선비들을 대할 때는 자기의 처신에 부족한 점이 없지나 않을까 항상 걱정하였다. 옛날 어떤 사람이 신릉군의 집에 묵으며 조반을 먹고 있던 때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신릉군에게 한 마리의 비둘기가 매에 쫓기다가 날아와 그의 밥상 밑으로 황급히 들어가 숨었다. 신릉군 무기는 비둘기를 숨겨주었다가 매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비둘기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무기는 매가 집의 용마루 위에 몸을 숨기고 비둘기가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을 몰랐다. 용마루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가 비둘기를 발견하자 달려들어 잡아먹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무기는 스스로 자책하며 말했다.

「비둘기가 재난을 당하여 나에게 몸을 맡겼는데, 결국은 매의 밥이 되고 만 것은 내가 비둘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무기는 하던 식사를 멈추고 그 날은 하루 종일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좌우의 사람들에게 영을 내려 매를 잡아오라고 했다. 가인들은 밖으로 나가 잡은 매가 모두 백여 마리에 달하자 각기 새장에 넣어 가져와 무기에게 바쳤다. 무기가 새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비둘기를 잡아먹은 매는 단지 한 마리뿐인데 내가 어찌하여 다른 매에게 해를 끼질 수가 있겠는가!」

무기가 즉시 허리의 칼을 빼들어 새장 위에 올려놓고 하늘에 대고 축문을 외었다.

「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은 매들은 나를 향해 비명을 지를 지어다. 내가 너희들을 놓아주리라!」

백여 마리의 매가 모두 비명을 질렀으나 유독 한 마리만이 비명도 지르지 않으면서 대가리를 숙이고 감히 무기를 응시하지 못했다. 무기가 즉시 그 매를 새장 안에서 꺼내어 죽였다. 나머지 매들은 새장의 문을 열고 모두 하늘로 날려 보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위나라의 공자 무기(無忌)는 한 마리의 비둘기에게 저지른 잘못도 차마 참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야 말해야 무엇 하겠는가?」

이 후로 천하의 선비들은 재능이 있거나 없거나 모두 무기의 집으로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이윽고 무기의 식객은 3천여 명이 넘게 되어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에 비견되었다.

11. 夷門訪賢(이문방현)

- 이문에 숨어사는 현인 후영(侯嬴)을 예방하는 신릉군 -

위나라 대량성에 은사 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이름이 후영(侯嬴)이라고 했다. 나이는 70이 넘었고 집안은 가난하여 대량성의 이문(夷門)6)을 지키는 문지기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다. 무기는 후영이 평소에 덕을 쌓고 몸가짐을 깨끗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생각하는 바가 훌륭하여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뜻으로 그를 후영 선생이라고 불렀다. 무기가 후영 선생의 소문을 듣고 수레를 몰아 그를 찾아가 큰절을 올리고 황금 20일을 주었다. 후생이 사양하며 말했다.

「이 영은 가난함을 스스로 만족하여 이 나이를 먹도록 도리에 맞지 않은 돈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 일전도 받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공자로 인하여 70평생 지켜온 신조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무기가 더 이상 강권하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무기는 후영선생을 예로서 받들어 자기의 빈객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즉시 술을 준비하게 하여 큰 연회를 열기로 하였다. 이윽고 연회가 열리는 날이 되자 위나라의 종실 자제와, 장군과 대신들을 비롯한 귀한 손님들이 무기의 집에 당도하여 모두 당중에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오로지 가장 높은 자리인 신릉군 왼쪽의 주빈석만 비어있었다. 무기는 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명하여 몸소 이문으로 달려가 후생(侯生)을 모셔와 연회에 참석시키려고 하였다. 후생이 무기의 수레에 오르자 무기가 읍을 하여 인사를 올리고 그를 상석에 앉게 하였다. 후생은 사양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무기가 권하는 상석에 앉았다. 무기는 후생의 곁에 앉아 말고삐를 잡으며 그 태도가 매우 공손하였다. 후생이 무기를 향해 말했다.

「저에게는 주해(朱亥)라는 친구가 있는데 푸줏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는 길에 들려 그를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공자께서는 이 수레를 그곳으로 몰아 같이 왕림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 선생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가보겠습니다.」

무기가 수레의 방향을 바꿔 구불구불한 시장 길을 따라 주해가 말한 곳으로 말을 몰게 했다. 이윽고 무기가 탄 수레가 푸줏간 앞에 당도하자 후생이 말했다.

「공자께서는 잠시 이 수레 안에서 머무시기 바랍니다. 이 늙은이가 친구를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생이 수레에서 내려 주해가 사는 집안으로 들어가 고기를 올려놓은 탁자 앞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었다. 후생이 가끔가다가 눈을 돌려 무기의 행동을 살폈으나 무기는 전혀 개의하지 않고 평상시와 같은 온화한 안색을 하며 싫어하거나 피곤해 하지 않았다. 그때 무기를 호위하던 십여 명의 기마병들은 후생이 푸줏간의 주인과 한가하게 잡담을 오래 동안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그만 소리로 후생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후생은 무기의 수행원들이 조그만 소리로 자기를 향해 퍼붓던 욕설을 들었으나 오로지 공자무기만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처음처럼 온화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후생이 주해와 작별을 고하고 다시 수레에 타더니 이 전처럼 태연히 상석에 앉았다. 무기가 주해의 푸줏간으로 가기 위해 자기 집을 나선 시간은 오시였고 후생을 태우고 돌아온 시각은 이미 신시가 끝나고 유시로 넘어가려고 하던 참이었다.7)

여러 귀한 손님들은 공자무기가 친히 수레를 타고 나가 손님을 모셔온다고 하여 하릴없이 다섯 시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은 공자무기가 모시러 간 사람은 벼슬을 구하기 위해 열국을 주유하는 고명한 사람이던가, 아니면 어느 나라인줄은 모르지만 대국에서 온 사신일거라고 생각하여, 모두가 일말의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동안 기다려도 무기가 나타나지 않자 손님들은 마음이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던 중에 갑자기 사인들이 와서 고하는 소리를 들었다.

「공자께서 손님을 모시고 문 앞에 이미 당도하셨습니다.」

여러 귀빈들이 무기가 모셔온 손님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다시 갖고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당 앞으로 나가 눈을 크게 뜨고 손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손님이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데 보니 그는 곧 한 사람의 머리가 새하얗게 샌 늙은이였다. 더욱이 그가 입고 있던 헤지고 남루한 의관을 본 집안의 귀빈들은 모두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무기는 손님들이 짓는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후생을 이끌고 다니면서 집안에 있던 귀빈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사시켰다. 귀빈들은 무기가 데리고 온 사람은 한낱 이문을 지키던 문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속으로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무기는 후생에게 읍을 올린 다음 연회의 맨 앞의 상석에 앉기를 청하자 후생은 사양하지 않고 선뜻 그 자리에 앉았다. 술잔이 몇 순 배 돌아 연회의 분위기가 거나하게 되자 무기가 금으로 만든 큰 술잔에 술을 가득 부은 다음에 후생의 면전을 향해 두 손으로 받들고 만수무강하기를 빌었다. 후생이 공자무기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들고 무기를 향해 말했다.

「나는 한낱 이문을 지키던 보잘것없는 문지기일 뿐입니다. 공자께서 친히 어려운 걸음을 하여 왕림하셨다가, 다시 오래 동안 성안의 저잣거리에 기다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추호도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보잘것없는 소인을 존대하여 여러 귀하신 분들의 위에 앉히셨으니 저로서는 과분한 대접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듯 공자님의 후한 대접을 받아들인 것은 공자께서 천하의 선비들을 사랑한다는 이름을 얻게 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후생의 말에 여러 귀빈들이 모두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윽고 연회가 파하자 공자무기는 후생을 그의 상객으로 삼았다.

후생은 공자무기에게 주해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천거했다. 무기가 여러 번 주해를 찾아가 만나 보기를 청했으나 그는 결코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는 주해를 괘씸하다고 생각지 않고 전혀 탓하지 않았다. 공자무기는 현인이라면 그 귀천을 따지지 않고 공경하기를 그와 같이 행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맹상군이 제나라로부터 위나라로 망명하여 무기에게 몸을 의탁해오자 그것은 마치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서로 친해지며, 마음이 서로 맞는 사람은 저절로 한데 모인다(同聲相應, 同氣相求).’라는 옛말이 뜻한 바와 같이 되어 두 사람은 자연히 의기가 투합했다. 맹상군은 원래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과 교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무기를 평원군에 소개시켜 서로 교분을 맺도록 했다. 무기는 그의 친누이를 평원군의 부인으로 출가시켜 두 사람 사이는 처남매부의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이후로 조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통호하고 맹상군은 두 나라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맹상군이 달아난 이후로 더욱 교만해진 제민왕은 밤낮으로 자기가 천자를 대신 할 생각에 빠져있었다. 당시 제나라 땅에서는 기이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혈우(血雨)가 사방 수백 리에 내려 사람들의 옷을 적셔 그 비린내 때문에 사람들이 코를 막고 다녀야 했다. 다시 땅이 여러 장 깊이 갈라져 그 사이에서 샘물이 솟구쳤다. 또한 제나라 국경에 있던 관문 앞에 사람의 통곡소리가 들리는데 소리만 들릴 뿐 그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괴이한 일 때문에 백성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아침저녁으로 편안하게 지내지 못했다. 대부 호훤(狐咺)이 제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변들을 열거하며 간언을 하고, 이에 더하여 맹상군을 불러들여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라고 상주하였다. 제민왕은 대노하여 호훤을 죽이고 그 시신을 성안의 저자거리에 전시하여 신하들의 간언을 막았다. 그래서 왕촉(王蠋)과 태사교(太史敫) 등을 위시한 제나라의 현신들은 모두 병이 들었다고 칭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몸을 숨겨버렸다.

<제 95회로 계속>

주석

1) 이궐(伊闕)/이궐새(伊闕塞)를 말함. 지금의 하남성 낙양의 남쪽에 있으며 두 산봉우리가 이수(易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마치 궁궐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이궐이라 했다.

2)무수(武遂)/ ① 한나라가 처음으로 정한 도읍이었던 평양성(平陽城) 부근으로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臨汾市) 부근 ② 지금의 산서성 원곡현(垣曲縣) 남 고성향(古城鄕)으로 황하(黃河)의 북안.

3)서언왕(徐偃王)/ 서주 때 동이족의 왕으로 영성(嬴姓)이며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주목왕(周穆王) 때 그는 지금의 안휘성, 강소성의 회수(淮水) 일대 오백여 리를 점령하고 인의(仁義)로써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인심을 샀다. 이어서 주위의 30여 제후국의 옹립을 받아 왕이 되었다. 그는 주궁(朱弓)과 적시(赤矢)를 얻어 스스로 하늘의 서기(瑞氣)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언왕(偃王)이라고 칭했다. 주목왕이 서쪽으로 순수를 나가 오랫동안 나라를 비운 틈을 타서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주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서쪽으로 나가 하수의 강변에 이르렀다. 주목왕이 나라에 변란이 일어난 것을 전해 듣고 수레를 휘몰아 돌아와 초나라와 연합하여 서언왕을 공격했다. 서언왕은 주나라 군사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싸움 중에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서언왕은 싸움에서 패하자 도망쳐 동해의 섬으로 들어가 성을 쌓고 그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또한 한비자 오두(五蠹) 편에 < 춘추 때 서국의 군주로 국세가 비록 강성했지만 오로지 문덕에만 힘쓰고 무력을 도외시하여 결국은 초문왕(楚文王)에게 나라를 뺏기고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4)중구(重丘)/전국 때 초나라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南陽市) 동쪽의 필양현(泌陽縣) 부근에 있던 고을로 호북성과의 경계에 있음

5)동서 양주(兩周)/주난왕(周赧王 : 재위 기원전 315-216년)이 그의 동생을 지금의 하남성 공현(鞏縣)에 있었던 공읍(鞏邑)에 봉하고 동주라 하고 원래의 주나라는 하남성(河南城)으로 개명하고 서주라고 하였다. 주나라는 진나라의 소양왕 52년인 기원전 255년에 진나라에 병합되었다.

6)이문(夷門)/ 위나라 도성인 대량성의 동문을 말한다. 하남성 개봉시 북문 일대에 당시의 유적이 남아있다. 성문이 이산(夷山) 위에 있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7)오시(午時)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이며 신시(申時)는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이고 유시(酉時)는 오후5시에서 7시 사이를 말한다. 즉 공자무기가 12시 좌우에 나갔다가 오후 5시에 후생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평설]

제(齊)와 진(秦) 두 나라는 당시 동과 서로 대치하고 있던 양대 강국이었다.

“ 제후군을 규합하여 송나라의 폭군 언왕을 정벌한 제민왕” 편은 제나라 역시 천하통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원전 293년 한(韓)과 위(魏)가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진나라 장군 백기가 출격하여 한위 연합군을 이궐(伊闕)에서 무찌르고 그 군사 24만 명의 목을 베었다. 계속 동쪽으로 진격한 진군은 5개의 성을 함락시킨 다음 다시 하수를 건너 안읍(安邑) 이동의 땅을 점령하고 건하(乾河)에 이르렀다.

진나라의 동방 진출은 가장 멀리 동쪽에 위치해 있던 제나라와는 당분간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나라는 대외정책을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정해, 진나라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한 한과 위 등의 나라는 공세를 취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와는 동등한 지위로 우호관계를 지속했다. 기원전 288년 진나라의 소양왕은 관동 제국의 제후들이 모두 왕호를 칭하는 것을 보고 진나라가 그들과는 다른 초강대국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왕호를 바꾸어 제호를 사용하여 기타 제후국들과 같지 않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제왕에게 제호를 사용하여 동방을 지배하라고 권했다. 표면상으로는 제나라와 천하를 평정하여 양분하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진나라의 동방진출에 대한 전략의 한 단계로 제나라로 하여금 경계심을 무디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진나라에 제나라에 같이 조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제나라는 조나라를 정벌하여 발생하는 이익은 모두 진나라의 차지가 되어 제나라로서는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진나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와 같은 제나라의 대응은 제나라도 나름대로의 국가적인 기본 방침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제나라는 진나라와 같이 천하를 양분하여 천하를 지배하겠다는 방침을 버리고 초(楚)와 위(魏) 두 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공격했다. 송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던 초와 위 두 나라는 그 국토의 일부를 송나라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던 관계로 제나라가 한 번 손벽을 치자 초나라가 즉시 호응한 것이다. 당시 송나라의 언왕은 황음무도하고, 사람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겨 마치 하나라의 걸왕과 같은 행동을 함으로 해서 백성들의 인심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삼국 연합군에 대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 제(齊), 초(楚), 위(魏) 삼국 연합군은 그 백성들에게 원한을 하고 있었던 정황 하에서 송왕을 정벌할 때 먼저 그 군사들이 약함을 보여 유인하는 과정에서 송왕의 죄악을 선전하여 송나라 군사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작전을 행했다. 그 결과 기원전 286년 당연한 결과로써 삼국 연합군은 송왕을 죽여 송나라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당시 제민왕은 국제적인 정세를 조정하는 전략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 못했다. 송나라를 멸망시킨 제왕은 그 여세를 몰아 위 초 두 나라와 삼국연합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본국으로 회군하는 초군의 뒤를 기습하고 삼진과 전쟁을 벌렸다. 이것은 진나라로 하여금 6국을 각개격파할 수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제민왕이 비록 두려움에 떨던 노와 위 두 나라 및 사상(泗上)의 소제후국들로부터 칭신(稱臣)이라는 전과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국면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동방의 동맹국을 잃어버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바로 진나라가 원하던 바였고, 또한 북방의 연나라가 오랜 세월 동안 학수고대하던 국면이었다.

한 번 살펴보면, 제나라가 비록 천하 통일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시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국 간에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이 어디 있는지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진나라가 제나라에 제호를 공동으로 칭하고 함께 조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한 목적은 제(齊)와 조(趙) 두 나라의 연합을 해체시켜 제나라를 고립시키려는 계략 차원에서였고, 그 결과 제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킨 일은 연나라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14년 연나라를 점령하고 있던 제나라가 국제정세에 밀려 철군하자 연나라는 제나라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점령당했던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복수를 벼렸다. 그러나 당시 제나라는 강하고 연나라는 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연나라 지도층은 어쩌는 수 없이 몸을 굽혀 제나라에 복종하는 체하며 제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공격하도록 유도했다. 당시 송나라의 정도(定陶)는 전국의 물산이 모여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중국의 유명한 상업도시로 제(齊), 진(秦), 조(趙) 등의 나라가 탐을 내어 군침을 석자나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제나라가 송나라를 멸하자 진과 조 등의 나라와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송의 남쪽은 초나라와, 서쪽은 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송나라 땅을 차지하는 문제로 반드시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하게 되어 있었다. 제나라는 결국은 송나라 문제로 인해 3면에서 적을 맞게 되었으나 다행히 용이하게 적군을 패배시켜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민왕이 깨닫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저 송나라를 집어삼켜 몸을 불릴 생각만 했던 제민왕은 그것을 집어 삼킨 후에 소화를 시키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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