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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 殘喘累友(잔천누우) 長平大戰(장평대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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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8회 殘喘累友 長平大戰(잔천누우 장평대전)

목숨에 연연하여 친구에게 누를 끼치고 죽은 위제와

장평대전에서 40만의 조나라 항졸을 학살한 진장 백기.

1.苟延殘喘(구연잔천)

-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여 이웃 나라에 병화를 맞게 하는 위상(魏相) 위제(魏齊) -

한편 수가가 강화를 허락한다는 진왕의 명을 받고 대량을 향해 밤낮으로 달려와 안리왕(安釐王)을 접견하고 범수의 말을 전했다. 범수의 가족을 수습해서 진나라에 보내는 것은 조그만 일이지만, 상국의 목을 베어 진나라에 보내는 것은 큰일이었다. 더욱이 재상의 신분인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도 왕의 체면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위왕은 주저하며 결심하지 못했다. 상국 위제가 소식을 전해 듣고 위나라 상국의 인장을 버리고 밤을 도와 조나라로 도망쳐 평원군 조승에게 몸을 의탁했다. 위제가 외국으로 달아났음을 확인한 위왕은 곧 황금 백일과 오색 비단 천단(千端)1)을 실은 수레와 함께 호화롭게 장식한 거마에 범수의 가족을 태워 함양성으로 보내고, 별도로 사자를 보내 위제의 목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를 고했다.

「위제가 먼저 소문을 듣고 달아나 지금은 평원군의 부중에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 위제의 신병을 인도하라고 요청했으나, 조나라는 위나라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리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위제의 목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범수가 즉시 진왕에게 위제의 일을 상주하였다. 진왕이 듣고 말했다.

「조와 진 두 나라는 옛날에 우호를 위해 민지(澠池)에서 만나 결의형제를 맺고 다시 우리 진나라의 왕손 이인(異人)을 인질로 보내 두 나라의 우호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에는 우리 진나라가 군사들 내어 한나라의 연여를 포위할 때 조나라가 조사(趙奢)를 대장으로 삼아 한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다. 그 싸움에서 우리 진나라는 대패하고 수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과인이 지금까지 그 죄를 묻지 않았다. 지금 다시 조나라가 멋대로 우리 진나라의 원수를 받아들였으니, 승상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 과인이 조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 옛날 연여의 싸움에서 패한 치욕을 갚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위제의 목을 얻기 위함이다!」

소양왕이 즉시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왕전(王翦)을 대장으로 삼아 친히 종군하여 쳐들어가 조나라의 성 세 개를 점령하였다.

2. 愛子必爲 其計深遠(애자필위 기계심원)

- 자식사랑은 필히 깊고 멀리 내다봐야 하는 법이다.

그때 조나라는 혜문왕이 얼마 전에 죽고 태자 단(丹)이 그 뒤를 이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가 효성왕(孝成王)이다. 효성왕은 나이가 아직 어려 모후인 혜문태후(惠文太后)가 섭정했다. 진나라 군사들이 조나라 경계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태후는 마음속으로 매우 두려워했다. 그때 인상여는 병이 위독하여 노환을 이유로 상경의 자리에 물러나 있었고, 우경(虞卿)이 그 뒤를 이어 조나라 상국의 자리에 있었다. 혜문태후는 대장 염파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나가 진나라 군사들을 막으라고 하였으나 두 나라 군사들은 서로 대치만 하고 싸움에는 승패가 나지 않았다. 우경이 태후에게 말했다.

「지금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장안군(長安君)2)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 구원군을 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후가 우경의 청을 거절하자 조나라의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장안군을 제나라에 보내야 한다고 완강하게 간했다. 그러나 태후도 대신들에게 명확하게 자기의 뜻을 밝혔다.

「앞으로 또 다시 장안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야 된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 자의 면상에 침을 뱉어 주리라!」

이에 좌사(左師) 촉용(觸龍)의 접견 요청을 받은 태후는 노기발발하여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촉용이 들어와 서서히 잰걸음으로 걸어와 앉더니 스스로 사죄의 말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나이가 들어 발에 병이 나 잘 걸을 수 없어 오랫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제 몸을 살펴 미루어 보니, 태후님의 옥체도 또한 불편하지나 않으신지 걱정되어 뵙고자 한 것입니다.」

「이 늙은 몸은 가마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소!」

「하시는 식사는 줄지 않으셨습니까?」

「죽을 먹을 수 있을 뿐이오.」

「저는 근래 식욕이 좋지 않아 매일 하루에 3-4리를 걸어 이제는 식욕을 다소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이 늙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소!」

그러자 태후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조금 누그러져 보였다. 촉용이 다시 태후를 향해 말했다.

「노신의 아들 서기(舒棋)는 나이가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불초하지만 신이 이미 늙어 마음속으로 그를 매우 사랑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흑의(黑衣)3)의 결원을 보충하여 왕궁을 지키는 위병이나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런데 아들은 몇 살이나 되었소?」

「15살입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원컨대 제가 죽어 땅에 묻히게 되면 그 애의 장래가 걱정되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들 남자도 역시 어린 아들들을 사랑하오?」

「아마도 부인들보다도 더 사랑할 것입니다.」

태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소. 부인들이야말로 그의 어린 자식들을 각별히 사랑하는 법이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태후께서는 장안군보다 연후(燕后)4)를 더 사랑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경은 잘못 생각하고 있소. 나는 연후보다 장안군을 더 사랑하고 있소!」

「부모된 자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그들을 위해서 보다 깊고 멀리 생각해야 됩니다. 옛날 태후께서 연후를 연왕에게 시집보내실 때 그녀의 발뒤꿈치를 붙들며 눈물을 흘리시며 슬퍼하셨는데, 멀리 떠나가는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녀가 시집을 가버린 후에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제사를 지내며 선조들에게 기도를 드릴 때는 ‘절대로 연후가 돌아오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태후께서 생각을 깊고 멀리하셔서 당장에 보고 싶은 마음에 앞서 연후의 자손이 대를 이어 연나라의 왕이 되기를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소.」

「지금으로부터 3대 이전에 조나라 역대 왕의 자손으로써 열후에 봉해진 사람의 후손으로써 아직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소.」

「그렇다면 조나라 외에 다른 여러 나라의 제후들 후손들 중 그 지위에 아직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소.」

「이는 가까이 있는 화는 자신에게 미치고, 멀리 있는 화는 자손에게 미치기 때문입니다5). 어찌 군주의 자손으로 후에 봉해진 사람들이 모두 선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나라에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면서 그 지위는 높고, 나라를 위해 힘써 세운 공로도 없으면서 봉록은 후하여 단지 진기한 보물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태후께서 장안군의 지위를 올려 주시고, 비옥한 땅에 봉하며, 귀중한 많은 보물들을 하사하셨으나, 오늘 그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게 하지 않는다면 태후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는 장안군이 어찌 조나라에서 몸을 보전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신은 장안군을 위한 태후님의 생각이 너무 짧다고 여겨 그를 사랑하심이 연후보다도 더 못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경의 말씀을 잘 알아듣겠소. 장안군을 제나라에 꼭 보내야만 한다면 그리 하도록 하시오.」

그래서 조나라는 장안군을 위해 백승의 수레를 준비하여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니, 제나라는 비로소 구원군을 보내주었다. 조나라의 현인, 자의(子義)가 듣고 그 일에 대해 듣고 말했다.

「군주의 아들은 군주와 골육을 나눈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공로도 없이 누리는 높은 지위나, 아무런 공헌함도 없이 받는 녹봉만으로는 자신의 권력이나 부를 지킬 수 없으니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원래 혜문태후는 곧 제민왕의 딸이었다. 그 해에 제나라에서도 제양왕이 죽고 태자 건(建)이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역시 어려 군왕후(君王后) 태사씨(太史氏)가 섭정하고 있었다. 두 나라의 태후는 서로 시누이와 올케 사이의 친한 친척 사이에다 다시 인질로 보내는 장안군은 혜문태후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군왕후는 조나라의 구원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군왕후는 즉시 명을 내려 전단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 20만을 일으켜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3. 質平原索魏齊(질평원색위제)

- 평원군을 인질로 잡아 위제의 목을 구하다. -

진나라 대장 왕전(王翦)이 소양왕에게 말했다.

「조나라에는 아직 훌륭한 장수들이 많이 있는데다가, 다시 천하의 인심을 얻고 있는 평원군이 버티고 있으니 쉽게 공략할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나라의 구원병이 조만간에 당도하면 우리는 버티기가 힘들 것입니다. 차라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위제의 머리를 얻지 못하면 과인이 무슨 면목으로 승상을 대하겠는가?」

소양왕이 즉시 사람을 평원군에게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지 위제의 머리를 얻기 위함이다. 만약에 위제의 목만 얻을 수 있다면 당장에 내가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리라!」

평원군이 답하며 진왕에게 전하게 했다.

「위제는 저희 집에 있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들으신 것입니다.」

진왕의 사자가 세 번이나 왕복하였으나 평원군은 결코 위제가 자기 집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진소양왕은 앙앙불락하며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군사를 앞으로 진격시키려고 하니 제나라와 조나라가 군사를 합하게 되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게 되고,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려고 하니 위제의 목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진나라의 체면만 깎이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계책을 내어 즉시 글로 써서 조왕에게 보냈다. 조나라에 보낸 국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과인과 조왕 전하는 결의를 맺은 형제라! 과인은 길거리에 떠도는 풍문만을 믿고 위제가 평원군의 집에 있다고 하여, 군사를 내어 그를 찾으러 왔소. 위제의 일만 아니라면 어찌 내가 먼 길을 달려와 조나라의 국경을 범했겠소? 내가 이미 취한 세 개의 성을 조나라에 돌려주려고 하니 과인은 원컨대, 전과 같이 우호를 다시 맺어 왕래를 서로 스스럼없이 하고자 하오!」

조왕이 진왕의 국서를 받아 보고 답서를 써서 보내어 군사를 물리치고 세 개의 성을 돌려주는 처사에 감사의 말을 표했다. 20만에 달하는 구원군을 이끌고 조나라로 달려오던 전단은 진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역시 제나라로 돌아갔다. 진왕이 회군하여 그 행렬이 함곡관에 당도하자 다시 편지 한 통을 써서 평원군 조승에게 보냈다. 조승이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과인은 평원군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원컨대, 과인은 공자와 포의지교를 맺고 싶으니 한 번 과인의 나라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공자와 10일을 기한으로 맘껏 마시면서 사귀고 싶어서입니다.」

평원군은 진왕의 편지를 조왕에게 가져가 보였다. 조왕는 여러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상의하게 하였다. 상국 우경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승냥이 같은 나라입니다. 옛날 맹상군이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자칫했으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진나라가 우리가 위제를 숨겨놓고 있지나 않나 의심하고 있는데 평원군께서 가신다면 결코 돌아오실 수 없습니다. 결코 진나라에 들어가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옛날 인상여 대감은 화씨벽을 가슴에 품고 단신으로 진나라에 들어갔으나 화씨벽을 가지고 무사히 귀환하셨습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속이려하지 않는데 만약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들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조왕이 평원군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과인 역시 이번에 진왕이 평원군을 초청한 것은 좋은 뜻에서인 것 같습니다. 진나라의 호의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왕이 즉시 평원군 조승에게 명하여 진나라의 사자와 같이 함양성으로 출발하도록 했다.

함곡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양왕이 평원군을 보자 평생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며, 수레를 같이 타고 함양성으로 들어가 매일 잔치를 벌려 접대했다. 평원군이 함양성에 도착한 이래 며칠간을 계속 극진하게 접대를 받던 중 어느 날 하루는 진왕이 연회 도중에 술잔을 들어 조승에게 권하여 말했다.

「과인은 공자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나의 청을 허락해 주시겠다면 이 잔을 받아 마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 이 사람에게 명하시니 어찌 감히 따르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진왕으로부터 술잔을 건네받은 평원군은 한 모금에 모두 마셨다. 소양왕이 다시 조승을 향해 말했다.

「옛날 주문왕이 여상을 얻어 상보(尙父)로 삼고, 다시 제환공은 관이오를 얻어 중보(仲父)로 삼았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승상 범군(范君)은 과인에게 있어서 상보나 중보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범군의 원수 위제가 공자께 몸을 의탁하고 있다고 하니, 공자께서 사람을 보내 위제의 머리를 잘라오도록 해서 범군의 한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공자의 은혜로 알겠습니다.」

소양왕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조승이 대답했다.

「신은 듣기에 ‘존귀한 사람이 벗을 사귀는 것은 비천해질 때를 대비해서이며, 부자가 친구를 사귀는 것은 가난하게 되는 때를 대비해서 다’라고 했습니다. 무릇 위제는 소신의 벗입니다. 즉 실제로 위제가 소신의 집에 있다 한들 곤궁에 빠져 찾아온 친구를 어찌 차마 제가 내 보낼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찾아오지도 않은 친구를 어찌 내어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진왕이 조승의 거절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정색을 하며 말했다.

「공자가 기어코 위제를 내 놓지 않겠다면, 과인도 역시 공자를 관 밖으로 돌려보내지 않겠소!」

「저를 돌려보내고 안 보내고는 모두 대왕의 뜻에 달린 일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서로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교우관계를 맺자고 하시면서 신을 불러다 놓고 오히려 위협을 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그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게 될 것입니다.」

평원군이 결코 위제와의 우정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한 소양왕은 그를 데리고 함양성으로 돌아와 관사에 억류시켜 놓고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어 편지를 전하게 했다.

「왕의 숙부인 평원군이 진나라에 있고, 범군의 원수 위제는 평원군의 집에 있습니다. 위제의 머리를 베어 아침에 보내주면 평원군은 살아서 저녁 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인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과인은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를 공격하여 친히 위제를 토벌함과 동시에 평원군은 두 번 다시 함곡관 밖을 구경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대왕의 처분만 바랍니다.」

진왕의 편지를 받은 조나라의 효성왕이 크게 화를 내며 여러 신하들을 불러 말했다.

「과인이 어찌하여 다른 나라로부터 도망쳐온 신하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원로대신이며 나의 숙부인 평원군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조왕이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평원군의 집을 포위하고 위제를 잡아오게 하였다. 평원군의 집에서 살고 있던 많은 빈객들은 위제와 평소에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밤이 깊기를 기다려 위제를 도망치게 도와주었다. 위제는 평원군의 집에서 도망쳐 상국 우경의 집으로 갔다. 우경이 위제에게 말했다.

「조왕은 진나라를 두려워하기를 마치 호랑이나 승냥이처럼 합니다. 어떻게 되었든 지금은 말로 다툴 때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옛날에 계시던 위나라로 돌아가십시오.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현사들을 받아들여 천하의 망명자들이 모두 그의 휘하에 귀의하고 있고 또한 평소에 평원군과는 친분이 두텁게 지내고 있어 틀림없이 대감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 대감은 죄인의 몸이라 혼자는 가기 힘드니 내가 마땅히 대감과 동행하리라!」

우경은 즉시 조나라 상국의 인장을 허리에서 풀어 사직서와 함께 좌우의 측근에게 주어 조왕에게 바치라 하고 위제와 같이 비천한 평민의 복장으로 조나라에서 도망쳐 위나라로 갔다.

두 사람이 위나라의 대량성에 당도하자 우경은 위제를 성밖 교외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말했다.

「신릉군은 의기가 높은 장부이니 내가 가서 부탁한다면 그는 필시 지체하지 않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대감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경이 말을 마치고 걸어서 대량성 안으로 들어가 신릉군의 문 앞에 당도하여 자기 이름이 적힌 명패를 들여보냈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보는 집사가 명패를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가 신릉군에게 고했다. 신릉군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머리를 풀고 목욕을 하려고 하던 참에 우경의 명패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조나라의 상국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어찌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단말인가?」

신릉군은 집사에게 자기는 지금 목욕 중이니 잠시 집안으로 들어와 앉아 기다리게 하라고 하면서, 본인은 우경이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해 보려고 했다. 방안에서 기다리던 우경은 마음이 급해 할 수 없이 곁에서 시중을 들던 집사에게 위제가 진나라에게 죄를 얻어 도망친 시말을 말하고 이어서 자기는 조나라의 상국 자리를 버리고 위제와 함께 신릉군을 찾아온 뜻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신릉군에게 고하게 했다. 집사가 다시 신릉군을 찾아가 우경의 한 말은 전했다. 신릉군은 진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위제를 받아 주고 싶지 않았으나, 우경이 천리 길을 걸어 자기를 찾아 신병을 부탁하는데 곧바로 거절하기도 딱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신릉군이 선뜻 위제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며 얼굴도 비치지 않는 태도에 대노한 우경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신릉군이 빈객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의견을 물었다.

「우경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때 곁에 앉아 있던 후행이 신릉군의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하여 공자께서는 그리도 우매하십니까? 사람이란 원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물됨을 알아보기도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경이란 사람은 짚신에 삿갓을 쓰고 먼 길을 걸어와 조왕을 한 번 접견하자 조왕은 그에게 백벽 한 쌍, 황금 백일을 하사하고 두 번 접견하자 상경에 임명했으며 세 번 보자 조나라 상국의 인장을 내리고 만 호의 고을에 봉했습니다. 그 일로 해서 천하 사람들은 우경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를 알기 위해 서로 다투었습니다. 위제가 곤공한 처지에 처하여 몸을 의탁해 오자 우경은 그 많은 녹봉과 높은 작위를 아까워하지 않고 조나라 상국의 인장을 허리에서 풀어놓으며 만 호의 봉읍도 버렸습니다. 위급한 처지에 놓여 곤궁하게 된 선비들이 지금 공자를 찾고 있는데 공자께서는 다만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라는 말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사람이란 원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물됨을 알아보기도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신릉군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마부를 불러 수레를 급하게 몰아 우경의 뒤를 쫓아 교외로 달려가게 하였다.

한편 위제가 교외에서 우경이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우경이 말하기를 신릉군은 의기가 높은 대장부라, 그가 가서 나의 위급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오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그가 오지 않으니 일이 틀어진 것 같구나!」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경이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체 걸어오면서 기다리던 위제에게 말했다.

「신릉군은 대장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나를 만나주지도 않고 물리쳤습니다. 내가 마땅히 산길을 이용하여 초나라로 가서 대감의 신병을 부탁해 보겠소.」

「내가 한 때의 잘못으로 인하여 범숙에게 죄를 얻어 평원군에게 누를 끼쳤고, 다시 대감에게까지 미치게 했습니다. 이에 또다시 대감으로 하여금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수천 리의 길을 걸어가 알지도 못하는 초나라에 가서 나의 보잘것없는 목숨을 구걸하게 하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위제가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들더니 자기의 목을 베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경이 급히 손을 뻗어 칼을 빼앗으려고 했으나 이미 위제의 목은 끊어진 다음이었다. 우경이 위제의 시체 옆에서 슬퍼하고 있는데, 신릉군이 탄 수레가 기마병과 함께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경이 멀리서 보고 황급이 그 자리를 빠져 나와 두 번 다시는 신릉군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신릉군은 위제의 시신을 발견하자 수레에서 내려 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곡을 하며 말했다.

「이것은 이 무기의 잘못이라!」

한편 조왕은 위제가 달아나 상국 우경에게 몸을 의탁하자 두 사람은 같이 달아나, 그들이 간 곳은 위나라가 아니면 한나라일 것이라고 알고 기병들을 사방으로 보내어 두 사람을 잡아오도록 시켰다. 이윽고 두 사람이 위나라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왕은 그들의 신병을 요청하기 위해 위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위나라의 교외에 당도한 조나라의 사자는 위제가 목을 베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자가 즉시 안리왕을 찾아가 위제의 머리를 베어 조나라에 넘기면 그 것으로 평원군을 찾아 올 수 있다고 하면서 위나라의 도움을 청했다. 신릉군은 조금 전에 위제의 시신을 거두어 염을 하라고 명해 논 상태였기 때문에 차마 조나라 사자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조나라 사자가 신릉군에게 말했다.

「평원군과 공자님은 한 몸과 같은 친구 사이입니다. 평원군이 위제와 사이가 좋았음은 공자님도 같이 위제를 사랑했다는 뜻도 됩니다. 위제가 만일 살아있다면 어찌 제가 감히 공자님에게 위제의 목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애석하게도 그가 이미 죽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무용한 해골에 연연하다가 평원군이 오랫동안 진나라에 잡혀있게 된다면 공자님의 마음은 편하겠습니까?」

신릉군은 할 수 없이 위제의 시신에서 머리를 잘라내어 비단으로 장식한 상자에 넣어 조나라 사자에게 주고 그의 목 없는 시신은 대량성 교외에다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위제의 일을 탄식했다.

수가의 공연한 말만 듣고 의기 높은 선비를 욕보였으니

목숨으로 범군(范君)에게 사죄를 해도 억울하지 않음이라!

구차한 목숨을 구해 남에게 누를 끼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차라리 함양성에 그의 목을 빨리 보내지 했음이 한스러울 뿐이다.

無端辱士聽須賈(무단욕사청수가)

只合捐生謝范睢(지합손생사범수)

殘喘累人還自累(잔천누인환자누)

咸陽函首恨敎遲(함양함수한교지)

조나라 상국의 인끈을 버린 우경이 비정한 세상인심에 비분강개하여 다시는 다른 나라로 가서 벼슬을 구하지 않고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가 만년을 스스로 즐기며 세상사를 풍자하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우경춘추(虞卿春秋)>라 명했다. 염옹이 다시 우경의 일을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가난에 쪼들려 억지로 쓴 책이 아니니

천추에 빛나는 고상한 선비는 우경이로다!

참으로 애석하구나! 저 훌륭한 문장가가

재상의 인장을 필부 위제를 위해 가볍게 버렸음이여!

不是窮愁肯著書(부시궁수긍저서)

千秋高尙記虞兮(천추고상기우혜)

可憐有用文章手(가련유용문장수)

相印輕抛徇魏齊(상인경포순위제)

조왕이 위제의 수급을 얻자 사람을 시켜 밤낮으로 달리게 하여 함양성으로 달려가서 진왕에게 바치게 했다. 소양왕이 위제의 수급을 범수에게 하사했다. 범수는 좌우에게 명하여 위제의 수급에서 살을 발라내어 그 위에 칠을 칠하여 요강으로 만들어 오라고 하면서 말했다.

「너 위제는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빈객들로 하여금 나에게 오줌을 싸게 만들었다. 오늘 내가 너에게 지시하니 너는 구천에서 매일 내 오줌을 받아먹고 지내거라!」

진소양왕은 평원군을 위해 성대한 의식을 행하여 예를 표한 후에 조나라에 귀환시켰다. 효성왕은 돌아온 평원군을 상국에 임명하여 우경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였다. 범수가 다시 진왕에게 진언하였다.

「신은 비천하고 곤궁한 사람이었으나 다행히 대왕께서 알아주시는 은혜를 입어 그 직위가 경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왕께서는 신을 위해 철천지원수에게 복수를 해 주시어 신의 한을 풀어 주셨으니 이것은 세상의 비할 바 없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음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에게 정안평(鄭安平)이란 친구가 없었다면 위나라에서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왕계(王稽)가 없었더라면 진나라에 와서 대왕을 뵐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신의 작위와 봉록을 깎으시어 그것으로 그 두 사람에게 주어 신으로 하여금 그들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도록 해 주신다면 신은 이 자리에서 당장 죽는다 할지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승상의 말이 아니었다면 과인이 잊을 뻔 했소!」

소양왕이 즉시 왕계를 하동(河東)8)의 태수로 삼고 정안평은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했다. 이어서 범수의 원교근공책을 쫓아 먼저 한과 조 두 나라를 공격하고, 제와 초 두 나라에는 우호를 청하는 사자를 보냈다. 범수가 소양왕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에 제나라를 섭정하고 있는 군왕후는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제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소양왕이 범수의 말을 쫓아 즉시 사자에게 명하여 옥련환(玉連環)을 군왕후에게 바치게 하면서 말했다.

「제나라에서 능히 이 옥련환의 매듭을 푸는 자가 있다면 과인이 제나라를 가볍게 보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말을 전하라!」

진나라의 사자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군왕후에게 옥련환을 바치며 진왕의 말을 전하자 군왕후는 두 말 없이 좌우에게 명하여 쇠망치를 가져오게 하여 손에 쥐더니 망설이지 않고 내리쳐 옥련환의 줄을 끊어 버렸다. 군왕후가 진나라의 사자에게 말했다.

「진왕에게 나의 말을 전하라! 노부가 옥련환의 줄을 쇠망치로 내리쳐 단번에 풀었다고.」

진나라의 사자가 돌아와 복명하자 범수가 탄복하며 말했다.

「군왕후는 과연 여중호걸이라! 경솔히 대하면 안 되겠구나!」

이어서 진나라는 제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각기 서로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제나라는 이후로 오랫동안 진나라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4. 春信之明 太子出關(춘신지명 태자출관)

- 춘신군 황헐의 밝은 지혜로 진나라 관문을 빠져나온 초나라의 태자

한편 초나라 태자 웅완(熊完)이 인질의 신분으로 진나라에 들어간 지 16년이 되었음에도 진나라는 그를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그때 마침 진나라의 사자가 우호를 구하기 위해 초나라를 방문하자 초나라가 주영(朱英)을 사자로 삼아 진나라 사자와 함께 함양으로 보내 답례 방문을 하게 하였다. 주영은 초왕의 병세가 위독하여 혹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고 진왕에게 고했다. 주영의 말을 전해들은 태부 황헐(黃歇)이 태자 웅완에게 말했다.

「부왕께서 병이 위독하심에도, 진나라에 계속 머물러 계시다가, 태자께서 부왕의 침상 곁에 머물지 않는 상태에서 만일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여러 공자들 중 필시 그 자리에 대신 오르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는 더 이상 태자의 나라가 이닐 것입니다. 신이 태자를 위해 승상 응후를 만나 태자의 방면을 청해보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황헐이 즉시 승상부를 찾아가 범수를 만나 말했다.

「승상께서 초왕의 병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십니까?」

「초나라를 다녀온 사자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 초국의 태자가 이곳 진나라에 머무르게 된지가 참으로 오래 되어 태자는 진나라의 대신들이나 장수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만일 초왕이 죽고 태자가 그 뒤를 잇는다면 그는 필시 진나라를 진심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승상께서 성의를 보이시어 태자를 초나라로 돌려 보내준다면 태자는 승상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할 것입니다. 만일 태자를 귀국시키지 않고 계속 진나라에 붙들어 놓기라도 해서 초나라가 여러 공자들 중 한 사람을 추대하여 초왕으로 세운다면, 태자는 계속 진나라에 머물며 결국은 함양 성중에 사는 일개 보잘 것 없는 필부에 불과한 처지로 전락할 것입니다. 더욱이 초나라 사람들은 태자를 귀환시키지 않은 진나라의 처사를 원망할 것이며 후일 절대로 인질을 보내지 않고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일개 포의지사를 잡아두고 만승의 지위에 있는 사람의 우호를 끊는 일은, 소신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결코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범수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부의 말이 옳습니다.」

범수가 즉시 황헐의 말을 진왕에게 고했다. 진왕이 듣고 말했다.

「태자의 태부 황헐을 먼저 초나라에 보내 초왕의 병세를 살펴보게 하고, 초왕의 병세가 과연 위독하다고 판명되면 그때 태자를 귀국시키도록 하시오.」

태자와 함께 초나라에 귀국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헐은 비밀리에 태자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진왕이 태자를 억류시켜 보내려고 하지 않는 속셈은 옛날 회왕의 예를 따라, 우리 초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이용하여 태자를 돌려보내는 대가로 우리 초나라에게 땅을 요구하려는 생각에서 입니다. 초나라가 혹시라도 사자를 보내 태자 전하를 모시러 온다면 그것은 즉 진나라에 계책에 떨어지게 되며, 만약에 초나라가 태자를 모시러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즉 태자는 옛날 회왕처럼 진나라의 포로가 되어 이곳에서 생애를 마치게 됨을 의미합니다.」

태자가 황헐에게 무릎을 꿇고 청했다.

「태부께서는 이 사람을 위해 어떤 계책을 갖고 계십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태자께서는 미복으로 갈아입고 진나라에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초나라의 사자가 답례 방문 차 이곳 함양성에 머물고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신은 당분간 태자로 가장하여 이곳에 머물며 목숨을 걸고 그 뒤를 감당하겠습니다.」

태자가 눈물을 흘리며 황헐에게 말했다.

「일이 만일 성사되고 태부께서도 다행히 귀국할 수 있다면 초나라는 마땅히 태부와 함께 다스리리라!」

황헐이 은밀히 주영을 찾아가 자기의 계책을 말하자 주영이 따르겠다고 했다. 태자 웅완은 즉시 미복으로 갈아입고 어자로 변장하여 주영을 위해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았다. 이윽고 태자의 일행은 함곡관을 빠져나갔으나, 진나라에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소양왕은 여사를 혼자 지키던 황헐을 불러 초나라에 가서 초왕의 병세를 알아보라고 명했다. 황헐이 말했다.

「태자가 마침 병이 들어 아무도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이 병이 차도가 있게 되면, 신은 그때 즉시 초나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 태자의 일행이 함곡관을 빠져나간 지 오래 되었다고 생각한 황헐은 곧바로 소양왕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했다.

「신 황헐은 초왕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죽게 되면 태자가 그 뒤를 잇지 못하게 되어 대왕을 모시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하여, 제가 임의로 태자를 본국으로 보냈습니다. 지금쯤은 함곡관을 빠져 나가 멀리 갔을 것입니다. 이 황헐은 대왕을 속인 죄가 있아오니, 청컨대 부질로 저를 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양왕이 대노하며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듯 과인을 기만한단 말인가?」

소양왕은 좌우의 시위 무사들에게 호통을 쳐서 황헐을 포박하여 감옥에 가두고 목을 베려고 하였다. 승상 범수가 보고 진왕에게 간언했다.

「비록 황헐을 죽인다 한들 돌아간 태자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오히려 초나라와의 우호관계가 끊기게 되오니, 차라리 황헐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돌려보내십시오. 초왕이 죽는다면 태자가 필시 그 뒤를 잇게 되고 황헐은 그의 상국에 임명되어, 초나라의 군주와 상국이 모두 진나라로부터 입은 은혜에 감격하여, 진나라를 진심으로 받들 것입니다.」

소양왕은 범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그의 포박을 풀게 한 후에 후한 상을 하사하고 초나라로 돌려보냈다. 사관이 황헐의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마부로 변장하여 고삐를 잡고 비호처럼 빠져나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함양에서 평민으로 인생을 마칠뻔 했다.

춘신군(春申君)의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옛날 초회왕처럼 눈물을 흘리며 일생을 보냈으리라!

更衣執轡去如飛(갱의집자거여비)

險作咸陽一布衣(험작함양일포의)

不是春申有先見(부시춘신유선견)

懷王餘涕又重揮(회왕여체우중휘)

황헐이 초나라에 돌아온 지 석 달만에 경양왕은 숨을 거두고 태자 웅완이 뒤를 이었다. 이가 고열왕(考烈王)이다. 태부였던 황헐을 상국으로 삼고 회수 이북의 땅 열두 개의 현에 봉하고 춘신군(春申君)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황헐이 사양하며 말했다.

「회수 이북의 땅은 제나라와의 접경 지역이오니 그곳은 군을 설치하여 왕령으로 만들어 지키야합니다. 신은 원컨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강동(江東)에 봉해주시기 바랍니다.」

5. 三千珠履 自慚形穢(삼천주리 자참형예)

- 진주가 박힌 신발을 신은 춘신군의 3천 식객들이 평원군의 식객들을 무참하게 만들다. -

고열왕이 즉시 황헐을 옛날 오나라의 고토에 봉하고 합려가 머물었던 성을 수축하여 치소로 삼게 했다. 황헐은 다시 성안의 하천을 준설하고 물길로 사통팔달시킨 후에 다시 수로로 태호에 통하게 했다. 오래 전에 파괴되어 폐허가 된 파초문(破楚門)을 다시 세워 창문(昌門)으로 고쳐 불렀다.

그때 제나라의 맹상군은 비록 죽었지만 조나라에는 평원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수많은 식객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선비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황헐도 세 군자들의 본을 받아 역시 빈객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여 곧이어 수천 명에 이르게 되었다. 평원군 조승은 춘신군과 우호를 맺기 위해 가끔 사자를 보냈다. 춘신군은 평원군의 사자를 상객들이 머무는 관사에 머물게 하고 대접을 극진히 했다. 조나라의 사자가 초나라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 머리에 대모(玳瑁)9)의 등껍질로 만든 풍잠(風簪)10)을 꽂고 허리에는 옥구슬로 장식한 칼집에 칼을 차고 출입하면서 중원의 문물을 뽐내려고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조나라의 사자는 춘신군의 집에 식객이 3천 명이 넘는 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중 상객들은 야명주(野明珠)가 박힌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춘신군은 빈객들의 계책을 받아들여 북쪽으로는 추(鄒)11)땅과 노나라 일부의 땅을 병합하고 다시 현사 순경(荀卿)12)을 란능현(蘭陵縣) 태수로 삼았다. 이어서 초나라의 법률을 개정하고 군사들을 훈련시키니 초나라는 옛날의 국력을 다소나마 찾을 수 있었다.

6. 利令智昏(이령지혼)

-이익에 눈이 멀어 어지러워진 지혜 -

한편 진나라의 소양왕은 이미 제와 초 두 나라와 우호를 맺고 이어서 군사를 일으켜 왕흘(王齕)13)을 대장으로 삼아 한나라를 정벌하였다. 진나라는 수로를 이용하여 군량미와 보급품을 싣고 위수(渭水)의 순류를 타고 나온 후에 동쪽의 하수로 들어가 병참선을 확보해가며 한나라의 야왕성(野王城)14)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한나라의 상당군(上党郡)은 야왕성이 진나라 군사들에게 함락되자 본국과의 연락이 두절되게 되었다. 상당군의 태수 풍정(馮亭)은 상당의 관리들과 백성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진나라가 야왕성을 점령하였으니 우리 상당군은 더 이상 본국의 지원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땅을 들어 진나라에게 항복하기보다는 조나라에 해야 되겠다. 진나라는 자기들이 싸워 얻게 될 땅을 조나라가 차지하게 되면 참지 못하고 군사를 움직여 조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조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면 한나라와 필시 힘을 합치게 될 것이다. 한과 조 두 나라가 힘을 합해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한번 겨루어볼만할 것이다.」

풍정은 즉시 편지를 써서 상당군의 관할 하에 있는 땅을 표기한 지도와 함께 조나라의 효성왕에게 보냈다. 이때가 조효성왕 4년, 주난왕 53년인 기원전 260년의 일이었다.

그 전에 효성왕이 어느 날 침상에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좌우의 색깔이 다른 옷을 입고 서 있다가 하늘에서 용이 한 마리 내려오자 그 등을 타고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았으나, 미처 하늘에 닿기 전에 용과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땅으로 떨어진 효성왕의 양쪽에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오른 쪽에는 금으로 이루어진 금산(金山)이었고 왼쪽에는 옥으로 이루어진 옥산(玉山)이었다. 두 산에서 나는 휘황찬란한 빛으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효성왕이 대부 조우(趙禹)를 불러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하며 해몽을 해보라고 했다. 조우가 대답했다.

「좌우 양쪽의 색깔이 틀린 색의 옷을 입었다 함은 다른 것을 합한다는 말입니다. 용을 타고 하늘을 올랐다는 말은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말이며, 땅으로 추락했다는 것은 땅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황금과 옥으로 된 산을 보셨다는 것은 재화가 부고에 가득 차게 됨을 의미하오니 대왕께서는 조만 간에 필시 땅을 넓히시고 재화를 얻으실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꾸신 꿈은 대단히 상서로운 길몽입니다.」

조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다시 서사(筮史)15) 감(敢)을 불러 서죽(筮竹)으로 점을 쳐보개 했다. 서사 감이 점괘를 보고 말했다.

「좌우 양쪽의 색깔이 틀린 옷을 입었다 함은 쇠잔한 것을 말하며, 용을 타고 하늘로 올랐으나 다 오르지 못하고 추락하였으니 일이 다망한 가운데 변괴가 일어나니 허명만 있고 실속이 없을 괘입니다. 산이 황금과 옥으로 되어 눈이 부셨으니 이것은 구경은 할 수 있되 아무 짝에 쓸모가 없음입니다. 대왕의 꿈은 참으로 불길하오니 몸가짐을 바로 하여 근신하셔야 할 점괘입니다.」

효성왕은 조우의 해몽에 마음이 혹하여 서사 감의 말을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한나라의 상당 태수 풍정이 보낸 사자가 조나라에 당도했다. 조왕은 풍정의 사자가 가져온 편지를 받아 읽었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급공하여 상당의 모든 땅은 진나라의 차지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관리와 백성들은 진나라에 속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여 신은 감히 그들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관하의 17개의 성을 들어 대왕께 바칩니다. 모쪼록 대왕께서는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조우가 우리 조나라는 영토와 재화를 새로 얻게 되는 경사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로구나!」

평양군(平陽君) 조표(趙豹)가 효성왕에게 간했다.

「신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를 밝히는 것은 곧 재앙의 원인이 된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상당의 땅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당의 관리와 백성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우리에게 투항하는 것인데 어찌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합니까?」

「진나라가 한나라를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이 그 땅을 잠식하면서, 이제는 야왕성을 점령하여 본국과 상당군의 여러 성과 통하는 길을 끊어 서로 왕래를 불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진나라는 스스로 상당의 땅은 자기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물건으로 여기며, 앉아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당의 땅이 조나라로 굴러가 버린다면 진나라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진나라가 힘들여 간 밭의 수확을 조나라가 거두어 가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신은 우리 조나라가 상당의 땅을 아무런 연고도 없이 차지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풍정이 진나라 대신에 조나라에 투항하려는 행동의 저의에는 장차 일어날 재앙을 조나라에 전가하여 한나라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게 하려는 음모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란데 대왕은 어찌하여 그런 사실을 헤아리지 못하십니까?」

조왕이 조표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평원군 조승을 불러 그 의견에 따라 결심을 하려고 했다. 조승이 효성왕을 보고 말했다.

「조나라는 그 동안 백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했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단 한 개의 성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단 한 명의 군사를 동원함이 없이, 또한 단 한 푼의 재물도 소비함이 없이 17개의 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커다란 이득이오니,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숙부의 말씀은 참으로 과인의 뜻과 같습니다.」

7. 長平大戰(장평대전)

- 한나라의 상당군을 놓고 장평에서 크게 싸우는 진과 조 두 나라 -

효성왕은 즉시 평원군으로 하여금 군사 5만을 이끌고 가서 상당의 땅을 접수하라고 했다. 풍정은 3만 호의 고을에 봉하고 화릉군(華陵君)이라는 봉호를 내린 후에 예전과 같이 상당의 태수로 삼았으며 그의 수하들인 현령 17 명은 모두 삼천 호를 식읍으로 주어 후에 봉함과 동시에 그들 자손들이 대대로 그 작위를 물려받게 했다. 그러나 정작 풍정은 문을 굳게 잠그고 집안에서 슬피 울기만 할뿐, 자기를 찾아온 평원군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평원군이 물러가지 않고 간청하자 풍정이 수하를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나는 의롭지 못한 짓을 세 가지나 행한 사람이기 때문에 군을 뵐 면목이 없는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내가 주군을 위해 땅을 지키지도 못했으면서도 목숨을 스스로 끊지 못했으니 그것이 하나이고, 주군의 명에 의하지 않고 내 임의대로 땅을 들어 조나라에 바쳤으니 그 둘이며, 주군의 땅을 팔아 부귀함을 얻었으니 그 셋입니다.」

평원군이 마음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충신이로다!」

평원군이 풍정의 집 앞에서 3일이 되도록 가지 않고 기다렸다. 풍정이 그 뜻에 감동하여 결국은 문 밖으로 나와 평원군을 대면했으나 계속 흐느껴 울기만 했다. 풍정은 상당 땅의 17개 성은 바치겠으나, 태수만은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말했다. 평원군이 재삼 위로하며 말했다.

「그대의 마음은, 이미 이 사람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이 상당 땅을 지키는 태수의 자리를 마다한다면 그 관리와 백성들을 어찌 위무할 수 있겠소?」

풍정은 마지못하여 예전처럼 상당의 태수 직을 받아들였으나, 봉지만은 결코 받지 않았다. 평원군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풍정이 당부의 말을 했다.

「상당의 땅을 조나라에 바친 이유는 상당의 힘만으로는 진나라에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공자께서는 조왕께 말씀드려 명장과 대군을 보내주시어 진나라의 군사를 물리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원군이 조나라에 돌아와 효성왕에게 결과를 보고하였다. 조왕은 술과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하여 잔치를 열어 상당군의 17개 성을 얻었음을 축하했다. 이어서 군사를 일으켜 상당을 지키기 위해 여러 신하들에게 계책을 물었으나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을 보지 못했다.

한편 진나라의 대장 왕흘은 군사를 야왕성에서 나와 북진하여 상당성을 포위했다. 풍정은 두 달이나 굳게 버텼으나 조나라의 구원병이 당도하지 않자, 그 관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달아나 조나라로 향했다. 한편 조왕은 염파를 대장으로 삼아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상당을 구원하도록 했다. 염파가 거느리던 군사들의 행렬이 장평관(長平關)에 이르렀을 때 조나라를 향해 달려오던 풍정의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염파는 풍정을 통해 상당성은 이미 함락되고 진나라의 군사들은 이미 하루면 만날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염파는 즉시 군령을 내려 금문산(金門山) 밑에 영채를 세우고 보루를 높게 쌓도록 했다. 조나라의 영채는 동서로 수십 개가 늘어서 있어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 모습과 같았다. 염파는 다시 일만의 군사를 떼어 풍정에게 주고 금문산 서쪽의 광랑성(光狼城)17)을 지키게 하였다. 다시 2만의 군사를 도위(都尉) 개부(盖負)와 개동(盖同) 형제에게 주어 장평관의 동서 양쪽에 세워진 성채를 지키게 하고, 비장 조가(趙茄)에게는 군사 5천을 이끌고 앞으로 나가 진나라 군사들의 정세를 정탐해 오라는 명을 내렸다.

조가가 척후부대 5천 명을 이끌고 장평관을 나와 약 20리쯤 앞으로 나갔을 때, 마침 조군의 정세를 살피기 위해 출동한 사마경(司馬梗)이 이끄는 진나라의 척후부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조가는 사마경이 거느린 군사의 수효가 많지 않음을 보고 곧바로 앞으로 돌격하여 진군을 향해 공격했다. 두 장수가 교전하고 있는 사이에 진나라의 다른 척후부대를 거느린 장당(張唐)이 당도하여 조군의 앞뒤에서 협공하기 시작했다. 조가는 뜻밖에 진나라의 새로운 부대의 협공을 받게 되자 마음이 다급해진 결과 손놀림이 둔해져서 결국은 사마경이 휘두른 한 칼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장수를 잃은 조나라의 군사들은 그 대부분은 진나라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염파는 척후를 위해 보낸 선봉대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고 각 영루에 명령을 전하며 온 힘을 다하여 자기의 진지를 지키기만 할뿐 절대 진군의 도전에 응하지 말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군사들을 동원하여 수십 장 깊이로 땅을 파게 하고 그곳에 물길을 내어 가득 차게 만들었다. 조군의 진영에는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이윽고 왕흘이 이끄는 진나라의 대군도 역시 장평관 앞에 당도하여 염파의 금문산 영채와는 10리를 사이에 두고 진채를 세우게 하였다. 왕흘은 먼저 군사를 나누어 일대로 하여금 장평관 좌우에 있던 두 성채를 공격하도록 했다. 성채를 각각 지키던 개부(盖負)와 개동(盖同)이 성문을 열고 진군과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싸움에 패하고 난군 중에 죽었다. 왕흘은 승세를 타고 군사들을 서쪽으로 돌려 풍정이 지키고 있던 광랑성을 공격했다. 진장 사마경이 선봉에 서서 용기백배하여 먼저 성위로 오르자 뒤따르던 대군들이 그 뒤를 따라 성벽을 기어올랐다. 풍정은 다시 싸움에 패하고 금문산 밑의 본대로 도망쳐 왔다. 염파가 영문을 열고 풍정의 일행을 영채 안으로 맞이했다. . 진군이 풍정의 뒤를 쫓아와 염파의 본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그는 전군에게 령을 내렸다.

「영문을 열고 출전한 자는 비록 싸움에 이겼을 지라도 목을 베겠다.」

왕흘이 지휘하던 진군은 온 힘을 다하여 염파의 진영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조군의 진지를 깨뜨릴 수 없었다. 진군은 다시 그들의 진영을 앞으로 이동하여 조군 진영을 압박하였다. 사기가 오른 진군은 조군과는 5리를 사이에 두고 수 없이 싸움을 돋우었지만 조군은 결코 진영 밖으로 나와 응전하지 않았다. 조군이 진군의 도전에 응하지 않음으로 해서 싸움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진군의 대장 왕흘은 여러 장수들 앞에서 말했다.

「염파는 백전노장이라! 그의 작전은 신중하여 결코 진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여러 장군들 중 좋은 계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편장군 왕릉(王陵)이 앞으로 나와서 계책을 말했다.

「금문산 밑으로 냇물이 하나 흐르고 있는데 그 이름을 양곡(楊谷)이라 합니다. 진과 조 양쪽 군사들은 이 냇물에서 물을 길러 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나라 진영은 양곡의 남쪽에 있고 우리 진나라 진영은 그 서쪽에 있습니다. 양곡의 물은 서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우리가 이 냇물을 흙으로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한다면 조군은 식수를 확보하지 못해 며칠이 안 되어 조군 진영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때를 이용하여 공격한다면 조군을 파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왕흘은 왕릉의 계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군사들을 동원하여 양곡을 가로질러 보를 쌓아 물길을 막으라고 명령하였다. 지금 양곡의 이름을 절수(絶水)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이 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왕흘은 염파가 이미 구덩이를 깊게 파서 양곡의 물을 저장해 두어 매일 충분히 마시고도 남을 만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진군과 조군은 서로 대치 상태로 4개월을 보냈다. 그 동안 왕흘은 싸움을 걸었지만 염파가 상대를 해 주지 않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왕흘은 결국 사람을 소양왕에게 보내어 싸움터의 정황을 보고하였다. 소양왕은 응후 범수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범수가 계책을 말했다.

「염파는 싸움터를 오랫동안 누비고 다녔던 장수라 진나라의 군사들의 강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어 경솔하게 싸움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군이 먼 길을 달려와서 싸움터에 있은 지 오래라 결국은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시간에 감에 따라 우리 진나라 병사들이 지쳐 쓰러질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염파를 조군의 대장 자리에서 쫓아내지 못한다면 상당의 땅은 결코 우리 진나라가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염파를 쫓아 낼 무슨 좋은 계책이라고 갖고 있습니까?」

범수가 좌우에 있던 시자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 소양왕에게 계책을 말했다.

「염파를 몰아내려면 반간계(反間計)를 써야 됩니다. 반간계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천금의 재화를 쓰지 않으면 불가합니다.」

소양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황금 천금을 범수에게 내 주었다. 범수는 승상부로 돌아와서 그의 문객 중의 심복을 불러 자기의 계책을 일러주었다. 범수의 심복은 황금 천금을 가지고 지름길을 취하여 조나라의 한단성으로 들어가, 가지고 간 황금으로 조왕의 측근들을 매수하고, 다시 사람을 사서 시중에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조나라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장수는 마복군 조사 장군이시다. 그런데 그의 아들 조괄은 그 부친의 재능을 능가한다고 한다. 만약에 조괄을 조나라의 대장으로 삼는다면 아무도 그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염파는 이미 늙어 겁이 많아져, 여러 번의 싸움에서 계속 지기만 하고, 이미 병사 3-4만 명이나 잃었다. 지금 진나라 군사들이 쉬지 않고 압박을 가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진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이미 선봉을 맡았던 조가가 싸움 중에 죽고, 계속해서 세 개의 성을 빼앗겼다는 보고를 받은 효성왕은 즉시 사자를 장평의 군중으로 보내 염파로 하여금 속히 영채를 뛰쳐나가 진나라 군사들과 결전을 벌리도록 몇 번에 걸쳐 다그쳤다. 염파는 효성왕의 명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굳게 지키기만을 할뿐 결코 진지 밖으로 나가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효성왕은 염파가 겁을 내어 싸움을 회피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던 차에 다시 진나라의 반간계에 걸린 좌우의 측근들이 전하는 말을 듣자, 자기가 생각하던 바가 옳다는 확신을 갖고 즉시 조괄을 불러 물었다.

「경은 능히 나를 위해 진나라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는가?」

「진나라가 만약 무안군 백기를 장수로 삼았다면 제가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겠지만 왕흘 정도야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그리 말하는 것인가?」

「무안군이 여러 번에 걸쳐 진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싸움터를 종횡으로 많은 전공을 이루었습니다. 먼저 한위(韓魏) 연합군을 이궐(伊闕)에서 격파하고 그 군사 24만 명의 목을 베었으며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크고 작은 60여 개의 성을 점령하고, 이어서 다시 남쪽의 초나라로 진격하여 초나라의 도성 영성(郢城)을 함락시키고, 초나라의 군현이었던 무군과 검중군을 평정해서 진나라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후에 위나라를 재차 공격하여 장수 망묘를 패주시키고 그 군사 13만 명의 목을 베었습니다. 계속해서 한나라를 다시 공격하여 5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한군 5만의 목을 참수했으며, 또다시 조나라의 장군 가언(賈偃)의 목을 베고 그의 군사 2만 명을 하수에 수장시켜 죽였습니다. 백기야말로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함락시켜, 그의 위명은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어 군사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신이 그와 대치하여 싸움을 할 경우에는 승부는 절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은 고심하여 별도의 작전을 마련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흘의 경우는 진나라 대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미숙하다고는 하나 염파가 겁을 먹고 대적하기를 꺼려하는 덕분에 우리 조나라 경계에 깊숙이 들어온 것입니다. 만약에 신이 전장에 나간다면 진나라 군사들은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의 신세가 될 것이며 마땅히 눈 깜짝할 순간에 소제를 해 버릴 것입니다.」

조괄의 호언에 크게 기뻐한 효성황은 즉시 그를 상장군으로 임명하고 황금과 비단을 하사했다. 효성왕은 이어서 조괄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염파의 직위를 대신하게 하고 다시 20만의 강병을 더해 주었다.

조괄이 새로이 차출한 20만의 군사를 사열하고 황금과 비단을 수레에 싣고 집으로 가서 모친을 뵈었다. 그 모친이 조괄에게 말했다.

「너의 부친이 임종하실 때 유언으로 명을 남기시기를 너는 절대 조나라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사양하지 않았느냐?」

「제가 사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조정에는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습니다. 」

조괄의 모친이 글을 써서 조왕에게 올리며 간했다.

「조괄은 자기 부친의 책을 헛되이 읽어 임기응변을 행할 줄 모르니 그는 장군의 재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조괄을 대장으로 삼으시면 안 됩니다.」

효성왕이 조괄의 모친을 불러 그 연유를 직접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조괄의 부친 조사께서는 장군으로 임명되면서 하사 받은 상급을 휘하의 군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으며, 명을 받는 날 즉시 군중에서 사졸들과 함께 잠을 자며 집안의 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사졸들과는 동고동락하며 무슨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여러 사람들에게 그 의견을 묻고 행하여 절대로 자기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첩의 아들 조괄은 하루아침에 조나라의 대장이 되자 동쪽을 향하여 조배하며 대왕에게 감사를 표하자, 군리들은 감히 눈을 들어 조괄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폐하로부터 하사 받은 황금과 비단은 모두 집으로 가져와 자기의 사유물로 했으니 어찌 그가 대장의 직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조괄의 부친이 임종시에 첩에게 경계의 말을 하기를 ‘조괄이 만약 조나라의 대장이 된다면 조나라를 틀림없이 싸움에서 패하고 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첩은 그 말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다른 신하들 중에서 훌륭한 대장을 뽑으시고, 절대로 조괄을 대장으로 쓰시지 마십시오.」

효성왕은 조괄의 모친에게 말했다.

「과인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반복할 수 없소!」

조괄의 모친이 효성왕을 향해 말했다.

「대왕께서 첩의 말을 듣지 않고 만약에 싸움에 지기라도 한다면 첩의 가족에게 그 죄를 연좌시키지 않겠다는 약속해 주십시오.」

효성왕이 허락했다. 조괄이 군사를 이끌고 한단성을 나와 장평을 바라보며 행군을 시작했다.

한편 진나라의 범수가 파견한 세작은 한단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조괄이 조나라의 대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을 상세히 탐지해 냈다. 그는 조괄이 조왕에게 한 말의 자초지종과, 그 결과 조괄은 조나라의 대장으로 임명되고 날짜를 잡아 출정하게 된 사실을 모두 탐지한 후에 밤을 틈타 한단성을 빠져 나왔다. 이윽고 함양성으로 돌아온 그 문객은 범수에게 일의 전말을 보고했다. 소양왕이 범수와 서로 상의하면서 말했다.

「이 일은 무안군이 아니면 이룰 수 없소.」

진왕은 진군의 대장을 백기로 바꾸고, 왕흘은 부장으로 삼았다. 이어서 군중에 영을 내려 백기가 진군의 대장으로 새로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부치라고 했다.

「무안군 백기가 진군의 대장이 되었다고 발설한 자가 있다면 참수형에 처하리라!」

조나라의 새로운 대장 조괄이 장평관에 당도하자 염파는 부절을 맞춰보고 군적부를 그에게 넘겨준 다음 자신은 백여 명이 넘는 부하들과 함께 한단으로 돌아갔다. 조괄은 염파가 그 동안 구축해 놓은 군령이나 진영을 지키기 위한 제도를 모조리 뜯어고치고 여러 개러 나누어 친 진영을 모두 걷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하나의 큰 영채로 만들어 놨다. 그때 풍정이 군중에 있다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간했지만 조괄은 듣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자기가 한단에서 데려온 장수들로 염파가 임명해 놓은 장수를 모두 바꾸었다. 조괄은 군중에 엄명을 내렸다.

「진나라 군사들이 도전해 온다면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워야한다. 만약에 승기를 잡게 되면 끝까지 진군의 뒤를 쫓아가 한 놈도 살려 보내면 안될 것이다.」

진나라의 대장 백기도 진군의 군영에 당도하여 조괄이 염파가 내린 군령을 모두 바꾸어 버린 정황을 알고 먼저 군사 3천 명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 싸움을 걸게 했다. 조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번개처럼 달려 나와 진나라 군사들을 덮쳤다. 진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백기가 망루에 올라 조군을 바라보며 왕흘에게 말했다.

「내가 조군을 깨뜨릴 방안이 섰소!

조괄은 한 번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자 기고만장하여 즉시 사람을 진나라 진영으로 보내 전서를 전달하게 했다. 백기가 왕흘을 시켜 다음 날 결전을 하자고 답장을 써서 보내게 하였다. 」

그러나 진나라 군사들은 그 진영을 각기 10리 씩 후퇴하여 예전에 왕흘이 주둔했던 곳에 다시 세우게 했다. 조괄이 알고서 기뻐하여 말했다.

「진나라 병사들이 우리를 겁내고 있음이라!」

그는 소를 잡아 군사들을 마음껏 먹게 하고는 군령을 내렸다.

「내일 진나라 군사들과의 결전에서 왕흘을 꼭 생포하여 천하 제후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들겠다.」

백기는 진나라의 영채를 옮기는 일이 끝나자 모든 휘하 장수들을 모이게 한 다음 군령을 전했다.

「장군 왕분(王賁)과 왕릉(王陵) 두 사람에게는 각각 군사 만 명씩을 인솔하여 영채 앞에서 진열을 갖추고 있다가 조괄이 쳐들어오면 교대로 맞서 싸우되 지기만 할뿐 절대로 이기면 안 된다. 두 장수는 조괄의 군사들이 진나라 영채 앞으로 끌고 오기만 하면 전공을 세운 것으로 간주하겠다. 대장 사마착(司馬錯)과 사마경(司馬梗)은 각각 1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조나라 진영의 배후로 돌아 그들의 양도를 끊고, 대장 호상은 2만 명의 군사와 함께 나가 조나라 진영 왼쪽에 주둔하고 있다가, 조나라 군사들이 진나라 진영 앞으로 진격하면 즉시 뛰쳐나와 조나라 군사들의 후위를 끊으시오!」

백기는 계속해서 대장 몽오와 왕전에게는 각기 기병 5천 명씩을 거느리고 있다가 전세가 불리한 부대가 생기면 출동하여 신속하게 돕도록 했다. 백기와 왕흘은 본영을 지키기로 했다. 이것은 마치 온 천지에 그물을 쳐서 용과 호랑이를 잡으려고 하는 장사의 형상이었다.

한편 조군의 진영에서는 조괄이 군령을 내려 사고18)에 아침밥을 해 먹이게 하고 오고19)에 군장을 꾸린 다음에 전열을 갖추고 진군의 진영을 향해 진군시켰다. 조군이 앞으로 계속 전진하여 미처 5리도 가기 전에 진나라 군사들과 조우하자 양쪽 진영은 원을 그리며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조괄이 먼저 선봉장 부표(傅豹)를 출전시켰다. 진군 쪽에서는 왕분이 말을 타고 나와서 부표를 막아서며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30여 합을 주고받더니 왕분이 힘에 부친 듯 견디어 내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하자 부표가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조괄이 다시 왕용(王容)을 출전시켜 부표를 돕게 하자 진군 쪽에서 왕릉이 나오더니 왕용과 맞붙었다. 몇 합을 겨룬 끝에 왕릉도 왕용의 힘이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괄은 조나라의 두 장수가 계속해서 싸움에서 이기고 진군의 뒤를 추격하자 스스로 대군을 휘몰아 진나라 진영 앞으로 진격하였다. 풍정이 곁에 있다가 다시 조괄에게 간했다.

「진나라 사람들은 속임수가 많으니 그들이 싸움에 패하여 달아난다고 해서 결코 믿을 바가 못 됩니다. 원수께서는 결코 그들의 뒤를 쫓으면 안 됩니다.」

조괄이 듣지 않고 진군의 뒤를 쫓아 10여 리를 앞으로 나아가 이윽고 진나라 진영의 방책 앞에 당도했다. 왕분과 왕릉이 진나라 진책 주위를 돌며 달아났으나 진군은 진영의 문은 열지 않았다. 조괄이 군령을 내려 일제히 진나라 진영을 공격하도록 했다. 조군들이 며칠간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으나 진군이 굳게 지켜 결코 진채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조괄이 사람을 보내 후위에 남아 조나라 진채를 지키고 있던 군사들에게 진채를 걷고 일제히 10리 앞으로 전진하여 그곳에다 새로운 진영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갑자기 후군을 지휘하던 조나라 장수 소사(蘇射)가 말을 타고 비호처럼 달려오더니 보고했다.

「진나라 장수 호상이 우리 후군의 앞을 막아서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괄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

「호상이란 놈이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인가? 내 당장 달려가 그 놈을 요절을 내고 말리라!」

조괄이 정탐병을 보내 진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정탐병들이 돌아와 조괄에게 진군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서쪽 길은 진나라 군마가 끊이지 않고 왕래가 많았으며, 동쪽 길은 인마가 다니지 않았습니다.」

조괄이 명령을 내려 동쪽 길을 취하여 후군을 도우러 갔다. 조괄이 이끄는 선발대가 2-3리도 가기도 전에 진장 몽오가 한 떼의 기병을 데리고 계곡의 경사진 곳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애숭이 조괄은 우리의 무안군의 계책에 걸려들었다. 어찌하여 아직도 항복하지 않는가?」

조괄이 화를 내켜 극을 치켜들고 달려가 몽오를 취하려고 하자 편장 왕용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원수께서 몸소 싸우실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이 왕용이 나가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왕용이 몽오에게 달려가 어우러져 몇 합을 싸우는데 일단의 군사들을 거느린 왕전이 달려와 싸움에 합세하여 좌우에서 협공하자 수많은 조나라의 군사들이 꺾였다.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한 조괄이 쟁이를 울려 군사들을 거두고 강가의 초지를 택하여 진채를 세우게 했다. 풍정이 다시 조괄에게 간했다.

「군사들은 예기가 꺾이게 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 군사들이 비록 싸움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아직 힘들여 싸운다면 버틸 수가 있으니 만약 이곳에서 빠져나가 본영으로 돌아가 그곳의 부대와 힘을 합한다면 적군을 물리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진영을 세워 앞과 뒤에서 적군을 맞이하게 되면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됩니다.」

조괄이 풍정의 간언을 또다시 듣지 않고 군사들에게 명하여 기다란 보루를 쌓게 하고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했다. 조괄은 한편으로 사람을 조왕에게 보내 구원을 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대를 재촉하여 군량을 빨리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진나라의 대장 사마착과 사마경이 거느린 군사들에 의해 보급로가 끊긴지 오래였다. 이어서 백기의 대군이 달려와 조군의 앞을 가로막고 호상과 몽오 등의 대군은 그 뒷길을 끊었다. 진나라 군사들은 매일 같이 무안군이 전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조괄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다. 조괄은 그때서야 비로소 백기가 진나라 군중에 있음을 알고 놀라 간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한편 진나라의 소양왕은 무안군에게서 첩보를 받고 조괄이 거느린 조나라의 본군을 장평에 가두어 궁지에 몰아넣었음을 알았다. 소양왕은 친히 어가를 움직여 하내(河內)로 들어가 민가의 장정 중 1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군대에 편입시키고 여러 길로 나아가게 하여 조군의 군량과 마초를 탈취하는 한편 조나라의 구원병을 막도록 했다. 조괄이 이끄는 조군은 진나라 군사들의 포위망에 갇혀 46일 째가 되도록 오도 가도 못했다. 이윽고 조군의 군중에는 양식이 떨어져 사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까지 생겼지만 조괄은 금지시키지 못했다. 그는 조군을 네 대로 나누어 부표가 이끄는 일대는 동쪽으로, 소사의 일대는 서쪽으로, 풍정의 일대는 남쪽으로, 왕용의 일대는 북쪽으로 각각 향하게 하여 진군의 포위망에서 탈출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네 대로 나뉜 군사들에게 일제히 북을 치며 탈출로를 찾아 돌격하게 하여 그 중 통로 한 곳을 뚫게 되면 다른 삼로의 군사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여 일제히 빠져나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무안군 백기는 미리 궁수들을 선발하여 조나라 진영 주위를 따라 매복시켜 조군 진영에서 빠져 나오는 자가 보이면 사졸이건 장수들이건 가리지 말고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쏘라고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윽고 네 대로 나뉜 군마가 각기 맡은 방향으로 향하여 서너 차례 빠져나가려고 돌격을 감행했으나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에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하고 원래의 진영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다시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조괄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조군들 중 가장 정예한 병사 5천 명을 뽑아 모두 여러 겹의 갑옷을 입게 한 다음 날랜 말을 타게 한 다음 조괄 자신은 극을 들고 선봉에 서고 부표와 왕용이 그의 뒤를 바싹 붙어 따르며 포위망을 뚫기 위해 진영 앞으로 돌진하였다. 진장 왕전과 몽오가 일제히 앞으로 달려와 조괄의 앞을 가로막고 크게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조괄이 거느린 5천 명의 결사대는 도저히 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갈 수 없었다. 조괄이 할 수 없이 말머리를 돌려 조군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말이 넘어져 땅 위로 떨어지는 순간 날아드는 화살에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조군의 진영은 대장이 죽자 큰 혼란에 빠졌다. 부표와 왕용도 모두 난군에 섞여 전사했다. 풍정은 소사의 뒤를 따라 달아나다가 멈춰 서며 말했다.

「내가 세 번에 걸쳐 간했으나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은 바로 하늘의 뜻이라! 내가 어찌 도망가서 살 수 있단 말인가?」

풍정은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사는 구사일생으로 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호(胡) 땅으로 달아났다.

8. 虐殺四十萬降卒(학살항졸사십만)

- 조나라의 항졸 40만 명을 학살하다.

백기는 조나라의 대장 조괄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초항기를 내걸고 항복을 권했다. 조군의 일부가 무기를 버리고 갑옷을 벗어 던지며 조군 진지에서 뛰쳐나와 모두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만세를 불렀다. 백기는 다시 조군의 후위에 주둔하고 있던 조군 진채로 달려가 사람을 시켜 조괄의 목을 깃대에 걸고 조나라 진채로 들어가 군사들을 위무했다. 조군 영채 안에는 여전히 20여 만의 군사들이 있었으나 자기들의 대장이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도 감히 앞으로 나서서 진군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들 역시 모두 항복을 원했다. 조군이 가져다 바친 갑옷과 무기가 쌓여 높은 산을 이루었고, 조군 영내의 치중은 모두 진군의 소유가 되었다. 백기가 왕흘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옛날 우리 진나라가 야왕성을 점령함으로써 상당의 땅은 거의 진나라 소유가 되었을 뻔했으나 그 관리들과 백성들이 우리 진나라에 귀속되는 것을 싫어하여 오히려 그 땅을 들어 조나라에 바쳤소. 지금 전후 두 번에 걸쳐 항복한 조나라 군사들은 모두 40여 만에 달하는데, 만일에 군중에 변이라도 난다면 우리가 어찌 막을 수 있겠소?」

백기가 항복한 조나라 병사들을 모두 10대로 나뉘어 분산 수용하고 진나라의 장수 10명을 각각 임명하여 20만의 진군으로 그들을 통제하도록 하였다. 백기가 조나라 병사들에게 소고기와 술을 내리며 자기의 명을 전하게 했다.

「내일 무안군께서 조나라 군사들을 선별하여 정예하고 싸움에 능한 자는 모두 무기와 갑옷을 돌려주고 진나라에 데려가 원한다면 진군으로 종군시켜 주고, 나이가 많거나 허약한 병사들과 힘이 약하고 겁이 많은 병사들은 모두 조나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셨다.」

조나라 군사들이 듣고 모두 크게 기뻐했다. 그날 밤 무안군은 비밀리에 10명의 진나라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오늘 밤 초경이 시작되는 시각에 진나라 병사들은 모두 머리에 하얀 띠를 둘러라!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지 않은 자는 모두 조나라 병사들로 간주하고 그들을 남김없이 죽여라!」

진나라 병사들이 무안군의 명에 따라 일제히 행동에 들어가자 항복한 조나라 군사들은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데다가 또한 아무런 병장기도 없어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할 뿐이었다. 진나라 군사들의 창을 피해 무사히 진영 앞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미리 각 진영 사이를 순시하고 있던 몽오와 왕전등이 이끄는 순라군에게 잡혀 모두 살해되었다. 조나라의 40만에 달하는 항복한 군사들은 하루 저녁 사이에 모조리 살해되었다. 시체에서 흐르는 피가 모여 냇물을 이루어 콸콸 소리를 내며 양곡의 냇물로 흘러 들어가 새빨간 피 빛으로 변했다. 원래 양곡라는 강 이름이 지금의 단수(丹水)라고 변한 것은 강물이 새빨간 핏빛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무안군은 조나라 병사들의 시체에서 머리를 베어내어 진나라 영채 사이에 쌓게 하자 그 두개골이 산을 이루어 그 이름을 두로산(頭顱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백기는 그 두로산 위에 높고 큰 우뚝 솟아나게 대를 하나 지었는데 그 이름을 백기대(白起臺)라 했다. 백기대 밑에 바로 양곡이 흘렀다.

후에 당나라 현종(玄宗)이 이곳에 순행을 나왔다가 처절한 장평의 싸움을 생각하며 한탄하다가 동행하던 고승 삼장법사(三藏法師)를 시켜 단수의 강물과 육지를 연결하여 제단을 짓게 한 다음 7일 밤과 낮으로 하늘에 빌어 그 곳에 묻힌 조나라 병사들의 원혼을 빌어 극락으로 이끌러 주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그 양곡의 이름을 성원곡(省冤谷)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이일은 나중의 일이다. 사관이 시를 지어 장평에서 참혹하게 죽은 조나라 군사들을 애도했다.

백 척 높이의 저 고대는 모두 두개골로 쌓은 것이니

어찌 구구한 만 개의 해골로는 저렇듯 높이 쌓을 수 없었으리라!

싸움에 대한 승리욕이 지나쳐 시석이 무정해서라고 하지만

가련한 항졸이 무슨 죄가 있었음인가?

高臺百尺盡頭顱(고대백척진두로)

何止區區万骨枯(하지구구만골고)

矢石無情緣鬪勝(시석무정연투승)

可憐降卒有何辜(가련항졸유하고)

장평의 싸움에서 전후 두 번에 걸쳐 항복한 조나라 군사들 40여만 명이 모두 참살 당했는데 이것은 일전에 왕흘에게 먼저 항복한 20여 만의 군사를 합한 것으로 모두 같이 학살된 숫자이다. 조나라 군사들 중 단지 나이가 어린 병사 240명만이 살해되지 않고 한단으로 돌려보냈는데 이것은 진나라의 위세를 천하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 99회로 계속 >

주석

1)단(端)/ 고대의 비단을 재는 단위. 한 단(端)은 약 20자

2)장안군(長安君)/ 효성왕의 모후인 혜문왕비가 사랑하던 어린 아들을 가리킨다.

3)흑의(黑衣)/ 왕궁을 지키는 군사들을 말한다.

4)연후(燕后)/연나라 왕에게 시집간 태후의 딸을 말한다.

5)此其近者禍及身(차기근자화급신), 遠子及其子孫(원자급기자손)

6)貴而爲友者 爲賤時也, 富而爲友者 爲貧時也.

7)우경춘추(虞卿春秋)/ 사기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 우경의 친구 위제가 진나라 승상 범수에 쫓겨 달아나다가 결국은 자살하여 죽은 이후에, 우경은 이루지 못한 그의 뜻을 책으로 저술하였다. 위로는 <춘추>에서 뽑고, 아래로는 현실 중에서 관찰하여 <절의(節義)>, <칭호(稱號)>, <췌마(揣摩)>, <정모(政謀)> 등 모두 8편을 지었다. 이로써 국가의 득실을 풍자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그것을 전하여 우씨춘추라 하였다.」

8)하동(河東)/ 전국(戰國), 진한(秦韓) 때 지금의 산서성 남쪽 지방을 부르던 지명이다. 그 땅이 황하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9)대모(玳瑁)/주로 열대 지방의 바다에 사는 거북의 하나로, 그 거북등은 단단하여 갓끈이나 풍잠(風簪)등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10)풍잠(風簪)/ 갓모자가 바람에 넘어가지 못하고 망건당 앞쪽에 끼우는 반달 모양의 신변 장신구. 망건에 풍잠을 끼우고 그 위에 갓을 쓰면 풍잠이 갓모자 안으로 들어가 걸리게 된다. 쇠뿔, 대모(玳瑁), 금패, 호박 따위로 만든다.

11)추(鄒)/ 지금의 산동성 추현(鄒縣)에 있었던 소 제후국으로 맹자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12)순경(荀卿)/기원전 313-238 : 전국시대 때 사상가이며 교육가이다. 통상적으로 순자라 불리며 이름은 황(況)이다. 조나라 출신으로 나이 50이 넘어 제나라에 학문을 배우러가서 직하(稷下)에 모여있던 학자들 사이에서 장로로 존경받았다. 이어서 초나라로 가서 춘신군에 의해 란능령(蘭陵令 : 지금의 산동성 창산현(蒼山縣) 란릉진(蘭陵鎭))에 임명되었으나 후에 다시 주위 사람들의 참소를 받고 조나라로 돌아갔다. 조나라는 순경을 상경으로 임명했으나 다시 초나라로 돌아가 란능령이 되어 그곳에서 저술활동을 하며 생애를 마쳤다. 진나라의 이사(李斯)와 한나라의 한비자(韓非子)는 순경의 제자들이다. 그의 사상은 공자나 맹자의 유가사상이며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원래 악한 사람으로 태어난 성격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치되는 성악설을 주창했다.

13)왕흘(王齕)/?-기원전 244년. 전국시대 말에 진나라의 장군. 일설에 왕의(王齮)라고도 한다. 진소양왕 47년 기원전 260년 진나라의 좌서장에 임명되어 군사를 이끌고 한나라를 공격하여 상당군(上党郡)을 점령하였다. 그 다음 해에 다시 조나라의 피뢰(皮牢 : 지금의 산서성 용문현(龍門縣) 서)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다시 소양왕 49년 오대부(五大夫) 왕릉과 함께 조나라의 도성 한단을 포위하였으나 전세를 불리하게 이끌어 그는 대장의 직위에서 파면되었다.

14)야왕성(野王城)/지금의 하남성 심양시(沁陽市) 경내

15)서사(筮史)/ 서죽(筮竹)으로 나라의 길흉에 대해 점을 치는 사관

16) 無故之利 必受殃禍(무고지리 필수앙화)

17)광랑성(光狼城)/ 지금의 산서성 고평현(高平縣) 서

18)사고(四鼓)/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의 시각

19)오고(五鼓)/새벽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각

[평설]

장평의 싸움은 진나라가 동진정책을 추진한 이래 조나라와 진행된 공전의 대전쟁이었다.

기원전 268년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회(懷) 땅을 점령하자 다음 해에 위나라는 그 태자를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 강화를 청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다시 다음 해에 위나라의 형구(邢丘)를 함락시켜 위나라의 굴복을 강요했다.

기원전 265년, 진나라가 대거 한나라를 공격하여 한나라의 소곡(少曲), 고평(高平)을 점령했다. 다음 해에 형성(陘城)을 점령하고, 또 다음 해에 태항산 남쪽의 남양(南陽)을 점령하여 한나라를 상당군과 본토의 연락을 끊자 한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그와 같은 정세에 이르게 되자 한왕은 상당군을 바치며 진나라에 강화를 구했다. 그러나 상당군 태수 풍정(馮亭)은 조나라를 끌어들여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상당군 17개 현을 조나라에 바쳤다. 그것은 마치 한 처녀를 두 집에 시집보내기로 한 것과 같아 결국은 진과 조 두 나라 사이에 장평의 싸움이 벌어졌다.

기원전 261년 진나라가 한 떼의 군사를 내어 한나라의 구지(緱氏)를 공격하여 한나라의 도성 신정성을 위협하고 동시에 위나라의 도성 대량성을 노려 위협을 가하고 대군을 상당으로 진격시켰다. 조나라가 염파를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 군사를 장평에서 막게했다. 진군의 사기가 높은 것을 본 염파는 지형의 이점에 의지하여 보루를 굳게 지키며 결코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조나라의 효성왕은 염파의 그러한 소극적인 전략에 대해 불만을 품고 친히 전선에 나가 진군과 결전을 감행하려고 했다. 후에 다시 루창(樓昌)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신 정주(鄭朱)를 진나라에 파견하여 강화를 청하게 했다. 진나라는 조군을 효과적으로 격파하기 위해 일련의 기만술을 펼쳐 성공을 거두었다.

1. 거짓 강화회담을 제안했다.

진나라는 고의적으로 조나라의 사절 정주를 정중하게 대해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회담을 체결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조나라 군사들의 투지를 해이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초와 위 두 나라로 하여금 합종을 체결하여 조나라를 구원할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헌 것이었다. 진나라가 거짓으로 강화회담을 진행시키면서 비밀리에 조군을 공격할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 간첩을 보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

방어전을 위주로 한 염파의 작전은 진군에게 극도로 불리다. 염파가 장거리를 원정한 진군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전쟁터에 머물게 했기 때문이었다. 염파를 대장의 자리에 밀어내기 위해 진나라는 간첩을 조나라의 도성 한단에 밀파하여 염파는 진군에게 가장 쉬운 상대이며, 진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수는 조괄이라는 내용의 유언비어를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염파의 보루를 굳게 지키고 진군의 도전에 응하지 않았던 수비를 위주로 한 작전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조나라의 효성왕은 과연 진나라의 계략에 떨어지고 말았다.

3. 명장의 존재를 속였다.

백기는 진나라뿐만 아니라 온 중국에 이름이 나 있었던 명장이었다. 그래서 조괄은 백기만이 자기의 상대가 될 뿐이지 기타 다른 진나라 장수들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허풍을 떨었다. 백기는 그때는 이미 진군의 대장이 되어 지휘를 맡고 있었으나 비밀로 부치고 다른 장수가 대장이라고 조나라를 속였다. 그것은 조괄의 방자하고 오만함을 조장하기 위해서였다. 새로 조군 대장이 된 조괄은 염파가 새운 방어전략을 모두 버리고 새로이 진용을 짜서 진군을 공격했다.

4. 싸움에서 거짓 패하여 적군을 유인했다.

조괄은 진군의 허실을 돌아보지 않고 무모하게 진군의 선발대를 추격했다. 이에 진군은 조군의 퇴로를 끊어 그 군대를 둘로 절단하여 철통같이 포위했다. 이윽고 조군의 양식이 떨어지자, 그들은 서로 동료들을 잡아먹어야만 했다. 이에 조괄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진군의 진영을 향해 돌격을 감했으나 자신은 진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조나라의 40여 만 대군은 모두 진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군사를 부리는 것은 속임수가 주다. 장평대전에서 진군이 사용한 작전은 기만술의 연속이었다.

항복한 조나라 군사들을 조나라로 돌려보낸다면 군민이 모두 힘을 합하여 진나라에 반기를 들 것을 두려워한 백기는 조나라의 군사 40만 명을 모두 구덩이 파묻어 살해하고 단지 200여 명의 어린 군사들만을 살려 보내 진나라 군사들의 위력을 조나라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했다. 백기의 학살 행위는 당시 봉건 군대의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나라의 상당 군수 풍정은 상당군을 진나라 대신에 조나라에 바침으로 해서 조와 한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그가 만일 손을 놓고 상당의 땅을 진나라에 바친 경우와 비교해 봤을 때, 그의 책략은 매우 교묘하다고 할 수 있다. 조나라가 한나라의 상당군을 얻고서야 비로소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에 대항한 것은 시간적으로 매우 늦은 감이 있다. 만약에 일찍이 조나라가 한과 위 두 나라와 같이 합종을 맺고 진나라에 대항했다면 전황은 조나라 입장에서 다소나마 바람직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조나라가 장평에서 참패한 주요 원인은 ‘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병법의 기본을 몰랐기 때문이다. 즉 진과 조 두 나라의 강약을 가늠하지도 못했고, 염파가 견지했던 방어 전략을 바꾸는 실수를 했으며, 또한 산동의 여러 제후국들과 합종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지도 않았다. 그런 여건 하에서 조나라가 싸움에 이기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진나라에 번번이 속임을 당함으로 해서 조나라의 패전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백기가 조나라의 항복한 군사 40여 만 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것은 손자의 “ 전투에서 승리를 취하는 목적은 나라를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원칙에 위배된다. 포로를 모두 살해함으로 해서 그들이 다시 적군이 되어 진군을 위협하지 못하게 했지만, 백기의 잔혹한 학살행위는 오히려 적국을 격분시켜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적개심에 불타게 했다. 장평에서의 학살극은 후에 진군이 한단에서 크게 무너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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