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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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회 樂毅滅齊(악의멸제), 火牛破燕(화우파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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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5회 樂毅伐齊 火牛破燕(악의벌제 화우파연)

제나라를 정벌하여 연나라의 원수를 갚은 악의와

화우진(火牛陣)으로 연군을 물리치고 제나라를 구한 전단

1. 樂毅入燕(악의입연)

- 악의가 위나라에서 연나라로 들어가다. -

한편 연소왕은 연왕의 자리에 즉위한 이후로 밤낮으로 제나라에 당한 치욕을 갚을 생각으로 세월을 보냈다. 초상집에 친히 들려 문상을 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안부를 물으며 사졸들과는 같이 걸으며 동고동락을 하고, 지혜로운 선비들을 예를 갖추어 존대하니 사방의 호걸들은 모두 연나라로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 중에 조나라 사람에 이름이 악의(樂毅)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 위문후 때의 명장 악양(樂陽)의 후예로 어렸을 때부터 병법을 논하는 일을 즐겨했다. 원래 악양은 중산국을 멸한 공로로 위문후로부터 영수(靈壽)1)에 봉해져 그 후손들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후에 조나라의 무령왕이 기원전 295년 사구(沙邱)에서 일어난 변란으로 죽을 때 그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영수를 떠나 위나라의 도성 대량(大梁)으로 돌아가 살았다. 이윽고 악의는 위나라의 소왕(昭王)을 받들었으나 소왕은 그를 신용하지 않았다. 연소왕이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초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악의는 연나라로 들어가 벼슬을 구하려고 했다. 그는 즉시 계교를 내어 위나라의 사신이 되어 연나라에 들어갔다. 위나라의 사신 직분으로 연소왕을 접견한 악의는 그 앞에서 병법을 강론했다. 악의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소왕은 그 자리에서 바로 연나라의 객경으로 삼으려고 했다. 악의가 겸양하며 감히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자 연왕이 말했다.

「선생은 조나라에 태어나서 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이제 연나라에 있으니 내가 마땅히 선생을 객경으로 삼으려고 삼가조 합니다.」

「신이 위나라에서 한 벼슬살이는 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대왕께서 보잘것없는 소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면 청컨대 제가 가족들을 불러와 그들을 인질로 삼아 연나라의 신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연소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악의를 상경 다음의 아경에 제수하고 그 지위를 극신(劇辛)2) 등의 다른 신하들 위에 놓았다. 악의는 그의 종족들을 위나라에서 모두 불러와 연나라에 살게 했다. 이후로 악씨 종족들은 연나라 사람이 되었다.

2. 燕國大治 興兵伐齊(연국대치 흥병벌제)

- 부국강병을 이루어 제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연소왕 -

그때 국세가 강성한 제나라는 주변의 제후국들을 수시로 침범했다. 연소왕은 가슴속 깊이 자기의 뜻을 감추고 겉으로 들어 내지 않으며 군사를 양병하고 백성들을 돌보면서 제나라에 대한 군사 행동에 들어갈 시기만을 엿보고 있었다. 이어서 맹상군을 내쫓은 제민왕이 백성들을 포학하게 다스리면서 제멋대로 정치를 행하기 시작했다. 제나라 백성들은 제민왕의 학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면에 연나라는 십 수 년 동안 휴식을 취하고, 더불어 연소왕이 국정을 잘 보살펴 나라의 재정은 튼튼하게 되었다. 연나라의 백성들은 수효가 늘어났고 병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전쟁에 참전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때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소왕은 악의를 불러 물었다.

「과인은 제나라로부터 당한 선왕의 원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지 햇수로 어언 28년이 되었소! 나는 어느 날 아침 덧없는 인생을 갑자기 마감함으로 해서, 제왕의 배에 비수를 꽂아 이 나라가 옛날 당한 치욕을 갚지 못할까 걱정하며 밤을 지새우며 살아왔소! 오늘 제왕이 교만하여 스스로의 힘만을 믿고서 밖으로는 제후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제나라를 멸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오. 과인은 온 나라의 모든 국력을 기우려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려보려고 하는데 선생은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 하십니까?」

「제나라는 땅은 넓고 백성들의 수효는 많으며 그 군사들은 실전에 익숙하여 우리 연나라 혼자 힘만으로는 제나라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기필코 제나라를 정벌하실 마음을 갖고 계시다면 반드시 천하의 제후들과 힘을 합한 후에 도모하여야 합니다. 오늘 연나라의 이웃 나라 중에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나라는 조나라입니다. 대왕께서는 마땅히 우선 조나라와 먼저 맹약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는 자연히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제나라에서 쫓겨난 맹상군은 위나라로 가서 상국의 자리에 있습니다. 맹상군은 제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힘을 합쳐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하면 싫어할 이유가 없어 위왕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나라와 합종을 맺고 그 힘을 합하여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계책입니다.」

연소왕은 즉시 악의에게 부절을 주어 조나라에 가서 조왕을 설득하여 맹약을 청하게 했다.

악의는 우선 조나라의 평원군 조승을 찾아가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자고 설득했다. 평원군은 혜문왕에게 연나라의 제안을 전하고 이어서 연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에 많은 이득이 생길 것이라고 설득했다. 혜문왕이 연나라와의 맹약을 허락했다. 그때 마침 진나라의 사자가 조나라에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악의도 역시 진나라 사자를 찾아가 열국이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게 되면 이로운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진나라의 사자가 돌아가 소양왕에게 악의가 한 말을 전했다. 진왕은 강성해지는 제나라를 시기하고 있었고 또한 열국의 제후들이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나라를 받들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시 그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 진나라도 같이 제나라의 정벌전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위나라에는 극신이 사자로 가서 위왕을 알현한 다음 맹상군을 찾아가 연왕의 뜻을 전했다. 맹상군은 과연 위왕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을 주장하고 다시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 위나라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했다. 한나라가 제나라 정벌군에 참여하겠다고 약조했다.

이윽고 약속한 날이 되자 연왕은 나라 안의 모든 정예병사들을 동원하여 악의를 대장으로 삼아 제나라 정벌군을 일으켰다. 진나라는 백기(白起)를, 조나라는 염파(廉頗)를, 한나라는 포연(暴鳶)를, 위나라는 진비(晉鄙)를 대장으로 삼아 각기 일군(一軍)의 군사들을 이끌고 약속한 기한에 맞추어 제수(濟水) 강안의 집결지에 당도했다. 연왕은 악의로 하여금 오국의 군사들을 지휘하도록 하고 그를 상장군에 임명했다. 악의가 지휘하는 다섯 나라의 군사들은 거칠 것이 없는 기세로 제나라로 쳐들어갔다.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제나라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민왕은 스스로 제나라의 본군을 거느리고 대장 한섭과 함께 출전하여 제수의 서쪽에 진을 치고 오국연합군의 진공을 막으려고 했다. 악의가 사졸들 앞에 서서 몸을 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돌진하자 연나라 군사들은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나라 진영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사국의 장병들도 용기백배하여 연나라 군사들의 뒤를 따라 제나라 군사들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삽시간에 붕궤되어 그 시체가 들판에 가득 차고 흐르는 피는 강물을 이루었다. 한섭은 악의의 동생 악승(樂乘)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오국연합군은 승승장구하여 제나라의 패잔병의 뒤를 추격하자 제민왕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후퇴하여 임치성으로 들어가 농성전에 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초나라에 사자를 급파하여 구원군을 청했다. 제민왕은 구원의 대가로 옛날에 초나라에서 빼앗은 회수 이북의 땅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제나라의 본대가 연군의 추격을 받아 달아나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게 된 진(秦), 위(魏), 한(韓), 조(趙) 등의 사국연합군은 각기 길을 나누어 제나라의 변경에 있던 성들을 차례로 점령했다. 그 사이에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 군사들은 거침없이 제군의 뒤를 추격하여 제나라 영토 깊숙이 진격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위엄과 덕으로 선무했다. 제나라의 성들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모두 떨어져 그 세는 마치 파죽지세(破竹之勢)라 할만 했다.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의 대군이 이윽고 임치성 밑에 당도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이에 크게 두려워한 제민왕은 문무 대신 수십 명과 함께 임치성의 북문을 열고 아무도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다.

3. 亡者妄大(망자망대)

- 전쟁에 지고 도망치는 망명객 처지에 자존망대한 제민왕

민왕은 그 일행과 함께 위(衛)나라에 당도하자 위나라 군주가 교외에까지 나와 신하로 칭하며 마중했다. 위나라 도성으로 들어간 민왕에게 위후(衛侯)는 궁궐의 정전(正殿)을 양보하고 필요한 기구들을 모두 갖추어 주며 공경하기를 매우 극진하게 했다. 민왕이 거만을 떨며 위후를 예로서 대하지 않았다. 위나라의 신하들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한 밤중에 민왕의 치중을 몰래 훔쳐서 감추어 버렸다. 민왕이 알고 노하여 위후가 나타나면 꾸짖고 그 도적들을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리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위후는 알현도 드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얼굴도 보이지 않고 또한 음식이나 먹을 것을 보내주지도 않았다. 민왕은 그때서야 마음속으로 매우 부끄러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도록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매우 고픈 민왕은 오히려 위왕이 자기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총신 이유(夷維)등 몇 명의 신하들과 함께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위후의 궁궐을 빠져나와 달아났다. 민왕을 따라 나섰던 제나라의 신하들은 졸지에 왕을 잃어버리고 모두 흩어져 사방으로 달아났다.

민왕이 위나라를 탈출하여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노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에 당도했다. 관문을 지키던 관리가 사람을 보내 노후에게 민왕이 왔음을 알렸다. 노후가 사자를 관문까지 보내 민왕을 마중했다. 이유가 노나라의 사자에게 말했다.

「노나라는 어떻게 우리의 왕을 대접하려고 하는가?」

사자가 대답했다.

「우리 군주께서 10뢰(牢)의 예로 그대의 왕을 대접하라고 하셨소.」

「우리의 군주 제왕은 곧 천자와 같으신 분이다. 천자가 순행(巡行)을 나와 제후국에 들리면 아침저녁으로 친히 나와 당하에서 바치는 식사를 살펴보고 천자가 음식을 다 들기를 기다려 물러 나와 조회에 참석하는 것이 예의이거늘 어찌하여 10뢰의 음식만으로 받든다고 하는가?」

사자가 돌아가 노후에게 이유의 말을 전하자 노후가 크게 노하여 관문의 문을 닫고 제왕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했다. 할 수 없이 민왕의 일행은 추(鄒)나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마침 추나라 군주가 죽어 상중이었다. 민왕이 추성으로 들어가 추나라 군주의 죽음을 조문하려고 했다. 이유가 다시 추나라 사람을 향해 말했다.

「천자가 제후의 죽음에 대해 조문을 할 때는 그 상주된 자는 필히 관을 등에 짊어지고 서쪽 계단에서 북면하고 서 있어야 하며 천자는 동쪽 층계를 올라가 남면하여 행하게 되어 있소.」

추나라 사람이 대답했다.

「우리 추나라는 작은 나라라 감히 천자께서 조문을 하시게 하여 번거로움을 끼치게 할 수 없겠습니다.」

추나라도 역시 민왕의 입국을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왕은 다시 마땅하게 찾아갈 나라를 생각해 내지 못하자 이유가 말했다.

「제가 들으니 아직 거성(莒城)은 온전하게 보전되고 있는 고을인데 어찌하여 그곳으로 납시지 않으십니까?」

민왕은 이유와 몇 명의 신하들을 이끌고 거성으로 들어가 그곳의 병사들을 끌어 모아 연나라 군사들에게 대항하려고 했다.

4. 略地服心(략지복심)

-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제나라 땅을 얻으려고 한 악의 -

한편 민왕이 달아난 임치성을 손쉽게 함락시킨 악의는 제나라의 부고에 있던 재물과 제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꺼내고, 다시 옛날에 제나라가 침략하여 빼앗아 간 연나라의 제기들을 모두 찾아내어 큰 수레에 실어 본국으로 보냈다. 연소왕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제수(濟水)로 왕림하여 연나라의 삼군을 크게 호군하고 악의롤 창국(昌國)3)에 봉하고 창국군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악의와 회견을 끝낸 연소왕이 연나라로 돌아가면서 악의에게 제나라에 계속 머물면서 제나라의 나머지 성들을 모두 점령하라는 명을 내렸다.

제나라 종실의 종인 중에 계략이 출중하고 병법에 밝은 이름이 전단(田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민왕에게 중용되지 못한 그는 간신히 임치 성내의 시연(市椽)4)이라는 조그만 벼슬을 하나 얻어 하고 있었다. 이윽고 연나라 군사들이 임치성에 입성하자 성안의 제나라 백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전단과 그 종족들은 난을 피하여 안평(安平)5)으로 달아났다. 그는 그곳에서 수레의 모양을 전례 없는 특이한 모양으로 개량했다. 양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수레의 축 양단을 잘라내어 바퀴와 수평을 이루게 하고 다시 차축 안에는 철판을 덧씌워 견고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전단의 하는 모습을 보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연나라 군사들이 그들의 뒤를 추격해와 안평을 공격했다. 안평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안의 백성들은 다시 앞을 다투어 달아났다. 이윽고 협소한 도로에 전속력으로 달리던 수레가 한꺼번에 몰리자 차축의 돌출된 부분이 서로 부딪치게 되어 차축이 부러지거나 아니면 수레가 전복하여 수레에 탄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연나라 병사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전단이 수레의 차축을 베어내고 다시 철판으로 차축의 안쪽을 단단하게 고정하여 견고해진 수레바퀴 덕분으로 그의 종족들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모두 연나라 추격병을 따돌리고 달아나 즉묵(卽墨)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악의가 제나라의 남은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군사를 나누어 임치성 부근의 화읍(畵邑)에 이르렀다. 그때 화읍에는 제나라의 태부였던 왕촉(王蠋)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살고 있었다. 악의가 그 소식을 듣고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화읍의 30리 밖을 에워싸게 하고 아무도 들어가서 범하지 못하게 했다. 이어서 황금과 폐백을 사자에게 주어 예를 갖추어 왕촉을 불러 연왕에게 그를 천거하려고 했다. 왕촉은 악의가 보낸 사자에게 몸은 늙고 병들어 부름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자가 돌아가 왕촉의 말을 전하자 악의가 다시 사자를 보내 자기의 명을 왕촉에게 전하게 했다.

「태부가 초빙에 응한다면 내 즉시 장군으로 임명하여 만호의 읍에 봉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면 군사를 보내 화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고 도륙을 낼 것이오.」

왕촉이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모시지 않으며 열녀는 그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라고 했다. 제왕이 충신들의 간언을 듣지 않아 내가 벼슬을 버리고 물러 나와 초야에 묻혀 밭을 갈며 살고 있는데, 드디어 나라는 망하고 임금은 도성에서 도망쳐 어디에 가 있는 줄도 모르게 되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여 나라를 보전하게 하지 못한 결과, 적군이 쳐들어와 무력으로 나를 위협하니, 내가 불의와 더불어 목숨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버려 의를 지키겠노라!」

왕촉이 즉시 자기의 머리를 나무 위에 걸고 온몸을 한번 크게 흔드니 목이 부러져 죽었다. 악의가 소식을 전해 듣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이어서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하여 왕촉의 장사를 후하게 지내주라고 하고 그의 묘에 다음과 같은 비석에 묘비명을 새긴 후 세우게 했다.

「齊忠臣王蠋之墓(제충신왕촉지묘)」

악의는 연나라에서 출병하여 제나라를 공략한지 6개 월 만에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을 점령하여 모두 연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 이제 제나라 여러 성들 가운데에 단지 거성(莒城)과 즉묵 두 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악의는 즉시 군사들을 쉬게 하고 장수들을 접대하며 제왕이 내린 가혹한 법령을 취소하여 세금과 노역을 가볍게 감해주었으며 제환공과 관이오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올리고 집집마다 몸소 찾아다니며 백성들을 안심시키자, 제나라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다. 제나라의 남은 두 개의 성을 공격하여 비록 손아귀에 넣는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경우 결국에는 연나라 땅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악의는 제나라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그들 스스로 손을 들고 나와서 항복을 하게끔 만들려고 했다. 악의는 일단 전투를 중지하고 그 수하의 군사들을 편히 쉬게 했다.

주난왕 31년 기원전 284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5. 隨心所欲 遭到惩罰(수심소욕 조도징벌)

- 마음내키는 대로 폭정을 행하다가 비참한 최후로 댓가를 치른 제민왕

한편 초나라의 경양왕(頃襄王)은 제나라 사자가 달려와 구원병을 청하며 옛날에 제나라가 빼앗아 간 회수 이북의 땅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즉시 대장 요치(淖齒)를 시켜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가서 제나라를 구원한다는 구실로 제나라로 진격하여 회수 이북의 땅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요치가 출전하기 위해 인사를 드리러 조당에 들렸을 때 경양왕은 그를 불러 조용히 당부의 말을 하였다.

「제왕이 마음이 급하여 우리에게 구원병을 청하고 있는데 장군이 당도하면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의 묘를 발휘하여 행동하되 오로지 우리 초나라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하여 일을 처리하기 바라오!」

요치가 초왕에게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나와 20만의 초나라 대군을 이끌고 제민왕이 들어가 농성하고 있는 거성을 향해 진군했다. 요치를 보자 감격한 민왕은 그를 제나라의 상국으로 세우자 제나라의 대권은 모두 요치에게 넘어갔다. 요치는 연나라의 군세가 매우 강성하여 제나라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싸움에 져서 연초(燕楚) 두 나라에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즉시 밀사를 파견하여 악의와 내통하고 민왕을 살해한 다음 제나라를 양분하고 다시 연나라로 하여금 자기를 나머지 반의 제나라 땅에 왕으로 세워달라고 했다. 악의가 사자를 보내와 요치의 요구에 답했다.

「장군이 무도혼군을 죽이고 그 공으로 제나라 왕으로 선다면 제환공과 진문공이 세운 패업도 장군의 업적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의 결심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악의의 답신을 받은 요치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고리(鼓里)라는 고을에서 대군을 포진시키고 민왕을 청하여 열병식을 거행하겠다고 했다. 민왕이 열병식장에 당도하자 즉시 붙잡아 포박한 다음 그의 죄를 나열했다.

「제나라가 멸망을 알리는 징조가 셋이 있었다. 혈우(血雨)가 내렸으니 천신이 고한 것이며, 땅이 갈라졌으니 지신이 고했으며, 형체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관문 밖에서 곡을 했으니 이는 백성들이 고한 것이다. 왕 된 자가 반성하여 그 경계를 깨닫지 못하고 충신들을 살육하고 어진 사람들을 내쳤으니 자기 분수를 몰랐도다! 오늘 제나라의 모든 땅을 잃어버리고 고작 조그만 성 하나에 몸을 의지하여 구차한 목숨에 연연해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무엇을 더 바라고 있는 것인가?」

민왕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 대답도 못했다. 이유가 민왕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자 요치는 먼저 이유를 끌어내 목을 베고, 이어서 민왕의 다리에서 힘줄을 뽑아 그것으로 민왕을 묶어서 높은 건물의 대들보에 걸었다. 민왕은 대들보에 걸려 3일 만에 숨이 끊어져 죽었다. 민왕은 그 몸에 미친 화로 참으로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요치는 거성으로 돌아와 제나라의 세자를 찾아 죽이려고 했으나 세자는 어디론지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 요치가 즉시 스스로 자기의 공을 자랑하는 표문을 지어 악의에게 보내며 그것을 연왕에게 전해주기를 청했다. 이때부터 거성의 요치와 임치의 악의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사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6. 袒左殺賊(단좌살적)

- 단좌로 사람을 모아 초군을 물리친 애국소년 왕손고 -

일찍이 나이가 12세에 부친을 잃고 노모를 부양하고 있던 제나라 대부 왕손고(王孫賈)를 민왕이 불쌍히 여겨 벼슬을 내렸었다. 민왕이 임치성에서 달아날 때 왕손고도 그 뒤를 따라 수행하여 위(衛)나라에 머물다가 민왕이 몰래 달아나는 바람에 일행과 헤어지게 되었다. 왕손고는 민왕의 행선지를 알지 못하여 아무도 몰래 위나라를 탈출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노모가 돌아온 왕손고를 보더니 물었다.

「네가 모시던 왕은 어디에 계시냐?」

「왕을 따라 위나라에 갔다가 왕이 중도에 아무도 몰래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노모가 화를 내며 말했다.

「옛날에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면, 나는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 네가 저녁에 나가서 그날 저녁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의 어귀에 세워진 문 앞까지 나가서 네가 돌아오기를 또한 기다렸다. 임금이 그 신하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그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겠느냐? 너는 제왕의 신하인데 왕이 어두운 밤중에 황급히 도망쳤음에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어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단 말이냐?」

왕손고가 노모의 꾸지람에 매우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다시 하직인사를 드리고 민왕의 종적을 찾다가 그가 거성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거성에 당도한 왕손고는, 제왕은 이미 요치에 의해 잡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손고가 그의 왼쪽 어깨를 들어내는 육단(肉袒)6)으로 성내의 거리로 나가서 백성들을 향해 외쳤다.

「요치는 제나라의 재상(宰相)된 자인데 그 군주를 시해했으니 그는 곧 불충한 인간이다! 나와 함께 그의 죄를 물어 토벌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왼쪽 어깨의 옷을 벗고 나를 따르시오!」

성내의 백성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사람은 나이도 어린데 아직도 충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으니 우리가 의로운 일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그의 뒤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왼쪽 어깨를 드러낸 사람들이 왕손고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 수효가 400 명이 넘게 되었다. 그때 20만에 달하는 초나라의 대군은 좁은 거성 안에 머물지 못하고 요치와 떨어져 모두 성밖에 주둔하고 있었다. 제왕이 머물던 궁궐에 머물면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여인들의 가무를 즐기고 있던 요치를 수백 명의 초나라 병사들은 궁 밖에서 도열하여 호위하고 있었다. 4백여 명의 백성들을 이끌고 초나라 병사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병장기를 탈취한 왕손고는 궁궐로 쇄도해 들어가 요치를 사로잡아 칼로 짓이겨 육젓을 만들어 살해했다. 이어서 그들은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켜 초나라 군사들의 침입에 대비했다. 요치가 죽어 대장을 잃어버린 초나라 군사들은 반은 흩어져 달아나고 그 반은 연나라 진영에 투항하고 말았다.

7. 白龍魚服(백룡어복)

- 난을 피해 하인의 처지로 전락한 제나라의 왕자 법장 -

한편 제나라 세자 법장(法章)은 자기의 부왕이 요치에게 잡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옷을 바꿔 입고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거성 밖으로 달아나 임치 사람 왕립(王立)이라고 변성명했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갈 데를 찾지 못하다가, 그때 마침 조정에서 물러 나와 거성 부근에 살고 있던 태사교(太史敫)의 집에 들어가 잡일을 하는 하인의 신분으로 몸을 숨겼다. 세자는 태사교의 집에서 물을 길러 나무에 물을 주는 정원을 돌보는 일을 했다. 원래 귀하게만 자란 세자에게는 그 일이 이만저만하게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태사교는 물론이고 집안의 아무도 그가 귀한 신분의 세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때 태사교에게는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정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정원에서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세자의 풍모를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말했다.

「저 사람의 생김새는 나무에 물이나 주며 하인으로 일할 사람은 아닌 듯싶다.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음에 틀림 없다!」

태사의 딸이 자기의 시녀를 세자에게 보내 그 내력을 물어보게 하였다. 법장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결코 자기의 내력을 밝히지 않았다. 태사의 딸이 시녀의 보고를 받고 말했다.

「백룡어복(白龍魚服)7)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밝히고 싶지 않아서이다. 후일에 필시 부귀한 몸이 되리라!」

그 후로는 시시때때로 시녀를 시켜 의복과 음식을 보내주고, 시간이 감에 따라 친근해지자 법장은 자기의 행적을 태사의 딸에게만 몰래 말해줬다. 태사의 딸은 법장과 정이 깊어져 이윽고 부부의 언약을 맺고 정을 통했다. 그러나 태사교의 집안에서는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즉묵을 지키던 성주가 병이 들어 죽어 군중에 주장이 없게 되자 백성들은 군사의 일에 밝은 사람을 뽑아 주장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때 즉묵성 안에 옛날 평안(平安)에서 전단이 행한 일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즉묵이 옛날 평안에서 수레바퀴의 축을 자르고 그 안쪽에 철엽(鐵葉)을 대어 수레를 견고하게 한 다음 달아나 즉묵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즉묵의 새로운 성주로 전단을 천거했다. 즉묵의 백성들은 전단을 그들의 성주로 옹립했다.전단은 몸소 판삽(版鍤)8)을 가지고 다지면서 사졸들과 함께 성을 쌓았다. 그들의 종족들과 처첩들도 모두 성을 지키는 대오에 합류시켜 성안의 모든 백성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사랑하였다.

한편 제나라의 여런 조정신하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어 있다가 왕촉이 절개를 지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왕촉은 이미 왕에게 간하다가 쫓겨난 사람인데 여전히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데, 우리 같은 도배들은 제나라 조정이 몰락해가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다가 이윽고 군주는 도망치고 나라가 망하는 꼴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제 우리가 나라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사람의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윽고 그들이 다시 모여 모두 거성으로 달려가 왕손고 진영에 가담하고 다시 그와 상의하여 세자를 수소문해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일 년이 지날 때쯤 되자 법장은 제나라의 유신들과 백성들이 자신을 진심으로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법장이 태사교를 찾아가 말했다.

「제가 실은 세자 법장입니다.」

태사교가 곧바로 즉시 거성으로 달려가 왕손고에게 알렸다. 왕손고는 즉시 어가를 준비하여 태사교의 집에서 세자를 모셔와 제왕으로 즉위시켰다. 이가 제양왕(齊襄王)이다. 왕손고는 숨어있던 세자가 돌아와 제왕으로 즉위했음을 즉묵을 지키던 전단에게 알리고 두 성이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어 연나라 침공군에게 대항하려고 했다.

한편 악의는 즉묵을 포위하여 공격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악의는 할 수 없이 연나라 군사들의 포위망을 풀어 9리를 뒤로 후퇴시켜 장기전에 대비한 진지를 구축하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령을 내렸다.

「성안에서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나오고자 하는 백성들이 있다면 그들의 청을 들어주고 절대로 붙들지 말라! 그들 중에 곤궁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자는 밥을 먹여주고, 추위에 떠는 자들은 옷을 입혀 주라!」

악의는 즉묵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감격하게 하여 투항시키는 작전으로 바꾸었다.

한편 연나라의 대부에 기겁(騎劫)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제법 용력이 있었고 병법을 담론하기를 즐겨하였다. 기겁은 태자 락(樂)과 서로 친하다는 것을 빌미로 연나라의 병권을 노리고 있었다. 기겁이 태자에게 말했다.

「제왕이 이미 죽어 제나라의 대부분의 성이 다 함락되고 오로지 거성과 즉묵 두 성만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의는 과거 6개월 동안에는 제나라 7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켰으면서, 단지 2개의 성만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악의가 즉시 두 개의 성을 함락시키지 않는 이유는 제나라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위엄을 세우면서 서서히 그들의 인심을 사서 머지않아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자락은 기겁의 말을 근거로 소왕에게 간했다. 소왕이 듣고 노하며 말했다.

「내가 선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음은 순전히 창국군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창국군이 정말로 제왕이 되려고 한다 할지라도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스스로 제왕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소왕이 좌우에게 명하여 태자에게 곤장을 20 대를 치도록 했다. 다시 부절을 사자에게 주어 임치로 보내 악의를 제왕으로 봉했다. 악의가 감격하여 목숨을 걸고 맹세하며 결코 제왕의 부절을 받지 않았다. 소왕이 돌아온 사자의 보고를 받고 말했다.

「내가 원래 악의의 진심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나의 뜻을 저버릴 사람이 아니다!」

연소왕은 원래 신선의 술법에 빠져있었다. 방사를 시켜 금과 돌을 단련하여 만든 연단(煉丹)9)을 오래 동안 복용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몸 안에서 열이 나더니 발병하여 곧이어 죽고 말았다. 태자락이 사위하여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연혜왕(燕惠王)이다.

8. 樂毅奔趙(악의분조)

- 기겁의 모함을 받아 조나라로 달아난 악의 -

매번 세작을 보내 연나라의 정황을 정탐하고 있던 즉묵의 수장 전단은 기겁이란 자가 악의가 쥐고 있는 병권을 노렸다가 연나라의 태자 락이 그 일로 해서 소왕에게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단이 탄식하며 말했다.

「제나라는 연왕이 죽고 나서야 복국이 가능하겠구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연소왕이 죽고 그 뒤를 태자락이 이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전단이 즉시 세작을 연나라에 들여보내 소문을 내며 돌아다니게 했다.

「악의가 오래 동안 제왕이 되려고 했지만 선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차마 배반을 못해 제나라의 남은 즉묵과 거성 두 성에 대한 공격을 늦추어 선왕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려왔다. 오늘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으니 한편으로는 즉묵과 연계하여 강화(講和)를 맺으려고 할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일은 단지 연나라가 악의 대신 다른 장수를 보내는 것이다. 새로 부임하는 장수는 지체하지 않고 즉묵과 거성에 대한 공격을 하여 함락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태자로 있을 때부터 악의를 의심해 온 연혜왕은 다시 시중에 나돌고 있는 요언이 기겁이 말한 것과 서로 부합하여 그 말을 사실로 믿게 되었다. 그는 즉시 악의를 대신하여 기겁을 연나라 정벌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대장의 부절을 기겁에게 넘기고 연나라로 귀국하라는 명을 받은 악의는 돌아가면 연혜왕에게 주살될 것을 두려워하며 말했다.

「나는 원래 조나라 사람이었다.」

악의는 그 가족과 종족들을 버리고 서쪽으로 길을 바꿔 조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조나라의 혜문왕은 악의를 관진(關津)10)에 봉하고 망제군(望諸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기겁이 악의를 대신하여 연나라 군사들을 지휘하게 되자 악의가 시행했던 모든 작전과 명령을 자기 뜻대로 바꾸어버렸다. 연나라 군사들은 기겁의 되지도 않은 명령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기겁은 군중에서 3일 간은 체류한 다음 연나라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여 즉묵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 쌓고 돌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제나라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즉묵성을 결사적으로 더욱 굳게 지켰기 때문에 기겁과 연군은 어쩌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성안의 백성들과 군사들을 모이게 한 전단이 말했다.

「내가 어제 밤 꿈을 꾸었는데 상제가 나타나 나에게 말했다. ‘전단 네가 틀림없이 제나라를 다시 일으켜 연나라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머지않아 하늘에서 신인이 내려가 너희들의 군사(軍師)가 될 것이다. 이후로 너희들이 싸움에 임하게 되면 절대 패하지 않으리라!’」

군사들 중 소졸 한 사람이 전단이 한 말의 뜻을 이해하고 급히 전단 앞으로 달려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제가 그 군사 노릇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재빨리 달아나려고 하던 그 군사를 전단이 황급히 붙잡은 후에 사람들에게 외쳤다.

「내가 꿈속에서 본 신인이 바로 이 사람이다!」

전단이 즉시 그 소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의관을 바꾸어 입히고 군막 안의 상석에 앉혀 북면하며 군사로 받들었다. 그 소졸이 전단에게 말했다.

「저는 실은 아무런 재주도 없는 일개 말단 병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너는 그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된다.」

전단이 즉시 그 소졸을 신사(神師)라고 부르면서 매번 군중에서 명을 내릴 때는 필히 그 신사에게 품한 다음에 행하였다. 전단이 성안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사께서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리셨다. ‘음식을 먹을 때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당에다 선조들에게 제상을 차려놓고 먼저 음식을 바쳐, 마땅히 조상들의 도움을 받도록 하라’」

성안의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가르침을 따라 집집마다 그 정원에다 제상을 차려놓고 음식을 올려놓자 새들이 보고 일제히 날아와 날개를 퍼덕거리며 쪼아 먹었다. 이와 같이 아침저녁에 걸쳐 하루에 두 번씩 행하자 성밖의 연나라 군사들은 새들이 성안에 몰려드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제나라 성중에는 신인이 하강하여 군사가 되어 가르침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서로 전하여 제나라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대적할 수 없으며, 만일 제나라 군사들과 맞선다면 하늘을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모두가 전의를 상실했다.

전단은 다시 사람을 연나라 군중으로 보내 악의의 결점에 대해 소문을 내게 했다.

「창국군 악의는 우리 제나라 사람들을 너무 관대하게 대하여 제나라 사람들은 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성안의 제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연나라 군사들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에 우리 제나라 사람들의 포로들을 모두 코를 베어 돌려보낸다면 즉묵성 안의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기겁이 그 말을 믿고 항복한 제나라 병사들의 코를 베어 성 밑으로 보내 제나라 사람들에게 보였다. 즉묵성 안의 제나라 사람들은 연나라 군사들에게 항복한 사람들이 모두 코가 베인 것을 보자 크게 두려워하여 서로 간에 격려하여 예전보다 더욱 조심하여 성을 지켜 오로지 연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게 될까봐 두려워하였다.

전단이 다시 사람을 연나라 진영에 보내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성안의 제나라 사람들 선조들의 무덤은 모두 성 밖에 있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그 무덤을 모두 파헤치는 것이다.」

기겁이 다시 군사들을 시켜 즉묵성 밖에 있던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어 모두 불사르고 불에 타고 남은 해골들을 발로 차서 부셔버렸다. 즉묵 성안의 제나라 사람들은 성 위에서 자기들 선조들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그 시신이 불살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원한에 사무쳐 연나라 사람들을 죽여 그 시체를 씹어 먹겠다고 다짐했다. 즉묵의 성민들이 전단의 막사로 떼를 지어 몰려와 성 밖으로 나가 조상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출전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

9. 火牛破敵(화우파적)

- 화우진으로 연군을 무찔러 제나라를 복국시킨 전단 -

이윽고 병사들을 싸움에 동원할 만하다고 생각한 전단은 즉시 성민들 중에서 젊고 씩씩한 장정들 5천 명을 선발하여 민가에 몰래 잠복시켜 놓고 나머지 늙고 허약한 성민들은 부녀자와 같이 순번을 정하여 성벽 위에 올라가 성을 지키게 했다. 이어서 전단은 항복문서를 만들어 사자에게 주어 연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말을 전하게 했다.

「성안의 식량은 모두 떨어져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장차 제가 날짜를 정하여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겠습니다.」

연나라의 대장 기겁은 전단이 보낸 항복문서를 받아들고 여러 장수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악의에 비해 어떤가?」

연나라의 장수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의 장군보다 두 배는 더 훌륭하십니다.」

연나라의 군중에 있던 병사들은 즉묵성의 제나라 사람들이 드디어 항복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뛸 뜻이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전단은 다시 성민들로부터 황금 천일을 거두어, 그것들을 부자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아무도 몰래 연나라 장수들을 찾아가 즉묵성에 입성하게 되면 자기들의 집만은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게 하였다. 연나라 장수들이 크게 기뻐하며 황금을 모두 받고서 부자들에게 각기 조그만 깃발을 나누어주며 연나라 군사들이 성안으로 진입하게 되면 그 깃발을 그들의 집 문 위에 꽂도록 하여 그 신호로 삼게 했다. 그후 연나라 군사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단지 전단이 성안에서 나와 항복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전단은 즉시 사람을 시켜 성안에 있던 천여 마리의 소를 모두 거두어들여 붉은 색의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그 표면에 오색으로 용의 그림을 그려 넣은 다음에 소에게 입혔다. 그리고 소뿔에다가는 예리한 단도를 단단하게 붙들어 매고 다시 삼으로 꼰 굵은 밧줄을 기름에다 적신 다음에 소꼬리에다 묶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빗자루에 매단 꼬리처럼 보였다. 이윽고 항복하기로 한 전날이 되어 전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맡은 바 임무를 나누어주었다. 즉묵성 안의 많은 사람들은 전단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단은 소를 잡고 술을 내어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민가에 숨겨 두었던 5천 명의 정예병들을 불러 배불리 마음껏 먹이고, 그들의 얼굴을 다섯 가지 색으로 칠하고 각기 예리한 병장기를 나누어주고 소들의 뒤를 바싹 따르게 했다. 즉묵의 성민들이 성벽에 십여 개의 구멍을 뚫어 소들을 그 구멍을 통하여 성밖으로 내 몰았다. 이어서 성민들은 소꼬리에 메 단 빗자루 모양의 굵은 밧줄에 불을 붙였다. 밧줄에 붙은 불의 열기에 놀란 소들은 곧바로 연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했다. 5천 명의 제나라 정예병들은 입에 함매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그때 연나라 군사들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전단의 항복을 받고 즉묵성에 입성하게 될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여 마리의 소 떼가 달리면서 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자 연나라 군사들이 잠결에 놀라 일어나 살펴보니, 천여 개가 넘는 횃불이 온 천지를 대낮처럼 비추면서 다섯 가지의 색깔을 한 용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기들의 진영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윽고 소 떼가 연나라 진영을 덮쳐 수많은 군사들이 그 뿔에 메달아 놓은 칼에 찔려서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연나라 군중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지고 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윽고 용의 형상을 한 짐승들의 뒤를 한 떼의 용맹한 병사들이 따라와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연나라 군사들을 향해 큰칼과 도끼를 휘둘렀다. 연나라 군사들은 그들이 휘두르는 큰칼과 도끼에 수없이 죽어 나갔다. 그들의 수효는 비록 5천 명에 불과했지만 마음이 황망해진 연나라 군사들의 눈에는 마치 수만 명처럼 보였다. 더욱이 연나라 군사들은 옛날에 제나라 진영에는 하늘에서 군사(軍師)가 내려와 그들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데다가, 오늘 다시 귀신과 같은 군사들을 보자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도 해 보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또한 전단이 친히 성안의 노약자들을 이끌고 나와 그들에게 북과 기구를 치면서 함성을 지르게 했다. 그들이 북과 기구를 두드려 내는 소리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켜 연나라 군사들은 더욱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윽고 연나라 군사들은 크게 놀라 서로 다리가 걸려 넘어지며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더욱더 간담이 내려앉으며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그 누구도 감히 귀신의 형상을 한 제나라 군사들의 앞을 막아서며 대항하지 못했다. 연나라 군사들은 드디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망가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쳐 밀고 넘어져 서로 밟혀 죽은 자 만도 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연나라의 대장 기겁도 수레를 타고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연나라 진영을 향해 돌격해 오던 전단을 만나 그가 휘두른 극에 찔려 죽었다. 연나라 군사들은 이 한 번의 싸움으로 궤멸되고 말았다. 이때가 주난왕 36년 기원전 279년의 일이었다. 이 일을 두고 사관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화우진은 고금에도 없는 기묘한 계책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기겁의 우둔함 때문에 승리를 할 수 있었다.

만일에 연나라가 장수를 바꾸지 않았다면

연․ 제 두 나라의 승부는 알 수 없었으리라!

火牛奇計古今无(화우기계고금무)

畢竟機乘騎劫愚(필경기승기겁우)

假使金臺不易將(가사금대불역장)

燕齊勝負竟何如(연제승부경하여)

전단이 대오를 정돈하여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연나라 군사들을 뒤를 추격하여 승승장구했다. 군사를 이끌고 연나라를 향해 북진하던 전단의 모습을 보게 된 제나라 성읍의 백성들은, 제나라 군사들이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 장수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연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나라로 투항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난 병력을 이끌고 계속 북진한 전단은 하수까지 진격하여 그 이남의 땅을 모두 제나라의 영토로 했다. 마침내 연나라가 빼앗아 간 제나라의 70여 성도 모두 탈환한 것이다. 전단 휘하의 여러 장수들은 전단의 힘으로 제나라를 수복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그를 제왕으로 받들려고 했다. 전단이 사양하며 말했다.

「태자 법장이 거성에 아직 살아 있고, 또한 나는 제나라 왕실의 먼 친척에 불과한 사람인데 내가 어찌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전단은 즉시 사람을 거성으로 보내 법장을 모셔오도록 시켰다. 왕손고가 직접 어가를 모는 마부가 되어 법장을 모시고 임치성에 당도했다. 법장은 민왕의 장례를 치르고 태사를 시켜 택일을 하여 종묘에 고한 다음 신하들로부터 조배를 받았다. 제양왕은 전단을 보고 말했다.

「거의 망할 뻔한 제나라가 안정을 찾아 다시 종사를 잇게 된 것은 모두 숙부의 덕분입니다. 숙부는 안평에서 그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니 오늘 숙부님에게 안평군(安平君)이라는 봉호를 내리고 만 호의 식읍을 드리겠습니다.」

제양왕은 다시 왕손고를 아경에 임명하고, 태사교의 딸을 데려와 왕비로 삼은 후에 군왕후(君王后)라고 부르게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태사교는 그의 딸이 제양왕에게 이미 몸을 허락한 것을 알았다.

태사교는 크게 화를 내며 그의 딸에게 말했다.

「너는 매파도 대지 않고 스스로 시집을 갔으니 나의 딸이 아니다!」

태사교는 그 후로 늙어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는 그의 딸을 상면하지 않았다. 제양왕이 사람을 보내 태사교의 작위를 올려주고 봉록을 늘려 주었지만 그는 모두 받지 않았다. 그러나 군왕후는 해마다 사람을 태사에게 보내 그의 안부를 물어 결코 예를 잃지 않았다. 이것은 후의 일이다.

그리고 3년 후인 주난왕 39년, 기원전 276년에 위나라에서 애왕(哀王)이 죽고 안리왕(安釐王)이 새로 섰다. 이에 맹상군은 위나라 재상의 자리를 공자 무기(無忌)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제나라에 돌아가 은거했다. 안리왕은 공자무기를 신릉군(信陵君)에 봉했다. 얼마 후에 제양왕의 허락을 받은 맹상군은 다시 자기의 봉읍이었던 설읍(薛邑)으로 돌아가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과 교우관계를 맺으며 일국의 제후에 못지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양왕이 맹상군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보내 제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하고 임치로 불렀으나 맹상군은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양왕은 맹상군을 원망하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우호관계를 맺었음으로 맹상군은 제나라와 위나라를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맹상군이 죽었다. 그러나 맹상군에게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공자들이 맹상군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후에 제나라와 위나라가 힘을 합쳐 설읍을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10. 樂毅報燕王書(악의보연왕서)11)

- 악의가 연왕에게 편지를 써서 충정을 밝히다.

한편 연혜왕은 기겁이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수많은 군사들을 잃어버리자 그때서야 악의의 지혜로움을 알고서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연왕이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 자기의 잘못에 대해 악의에게 사과하고 그를 다시 연나라로 데려가려고 했다. 악의가 서신을 써서 사자에게 주어 자기의 충정을 토로했다.

「신은 재주가 없어, 왕의 좌우에 있던 신하들의 뜻에 따라 왕명을 받들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선왕의 영명하신 뜻을 해치고 족하의 도의를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몸을 숨겨 여기 조나라로 도망쳐 왔습니다. 지금 족하께서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내와 신이 지은 죄를 열거하며 책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은 대왕을 곁에서 모시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선왕께서 신을 받아들여 총애한 까닭을 살피지 못하고, 또한 신이 선왕을 모셨던 마음을 명백히 밝히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감히 글을 써서 대왕께 올립니다.

신은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까운 측근이라고 해서 작록을 내리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자리를 준다.’12)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어야만 성공하는 군주가 되며, 그 행적을 논하여 친구를 사귀어야 이름을 세울 수 있는 선비가 될 수 있습니다. 선왕께서 인재를 등용하시던 방법을 신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선왕께서는 세상의 군주들과는 다른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이 위나라 사신의 부절을 빌려 연나라로 들어가자 선왕께서는 신의 재능을 알고 걷어 주신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나를 과분하게 대접하여 이름 높은 빈객들 가운데에 서게 하시고, 또한 뭇 신하들의 위에 놓으셨습니다. 또한 왕실의 종친들과 상의도 없이 신을 아경으로 삼으셨습니다. 신은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명을 내리기를 ‘나는 제나라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어, 우리 연나라의 국세가 가볍고 약함에 개의치 않고 그저 제나라를 도모하는 일이 과인이 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라고 말씀하시기에 신이 대답했습니다. ‘무릇 제나라는 일찍이 천하를 제패한 업적이 있고 전쟁에서 항상 승리한 전적이 있는 나라임으로 병사와 무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싸움을 하여 공을 세우는데 능숙합니다. 만일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시고 하신다면 반드시 천하의 제후국들과 같이 하셔야만 합니다. 천하의 제후국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먼저 조나라와 동맹을 맺어야합니다. 그리고 또 회수(淮水) 북쪽의 땅과 송나라의 땅은 초(楚)와 위(魏) 두 나라가 탐을 내고 있는 땅입니다. 만일 조나라가 우리와의 동맹을 승낙하고 초․위 두 나라와 연합하여 그 결과 네 나라가 함께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크게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왕께서 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어, 신에게 부절을 주어 남쪽의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신이 조나라에서 돌아와 복명하자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도리와 선왕의 생령에 힘입어 하수 이북에 있던 나라들은 선왕의 뒤를 따랐음으로, 그곳의 군사들은 모두 제수(濟水) 강안에 집결했습니다. 이윽고 진나라를 포함한 오국연합군은 선왕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그 군사들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날래고 정예한 군사들을 이끌고 거침없이 진격하여 이윽고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성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몸을 숨겨 달아나 거성으로 들어간 제왕은 근근히 죽음만은 면하게 되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치성 안에 있던 제나라의 주옥, 재보 및 진기한 제기들을 모두 거두어 연나라로 보냈습니다. 제나라의 제기들은 영대(靈臺)에 진열하고 대려(大呂)라는 제나라의 유명한 종은 원영궁(元英宮) 궁문 앞에 달았으며, 옛날 제나라가 빼앗아 간 정(鼎)은 찾아와 궁궐의 역실(磿室)에 두고, 문수(汶水)에 서식하는 문황(汶簧)이라는 대나무를 그곳 계성(薊城)의 언덕에 옮겨 심었습니다. 오백(五伯) 이래로 지금까지 선왕보다 더 큰 공업을 이룬 군주는 없었습니다. 선왕께서는 이에 뜻을 이루었다고 만족하시어 나라의 땅을 떼어 신을 그곳에 봉해 작은 나라의 제후들과 함께 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신은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신이 듣기에 ‘성군이 공을 이루게 되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춘추에 그 행적이 오르게 되고, 선견지명이 있는 선비가 이름을 세우게 되면 그 명성을 훼손하지 않게 됨으로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선왕께서는 원수를 갚고 치욕을 설욕하셨으며 만승지국의 강대한 나라를 평정하고 그 나라의 8백년 동안 축적한 보물과 제기를 연나라로 옮겨 놨으며, 또한 선왕께서 죽음에 이르심에 생전에 남기신 정령과 훈시는 결코 쇠하지 않았으며, 정사를 담당하고 있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신하들에게 지시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왕실의 종친 자제들의 적서를 구분하여 신중하에 배치함으로써 그 은혜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고루 미치게 한 이러한 모든 일들은 후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또한 듣기에 ‘일을 잘 꾸미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성사 시킬 수 없고, 일을 잘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13)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오자서가 합려를 설득하자, 합려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몇 천리나 떨어져 있던 초나라의 서울 영도를 점령하여 공적을 이룰 수 있었으나 그의 아들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아 그에게 죽음을 내리고 말가죽에 그 시체를 담아 장강의 물결에 띄웠습니다. 오왕 부차는 오자서가 건의한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죽여 그 시체를 장강의 물결에 띄우고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자서도 그가 모시던 군주가 다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비명에 죽고 그의 시신은 강물에 던져지게 됨에도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릇 신이 화를 면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선왕의 공적을 밝히는 것만이 최상의 계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받고 참소를 당하여 선왕의 명성을 해치는 일을 신은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죄를 얻게 되었으나 다행히 살신지화를 면했으면서, 또다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짓은, 신은 의리상 도저히 행하지 못할 일입니다.14)

신이 듣기에 ‘옛날 군자는 친구와 절교를 함에도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기의 억울함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은 비록 무능하나 오랫동안 군자의 가르침을 따라왔습니다. 다만 대왕의 주위의 시종과 측근들의 말을 듣고 신을 멀리 내치신 결과 신이 행한 행동을 살피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감히 글로 써서 바치오니 원컨대 군왕께서는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악의가 연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자 여전히 악의를 의심한 연혜왕은 조나라가 악의를 장수로 삼아 연나라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악의의 아들 악한(樂閑)을 창국군(昌國君)의 봉호를 잇게 하고 그의 사촌 동생인 악승(樂乘)을 장군으로 삼아 두 사람을 존대했다. 그후 악의는 연나라를 자주 방문하여 연과 조 두 나라의 화합에 노력했다. 두 나라는 모두 악의를 객경으로 임명했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늙어 죽었다. 그때 조나라에는 염파(廉頗)라는 사람이 대장으로 있었다. 그는 용기가 있고 병법에 밝아 주위의 제후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진나라 군사들이 여러 번 조나라의 변경을 침범했으나 염파가 힘껏 방어하여 조나라 영토 깊숙이 침입할 수 없었다. 진나라는 결국은 침략행위를 중지하고 조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제 96회로 계속>

주석

1)영수(靈壽)/지금의 하북성 평산현(平山縣) 경내로써 하북성의 성도인 석가장시(石家庄市) 서북 약 20키로에 있음. 전국 때 위나라 장수였던 악양(樂陽)이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하여 멸망시킨 해는 위문후(魏文侯) 재위 19년 기원전 406년의 일이며 중산국은 후에 기원전 378년 다시 복국하여 영수(靈壽)에 그 도읍을 두었다. 이어서 중산국은 기원전 296년 조무령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조나라에 편입되었다.

2)극신(劇辛)/ 제91회 주석7 참조

3)창국(昌國)/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경내

4)시연(市椽="市掾)/" 고대 중국에서의 시장(市場)을 감독하던 관리.

5)안평(安平)/ 지금의 산동성 임치(臨淄) 서 10키로

6) 원문은 단기좌견(袒其左肩)이며 고대 중국의 풍습에 왼쪽 어깨의 옷을 벗는 것은 그 사람의 편을 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7)백룡어복(白龍魚服)/신령한 백룡이 물고기로 변하여 예저(豫且)라는 어부에게 잡혔다는 고사에서 ‘귀인이 미행(微行)하다가 위험을 당한 것을 이르는 말. - 전한 때의 문인 유향(劉向)의 저서 설원(說苑)에 실려있음-

8)판삽(版鍤)/ 판(版)은 흙을 쌓는데 사용하던 판자로 지금으로 말하면 토목공사를 할 때 사용하는 거푸집을 말한다. 삽(鍤)은 흙을 팔 때 쓰던 가래로 중국 고대에 있어서 성을 쌓을 때 쓰던 기구의 총칭이다.

9)연단(煉丹)/ 도사가 수은과 유황으로 이루어진 진사(辰砂)라는 광물을 불에 단련시켜 만든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 영약.

10)관진(關津)/지금의 하북성 무읍현(武邑縣) 동남

11) 악의가 연왕에 보내는 편지는 명문으로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쓴 출사표는 악의의 편지를 참고한 것이다.

12)聖賢之君不以祿私親, 其功多者賞之, 其能當者處之.

13) 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

14)원문은 ‘이행어리(以幸漁利)’로 어부지리(漁父之利)란 말은 제나라와 싸워 피폐해진 연나라를 공격하여 개인적인 명성을 얻는 다는 말이다. 연혜왕이 악의가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조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와의 싸움에 지친 연나라를 공격해 올 것을 걱정하여 악으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악의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혀 연왕을 안심시킨 것이다.

15) 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不絜其名。

[평설]

‘ 사물의 발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物極必反).’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주변국가들을 대해 무모하게 적대적으로 만든 제민왕은 결국은 그 벌을 받았다. 기원전 284년 연나라가 진(秦), 조(趙), 한(韓), 위(魏) 4국에 공동으로 제나라를 정벌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4국이 호응하자 연나라장수 악의(樂毅)가 연합군 대장이 되었다. “ 사국에 유세하여 제나라를 멸한 악의” 편은 그 때에 관한 이야기다. 제서(濟西)의 싸움에서 연합군은 제군을 대파했다. 이에 제나라는 외적에 공격에 공전의 참패를 당했다.

제나라의 변경에 있던 성읍을 차지한 연나라를 제외한 4국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본국으로 철수했다. 4국은 연소왕이 제나라에 대해 품고 있었던 망국의 치욕을 갖고 있지 않았음으로 그들이 취한 이득에 만족하여 더 이상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연군을 이끌고 거칠 것 없이 제나라 깊숙이 쳐들어간 악의는 근 6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치열한 전투로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점령했다. 제나라는 단지 거(莒)와 즉묵(卽墨)의 두 성을 의지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무력으로만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악의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스스로 항복을 얻어내려는 작전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악의는 제나라 땅을 완전히 점령하고 그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키는 상호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악의의 구상과 작전은 기겁이라는 자에 의해 그 뜻이 왜곡되었다. 그는 연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던 악의를 모함하여 악의가 제나라를 멸한 다음 독립하여 스스로 제왕이 되려고 하는 야심가라고 했다. 그래서 기원전 279년 악의의 제나라 정벌군 대장 자리는 기겁이 차지하고 악의는 새로운 연왕에게 살해될 것을 두려워하여 조나라로 도망쳤다.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던 제나라 정벌전은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기겁이라는 자는 정치적인 감각과 군사적인 재능이 전혀 없는 자로써 지모를 갖춘 제장(齊將) 전단에게 그의 존재는 단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위인에 불과했다. 적은 강하고 아군은 약한 정세 하에서 전단은 대대적인 심리전을 펼쳤다. 우선 하늘이 내려준 군사(軍師) 즉 “ 신사(神師)”는 내부적으로는 제나라 군사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었고, 다시 제사 음식으로 유인하여 성내로 끌어들인 새들은 연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꺾었다. 기겁으로 하여금 제나라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치게 유도한 것은 연군을 이미 잔인하고 흉폭한 군대라는 악명을 얻게 하여 제나라 백성들의 복수심을 몇 배나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또한 전단은 사항계(詐降計)를 사용하여 연군의 경계심을 해이하게 만들고, 계속해서 화우진(火牛陣)으로 일거에 연군의 진형을 무너뜨렸다. 기겁은 전투 중에 죽고 연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거의 멸망 직전까지 이르게 된 제나라는 전단의 지휘 아래 연나라에게 빼앗긴 70여 개의 성을 도로 찾아 나라를 복국시켰다.

싸움에 있어서 장수들의 높고 낮은 재능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 만약 연나라가 그 장수를 교체하지 않았더라면 연과 제 두 나라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의문을 가져볼만 하다. 그와 같은 의문은 다시 어떻게 해서 악의를 대신해서 기겁이란 형편없는 자를 대장으로 삼았는가에 미친다.

제나라가 진나라와 천하를 놓고 다툴 수 있는 방법은 여타 제후국들과의 합종이 그 관건이었다. 그러나 제나라는 시종일관 그러한 관건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제나라가 송나라를 멸한 후에도 여전히 그와 같은 국제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교만하고 포악한 제민왕의 출현은 다시 제나라 신료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떠나게 하여 나라는 망하고 왕은 살해되는 재난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전단이 비록 제나라를 일으켜 세웠다고 했지만 제나라의 원기는 이미 크게 상하여, 단지 나라나마 요행히 보존할 수 있었지 진나라와 천하를 놓고 다툴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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