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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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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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不忍帝秦(불인제진) 竊符救趙(절부구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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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100회 不忍帝秦 窃符救趙(불인제진 절부구조)

진나라를 제(帝)로 받드는 일을 중지시킨 노중련과

부절을 훔쳐 조나라를 구한 위나라의 신릉군

1. 大魚返海(대어반해)

- 대어가 바다로 돌아가다. -

여불위는 진나라의 왕손 이인과 함께 소양왕에게 작별을 고한 후에 길을 출발하여 함양에 당도했다. 그 전에 어떤 사람이 먼저 태자인 안국군에게 달려가 왕손 이인이 조나라를 탈출하여 함양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안국군은 화양부인에게 말했다.

「이인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안국군은 부인과 함께 내당에 좌정하고 이인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여불위가 도중에 이인에게 당부했다.

「화양부인은 곧 초나라 왕의 딸이고, 전하는 이미 그녀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녀를 뵈올 때는 반드시 초나라 복장을 입어 부인을 평소에 그리워해 왔다는 것은 표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인이 여불위의 말대로 옷을 초나라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동궁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던 안국군과 화양부인에게 차례로 인사를 올린 후에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불초한 자식이 오랫동안 부모님 곁에 떨어져 있어 곁에서 모시지 못했습니다. 부디 부모님께서는 이 불효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양부인은 이인이 입은 초나라의 복식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인은 머리에는 남관(南冠)1)을 쓰고 발에는 표석(豹舃)2)이라는 신발을 신었으며 짧은 도포에 혁대를 차고 있었다. 화양부인이 이인에게 물었다.

「너는 오랫동안 한단에 살았는데 어찌 초나라 사람들의 복장을 입고 있느냐?」

이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불효자가 매일 밤 어머님 생각이 나서 특별히 초나라 복장을 만들어 입고 있으면서 잊지 않으려고 해서입니다.」

화양부인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초나라 출신의 여자이니라. 내 마땅히 너를 아들로 삼아야 겠다.」

안국군도 옆에 있다가 화양부인의 말을 거들었다.

「너는 오늘부터 이름을 자초(子楚)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하라!」

이인이 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안국군이 다시 이인을 향해 물었다.

「삼엄한 조나라의 경계를 어떻게 뚫고 빠져 나올 수 있었느냐?」

자초는 조왕이 자기를 죽이려했기 때문에 여불위가 가산을 모두 털어 뇌물로 사용하여 몸을 빼낸 일의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말했다. 안국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불위를 불러오게 하여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말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나의 어질고 효성스러운 아들을 잃어버렸을 것이오. 오늘 동궁 소유의 전답 200경(頃)3), 저택 한 채와 황금 50 일을 내리니 당분간 비용으로 쓰기 바라오. 부왕께서 돌아오신다면 내가 품하여 벼슬과 작록을 내리도록 하겠소.」

여불위가 안국군에 감사의 말을 올리고 동궁에서 물러 나왔다. 자초는 계속 머물면서 화양부인과 함께 궁중에 기거했다.

한편 조나라의 한단성에서는 여불위 일행이 성문을 빠져나간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술에서 깨어난 공손건에게 좌우의 부하들이 와서 고했다.

「진나라의 왕손 일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려 행방이 묘연합니다.」

공손건이 다시 사람을 시켜 여불위 집으로 가서 알아오라고 시켰으나 그 사람이 돌아와 고했다.

「여불위도 역시 사라져 어디로 간지 알 수 없습니다.」

공손건이 그때서야 크게 놀라며 말했다.

「여불위는 3일 후에나 성 밖으로 나간다고 했는데 어찌 지난 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공손건이 즉시 남문으로 달려가 수장을 불러 여불위가 밖으로 나갔는지를 물었다. 남문의 수장이 군사들을 불러 심문한 후에 공손건에게 대답했다.

「여불위가 그 권속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간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저희는 단지 대부의 명을 받들어 내보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일행 중에 진나라 왕손도 끼어 있었는가?」

「여씨 부자와 몇 명의 종자들뿐이었고 왕손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공손건이 발을 동동 구르며 탄식하였다.

「종복들 중에 필시 왕손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일개 장사군의 간계에 속아넘어갔구나!」

공손건이 즉시 표문을 지어 조왕에게 고했다.

「신 공손건은 전하께서 내리신 감시 업무를 태만히 하여, 진나라의 인질인 왕손 이인이 달아나게 만들었습니다. 신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공손건이 표문을 써서 종자에게 주어 조왕에게 바치게 하고 자기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사람을 지키는 일은 조석으로 만전을 기해 조심해야 하거늘

술과 맛있는 음식과 재물에 너무 눈이 멀었구나!

술에서 깨어나니 왕손은 이미 사라져 버려

목을 찔러 자결했다지만 저승에 가서도 후회하고 있으리라!

監守晨昏要萬全(감수신혼요만전)

只貪酒食與金錢(지탐주신여금전)

醉鄕回后王孫去(취향회후왕손거)

一劍須知悔九泉(일검수지회구천)

2. 不忍帝秦(불인제진)

-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드는 일은 결코 참을 수 없다. -

조나라의 한단성을 빠져 나온 이인을 본 진소양왕은 한단성에 대한 공세를 세차게 했다. 진군의 맹공에 조왕이 다시 사자를 위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위나라에서 객장(客將)4)으로 있는 신원연(新垣衍)이 안리왕(安釐王)에게 유세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이렇듯 심하게 공격하고 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진나라는 옛날에 제민왕에게 제호(帝號)를 칭하자고 제안했었으나 제왕이 듣지 않아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왕은 이미 죽고 제나라의 국세는 더욱 약화되어 오로지 진나라만이 강국으로 남아 있게 되었으나 여지껏 제호를 칭하지 못하고 있어 그 마음속으로 매우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군사를 동원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조나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압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제호를 칭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의를 다하여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받들어 제왕으로 섬긴다면 진왕은 기뻐하며 군사를 거두어 물러갈 것입니다. 이것은 헛된 이름을 주어 화를 면하는 실익을 얻게 되는 일입니다.」

안리왕은 진나라의 보복이 두려워 군사를 내어 조나라를 구원하기를 꺼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원연의 계책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신원연을 사자로 삼아 조나라의 한단으로 보내 진왕을 제왕으로 받들라고 권했다. 조왕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신원연이 권한 내용에 대해 의논하였다. 조나라 군신들의 의견은 분분하여 조왕은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평원군도 마음이 산란하여 그 역시 아무런 주장을 내 놓지 못했다. 그때 마침 제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한단에 머물고 있었다. 노중련이란 사람은 옛날 자기 나이 12세 때 제나라의 유명한 변설가 전파(田巴)5)라는 사람과 논쟁을 하여 굴복시킨 일이 있었는데 그 논쟁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노중련을 천리구(千里駒)라고 호칭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전파가 그 말을 듣고는 말했다.

「노중련이 어찌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 정도로 밖에 비교되겠는가? 그는 참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토끼와 같은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노중련이 후에 장성하자 벼슬은 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천하를 돌아다니며 어진 사람들과 사귀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주는 일을 낙으로 삼고 살았다. 그때 마침 노중련이 진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된 한단성 안에 머물고 있다가 위나라에서 사자가 와서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들기를 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발연히 노하여 평원군을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한단성 안에 사는 백성들이 말하기를 대감께서는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들 예정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이 조승은 이미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새의 처지가 되어 정신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천하의 대사에 대해 논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위왕이 장군 신원연을 보내 권하고 있는 일일 뿐입니다.」

「대감은 천하의 지혜로운신 분인데 위왕의 명을 빙자하여 책임을 피하려고만 하십니까? 지금 신원연 장군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대감을 위해 마땅히 그를 만나 호통을 쳐서 돌려보내겠습니다.」

평원군은 신원연에게 사람을 보내 노중련이라는 사람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신원원은 평소에 이미 노중련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신원원은 노중련이 변설에 능하여 자기의 주장이 꺾이게 될 것을 두려하여 서로 상면하는 것을 사양하였다. 그러나 평원군은 신원연의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중련을 데리고 그가 묵고 있는 객관을 찾아가 두 사람을 대면시켰다.

신원연이 눈을 들어 노중련을 쳐다보니 기품이 고아하고 표표한 자태가 신선의 도를 지니고 있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존경심이 마음에 들어 자리에 벌떡 일어나 맞이하며 말했다.

「제가 선생의 존안을 뵈오니 평원군에게 구하시는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진나라 군사들에게 오랫동안 포위된 이 위험한 성도(城都)에 머무시면서 선생의 나라로 돌아가시지 않으십니까?」

「제가 평원군에게 원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니라 삼가 장군께한 가지 청이 있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선생께서 청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청컨대, 구원군을 보내 조나라를 도우시고 진나라가 제호(帝號)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은 무엇 때문에 조나라를 도우라고 하십니까」

「지금 제와 초 양국이 이미 조나라를 돕고 있는 것처럼 위와 연 두 나라도 조나라를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원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연나라가 조나라를 돕는 일은 제가 모르지만, 위나라의 일이라면 제가 즉 대량에 온 사람인데 선생은 무슨 방법으로 우리 위나라로 하여금 조나라를 돕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위나라는 진나라가 칭제를 하게 되면 그 폐해가 얼마나 크게 될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그 폐해를 알게 된다면 위나라는 틀림없이 조나라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제호를 칭한다 한들 무슨 폐해가 있단 말입니까?」

「진나라는 곧 예와 의를 버리고 전쟁에 나가 세운 전공만을 제일로 치는 나라입니다. 진나라는 군사들의 강함만을 믿고 이웃나라들을 기만하였으며 장평의 싸움에서는 항복해온 조나라의 수십 만의 생령들을 모조리 도륙하였습니다. 진나라가 제후들의 반열에 있음에도 그 횡포함이 그렇듯 잔혹한데, 만약에 그들이 방자하게 제호를 칭한다면 그 횡포는 극에 달할 것입니다. 저는 동해로 달려가 물어 빠져 죽을지언정 진나라 백성이 되는 것은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위나라 사람들은 진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기꺼워하는 모양이지요?」

「위나라 백성들이라고 해서 어찌 진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열 사람의 종복이 한 사람의 주인을 모신다고 해서 그 열 사람의 지혜가 주인 한 사람보다 못해서이겠습니까? 마음속으로 주인의 위세를 두려워서 이겠지요!」

「위나라가 스스로 진나라의 종복으로 생각한다니, 제가 장차 진왕에게 말하여 위왕을 죽여 그 살고기로 육젓을 담그라고 하겠습니다.」

신연원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선생은 어찌하여 우리 위왕에게 악담을 하십니까? 위왕을 삶아 죽여 그 고기로 육젓을 담그게 하겠다는 말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옛날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을 모시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구후가 미녀를 얻어 주왕에게 바쳤으나 그녀가 주왕과의 잠자리를 거부하여 주왕의 분노를 샀습니다. 주왕은 미녀와 구후를 살해하고 구후의 살고기는 찢어서 육젓을 담그게 했습니다. 악후는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간하다가 악후와 마찬가지로 가마솥에 삶겨 살해되었습니다. 서백 창(昌)이 듣고 혼자말로 탄식하였으나, 주왕이 알고 그를 붙잡아 유리(羑里)라는 곳에다 가두어 버렸습니다. 서백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어찌 은나라의 삼공의 지혜가 주왕보다 못해서 그런 참사를 당했겠습니까? 천자가 제후들에게 행하는 행위는 옛날부터 이렇듯 엄혹했습니다. 진나라가 일단은 제호를 칭하게 된다면 필시 천자의 명으로 위왕을 불러 입조하도록 명할 텐데, 위왕이 입조 한다면 하루아침에 구후나 악후가 당한 참화를 입게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입니다. 누가 진왕이 행하는 만행을 능히 못하도록 말릴 수 있겠습니까?」

신연원은 노중련의 말을 듣고 심사숙고하면서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노중련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진나라가 참람하게 제호를 칭하게 된다면 또한 필시 제후들을 모시고 있던 대신들을 모두 바꾸고 진왕이 싫어하는 대신들은 그 재산과 작록을 빼앗아 자기가 좋아하던 신하들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다. 또한 진왕은 강제로 자기의 딸과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하는 첩실들을 제후의 부인으로 삼을 것인데, 위왕인들 두 다리 뻗고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와중에 장군께서 지금 가지고 계시는 작록인들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신원연이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더니 노중련을 향해 거듭 큰 절을 올리며 사죄의 말을 했다.

「선생이야말로 참으로 천하의 명사이십니다. 이 신원연은 즉시 위나라로 돌아가 두 번 다시는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말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때 진소양왕은 위나라 사자가 조나라에 들어가 자기를 제왕으로 받들기 위해 의논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한단성에 대한 공세를 늦추고 그 결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를 제왕으로 받드는 일이 성사되지 않고 위나라 사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자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포위하여 공격을 하였음에도 그 위협에 굴하지 않음을 보니 이는 한단성 내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는 말이니, 내가 너무 가볍게 볼일이 아니로구나!」

즉시 한단성의 포위망을 풀라고 명한 소양왕은 군사들을 뒤로 물리쳐 대열을 두 대로 재정비하고 그 중 일대는 후방으로 물리쳐 분수(汾水) 강안에 주둔하며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또한 다른 일대는 왕흘을 대장으로 삼아 한단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둔하며 향후의 싸움 준비에 만전을 다하여 대기하도록 했다.

3. 侯嬴獻計(후영헌계)

- 후영이 조나라를 구원할 계책을 말하다. -

한편 신원연이 위나라로 돌아가자 평원군은 당시 업성에 행군을 멈추고 주둔하고 있던 위나라의 대장 진비(晉鄙)에게 사자를 보내 속히 행군을 계속하여 한단을 구해 주도록 청했다. 그러나 진비는 위왕의 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평원군의 요청을 거절했다. 평원군은 다시 편지를 써서 신릉군 무기에게 보내면서 말했다.

「이 승이 스스로 위나라와 혼인 관계를 맺은 것은 공은 의기가 높은 사람이라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을 능히 구하리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오늘 한단성이 위급하기가 풍전등화와 같은데 위나라의 구원병은 아직도 당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승이 평생 동안 의탁하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헛일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의 누이는 이제나 저제나 한단성이 함락되는 것을 걱정하며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비록 이 승을 생각하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그 누이 생각을 잊으시면 되겠습니까?」

신릉군이 편지를 읽고 나서 위왕에게 달려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진비에게 계속 진격하여 한단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안리왕은 신릉군의 청을 거절하며 말했다.

「조나라가 스스로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들기를 거절했으면서 어찌 다른 나라의 도움을 얻어 진나라 군사들을 물리치려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안리왕은 결코 신릉군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신릉군은 다시 자기 문하의 빈객들과 변사들을 시켜 위왕을 찾아가 온갖 교묘한 말로 설득하려고 했으나 위왕은 한사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신릉군이 조나라를 구하는데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말했다.

「평원군의 기대를 저버림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내가 비록 혼자가 되더라도 조나라에 가서 평원군과 함께 죽으리라!」

신릉군은 자기의 가재를 털어 병거와 기병 100여 승을 준비하여 자기를 따라가기로 자청한 빈객들과 함께 한단성으로 달려가 곧바로 진나라 진영을 공격하려고 했다. 신릉군의 일행이 대량성의 이문(夷門)을 지날 때 그는 후생의 집을 찾아가 작별을 고했다. 후생이 신릉군에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은 나이가 이미 많이 들어 공자님을 따를 수가 없으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신릉군은 계속해서 후생을 쳐다봤으나, 후생은 그 외에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신릉군은 결국은 앙앙불락하며 후생과 헤어지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신릉군이 대량성의 성문을 빠져 나가 10리쯤 가다가 마음속에서 일말의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소에 예를 극진히 갖추어 후생을 대하다가, 오늘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진나라 진영으로 달려가고 있건만, 후생이란 자는 나를 위해 일언반구의 위로하는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만류도 하지 않으니 참으로 괘씸한 일이 아닌가?」

신릉군은 즉시 같이 동행하던 빈객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명하고 자기 혼자 수레를 몰아 대량성 안으로 들어가 후생을 다시 만나 따져보려고 하였다. 빈객들이 듣고 모두 말했다.

「그는 늙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어 아무 데고 쓸모가 없는 사람인데 공자께서는 하필이면 다시 찾아가 만나시려고 하십니니까?」

그러나 신릉군은 듣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대량성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후생은 자기 집 문 앞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멀리서 신릉군이 탄 거마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후영은 공자가 틀림없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신릉군이 듣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제가 다시 돌아올 줄 아셨단 말입니까?」

「공자께서 이 영을 평소에 극진하게 대해주시다가 이제 생사를 알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납시게 되었으나 신이 전송도 하지 않았으니 틀림없이 공자께서는 신을 괘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자께서 그 연유를 물으시기 위해 틀림없이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신릉군이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사실은 이 무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선생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연유를 여쭤보려고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공자께서는 문객을 수십 년 동안 기르셨는데, 한 사람도 쓸만한 계책을 내기는커녕 그들과 공자께서는 지금 강포한 진나라의 정예병들을 향해 돌진하려고 하십니다. 그것은 것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던져 개죽음을 자초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것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이 무기 역시 그것이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는 알고 있지만 단지 내가 평원군과의 우정을 생각하면 나만 홀로 살아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저지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저에게 일러주실 무슨 좋은 계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공자께서는 일단 좌정하십시오. 신이 한 가지 계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후생은 좌우에 있던 사람을 물러가 있게 한 다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은밀한 목소리로 신릉군에게 계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들으니 요사이 위왕께서는 여희(如姬)라는 희첩을 하나 얻어 매우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알고 계신지요?」

「알고 있습니다.」

「그 여희의 부친은 옛날 어떤 사람에게 살해당해 왕에게 부탁하여 자기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그 사람을 3년 동안이나 찾았지만 죽이지 못하자 그 일을 알게 된 공자께서 문객 한 사람을 보내 그의 목을 베어 오게 하여 여희에게 바친 적이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이 사실입니까?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희는 공자의 은혜에 감격하여 공자를 위하여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를 하고 있게 된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오늘 진비에게 주고 남은 반쪽의 병부(兵符)6)는 위왕의 침실에 놓여있어 오로지 여희만이 훔쳐낼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입을 열어 여희에게 청을 넣어 병부를 훔쳐서 넘겨주도록 부탁하면 그녀는 결코 공자의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 병부를 손에 넣으신 후에 업성의 진비에게 달려가 군권을 접수한 후에 군사들을 진격시켜 진군을 물리친다면 그 공은 춘추오패의 업적에 필적할 수 있습니다.」

4. 竊符救趙(절부구조)

- 호부를 훔쳐내어 조나라를 구하는 신릉군 -

신릉군은 마치 꿈속에 헤매다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확연히 깨닫고 후생을 향해 연거푸 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즉시 대량성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던 빈객들에게 달려가 자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라는 명을 내리고 자기는 단신으로 수레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신릉군은 평소에 사이가 좋은 안은(顔恩)이라는 내시에게 자기는 위왕의 병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여희에게 가서 자기의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안은을 통하여 병부를 훔쳐 자기에게 전해 달라는 신릉군의 부탁을 받고 여희는 말했다.

「공자의 명이라는데 어찌 제가 감히 비록 펄펄 끓은 물속이나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인들 마다하겠는가?」

그날 밤 여희는 위왕과 술을 마시고 잠자리를 같이 하다가 위왕이 잠이 든 틈을 이용하여 호부를 훔쳐 안은에게 넘겨주었다. 안은은 호부를 가지고 궁궐을 나와 신릉군에게 전했다. 호부를 손에 넣은 신릉군은 작별을 고하기 위해 다시 후생을 찾았다. 후생이 말했다.

「장수란 군사를 거느리고 밖에 있으면 군주의 명이 있다하더라도 받들지 않아도 됩니다. 공자께서 호부를 가져가 서로 맞추어 확인한다 할지라도 진비가 믿지 않고 혹시 사람을 위왕에게 보내어 확인하게 되면 모든 일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신의 친구 주해(朱亥)는 천하장사입니다. 공자께서는 그를 데리고 가서 진비가 공자께서 잘 대하심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즉시 주해를 시켜 그를 죽이도록 하고 그의 군권을 빼앗으십시오.」

신릉군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표정을 짓자 후생이 보고 물었다.

「공자께서는 지금 업성으로 달려가시어 군권을 빼앗는 일을 두려워하시기 때문입니까?」

「진비는 우리 위나라의 아무 죄도 짓지 않은 노장(老將)인데, 내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죽여야 되니 내 그것을 슬퍼함이지 내가 어찌 다른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후생은 이어서 신릉군을 인도하여 주해의 집에 들려 자기들이 온 목적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해가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신은 곧 저잣거리에서 소나 잡는 무식한 백성임에도 공자께서 여러 번 저를 찾아주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그 은혜를 갚지 않은 것은 조그만 예의를 지켜봤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자께서 위급한 일을 당하시니 이제야 제가 제 목숨을 바쳐 공자님의 은혜에 보답할 날이 온 것 같습니다.」

「신은 도리 상 마땅히 공자님을 따라가 도와드려야 마땅하겠으나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 먼 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죽어 혼이나마 공자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후생은 즉시 신릉군이 탄 수레 앞에서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릉군은 애통해 마지않으며 사람을 시켜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잘 치러 주라고 명하고 자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주해와 같이 수레에 올라 북쪽의 업성을 향해 달려갔다. 염선이 이 일를 두고 시를 지었다.

진나라를 두려워한 위왕은 진실로 겁쟁이 였고

무조건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리려고 했던 신릉군도 가소롭도다!

3천 명이나 되는 식객도 별 무 소용이었으니

여희의 도움을 빌리라는 후생의 계책을 따를 뿐이었다.

魏王畏敵誠非勇(위왕외적성비용)

公子捐生亦可嗤(공자연생역가치)

食客三千無一用(식객삼천무일용)

侯生奇計仗如姬(후생기계장여희)

그리고 3일이 지나서야 안리왕은 자기의 침실에서 호부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고 한편으로 불쾌하게 생각했다. 위왕은 우선 여희에게 호부의 행방에 대해 물었으나 그녀는 다만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다. 위왕은 측근들에게 명하여 궁안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라고 했지만 결코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안은에게 명하여 궁녀들과 내시들과 그날 당직을 선 자들을 모두 붙잡아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호부의 행방을 밝혀내라고 했다. 안은은 마음속으로 모두가 부질없는 짓을 줄 알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며 호부의 행방을 대라고 하며 심문을 하면서 하루를 야단법석을 떨며 지냈다. 위왕은 갑자기 공자 무기가 옛날에 여러 번 자기에게 진비를 진격시켜 조나라를 구원하라고 주청한 일을 생각해 내고는 필시 그 문하 중에 옛날 맹상군을 따라다니던 계명구도와 같은 무리들이 많이 섞여 있다가 자기의 호부를 훔쳐갔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위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 신릉군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공자님께서는 4-5일 전에 이미 빈객 천여 명과 함께 병거 100 대에 나누어 타고 대량성 밖으로 나가셨다고 합니다. 소문에 듣기에는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위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장군 위경(魏慶)에게 기마병 3천 명을 끌고 나가 신릉군의 뒤를 밤낮으로 추격하여 붙잡아오라고 명했다.

한편 한단성을 수비하기에 급급하던 조나라 군사들은 구원병이 당도하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아직까지 한 명의 구원병도 오지 않자 힘이 다하여 모두 낙담한 끝에 삼삼오오 떼를 지어 성문을 나가 항복하자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조왕이 이를 알고 근심하였다. 평원군이 운영하는 객사의 전사(傳舍)7)를 관리하던 집사의 아들 중에 이동(李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평원군을 찾아와 말했다.

「백성들은 매일 성벽 위에 올라 성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데, 공자는 오히려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공자님을 위해 누가 기꺼이 있는 힘을 다 하겠습니까? 공자님께서는 마음을 비우시고 부인을 위시해서 슬하의 권속들을 모두 성을 지키는 수비대에 편입시켜 일반 백성들과 공을 다투도록 하시고 집안에 있는 모든 재물과 비단을 꺼내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이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여 쉽게 공자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되어 있는 힘을 다하여 진나라 군사들을 막을 것입니다.」

평원군이 이동의 말을 따라 그대로 시행했다. 다시 결사대 3천 명을 모집한 평원군은 이동에게 인솔하게 하여 밧줄을 타고 성을 내려가 야음을 틈타 진나라 영채를 습격하게 하여 진나라 병사 천여 명의 수급을 베었다. 왕흘이 크게 놀라 영채를 30십 리나 뒤로 물리쳐 다시 세우게 했다. 이윽고 성안의 백성들 인심은 가까스로 안정되었다. 이동은 싸움 중에 몸에 중상을 입고 성안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 있어 그 상처로 죽고 말았다. 평원군이 그를 위해 통곡을 하고, 매우 애석해 하며 그를 후하게 장사 지내주도록 했다.

한편 신릉군 무기의 일행은 업성에 당도하여 진비를 만났다. 신릉군은 진비를 보자 말했다.

「대왕께서는 장군께서 외지에 나와 있으면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생을 하신 지가 오래되어 이 무기를 보내어 장군의 노고를 대신하도록 하셨습니다.」

신릉군은 말을 마치고 주해가 두 손으로 받들고 있던 호부를 건네 받아 진비의 것과 맞추어 보고 확인을 시켰다. 진비가 호부를 받아 손에 들었으나 마음속으로 미심쩍어 하며 생각했다.

「대왕께서 나를 믿으시고 10만의 군사를 나에게 맡기셨는데, 내가 비록 용렬하기는 하나 아직까지 싸워서 패전의 죄를 지은 적이 없음에도 오늘 대왕께서 한 통의 문서도 없이 단지 공자가 무리를 지어 호부를 손에 들고 와서 군권을 내달라고 하니 이것을 내가 어찌 가볍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진비는 신릉군을 향해 말했다.

「공자께서는 잠시 며칠간 이곳에 머무시면서 소일하고 계십시오. 제가 거느리고 있던 부대의 군적부를 만들어 공자께 바쳐 이 일을 명백히 해 드리고자 합니다.」

「한단의 상황이 매우 위급한 처지에 놓여 있어 내 마땅히 밤낮으로 행군하여 조나라를 구원해야 하는데 어찌 잠시라도 지체할 수 있겠소!」

「사실 이 일은 군기에 관한 대사라 서로 간에 잘못을 저지르지않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대왕께 사람을 보내 주청을 드린 연후에 허락이 나면 군권을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비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신릉군의 곁에서 시립하고 있던 주해가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원수께서는 왕명을 받들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반역죄에 해당합니다.」

진비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돌려 소리치는 사람을 쳐다보며 외쳤다.

「너는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렇듯 무례한가?」

그러나 그때는 이미 주해가 소매 속에서 40근이 넘는 철퇴를 꺼내어 진비를 향해 날린 다음이었다. 진비의 머리는 주해의 일격에 산산이 부셔지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신릉군이 병부를 손에 들고 수하 장수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왕께서 명을 내려 나로 하여금 진비를 대신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조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으나 진비가 명을 받들지 않아 내가 주살하였다. 여러분들은 안심하고 나의 지시를 받들고 경거망동하지 말라!」 위나라 군중은 진정되어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곧이어 신릉군을 추격하여 뒤따라온 위경이 군사를 이끌고 업성에 당도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진비는 살해되고 위나라의 대군에 대한 병권은 신릉군이 장악한 상태가 되어 그도 어찌 해 보는 도리가 없었다. 위경은 신릉군이 이미 조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심을 굳혔음을 알고 업성을 떠나 대량으로 그냥 돌아가서 위왕에게 복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릉군이 위경을 붙잡으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미 이곳에 오셨으니 내가 진나라 군사들을 격파하는 것을 보시고 돌아가 대왕께 보고하셔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경은 할 수 없이 신릉군의 군영에 머무르면서 밀서를 써서 심복에게 주어 업성의 정황을 보고하게 하였다. 신릉군은 잔치를 벌려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에 영을 내렸다.

「부자가 모두 이곳 군중에 있는 자는 그 아비 되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간다. 형제가 없는 독자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부양한다. 몸에 병이 들어 아픈 자는 약을 주어 치료해 준다.」

군사들 중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한 사람은 전체의 십 분의 이에 달했으며 나머지 정예병 팔만의 병사를 얻어 대오를 다시 짰다. 신릉군은 자기가 이끌고 온 빈객들을 병사들의 앞장에 서게 하여 진나라 진영으로 돌진하게 만들었다. 진나라 대장 왕흘은 뜻밖에 위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창졸간에 진용을 갖추어 대항하려고 했으나 위나라 병사들이 용기백배하여 돌격하고, 다시 성안에서 농성하던 평원군이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와 호응하여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왕흘이 이끌던 진군은 절반이 꺾이고 나머지는 분수 강안에 세워 놨던 진나라 본영으로 도망쳤다. 진소양왕은 진나라 진영에 영을 내려 한단성의 포위망을 풀고 철수하라고 했다. 그때 한단성 동문 앞에는 범수의 친구였다가 그에 의해 천거를 받아 진나라의 장군이 된 정안평(鄭安平)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치고 있었다. 위나라 군사들에게 길이 막혀 자기들 진영으로 후퇴할 수 없게 된 정안평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원래 위나라 사람이었는데 내가 신릉군의 위나라 군사들에게 항복한다고 해서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리라!」

정안평은 즉시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위나라에 항복했다. 초나라 구원군을 이끌고 한단성 외곽에 주둔하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초나라의 춘신군은 진나라가 이미 한단성의 포위망을 풀고 퇴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도 역시 군사들의 행군 방향을 돌려 초나라 본국으로 돌아갔다. 진나라가 패퇴한 틈을 이용한 한나라의 환혜왕(桓惠王)은 진나라가 빼앗아 간 상당(上党)의 땅으로 군사를 진군시켜 다시 한나라 땅으로 만들었다.

- 이 일은 진소양왕(秦昭陽王) 50년, 주난왕(周赧王) 58년인 기원전 257년의 일이었다.-

5. 人德不忘 德人忘之(인덕불망 덕인망지)

- 남에게 받은 덕은 잊으면 안되고 남에게 베푼 덕은 잊어야한다.-

진나라의 군사들이 물러간 것을 보고 조나라의 효성왕(孝成王)은 친히 군사들 앞으로 나와서 소고기와 술을 내오게 하여 군사들을 호궤(犒饋)하고, 신릉군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말했다.

「망할 뻔한 조나라가 다시 살아난 것은 모두가 공자가 애써준 것 때문입니다. 자고로 어진 사람이란 공자와 같으신 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평원군은 쇠뇌에 사용하는 화살을 등에 메고 신릉군이 탄 수레의 앞에 서서 향도를 노릇을 하며 인도하였다. 신릉군은 자기도 모르게 조나라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자부하며 그 태도가 거드름을 피우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해가 옆에 있다가 신릉군을 향해 말했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절대 잊으면 안 되고,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혜는 기억하고 있으면 안되는 법입니다8). 공자께서는 왕명이라 속이고 진비의 군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여, 조나라에는 비록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위나라에는 아직 죄인의 처지에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 공을 뽐내시는 것입니까?」

신릉군이 듣고 부끄러워 하며 대답했다.

「이 무기는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신릉군은 이어서 평원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단성 안으로 입성했다. 조왕은 자기가 몸소 빗자루를 들고 궁실을 소제한 다음 신릉군을 맞이했다. 또한 그는 신릉군을 주인을 맞이하는 예를 취하며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조왕은 신릉군을 향해 읍을 하며 주인이 사용하는 서쪽 계단을 사용하여 전당으로 오르도록 청했다. 신릉군은 사양하며 손님의 입장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혼자 잰걸음으로 동쪽 계단을 이용하여 전당으로 올랐다. 조왕이 술잔에 술을 따라 직접 바치며 수(壽)를 기원하여 신릉군이 조나라를 구한 공로를 노래했다. 신릉군이 두려워하며 몸을 움츠리며 겸양의 자세를 취하며 사양하는 말을 올렸다.

「이 무기(无忌)는 위나라에 죄를 짓고 온 사람이라 조나라에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잔치가 끝나고 신릉군이 관사로 돌아가자 조왕이 평원군을 보며 말했다.

「내가 다섯 개의 성을 떼어 위공자님을 봉하려고 했었는데, 공자가 너무 겸양한 태도를 취하여 내가 자격지심으로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나는 그를 호(鄗)9)의 땅에 봉해 그의 탕목지읍(湯沐之邑)10)으로 삼게 하려고 하니 군께서는 번거로우시겠지만 과인의 뜻을 위공자님에게 전해 나의 성의를 받도록 설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평원군이 신릉군을 찾아가 조왕의 명을 전했으나 신릉군은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나 계속된 평원군의 강권에 못이겨 결국은 조왕의 명을 받들었다. 신릉군은 위왕에게 죄를 얻었기 때문에 감히 귀국하지 못하고 병부를 장군 위경(衛慶)에게 건내주며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회군하라고 일렀다. 신릉군이 조나라에 머물자 위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그의 빈객들은 모두 위나라를 버리고 조나라로 도망쳐와 신릉군에게 몸을 의탁했다.

조효성왕(趙孝成王)은 다시 노중련(魯仲連)을 큰 성읍(城邑)에 봉하려고 했으나 그 역시 고사하였다. 다시 천금의 상을 내렸으나 역시 받지 않으며 말했다.

「부귀하여 남에게 굽실거리며 살기보다는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11)」

신릉군과 평원군이 노중련을 찾아가 같이 조나라에 머물기를 청했으나 그는 듣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표연히 조나라를 떠났다. 노중련이야 말로 진정한 고결한 선비였다. 사관(史官)이 시를 지어 노중련은 노래했다.

卓哉魯連(탁재노련)

훌륭하도다, 노중련이여!

品高千載(품고천재)

고매한 기품은 천년에 걸쳐 빛나리라!

不帝强秦(부제강진)

강포한 진나라를 제왕으로 받들 바에는

寧蹈東海(영도동해)

차라리 동해로 달려가 빠져죽겠다고 했으니

排難辭榮 (배난사영)

남을 위해 재난을 구했으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逍遙自在(소요자재)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세상을 소요했도다!

視彼儀秦 (시피의진)

그를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에 비한다면

相去十倍(상거십배)

아마도 그들보다는 열 배는 나으리라.

6. 折節大隱(절절대은)

- 조나라 시정에 몸을 숨기고 사는 은자와 몸을 굽혀 사귀다. -

그때 조나라에는 모공(毛公)과 설공(薛公)이라는 은자(隱者)가 있었다. 모공은 도박군들 속에, 설공은 술도가에 몸을 숨기며 살고 있었다. 신릉군은 자기가 위나라에서 살고 있었을 때부터 그들의 어진 이름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주해를 시켜 그 두 사람의 행방을 찾아 자기가 한번 찾아가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두 사람이 주해의 전하는 말을 듣고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몸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신릉군은 두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모공(毛公)이 설공(薛公)의 집에 같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거마도 타지 않고 걸어서 주해 한 사람만을 데리고 미복(微服)으로 바꿔 입고 술장사라고 하면서 설공의 술도가를 찾아 두 사람을 만나려고 하였다. 그때 두 사람은 술도가에서 술독을 옆에 끼고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신릉군이 곧바로 들어가서 자기의 성과 이름을 밝히고 그들의 이름을 경모하여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일어나서 신릉군과 인사를 나누고 주해를 포함한 네 사람이 자리를 같이하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음주를 마음껏 즐기다가 이어서 헤어졌다. 이후로 신릉군은 수시로 모공과 설공을 찾아가 같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 평원군이 듣고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옛날에 내가 듣기에 처남인 신릉군(信陵君)은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천하호걸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노름꾼과 술장사와 어울리고 있으니,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름을 훼손시키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그 부인이 신릉군을 불러 평원군이 한 말을 전했다. 신릉군이 듣고 그의 누이인 부인에게 말했다.

「나는 옛날 평원군이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위왕(魏王)의 뜻을 저버리면서까지 병권을 훔쳐내어 조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와서 보니 평원군의 빈객들은 모두가 허풍만 치는 도배들이고 진정한 현사(賢士)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동생은 위나라에 살고 있을 때부터 조나라에는 모공(毛公)과 설공(薛公)이라는 어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들과 사귄 후에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의 고삐나 잡고 다녔으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내가 그들과 사귈만한 그릇이 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원군은 오히려 그들과 같은 어진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수치로 여긴다니, 나는 결코 그가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평원군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어진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나라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습니다.」

신릉군은 관사로 돌아가 자기의 빈객들에게 행장을 꾸리라고 명하고 그들과 함께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 했다. 신릉군이 행장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평원군이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지금까지 처남에게 예를 잃지 않고 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갑자기 나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나겠다고 하는지 부인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평원군의 부인이 대답했다.

「저의 동생이 군께서 어질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 나라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신릉군이 자기에게 한 말을 상세하게 평원군에게 전했다. 평원군이 듣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탄식했다.

「조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우리나라에 두 어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는데, 위나라 사람인 신릉군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나야말로 참으로 신릉군을 따라가려면 멀었구나! 그의 사람됨이 이와 같이 고매하니 나 같은 자는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겠구나!」

평원군은 몸소 신릉군이 머물고 있던 관사를 찾아 관을 벗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자기가 실언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신릉군은 평원군의 사과를 받아들여 조나라에 계속 머물렀다. 평원군의 문객들은 신릉군의 사람됨을 알게 되자 그 중 절반 이상이 평원군의 집에서 나와 신릉군의 집으로 옮겼다. 사방에서 조나라로 몰려든 빈객들도 신릉군만 찾았지 평원군은 찾지 않았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술장사와 도박군을 어찌하여 가난하다고 싫어하는가?

호화 공자 신릉군은 기꺼이 몸을 굽혀 그들과 사귀었도다!

가소롭구나, 평원군의 경박함이여!

오히려 부귀를 믿고 현인을 업신여겼다.

賣漿縱博豈嫌貧(매장종박개혐빈)

公子豪華肯辱身(공자호화긍욕신)

可笑平原無遠識(가소평원무원식)

却將富貴壓賢人(각장부귀염현인)

한편, 위안리왕(魏安釐王)은 위경(衛慶)이 보내온 밀서를 받아보고 말했다.

「병부(兵符)를 훔쳐간 사람은 과연 무기(无忌) 공자였구나. 진비를 죽이고 병권을 탈취하여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들을 진격시키고, 다시 내가 보낸 장군을 군중에게 억류시키고 돌려보내지 않으니 이런 불충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안리왕(安釐王)은 분노가 극에 달해 신릉군의 가속들과 아직 위나라에 머물고 있던 그의 빈객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죽이려고 했다. 여희(如姬)가 듣고 급히 왕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고 자기의 죄를 고했다.

「호부를 훔친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바로 소첩이 한 짓입니다. 첩을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듣고 더욱 노하여 소리치며 말했다.

「호부(虎符)를 훔쳐간 자가 바로 너란 말이냐?」

「옛날 소첩의 아비가 도적의 손에 살해되었을 때 대왕께서는 국사에 바쁘시어 첩을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자께 부탁하자 공자는 며칠 만에 저의 원수를 찾아내어 저를 위해 그 자를 죽여 복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첩은 공자의 깊은 은혜에 감격하였으나 그 은혜를 갚을 길 없어 한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공자께서 조나라에 계시는 누이를 생각하며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고 소첩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제가 독단으로 호부를 훔쳐 공자에게 넘겨 진비가 거느린 군사를 이끌게 하여 그의 뜻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첩이 듣기에 ‘같은 집안사람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싸울 때는, 머리를 다듬거나 관 끈을 동여 맬 사이도 없어 달려가 구하라12)’라고 하였습니다. 조나라와 위나라는 혼인으로 맺어진 같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왕은 옛날의 정리를 잊으셨으나, 공자님은 종실의 사람이 위급에 빠지자 서슴없이 조나라를 구원하러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공자께서 진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고 조나라를 구원하게 된다면 대왕의 위명(威名)은 천하에 떨치게 되고, 의로운 목소리는 사해를 진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 소첩의 몸이 만 갈래로 찢어져 죽는다 한들 어찌 제가 후회하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만약에 신릉군의 가족과 그의 빈객들을 붙잡아다가 모조리 죽인다 하더라도, 신릉군이 싸움에 지기라도 한다면 그 죄를 기꺼이 인정하겠지만, 그러나 만약에 싸움에 이기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장차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안리왕은 여희의 말을 듣고 신음소리만 내며 얼마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분노를 삭히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비록 병부를 훔쳤다지만 반드시 그 병부를 신릉군에게 전해 준 자가 있을 것이다. 그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저의 심부름을 해 준 자는 바로 환관 안은(顔恩)입니다.

안리왕이 좌우의 측근들에게 명하여 안은을 잡아 결박한 다음 대령시켜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감히 병부를 가져가 신릉군에게 전했는가?」

「천한 노비가 어찌 병부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이때 여희가 안은을 노려보며 말했다.

「옛날에 내가 너에게 신릉군의 부인에게 머리에 꽂는 장식을 넣었다고 하면서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넘겨 준 목합 안에 들어 있었던 물건이 바로 호부였었다.」

안은은 여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인지 눈치를 채고 곧바로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말했다.

「부인의 분부를 어찌 이 천한 노비가 감히 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는 소인은 머리 장식이 들어 있다는 말만 듣고, 그리고 목합은 여러 겹으로 봉합되어 있어, 소인이 무슨 재주로 그 안에 들어 있었던 물건이 병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 이 천한 노비는 억울하게 죽을 뿐입니다.」

여희도 역시 눈물을 흘리며 안은을 감싸고돌았다.

「다른 사람을 속인 첩에게 죄가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주시면 안 될 것입니다.」

안리왕이 소리쳐 안은의 포박을 풀어주라고 명하고 당분간 옥에 가두어 두라고 했다. 여희도 역시 그의 잘못을 책하고 냉궁에 유폐시켜 놓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신릉군이 싸움에서 이기는지를 정탐하도록 해서 그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두 달여가 지났을 때, 위경이 위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돌아와 병부를 안리왕에게 바치며 그 동안의 사정을 복명하였다.

「신릉군께서는 진나라 군사들을 대파하여 그들을 물리쳤으나, 대왕께 지은 죄로 인하여 돌아오시지 않으시고 조나라에 머물고 계십니다. 공자께서는 대왕의 안부를 걱정하며 후일 시간이 되면 돌아가 죄를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저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안리왕은 위경에게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어 신릉군이 승리를 할 수 있었는지 묻자 위경은 자기가 본 전투상황을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위경의 말이 끝나자 조당에서 위경의 말을 같이 들었던 군신들이 모두 엎드려 안리왕에게 절을 올리며 소리쳤다.

「만세!」

위안리왕(魏安釐王)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좌우의 측근들에게 명하여 냉궁에 유폐된 여희(如姬)와 감옥에 갇혀있던 안은(顔恩)을 석방하라고 명하고 그들의 죄를 모두 용서했다. 여희가 안리왕을 배알하며 주청을 들였다.

「조나라를 구원하여 공을 이루어, 진나라는 대왕의 위엄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조왕은 대왕의 크나큰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이것은 모두 신릉군의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릉군은 우리 위나라를 지켜주는 보루이며 집안의 보기(寶器)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큰 공로를 세운 분을 버리시어 타향살이를 하게 만드십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사자를 조나라에 보내어 신릉군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그리되면 하나는 동기간의 정리를 보전하게 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진 사람의 의기를 세상에 밝히시게 되는 일입니다.」

「내가 그의 죄를 면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족할 일인데, 어찌 공로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안리왕은 다시 신릉군에 대한 처분을 내렸다.

「신릉군 이름으로 되어있는 봉읍과 작록은 모두 예전처럼 신릉군의 집과 공관으로 다시 돌려주어 속하게 하여 그들의 비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하겠으나, 그의 귀국만은 내가 허락하지 못하겠다.」

이후로는 위나라와 조나라는 모두 평화를 유지하며 잘 지낼 수 있게되었다.

한편 진소양왕(秦昭陽王)은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지고 본국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태자 안국군(安國君)과 왕손(王孫) 자초(子楚)가 함양성 밖 교외에까지 영접 나와 여불위의 지혜로움을 말하여 그 동안의 일을 자세하게 고했다. 소양왕은 여불위를 객경(客卿)에 제수하고 천호의 고을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소양왕은 이어서 범수의 친구 정안평(鄭安平)이 휘하의 장병들을 이끌고 위나라 군사들에게 항복했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하여 그의 가족들을 붙잡아 모두 죽였다. 정안평은 곧 승상 범수(范睢)의 추천에 의해 진나라의 장군에 등용된 사람이다. 진나라 법에는 왕에게 천거하여 등용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천거한 사람 자신도 그와 똑같은 죄를 주게 되어있었다. 정안평이 적군에게 항복하여 그의 가족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였으니, 범수도 역시 정안평이의 일에 연좌되어 자유로울 수 없었다. 범수는 그것을 염려하여 소양왕에게 석고대죄(席藁待罪)하였다.

< 제 101회로 계속 >

주석

1)남관(南冠)/ 초나라 사람들이 쓰던 모자를 말한다.

2)표석(豹舃)/ 바닥을 여러 겹의 표범 가죽으로 대서 만든 신을 말한다. 참고로 홑겹으로 만든 신은 구(屨)라하고 한다.

3)경(頃)/ 춘추전국 시대 때의 한 경(頃)은 의 넓이는 약 5,500평에 해당함.즉 200경은 약 백만 평에 해당함.

4)객장(客將)/ 타국 출신이 사람이 벼슬을 할 때 무장은 객장(客將), 문관은 객경(客卿)이라고 했다.

5)전파(田巴)/ 진한(秦漢) 교체기 때 제왕(齊王) 전담(田儋) 휘하의 부장에 전파(田巴)라고 있었다. 진장(秦將) 장한(章邯)이 위왕(魏王) 구(咎)를 공격하자, 위왕이 제(齊)와 초(楚)에게 구원권을 청했다. 제왕 전담은 전파를 장수로 삼아 초장 항타(項它)와 함께 위나라를 구원하게 했으나 장한의 습격을 받아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전파가 장한과 싸운 해는 기원전 207년이고 한단성이 진나라에 포위된 해는 기원전 257년의 일로 전파와 노중련의 언쟁과는 6-70년의 시차가 있다.

6)병부(兵符)/군권을 상징하는 부절(符節). 전국시대, 진한(秦漢) 시대 때 왕이 장수에게 병권을 주거나 군대를 일으킬 때 사용하는 신물이다. 금, 은, 동 등으로 주조하여 호랑이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호부(虎符)라고도 한다. 뒷면에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두 쪽으로 나누어 오른쪽 절반은 조정에서 보관하고 왼쪽 절반은 장수에게 주었다. 군대를 일으킬 때는 반드시 사신이 가지고 온 부절과 맞추어 일치하여야만 그 명령이 효력이 발생하였다.

7)전사(傳舍)/ 문객들이 묶고 있는 곳을 통틀어 객사(客舍)라로 하는데 그 묶고 있는 사람의 신분이나 재능에 따라 대사(代舍), 행사(幸舍) 및 전사(傳舍) 등의 삼등 급으로 나누었다. 전사는 그 중 하급의 식객들을 머물게 했던 집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94회 내용과 부록 인명사전 참조 바람.

8)人有德于公子 公子不可忘, 公子有德于人 公子不可不忘也.

9)호(鄗)/지금의 하북성 백향현(柏鄕縣) 동

10)탕목지읍(湯沐之邑)/목욕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채지(采地). 주나라 때 임금이 제후에게 하사한 땅으로 그곳에서 걷는 부세로 제후의 목욕에 들어가는 비용에 충당하도록 한 봉읍을 말한다.

11)與其富貴而詘于人, 寧貧賤而得自由也

12)同室相鬪者, 被發冠纓而往救之

[평설]

기원전 257년 한단성을 포위하고 있던 진군은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한 초와 위 두 나라 군사들과 조군의 협공을 받아 패퇴되었다.

조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며 농성하다가 원군의 도움을 받아 포위에서 벗어난 것은 인재들을 중용한 결과이다.

평원군 조승(趙勝)은 모수(毛遂) 등의 문객을 이끌고 초나라에 가서 합종을 유세했으나 초고열왕은 조나라를 도울 경우 연좌에 걸려 진나라로부터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온갖 핑계를 대가며 거절했다. 모수는 초나라는 이미 진나라에 침략에 의해 그 도성인 영도를 빼앗기고 그 조상들의 분묘가 있던 경릉(竟陵)이 불태워진 결과 그 나라를 진(陳)으로 옮겨야야만 했던 치욕을 상기시켜 초고열왕을 격노케함으로 해서 간신히 초왕으로 하여금 조나라에 구원군을 보내는 것을 결심하도록 만들었다. 초왕은 춘신군 황헐에게 구원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명했다. 모수는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하여 초나라에 가는 사절단에 참가한 일로 인해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시 평원군 조승이 위왕과 그 동생 신릉군 무기(無忌)에게 편지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자 위왕은 진비(晉鄙)를 대장으로 삼아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명했다. 진왕이 사자를 위나라에 보내 위협하며 말했다.

“ 조나라의 한단성은 조만간에 함락될 것이다. 누구든지 감히 군사를 내어 조나라를 구원하려고 한다면 조나라를 점령한 다음 제일 먼저 그 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

위왕이 두려워하여 진비에게 명하여 진군을 멈추고 업에 주둔하며 사태를 관망하라고 했다. 위왕은 동시에 신원연(辛垣衍)이라는 세객을 보내 조왕에게 진왕을 제(帝)로 받들고 전쟁을 끝내라고 권했다. 그때 마침 한단에 머물고 있던 제나라 사람 노중련 진나라를 제왕(帝王)로 받들게 되어 일어나는 해로운 일을 분석하여 신원연으로 하여금 진왕을 제로 받드는 활동을 멈추게 하고 조나라가 계속해서 진나라에 대해 계속 항전하도록 했다.

평원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신릉군에게 편지를 써서 위나라의 구원군을 재촉했다. 이에 신릉군이 그때마다 위왕에게 조나라를 구원해야 한다고 간했지만 진나라를 두려워한 위왕은 위군의 진격을 동의하지 않았다. 신릉군은 위왕의 애첩에게 부탁하여 병권을 상징하는 호부(虎符)를 훔쳐낸 다음 위군이 주둔하고 있던 업(鄴)으로 가서 대장 진비를 척살하고 10만의 군사들 중 정병 8만을 다시 선발하여 한단으로 곧바로 진격했다.

평원군의 초와 위 두 나라에 한단에 대해 지원군에 대한 파병 요청은 뜻밖의 소득을 결과를 낳았다.

기원전 257년 진나라가 다시 증원군을 한단으로 보냈다. 정안평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로 진군하여 왕흘을 도와 한단을 공격하라고 했다. 위와 초 두 나라의 원군이 한단성 외곽에 당도하자 세 나라 군사들에 의해 진군은 연전연패했다. 평원군이 다시 결사대 3천을 모집하여 성 밖으로 출격하자 내외에서 협공을 받은 진군은 대패하고 정안평은 그 군사들을 들어 조나라에 항복했다. 위와 추 두 나라 군사들은 그 여세를 몰아 하동까지 추격하여 진군을 하서까지 밀어 넣었다.

진군이 한단의 싸움에서 패한 이유는, 진나라는 스스로를 강대하다는 일면만 생각하고 조나라의 상하가 모두 목숨을 걸고 진나라에 항전하려는 투지를 보지 못하여 결국은 속전속결하지 못했고, 단지 위와 초 두 나라가 진나라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일면만 생각하고 그들이 다시 진나라에 대항하여 조나라를 원조할 가능성은 보지 못했다. 조나라가 지구전으로 대항해 오자 진군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고서도 여전히 그 전략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진왕은 화를 내며 전쟁을 독려했지만, 냉정한 자세를 잃은 상태에서 전황을 분석한 결과 병가의 금도를 어겨 일을 망친 것이다.

조나라가 장평의 싸움과는 달리 한단의 싸움에서 상반된 결과를 얻은 이유는 전략적인 면에서 성을 굳게 지켜 적군을 피로에 지치게 하는 한편 위와 초 두 나라와 합종을 맺어 지구전으로 맞서 진군을 대파한 것은 약한 국력의 조나라와 강한 전력의 진나라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맞추어 구사한 전략이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항복한 조나라 군사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진군에 대한 복수심과 현인을 예로써 대하고 선비를 공경했던 평원군의 존재가 조나라의 상하를 일치단결하게 만들었다. 공동의 적에 대해 불타고 있었던 조군의 적개심, 당시 효과적이지 못했던 공성기구에 비해 견고했던 한단성의 성곽 등은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조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초왕을 격분시켜 출병을 유도했던 모수, 호부를 훔쳐 조나라를 구했던 신릉군 등이 진군을 대파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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