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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佯死逃秦(양사도진) 廷辱魏使(정욕위사)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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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7회 佯死逃秦(양사도진) 廷辱魏使(정욕위사)

죽음을 가장하여 진나라로 달아난 범수는

위나라의 사자로 온 수가를 욕보여 원수를 갚았다.

1. 立有大功 遭倒忌恨(입유대공 조도기한)

- 대공을 세웠으나 오히려 질시를 받아 함정에 빠진 범수 -

한편 대량인(大梁人) 범수(范睢)는 자를 숙(叔)이라고 했는데 천지간의 일을 논할 만한 식견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뜻을 지니고 있는 재사였다. 그는 큰 뜻을 품고 위나라에 출사하려고 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스스로 조정에 줄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먼저 중대부 수가(須賈)의 문하에 들어가 그의 식객이 되었다. 옛날에 연나라의 악의가 주변의 네 나라를 규합하여 무도한 제나라의 민왕을 정벌할 때 위나라도 역시 군사를 보내어 도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의 망해가던 제나라를 전단(田單)이라는 영용한 사람이 나타나 연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고 제나라를 부흥시켜 태자 법장(法章)을 찾아 제양왕(齊襄王)으로 옹립하자 위소왕(魏昭王)은 제나라의 보복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위소왕이 상국 위제(魏齊)를 불러 그 대책을 상의한 결과 수가를 사자로 보내 제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어 나라의 안전을 기하기로 했다. 수가는 자기의 문객으로 있던 범수를 수행원으로 데려갔다. 제양왕이 위나라의 사자로 온 수가에게 물었다.

「옛날 우리 선왕께서 귀국의 왕과 함께 송나라를 같이 정벌할 정도로 두 나라 사이는 의기가 투합했다. 이어서 연나라가 쳐들어와 우리 제나라의 강토를 초토화 시켰을 때는 위나라는 연나라를 도왔다. 과인이 위나라에게 선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데 오늘 다시 찾아와 허언으로 나를 희롱하려고 하는가? 위나라는 반복무상한

나라라 내가 어찌 그대들이 청하는 수호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수가가 제왕의 말에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하고 땀만 뻘뻘 흘렸다. 수가의 곁에 시립하고 있던 범수가 수가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대왕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옛날 우리 위왕께서는 돌아가신 제나라의 선왕이신 민왕의 명을 받들어 송나라를 정벌하셨습니다. 민왕께서는 송나라를 정벌하고 나서 그 땅을 삼분하자고 약속하셨으나 후에 그 약속을 깨뜨리고 송나라의 땅을 모두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군사를 돌려 위나라의 국경을 심하게 침범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제나라가 우리 위나라로부터 믿음을 잃었습니다. 주변의 제후국들은 제나라가 교만한 마음으로 포학하게 행동하여 탐욕을 부렸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연나라 편을 들어 제서(濟西)에 벌어진 싸움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서 다섯 나라가 같이 제나라와 원수사이가 되었는데 어찌 유독 우리 위나라만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더욱이 우리 위나라는 제서의 싸움에만 참가했지 더 이상 연나라를 돕는 일은 제나라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여 감히 연나라 군사의 뒤를 따라 임치성까지 진격하지 않음으로 해서 제나라에 예를 표시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는 영명함과 출중한 무예를 겸비하시어 그 기세가 천하를 덮고 계신데 옛날 제나라 선왕께서 당하신 치욕에 대한 원수를 갚으시고 선조들이 이룩한 위업을 다시 빛내려고 하십니다. 저희 위왕께서는 대왕이 그 선조이신 환공과 위왕의 위업을 일으켜 필시 천하를 진동시켜 옛날 민왕의 과오를 덮고 그 공적이 영원토록 후세에 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시어 그 신하인 수가를 사자로 보내 옛날의 우호관계를 수복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은 단지 남을 탓하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스스로 반성할 줄은 모르고 계십니다. 옛날 대왕의 선군이신 민왕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걱정되오며 더욱이 오늘 대왕께서 우리 위나라의 사신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니 심히 두렵습니다.」

제양왕은 크게 놀라며 자리에 일어나 범수를 향해 사죄의 말을 했다.

「참으로 과인이 잘못 생각했습니다.」

제양왕이 다시 수가를 향해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의 문객으로 이름을 범수라 합니다.」

제양왕이 범수를 한참 동안 쳐다본 후에 이어서 수가를 공관으로 보내어 쉬라고 하면서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충분히 내 주어 정중하게 대접하라고 일렀다. 제양왕은 다시 자기의 측근을 보내어 범수에게 은밀히 말을 전하게 했다. 제양왕이 보낸 사자가 와서 범수에게 그 말을 전했다.

「저희 주군께서 선생의 재주를 흠모하시어 선생을 제나라에 머무르게 하여 곁에 두시려고 하십니다. 객경의 작위를 내리려고 하시니 결코 거절하지 마십시오.」

범수가 사양하며 말했다.

「저와 사자가 위나라를 동반하여 떠났는데 돌아갈 때는 동행하지 않음은 신의가 없는 짓이라 어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양왕이 범수가 한 말을 전해 듣고 더욱 존경하게 되어 다시 사람을 보내 황금 열 근과 쇠고기와 술을 보내왔다. 범수가 한사코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사자가 네 번이나 계속 와서 왕의 명령이라고 전하여 받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겼다. 범수가 할 수 없이 쇠고기와 술은 받고 황금은 돌려주었다. 사자가 탄식하며 돌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종자 한 사람이 수가에게 그 일을 고했다. 수가가 범수를 불러 물었다.

「제왕이 무슨 일 때문에 사자를 이곳에 보냈는가?」

「제왕이 황금 열 근에 쇠고기와 술을 신에게 하사했으나 신이 감히 받을 수 없어 한사코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제왕이 네 번이라 간곡하게 보내와 신이 감히 그 뜻을 저버리지 못하여 쇠고기와 술을 받아들이고 황금은 돌려보냈습니다.」

「그대에게 이렇듯 후하게 상을 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대부의 측근이라 대부를 존경하여 신에게까지 은혜가 미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왕이 내리는 하사품이 사자 신분인 나에게 내리지 않고 유독 그대에게만 내리는 이유는 필시 그대와 제나라가 내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제왕이 먼저 사자를 보내와 저를 그의 객경으로 삼겠다고 했으나 내가 단호히 그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신은 신의를 가지고 살아가기로 맹세한 사람인데 어찌 감히 적국과 내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수가는 범수를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2. 偏聽偏信 嚴刑拷打(편청편신 엄형고타)

- 질시하는 말만 듣고 가혹한 형을 가하여 초죽음에 이르게 하다.-

이윽고 사자의 임무를 다 마치고 범수와 함께 위나라에 돌아온 수가는 범수의 일을 상국 위제(魏齊)에게 고하면서 말했다.

「제왕이 저의 문객인 범수를 제나라에 머물게 하면서 객경으로 삼으려 하고 다시 황금 열 근에 쇠고기와 술을 하사한 이유는 범수가 아마도 우리 위나라의 기밀 사항을 제나라에 몰래 누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제가 대노하여 즉시 빈객들을 불러 모이게 하고 사람을 시켜 범수를 잡아와 즉석에서 심문하려고 하였다. 이윽고 범수가 잡혀와 계단 밑에 꿇어 엎드리자 위제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위나라의 기밀을 제왕에게 누설하였느냐?」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네가 만약 제나라와 내통을 하지 않았다면 제왕이 어찌하여 너

를 제나라에 잡아 두려고 하였겠느냐?」

「제왕이 나에게 머물라고 했지만 나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왕이 보낸 황금 열 근과 그리고 쇠고기와 술은 어찌하여 받았는가?」

「제왕의 사자가 여러 번 강권하고 또한 매정하게 거절하면 제왕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을까 걱정하여 쇠고기와 술은 받았지만 나머지 황금 열 근은 돌려주어 더 이상의 것은 받은 바가 없습니다.」

위제가 노기충천하여 소리쳤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어찌 그리 말이 많은가? 비록 쇠고기와 술이라 한들 그것이 내통한 일과 어찌 무관하다고 하겠는가?」

위제가 큰소리로 옥졸을 불러 범수를 밧줄로 묶게 한 다음 곤장 백 대를 치라고 하였다. 범수로 하여금 제나라와 내통한 사실을 자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범수가 단호한 어조로 위제에게 대답했다.

「신이 제나라와 내통한 사실이 없는데 어찌 내가 실토할 말이 있겠습니까? 」

위제가 더욱 노하며 말했다.

「내가 이 놈을 쳐서 죽여 나라에 해를 끼치는 종자를 없애버리겠다!」

옥졸이 채찍과 몽둥이로 범수를 난타하여 그의 이빨과 뼈가 다 부러져 버렸다. 범수의 얼굴은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그 아픔을 참기 어려워 자기의 억울함을 큰 소리로 외쳤다. 위제의 빈객들은 상국의 분노가 극에 달해 감히 아무도 그만 두라고 간하지 못했다. 위제는 좌우의 시종들에게 큰 술잔에 술을 따라 빈객들에게 돌리며, 한편으로 옥졸들에게 소리쳐 더욱 세게 범수에게 매질하라고 지시하였다. 위제는 진시부터 시작하여 미시가 되도록 옥졸들로 하여금 범수를 두들겨 패도록 했다. 이윽고 범수의 몸은 성한 곳이 없게 되어 나중에는 내리치는 곤장에 피와 살이 같이 묻어나고 이윽고 톡 소리와 함께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범수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때의 일에 대해 무명씨가 지은 시가 있다.

신의와 충성심을 갖춘 훌륭한 선비의 신세가 가련하구나!

억울하게 초죽음을 당하여 시궁창에 버려졌으니,

상관에서 말을 전할 때는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죄 없는 사람이 몽둥이찜질에 굴복하는 일이 없으리라!

可怜信義忠良士(가령신의충양사)

翻作溝渠枉死人(번작구거왕사인)

傳語上官須仔細(전어상관수자세)

莫將屈棒打平民(막장굴봉타평민)

잠연(潛淵) 선생도 시를 지어 범수의 억울함을 논했다..

장의는 어찌하여 도벽의 의심을 받았고,

또한 범수는 어찌하여 매국의 의심을 받았는가?

일단은 의심을 받게 되면 결국은 벗어날 길이 없으니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억울하게 좌절해야만 했던가?

張儀何曾盜楚璧(장의하증도초벽)

范叔何曾賣齊國(범숙하증매제국)

疑心盛氣總難平(의심성기총난평)

多少英雄受冤屈(다소영웅수원굴)

위제의 좌우에서 시중을 들던 측근들이 말했다.

「범수는 이미 숨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

위제가 친히 계단을 내려가 살펴보니 범수는 그 갈비뼈는 모두 부러지고 앞니는 하나도 남김없이 빠진데다 몸의 피부는 성한 데라고는 한 곳도 없는 몰골로, 상처에서 흘린 피로 흥건히 적신 땅바닥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뻣뻣하게 누워있었다. 위제가 범수의 몸뚱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큰소리 나무랐다.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했던 자가 잘 죽었구나! 후세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위제가 옥졸에게 명하여 갈대로 엮은 거적에다 범수의 시체를 말아서 뒤뜰의 변소 곁에 구덩이를 파고 그 곳에다 던져놓으라고 했다. 이어서 그의 빈객들로 하여금 그 시체 위에 오줌을 누도록 하여 죽어서도 깨끗한 귀신이 되지 못하도록 했다.

3. 佯死逃生(양사도생)

- 죽음을 가장하여 도망쳐 목숨을 구하다. -

이윽고 하늘이 어두워지자 범수의 숨은 아직 넘어가지 않았는지 죽음에서 다시 깨어나, 거적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몰래 살핀 결과 오로지 옥졸 한 명이 자기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범수가 신음소리를 한 번 내자 옥졸이 듣고 황급히 달려와 거적을 들쳐서 안을 살폈다. 범수가 옥졸을 향해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렇듯 몸에 중한 상처를 입어 비록 내가 잠시 정신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결국 살아나기는 힘들 것 같소. 그대는 능히 내 시체를 내 집으로 옮겨 나의 장례나 치르게 해 주기 바라오. 내 집에 숨겨 논 황금이 몇 량 있으니 내 아내는 당신에게 그것을 모두 주어 감사하는 마음을 표할 것이오. 」

옥졸이 황금을 준다는 말에 욕심이 생겨 범수에게 대답했다.

「당신이 조금 전처럼 죽은 체하고 있으면 내가 앞뜰로 나가 상국에게 품해 보도록 하겠소.」

그때 앞뜰에서는 위제와 빈객들은 커다란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바람에 모두 크게 취해 있었다. 옥졸이 위제 앞으로 나가 고했다.

「뒤뜰의 변소 곁에 놓아둔 죽은 사람의 시체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마땅히 밖에다 내버려야 되겠습니다.」

위제의 곁에 있던 빈객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범수가 비록 죄가 있다하나 상국께서 이미 내린 벌로 충분히 그 죄 값을 치렀다고 생각됩니다.」

「시체를 끌어내어 성 밖에다 내다 버려 날아다니는 독수리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끔 하라!」

위제의 분부가 끝나자 빈객들은 모두 작별을 고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위제 자신도 역시 상부에 달려 있는 사택으로 들어갔다. 옥졸은 해가 넘어가 인적이 없는 시각이 되기를 기다려 범수를 둥에 들쳐 업고 그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옥졸의 등에 업혀온 범수를 살펴본 그의 처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범수가 그의 처에게 말해 황금을 꺼내어 옥졸에게 주도록 했다. 다시 자기를 쌓았던 거적을 풀어서 옥졸에게 주며 야외에 내다버려 달라고 부탁했다. 범수는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했다.

옥졸이 돌아간 다음 그의 처와 아이들은 문드러져 피범벅이 된 범수의 몸을 깨끗이 씻어 수습하고, 상처는 헝겊으로 싸맨 다음 술과 음식을 가져와 먹게 하였다. 범수가 그의 처에게 말했다.

「위제가 나를 대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여 비록 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더라도 여전히 의심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오. 내가 그의 집에서 몸을 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소. 성격이 치밀한 그가 내일 다시 내 시체를 찾게 될 텐데 만일 얻지 못한다면 필시 우리 집에 사람을 보내 확인할 것이오. 그리되면 나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되오. 지금 나와 결의형제를 맺은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사람이 서문 쪽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살고 있소. 당신은 시간이 야심해 지거든 나를 그의 집으로 보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집밖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시오. 그의 집에 숨어서 달포쯤 몸조리하여 내 상처가 낫게 되면, 나라 밖으로 달아나 목숨을 구해야 되겠소. 내가 정안평의 집에 숨어 있는 동안 당신은 나의 죽음을 발상하고 장례를 치러 위제의 의심을 없애시오.」

범수의 처가 그의 말을 쫓아 하인을 먼저 정안평의 집으로 보내 그 동안의 일을 알렸다. 정안평이 즉시 범수의 집으로 달려와 그의 집안 식구들과 같이 범수를 등에 걸쳐 업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다음날이 되자 과연 범수의 말대로 의심이 많은 위제가 사람을 시켜 그의 시체를 버렸다는 곳으로 가서 찾아오도록 시켰다. 전날 범수를 지켰던 옥졸이 돌아와 위제에게 보고하였다.

「어제 범수의 시체를 사람이 다니지 않는 야외에 버렸으나 오늘 가서 보니 그의 시체를 쌓았던 거적만 보이고 시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들개나 멧돼지가 입에 물고 다른 곳으로 물고 가버린 것 같습니다. 」

위제가 다시 사람을 시켜 범수의 집에 가서 동정을 살펴보라고 시켰다. 사람이 돌아와 범수의 집에서는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때서야 위제는 범수가 죽었다고 믿고 안심했다.

범수는 정안평의 집에서 상처에 고약을 바르고 휴식을 취하니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회복되었다. 이윽고 범수가 완쾌되자 정안평과 범수는 성안에서 몰래 도망쳐 구자산(具茨山)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범수는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어 산 속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범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4. 범수분진(范睢奔秦)

- 왕계를 만나 진나라로 달아나는 범수 -

범수가 산중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반년이 되는 때, 진나라의 알자(謁者)1) 벼슬을 하던 왕계(王稽)라는 사람이 소양왕의 명을 받들어 위나라에 사자의 임무를 띠고 들려 공관에 묵게 되었다. 정안평이 그 공관의 역졸로 들어가 옆에서 왕계의 시중을 들었다. 정안평은 왕계를 민첩하게 모셔 왕계가 매우 기뻐했다. 왕계가 정안평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는 혹시 위나라에 아직 출사 하지 않은 현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느냐?」

「현인이 어찌 널러져 있겠습니까? 옛날에 범수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야말로 지모를 갖춘 선비라 할 수 있었는데 상국 위제가 매를 심하게 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정안평의 말을 들은 왕계는 탄식하며 말했다.

「참으로 애석하도다. 그 사람이 진나라에 있었더라면 그의 큰 재주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소인이 사는 동네에는 장록 선생이라는 분이 사시고 계신데, 그 재주와 지혜가 범수 못지않습니다. 대감께서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런 재사가 있다면야 내가 어찌 청하여 만나지 않겠는가?」

「장록 선생은 이 성안에 원수가 살고 있어 감히 낮 시간 동안에는 찾아 뵐 수 없습니다. 만약에 원수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위나라에 출사하여 벼슬을 얻을 수 있어서 오늘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밤이라 한들 번거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자지 않고 기다리리라!」

정안평이 즉시 범수로 하여금 복장을 바꿔 입혀 역졸로 분장시켜 밤이 깊은 시각에 공관으로 와서 왕계를 접견했다. 왕계는 넌지시 천하대세에 대해 운을 떼며 범수에게 물었다. 범수가 명명백백하게 마치 눈앞의 일처럼 천하의 정세에 대해 말했다. 왕계가 듣고 즐거워하며 말했다.

「나는 선생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능히 저와 함께 서쪽의 진나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소인 록(祿)은 위나라에 원수가 살고 있어, 이곳에서는 편안히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만약에 소인을 데리고 진나라에 데려가 주신다면 그것은 실은 소인이 원하던 바입니다.」

왕계가 손가락을 짚어가며 말했다.

「헤아려보니 내가 맡은 바 임무를 다 마치려면 앞으로 닷새 정도는 더 있어야 되겠소. 선생은 5일 후에 삼정강(三亭岡) 부근의 인적이 없는 곳에서 저를 기다리셨다가 저의 수레를 같이 타고 가시도록 합시다.」

이윽고 5일이 지나자, 왕계가 위소왕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진나라로 돌아가려고 하자 위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성 밖 교외에까지 나와 왕계를 전송했다. 왕계는 여러 사람들과 작별의 예를 행한 후에 본국인 진나라로 길을 떠났다. 이어서 왕계가 수레를 빨리 몰게 하여 삼강정에 이르자 갑자기 숲 속에서 두 사람이 나타나서 보니 곧 장록과 정안평이었다. 왕계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마치 귀중한 보물을 얻기라도 하듯이 크게 기뻐하였다. 진나라로 가는 도중에 두 사람은 수레를 같이 타고 가며 음식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필히 같이 했으며 서로 담론하던 과정에서 의기가 투합하여 서로 매우 친숙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들이 일행이 진나라 경계에 들어서서 첫 번째 관문인 호관(湖關)2)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 멀리서 뿌연 연기를 일으키며 병거와 기마병으로 일대를 이룬 행렬이 서쪽으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범수가 보고 왕계에게 물었다.

「지금 달려오고 있는 것은 누구의 행차입니까?」

왕계가 앞서 달려오던 수레를 보더니 알아보고 말했다.

「저것은 승상 양후(穰侯)가 동쪽의 군현들을 순행하기 위한 행렬입니다. 」

원래는 양후의 이름은 위염(魏冉)이다. 진나라 소양왕의 모친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이니 즉 소양왕의 외숙부가 된다. 선태후는 원래 초나라 왕의 딸로서 미(羋)씨이다. 소양왕이 즉위했을 때에는 나이가 아직 어려 미관(未冠)이었기 때문에 선태후가 조당에 나와 섭정을 하면서 그의 동생 위염을 승상으로 삼고 양후에 봉했다. 계속해서 둘째 동생 미융(羋戎)을 역시 화양군(華陽君)에 봉하고 진나라의 국사를 둘이서 전결하게 했다. 후에 장성한 소양왕은 마음속으로 선태후의 권력이 큰 것을 두려워했다. 소양왕은 그의 동생 공자리(公子悝)를 경양군(涇陽君)에, 또 다른 동생인 공자시(公子市)를 고릉군(高陵君)에 봉하여 미씨들이 차지하고 있던 권력을 분산시키려고 하였다. 진나라에서는 그들을 사귀(四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 사람은 승상의 자리를 차지한 양후의 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승상 위염은 매년 진왕을 대신하여 군현을 순행하면서, 관리들을 순찰했다. 그는 성곽과 해자의 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거마들을 열병했으며, 백성들을 순무했다. 이것은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던 진나라의 관습이었다. 오늘 양후가 동쪽으로 순행을 나가며 그 전위(前衛)가 사뭇 위의를 갖추어 왕계가 멀리서 보고서도 그 일행이 양후의 행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범수가 말했다.

「내가 들으니 양후는 진나라의 권력을 한 손에 넣고서 지혜롭고 능력있는 선비들을 시샘하여 열국의 빈객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소인이 그의 눈에 뜨이게 되면 욕을 볼까 두려우니 일단 제가 수레 안에 숨어서 몸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왕계와 양후의 일행이 마주치게 되었다. 왕계가 수레에서 내려 양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양후 역시 수레에서 내려 읍을 행하여 답례하고 왕계의 노고를 치하했다.

「국사에 노고가 참으로 많으십니다. 」

이어서 양후가 왕계에게 위나라에서의 일을 물었다.

「관의 동쪽 나라 형편은 지금 어떻습니까?」

왕계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그다지 큰일은 없었습니다.」

양후가 수레를 잠시 노려보더니 왕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감께서는 혹시 다른 제후국에서 빈객을 데리고 우리 진나라에 들어가시지는 않습니까? 그 자들은 입만 가지고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여 부귀를 구하려는 실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자들입니다.」

「어찌 감히 제가 그런 자들을 데리고 왔겠습니까?」

양후가 이윽고 왕계와 헤어져 자기 갈 길을 가자, 수레 안에 숨어 있던 범수가 나오더니 수레에서 내려 달아나려고 하였다. 왕계가 보고 말했다.

「승상은 이미 가버렸으니 선생은 저와 함께 같이 수레를 타고 가셔도 무방합니다.」

「소인이 잠시 양후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더니 그의 눈은 횐자위가 많고 시선이 별로 곱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의 성격은 의심이 많고 일의 사태를 좀 늦게 깨닫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금 전에 수레 안에서 양후의 거동을 보니 그는 이미 이 수레를 의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는 이 수레 안을 뒤지지 않았지만 지금쯤은 수레를 수색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후회하게 되면 필시 사람을 다시 보내 수레를 수색할 것입니다. 지금 몸을 피해야만 제 몸의 안전을 피할 수 있습니다.」

범수가 정안평을 부르더니 같이 수레 앞으로 내달아 쏜살 같이 달려 달아났다. 왕계의 수레와 행렬이 서서히 앞으로 나가 약 10리쯤 갔을 때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과연 20여 기의 기마병이 쏜살 같이 달려와 왕계의 행렬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승상의 명을 받들어 대부께서 혹시라도 유세객을 대동하고 오시지 않았을까 걱정하시어 저희들을 보내어 수레 안을 한번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대부께서는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이어서 기마병들은 말에서 내리더니 왕계의 수레들을 샅샅이 뒤졌다. 수레 안에 외국 출신의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기병들이 몸을 돌려 바람처럼 돌아갔다. 왕계가 탄식하며 말했다.

「장록 선생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선비로다! 내가 미치지 못 하겠다!」

왕계가 마부를 다그쳐 수레를 빨리 몰아 앞으로 달리게 하여 다시 10여 리를 행군했을 때 길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록과 정안평을 발견하고 두 사람을 수레에 태워 다 같이 함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범수가 위나라를 떠날 때의 일을 노래했다.

일을 헤아려 앞날을 점치는 능력은 마치 귀신과 같아

당대의 인사들 중 그 지혜와 술법을 따를 자가 없었다.

위나라의 신릉군은 공연한 식객 3천 명만을 길렀을 뿐

당대의 고현(高賢)을 노쳐 진나라에 들어가게 했구나!

料事前知妙若神(요사전지묘약신)

一時智術小儔倫(일시지술소주륜)

信陵空養三千客(신릉공양삼천객)

却放高賢遁入秦(각방고현둔입진)

5. 范睢獻策 遠交近攻(범수헌책 원교근공)

- 원교근공의 책략을 소양왕에게 유세하다.-

왕계가 입조하여 진소양왕을 알현하고 위나라에 다녀온 일을 복명한 후에 범수에 대해 말했다.

「위나라에 장록이라는 거사가 있었는데 지모가 출중하여 천하의 기재입니다. 신이 진나라의 정세에 대해 묻자 우리 진나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진나라를 안정시키는 방책이 있다면서 주군을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해서 그를 신의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습니다.」

「열국을 돌아다니면서 큰소리만을 치고 다니는 유세객들이 무수히 많소. 그러나 기왕 진나라에 들어왔으니 일단은 객사에 머물도록 하시오.」

진왕은 범수를 객사 중에 제일 격이 낮은 하사(下舍)에 머물게 하고 자기가 부를 때까지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진왕은 일 년이 넘도록 범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범수가 길거리로 나와 길을 걷다가 양후가 군사를 이끌고 출정을 나가는 행렬을 보고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승상이 군사를 이끌고 출정을 나가시니 어느 나라를 정벌하러 가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서 노인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제나라 땅인 강읍(綱邑)3)과 수읍(壽邑)4)을 정벌하러 가는 길입니다.」

「제나라가 우리 진나라 국경을 침범했습니까?」

「아닙니다.」

「제와 진 두 나라는 동서로 멀리 떨어져 그 사이에 한과 위 두 나라가 가로막고 있는데 진나라가 어찌하여 제나라의 침범도 받지 않았는데 멀리 원정을 간단 말입니까?」

노인이 범수의 손목을 이끌며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나라를 정벌하는 목적은 진왕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봉읍인 도산(陶山)5)의 영지를 넓히기 위해 도산과 가까운 수읍과 강읍을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승상께서는 무안군 백기에게 명을 내려 두 고을을 점령하여 도산의 봉읍을 넓히도록 했습니다.」

범수가 객사로 돌아와 즉시 진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써서 바쳤다.

「외지에 온 신 장록은 죽음을 무릅쓰고 진왕 전하께 상주문을 올립니다. 신이 듣기를 ‘지혜로운 임금은 정사를 돌볼 때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능력을 갖춘 자에게는 벼슬을, 노력하는 자에게는 후한 봉록을, 재주가 있고 덕이 높은 사람에게는 작위를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능한 자는 그 직위를 탐하지 않으며 유능한 자 역시 버림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신이 하사에 머물면서 전하의 명을 기다리기를 일 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신이 쓰일 곳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원컨대 촌음의 시간이라도 저에게 할애하시어 신으로 하여금 계책을 올릴 수 있도록 명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신이 무용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여 그리하신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무릇 신하된 자의 도리는 말씀을 올리는 것이고, 임금된 자의 본분은 신하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신이 드리는 말이 만일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청컨대, 그때 저를 부질(斧鑕)로 주살하셔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디 신을 가볍게 보셨다고 해서 신을 천거한 사람까지 가볍게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진소양왕이 오랫동안 장록의 일을 잊어 먹고 있다가 그가 올린 상주문을 읽어보고 즉시 측근에게 수레를 타고 가서 장록을 태워 이궁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진왕의 행차가 미처 당도하기 전에 장록이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진왕의 수레가 호위 기병을 거느리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나, 짐짓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가장하고, 일부러 궁궐 안으로 나 있던 긴 복도를 향해 곧장 걸어 들어갔다. 진왕을 모시던 내시가 왕의 일행에서 앞으로 달려 나오며 범수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대왕께서 납시오!」

범수가 모르는 척하며 대답했다.

「진나라에는 오로지 태후와 양후만 있는데 어찌 왕이 있단 말이오?」

환자가 계속 큰소리로 진왕이 오고 있으니 걸음을 멈추라고 했지만 범수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이윽고 진왕이 내시와 범수가 옥신각신하는 곳에 이르자 물었다.

「어찌하여 손님과 언쟁을 하고 있는가?」

환자는 범수가 한 말을 진왕에게 전했다.

진왕이 전해 들었으나 화를 내지 않고 즉시 장록을 내궁으로 들어오게 하여 상객을 대하는 예를 갖췄다. 범수가 겸양하며 사양하였으나 진왕은 좌우의 측근들을 모두 물리치고 넓죽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선생은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

범수는 그저 ‘예, 예’라고 대답만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범수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가르침을 청하자 범수는 계속해서 ‘예, 예’라는 소리만 되뇌었다. 이러기를 계속해서 세 번을 반복하였다. 진왕이 다시 말했다.

「선생께서 갑자기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지 않으시니, 과인에게 무슨 부족한 점이라도 있어서 입니까?」

범수가 마침내 입을 열어 말했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태공 여상은 위수 가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주문왕을 만나 한마디의 말을 건넨 끝에 상보(尙父)로 삼고 그 즉시 여상의 계책을 취하여 상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기자와 비간은 왕실의 귀척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으로 간언을 올렸으나 주왕은 듣지 않아 한 사람은 살해되고 한 사람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이렇게 여상과 비간, 기자의 운명이 다르게 된 것은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결과입니다. 여상은 주문왕과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소원한 사이였지만 주문왕이 한번 보자 믿게 되어 왕업을 일으켜 온 천하를 주나라에 귀속되게 하고, 여상 자신은 제후에 봉해져 영화를 누리고 그 지위를 자자손손 전하게 되었습니다. 기자와 비간은 비록 주왕과는 친척6)이지만 주왕이 믿지 않자 그들의 몸은 죽거나 욕됨을 입게 되어 나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늘 신은 비록 타국에서 와서 비록 대왕과는 소원한 곳에 기거하고 있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바는 모두가 나라의 흥망에 대한 것이며, 또한 대왕의 골육과도 관계되는 일입니다. 만약에 제가 말을 깊이 있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즉 진나라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고, 그렇다고 만약 깊이 있게 말씀을 드린다면 기자나 비간의 경우처럼 이 몸에 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대왕께서 세 번이나 하문 하셨음에도 감히 대답을 드리지 못한 이유는 대왕께서 과연 믿어 주시겠는지 확신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진소양왕이 다시 무릎을 꿇고 범수에게 청했다.

「선생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과인은 선생의 큰 재주를 흠모하여 좌우의 사람을 모두 물리치고 단지 선생의 가르침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으신 말이라면 위로는 태후에 이르거나, 아래로는 대신들에 이르거나 구애받지 말고 모두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원컨대, 선생은 아무 것도 숨기지 말고 모두 말씀해 주십시오.」

소양왕의 말은 조금 전에 궁궐의 복도를 지나오면서 범수가 한 ‘진나라에는 오로지 태후와 양후만 있는데 어찌 왕이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환관으로부터 전해 듣고 마음속에 의혹이 들어 그에게 다시 한 번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한편 범수로서는 진왕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만일 자기가 한 말이 진왕의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다면 후에는 다시 진언할 기회가 끊어지게 되는 경우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진왕의 좌우 측근들이 자기가 한 말을 몰래 듣고 태후나 양후에게 전하기라도 한다면 그의 몸에 무슨 화가 닥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여 우선은 외부의 정세나 두리 뭉실하게 대강 말함으로써 불을 당기는 불쏘시개 정도의 말을 한 번 해보기로 마음먹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왕께서 신에게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라고 명하셨으니 이것은 신이 원하던 바입니다.」

범수가 자리에 일어나 진왕을 향해 절을 올리자 진왕도 역시 절을 하여 답했다. 그런 다음 자리에 좌정한 다음 입을 열어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진나라의 지형은 험하기로 천하에 비교할 곳이 없습니다. 또한 그 갑병은 강하여 천하에 대적할 군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겸병하지도 못했고, 백왕(伯王)의 위업도 달성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대신들이 내놓은 계책이 어찌 잘못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왕이 자리를 옮겨 범수 곁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대신들의 계책 중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신이 들으니 양후가 한과 위 두 나라를 건너가 제나라를 공격한다고 하니 그것이 우선 잘못되었습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위와 한 두 나라가 그 사이에 있습니다. 대왕께서 적은 수의 군사들을 보낸다면 중과부족으로 제나라에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만일 많은 수의 군사들을 보낸다면 그것은 제나라에 해를 입히기도 전에 진나라가 먼저 해를 입게 됩니다. 옛날 위나라가 조나라를 가로질러 중산국에 원정하여 싸움에 이겨 그 나라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중산국은 결국 조나라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중산국은 조나라에 가깝고 위나라에는 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진나라가 제나라를 원정하여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진나라의 위신은 크게 추락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나라를 원정하여 싸움에서 이긴다면 그것들은 모두 한과 위 두 나라를 위한 공적이 되어 진나라에는 아무 이득도 없게 될 것입니다. 대왕을 위해 저의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정책을 써야 합니다. 멀리 있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어 열국들을 서로 멀어지게 하고, 가까이 있는 나라는 공격하여 진나라의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가까운 나라부터 먼 나라로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이 하면 천하를 하나로 만드는데 어찌 어렵기만 하겠습니까?」

「원교근공을 행하는 방법은 어떠합니까?」

「원교란 제나라와 초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근공이란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를 얻게 되면 어찌 초나라와 제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진왕이 박수를 치며 훌륭한 계책이라고 칭송하고 그 자리에서 범수를 객경에 임명하고 그를 장경(張卿)이라고 불렀다. 소양왕은 범수의 계책을 써서 동쪽으로 군사를 보내어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벌하게 하고 백기에게는 제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거두어 출동을 중지시켰다.

진나라의 승상과 대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진나라의 정사를 전결해 왔던 위염과 백기는 장록이 갑자기 나타나서 진왕의 총애를 받자 이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진왕은 범수를 더욱 깊이 신임하게 되어 날이 갈수록 총애를 더하여 매일 밤마다 범수를 불러 독대하여 진나라의 정사에 대해 묻고 모든 일을 범수의 말대로 행하였다. 진왕의 마음이 이미 굳어졌음을 본 범수는 좌우의 측근들을 물리쳐주기를 청하고 진언했다.

「신은 대왕의 과분한 총애를 입어 진나라의 국사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비록 분골쇄신한다 한들 어찌 대왕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에게는 진나라를 안정시키는 계책이 있으나 아직 감히 그 전부를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진소양왕이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과인이 나라를 선생에게 전부 맡겼습니다. 선생께서 이 진나라를 안정시키는 계책을 갖고 있다면 수고스럽지만 지금 깨우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어찌 더 이상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예전에 산동에 살고 있었을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지 제왕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소신은 진나라에는 태후, 양후, 화양군, 경양군만 있을 뿐이지 진왕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고 존재는 사람들에 대해 생살여탈의 권한을 갖고 있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감히 전횡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태후께서 국모의 신분을 믿고 진나라의 정사를 전횡하여 온지가 어언 40년이 되었습니다. 양후가 홀로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정사를 전단하고 화양군이 그를 보좌해 왔습니다. 경양군과 고릉군은 각기 문호를 세우고 죽이고 살리는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으면서 그들은 부는 공실보다 열 배나 더 많습니다. 대왕은 단지 두 손만을 가슴에 올리며 인사를 받는 처지가 되어 허명만을 쫓으시고 계시니 어찌 위태롭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옛날 제나라의 최저는 제나라의 정사를 전횡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공을 시해했습니다. 또한 조나라의 이태라는 사람은 그 나라의 정사를 전횡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무령왕 주보를 죽였습니다. 지금 양후는 안으로는 태후의 권세에 의지하고, 밖으로는 대왕의 위엄을 훔쳐 그가 군사를 일으키면 제후들은 공포에 떨고, 그가 군사를 물리치면 제후들은 그 은혜에 감격합니다. 그는 또한 자기의 눈과 귀를 대왕의 좌우에 심어 놓고 대왕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신이 보기에는 대왕께서 고립된 것은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 진 일이 아니고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 된 것입니다. 먼 훗날 진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대왕의 자손이 혹시 아닐까 매우 걱정됩니다.」

소양왕이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골이 송연해져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범수를 향해 절을 다시 올리고 감사의 말을 했다.

「선생의 가르침은 참으로 과인의 폐부에 와 닿는 말입니다. 과인이 진즉 이런 말을 듣지 못했음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이어서 다음 날이 되자 소양왕은 양후를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기의 봉지에 돌아가 살게 하였다. 양후가 승상부에 있던 그의 가재를 소가 끄는 수레를 이용하여 옮기게 했는데 그 수효가 천 대가 넘고 진기한 보물들은 진나라의 부고에도 없는 것들이었다. 다음 날이 되자 소양왕이 다시 화양군과 고릉군 및 경양군을 함양성 안에서 쫓아내어 관 밖으로 나가 살게 하고, 태후는 궁궐의 깊은 곳에 가두고 정사에는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어서 범수를 승상으로 임명하여 양후를 대신하게 했으며 응성(應城)7)에 봉하고 응후(應侯)라는 칭호를 내렸다. 진나라 사람들은 모두 장록이 승상이 된 것으로 알고 아무도 그가 범수인줄 몰랐다. 오직 정안평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범수가 그에게 절대 누설하지 말라고 당부하여 정안평 역시 그 일을 발설할 수 없었다. 이때가 진소양왕 41년 즉 주난왕(周赧王) 49년 기원전 266년의 일이었다.

6. 綈袍戀戀 苟全性命(제포연연 구전성명)

- 옛정을 생각하여 내어 준 솜옷 하나로 목숨을 부지한 수가 -

그때 위나라에서는 소왕(昭王)이 죽고 그의 아들 안리왕(安釐王)이 선지 10년 째 되던 해였다. 안리왕은 진왕이 장록이라는 사람을 새로이 승상으로 임명하여 그의 계책을 이용하여 위나라를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급히 신하들을 모이게 하여 대책을 의논하게 하였다. 신릉군 무기가 말했다.

「진나라가 몇 년 동안 우리 위나라를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우리 위나라를 침범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쳐들어오려고 함은 우리가 그들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얕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군사들의 기율을 엄하게 다스려 굳게 지키면서 진나라 군사들의 침공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상국 위제가 신릉군의 의견에 반대하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나라는 강하고 위나라는 약합니다. 전쟁이란 요행수가 없는 법입니다. 제가 들으니 진나라의 새로운 승상 장록은 우리 위나라 출신이라 합니다. 어찌 그라고 해서 고향의 선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폐백을 후하게 가지고 가서 장록과 먼저 통하고 후에 진왕을 알현한 다음 우리가 진나라에 인질을 보내어 강화를 청한다면 가히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안리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전쟁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위제의 주화론을 취하여 중대부 수가를 진나라에 강화 사절로 보냈다.

수가가 위왕의 명을 받들어 진나라로 출발하여 함양성에 들어가 역관에 들었다. 범수가 알고 기뻐하며 말했다.

「수가가 왔으니 내가 이제야 원수를 갚을 수 있겠구나!」

범수는 즉시 평민의 옷으로 바꿔 입고 가난에 찌들어 넋이 나간 사람 행색으로 꾸민 다음 아무도 알지 못하게 승상부의 문을 빠져나갔다. 범수는 수가가 묶고 있던 역관 앞에 당도하자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안으로 들어가 수가를 뵙기를 청했다. 수가가 한번 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 이게 범숙이 아니오? 나는 그대가 위상국의 매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어찌 살아서 여기서 만날 수 있었단 말이오?」

「그때 나는 죽은 시체가 되어 성 밖 교외에 던져졌으나 다음날 아침이 되어 깨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장사꾼이 나의 신음 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겨 등에 들쳐 업고 그곳을 빠져 나와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저는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회를 찾다가 진나라의 관문을 통과하여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부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진나라에는 유세를 위해서요?」

「제가 옛날 위나라에서 죄를 지었으나 죽지 않고 목숨을 건져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감히 다시 입을 놀려 정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범숙은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소?」

「남의 집 하인으로 들어가 호구지책은 해결하고 있습니다.」

수가가 범수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측은한 생각이 들어 범수를 역관에 머무르게 하고 같이 앉아서 술과 음식을 내오라고 해서 접대했다. 그때는 마침 겨울철이었는데 범수가 입고 있던 옷은 얇고 헤어져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수가가 탄식하며 말했다.

「범숙이 추위를 막을만한 변변한 옷도 없구려!」

수가가 즉시 그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안에 솜을 두텁게 덴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내오라고 해서 입으라고 했다.

「대부께서 입는 옷을 어찌 소인이 감당하겠습니까?」

「우리는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사이인데 어찌 그렇게 겸양하며 사양하오?」

범수가 못이기는 체 하고 도포를 받아들고 몇 번이고 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올리며 수가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부께서는 이곳에 어인 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위나라 출신의 장록이란 분이 이 나라의 승상이 되어 국정을 맡아본다고 해서 내가 그 분과 먼저 통하여 위나라와의 강화를 청하려고 왔는데 장록을 아는 사람을 찾지 못하여 마음만 졸이고 있는 중이오. 범숙이 진나라에 머무른 지 이미 오래 되었다고 하니 혹시 장록 승상과 면식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거든 나를 위해 그를 소개시켜 주시 않겠소?」

「제가 일하는 집의 늙은 주인이 승상과 친분이 깊어, 신이 한번은 주인을 따라 승상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승상이 우리 주인과 담론을 하던 중에 늙은 주인이 말문이 막혀 응대를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제가 여러 번 주인을 도와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승상께서 제가 구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시며 술과 음식을 주신 다음부터는 저를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 계십니다. 대부께서 만약 장록 승상을 뵙고 싶다면 제가 마땅히 인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번거롭겠지만 나를 위해 승상을 접견할 날짜를 받아 주겠소?」

「승상께서는 국사로 다망하십니다. 마침 오늘은 저금 한가한 날이라 지금 가시면 만나 뵐 수 있습니다.」

「나는 사마가 끄는 큰 수레를 타고 진나라에 들어왔는데 하필이면 오늘 말이 넘어져 다리가 다치고 수레의 차축이 부러져서 움직일 수가 없어 지금 당장은 승상을 만나 뵐 수가 없게 되었소!」

「제가 모시는 늙은 주인에게 사마가 끄는 큰 수레를 한 번 빌려 보겠습니다.」

범수가 승상부로 돌아와 사마가 끄는 큰 수레를 끌어내어 수가가 묶고 있던 역관으로 달려가서 그에게 말했다.

「수레가 이미 준비되었으니 제가 대부를 위해 말을 몰겠습니다.」

수가가 기쁜 마음으로 수레에 오르자 범수는 고삐를 잡고 성안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수레를 몰며 달려오는 진나라 승상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모두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읍을 하며 길 양쪽으로 비켜서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빨리 달려 옆길로 몸을 피했다. 수가는 위나라의 사신으로 온 자기를 공경하여 인사를 올리는 줄 알았지, 수레를 모는 범수 때문에 그런지는 몰랐다. 수가가 타고 가던 수레가 이윽고 승상부 문 앞에 당도하자 범수가 말했다.

「대부께서는 잠시 이곳에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 대부가 뵙기를 청한다고 기별을 넣겠습니다. 만약에 승상께서 접견을 허락하신다면 그때 들어오셔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범수가 곧바로 승상부의 문을 통과하여 거침없이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수가가 수레에서 내려 문 앞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승상부 안에서 쟁이와 북소리가 나더니 전령이 큰소리로 전하는 말이 들렸다.

「승상께서 당으로 행차하신다!」

승상부의 관리들과 사인들이 뛰어 다니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승상부 안으로 들어가 사라진 범수의 모습은 아무데고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문 밖에서 기다리던 수가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저의 옛날 친구인 범숙이라는 사람이 부중으로 승상에게 접견을 청하러 들어갔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소. 그대는 나를 위해 나의 친구 범숙을 불러 줄 수 있겠소?」

문지기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범숙이라는 사람이 언제 부중으로 들어갔단 말입니까?」

「조금 전에 나를 위해 수레를 몰고 왔던 사람입니다.」

「이 수레를 몰고 왔던 분은 바로 장록 승상입니다. 승상께서 아무도 몰래 역관에 묶고 계시는 옛날 친구를 찾아가신다고 하시면서 평민이 입는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나들이를 나갔다 오신 길인데 어찌 그분이 범숙이라고 하십니까?」

수가가 문지기가 전하는 말을 듣고 꿈결에 벼락을 맞은 듯이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가가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범수에게 속임을 당하여 이제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그것은 마치 ‘못된 며느리가 벼르고 있던 시어머니에게 꼼짝없이 걸려든 꼴’이었다. 수가는 어쩔 도리 없이 도포와 허리띠를 풀어 벗은 다음 머리의 관을 벗고 맨발이 되어 승상부의 문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문지기에게 들어가 승상에게 자기의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위나라의 죄인 수가가 승상부의 문밖에 무릎을 꿇고 대죄하며 죽음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승상부 안에서 사람이 나와 안으로 들어오라는 승상의 명을 전했다. 수가가 더욱 황송하여 몸 둘 곳을 모르며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걸음으로 대문을 피하여 쪽문을 통하여 상부 안으로 들어갔다. 상부의 당으로 통하는 계단의 밑에 당도한 수가는 머리를 계속 조아리며 입으로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범수가 위풍도 당당하게 당상에 좌정하고 수가를 향해 물었다.

「너는 네가 지은 죄를 알고 있으렸다!」

수가가 땅에 엎드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네가 지은 죄는 몇 가지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제 머리카락의 수는 헤아릴 수는 있어도 이 수가가 저지른 죄

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8)

「너에게는 세 가지의 죄가 있다. 나의 선조의 묘소는 모두 위나라에 있어 내가 제왕의 요청을 물리쳐 출사를 사양했음에도, 너는 내가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망녕되게 위제에게 고하여 그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었으니 그 죄가 하나이고, 위제가 노엽게 생각하여 나를 곤장을 쳐서 이빨과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욕을 봤음에도 너는 모르는 체하고 그것을 그만 두도록 막지 않았다. 이것이 너의 두 번째 죄이다. 이어서 내가 정신을 잃고 뒤뜰의 화장실 곁에 버려졌을 때 너는 다시 빈객들을 몰고 와서 나의 몸에 오줌을 싸게 만들었다. 옛날 공자께서도 인간으로서 직분을 벗어난 너무 과도한 일을 하지 말라고 이르셨는데 너는 어찌 그렇듯 잔인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이 너의 세 번째 죄다. 오늘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났으니 내가 너의 머리를 베어 피를 보아 옛날의 나의 원한을 마땅히 갚아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내가 너를 죽이지 않음은 아직도 네가 옛날의 우정을 생각하여 솜을 넣은 비단 옷을 나에게 준 것을 보아 아직도 옛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너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수가가 이마를 땅에 찧으며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되뇌었다. 범수가 옷소매를 휘저으며 물러가라고 호통치자 수가는 네 발로 기어서 상부 밖으로 나갔다. 이 일로 해서 진나라 사람들은 장록 승상이 원래는 위나라 사람 범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7. 當衆羞辱(당중수욕)

- 수가를 대중 앞에서 치욕을 주어 원수를 갚다. -

다음 날 범수가 조당에 나가 진왕을 알현하며 말했다.

「위나라가 우리를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내와 강화를 청하고 있습니다. 군사를 보내지 않고도 위나라를 제압할 수 있으니 이것은 모두 대왕의 위엄과 은혜 때문인가 합니다.」

진소양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범수가 계속해서 진왕에게 고했다.

「신에게는 대왕을 속인 죄가 있습니다. 부디 대왕의 용서를 바라며 그 죄를 감히 고할까 합니다.」

「경이 나를 어떻게 속였단 말입니까? 과인은 결코 경을 벌주지 않을 것이오.」

「신의 이름은 장록이 아니고, 실은 위나라 사람 범수입니다. 어렸을 때 고아가 되어 곤공하게 살아 위나라의 중대부 수가의 집에 들어가 그의 문객이 되었습니다. 위나라 사자의 임무를 띠고 제나라에 가게 된 수가를 수행했다가 제왕이 신을 알아보고 아무도 몰래 보내온 음식과 황금을 신이 물리쳐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나를 질시한 수가가 위나라의 상국 위제에게 참소했습니다. 신은 위제에게 잡혀가 곤장을 맞아 거의 죽을 뻔했다가 다행히 다시 소생하여 이름을 장록으로 바꾸고 위나라에서 도망쳐 진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후로 저는 대왕께서 이 몸을 발탁하여 높은 직위에 두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그 수가란 자가 위왕의 명을 받들어 사자로 와서 제 이름이 이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땅히 저의 이름을 예전의 범수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은 경이 그와 같이 심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소. 오늘 수가란 놈이 이미 진나라에 있으니 마땅히 붙잡아 참수형에 처해 경의 억울함을 풀어야 되겠소.」

「수가라는 자는 공무를 띄고 이 나라에 사절로 온 사람인데, 자고로 비록 전시 중에 있는 나라일지언정 사자는 서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항차 강화를 청하러 온 사신을 죽인다면 열국의 제후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사사로운 원한으로 천하의 공적인 일을 망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을 끝까지 죽이려고 했던 자는 위나라 상국 위제였습니다. 제가 즉을 뻔 한 일은 수가만의 전적인 책임은 아닙니다.

「경이 공무를 먼저 두고 사무를 뒤에 놓으니 참으로 충성스러운 사람이오! 위제에게 원수를 갚는 일은 과인이 직접 행하여 경의 노력에 보답해 드리리라! 사자로 온 수가에 대한 처분은 경의 뜻에 따르리라!」

범수가 진왕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조당에서 물러났다. 진왕은 위나라의 강화요청을 허락했다.

수가가 작별인사를 고하려고 승상부에 들렸다. 범수가 말했다.

「옛날 친구가 이렇게 찾아왔으니 내가 식사를 한 끼도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소?」

범수가 승상부의 수가를 대문간에서 기다리게 하고 사인들을 시켜 큰 잔치를 열라고 명했다. 수가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목숨을 부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식사 대접도 받게 된 것을 모두 하늘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로다! 승상께서 이렇듯 나를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대해주시다니 정말로 분에 넘치는 대접이로고!」

범수가 당 위에서 물러나자 수가는 혼자 방안에 남게 되었다. 군졸이 곁에서 지키고 있으니 감히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꼼짝 못하고 진시에서 오시까지9) 앉아 있으려니 점점 배가 고파왔다. 수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승상이 역관에 찾아 왔을 때 음식을 내어 접대한 일을 보답하기 위해 이렇듯 잔치를 크게 준비하게 한다고 하나 구태여 과분하게 차릴 것은 무엇인가?」

이윽고 당상에는 잔치상이 모두 준비되자 승상부의 관리가 명단을 꺼내어 초청된 각국의 사신들과 승상부의 유명한 빈객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수가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나와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배속시킬 사람들의 명부이리라! 그러나 저 사람들이 어느 나라 누구인줄 어찌 알겠는가?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순서에 따라 앉히는 것도 중요하게 참작해야지 만일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앉혔다가는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자가 생길 것이다!」

수가가 방에 앉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각국의 사신들과 승상부의 빈객들이 왁자지껄하게 당도하여 곧바로 대당으로 통하는 계단을 딛고 연회장으로 올랐다. 이어서 손님들이 자리에 순서에 따라 좌정하자 연회장을 관리하는 관리가 패쪽을 딱딱 치며 소리쳤다.

「초청한 손님들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범수가 대당으로 나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예를 행하고 잔을 돌리며 그 자리를 정해주었다. 이와 동시에 낭하에는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려 풍악을 울리는데 아무도 수가를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수가는 당시 오랫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 허기도 지고 갈증도 났지만 마음은 더욱 고통스럽고 불안했다. 수치스럽고 번뇌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매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 수가의 고통스러운 마음은 실로 이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대당(大堂) 위의 연회석에서는 이미 술잔이 세 번이나 돌고서야 범수가 수가에 대해 손님들에게 언급하였다.

「참! 저의 옛 친구 한 사람이 여기 와 있는데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연회석의 손님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승상께서 이미 귀한 옛 친구 분이 계시다니 우리들이 그 분에게 인사를 드려 예를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비록 그는 나의 옛 친구이지만 내가 감히 훌륭한 여러분들과는 동석시키지는 못하겠습니다.」

범수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당하에 조그만 술상을 마련하게 해 놓고 위나라에서 손님이 당도했다고 외치게 하고는 묵형을 받은 죄인 두 사람을 시켜 그를 양쪽에서 잡아 눌러 앉혀 꼼짝 못하게 했다. 수가 앞에 놓인 상 위에는 술과 음식도 없었으며 단지 볶은 말먹이 콩만을 올려놓았다. 두 사람의 죄수들이 말에게 여물을 먹이듯이 손으로 콩을 집어 수가의 입에 강제로 넣어 먹게 했다. 여러 손님들이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하여 범수에게 물었다.

「승상께서는 저 사람에게 어찌 그리 깊은 원한을 갖고 계십니까?」

범수가 그 동안 수가와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손님들에게 설명했다. 여러 손님들이 범수의 말을 듣고 말했다.

「저 사람에게 그런 욕을 당하셨다면 승상께서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수가가 비록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아 모욕을 당했다고는 했지만 감히 항의하지 못하고 단지 볶은 말먹이 콩을 먹고 허기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수가가 이윽고 콩을 다 집어먹고 다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범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가의 죄를 열거하며 꾸짖었다.

「진왕이 비록 위나라의 강화요청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내가 위제에게 당한 원한을 갚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내가 너의 파리 같은 목숨을 살려주는 이유는 너희 위나라에 돌아가 위왕에게 고하여 속히 위제의 목을 잘라 나에게 보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다. 너는 또한 나의 집안 식구들을 거두어 진나라에 보내고 진과 위 두 나라가 통호를 맺을 수 있도록 전하라! 그렇지 않았다가는 군사를 일으켜 내가 친히 원정을 가서 대량성에 사는 사람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도륙하고 말리라!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있겠느냐?」

수가는 범수의 호통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하여 단지 ‘예, 예’라는 대답만을 하며 승상부에서 나가 자기 역관으로 돌아갔다.

< 제 98회로 계속 >

주석

1)알자(謁者)/ 왕명의 출납과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하던 중국 진한 시대의 벼슬 이름

2)호관(湖關)/ 함곡관(函谷關) 서쪽에 있던 진나라의 관문으로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靈寶縣) 경내

3)강읍(綱邑)/ 지금의 산동성 영양현(寧陽縣) 동북

4)수읍(壽邑)/지금의 산동성 동평현(東平縣) 서남쪽 일대

5)도산(陶山)/지금의 산동성 정도시(定陶市)를 말한다.

6)비간(比干)/ 상나라 왕 태정(太丁)의 아들이며 주왕의 숙부이다. 주왕이 음락을 밝히고 정치를 포학하게 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죽음을 무릅쓰고 선행을 행하고 덕을 닦으라고 3일 밤 낮을 간하여 물러나지 않았다. 주왕이 고민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결국은 분노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말했다. 「 비간은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하니, 내가 듣기에 성인의 심장에는 7개의 구멍이 나 있다고 하니 내가 직접 그것을 확인해 봐야겠다.」 주왕이 비간을 죽여 그 배를 갈라 비간의 심장을 살폈다.

기자(箕子)/ 비간과 형제로 주왕의 숙부다. 벼슬은 태사(太師)이고 봉읍은 지금의 산동성 태곡현(太谷縣) 동북의 기(箕)다. 정치와 문화에 대한 식견이 높았다. 비간이 주왕에게 살해되자 일부러 미친척하여 노예가 되었으나 주왕이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주무왕이 상나라를 멸한 후, 기자를 감옥에서 꺼내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자문을 구했다. 그의 사적은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기록되어 있으나 많은 부분이 후세 사람들의 위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7)응성(應城)/지금의 하남성 노산(魯山) 동. 서주 때 제후국이었으나 춘추 때 초나라의 읍이 되었다가 전국 때 한나라에 속했다. 이어서 진나라에 편입되어 진소양왕이 이곳에 범수를 봉하고 응후(應侯)라는 칭호를 내렸다.

8)擢賈之發, 以數賈之罪, 尙猶未足

9)진시(辰時)/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 오시(午時)/ 오전11시부터 오후1시까지의 시간. 즉 범수는 오전 8시 좌우에 범수를 만나러 가서 정오까지 기다린 것이다.

[평설]

기원전 270년 범수(范睢)가 진나라에 들어가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전환시켜 그 대외정책을 진일보시켰다.

범수의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나라가 한과 위를 넘어가 제나라로 진공하는 것이다. 소위 ‘원교근공(遠交近攻)’은 본국과 멀리 떨어진 나라와는 동맹을 맺어 국경을 접한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고 점령하여 자국의 영토를 넓히는 전략이다. 범수가 이 전략을 제창한 목적은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이 가까운 나라를 잠식하여 그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범수는 진나라와 동쪽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와 위 두 나라는 천하의 중심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하를 겸병하려면 반드시 무력을 사용하여 한과 위 두 나라를 진나라에 복속시키고, 다시 동쪽으로 진격하여 조와 초 두 나라를 굴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만약에 초나라가 강할 경우는 먼저 조를 진 후에 초를 공격해야 하고, 만일 조나라가 강하다면, 초를 먼저 치고 후에 조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와 초를 점령하게 된다면 고립된 제나라는 진나라의 무력을 두려워하여 틀림없이 진나라에 투항할 것이라고 했다. 산동의 제후국들이 모두 진나라에 굴복하게 되면 한과 위의 땅을 진나라에 병탄할 수 있고, 이어서 천하의 모든 땅을 진나라 소유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범수가 주창한 원교근공은 후에 형성된 36계 중의 한 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범수는 원래 위나라 대부 수가(須賈)의 문객이었다. 수가가 제나라 사신으로 가자 그 수행원으로 따라갔다가 수가가 제왕 앞에서 변변히 응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대신 범수가 그 재능으로 웅변을 토하여 위나라에 대한 제왕의 원한을 풀어주고 위와 제의 수호관계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위나라에 돌아온 수가는 범수가 제나라와 내통했다고 무고하자 범수는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거의 죽을뻔 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여 숨어 살던 범수는 몇 년 후에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진나라에 들어가 승상이 되었다. 인재를 알아보고 임용하는 데는 위나라는 진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위나라는 험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

범수의 “원교근공” 정책에 따라 진왕은 제와 초 두 나라와는 수호조약을 맺고 진나라의 모든 병력을 한과 위 두 나라를 공격하는데 돌려 드디어 통일천하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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