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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完璧歸趙(완벽귀조), 勇者取勝(용자취승)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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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6회 完璧歸趙 單解韓圍(완벽귀조 단해한위)

화씨벽을 완벽하게 보존한 인상여와

진군에게 포위된 한나라를 일격에 구원한 조사

1. 懷璧有罪(회벽유죄)

- 화씨벽으로 인해 화를 입을 뻔한 조나라의 목현

한편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이름이 목현(繆賢)이라는 내시를 총애하고 있었다. 혜문왕은 그에게 내시들을 관장하는 환자령(宦者令)이라는 벼슬에 임명하고 국정을 행하는데 가끔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 한 명이 갑자기 목현을 찾아와 백벽(白璧)을 가지고 와서 사줄 것을 청했다. 목현은 그 백벽의 색깔이 찬란하게 빛나고 겉에는 흠집이 하나도 나 있지 않은 완벽했음으로 5백금의 황금을 주고 그것을 사서 옥공(玉工)에게 보였다. 옥공이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화씨벽(華氏壁)이라는 참으로 귀중한 백벽입니다. 초나라 상국 소양(昭陽)이 잔치를 벌리고 연회에 참석한 빈객들에게 자랑하다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잃어버렸던 보물입니다. 이에 소양은 장의를 의심하여 그를 붙잡아 죽도록 매를 때린 결과 장의가 앙심을 품고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들어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후에 소양은 천금의 황금을 상으로 걸고 이 화씨벽을 찾았지만 그 것을 훔쳐간 사람은 감히 갖다 바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화씨벽을 다시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귀중한 화씨벽이 대감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백벽은 참으로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천하의 보물이니 반드시 여러 겹으로 싸서 깊숙이 간수하시고 절대로 남에게 함부로 보여주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 벽옥이 그렇게 가치가 높다는 것인가?」

「이 옥을 어두운 곳에 놓아두면 밝은 빛을 발하여 그 위에는 티끌 하나 머무를 수 없으며,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기도 하여 <야광지벽(夜光之辟)>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만일 그 벽옥을 자기의 앉은자리 옆에 놔둔다면 겨울에는 주위가 훈훈해져 가히 화로를 대신할 수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해져 그 앉아 있는 백 보안에는 해충이 달려들지 못합니다. 이 외에도 다른 일반 벽옥은 따를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많이 나타나 이것을 지보(至寶)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목현이 시험해 보니 과연 옥공이 말한 그대로였다. 그는 즉시 보물을 담는 궤를 만들어 그 안에 넣고 다시 그것을 대광주리 안에 넣어 깊숙이 간직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혜문왕에게 알렸다.

「목현 중시(中侍)께서 화씨벽을 얻어 간직하고 있다 합니다.」

혜문왕이 목현을 불러 화씨벽에 대한 일을 묻고 자기에게 바치라고 말했다. 목현은 화씨벽이 너무 아까워 혜문왕에게 가져다 바치지 않았다. 혜문왕이 노하여 사냥 나갔다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목현의 집에 들이닥쳐 그의 집을 수색하여 화씨벽을 넣어둔 궤를 찾아 가지고 궁궐로 돌아갔다. 조왕이 자기의 죄를 추궁하고 죽이지나 않을까 걱정한 목현은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목현의 식객 중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달아나려는 목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대감은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연나라로 가서 몸을 피할까 해서요.」

「대감께서는 연왕을 어찌 안다고 몸을 함부로 움직여 그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내가 옛날에 대왕을 따라 국경 부근에서 열렸던 연왕과의 회맹을 위해 호종했을 때, 연왕이 나의 손목을 아무도 몰래 붙잡으며 ‘원컨대 그대와 친분을 맺고 싶소.’라고 말했소. 연왕이 나를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말로 알 수 있어 연나라로 도망치려는 것이오.」

인상여가 연나라로 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했다.

「대감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조나라가 강하고 연나라가 약했기 때문에 연왕은 대감이 조왕에게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감과 친교를 맺으려고 했지 대감을 앙모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로 인하여 연왕에게 듣기 좋은 말을 들은 대감께서는 조왕에게 연왕을 좋게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 대감께서는 조왕에게 죄를 얻어 연나라로 도망치려고 하는데 그러나 연왕은 오히려 대감으로 인하여 조왕이 연나라를 토벌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필시 대감을 포박하여 조나라에 송환하여 조왕의 환심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연나라로 가시게 되면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되겠소?」

「대감께서는 조왕에게 그다지 큰 죄를 지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화씨벽을 빨리 바치지 않았을 뿐이라 만약에 웃통을 벗고 도끼와 참요대(斬腰臺)를 지고 머리를 땅 바닥에 박으며 죄를 청하면 왕께서는 아마도 대감을 용서해 줄지도 모릅니다.」

목현이 인상여의 말대로 조왕 앞으로 나가 죄를 청하자 조왕은 과연 목현의 죄를 용서하고 죽이지 않았다. 목현은 인상여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상객으로 받들었다.

2. 連城之寶(연성지보)

- 15개 성의 가치가 있는 보물 화씨벽(和氏璧) -

한편 목현에게 화씨벽을 감정해 준 옥공이 일이 있어 진나라에 들렸다가 진소왕의 부름을 받아 옥을 다듬게 되었다. 옥공은 진소왕에게 화씨벽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은 조나라 왕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진왕이 옥공에게 물었다.

「화씨벽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명하단 말인가?」

옥공이 얼마 전에 조나라의 목현에게 말한 대로 화씨벽의 기이한 이적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진왕이 듣고 화씨벽을 간절하게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진나라에서는 위염(魏冉)이라는 사람이 승상의 자리에 있었다. 소양왕의 외삼촌이기도 한 위염은 소양왕이 화씨벽을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말했다.

「대왕께서 화씨벽을 얻고 싶다면 조나라에게 유양(酉陽)1)의 땅 15개 성과 바꾸자고 하시기 바랍니다.」

소양왕이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유양의 15개의 성은 적지 않은 땅인데 내가 어찌 한낱 벽옥 한 개와 교환할 수 있겠소?」

「조나라는 오래 동안 우리 진나라를 두려워해 왔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우리의 15개 성과 화씨벽을 교환하자고 한다면 조나라는 감히 그 명을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나라 사신이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에 들어오면 그들을 억류시켜 놓고 화씨벽을 빼앗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성을 준다는 구실로 화씨벽을 차지하시면 성을 잃을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진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조왕 앞으로 국서를 한 통 써서 객경 호상(胡傷)을 사자로 삼아 전하게 했다.

「과인이 화씨벽을 오래 전부터 한 번 보고 싶어 해왔으나 아직 그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들으니 조왕께서 화씨벽을 얻어 보관하고 있다하니 과인이 유양의 15개 성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바꾸기를 청합니다. 부디 조왕께서는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국서를 받고 염파(廉頗) 등의 대신들을 불러 그 대책을 물었다. 조혜문왕은 진나라에 화씨벽을 넘겨주자니 속임을 당하여 화씨벽만 뺏기고 성을 얻지 못할까 걱정이 되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을 걱정했다. 어떤 대신들은 화씨벽을 보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대신들은 보내지 말아야한다고 하며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었다. 이극(李克)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한 사람의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사람을 선발하여 그 사람에게 화씨벽을 가슴에 품고 진나라에 보내, 먼저 성을 받게 되면 화씨벽을 내어주라고 하시고, 성을 먼저 얻지 못하면 화씨벽을 내어 주지 말고 다시 가져오게 하면 비로소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조왕이 염파를 쳐다보며 무언중에 그의 의사를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떨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환자령 목현이 앞으로 나와 조왕에게 말했다.

「신에게는 인상여라는 식객이 있는데, 이 사람이야말로 용기와 지모를 갖춘 사람입니다. 만약에 진나라에 보내는 사자를 찾으신다면 이 사람보다 적격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조왕이 즉시 목현에게 인상여를 불러오라고 명했다. 인상여가 입궐하여 조왕을 배알하였다. 조왕이 인상여를 보고 물었다.

「진왕이 진나라의 15개 성을 바쳐 과인이 가지고 있는 화씨벽과 바꾸자는 청을 해왔소. 선생께서는 그들의 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진왕의 청을 물리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화씨벽만 빼앗기고 성을 얻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오?」

「진나라가 15개의 성과 화씨벽을 바꾸자고 한 것은 화씨벽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조나라가 진나라의 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우리 조나라에 있게 됩니다. 조나라가 진나라의 성들을 접수하기도 전에 먼저 화씨벽을 보내준다면 그것은 바로 성의를 다하여 예를 취했음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그 성들을 주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바로 진나라에 있게 됩니다.」

「과인이 이 일로 해서 화씨벽을 온전히 간수할 만한 사자를 뽑아 진나라에 보내야 합니다. 선생은 과인을 위해 진나라에 갈 사자의 임무를 능히 행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사자의 임무를 수행할 마땅한 사람을 구하실 수 없다면 신이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에 가서 사자의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만약이 진나라가 약속대로 15개의 성을 조나라에 할애한다면 신은 마땅히 그 화씨벽을 진나라에 넘겨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화씨벽을 그대로 건사하여 다시 가지고 오겠습니다.」

혜문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인상여에게 대부의 작위를 내리고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3. 一身是膽(일신시담)

- 온몸이 간덩이로 이루어진 인상여의 용기 -

화씨벽을 받은 인상여는 서쪽으로 나아가 진나라의 함양성에 들어갔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화씨벽을 가지고 조나라의 사신이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군신들을 모두 부른 다음 장대(章臺) 위에서 조나라의 사신으로부터 조현을 받겠다고 선포했다. 상여가 보물함은 관사에 남겨두고 단지 비단주머니에 들어있는 화씨벽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들어와 진왕에게 정중히 바치며 절을 올렸다. 소양왕이 비단주머니를 풀어 살펴보니 순백색의, 티가 하나도 없는 광채가 현란하게 비치며, 그 조각한 솜씨가 훌륭하여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보이는 실로 희세(稀世)의 진기한 보물인 화씨벽이 있었다. 진왕은 만족한 모습으로 화씨벽을 한참 바라보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이에 소양왕은 좌우에 도열에 있던 군신들에게 화씨벽을 건네 차례대로 돌려가며 구경하도록 했다. 돌려보기를 마친 진나라의 군신들은 소양왕을 둘러싸며 땅에 엎드려 큰 소리로 외쳤다.

「만세!」

소양왕이 내시들에게 명하여 화씨벽을 다시 비단보자기에 쌓게 한 다음 궁궐로 가져가 후궁과 미인들에게 구경시키라고 명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후궁으로 갔던 내시가 화씨벽을 다시 가져와 진왕의 곁에 있던 탁자 위에 놓았다. 인상여가 진왕의 옆에 서서 오래 동안 기다렸으나 주겠다던 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자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고는 진왕 앞으로 나가 말했다.

「그 화씨벽에는 아주 조그만 티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대왕께 그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진왕이 좌우에 시립한 측근에게 명하여 화씨벽을 인상여에게 내어 주라고 했다. 화씨벽을 건네받은 인상여는 몇 발자국 뒷걸음치며 장대 안의 기둥에 몸을 기대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진왕에게 말했다.

「화씨벽은 천하의 보물 중에 보물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화씨벽을 얻기 위해 우리 조나라에 국서를 보내자, 조왕께서는 군신들을 모두 불러 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조나라의 군신들은 모두 ‘진나라가 강한 세력을 믿고 빈소리로 화씨벽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화씨벽만 빼앗기고 성을 얻을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니 화씨벽을 진나라에 보내시면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소신만은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여 ‘포의를 입은 시정의 일반 사람들도 사귐에 있어서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만승의 나라 군주들이 사귀는데 서로 속이면 되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어리석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여 진왕에게 죄를 얻으시려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왕께서는 즉시 5일 동안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한 다음 소신에게 화씨벽을 건네주어 대왕의 궁정으로 가져와 바치게 한 것입니다. 실로 우리 조왕께서는 지성을 다하여 대왕의 뜻을 받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대왕께서 신을 대하시는 태도는 예절을 갖추지 않고 거만한 자세로 좌정하여 화씨벽을 받으시고, 좌우의 측근들에게 건네주어 차례로 구경시켰으며, 다시 후궁과 미인들에게까지 보내어 구경시켜 가지고 놀게 하시어 이 귀중한 화씨벽을 심히 모독하였습니다. 이로써 대왕께서는 약속하신 15개의 성을 주시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소신이 이 화씨벽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만일 신을 강제하여 화씨벽을 빼앗아 가시려고 하신다면, 신의 머리와 이 화씨벽은 이 기둥에 부딪쳐 모두 가루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말을 마친 인상여가 기둥을 노려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화씨벽을 기둥에 던지려고 했다. 소양왕은 화씨벽을 아까워한 나머지 정말로 인상여가 깨뜨려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즉시 인상여에게 사죄하였다.

「대부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 과인이 어찌 감히 조나라에게 신의를 잃겠는가?」

진왕은 즉시 관리를 불러 할양하겠다던 유양 땅의 지도를 가져오게 하여 자기가 직접 지도를 가리키며 15개의 성이 있는 곳을 조나라에 주겠다고 설명했다. 인상여는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 이것은 진왕이 거짓으로 나를 속여 화씨벽만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지 정말로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

인상여가 진왕에게 말했다.

「우리 조왕께서는 비록 희세의 보물을 사랑하고 계시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대왕께 죄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시어 신을 이곳으로 보내실 때 5일 동안 목욕재계를 하고 군신들을 두루 불러 의식을 행하고 신을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대왕께서도 역시 마땅히 5일 동안 목욕재계하시고 구빈대전(九賓大典)2)의 의식을 성대하게 행하시어 위엄을 갖추신다면 신이 즉시 화씨벽을 대왕께 바치겠습니다.

「그대의 말대로 하리라!」

인상여가 화씨벽을 품에 안고 관사에 돌아와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조나라를 떠날 때 조왕에게 이미 진나라가 만약 성을 내주지 않는다면 이 화씨벽을 무사히 보전하여 돌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오늘 내가 보니 진왕이 비록 목욕재계한 다음 성대한 의식을 차린 가운데에 화씨벽을 받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러나 만일 화씨벽만을 받고서 성을 내주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조왕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인상여가 즉시 자리에 일어나 자기의 수행원 한 사람을 불러 갈포로 만든 허름한 옷으로 바꾸어 입혀 거지로 변장하게 한 다음 화씨벽을 전대에 쌓아 허리에 두르게 하고 지름길을 이용하여 아무도 몰래 조나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 수행원은 돌아가 인상여의 말을 조왕에게 전했다.

「신은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속여 화씨벽만을 받고 그 대가로 성을 내줄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신은 삼가 수행원 편에 화씨벽을 대왕께 돌려보냅니다. 신은 진나라에서 죄를 얻어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대왕의 명을 욕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왕이 한탄하며 말했다.

「상여가 과연 자기가 한 말을 어기지 않았구나!」

한편 진소양왕은 거짓으로 5일 동안 목욕재계하여 몸을 정결하게 한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행하지 않았다. 이윽고 5일의 시간이 지나자 소양왕은 수많은 예물로 장식한 전당에 성대한 의식을 준비하게 한 후에 진나라에 와 있는 제후국들의 사자들을 모두 의식에 참여하도록 영을 내려 화씨벽을 접수하는 의식을 구경하도록 했다. 그것은 진왕의 위세를 열국의 사자들에게 과시하고자 함이었다. 전당의 옥좌에 앉은 진왕은 의식의 진행을 맡아보는 찬례관(贊禮官)에게 명하여 조나라의 사신을 전당 위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상여는 침착한 모습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전당 안으로 들어왔다. 인상여가 소양왕에게 알현하는 의식을 마쳤으나, 상여의 손에는 화씨벽이 들려있지 않았다. 소양왕이 인상여에게 물었다.

「과인이 이미 5일 동안 목욕재계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씨벽을 받는 의식을 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화씨벽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진나라는 목공(穆公)이래로 지금까지 20여 임금이 있었는데 모두가 사술로써 외국을 대했습니다. 멀게는 기자(杞子)라는 장수는 정나라를 속였으며3) 정나라 원정군의 대장이었던 맹명시(孟明視)는 사로잡혔다가 풀려날 때 당진의 군주를 속였습니다. 가깝게는 상앙은 위나라의 장수 공자앙을, 장의는 초나라 회왕을 속여 농락했습니다. 옛날을 돌아보면 진나라가 외국에 신의를 지키지 않은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신이 오늘 오로지 대왕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게 되면 저희 조왕의 뜻을 저버리게 되는 일만을 걱정하여 저의 수행원 중의 한 사람에게 화씨벽을 주어 지름길을 취하여 조왕에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신에게 마땅히 죽음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소양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대는 내가 불경스럽다고 말하여, 나는 5일 동안 목욕재계하여 몸을 정결하게 한 후에 성대한 의식을 벌려 화씨벽을 넘겨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대는 오히려 화씨벽을 조나라에 돌려보냈으니 이것은 분명 과인을 심히 기만한 행위다.」

소양왕이 좌우의 시위 무사에게 호통을 쳐서 인상여를 포박하라고 명했다. 인상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한 목소리로 소양왕에게 말했다.

「대왕은 잠시 노여움을 걷으시고 소신에게 한 말씀 올리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일어난 일의 경위를 따져보면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여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잘못한 일이지 결코 조나라가 진나라에 잘못한 일은 아닙니다. 대왕께서 진심으로 화씨벽을 얻으시고자 하신다면 먼저 유양의 15개 성을 먼저 조나라에 때어주시고, 이어서 한 사람의 사자를 소신에게 딸려 보내시어 조나라에 들어가 화씨벽을 받아오라고 하면 될 입니다. 조나라가 어찌 감히 성을 먼저 얻어놓고 화씨벽을 넘겨주지 않아 천하의 제후들에게 그 신의를 잃고 또한 대왕에게 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스스로 대왕을 속여 대죄를 지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신은 이미 저희 조왕께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원컨대, 저를 가마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이시어 진나라가 화씨벽을 얻으려 하다가 조나라 사자를 죽여 그 잘못이 어디에 있었다는 사실을 천하의 제후들에게 알리시기 바랍니다.」

소양왕과 그 신하들은 모두가 서로 얼굴만을 쳐다보며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제후국들에서 온 사자들은 인상여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모두 두려워했다. 좌우에 시위하던 무사들이 인상여를 참수하기 위해 밖으로 끌고 나가려고 하자 소양왕이 큰 소리로 외쳐 멈추게 하면서 여러 군신들을 향해 말했다.

「조나라 사신 인상여를 죽인다면 화씨벽을 못 얻어 일은 헛되고, 또한 우리 진나라는 의롭지 못하다는 허물만 뒤집어쓰게 된고 이어서 진과 조 두 나라의 우호관계도 끊어지게 될 것이다.」

소양왕은 즉시 인상여를 후하게 대접하고 예를 갖추어 조나라에 돌아가도록 했다. 염옹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다음과 같이 논했다.

「진나라가 성읍을 공격하여 빼앗아 간다 해도 달리 어찌 할 수 없었는데 단지 벽옥 한 개가 어찌 그리 귀하다고 생각했겠는가? 인상여가 뜻한 바는 단지 조나라가 진왕에게 기만을 당하여 화씨벽을 빼앗김으로서 진나라가 조나라를 얕보아 장래에 나라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게 됨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진나라가 계속해서 땅을 떼어 바치라든지, 아니면 인질을 보내라든지 한다면 조나라는 거역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이와 같이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여 진왕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인재가 조나라에도 있음을 알려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인상여가 조나라에 귀국하자 혜문왕은 그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상대부의 작위를 내렸다. 그 후에 진나라는 결국 조나라에 성을 내주지 않았으며 조나라도 역시 화씨벽을 진나라에 바치지 않았다.

4. 奉公守法(봉공수법)

- 귀척에게 공법을 밝혀 집행하다. -

진소양왕은 화씨벽의 일로 해서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다시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어 조왕과 민지(澠池)4)라는 땅에서 만나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공고히 다지자고 청했다. 혜문왕이 조나라 군신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옛날 진나라가 초나라의 회왕을 속여 회맹을 하자고 해놓고 그를 함양으로 데려가 구금하여 결국은 그곳에서 죽게 만들었다. 아직도 초나라 사람들은 그 일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다시 과인을 청하며 회합을 하자고 하니 진나라가 초회왕을 대했던 것처럼 과인을 대하지 않는다고 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염파와 인상여가 머리를 모아 상의하였다.

「왕이 만약 가지 않는다면 진나라에게 우리의 약점을 보이게 됩니다!」

이어서 두 사람이 혜문왕 앞으로 나가 상주하였다.

「신 상여는 원컨대 수행하여 어가를 보호하고 장군 염파는 태자를 보좌하여 나라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조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상여는 옛날 화씨벽도 능히 보전할 수 있었는데 과인이라고 해서 어찌 보전하지 못하겠는가?」

평원군 조승이 말했다.

「옛날 송양공이 군사를 대동하지 않고 회맹에 참석하여 초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혔었습니다. 또한 노정공(魯定公)이 제경공(齊景公)과 협곡(夾谷)에서 만날 때 좌우의 사마들을 호종시켜 신변의 안전을 꾀했습니다.5) 오늘 비록 상여가 어가를 수행한다고 하나 그 한 사람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으니 정예한 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대왕을 호종하게 하시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대군을 출동시켜 회합하는 장소에서 30리 떨어진 곳에다 진을 치게 하여 만전을 기하십시오.」

「5천 명의 정예병을 선발해서 데려간다면 누구를 대장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신은 옛날부터 전부(田部)의 하급 관리 조사(趙奢)란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야 말로 진실로 대장의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대장의 재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까?」

「조사가 전부의 관리로서 조세(租稅)를 거둘 때 신의 가신들이 기한이 넘도록 세금을 내지 않자, 그가 신의 가신들을 그 일로 붙잡아 가서 치죄하여 아홉 명이나 사형에 처했습니다. 신이 노하여 조사를 불러다가 꾸짖자 그가 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법입니다. 만일 오늘 군의 가신들에게 죄를 주지 않고 방면해 나라의 일을 집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법을 깨뜨리게 되는 행위입니다. 법을 깨뜨리게 되면 그것은 곧 나라가 쇠약하게 되어 만일 제후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쳐들어온다면 우리나라는 결코 보존할 수 없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군의 집안인들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군이 나라에서 귀한 신분인 까닭은 공사를 법대로 집행한 것 때문이며, 법이 서게 되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그리되면 군께서는 부귀를 오래도록 누리게 될 것인데 어찌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이와 같이 그는 심모원려가 비상한 사람이라 신은 곧 그가 대장의 재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왕이 즉시 조사를 불러 중군대부에 임명하고 군사들 중에서 선발한 정예병 5천 명을 이끌고 자기를 호종하게 하였다. 평원군은 대군을 지휘하여 조왕의 일행과는 거리를 두며 그 뒤를 따랐다. 염파가 조왕의 일행을 전송하여 따라 나섰다가 국경에 이르자 조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지금 호랑이나 승냥이와 같은 진나라의 경내에 들어가시니 참으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대왕께서는 소신에게 약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왕께서 가시는 길의 여정을 헤아려본 바 회합하는 장소에 가서 진왕과 서로 간에 예를 행하고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상의하는 데는 30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약 30일 지나도 대왕께서 돌아오시지 못하신다면, 옛날 초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거울삼아 태자를 왕으로 세우고 진나라와의 국교를 끊겠습니다.」

조왕이 염파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5. 智勇雙全 不辱使命( 지용쌍전 불욕사명)

- 지혜와 용기로 그 군주를 욕보이지 않게 하다. -

이윽고 조왕의 일행이 먼저 민지에 당도하자 진왕도 역시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하여 각기 자기의 관사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윽고 회합하기로 한 날이 되자 두 나라의 왕들은 서로 상견례를 취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환담하였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분위기가 거나하게 되었을 때 진왕이 조왕에게 말했다.

「과인은 옛날에 조왕께서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지금 과인에게는 보물과 같이 귀히 여기는 거문고가 여기 있으니 청컨대 저에게 한 번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수치감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감히 진왕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진왕을 모시던 시종 한 사람이 거문고를 들고 조왕의 면전으로 가져갔다. 조왕이 거문고를 받아들고 <상령(湘靈)>이라는 곡을 연주하였다. 진왕이 조왕의 거문고 타는 솜씨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윽고 진왕이 상령곡의 연주를 마친 조왕을 향해 말했다.

「과인은 조나라의 시조와 그 뒤를 이었던 군주들이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과연 조왕께서도 가문의 전통을 이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진소왕이 대동하고 왔던 사관들을 불러 조왕이 자기 앞에서 거문고를 탔다는 것을 사서에 써넣도록 했다. 진나라의 사관이 붓을 들고 목간에다 다음과 같이 기재하였다.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이 조왕과 민지에서 회합을 하고 조왕에게 명하여 거문고를 타게 했다.」

인상여가 보고 앞으로 나오더니 진왕을 향해 말했다.

「진왕께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을 들으신 저희 조왕께서는 신에게 삼가 이 분부(盆缶)6)를 바치게 하여 이것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한 곡 불러, 이 회합을 즐겁게 해 주실 것을 청하셨습니다.」

진왕이 노하여 얼굴색이 벌겋게 변하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상여는 즉시 술이 가득 찬 술단지를 들고 진왕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끓으며 그것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어 노래 부르기를 청했다. 진소양왕이 여전히 술단지를 두드리려고 하지 않자 인상여가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진나라의 세력이 강하다고 믿고 계시는 듯하나, 오늘은 단지 소신과는 다섯 발자국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 상여의 머리로 대왕의 몸을 피로 물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소양왕의 좌우에 있던 측근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참으로 무례한 자로다!」

그들이 앞으로 달려 나가 붙잡으려고 하자 인상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까지 곤두세워 큰소리로 일갈하자 달려들던 소양왕의 측근들은 모두 크게 놀라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뒷걸음질을 쳤다. 소양왕은 결코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인상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인상여가 바친 술단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인상여가 이윽고 몸을 일으키더니 조나라에서 데려온 사관을 불러 역시 목간에 자기가 부르는 대로 적게 하였다.

「모년 모월 모일에 조왕은 진왕과 민지에서 회합을 하다가 진왕에게 명하여 분부를 연주토록 했다.」

진왕이 모욕을 당한 것에 분노한 진나라의 신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조혜문왕 앞으로 가서 무례한 요구를 하였다.

「오늘 조왕께서 이곳으로 왕림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청컨대 조나라의 15개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쳐 우리 대왕님의 만수를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인상여도 역시 자리에 일어나 진왕 앞으로 가더니 말했다.

「예란 서로 주고받아야만 합니다. 조나라가 이미 15개 성을 떼어 진나라에 바쳤다면 진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주어 보답해야 합니다. 청컨대 진왕께서는 함양성을 떼어 바쳐 우리 조왕의 만수를 빌어주십시오.」

소양왕이 큰 소리로 진나라의 신하들을 꾸짖었다.

「두 나라의 군주들이 회합을 하여 양국 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대들은 왜 이리 잔말이 많은가?」

진왕은 즉시 좌우의 측근에게 명하며 술잔에 술을 따라 돌리게 하고 짐짓 유쾌하게 즐긴 척 하다가 연회를 파했다. 진나라의 객경 호상(胡傷) 등이 진왕에게 가서 조왕과 인상여를 붙잡아 억류시켜야 한다고 은밀히 권했다. 진왕이 대답했다.

「내가 보낸 첩자가 와서 보고하기를 조나라는 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소. 만일 섣불리 일을 행했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이어서 소양왕은 조왕을 더욱 공경하며 결의형제를 맺고 두 나라는 영원히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어서 소양왕은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安國君)의 아들 중에서 이인(異人)이란 공자를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기로 약속했다. 진나라의 대신들이 모두 불평을 하며 소양왕에게 말했다.

「형제의 맹약을 맺은 것만으로 족한 일인데 하필이면 인질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양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조나라는 바야흐로 국세가 강성해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도모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인질을 보내지 않는다면 조나라는 믿지 않을 것이다. 조나라가 우리를 믿게 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는 공고해지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한나라 경영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음이다.」

진나라의 신하들은 모두 소양왕의 의견에 탄복하였다. 조왕이 진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정확하게 30일 만에 귀국했다. 조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과인은 인상여 덕분으로 태산과 같은 신변의 안전을 얻었고 이제 우리 조나라의 사직은 구정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인상여의 공이라 하겠다. 어떤 신하들일지라도 그의 공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조혜문왕은 즉시 인상여를 상경으로 임명하고 그의 직위를 염파보다 높게 두었다.

6. 將相和(장상화)

- 나라를 지키는 근본은 문무의 조화다.

인상여가 자기보다 높은 직급을 차지하자 염파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큰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헛되이 혀만 놀려 별로 애쓴 일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인상여라는 사람은 내시 나부랭이의 문객 노릇을 했던 출신이 미천한 자인데 내가 어찌 그의 밑에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인상여가 내 눈에 띠기만 한다면 내 결코 그를 살려두지 않으리라!」

인상여는 염파가 한 말을 전해 듣고 조회를 열 때마다 병이 들었다고 참석하지 않아 염파와 마주쳐 분쟁이 생기는 경우를 피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가 매우 겁이 많다고 하면서 서로들 모여 앉아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밖으로 외출을 나갔는데, 그때 마침 염파도 외출을 나왔다. 염파가 탄 수레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인상여는 황급히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골목길로 몰아 염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큰길로 나왔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더욱 화를 내며 서로 의논을 하더니 이윽고 상여를 찾아가 항의했다.

「우리들이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대감 밑으로 들어와 문객이 된 이유는 대감은 당대의 대장부라 생각하고 서로 사모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지금에 있어서 대감과 염파 장군은 동급의 작위에 서열은 오히려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염파 장군은 매 번마다 대감에게 욕을 하고 다님에도 대감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먹기는 고사하고 조회에도 나가지 못하다가 오늘은 외출 나갔다가 골목길에 숨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대감께서는 그리도 염파를 무서워하십니까? 우리들은 대감과 같은 겁쟁이 밑에서 문객 노릇을 하고 있는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오를 대감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이 집을 떠날까 합니다.」

인상여가 문객들을 간곡하게 만류하며 말했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여러분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이 물었다.

「우리들은 천박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청컨대 대감께서 그 연유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염파장군이 진왕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진왕의 위세는 천하의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여는 진왕을 그의 궁정 뜰에서 야단을 쳤으며 그의 신하들을 욕보였습니다. 이 상여가 비록 재능이 없고 아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 유독 염파 한 사람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강포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에 군사를 보내 침략하지 않는 이유는 다만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면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어려울 터인데, 진나라가 그 소식을 듣게 되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 두 사람의 분쟁을 이용하여 침공해올 것입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파장군을 피하기만 한 이유는 나라의 일을 중하게 여기고 사사로운 원한을 더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의 말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여와 염파의 문객들이 뜻밖에 주막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양쪽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비가 붙게 되었다. 인상여의 문객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 리 인상여 대감은 나라의 일을 더 중하다고 여겨 염장군에게 양보하고 있다. 우리들도 마땅히 주인의 뜻을 본받아 염장군의 문객들에게 양보하겠다.」

그래서 염파의 문객들은 더욱 교만해졌다.

그때 마침 하동인(河東人)우경(虞卿)이라는 사람이 조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상여의 문객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조왕을 만나 말했다.

「대왕께서는 지금 조나라의 신하들 중 가장 신임하고 있는 사람은 인상여와 염파가 아닙니까?」

조왕이 대답했다.

「그렇소!」

「신이 듣기에 옛날의 조나라 조정에는 본받을만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가득하여 서로 삼가하고 마음을 합하여 공사에 힘쓰며 공경하는 자세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믿고 계시는 두 사람의 중신들은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물과 불같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조나라의 사직에 좋지 않는 일입니다. 무릇 인상여와 그의 편에 속한 사람들은 더욱 양보만 하고 있고, 이와는 반대로 염파와 그에 속한 사람들은 인상여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염파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욱 교만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인상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감히 그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정에 일이 있어도 서로 같이 의논하지 못하고 장차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되어도 서로 구하려고 하지 않으니, 신은 대왕을 위해 마음속으로 걱정한 끝에 염파와 인상여를 서로 화해시켜 대왕을 도우려고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우경의 청을 허락하였다.

7. 負荊請罪 刎頸之交(부형청죄 문경지교)

- 잘못을 깨달은 염파가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에게 사과하자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 하는 결의형제를 맺었다.

우경은 즉시 염파의 집을 방문하여 먼저 염파가 세운 공로를 칭송하였다. 염파가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조나라에 끼친 공로를 말한다면 장군만한 사람은 없으며 도량이 크기를 말한다면 인상여 대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염파가 듣더니 얼굴색을 바꾸어 화를 내며 말했다.

「그자는 한낱 겁 많은 필부에 불과할 뿐이라 혓바닥만 나불거려 공명을 취한 자인데 어찌 도량 운운하십니까?」

「인상여는 겁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도량이 매우 큰 사람입니다.」

우경이 이어서 인상여의 문객들이 하는 말을 염파에게 상세하게 들려주며 덧붙여 말했다.

「장군이 만약에 조나라에 몸을 두지 않기로 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기왕에 조나라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면 두 사람의 대신들 중 한 사람은 마냥 양보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대신은 마냥 시비만 걸고 있으니 내가 걱정하는 바는 결국은 이름을 떨치게 되는 사람은 장군이 아니고 인상여 대감인 것이요.」

염파가 듣고 크게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선생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인상여 대감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우경을 먼저 인상여에게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이어서 자기는 윗통을 벗어 육단(肉袒)의 몸으로 몽둥이를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자 큰 소리를 쳐 사죄의 말을 했다.

「비루한 사람의 천박하고 좁은 소견으로 상국의 넓고 큰 도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렇듯 교만하게 행세했으니 나는 죽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인상여의 집 앞뜰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인상여에게 죄를 청했다. 인상여가 소식을 듣고 급히 집안에서 뛰쳐나와 염파를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주군을 모시고 있어 사직을 지키고 있는 신하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장군은 능히 이제 나의 뜻을 헤아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장군께서 번거롭게 나에게 죄를 청하시는 것입니까?」

「소인은 성격이 천박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또한 포악하기조차 합니다. 대감의 너그러운 은혜를 입었으니 참으로 내가 부끄러워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염파가 인상여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인상여도 역시 염파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 염파가 말했다.

「오늘부터 대감과 생사를 같이하는 결의형제를 맺어 비록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변치 않겠습니다.」

염파가 먼저 인상여에게 절을 올리자 상여도 같이 절을 하여 답하였다. 이어서 인상여는 술을 내와 잔치를 벌려 염파를 극진히 대하며 서로 즐겁게 놀다가 헤어졌다. 후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맺은 교우관계를 일컬어 문경지교(刎頸之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무명씨가 시를 지었다.

수레를 골목으로 몰아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넓다 하겠거니와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 육단을 행한 염파도 역시 영웅이라!

지금의 사람들은 분분하게 서로 자기 세력을 다투기에 바쁘니

그 누가 나라를 위해 가슴에 웅대한 계책을 지니고 있겠는가?

引車趨避量誠洪(인차추피량성홍)

肉袒將軍志亦雄(육단장군지역웅)

今日紛紛競門戶(금일분분경문호)

誰將國計量胸中(수장국계량흉중)

조혜문왕은 우경에게 황금 백일을 하사하고 상경의 벼슬을 내렸다.

8. 兩鼠鬥穴 勇者取勝(양서투혈 용자취승)

- 좁은 구멍 안에서 두 마라의 쥐새끼가 싸우면 용기 있는 쪽이 이긴다. -

그때 진나라 대장 백기(白起)9)는 대군을 이끌고 무관을 나가 남진하여 초나라의 대군을 격파하고 그 도성인 영도를 점령했다. 백기는 초나라가 도읍한 영성 일대에 남군(南郡)을 설치하고 진나라의 군현으로 삼았다. 초나라의 경양왕은 동쪽으로 달아나 진성(陳城)에 도읍을 세워 간신히 초나라의 명맥을 이었다. 다시 진나라의 촉군태수 장약(張若)이 군사들과 함께 장강의 물결을 타고 내려와 초나라의 검중군을 공격, 점령하여 진나라의 군현으로 삼고 치소를 임원(臨沅)10)에 두었다. 초나라는 대부분의 땅을 진나라에 빼앗기고 더욱 쇠약해져 갔다.

이어서 초왕은 태부 황헐(黃歇)을 시켜 태자 웅완(熊完)을 진나라에 데려가 인질로 삼게 하고 화의를 청하게 했다. 초나라와 강화를 맺은 백기의 진군은 그 진격 방향을 바꾸어 위나라를 공격해 왔다. 이윽고 진나라 군사들이 대량성에 이르자 위나라는 포연(暴鳶)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출동시켜 진나라의 군사를 막도록 했다. 그러나 위나라 대장 포연은 싸움에 패하고 그가 거느린 군사 4만 명이 참수 당했다. 위나라는 세 개의 성을 진나라에 바쳐 강화를 청했다. 진나라는 그 공으로 백기를 무안군에 봉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객경 호상이 다시 진군을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 장수 망묘(芒卯)를 패주시키고 남양(南陽)을 점령했다. 진나라는 그 땅에 남양군을 설치하고 자국의 군현으로 삼았다. 진왕은 위염(魏冉)의 공을 치하하여 양(穰)에 봉하고 양후라는 봉호를 내렸다. 진왕이 다시 호상(胡傷)에게 군사 20만을 주어 한나라 정벌군을 일으켰다. 호상이 한나라 땅으로 진격하여 연여(閼與)11)를 포위하자 한왕이 조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조혜문왕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물었다.

「우리가 한나라를 구해야하는가? 아니면 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상여(藺相如), 염파(廉頗), 악승(樂乘) 등이 모두 말했다.

「연여로 가는 길은 험하고 또한 협소합니다. 구원군을 보내도 행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평원군 조승이 말했다.

「한나라와 조나라는 마치 입술과 이와 같은 사이라서 한쪽이 없어지면 남은 한쪽은 외롭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하지 않아 한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진나라의 창끝은 바로 조나라를 향할 것입니다.」

그때 조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조혜문왕이 조사에게 의견을 묻자 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

「연여로 가는 길이 험하고 좁습니다. 그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쥐새끼가 좁은 쥐구멍 안에서 싸우는 격이 되어 결국은 용기 있는 쪽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조왕이 정예병사 5만을 선발하여 조사에게 주고, 출전하여 한나라를 구원하라고 명했다. 조사의 부대가 한단성을 나와 30리쯤 나왔을 때 진채를 세우고 보루를 높이 쌓으라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군사들 각자의 위치에 배치하는 일이 정해지자 다시 군령을 내렸다.

「군사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자가 있다면 참한다!」

이어서 영문을 굳게 닫고 베개를 높이 하여 태평스럽게 지내니 조나라의 군중은 적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연여의 한나라 수비군의 상황은 매우 위급한 처지에 있었다. 진나라 군사들이 성을 공격하면서 북을 치고 소리를 질러 그 함성소리가 마치 벼락치는 소리와 같아 연여의 성중에 있던 가옥의 기와가 들먹거릴 정도였다. 조나라의 군리 한 명이 달려와 진나라의 군세가 매우 흉맹하다고 조사에게 보고했다. 조사는 군리가 군령을 어겼다고 목을 베고 군사들에게 그 목을 보였다. 조사의 군사들은 28일이 되도록 앞으로 진군하지 않고 매일 보루를 높이고 해자를 깊이 파면서 그 자리를 굳게 지키려고만 했다.

9 . 單解韓圍(단해한위)

- 진군에게 포위된 한나라를 일격에 구원한 조사 -

진나라 장수 호상은 조나라 군사들이 연여를 구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비를 하고 있었으나 한 달이 넘도록 보이지 않자 다시 첩자를 보내 조나라 군사들의 동향을 탐문해오도록 했다. 첩자가 돌아와 호상에게 보고했다.

「조나라가 과연 소문대로 조사를 대장으로 삼아 구원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한단성을 나와 30리 되는 곳에서 행군을 멈추고 진채를 새우고 보루만 높이 쌓아 앞으로 더 이상 진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호상이 첩자의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좌우의 심복을 사자로 삼아 직접 조나라 진영으로 보내 실정을 알아보게 했다. 진나라의 사자는 조나라 진영에 당도하여 조사를 접견하며 호상의 말을 전했다.

「진나라가 연여를 공격하기 시작하여 이제 며칠만 있으면 점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만일 능히 우리 진나라에 대적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연여성이 떨어지기 전에 속히 진군하여 우리 진나라와 일전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저희 조왕께서는 이웃나라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 조사를 보내 그에 대한 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진나라와 능히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는 진나라의 사자에게 술과 음식을 내와 후하게 대접하고 그에게 높이 쌓은 조나라 진채의 보루를 두루 구경시켰다. 진나라 사자는 돌아와 호상에게 자기가 듣고 본 정황을 모두 보고했다. 호상은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조나라 군사들이 겨우 30리를 행군하여 진채를 세우고 보루를 높이 쌓아 앞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으니 이것은 스스로를 굳게 지키려고만 하고 우리와는 싸우려는 의사가 없음이다. 연여는 이제 우리의 땅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서 호상은 조나라에 대한 방비를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한나라를 공략할 생각에만 몰두하였다.

조사는 진나라 사자가 돌아가고 3일 째 되는 날, 그가 이미 진나라 군중에 당도했으리라고 생각하여 즉시 령을 내려 활을 잘 쏘고 싸움에 익숙한 기마병 만기를 선발하여 선봉으로 삼고 나머지 대군은 그 뒤를 따르게 했다. 다시 모든 군사들에게 함매를 입에 물리고 갑옷을 벗어 행장을 가볍게 한 다음 밤낮으로 행군을 시켰다. 조사의 군사들은 하루 밤과 이틀 낮 동안을 행군하여 이윽고 한나라 영토 안으로 들어가 연여성에서 15리 떨어진 곳에다 진채를 세우고 보루를 쌓았다. 호상이 보고 대노하여 휘하의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일대는 연여성을 포위하게 남겨 두고 나머지 일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조나라 군사들을 중도에서 맞이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조나라 군영에 허력(許歷)이라는 소졸이 있었는데 목간 한 개에 ‘청간(請諫)’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조사가 머무는 막사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바쳤다. 조사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기가 내린 군령을 취소하고 그를 불러 막사 안으로 불러 물었다.

「나에게 할 말이 무엇이냐?」

「진나라 군사들은 불시에 아군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그 기세가 매우 흉맹합니다. 원수께서는 우리의 진영을 더욱 두텁게 해서 그들의 돌격에 방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우리는 싸움에 필시 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대의 말대로 하겠다.」

조사가 즉시 전령을 내어 밀집대형을 취하도록 조치하여 진나라의 돌격에 방비하도록 했다. 허력이 다시 말했다.

「병법에 의하면 ‘이로운 지세를 취하는 자가 싸움에 이긴다’라고 했습니다. 연여의 지세를 살펴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지이고 오직 산 하나가 북쪽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 장수는 아직 그곳을 차지하여 굳게 지키면서 우리 조군의 진군을 막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원수께서는 속히 그곳으로 진군하여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계책이다.」

조사가 즉시 명을 내려 허력에게 만 명의 군사를 내주며 연여의 북산을 점령하고 그곳에 주둔하도록 했다. 북산에 오른 조나라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북산의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호상이 진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진격해 왔다. 가파른 경사면을 담대한 몇 명의 진나라 군사들이 기어올랐으나 모두가 산의 정상에서 굴리는 돌덩어리에 맞고 부상을 입었다. 대노한 호상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장수들과 사졸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북산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도록 했다. 이때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며 조사와 그 군사들이 진나라 진영을 향해 쇄도해 쳐들어왔다. 호상은 군사들을 이 대로 나누어 한 대로 하여금 조사의 군사들을 막도록 했다. 조사는 활쏘기에 능한 군사 만 명을 각각 5천명씩 좌우 두 대로 나누어 양쪽에서 진나라 군사들을 향해 화살을 쏘도록 했다. 또한 산 정상에 있던 허력도 만 명의 군사들을 휘몰아 산 밑으로 내달려 내려와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지르면서 진나라 진영으로 돌진했다. 조나라 군사들은 진나라 군사들을 앞뒤에서 협공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 비 오듯이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그 동료들이 죽어 넘어가자 마치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무너지는 마음에 아무데고 몸을 피할 수 없게 된 진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대패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군 대장 호상은 달아나다가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땅에 곤두박질쳐져 조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려는 순간, 마침 병위(兵尉)의 직에 있는 아장 사리(斯離)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사력을 다해 구해냈다. 조사는 도망가는 진나라 군사들의 뒤를 50여 리 밖까지 추격했다. 진나라 군사들은 조사의 추격군 때문에 진채를 세울 틈도 없이 오로지 서쪽을 향해 도망쳤다. 이어서 연여를 포위하고 있던 진나라 진영의 군사들도 진채를 거두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한나라의 안리왕이 연여를 방문하여 군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국서를 써서 조왕의 은혜에 감사했다. 조왕은 조사를 마복군(馬服君)에 봉하고 그의 직위를 인상여 및 염파와 같은 반열로 올렸다. 조사는 허력이 재주가 있다고 조왕에게 천거하자 조왕은 그를 국위(國尉)로 삼았다.

10. 紙上談兵 兵家大忌(지상병담 병가대기)

- 책속의 병담은 병가가 크게 경계하는 법이다. -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은 어렸을 때부터 병법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집에서 전해 내려오던 육도삼략(六韜三略)12)의 책을 한번 읽고 모두 통달했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 부친인 조사와 병사의 일에 관해 논하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땅에는 그림까지 그려 가면서 하는 말은 막힘이 없었다. 조괄은 자기가 병법을 통달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조사도 역시 그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조괄의 모친이 그의 재주를 기뻐하며 말했다.

「나의 아들이 이렇듯 총명하니 참으로 대장의 가문에서 대장 감이 나오는구나!」

조사가 듣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불쾌한 목소리로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괄이란 놈은 장수가 되면 안 되오. 괄이란 놈을 장수로 발탁하지 말아야만 조나라의 사직이 안전할 것이오.」

조사의 부인이 그 연유를 물으며 말했다.

「 괄은 당신이 갖고 있는 병법에 관한 책을 전부 독파하여 그의 병사에 관한 이론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데 당신은 그를 장수로 쓰면 안 된다고 하니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괄이란 놈은 자기를 당할 자는 천하에 없다고 자부하고 있소. 그 교만한 마음 때문에 그가 장수가 되면 안 된다고 했소. 무릇 병사의 일이란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것이라, 싸우기 전에는 전전긍긍하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들어야하며 그럼에도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 하는 것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오. 그러나 괄이란 놈은 군사에 대한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만약에 그가 조나라의 병권을 쥐게 된다면 필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충성스럽고 훌륭한 계책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싸움에 임하게 되면 결국 패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오.」

부인이 조사의 말을 조괄에게 전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부친께서는 연로하시어 겁이 많아진 것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즉 기원전 268년 조사가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조사가 조괄을 불러 마지막 당부의 말을 했다.

「무릇 병사란 흉기이며 싸움이란 항상 위태로운 것이라고 옛 사람들도 경계했던 일이다. 너의 아비인 나도 수년간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지만, 오늘에서야 패전의 치욕을 당하지 않고 편안히 눈을 감고 죽을 수가 있게 되었다. 너는 결코 장수의 재목이 되지 못하니 결코 망녕되이 대장의 자리에 올라 가문의 문을 닫게 하지 말라!」

조사는 다시 자기의 부인을 불러 다시 당부하였다.

「후일 만약에 조왕이 괄을 불러 대장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나의 유언을 고하고 절대 괄을 대장에 임명하면 안 된다고 말하시오. 싸움에서 져서 군사를 잃고 나라에 치욕스러운 일이 미치게 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오.」

조사는 말을 마치고 이윽고 숨을 거두었다. 조왕은 조사의 공을 생각하여 조괄로 하여금 그의 부친이 가지고 있던 마복군의 직위를 물려받게 해주었다.

<제 98회로 계속>

주석

1)유양(酉陽)/ 진(秦)왕조를 대신한 한조(漢朝) 때 지금의 호남성 서부의 무릉(武陵) 지구를 흐르는 원수(沅水: 지금의 원강(沅江))의 지류에 유수(酉水)라는 강이 있는데 유양(酉陽)은 유수 강안의 고을이었음. 그러나 본문의 내용으로 봐서 진나라가 화씨벽과 바꾸자고 한 땅은 이 곳이 아니며 그 정확한 장소는 확인 할 수 없음.

2)구빈대전(九賓大典)/중국 고대에 있어서 외교상 상대국의 사신을 맞이하는데 행하는 가장 정중한 의식. 아홉 명의 의전관이 열을 지어 사신을 왕이 앉아 있는 전당 위로 인도하는 의식임.

3)기자(杞子)/연의 제 44회에 나오는 인물로 진목공이 정나라를 도우라고 남겨둔 장수로서 진나라가 비밀리에 군사를 출동시킨다면 자기가 성안에서 내응하여 정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고 건의했다. 이에 진목공(秦穆公)은 맹명시(孟明視)등을 대장으로 삼아 정나라 정벌군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회군하던 중에 황하의 남안의 효산(殽山)의 험지에서 매복하고 있던 당진군에게 포위 당한 결과 전멸을 당했다. 본서 45회의 내용 참조.

4)민지(澠池)/ 지금의 하남성 민지현(澠池縣) 경내. 낙양시 동쪽 약 50키로 지점에 위치한 고을로 춘추전국시대 때 진(秦)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는데 통과해야 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5)본서 78회에 나오는 내용으로 기원전 500년 노정공이 지금의 산동성 래무현(萊蕪縣)인 협곡에서 공자와 노나라의 좌우 사마들인 대부 신구수(申句須)와 락기(樂頎)가 이끄는 군사들을 대동하고 제경공과 회합한 것을 말한다.

6)분부(盆缶)/ 액체를 담는 도기로 만든 용기의 하나. 달걀을 눕혀 놓은 모양으로 그 중간에는 좁은 아가리가 나 있다. 고대의 진나라 풍속에 연회장에서 이것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7)하동(河東)/ ①전국(戰國), 진한(秦漢) 때 지금의 산서성 남쪽 지방을 부르던 지명이다. 그 땅이 황하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② 전국 때 위나라가 설치한 군(郡) 이름이다. 관할 구역은 지금의 산서성 심수(沁水) 이서와 산서와 하남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황하의 북쪽 및 산서와 섬서의 경계인 황하의 이동지방과 곽산(霍山) 이남지방이다.

8)우경(虞卿)/ 전국 때 사람으로 이름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조효성왕(趙孝成王)을 찾아가 유세하여 상경에 임명되고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平陸縣)인 우(虞) 땅을 봉지로 받았다. 이에 우경이라 한 것이다. 진과 조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장평대전(長平大戰)이 벌어지기 직전에 우경은 조왕에게 많은 보물과 함께 사자를 초(楚)와 위(魏) 두 나라에 보내 회유하여 조나라 측에 끌어들여 진나라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조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서 진나라가 공격해오자 조나라는 장평의 싸움에서 지고 그 군사 45만을 잃었다. 진나라는 승세를 타고 계속 진격하여 조나라의 도성인 한단을 포위했다. 초와 위 두 나라가 구원군을 보내자 진나라는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다. 조왕이 진나라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조나라의 땅을 떼어 바치고 진나라와 강화를 맺으려고 하였다. 우경은 온 힘을 다하여 진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했다. 조왕이 자기의 뜻을 꺾고 우경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고 했다. 후에 위제(魏齊)와의 우의를 지키기 위해 조나라의 만호에 달하는 봉읍과 재상의 인장을 버렸다. 원래 위제는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진나라의 재상 범수(范睢)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범수가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위나라에 위제의 목을 요구했다. 위제가 위나라에서 달아나 조나라로 들어가 평원군의 집에 숨었으나 진나라가 조나라를 위협하여 위제를 잡아 보내라고 했다. 조왕은 군사를 평원군의 집에 보내 사로잡으려 하자 위제는 다시 평원군의 집에서 나와 우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경은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들어가 신릉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신릉군이 만나주지 않자 위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경은 그 일로 해서 대량성(大梁城)에서 고난을 겪었다. 저서에 <우씨춘추(虞氏春秋)> 15편이 있다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9)백기(白起)/전국 때 진나라의 장군. 태어난 해는 확실치 않고 기원전 257년에 죽었다. 지금의 섬서성 미현(眉縣)인 미(郿) 출신으로 진나라 소양왕 때 좌서장(左庶長)으로 임용되어, 좌경(左更), 국위(國尉), 대양조(大良造)의 직을 역임했다. 용병에 대단히 능하여, 한, 위, 조, 초 등의 나라를 공격하여 수많은 땅을 점령하여 진나라 땅으로 삼았다. 소양왕 29년 기원전 278년 초나라의 도성인 영도를 점령하고 그 공으로 무안군(武安君)으로 봉해졌다. 조나라와의 장평(長平) 싸움에서 이겨 그 포로 45만 명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후에 진나라의 승상이었던 범수(范睢)와 사이가 벌어지고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라는 소양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가 자결을 강요당하여 죽었다.

10)임원(臨沅)/ 지금의 호남성 상덕시(常德市) 부근임.

11)연여(閼與)/ 지금의 산서성 화순현(和順縣) 서북

12)육도삼략(六韜三略)/육도(六韜)와 삼략(三略)을 말한다. 육도는 주나라의 태공망(太公望)이 삼략은 황석공(黃石公)이 전한(前漢)의 창업공신인 장량(張良)에게 전한 책이라고 전해지는데 중국 고대의 병법서이다. 단 삼략을 전해 받은 장량은 조사보다 약 50-60년 후의 전한(前漢) 때 사람이라 조괄이 육도와 함께 삼략을 읽었다는 것은 원저자인 풍몽룡의 착오이다.

[평설]

진나라의 동진정책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산동의 여러 국가들을 병탄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계속해서 그 국력을 피폐하게 하고 그 영토를 잠식했다. 그러나 산동 제국에서는 지혜 있는 사람들이 총 출동하여 큰 난제를 진나라에 던져주었다. 그것으로 인해 진나라는 마음먹은 대로 계획을 추진시킬 수 없게 되었다. 기원전 283년에 벌어진 “ 진왕을 두 번이나 굴복하게 만든 인상여” 사건은 첫째 진왕의 속임수를 간파하여 진왕이 차지하려는 화씨벽을 지켜 완벽귀조(完璧歸趙)의 정신을 구현했고, 둘째는 의도적으로 조왕을 무시하여 굴복시키기 위해 조왕에게 음악을 연주하라고 강제하자 인상여 역시 진왕을 압박하여 연주시킴으로 해서 두 나라가 대등한 나라임을 보인 것이다. 대국적인 면을 중시한 인상여는 ‘ 장군과 재상 간의 화합’을 역설하여 조나라 내부의 단결을 공고히 했다. 지혜와 용기로 두 번이나 진왕을 굴복시켜 조나라의 국제적인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상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의 동방진출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오히려 진나라로 하여금 동방 진출에 박차를 가하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기원전 280년부터 몇 년 동안 진나라는 계속해서 초나라를 공격했다. 마침내 기원전 278년 초나라의 도성 영도(郢都)가 진군에 의해 함락되자 초나라는 할 수 없이 그 도성을 지금의 하남성 동남부의 진현(陳縣)으로 옮겨야만 했다. 진나라는 초나라의 서쪽의 광활한 대부분의 땅을 점령했다. 이에 초나라의 국세는 급격하게 약화되었다. 계속해서 진나라는 정예부대의 진공 방향을 한과 위 두 나라를 향해 돌렸다. 이때의 진나라 대외정책 방침은 영토확장을 제일 목적으로 삼아 그 강역을 넓힐 수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군사를 진격시켰다. 기원전 276년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두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다음 해인 275년에는 진장 위염(魏冉)이 진군을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도성인 대량(大梁)에 이르렀다. 한나라가 포연(暴鳶)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구원하도록 했으나 포연의 한군은 진군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4만에 달하는 군사들은 참수되었다. 위나라는 온(溫) 땅을 진나라에 바치고 강화를 구했다. 기원전 274년 진나라의 객경 호상(胡傷)이 위나라를 다시 공격하여 위군 15만의 목을 베자 위나라는 다시 남양(南陽)의 땅을 진나라에 바치고 강화를 맺었다. 기원전 270년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조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조나라의 조사(趙奢)가 한나라 구원군의 대장이 되어 출전했다. 그는 진군을 멈추고 머뭇거리는 작전을 사용하여 진군의 경계심을 해이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기병을 신속하게 연여로 보내어 진군 앞을 가로막고 계속해서 연여의 지세가 높은 땅을 선점했다. 높은 곳에 주둔하여 낮은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차지한 조사의 조군은 진군을 앞뒤에서 협공하여 대파했다. “ 일격에 한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뚫고 진군을 대파한 마복군” 편은 그 일에 관한 이야기다.

진군의 동진을 초(楚), 한(韓), 위(魏) 등의 나라가 막아내지 못한 것을 조나라가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좋은 전략만 짤 수만 있다면 비록 진나라 같은 강국일지라도 막아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나라는 진과 조 사이에 있는 나라다. 그래서 한나라가 망하면 조나라는 강대국인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어, 이에 조나라는 반드시 한나라를 구원해야만 했다. 만약에 조나라가 능히 한과 위 두 나라의 합종을 지속시킬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진나라의 동방 진출을 막는 일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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