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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회 白起寃死(백기원사) 奇貨可居(기화가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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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9회 白起寃死 奇貨可居(백기원사 기화가거)

두우(杜郵)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진나라의 명장 백기와

왕손을 사서 왕국을 장사한 여불위

1. 范睢循私 白起積怨(범수순사 백기적원)

- 범수가 사적인 이해를 도모하자 백기가 원한을 품다. -

한편 조나라의 효성왕(孝成王)은 처음에는 조괄로부터 승전했다는 첩보를 받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조나라 군사들이 장평에서 포위되어 곤경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구원병을 보내려고 신하들을 불러 궁리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파발마가 달려와 올리는 보고를 받았다.

「조괄 장군은 이미 싸움 중에 전사하고 휘하의 40여 만 명의 우리 군사들은 모두 진나라에게 항복을 했으나 무안군에 의해 하루 밤 사이에 모두 살해되어 구덩이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단지 나이 어린 군사 240명만을 살려서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효성왕은 크게 놀라고 군신들은 모두가 송구하여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조나라 땅에서는 아들은 그 아비를, 아비는 그 아들을, 아우는 그 형을, 형은 그 아우를, 조부는 그 손자를, 아녀자는 그 지아비를 생각하며 통곡하면서 거리로 몰려나와 시정의 길을 가득 메워 호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괄의 모친만은 그 아들이 싸움 중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곡을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조괄이 조나라의 대장이 되자마자 이 노첩(老妾)은 다시는 살아서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왕은 옛날에 이미 조괄의 모친이 한 말이 있었음으로, 조괄의 모친과 그 가족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양식과 비단을 하사하여 그 마음을 위로했다. 다시 사람을 염파에게 보내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다. 조나라가 장평에서의 패전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다시 변경의 관리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진군이 상당(上党)을 공격하자 그곳의 17개의 성이 이미 항복했습니다. 오늘 무안군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는데 들리는 소식으로는 한단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조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그 대책을 물었다.

「누가 능히 진나라의 진군을 막을 수 있는가?」

조당의 군신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평원군이 조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빈객들을 불러 그들의 의견을 널리 구했다. 빈객들 역시 아무런 계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마침 연나라에서 사자로 온 소대(蘇代)가 평원군의 집에 묶고 있으면서 스스로 앞으로 나서며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이 소대를 만약 함양으로 보내주면 내가 틀림없이 진나라 군사들의 진격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평원군이 조왕을 찾아가 알현하고 소대의 말을 전했다. 조왕은 황금과 비단을 소대에게 크게 내주며 그것을 가지고 함양으로 들어가게 했다.

소대가 진나라의 도성 함양으로 들어가 승상 범수의 접견을 청했다. 소대에게 읍을 올리고 상좌에 앉게 한 범수가 자기를 찾은 이유를 물었다.

「선생은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것입니까?」

「대감의 안위를 걱정해서 입니다.」

「무슨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무안군은 이미 조나라의 대장이며 마복군의 아들인 조괄(趙括)을 죽이고 그 군사 40만 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승세를 탄 무안군이 한단을 공격하기 위해 진군 중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안군의 용병술은 마치 귀신과 같아, 그가 진나라 장수가 된 이래 열국의 땅을 공격하여 빼앗은 성은 무려 70여 개가 넘고 싸움에서 목을 벤 적군의 수효는 백만에 달합니다. 비록 이윤(伊尹)1)이나 여망(呂望)2)이 세운 공도 그가 세운 공보다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백기가 군사를 휘몰아 한단으로 진격하여 공격한다면 조나라는 틀림없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조나라가 망하게 되면 진나라는 결국은 제업(帝業)을 이룰수 있게 됩니다. 진나라가 제업을 이루면 무안군은 진나라의 창업공신이 되어 상조의 이윤이나 주조의 여망과 같은 원훈이 됩니다. 대감은 비록 지금은 그 직위가 높다하나, 그때가 되면 그의 밑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범수가 깜짝 놀라서 소대 앞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

「승상께서는 한과 조 두 나라에 땅을 떼어 바치면 공격을 멈추고 강화를 허락하겠다고 하십시오. 무릇 두 나라에서 땅을 떼어 바치게 하여 그 공을 승상의 것으로 하시고 다시 무안군의 병권을 거두어들인다면 승상의 지위는 마치 태산처럼 안정될 것입니다.」

범수가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 날 즉시 입궁하여 소양왕에게 상주했다.

「우리 진나라 군사들이 원정을 나간 지 오래되어 그 노고에 지쳐있습니다. 일단 군사를 불러들여 쉬게 하고, 사자를 한과 조 두 나라에 사신을 보내 그들이 땅을 떼어 우리 진나라에 바친다면 강화를 허락할 것이라고 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상국의 뜻대로 하시기 바라오.」

범수는 다시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소대에게 주며 그로 하여금 한과 조 두 나라에 사신으로 가 그 군주들을 설득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한과 조 두 나라 군주들은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모두 소대의 계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나라는 원옹(垣雍)3) 한 개의 성을 바치고, 조나라는 여섯 개의 성을 떼어주며 각기 사자를 진나라에 파견하여 강화를 청했다. 진왕이 처음에는 한나라가 바친 한 개의 성은 너무 적다고 거절하자 한나라 사자가 말했다.

「진나라가 이미 차지한 상당의 17개 현은 모두 한나라 소유의 땅이었습니다.」

소양양은 웃으며 원옹성을 받고 한나라와의 강화를 허락했다. 이어서 소양왕은 무안군에게 명하여 군사를 철수시켜 진나라로 귀환하라고 불러들었다.

2. 白起寃死(백기원사)

- 두우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진나라의 명장 백기

백기는 조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며 바야흐로 한단성을 포위하여 조나라의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던 차제에, 갑자기 회군하라는 왕명을 받자, 그것은 바로 응후의 계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일로 인해 백기는 응후에게 커다란 원한을 품게 되어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기게 되었다. 백기가 휘하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그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장평에서의 싸움에서 크게 패한 조나라의 한단성에 사는 백성들은 우리 진군이 당도했다는 소식으로 하루 저녁에 10번이나 놀랄 정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어 만약 내가 승세를 타고 한단성을 공략했다면 불과 한 달로 못되어 깨뜨릴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응후가 군사를 부리는 시세에 어두워 철수를 주장함으로 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구나!」

진왕이 백기의 말을 전해 듣고 크게 후회하며 말했다.

「백기가 한단성을 깨뜨릴 수 있었다면 어찌하여 일찍 나에게 상주하지 않았단 말인가?」

소양왕은 군사를 일으켜 백기를 다시 대장으로 임명하여 조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기는 그때 마침 병이 들어 소양왕의 명을 받들 수 없었기 때문에 왕릉(王陵)을 대신 대장으로 삼았다. 왕릉은 10만의 진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길에 올라 이윽고 조나라의 한단성을 포위하였다. 조나라의 효성왕은 염파를 대장으로 삼아 진군의 공격을 막게 했다. 염파는 성루를 굳게 지키고 군사들을 엄히 다스려 한단성의 수비를 철통같이 했다. 다시 가재를 털어 자객을 모집한 다음 시시때때로 성 밑으로 밧줄을 타고 내려 보내 진나라 진영을 기습하게 하였다. 왕릉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객들의 기습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때는 이미 무안군의 병이 완쾌되어 진소양왕은 그를 왕릉을 대신해서 조나라 정벌군의 대장으로 삼으려고 했다. 무안군이 소양왕에게 상주하였다.

「조나라의 도성 한단성은 공략하기가 그리 쉬운 성이 아닙니다. 옛날에 우리가 조군을 장평에게 크게 파하자 조나라 백성들은 전율하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을 때 승세를 타고 진격해야 했었습니다. 그들이 미처 견고한 수비태세를 갖추기 전에 우리가 재빠른 행동으로 공격했더라면, 그들은 대항할 힘이 없어 짧은 시간 안에 한단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조나라는 장평의 싸움에서 패한 상처를 치유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조나라의 대장 염파는 백전노장이라 장평대전 때의 대장 조괄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진나라가 한과 조 두 나라와 강화를 얼마 전에 체결해 놓고 다시 공격하는 행위를 제후들이 보게 되면, 우리 진나라가 신의가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여 그들은 필시 합종을 다시 맺어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구원병을 보낼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는 우리 진군은 결코 한단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양왕은 백기가 간하는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군의 대장 자리를 받아들이라고 강권했다. 백기도 한사코 받아 들이지 않았다. 소양왕은 다시 응후 범수를 시켜 백기를 찾아가 설득하라고 명했다. 범수가 백기의 집을 찾아가 접견을 청했으나 무안군은 옛날에 범수가 자기가 공을 세우려고 하는 순간에 방해를 했다고 생각하여 화를 내며 몸이 아파 만날 수 없다고 문전박대하며 만나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백기의 집 대문 앞에서 되돌아 온 범수는 그가 병이 들어 만나보지 못했다고 소양왕에게 고했다. 소양왕이 범수에게 물었다.

「무안군이 정말로 병이 든 것입니까?」

「그가 몸이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그가 대왕의 명을 받들어 진나라 대장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소양왕이 화를 내며 말했다.

「백기란 놈은 우리 진나라에 다른 장수가 없어 자기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옛날 장평의 싸움은 처음에 승세를 잡기 시작한 사람은 왕흘(王齕)이라! 왕흘이 어찌 백기보다 못하다고 하겠는가?」

소양왕은 즉시 왕흘에게 군사 10만을 더 내주며 조나라로 달려가 왕릉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명했다. 진군의 대장 자리에서 해임한 왕릉은 함양성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의 작위를 빼앗아 서인으로 만들었다.

왕흘이 새로 진군의 대장으로 부임하여 한단성을 다섯 달 동안이나 계속 포위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다. 무안군이 소식을 듣고 그의 문객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옛날 한단성은 쉽게 공략할 수 없는 곳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으나 왕은 나의 말을 듣지 않더니 오늘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 문객은 평소에 범수의 문객 중에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었다. 백기의 문객이 그가 한 말을 범수의 문객에게 전하자, 범수의 문객은 다시 범수에게 고했다. 범수가 듣고 소양왕에게 백기가 한 말을 전하며 한단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반듯이 백기를 대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진언했다. 무안군이 다시 진왕으로부터 대장으로 부임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계속해서 거짓으로 병이 들어 몸이 위독하다는 핑계를 대고 진왕의 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왕은 드디어 분노가 폭발하여 즉시 무안군의 작위를 빼앗고 일개 병사의 직급으로 만들어 음밀(陰密)4)에 옮겨 살게 하였다. 소양왕은 백기에게 명을 받는 즉시 함양성을 나가되 한 순간도 지체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안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옛날 월왕 구천의 신하였던 범려가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다’5)라고 했는데 내가 진나라를 위해 수많은 싸움에서 승리를 하여 70여 개의 성을 점령했는데, 그 공으로 인하여 버림을 받는구나!」

백기는 자기집을 즉시 떠나 함양성 서문을 나와 두우(杜郵)6)라는 곳에 이르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뒤따라오는 자기 짐을 기다렸다. 응후가 알고 다시 소양왕에게 고했다.

「백기가 음밀로 길을 가면서 가슴속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앙앙불락하면서 입으로는 원망의 말만 늘어놓고 있다합니다. 그가 병이 들었다 함은 사실이 아닙니다. 혹시나 백기가 다른 나라로 달아나 우리 진나라에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소양왕은 즉시 사자를 백기에게 보내어 예리한 검을 보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명을 내렸다. 사자가 두우에 당도하여 자결하라는 진왕의 명을 전했다. 무안군 백기가 진왕이 보내온 검을 손에 들고는 하늘을 보며 한탄하였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비명에 죽어야 하는가?」

그러더니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렇게 죽음을 맞이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르겠구나! 장평의 싸움에서 항복해온 조나라 군사 40십여 만 명을 내가 거짓으로 속여 하루 밤사이에 모조리 죽여 구덩이에 묻어 버렸으니 그들이야말로 진실로 무슨 죄가 있어서 죽었겠는가? 내가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로다! 」

백기가 즉시 스스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그때가 진소양왕 50년, 주난왕 58년인 기원전 257년의 일이었다.

진나라 사람들은 백기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알고 모두 슬퍼하며 많은 사람들이 백기를 위해 사당을 지었다. 훗날 당조(唐朝) 말년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소 한 마리가 죽었는데 그 소 배에 백기(白起)라는 두 자가 써있었다. 논객들은 백기가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수백 년 후에도 짐승의 몸을 빌려 백기에게 벼락을 내려 그 죄 값을 치르게 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응보가 이렇듯 엄중하니 장수된 사람들은 이것을 항상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백기를 죽인 진소양왕은 다시 정예병을 동원하여 범수의 친구 정안평(鄭安平)을 대장으로 삼아 한단성으로 가서 그곳을 공략중인 왕흘을 돕도록 했다. 소양왕은 반드시 한단성을 함락시키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조효성왕은 진나라가 다시 증원병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사자를 여러 나라로 보내어 구원을 요청했다. 평원군 조승이 조왕에게 말했다.

「위나라는 신의 처가입니다. 또한 평소에 가까이 지내고 있어 우리가 구원을 청하면 필시 구원군을 보내 줄 것입니다. 초나라는 대국이지만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가 합종책으로 설득하지 않으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직접가서 합종책을 설파하여 초왕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3. 毛遂自薦(모수자천)

-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하다. -

평원군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식객들에게 말하기를 문무를 겸한 사람 20명과 함께 초나라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3천 명의 식객들 중 학식은 갖추었으나 무예가 뛰어나지 못하고, 무예는 갖추었으나 학식을 갖추지 못하고 하여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단지 19명밖에 구하지 못하여 20명의 숫자에서 모자라게 되었다. 평원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 조승이 수십 년 동안 선비를 길렀으나 문무를 겸전한 사람 20명을 얻기가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그때 하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식객이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저를 끼게 해 주신다면 부족한 사람 수를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평원군이 성과 이름을 묻자 그 식객이 대답했다.

「신의 성은 모(毛)고 이름은 수(遂)입니다. 위나라의 대량(大梁) 출신이며 군의 문하에 식객 노릇을 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평원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무릇 현사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곳은 그곳이 어디이건 자루 속에 들어 있는 송곳과 같아 그 끝이 튀어나오게 되어있습니다.그러나 선생은 나의 문하에서 3년이나 기거했음에도 이 조승은 한 번도 선생의 이름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니 이것은 선생께서 학식이나 무예를 겸비한 것은 물론이고 그것 중 한 가지라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이 오늘에서야 그 자루 속에 들어가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찍이 군의 자루 속에 들어갔다면, 저는 아마도 홀연히 몸통 째 자루 안에서 튀어 나왔을 것입니다8). 어찌 그 끝만 튀어 나왔겠습니까?」

모수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평원군이 그를 20명의 인사에 넣어주기로 허락했다. 평원군은 그 날로 효성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20명의 문객과 함께 초나라의 도성인 진성(陳城)을 향해 출발했다.

평원군의 일행이 초나라에 당도하여 먼저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에게 자기가 왔음을 알렸다. 황헐은 평원군과 예전에 사신을 서로 왕래시켜 교분이 있었음으로 즉시 평원군을 위해 초고열왕(楚考烈王)을 접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평원군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입조하여 고열왕을 알현하는 의식을 행하고, 이어서 초왕과 평원군은 전당에 좌정하고 앉았고 평원군이 데리고 간 모수와 19명의 문객들은 계단 밑에서 열을 지어 시립하였다. 평원군이 고열왕을 보고 조용한 목소리로 제후의 나라들이 합종하여 진나라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초왕이 평원군의 말에 대답했다.

「합종의 맹약을 맨 처음 주장한 나라는 조나라였습니다만, 후에 장의의 유세에 넘어가 맹약이 굳게 지켜지지 못한 가운데 우리의 선왕이신 회왕께서 맹주가 되어 제후들과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제후들의 연합군은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후에 제민왕이 다시 합종을 주창하며 스스로 맹주가 되었으나, 제후들이 제민왕에게 등을 돌려 이어서 합종은 다시 깨졌습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에 이르러 천하의 제후들은 합종을 말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설사 합종이 성사된다 할지라도 한줌의 흩어진 모래알에 불과하여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진이 합종책을 제창하자 진나라를 제외한 여섯 나라는 원수(洹水)9)에 모여 결의형제를 하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그후로는 진나라는 15년 동안이나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와 위 두 나라는 서수(犀首)10)에게 의해 기만당해 조나라를 정벌하여 합종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초회왕은 장의의 꾀임에 빠져 오히려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합종은 점차로 와해되어 갔던 것입니다. 만약에 제, 위, 초 세 나라가 원수에서 만나 맹세한 약속을 굳게 지키고 진나라로부터 속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들이 함곡관을 뛰쳐나와 지금과 같이 육국에게 행패를 부릴 수 있었겠습니까? 제민왕은 합종의 이름만을 등에 업고 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려고 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등을 돌렸지 어찌 합종책이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천하 정세는 진나라는 강하고 나머지 열국들은 약합니다. 단지 각기 자기들 나라를 스스로 보전하기도 바쁜 터에 어찌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진나라가 힘이 비록 강하다고는 하나 여섯 나라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육국이 또한 힘이 약하다고는 하나 서로 협력한다면 진나라를 대항하고도 남습니다. 만약 제후국들이 각자 스스로의 안전만을 도모하고 서로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강한 진나라가 약한 제후국을 각개격파(各個擊破)하는 경우가 되니 싸워봤자 승부는 뻔한 일입니다. 저는 진나라의 군사가 머지않아 초나라 도성으로 진격해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군사를 한 번 일으키니 상당(上黨)의 17개 성이 떨어지고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이 구덩이에 파 묻혀 죽었습니다. 비록 한과 조 두 나라가 힘을 합쳤어도 무안군 한 장수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다시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한단을 포위했다고 해서 어찌 이 먼 곳에 있는 초나라가 능히 그 일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

「장평에서는 과군께서 엉뚱한 사람을 장수로 임명하여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진나라의 왕흘과 왕릉이 20만의 군사로 한단성 밑에 주둔하며 2년이 넘도록 공격하고 있지만 한단성의 벽돌 하나도 훼손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후들이 구원병을 일으켜 도와준다면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예봉을 꺾을 수 있어, 여러 제후국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진나라의 침략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초나라는 얼마 전에 진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었습니다. 과인이 군의 말대로 합종을 따른다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노하여 우리 초나라에 그 잘못을 추궁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나라를 대신하여 진나라로부터 병화를 입게 되는 일입니다. 」

「진나라가 초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은 것은 그들이 삼진(三晋)의 공략에 전력을 쏟기 위함인데, 만일 삼진이 망하게 된다면 어찌 초나라만 홀로 안전하게 되겠습니까?」

그때 계단 밑에 서있던 모수가 해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벌써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모수는 즉시 허리에 찬 칼을 부여잡고 계단을 올라 평원군 곁으로 가서 말했다.

「합종의 이해득실은 두 마디 말만으로 족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침에 해뜨기 전에 입조하여, 지금은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니 도대체 문제가 무엇입니까?」

고열왕이 갑자기 계단위로 달려와 무례한 행동을 한 모수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평원군을 향해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신이 데리고 온 이름이 모수라는 문객입니다. 」

「과인이 너의 주군과 천하대사를 의논하고 있는데, 식객 주제에 어찌 감히 끼어드느냐?」

고열왕이 말을 마치고 좌우를 질타하여 모수를 당하로 끌어 내리리고 했다. 모수가 몇 걸음을 고열왕 앞으로 재빨리 다가오더니 손으로 허리에 찬 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합종은 천하의 대사라, 천하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주군께서 바로 앞에 앉아 계시는데 외신인 저에게 호통치시는 행위는 무슨 도리입니까?」

고열왕의 얼굴색이 점점 평온을 찾더니 이윽고 모수에게 물었다.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오!」

「초나라의 영토는 사방 5천 리에 달하며 문왕과 무왕이 왕호를 칭한 이래로 지금까지 천하를 밑으로 내려 보내면서 그 맹주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진나라가 한번 군사를 일으키니 초나라 군사들을 계속해서 패주시키고 회왕은 그들의 땅으로 잡혀가 죽었습니다. 백기라는 어린아이에게 한 번 싸움에 언(鄢)11) 땅을 빼앗기고 두 번 싸움에 도성인 영성(郢城)을 잃자 초나라는 할 수 없이 그 나라를 진성(陳城)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나라로서는 백세가 지나도록 잊지 못할 커다란 원한임을 삼척동자라도 다 수치로 여기고 있는 일인데 유독 대왕 한 분만은 그것을 염두에 두시지 않고 계십니다. 오늘 논하는 합종은 바로 초나라를 위함이지 어찌 우리 조나라만을 위한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고열왕은 모수가 하는 말을 듣고 그저 ‘예, 예’라는 대답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이제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과인은 이미 결심을 하였소!」

모수가 좌우에 있던 고열왕의 측근들을 불러 쟁반에 동물의 피를 받아 오게 한 후에 무릎을 꿇고 초왕의 면전에 바치면서 말했다.

「대왕께서는 합종의 맹주가 되시는 분이니 마땅히 제일 먼저 삽혈을 하시고, 저의 주군께서는 두 번째로, 소신은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고열왕이 마침내 삽혈의 의식을 행하자 조나라와 초나라 사이에는 합종의 맹약이 체결되었다. 모수는 다시 쟁반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 손으로는 평원군을 따라와 계단 밑에 도열하고 있던 19명의 인사들에게 손짓을 하며 외쳤다.

「여러분들도 같이 마땅히 당하에서 삽혈의 의식을 행하여야 할 것이오. 여러분들이야말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소.」

고열왕이 이미 합종을 따르기로 허락하였음으로 해서 즉시 춘신군에게 명하여 8만의 병사를 내어주며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평원군이 귀국 길에 올라 도중에 한탄하며 말했다.

「모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보다 더 강력하다고 하겠다. 내가 무수한 사람을 살펴보고 그들의 능력을 알아냈지만, 오늘 모선생으로 인하여 나는 아직도 사람을 보는 안목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조승은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천하의 재사들에 대해 논하지 않겠노라!」

평원군이 한단에 돌아온 다음 모수를 상객을 삼아 존대했다. 이 일에 대해 지은 시가 있다.

배 젓는 노는 아무리 커도 사공의 손안에 놀며

저울추는 아무리 작더라도 천근의 무게를 잴 수 있다.

예리한 송곳이 자루 속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문무겸비의 열 아홉 사람은 단지 요란했을 뿐이었다.

櫓檣空大隨人轉(노장공대수인전)

秤錘雖小壓千斤(평추수소압천근)

利錘不與囊中處(이수불여낭중처)

文武紛紛十九人(문무분분십구인)

한편 위나라의 안리왕(安釐王)은 조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자 대장 진비(晉鄙)에게 군사 10만을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이에 진나라의 소양왕은 위와 초 두 나라가 구원병을 보내 조나라를 구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친히 한단성 밑의 전장터에 왕림하여 싸움을 독려하고 다시 사자를 위나라의 안리왕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진나라가 한단을 공격하여 이제 함락 직전에 있소. 제후들 중 감히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병을 보내는 자가 있다면 내가 반드시 군사를 움직여 그 제후에게 먼저 죄를 묻겠소.」

위안리왕은 크게 두려워하여 즉시 사자를 진비에게 달려가게 하여 행군을 멈추라고 지시하였다. 진비가 거느린 위군은 한단으로 진군하다 말고 업성(鄴城) 밑에서 진을 쳤다. 춘신군도 역시 무관 밑에 영채를 세우고 주둔하며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 행진을 멈추었다.

4. 奇貨可居(기화가거)

- 참으로 진기한 재화라 사둘만 하구나!

한편 진나라 소양왕의 왕손 이인(異人)은 진나라와 조나라가 민지(澠池)에서 한 회맹의 약속에 따라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다. 그 이인이란 사람은 진나라 안국군(安國君)의 두 번째 아들이었다. 안국군의 이름은 주(柱)고 자는 자혜(子傒)이며, 곧 소양왕의 태자였다. 안국군은 슬하에 20여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후궁 소생이고 적자를 낳지 못했다. 안국군의 정비는 화양부인(華陽夫人)이라고 부르는 초왕의 딸이었다. 안국군이 화양부인을 매우 사랑했으나 그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다. 한편 안국군의 서자 이인은 하희(夏姬)의 소생이다. 그녀는 안국군으로부터 총애를 받지 못하다가 일찍이 죽었기 때문에 그녀의 소생 이인이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진 것이다. 그래서 이인이 조나라에 들어와 인질 생활을 한 지가 오래 되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안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옛날 왕전(王翦)이 위제의 목을 얻기 위해 조나라의 경계를 침범했을 때 조왕이 노하여 진나라의 인질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그를 죽이려하였다. 평원군 조승이 간하며 말했다.

「이인은 진나라 왕실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인데 구태여 죽인다 해도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진나라에게 트집을 잡힐 구실만 만들어 줄뿐 아니라 후일에 진나라와 연락할 수 있는 길마저 끊는 처사가 될 뿐입니다.」

조왕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이인을 깊은 숲 속의 총대(叢臺)에 안치시키고 대부 공손건(公孫乾)게 명하여 관사에 같이 머물며 이인의 출입을 감시하게 하고, 다시 그에게 내리는 양식과 생활비를 대폭 깎아버렸다. 이인은 수레가 없어 외출 할 때도 걸어서 다녀야 했으며 써야할 비용도 없어 온 종일 울적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때 한나라의 양책(陽翟)12) 땅에 성은 여씨(呂氏)에 이름은 불위(不韋)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불위(呂不韋)는 그 부친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매일 각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산을 천금으로 늘렸다. 여불위가 마침 한단에 머물면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이인을 보게 되었다. 이인의 얼굴은 마치 하얀 분을 바른 듯 하얗고 입술은 인주를 바른 듯 붉어 그이 차림새는 비록 쇠락한 모습이었지만 본바탕은 귀인의 기품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여불위가 마음속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옆의 사람에게 이인에 대해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곧 진나라의 태자 안국군의 아들입니다. 지금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는데 진나라 군사들이 여러 번 우리나라 국경을 침범하여 우리 왕께서 그때마다 죽이려고 했으나 간신히 죽음만은 면하고 총대에게 연금되어 있는 중입니다. 조왕께서 생활비도 대주지 않고 간신히 세 끼 먹을 것만을 주어 지금은 가난뱅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불위가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참으로 사둘만한 진기한 재화로다!」

여불위가 집으로 돌아와 자기 부친에게 물었다.

「사람이 밭을 일구면 몇 배의 이득을 남길 수 있습니까?」

여불위의 부친이 대답했다.

「열 배는 남길 수 있다. 」

「주옥같이 귀한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면 몇 배의 이

득을 남길 수 있습니까?」

「백 배는 남길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한 사람을 도와 왕으로 세워 한 나라의 산하를 한 손에 쥘 수 있다면 그 이득은 몇 배나 되겠습니까?」

그 부친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사람을 도와 왕으로 만든단 말이냐?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이득은 천만 배도 더 되어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여불위가 즉시 자기 재산 천금 중에서 백금을 꺼내어 우선 공손건과 교분을 맺었다. 그는 공손건의 집에 자주 왕래하여 이윽고 그와 친숙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윽고 두 사람 앞에 이인이 나타나자 여불위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가장하고 그에 대해 물었다. 공손건이 이인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손건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여불위를 청했다. 여불위가 와서 공손건에게 말했다.

「술자리에 다른 손님도 없는 것 같으니 여기에 와 계시는 진나라의 왕손을 초청하여 같이 즐기면 어떻겠습니까?」

공손건이 여불위의 청을 받아들여 이인을 불러 여불위와 인사를 나누게 하였다. 세 사람이 자리를 같이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기운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공손건이 자리에 일어나 변소에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 틈을 타서 여불위가 목소리를 죽이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인에게 물었다.

「지금 진왕께서 연로하시어 언제 돌아가실 줄 모릅니다. 그런데 부친이시며 태자이신 안국군께서 사랑하시는 분은 화양부인이십니다. 그러나 화양부인에게는 소생이 없고 후궁 출신의 아들만 20여 명이 있으나 아무도 화양부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손께서는 이때를 이용하여 진나라에 귀국하신 다음 화양부인을 섬기신다면 그녀의 아들이 되어 후일에 진나라의 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지 않으십니까?」

이인이 여불위의 말을 듣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어찌 태손의 자리까지 바랄 수 있겠습니까? 단지 고향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구려! 나는 이곳에서 몸을 빼낼 수 있는 계책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을 뿐이오.」

「제가 비록 가세가 넉넉하지 못하다고는 하나 전하를 위하여 서쪽의 진나라로 들어가 천금을 써서 부친이신 태자와 부인을 설득하여 전하를 귀국시키려고 하는데 전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만약에 선생의 말씀대로 일이 성사되어 내가 부귀를 누리게 된다면 그것을 선생과 함께 나누어 가지리라!」

두 사람의 말이 막 끝나자 공손건이 돌아와 여불위에게 물었다.

「여선생은 이 분과 무슨 말을 나누셨습니까?」

「제가 왕손에게 진나라의 옥 가격을 여쭈어 봤는데 왕손께서는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공손건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다시 술을 내오라고 수하에게 명했다. 세 사람은 서로 대작하며 마음껏 마신 후에 자리를 파하고 헤어졌다. 이후로 여불위와 이인은 자주 만나더니 그러던 어느 날 여불위가 5백 금의 황금을 아무도 몰래 이인에게 주며, 그로 하여금 주위 사람들을 금으로 매수하여 환심을 사고, 조나라의 이름있는 빈객들과는 교우 관계를 맺도록 시켰다. 공손건이 거느리고 있던 부하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이인이 주는 황금과 비단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 이인과 한패가 되어 아무도 그를 의심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여불위는 다시 5백 금의 황금을 꺼내어 한단성 안의 진기한 보물과 애완품을 사서 준비한 다음 공손건과 작별을 고하고 진나라로 들어가 함양성에 당도했다. 여불위가 사람을 놓아 탐문한 결과 화양부인에게는 역시 진나라에 시집와서 살고 있던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불위는 그녀 집의 측근에게 접근하여 뇌물을 주며 자기의 말을 전해 주도록 부탁했다.

「왕손 이인이 조나라에 있으면서 화양부인을 매우 그리워하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지극한 효성의 표시로 예물을 전해 달라고 저를 보냈습니다. 지금 가져다 바치는 예물은 비록 조그만 것이나 이 집 부인도 역시 이인의 이모되시는 분이라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

여불위가 금으로 만든 구슬이 든 상자 한 개를 꺼내 그 사람에게 바치면서 화양부인의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선물을 건네 받은 그녀가 크게 기뻐하며 내당에서 뛰어나와 주렴을 치고 그 안에서 여불위를 손님으로 대하며 말했다.

「전해준 선물은 왕손의 아름다운 마음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수천 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신 손님의 노고가 참으로 크셨습니다. 오늘 왕손이 조나라에 억류된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자기의 고향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까?」

「소인은 왕손이 머무시고 계시는 관사의 맞은 편 집에 살아 무슨 일이 있으면 소인과 의논하기 때문에 소인은 왕손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왕손께서는 매일 밤 화양부인을 경모하며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어렸을 때에 모친을 잃어 화양부인을 친모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귀국하여 봉양함으로서 효도를 다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화양부인의 언니가 여불위의 말을 듣고 말했다.

「왕손께서는 아직도 무사히 조나라에 잘 있습니까?」

「진나라 군사들이 여러 번에 걸쳐 조나라 국경을 침범했기 때문에 조왕은 매 번마다 왕손을 죽이려고 했으나 다행히 왕손의 인품을 흠모하고 있는 조나라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주청을 하여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로 해서 왕손께서는 더욱 간절히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물었다.

「조나라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무슨 까닭으로 왕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조왕에게 주청을 드렸습니까?」

「왕손은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인 태자와 화양부인의 생일날, 그리고 설날,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 새벽에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목욕재계하고 향을 불사르며 서쪽을 향해 만수무강을 빌고 있는 일은 조나라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왕손께서는 학문을 좋아하시고 어진 선비를 각별히 존대하여 여러 나라의 명망있는 사람들과 교분을 두루 맺고 있어, 천하 사람들은 모두가 왕손 전하의 어진 마음과 효성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해서 조나라의 백성들과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조왕으로 하여금 죽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

여불위가 말을 마치고 다시 5백 금을 주고 산 금붙이와 주옥 및 진기한 노리개를 화양부인의 언니에게 바치며 다시 말했다.

「왕손께서는 조나라에 묶인 몸이라 어쩔 수 없이 화양부인을 옆에서 모시지 못하는 처지를 한스럽게 생각하고 보잘것없는 약소한 예물이지만 효성을 표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왕실의 친척이신 부인께서 이 선물들을 화양부인께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양부인의 언니가 집안사람에게 명하여 술과 음식을 내와 여불위를 잘 대접하라고 하고 자기는 즉시 입궁하여 화양부인을 뵙고 여불위가 바친 선물을 전달했다. 화양부인이 진기한 보물과 값비싼 노리개를 보자 매우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왕손이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화양부인의 언니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여불위에게 부인이 매우 기뻐했다고 전했다. 여불위가 그녀에게 물었다.

「화양부인께서는 자녀를 몇 명이나 두셨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제가 듣기에 ‘아름다운 자태로 그 부군을 모시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 아름다움이 쇠하게 되면 그 총애도 잃는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화양부인께서는 태자를 모시면서 그 사이가 매우 친하다고는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지금이야말로 마땅히 후궁 소생의 여러 자제들 중 가장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골라 자식으로 삼는다면, 장차 그가 왕의 자리에 올라 화양부인은 그 세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일에 자색이 쇠하게 되어 태자의 총애를 잃게 되면 그때 가서 후회해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사람됨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이인이 스스로 부인을 따르고 있으나, 자기는 여러 자제들 중 서열이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에 부인께서 진심으로 이인을 택하여 적자로 삼는다면 이인은 진실로 부인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인은 영원히 진나라에서 세력을 잃지 않고 사실 수 있습니다.」

그녀가 여불위의 말을 화양부인에게 상세하게 전하자 부인이 듣고 말했다.

「그 손님의 말이 옳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밤에 화양부인이 태자 안국군과 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태자가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냐고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

「첩은 후궁에서 태자님의 총애를 입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불행히도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태자님의 후궁 소생 중에 조나라에 인질로 가있는 이인만이 가장 어질어 천하의 명사들이 내왕을 자주하며 하나같이 이인의 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인을 나의 자식으로 삼아 후사를 잇게 하여 첩의 몸을 의탁하고 싶습니다.」

태자 안국군이 화양부인의 청을 허락하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태자께서 오늘은 비록 첩의 청을 허락하셨으나 내일이면 다른 후궁들의 말에 현혹되어 첩과의 약속을 잊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부인이 정녕 믿지 못하시겠다면 내가 부절에 맹세의 말을 새겨드리겠소1」

태자가 즉시 옥으로 만든 부절을 가져오게 하여 그 위에 적사이인(適嗣異人)이라는 말을 적어 넣도록 하여 이인을 적자로 세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태자는 이어서 부절의 가운데를 부러뜨려 한쪽은 화양부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져 그것으로서 신표로 삼았다. 화양부인이 다시 말했다.

「이인은 지금 조나라에 있는데 무슨 방법으로 돌아오게 하겠습니까」

「내가 틈을 보아 부왕께 청하리다!」

그때 소양왕은 조나라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자가 이인을 데려오자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불위는 왕후의 동생 양천군(楊泉君)이 새로이 소양왕의 총애를 받고 높은 관직에 제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그의 집안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양천군을 접견할 기회를 얻었다. 여불위가 양천군을 만나 말했다.

「대감께서 지금 죽을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까?」

양천군이 크게 놀라 물었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이오?」

「대감의 집안사람들은 모두가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을 받고 있어, 훌륭한 말들은 넘쳐 나서 마구간에 다 집어넣지 못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미녀들은 뒤뜰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자의 문하들은 높은 직위나 세력도 얻지 못하여 모두가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나이가 고령이라,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그 뒤를 잇게 되면 태자의 집안사람들은 대감의 집안사람들에게 품은 깊은 원한으로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대감이야말로 위태롭기가 풍전등화와 같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제가 비천한 출신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계책을 갖고 있습니다. 가히 대감께서 백세에 이르도록 태산과 같이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양천군이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달라고 청했다.

「지금 대왕의 연세가 높으시고, 다시 태자 안국군 해(傒)는 정부인 소생의 적자가 없습니다. 오늘날 왕손 중에 이인만이 태자의 여러 아들 중에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다고 제후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하고 있으나, 오히려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져서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왕손 이인은 매일 밤 사모의 정으로 목을 길게 빼고 서쪽을 바라보며 조국에 돌아가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군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왕후께 부탁하여 왕으로 하여금 이인을 귀국시켜 달라는 청을 올리도록 하여 태자로 하여금 이인을 적자로 세우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즉 이인에게는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고, 태자의 부인은 자식을 한 명 얻게 되어 왕후께서는 태자와 왕손에게 커다란 덕을 베풀게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군의 작위는 자자손손 영원토록 보전할 수 있습니다.」

양천군이 일어나서 여불위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삼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양천군은 당일로 궁궐에 들어가 여불위의 말을 왕후에게 전했다. 왕후는 진왕에게 이인을 귀국시켜 태자의 적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진왕이 왕후의 청을 받고 대답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조나라 사람들이 강화를 청해 오면 내가 그때 마땅히 이인을 불러오도록 하겠소.」

태자가 여불위를 불러 물었다.

「내가 이인을 조나라에서 귀국시켜 나의 후사로 삼고 싶으나 부왕께서 아직 허락을 하시지 않았소. 선생께서 무슨 좋은 계책을 갖고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라오.」

여불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태자께서 과연 조나라에 가 계시는 왕손을 후사로 삼으시려고 하신다면 소인이 어찌 천금의 가재인들 아까워하겠습니까? 마땅히 가재를 털어 조나라의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바쳐 왕손을 기필코 귀국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태자와 화양부인이 크게 기뻐하며 황금 3백 일을 여불위에게 주며, 왕손 이인이 조나라에서 빈객들과 교분을 맺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전하게 했다. 왕후도 역시 황금 2백 일을 여불위에게 주었다. 화양부인은 다시 이인을 위해 의복을 한 벌 지어 상자에 넣어 황금 백일과 함께 여불위에게 주며 이인에게 전해주라고 했다. 태자는 이어서 이인이 귀국하게 되면 여불위를 그의 태부로 삼겠다고 말하고, 이인에게 다음과 같이 자기의 말을 전하도록 했다.

「이제 조만 간에 서로 만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5. 獻出愛姬 暗贈呂兒(헌출애회 암증여아)

- 사랑하는 애첩을 바쳐 여씨의 아들을 들여보내다.

여불위가 태자 부부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한단으로 다시 돌아와서 먼저 자기 부친을 뵙고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여불위의 부친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 날 공손건을 찾아가 많은 선물을 바친 후에 왕손 이인을 만나 왕후와 태자, 그리고 화양부인이 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다시 황금 5백 일과 화양부인이 지어서 보낸 의복을 이인에게 바쳤다. 이인이 크게 기뻐하며 여불위에게 말했다.

「의복은 내가 입겠지만 황금은 번거롭겠지만 가져가셨다가 만약에 사용처라도 생긴다면 선생께서 비용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내가 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그 은혜 작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여불위가 옛날에 한단에서 미녀를 구해 그 이름을 조희(趙姬)라 불렀는데 노래와 춤에 능했다. 여불위는 조희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지 두 달이 되었음을 알고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며 혼자말로 하였다.

「왕손 이인이 진나라에 귀국하면 필시 왕위를 이어 받게 될터인데 만약에 내가 조희를 그에게 바친다면 자연히 그가 낳는 아이는 나의 혈육이라! 만약에 그 아이가 아들이라면 왕위를 이어받아 영씨(嬴氏)가 다스리는 천하를 여씨가 대신하게 되는 것이라, 역시 내가 우리 집안의 온 재산을 털어서 이와 같은 생각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도 그다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

여불위가 다시 공손건과 이인을 자기집으로 초대한 다음 온갖 진수성찬과 술을 내와 즐기면서 미회들을 나오게하여 생황(笙簧)13)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여 술자리를 즐겁게 했다. 이윽고 술기운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여불위가 입을 열어 말했다.

「미천한 소인이 얼마 전에 미희를 하나 얻었는데 제법 가무에 능하고 자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컨대 두 분 어른에게 술 한 잔을 올리게 하고 싶으나 소인이 당돌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두렵습니다. 」

불위가 이어서 푸른 옷을 입은 아환(丫鬟)14)을 시켜 조희를 불렀다. 조희가 대령하자 여불위가 말했다.

「너는 두 분 어르신께 먼저 절을 올리거라!」

조희가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걸이로 양탄자 위에 오르더니 고개를 숙여 두 사람에게 각각 절을 올렸다. 이인과 공손건이 졸지에 황망하여 자기들도 읍을 올리며 답례를 하였다. 여불위가 조희에게 명하여 금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따라 두 사람에게 바치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도록 하였다. 조희가 여불위의 명에 따라 술이 가득 찬 금술잔을 이인 앞에 대령했다. 이인이 머리를 들어 조희를 바라보니 과연 절세미녀라 넋을 빼앗겼다. 조희의 자태를 묘사한 시가 있다.

미인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리는 비단결이고

그 눈썹은 담담한 봄산이로다.

붉은 입술은 앵도와 같고

아름다운 치아는 두 줄의 백옥이며

살포시 웃는 미소에 생기는 보조개는

포사가 유왕을 보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과 같구나.

아리따운 조그만 발 서서히 움직이니

오왕 부차의 넋을 빠지게 했던 서시의 자태로다.

만 가지의 아름다운 자태는 아무리 보아도 끝이 없으니

그렇듯 요염한 모습을 그려 낼 수 있는 화공은 세상에 없음이라!

雲鬢15)輕挑蟬翠(운빈경도선취)

蛾眉淡掃春山(아미담소춘산)

朱唇点一顆櫻桃(주순점일과앵도)

皓齒兩行白玉(호치양행백옥)

微開笑靨(미개소엽)

似褒姒欲媚幽王(사포사욕미유왕)

緩動金蓮16)(수동금련)

擬西施堪迷吳主(의서시감미오왕)

萬種嬌容看不盡(만종교용간부진)

一團妖治畵難工(일단요치화난공)

술을 따라 두 사람에게 각각 바친 조희가 자리에 서서히 일어나더니 긴소매를 늘어뜨리며 양탄자 위로 올라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데 한 번은 소매를 허공에 크게 휘젓고 다음 번에는 가볍게 내 저으니 그녀의 몸놀림은 마치 용이 물에서 노는 것과 같이 자유분방하였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춤을 추며 새털이 바람에 날듯 가볍게 돌아가는 조희의 춤사위는 뽀얀 안개를 어지럽게 일으키며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공손건과 이인은 조희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찬탄해 마지않았다 조희가 한 사위의 춤을 끝내자 여불위가 명하여 이번에는 무소뿔로 만든 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두 사람에게 권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술잔을 받더니 한 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두 사람이 술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고 조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당으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간에 권하며 술을 양껏 마셔 즐거움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세 사람 중에 제일 먼저 공손건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취하여 술자리에서 앉은 채로 코를 박고 잠에 떨어졌다. 이인은 마음속으로 조희를 잊지 못하고 있다가 술기운을 빌려 부끄러운 생각을 감추고 입을 열어 여불위에게 청을 하였다.

「이 사람이 조나라에 인질로 들어와 혼자 사니 내가 머무는 객관은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공에게 조금 전의 여인을 얻어 처로 삼아 내 평생 소원을 한번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 여인의 몸값으로 얼마나 쳐주면 되겠습니까? 제가 마땅히 선생께서 부르시는 대로 가격을 쳐 드리겠습니다. 」

여불위가 짐짓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왕손 전하를 집에 청하여 총애하는 첩을 불러내어 춤을 추며 술을 따르게 하여 경의를 표했는데, 왕손께서는 그것도 부족하여 내가 사랑하는 첩실을 빼앗아 가시려고 하시니 그것은 도대체 무슨 도리입니까?」

이인은 여불위가 책망을 하자 두려워 몸을 움츠리며 즉시 무릎을 꿇고 사죄의 말을 했다.

「이 사람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처지를 생각한 나머지 손님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망녕되게 선생이 총애하는 여인을 달라고 했으니 그것은 제가 술에 취해 한 허튼 소리입니다.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불위가 황급히 이인 앞으로 달려가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으키며 말했다.

「제가 전하의 귀국을 위해 천금의 가산을 아까워하지 않고 모조리 내어 썼음에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인데, 제가 어찌 여자 한 사람에 연연해하겠습니까? 단지 이 여인은 나이가 아직 어려 아무 말도 없이 전하께 가라고 하면 아마도 수치심을 느끼고 혹시나 따르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녀가 진심으로 전하를 쫓겠다고 한다면 제가 즉시 그녀를 보내 전하의 잠자리 수발을 들도록 시키겠습니다.」

이인이 거듭 절하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이윽고 공손건이 술에게 깨어나자 이인과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 공관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여불위가 조회를 향해 말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는 진나라의 왕손이 너를 보더니 반하여 데려가 처로 삼으려고 하는데 너의 뜻은 어떠한가?」

「첩은 이미 몸을 바쳐 주인어른을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인님의 애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어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하십니까?」

여불위가 조용한 목소리로 조희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평생토록 따라 살아봐야 한낱 일개 장사군의 아내에 불과할 뿐이다. 너를 원하고 있는 왕손은 장차 진나라의 왕위에 오를 사람인데, 네가 그에게 시집을 가서 그에게 총애를 받게 되면 너는 필시 왕후가 되지 않겠느냐? 하늘이 도와 다행히 네가 배고 있는 태아가 남아로 태어난다면 그는 또한 태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너와 나는 장차 진왕의 부모가 되어 일신의 영화는 극에 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 부부의 정만을 생각하고 나의 계책을 잘못되게 하려고 하느냐? 너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절대 발설하면 안 된다.」

「주인님께서 도모하시는 바가 그렇듯 원대하시니 어찌 제가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주인님과 맺은 부부간의 정을 하루아침에 끊어 버릴 수가 없어 슬퍼할 뿐입니다.」

조희가 말을 마치고 흐느껴 울었다. 여불위는 조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가 만약 우리의 부부지정을 잊지 못한다면 후일에 진왕실의 천하를 얻은 후에 다시 오늘처럼 부부가 되어 영원토록 서로 헤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두 사람이 하늘에 대고 맹세를 한 다음 서로 동침을 하였는데 그날 밤은 평소보다 두 배나 더 깊은 정을 나누었다.

다음 날 여불위가 공손건이 묵고 있는 관사에 들려 그전 날 모시는데 성의를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의 말을 올렸다.

「저야말로 왕손과 함께 공의 집에 들려 공이 보여주신 깊은 우애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드리려고 하던 참인데, 오히려 공께서 직접 이곳에 왕림하시니 몸 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인도 그곳에 당도하여 세 사람이 서로 간에 치하의 말을 마치자 여불위가 입을 열어 말했다.

「왕손께서 소인의 누추한 첩의 용모에 개의치 않으시고 조희를 취하여 부인으로 삼으시고 싶다하시기에 제가 어제 밤이 새도록 여러 차례 설득하여 이미 그녀가 왕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받아 냈습니다. 마침 오늘이 길일이니 제가 즉시 조희를 수레에 태워 시종 몇 명과 함께 이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생의 깊은 은혜 분골쇄신할지라도 갚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이렇게 좋은 혼인을 맺기로 하였다니 내가 마땅히 중매를 서리다! 」

공손건이 즉시 좌우의 시종들에게 명하여 혼인식을 위한 잔치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여불위가 작별을 고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이윽고 날이 어둑해지자 조희를 온거에 태워 이인이 묵고 있는 관사로 보내어 그와 혼인식을 치른 후에 부부의 연을 맺게 하였다. 염옹(髥翁)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새 주인과 옛 주인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진나라의 왕손은 곤궁한 처지에서 부인을 취했다.

후에 뜻을 얻어 나라를 차지했다고 모두 말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나라를 여씨의 아들에게 줄줄은!

新歡舊愛一朝移(신환구애일조이)

花燭窮途得意時(화촉궁도득의시)

盡道王孫能奪國(진도왕손능탈국)

誰知暗贈呂家兒(수지알증여가아)

6. 始皇出世(시황출세)

- 진시황이 조정(趙政)이라는 이름으로 조나라에서 태어나다. -

이인은 조희를 아내로 얻은 후부터는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그 사랑이 극진하였다. 두 사람이 혼인을 치르고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에 조희가 이인을 향해 말했다.

「소첩은 전하의 시중을 들어 하늘의 도움으로 이미 전하의 아이를 배게 되었습니다.」

이인은 조희가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조희가 자기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고 뛸 뜻이 기뻐했다. 조희가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지 두 달만에 이인에게 시집을 가서 다시 8개월이 지나 10개월이 되어 해산달이 되었으나 뱃속의 태아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500여 년 간 혼란에 빠진 천하를 통일하여 제업을 이룰 천명을 받은 아이였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열두 달인 일 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시황이 태어났을 때 방에 온통 붉은 빛이 가득하고, 뜰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었다. 갓 태어난 갓난아이는 골격이 장대했으며, 우뚝 솟은 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꼬리, 네모반듯한 이마, 두 겹으로 된 눈동자에 입안에는 이미 이빨이 나 있었고, 등은 용의 비늘로 덮어져 있었다. 갓난아이가 소리 내어 우는데 소리가 우렁차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날은 바로 진소양왕 48년인 기원전 259년 정월 보름 새벽이었다. 이인은 자기 아들의 태어남이 예사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임금이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난 아이는 반듯이 이적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이 아이는 그 골상과 풍채가 비범하게 생겼고, 또 태어난 달이 정월이라 후일에 반듯이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인은 바로 아이를 위해 조희의 성을 취하고 다시 천하를 다스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정(政)이라고 지었다. 조정(趙政)이 바로 진왕의 자리에 올라 육국을 병탄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다. 조희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여불위는 마음속으로 희희낙락 했다.

7. 虎口脫出(호구탈출)

- 조나라를 탈출하여 호구에서 벗어나다.

진소양왕 50년 즉 기원전 257년 조정의 나이 세 살이 되었을 때 진나라 군사들이 한단성을 포위하고 매우 심하게 몰아부쳤다. 여불위가 이인을 찾아와 말했다.

「조왕이 아직도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는 진나라 군사들에 대한 분노를 전하께 화풀이하려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나라로 몰래 도망쳐서 다가올 화를 면하셔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모두 선생에게 맡기겠으니 알아서 주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불위가 가지고 있던 황금 6백 근을 모두 꺼내어, 그 절반인 3백 근으로는 한단성의 남문을 지키는 수장과 군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부탁의 말을 했다.

「내가 가권들과 종복들을 거느리고 내 고향 양책에서 이곳 한단성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이사를 왔으나 불행히도 진나라가 쳐들어와 한단성을 오랫동안 포위하고 있어, 고향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늘 제가 얼마간 남은 재물을 모두 정리하여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린 것은 우리 집안사람들이 성을 나가 고향 양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정을 베풀어주시기를 부탁드리는 위해서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남문을 지키는 수장이 여불위의 청을 허락했다. 다시 황금 백근으로는 공손건에게 바치면서 자기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자기를 위해 남문의 수장에게 부탁해 방편을 마련해 달라는 청을 했다. 남문의 수장과 군졸들은 모두 여불위가 나누어준 뇌물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은 엎드려 절 받기 식이 되어 쉽게 성사될 수 있었다. 여불위가 미리 이인으로 하여금 조씨 모자를 아무도 몰래 조희의 친정집에 숨겨두라고 했다. 이어서 여불위가 술자리를 마련하여 공손건을 청한 후에 부탁의 말을 했다.

「제가 이제 3일만 있으면 한단성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특별히 제가 집에 있던 술을 가져와 공과 석별의 정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어서 술자리가 벌어져 공손건은 여불위가 권하는 술잔은 모두 받아 마시더니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 관사를 지키던 공손건의 군사들에게도 많은 술과 안주를 내주자 그들은 마음껏 먹고 마신 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어서 밤이 깊어지자 미복으로 갈아입은 이인이 시종들 사이에 섞여 여불위 부자 뒤를 따라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의 수장은 그들 일행의 진위를 가려보지도 않고 자기가 직접 성문의 자물쇠를 열어 여불위 일행들을 성문 밖으로 내보냈다. 원래 한단성을 포위하고 있던 왕흘(王齕)의 진나라 군사들 본영은 서문 밖에 있었고 양책으로 가는 대로로 통하는 길은 남문이었기 때문에 여불위는 고향으로 간다고 공손건과 남문의 수장을 속인 것이다. 세 사람이 뒤따르던 종복들과 대오를 갖추어 밤을 도와 남문에서 크게 우회하여 서문 밖 진나라 본영을 향해 달렸다. 이윽고 날이 밝자 여불위의 일행은 진나라의 순찰병들에게 발견되어 사로잡히게 되었다. 여불위가 이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진나라 군사를 향해 말했다.

「이 분은 진나라의 왕손인데,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오늘 한단성을 탈출하여 본국으로 가는 중이다. 너희들은 속히 길을 열어 우리들을 너희들 대장에게 인도하라!」

진나라의 순찰병들은 자기들이 타고 있던 말을 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신들은 말고삐를 잡고 그들 일행을 왕흘이 있는 본영으로 인도했다. 왕흘이 세 사람의 내력을 확인한 다음에 자기의 막사로 불러들여 접견했다. 왕흘은 즉시 종복의 차림으로 변장한 이인에게 의관을 내주며 갈아입게 하고 잔치상을 준비하여 접대했다. 왕흘이 이인을 향해 말했다.

「지금 대왕께서는 우리들의 싸움을 독려하기 위해 이곳에 왕림해 계십니다. 대왕이 묵고 계시는 행궁은 이곳에서 불과 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왕흘은 부하들에게 명하여 거마를 준비하게 한 후에 일행 세 사람을 태워 진소양왕이 묵고 있는 행궁으로 보냈다. 뜻밖에 이인을 보게 된 소양왕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너의 아비 태자가 매일 밤 네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오늘 네가 호랑이 굴에서 빠져 나왔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로다! 너는 먼저 함양으로 가서 네 부모의 마음을 위로해 주어라!」

이인이 소양왕에게 작별을 고하고 여불위 부자와 함께 수레에 올라 함양을 향해 출발했다.

<제 100회로 계속>

주석

1)이윤(伊尹)/ 탕(湯)임금을 도와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을 토벌한 상(商)나라의 창업공신. 이름은 지(摯)이고 아형(阿衡)이라고도 불렀다. 원래는 탕임금의 비인 유신씨(有辛氏)의 몸종이었다가 탕임금에 의해 발탁되어 상나라의 국정을 맡았다. 탕임금이 하나라를 멸하고 상왕조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 후에 탕임금의 뒤를 이은 외병(外丙)과 중임(中壬) 두 임금을 보좌했다. 중임이 죽자 태갑(太甲)을 왕으로 옹립하여 올바른 정치와 법도에 대해 가르쳤다. 태갑이 선지 3년이 되자 정치를 포학하게 하고 탕왕이 세운 법도를 어지럽히자 이윤은 태갑을 쫓아내고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올라 상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3년 후에 태갑이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자 그는 태갑을 맞아들여 왕위에 복위시켰다. 태갑의 뒤를 이은 옥정(沃丁) 때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윤에 의해 쫓겨난 태갑이 7년 후에 돌아와 이윤을 살해했다고도 한다.

2)여망(呂望)/ 주무왕을 도와 은주(殷紂)를 토벌하고 주왕조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말한다. 강자아(姜子牙), 강태공(姜太公), 태공(太公) 등으로 불린다.

3)원옹(垣雍)/형옹(衡雍)을 말하며 지금의 하남성 원양현(原陽縣) 경내에 있었다.

4)음밀(陰密)/지금의 감숙성 영대현(靈臺縣) 서남

5)원문은 ‘狡免死 走狗烹, 敵國破 謀臣亡’이다. 이 말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중에 실려 있는 말이다. 한고조를 도와 한나라를 창건하는데 큰공을 세운 회음후 한신이 한고조에 사로잡혀 제후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장안으로 호송될 때 한 말이다. 또한 월왕구천세가에는 ‘ 飛鳥盡, 良弓藏, 狡免死, 走狗烹.’이라고 되어 있다. 구천을 도와 오왕부차를 멸하고 패업을 이루게 한 범려가 한 말이다.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실려 있다. 범려는 한신보다 250여년 전 사람이다.

6)두우(杜郵)/ 지금의 함양시 경내 서쪽으로 지금도 두우정(杜郵亭)이라는 유적이 남아있다.

7)夫賢士處世, 譬如錐之處于囊中, 其穎立露

8)脫穎而出(탈영이출)

9)원수(洹水)/ 지금의 하남성 임현(林縣)의 융려산(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안양시(安陽市)를 경유하여 내황(內黃)에서 황하와 합류했던 옛날 강 이름.

10)서수(犀首)/ 전국 때 종횡가(縱橫家)였던 진나라의 대양조(大良造) 공손연(公孫衍)을 말함. 인명사전 공손연(公孫衍) 참조.

11)언(鄢)/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경내로 초나라의 부도(副都)였다.

12)양책(陽翟)/전국 때 한 나라 영토로 지금의 하남성 우현(禹縣) 일대에 있었던 고을이다.

13)생황(笙簧)/관악기의 한가지로써 열 아홉 개 또는 열세 개의 대나무 대롱을 세워놓고 가로로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

14)아환(丫鬟)/ 옛날 아이들의 머리를 두 가닥으로 빗어 올려 두 귀의 뒤에서 두개의 뿔처럼 둥글게 묶던 것으로 소녀 또는 계집종을 일컫음.

15)운빈(雲鬢)/ 미인의 머리를 구름에 비유해서 이른 말

16)금련(金蓮)/ 옛날 전족을 한 부녀자의 발

[평설]

장평의 싸움이 끝난 후, 진과 조 두 나라는 빈번히 그 군사력과 전략을 다해 투쟁을 전개했다.

진나라 장수 백기는 조나라가 장평에서의 패배로 공포심에 떨고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조나라 도성 한단으로 진격하여 일거에 조나라를 멸할 준비를 했다. 이에 조나라는 소대(蘇代)를 진나라에 보내 범수에게 유세하게 했다. 소대는 진나라에 사절로 가서 두 가지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나는 한과 조 두 나라가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쳐 강화를 맺음으로 해서 백기의 한단 공격을 막아 일단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진나라의 장군과 재상인 백기와 범수 사이에 갈등을 유발시킨 것이다. 중도에서 군대를 회군해야만 했던 백기는 범수에게 큰 원한을 갖게 되었다.

조나라의 항졸 40여 만을 갱살함으로 해서 조나라는 단지 북을 한 번 울리기만 해도 한단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백기의 불만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백기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의 잔혹한 학살행위는 다른 한편으로 조나라 사람들을 격분시켜 적개심에 불타게 만들어 비록 한단을 점령했다 할지라도 조나라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해 마치 옛날 제선왕이 비록 연나라를 점령했지만 후에 연나라 백성들의 궐기로 낭패하여 철군해야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조나라 백성들의 궐기로 진나라의 군사들의 주력이 한단에 묶이게 된다면 제후들 역시 합종하여 진군이 피로에 지친 틈을 타고 공격했다면 진나라로써도 위험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해서 조나라의 휴전 제의를 수락하고 군사를 철수시킨 진왕의 조치는 전략상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나라에 땅을 떼어 주기로한 조나라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사기(史記)ㆍ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 따르면 ‘ 진군이 회군하자 조나라의 효성왕은 우경의 건의를 받아들여 합종을 주도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기로 결정하고 진나라에 주기로 한 6개의 성을 할양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생산에 전력을 기우려 국방을 강화하고 그 국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조나라가 취한 그와 같은 정책은, 조나라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조나라가 6개의 성의 할양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합종을 맺어 진나라에 대당하려고 하는 것을 본 진나라의 소양왕은 기원전 259년 백기에게 조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결과 진과 조 두 나라 사이에 다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백기는 조나라가 이미 국력을 이미 회복하고 대외적으로는 합종을 맺어 조나라를 공격할 시기를 이미 놓쳐 조나라를 공격하더라도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소양왕에게 간했다. 소양왕은 백기의 말을 듣지 않고 왕릉(王陵)이라는 장군을 대신 보내 한단을 공격하게 했다. 그때는 이미 조나라도 진군의 공격에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다고 불시에 진군을 기습하여 반격전을 전개한 결과 왕릉은 싸움에서 패배를 계속했다. 이에 진왕이 다시 백기에게 명하여 왕릉을 대신하여 진군을 지휘하라고 했다. 백기가 다시 병을 핑계로 진왕의 명을 거절했다. 진왕이 다시 왕흘(王齕)을 대신 대장으로 삼아 왕릉을 대신하게 했다. 왕흘도 오래 동안 한단을 공격했으나 결코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때 여불위가 한단에 인질로 가 있던 이인(異人)을 교묘한 계교로 진나라에 귀국시킨 일은 그런 전쟁의 와중에서였다. 진왕이 세 번째로 백기를 대장으로 임명했으나 그는 여전히 명을 받들지 않았다. 진왕이 대노하여 먼저 백기의 모든 관작을 빼앗고 결국은 명을 내려 자살하도록 했다.

백기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은 그 후에 전개되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진왕은 백기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그의 큰 실책이다.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다는 사실과 산동의 제후국들의 진나라에 대한 적개심에 근거한 조나라는 한단성을 굳게 지켰다. 적군을 피로에 지치게 하고, 다시 제후국들과 연합하여 지구전으로 대항한 조나라는 진군를 하여금 장시간 한단성 밑에서 주둔하게 만들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 진나라는 한단성을 어찌지 못하고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조나라는 막강한 전력의 진군에 대해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여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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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93회. 沙邱之變(사구지변), 慕名求相(모명구상)

제93회 沙邱之變 慕名求相(사구지변 모명구상) 사구궁에서 아사한 조나라의 무령왕과 맹상군의 명성을 사모하여 진나라의 상국으로 삼은 진소양왕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